고전원전자료/논어

술이 7

황성 2012. 11. 29. 19:15

▣ 술이(述而) 제칠(第七)


此篇은 多記聖人謙己誨人之辭와 及其容貌行事之實하니 凡三十七章이라


  이 편(篇)은 성인(聖人)이 자신을 겸손히 하고 남을 가르치신 말씀과 그 용모(容貌)와 행동(行動)의 실제를 기록한 것이 많으니, 모두 37장(章)이다.


*논어 ; 술이 ; 제1장


▣ 제1장(第一章)


 子曰 述而不作하며 信而好古를 竊比於我老彭하노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전술(傳述)하기만 하고 창작(創作)하지 않으며, 옛것을 믿고 좋아함을 내 저으기 우리 노팽(老彭)에게 견주노라.”


述은 傳舊而已요 作은 則創始也라 故로 作은 非聖人이면 不能이요 而述則賢者可及이라 竊比는 尊之之辭요 我는 親之之辭라 老彭은 商賢大夫니 見(현)大戴禮하니 蓋信古而傳述者也라 孔子刪詩書하고 定禮樂하며 贊周易하고 修春秋하사 皆傳先王之舊요 而未嘗有所作也라 故로 其自言如此하시니 蓋不惟不敢當//주:불유불감당作者之聖이라 而亦不敢顯然自附//주:불감현연자부於古之賢人이니 蓋其德愈盛而心愈下//주:심유하하여 不自知其辭之謙也라 然이나 當是時하여 作者略備어늘 夫子蓋集群聖之大成而折衷之하시니 其事雖述이나 而功則倍於作矣니 此又不可不知也니라


  술(述)은 옛것을 전술(傳述)하는 것일 뿐이요, 작(作)은 처음으로 창작(創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작(作)은 성인(聖人)이 아니면 불가능하지만 술(述)은 현자(賢者)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절비(竊比)는 그를 높이는 말이요, 아(我)는 그를 친근하게 여기는 말이다. 노팽(老彭)은 상(商)나라의 어진 대부(大夫)로 《대대례(大戴禮)》에 보이는데 아마도 옛것을 믿어 전술(傳述)한자인 듯하다.

  공자(孔子)는 《시(詩)》·《서(書)》를 산삭(刪削)하고, 예악(禮樂)을 정리하였으며 《주역(周易)》을 찬술(贊述)[부연]하고 《춘추(春秋)》를 편수(編修)하여 모두 선왕(先王)의 옛것을 전술(傳述)하였고 일찍이 창작(創作)한 것이 있지 않았다. 그러므로 스스로 말씀하시기를 이와 같이 한 것이다. 이는 창작(創作)을 하는 성인(聖人)으로 자처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감히 드러내놓고 옛 현인(賢人)에게도 스스로 붙이지 못한 것이니, 그 덕(德)이 더욱 높아질수록 마음이 더욱 겸손해져서, 자신도 그 말씀이 겸손한 것임을 알지 못하신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 창작(創作)은 대략 갖추어졌으니, 공자(孔子)는 여러 성인(聖人)을 집대성(集大成)하여 절충(折衷)하셨다. 그러하니 공자(孔子)가 하신 일은 비록 전술(傳述)에 불과 하였으나 그 공(功)은 창작(創作)보다 곱절이나 된다. 이 또한 알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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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술이 ; 제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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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장(第二章)


 子曰 黙而識之하며 學而不厭하며 誨人不倦이 何有於我哉오


  공자(孔子)게서 말씀하셨다. “묵묵히 기억하며 배우고 싫어하지 않으며 사람 가르치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 것, 이중에 어느 것이 나에게 있겠는가?”


識는 記也니 黙識는 謂不言而存諸心也라 一說에 識은 知也니 不言而心解也라하니 前說이 近是라 何有於我는 言何者能有於我也라 三者는 已非聖人之極至로되 而猶不敢當하시니 則謙而又謙之辭也라


  지(識)는 기억함이니, 묵묵히 기억한다 함은 말하지 않으면서도 마음에 간직함을 말한다. 일설(一說)에 식(識)은 앎이니, 말하지 않아도 마음속에 이해되는 것이라 하는데, 전설(前說)이 옳은 듯하다. 하유어아(何有於我)는 어느 것이 나에게 있겠는가 라는 말이다. 세 가지의 일은 성인(聖人)의 지극한 일이 아닌데도 오히려 자처하지 않았으니, 겸손하고 또 겸손한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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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술이 ; 제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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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장(第三章)


 子曰 德之不修와 學之不講과 聞義不能徙와 不善不能改가 是吾憂也니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덕(德)이 닦아지지 못함과 학문이 강마(講磨)되지 못함과 의(義)를 듣고 옮겨가지 못함과 불선(不善)을 고치지 못하는 것이 바로 나의 걱정거리이다.”


尹氏曰 德必修而後成하고 學必講而後明하며 見善能徙하고 改過不吝이니 此四者는 日新之要也라 苟未能之면 聖人猶憂어든 況學者乎아


  윤씨(尹氏)가 말하였다. “덕(德)은 반드시 닦은 뒤에야 이루어지고, 학문은 반드시 강마(講磨)한 뒤에야 밝아지며, 선(善)을 보면 능히 옮기고, 허물을 고침에 인색하지 않는 이 네 가지 일은 나날이 새롭게 하는 공부의 요체(要諦)이다. 만일 이에 능하지 못한다면 성인(聖人)도 근심하였으니, 하물며 배우는 자에 있어서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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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술이 ; 제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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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4장(第四章)


 子之燕居에 申申如也하시며 夭夭如也러시다


  공자(孔子)께서 한가로이 계실 적에 그 모습은 신신(申申)[활짝 폄]하시며 요요(夭夭)[온화함]하셨다.


燕居는 閒暇無事之時라 楊氏曰 申申은 其容舒也요 夭夭는 其色愉也라

○ 程子曰 此弟子善形容聖人處也라 爲申申字說不盡이라 故로 更著(착)夭夭字라 今人은 燕居之時에 不怠惰放肆면 必太嚴厲하니 嚴厲時著此四字不得이요 怠惰放肆時亦著此四字不得이니 惟聖人은 便自有中和之氣니라


  연거(燕居)는 한가하여 일이 없는 때이다.

  양씨(楊氏)가 말하였다. “신신(申申)은 용모가 펴진 것이요, 요요(夭夭)는 얼굴빛이 온화한 것이다.”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이것은 제자(弟子)가 성인(聖人)[공자(孔子)]을 잘 형용한 부분이다. 신신(申申)이라는 글자만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으므로 다시 요요(夭夭)라는 글자를 놓은 것이다. 지금 사람들은 한가로이 지낼 때에는 게으르거나 방사(放肆)하지 않으면 반드시 지나치게 엄하다. 지나치게 엄할 때에는 신신(申申) 요요(夭夭)라는 네 글자를 놓을 수 없으며, 게으르거나 방사(放肆)할 적에도 이 네 글자를 놓을 수 없으니, 오직 성인(聖人)은 저절로 중화(中和)의 기상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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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술이 ; 제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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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5장(第五章)


 子曰 甚矣라 吾衰也여 久矣라 吾不復夢見周公이로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심하도다. 나의 쇠함이여! 오래되었다. 내 다시는 꿈속에서 주공(周公)을 뵙지 못하였다.”


孔子盛時에 志欲行周公之道라 故로 夢寐之間에 如或見之러니 至其老而不能行也하사는 則無復是心而亦無復是夢矣라 故로 因此而自歎其衰之甚也시니라

○ 程子曰 孔子盛時에 寤寐常存行周公之道러니 及其老也하사는 則志慮衰而不可以有爲矣라 蓋存道者心이니 無老少之異어니와 而行道者身이니 老則衰也니라


  공자(孔子)가 젊었을 때에는 주공(周公)의 도(道)를 행하려는 뜻을 두었기 때문에 꿈속에서 혹 주공(周公)을 뵈었었는데, 늙어서 도(道)를 행할 수 없음에 이르러서는 다시 이러한 마음이 없어져 꿈속에서도 다시 주공(周公)을 뵙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이로 인하여 자신의 쇠함이 심함을 못내 자탄(自歎)하신 것이다.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공자(孔子)가 젊었을 때에는 자나깨나 늘 주공(周公)의 도(道)를 행하려는 마음을 두셨는데, 늘그막에 이르러서는 의지가 쇠하여 할 수가 없게 되었다. 도(道)를 두는 것은 마음이니 마음은 노소(老少)의 차이가 없거니와, 도(道)를 행하는 것은 몸이니 몸은 늙으면 쇠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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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술이 ; 제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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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6장(第六章)


 子曰 志於道하며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도(道)에 뜻을 두며,


志者는 心之所之之謂요 道는 則人倫日用之間所當行者是也라 知此而心必之焉이면 則所適者正하여 而無他쨓之惑矣리라


  지(志)는 마음이 지향해 가는 것을 말한다. 도(道)는 곧 인륜과 일상생활하는 사이에 마땅히 행하여야할 것이 이것이다. 이것을 알아서 마음이 반드시 거기에 가 있다면 가는 것이 올 바라서, 딴 길로 향하는 미혹이 없을 것이다.


 據於德하며


  덕(德)을 굳게 지키며,


據者는 執守之意요 德은 則行道而有得於心者也//주:덕즉행도이유득어심자야라 得之於心而守之不失이면 則終始惟一하여 而有日新之功矣리라


  거(據)는 꼭 잡아 지킨다는 뜻이요, 덕(德)은 곧 도(道)를 행하여 마음에 얻는 것이다. 마음에 도(道)를 얻고 그것을 잘 지켜 잃지 않는다면, 종시(終始)가 한결같아서 나날이 새로워지는 공효(功效)가 있을 것이다.


 依於仁하며


  인(仁)에 의지하며,


依者는 不違之謂요 仁은 則私欲盡去而心德之全也라 工夫至此而無終食之違면 則存養之熟하여 無適而非天理之流行矣리라


  의(依)는 떠나지 않음을 이름이요, 인(仁)은 곧 사욕(私慾)이 모두 없어져 심덕(心德)이 온전한 것이다. 공부(功夫)가 여기에 이르러 밥 한 그릇 먹는 사이라도 인(仁)을 떠나지 않는다면 존양(存養)이 익숙해져서 가는 곳마다 천리(天理)의 유행(流行) 아님이 없을 것이다.


 游於藝니라


  예(藝)에 노닐어야 한다.”


游者는 玩物適情之謂요 藝는 則禮樂之文과 射御書數之法이니 皆至理所寓而日用之不可闕者也라 朝夕游焉하여 以博其義理之趣면 則應務有餘하고 而心亦無所放矣리라

○ 此章은 言人之爲學이 當如是也라 蓋學莫先於立志하니 志道則心存於正而不他요 據德則道得於心而不失이요 依仁則德性常用而物欲不行이요 游藝則小物不遺而動息有養이라 學者於此에 有以不失其先後之序와 輕重之倫焉이면 則本末兼該하고 內外交養하여 日用之間에 無少間隙而涵泳從容하여 忽不自知其入於聖賢之域矣리라


  유(游)는 사물을 완상(玩賞)하여 성정(性情)에 알맞게 함을 이름이요, 예(藝)는 곧 예(禮)·악(樂)의 글과 사(射)·어(御)·서(書)·수(數)의 법(法)이니, 모두 지극한 이치가 있어서 일상생활(日常生活)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다. 아침저녁으로 육예(六藝)에 노닐어 의리(義理)의 취향(趣向)을 넓혀간다면, 일을 대처함에 여유가 있고 마음도 방심(放心)되는 바가 없을 것이다.

  ○ 이 장(章)은 사람이 학문(學問)을 함에 있어 마땅히 이와 같이 하여야 함을 말씀한 것이다. 학문(學問)은 뜻을 세우는 것보다 앞서는 것이 없으니, 도(道)에 뜻을 두면 마음이 올바름에 있어서 다른 데로 흘러가지 않을 것이요, 덕(德)을 굳게 지키면 도(道)가 마음에 얻어져서 떠나지 않을 것이요, 인(仁)에 의지하면 덕성(德性)이 늘 쓰여져서 물욕(物慾)이 행해지지 않을 것이요, 예(藝)에 노닐면 작은 일도 빠뜨리지 않아 움직이거나 쉬거나 끊임없는 수양(修養)이 있을 것이다. 배우는 자가 여기에서 선후(先後)의 순서와 경중(輕重)의 비중을 잃지 않는다면 본말(本末)이 겸비되고 내외(內外)가 서로 수양되어, 일상생활(日常生活)하는 사이에 조금의 간단(間斷)도 없어 늘 이 속에 빠져 있고 종용(從容)하여, 어느덧 자신이 성현(聖賢)의 경지(境地)에 들어감을 스스로 알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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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술이 ; 제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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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7장(第七章)


 子曰 自行束脩以上은 吾未嘗無誨焉이로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포(脯) 한 속(束) 이상을 가지고 와 집지(執贄)의 예(禮)를 행한 자에게는 내 일찍이 가르쳐 주지 않은 적이 없었다.”


脩는 脯也니 十★爲速이라 古者相見에 必執贄以爲禮하니 束脩는 其至薄者라 蓋人之有生이 同具此理라 故로 聖人之於人에 無不欲其入於善이로되 但不知來學이면 則無往敎之禮라 故로 苟以禮來면 則無不有以敎之也라


  수(脩)는 포(脯)이니 10개를 속(束)이라 한다. 옛날에 서로 만나볼 적에는 반드시 폐백(幣帛)을 바쳐 예의(禮儀)로 삼았는데, 한 속(束)의 포(脯)는 지극히 적은 것이다. 사람이 태어날 적에 똑같이 이 성리(性理)를 갖추었다. 그러므로 성인(聖人)은 사람에 대하여 선(善)에 들기를 바라지 않음이 없으나, 다만 찾아와서 배울 줄을 모르면 가서 가르쳐 주는 예(禮)는 없다. 그러므로 만일 예(禮)를 갖추고 찾아오면 가르쳐 주지 않음이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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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술이 ; 제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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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8장(第八章)


 子曰 不憤이어든 不啓하며 不悱어든 不發호되 擧一隅에 不以三隅反이어든 則不復也니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마음속으로 통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열어주지 않으며, 애태워하지 않으면 말해주지 않되, 한 귀퉁이를 들어주었는데 이것을 가지고 남은 세 귀퉁이를 반증(反證)하지 못하면 다시 더 일러주지 않아야 한다.”


憤者는 心求通而未得之意요 悱者는 口欲言而未能之貌라 啓는 謂開其意요 發은 謂達其辭라 物之有四隅者는 擧一이면 可知其三이라 反者는 還以相證之義라 復는 再告也라 上章에 已言聖人誨人不倦之意하시고 因幷記此하여 欲學者勉於用力以爲受敎之地也시니라

○ 程子曰 憤悱는 誠意之見(현)於色辭者也니 待其誠至而後告之요 旣告之면 又必待其自得하여 乃復告爾시니라 又曰 不待憤悱而發이면 則知之不能堅固요 待其憤悱而後發이면 則沛然矣리라


  분(憤)은 마음속으로 통달하려고 하되 되지 않아 애태우는 뜻이요, 비(悱)는 입으로 말하고 싶어하되 능하지 못하여 애태우는 모양이다. 계(啓)는 그 뜻을 열어줌을 말하고, 발(發)은 그 말문을 열어줌을 말한다. 물건에 네 귀퉁이가 있는 것은 그중 하나만 들면 나머지 세 귀퉁이도 알 수 있다. 반(反)은 되돌려서 서로 증거 한다는 뜻이요, 부(復)는 다시 말해주는 것이다.

  위 장(章)에서는 이미 성인(聖人)이 사람을 가르칠 적에 게을리 하지 않음을 말하였으므로 이로 인하여 함께 이것을 기록하였으니, 배우는 자들이 힘을 씀에 부지런히 하여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게 하고자 한 것이다.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분비(憤悱)는 성의(誠意)가 안색(顔色)과 말에 나타나는 것이니, 성의가 지극하기를 기다린 뒤에 알려주고, 알려준 뒤에는 또 반드시 자득(自得)하기를 기다려서 다시 알려주는 것이다.”

  또 말씀하였다. “분비(憤悱)함을 기다리지 않고 말해주면 아는 것이 확고할 수 없으며, 분비(憤悱)하기를 기다린 뒤에 알려주면 패연(沛然)[확연히 깨달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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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술이 ; 제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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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9장(第九章)


 子食於有喪者之側에 未嘗飽也러시다


  공자(孔子)께서는 상사(喪事)가 있는 자의 곁에서 음식을 먹을 때에는 배부르게 먹은 적이 없으셨다.


臨喪哀하여 不能甘也라


  상사(喪事)에 임함에 슬퍼져 달게 먹을 수가 없어서이다.


 子於是日에 哭則不歌러시다


  공자(孔子)께서는 이날에 조곡(弔哭)을 하시면 노래를 부르지 않으셨다.


哭은 謂吊哭이니 一日之內에 餘哀未忘하여 自不能歌也라

○ 謝氏曰 學者於此二者에 可見聖人情性之正也니 能識聖人之情性然後에 可以學道니라


  곡(哭)은 조상(弔喪)하여 곡함을 말한다. 하루 안에는 남은 슬픔이 가시지 않아서 저절로 노래를 부를 수 없는 것이다.

  ○ 사씨(謝氏)가 말하였다. “배우는 자들은 이 두 가지에서 성인(聖人)의 올바른 성정(性情)을 볼 수 있을 것이니, 성인(聖人)의 성정(性情)을 제대로 안 뒤에 도(道)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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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술이 ; 제1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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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0장(第十章)


 子謂顔淵曰 用之則行하고 舍之則藏을 惟我與爾有是夫인저


  공자(孔子)께서 안연(顔淵)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써주면 도(道)를 행하고 버리면 은둔하는 것을 오직 나와 너만이 이것을 지니고 있을 뿐이다.”


尹氏曰 用舍는 無與於己요 行藏은 安於所遇니 命不足道也라 顔子幾於聖人이라 故로 亦能之니라


  윤씨(尹氏)가 말하였다. “나를 써주거나 나를 버리는 것은 나와 상관이 없으며, 행하고 은둔하는 것은 만나는 환경에 따라 편안히 여기니, 운명(運命)은 말할 것이 못된다. 안자(顔子)는 성인(聖人)에 가까웠기 때문에 그 역시 이에 능할 수 있었다.”


 子路曰 子行三軍이면 則誰與시리잇고


  자로(子路)가 말하였다. “부자(夫子)께서 삼군(三軍)을 출동(出動)[통솔]하신다면 누구와 함께 하시겠습니까?”


萬二千五百人爲軍이니 大國三軍이라 子路見孔子獨美顔淵하고 自負其勇하여 意夫子若行三軍이면 必與己同이라


  1만 2천 5백 명을 1군(軍)이라 하는데, 큰 나라는 삼군(三軍)을 둔다. 자로(子路)는 공자(孔子)께서 안연(顔淵)만 찬미(讚美)하는 것을 보고, 자기의 용맹(勇猛)을 자부(自負)하여 부자(夫子)께서 삼군(三軍)을 출동(出動)하신다면 반드시 자기와 함께 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子曰 暴虎馮河하여 死而無悔者를 吾不與也니 必也臨事而懼하며 好謀而成者也니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맨손으로 범을 잡으려 하고 맨몸으로 강하(江河)를 건너려다가 죽어도 후회(後悔)함이 없는 자를 나는 함께 하지 않을 것이니, 나는 반드시 일에 임하여 두려워하고, 도모하기를 좋아하여 성공(成功)하는 자를 데리고 할 것이다.”


暴虎는 徒搏이오 馮河는 徒涉이라 懼는 謂敬其事요 成은 謂成其謀라 言此는 皆以抑其勇而敎之라 然이나 行師之要實不外此하니 子路蓋不知也라

○ 謝氏曰 聖人於行藏//주:행장之間에 無意無必하여 其行非貪位요 其藏非獨善也라 若有欲心이면 則不用而求行하고 舍之而不藏矣리라 是以로 惟顔子爲可以與於此라 子路는 雖非有 欲心者나 然이나 未能無固必也요 至以行三軍爲問하여는 則其論益卑矣라 夫子之言은 蓋因其失而救之시니라 夫不謀無成이요 不懼必敗는 小事尙然이어든 而況於行三軍乎아


  포호(暴虎)는 맨손으로 범을 잡는 것이요, 빙하(馮河)는 맨몸으로 강하(江河)를 건너는 것이다. 구(懼)는 일을 공경히 하는 것이요, 성(成)은 도모한 일을 이룸을 말한다. 이것을 말씀한 것은 모두 그의 용맹(勇猛)을 억제(抑制)하여 가르치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군사(軍師)를 출동(出動)하는 요점은 실로 이에서 벗어나지 않으니, 자로(子路)는 아마도 이것을 알지 못한 듯하다.

  ○ 사씨(謝氏)가 말하였다. “성인(聖人)은 행장(行藏)의 사이에 뜻함도 없고 기필(期必)함도 없어 도(道)를 행하는 것이 자리를 탐해서가 아니요, 은둔하는 것도 자기 혼자만이 선(善)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만약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등용해주지 않는데도 행해지기를 구하고, 버리는데도 은둔하지 못할 것이다. 이러므로 안자(顔子)만이 이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 자로(子路)는 비록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자는 아니나, 고집함과 기필(期必)함이 없지는 못하였다. 그리고 삼군(三軍)을 출동(出動)함을 가지고 질문을 하기까지 하였으니, 그 의논(議論)이 더욱 비루(卑陋)하다. 부자(夫子)의 말씀은 그의 잘못을 인하여 바로잡은 것이다. 꾀하지 않으면 이룰 수가 없고, 조심하지 않으면 반드시 패하는 것은, 작은 일도 오히려 그러한데, 하물며 삼군(三軍)을 출동(出動)함에 있어서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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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술이 ; 제1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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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1장(第十一章)


 子曰 富而可求也인댄 雖執鞭之士라도 吾亦爲之어니와 如不可求인댄 從吾所好하리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부(富)를 만일 구해서 될 수 있다면, 내 말채찍을 잡는 자의 짓이라도 내 또한 그것을 하겠다. 그러나 만일 구하여 될 수 없는 것이라면, 내가 좋아하는 바를 따르겠다.”


執鞭은 賤者之事라 設言富若可求인댄 則雖身爲賤役以求之라도 亦所不辭라 然이나 有命焉하여 非求之可得也인댄 則安於義理而已矣니 何必徒取辱哉리오

○ 蘇氏曰 聖人이 未嘗有意於求富也시니 豈問其可不可哉리오 爲此語者는 特以明其決不可求爾시니라 楊氏曰 君子非惡富貴而不求라 以其在天하여 無可求之道也니라


  채찍을 잡는 것은 천한 자의 일이다. 가설(假設)하여 말씀하기를, “부(富)를 만일 구해서 될 수 있다면 내 몸소 천한 일을 해서 구하더라도 사양하지 않겠으나, 이것이 천명(天命)에 달려있어 구한다고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의리(義理)에 편안히 할뿐이니, 어찌 반드시 한갓 욕(辱)만을 취하겠는가.” 하신 것이다.

  ○ 소씨(蘇氏)가 말하였다. “성인(聖人)이 일찍이 부(富)를 구함에 마음을 두신 적이 없으니, 어찌 가능함과 불가능함을 따지겠는가. 그런데 이러한 말씀을 하신 것은 다만 결코 구해서 될 수 없음을 밝혔을 뿐이다.”

  양씨(楊氏)가 말하였다. “군자(君子)는 부귀(富貴)를 싫어해서 구(求)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하늘에 달려 있어서 구할 수 있는 방도(方道)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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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술이 ; 제1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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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2장(第十二章)


 子之所愼은 齊戰疾이러시다


  공자(孔子)께서 조심하신 것은 재계(齊戒)와 전쟁(戰爭)과 질병(疾病)이었다.


齊(재)之爲言은 齊也니 將祭而齊其思慮之不齊者하여 以交於神明也니 誠之至與不至와 神之享與不享이 皆決於此라 戰은 則衆之死生과 國之存亡繫焉이요 疾은 又吾身之所以死生存亡者니 皆不可以不謹也라

○ 尹氏曰 夫子無所不謹하시니 弟子記其大者耳니라


  재계(齊戒)란 말은 가지런히 한다는 뜻이니, 장차 제사(祭祀) 지내려 할 적에 가지런하지 못한 사려(思慮)를 가지런하게 하여 신명(神明)과 사귀는 것이다. 정성이 지극하고 지극하지 못함과, 귀신(鬼神)이 흠향하고 흠향하지 않음이 다 여기에서 판가름난다. 전쟁(戰爭)은 여러 사람의 사생(死生)과 국가(國家)의 존망(存亡)이 달려있는 것이요, 질병(疾病)은 또 내 몸이 사느냐 죽느냐 보존되느냐 없어지느냐가 달려 있는 것이니, 모두 조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 윤씨(尹氏)가 말하였다. “부자(夫子)께서는 조심하지 않은 것이 없었으니, 이는 제자(弟子)가 그 큰 것만을 기록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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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술이 ; 제1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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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3장(第十三章)


 子在齊聞韶하시고 三月不知肉味하사 曰 不圖爲樂之至於斯也호라


  공자(孔子)께서 제(齊)나라에 계실 적에 소악(韶樂)을 들으시고, <배우는> 3개월 동안 고기 맛을 모르시며 “음악(音樂)을 만든 것이 이러한 경지에 이를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하셨다.


史記에 三月上에 有學之二字라 不知肉味는 蓋心一於是而不及乎他也라 曰 不意舜之作樂至於如此之美니 則有以極其情文之備하여 而不覺其歎息之深也라 蓋非聖人이면 不足以及此니라

○ 范氏曰 韶는 盡美又盡善하니 樂之無以加此也라 故로 學之三月을 不知肉味하여 而歎美之如此하시니 誠之至요 感之深也시니라


 《사기(史記)》에는 삼월(三月) 위에 학지(學之)[배웠다] 두 글자가 있다. 고기 맛을 몰랐다는 것은 마음이 여기에 전일(專一)해서 다른 것에 미치지 못한 것이다. “순(舜)임금이 음악(音樂)을 만든 것이 이처럼 아름다울 줄을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씀하셨으니, 이는 내용G:〔情〕과 문채의 갖춤을 지극히 하여, 그 감탄이 깊어짐을 깨닫지 못하신 것이다. 이는 성인(聖人)이 아니면 이에 미칠 수 없다.

  ○ 범씨(范氏)가 말하였다. “소악(韶樂)은 지극히 아름답고 또 지극히 좋으니, 음악으로서 이보다 더한 것이 없다. 그러므로 배우는 3개월 동안 고기 맛을 모르시고 감탄하기를 이와 같이 하신 것이니, 정성이 지극하고 감동함이 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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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술이 ; 제1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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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4장(第十四章)


 冉有曰 夫子爲衛君乎아 子貢曰 諾다 吾將問之호리라


  염유(冉有)가 말하기를 “부자(夫子)께서 위(衛)나라 군주(君主)를 도우실까?”라고 하자, 자공(子貢)이 말하기를 “좋습니다. 내 장차 여쭈어보리다.” 하였다.


爲는 猶助也라 衛君은 出公輒也라 靈公逐其世子蒯聵러니 公薨에 而國人立蒯聵之子輒하다 於是에 晉納蒯聵而輒拒之하니라 時孔子居衛하시니 衛人以蒯聵得罪於父요 而輒嫡孫當立이라 故로 冉有疑而問之라 諾은 應辭也라


  위(爲)는 돕다G:〔助〕와 같다. 위(衛)나라 군주(君主)는 출공(出公) 첩(輒)이다. 영공(靈公)이 세자(世子)인 괴외(蒯聵)를 내쫓았는데, 영공(靈公)이 죽자, 나라사람들이 괴외(蒯聵)의 아들인 첩(輒)을 세웠다. 이때 진(晉)나라에서는 괴외(蒯聵)를 본국에 들여보내니, 첩(輒)은 그를 막았다. 때마침 공자(孔子)가 위(衛)나라에 계시니, 위(衛)나라 사람들은 괴외(蒯聵)는 아버지에게 죄를 얻었고 첩(輒)은 적손(嫡孫)이므로 왕위(王位)에 서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그러므로 염유(冉有)가 의심하여 물은 것이다. 낙(諾)은 대답하는 말이다.


 入하여 曰 伯夷叔齊는 何人也잇고 曰古之賢人也니라 曰怨乎잇가 曰求仁而得仁이어니 又何怨이리오 出하여 曰 夫子不爲也시리라


  들어가서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는 어떠한 사람입니까?” 하고 묻자, 공자(孔子)께서는 “옛날의 현인(賢人)이시다.” 하고 대답하셨다. “후회(後悔)하셨습니까?” 하고 묻자, “인(仁)을 구하여 인(仁)을 얻었으니, 다시 어찌 후회(後悔)하였겠는가.”라고 대답하셨다. 자공(子貢)이 나와서 말하기를 “부자(夫子)께서는 그를 돕지 않으실 것이다.” 하였다.


伯夷叔齊는 孤竹君之二子라 其父將死에 遺命立督齊러니 父卒에 叔齊遜伯夷한대 伯夷曰父命也라하고 遂逃去하니 叔齊亦不立而逃之한대 國人立其中子하니라 其後武王伐紂에 夷齊扣馬而諫이러니 武王滅商한대 夷齊恥食周粟하여 去隱于首陽山이라가 遂餓而死하니라 怨은 猶悔也라 君子居是邦에 不非其大夫어든 況其君乎아 故로 子貢不斥衛君하고 而以夷齊爲問이어늘 夫子告之如此하시니 則其不爲衛君을 可知矣라 蓋伯夷以父命爲尊하고 叔齊以天倫爲重하니 其遜國也가 皆求所以合乎天理之正而卽乎人心之安이요 旣而各得其志焉하여는 則視棄其國을 猶敝★爾니 何怨之有리오 若衛輒之據國拒父而唯恐失之는 其不可同年而語//주:기불가동년이어가 明矣니라

○ 程子曰 伯夷叔齊遜國而逃하고 諫伐而餓호되 終無怨悔하니 夫子以爲賢이라 故로 知其不與輒也니라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는 고죽군(孤竹君)의 두 아들이다. 아버지[고죽군(孤竹君)]가 죽을 적에 숙제(叔齊)를 세우라는 유명(遺命)을 하였다. 아버지가 죽자, 숙제(叔齊)는 백이(伯夷)에게 양보하였다. 백이(伯夷)는 아버지의 유명(遺命)이라 하고 마침내 도망가니, 숙제(叔齊)도 왕위(王位)에 서지 않고 도망갔다. 이에 나라사람들은 둘째 아들을 세웠다. 그 뒤에 무왕(武王)이 주왕(紂王)을 정벌(征伐)하자, 백이(伯夷)·숙제(叔齊)는 말고삐를 잡고 간(諫)하였고, 무왕(武王)이 상(商)나라를 멸망시키자, 백이(伯夷)·숙제(叔齊)는 주(周)나라의 녹(祿)을 먹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주(周)나라를 떠나 수양산(首陽山)에 숨어살다가 끝내 굶어 죽었다. 원(怨)은 후회G:〔悔〕와 같다.

  군자(君子)는 그 나라에 머무를 때에는 그 지방의 대부(大夫)G:〔邑宰〕를 비난하지 않는 법인데, 하물며 군주(君主)에 있어서이겠는가. 그러므로 자공(子貢)이 위(衛)나라 군주(君主)를 곧바로 지척(指斥)하지 않고 백이(伯夷)·숙제(叔齊)를 들어 질문을 한 것인데, 부자(夫子)의 대답이 이와 같았으니, 그렇다면 위(衛)나라 군주(君主)를 돕지 않으실 것을 알 수 있다. 백이(伯夷)는 아버지의 유명(遺命)을 존중하였고 숙제(叔齊)는 천륜(天倫)을 중시하였으니, 나라를 사양한 것은 다 천리(天理)의 바름에 합하고 인심(人心)의 편안함에 나아가기를 구한 것이다. 그리하여 각각 자기의 뜻을 얻었으니, 그 나라를 버리는 것 보기를 헌신짝처럼 여긴 것이다. 어찌 후회(後悔)함이 있었겠는가. 위첩(衛輒)이 나라를 점거하고 아버지를 막아서 행여 나라를 잃을까 두려워한 것으로 말하면, 한 자리에 놓고 거론할 수 없음이 분명하다.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백이(伯夷)·숙제(叔齊)는 나라를 사양하다가 도망하였고, 정벌(征伐)을 간(諫)하다가 굶주려 죽었으나 끝내 후회(後悔)가 없었는데, 부자(夫子)께서 그들을 어질게 여기셨다. 그러므로 위첩(衛輒)을 돕지 않으실 것임을 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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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술이 ; 제1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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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5장(第十五章)


 子曰 飯疏食飮水하고 曲肱而枕之라도 樂亦在其中矣니 不義而富且貴는 於我如浮雲이니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며 팔을 굽혀 베더라도 낙(樂)은 또한 그 가운데 있으니, 의(義)롭지 못하고서 부(富)하고 또 귀(貴)함은 나에게 있어 뜬구름과 같으니라.”


飯은 食之也요 疏食는 麤飯也라 聖人之心은 渾然天理하여 雖處困極이나 而樂亦無不在焉이라 其視不義之富貴를 如浮雲之無有하여 漠然無所動於其中也시니라

○ 程子曰 非樂疏食飮水也라 雖疏食飮水라도 不能改其樂也니 不義之富貴를 視之輕如浮雲然이니라 又曰 須知所樂者何事니라


  반(飯)은 먹는 것이다. 소사(疏食)는 거친 밥이다.

  성인(聖人)의 마음은 혼연(渾然)히 천리(天理)여서 비록 지극히 곤궁(困窮)한 환경에 처하더라도 낙(樂)이 있지 않은 데가 없다. 그 의(義)롭지 못한 부귀(富貴) 보기를 마치 뜬구름이 없는 것 같이 여겨, 막연해서 그 마음에 동요됨이 없는 것이다.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는 것을 즐거워한 것이 아니라,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면서도 그 낙(樂)을 고칠 수 없는 것이니, 의(義)롭지 못한 부귀(富貴) 보기를 뜬구름처럼 가볍게 여기신 것이다.”

  또 말씀하였다. “모름지기 즐기신 것이 무슨 일인가를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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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술이 ; 제1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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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6장(第十六章)


 子曰 加G:[假]我數年하여 五十G:[卒]以學易이면 可以無大過矣리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하늘이 나에게 몇 년의 수명을 빌려주어 마침내 《주역(周易)》을 배우게 한다면 큰 허물이 없을 것이다.”


劉聘君이 見元城劉忠定公한대 自言 嘗讀他論하니 加作假요 五十作卒이라하니 蓋加假는 聲相近而誤讀이요 卒與五十은 字相似而誤分也라 愚按 此章之言을 史記에 作假我數年하여 若是면 我於易則彬彬矣라하여 加正作假하고 而無五十字하니 蓋是時에 孔子年已幾七十矣니 五十字誤는 無疑也라 學易則明乎吉凶消長之理와 進退存亡之道라 故로 可以無大過라 蓋聖人深見易道之無窮하고 而言此以敎人하여 使知其不可不學이요 而又不可以易(이)而學也시니라


  유빙군(劉聘君)이 “원성(元城) 유충정공(劉忠定公)을 만났는데, 말하기를 ‘일찍이 다른 본(本)의 《논어(論語)》를 읽어보니, 가(加)는 가(假)로 되어 있고 오십(五十)은 졸(卒)로 되어 있었다.’하였다. 아마도 가(加)와 가(假)는 음이 서로 가까워 잘못 읽은 것이고, 졸(卒)과 오십(五十)은 글자가 서로 비슷해서 잘못 나뉘어진 것인 듯하다.” 하였다.

  내가 살펴보건대, 이 장(章)의 내용은 《사기(史記)》에 “나에게 몇 년의 수명을 빌려주어 이와 같이 하면 내 《주역(周易)》에 빈빈(彬彬)할 것이다G:〔假我數年 若是 我於易則彬彬矣〕.”라고 되어 있어, 가(加)는 바로 가(假)로 되어 있고 오십(五十)이란 글자는 없으니, 이때에 공자(孔子)의 나이가 이미 70에 가까웠을 것이니, 오십(五十)이라는 글자가 잘못된 것은 틀림없는 듯하다.

 《주역(周易)》을 배우면 길흉(吉凶)·소장(消長)의 이치와 진퇴(進退)·존망(存亡)의 도(道)에 밝아진다. 그러므로 큰 허물이 없을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성인(聖人)이 역리(易理)의 무궁(無窮)함을 깊이 관찰하시고, 이것을 말씀하여 사람을 가르쳐서 배우지 않으면 안 되고, 또 쉽게 배울 수 없음을 알게 하려고 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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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술이 ; 제1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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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7장(第十七章)


 子所雅言은 詩書執禮니 皆雅言也러시다


  공자(孔子)께서 평소 늘 말씀하시는 것은 《시(詩)》와 《서(書)》와 예(禮)를 지키는 것이었으니, 이것이 평소에 늘 하시는 말씀이셨다.


雅는 常也요 執은 守也라 詩以理情性하고 書以道政事하고 禮以謹節文하니 皆切於日用之實이라 故로 常言之라 禮獨言執者는 以人所執守而言이요 非徒誦說而已也라

○ 程子曰 孔子雅素之言이 止於如此요 若性與天道는 則有不可得而聞者하니 要在黙而識之也니라 謝氏曰 此因學易之語而類記之니라


  아(雅)는 평소이다. 집(執)은 지킴이다. 《시(詩)》로써 성정(性情)을 다스리고, 《서(書)》로써 정사(政事)를 말하고, 예(禮)로써 절문(節文)을 삼가니, 모두 일상생활의 실제에 절실하다. 그러므로 항상 이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예(禮)에 있어서만 유독 지킨다고 말씀한 것은 사람이 잡아서 지켜야 할 것을 가지고 말한 것이요, 비단 외우고 말할 뿐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공자(孔子)가 평소에 하신 말씀이 이와 같음에 그칠 뿐이요, 성(性)과 천도(天道)로 말하면 들을 수가 없었으니, 요컨대 이것은 묵묵히 스스로 터득함에 달려 있는 것이다.”

  사씨(謝氏)가 말하였다. “이 장(章)은 앞의 《주역(周易)》을 배운다는 말을 인하여 같은 종류끼리 기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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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술이 ; 제1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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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8장(第十八章)


 葉公이 問孔子於子路어늘 子路不對한대


  섭공(葉公)이 자로(子路)에게 공자(孔子)의 인물됨을 물었는데, 자로(子路)가 대답하지 않았다.


葉公은 楚葉縣尹沈諸梁이니 字子高니 僭稱公也라 葉公이 不知孔子하니 必有非所問而問者라 故로 子路不對어나 抑亦以聖人之德이 實有未易名言者與인져


  섭공(葉公)은 초(楚)나라 섭현(葉縣)의 윤(尹)인 심제량(沈諸梁)으로 자(字)는 자고(子高)이니, 참람하게 공(公)이라 일컬은 것이다. 섭공(葉公)이 공자(孔子)를 알지 못했으니, 반드시 묻지 않아야 할 것을 물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자로(子路)가 대답하지 않은 것이다. 아니면 또한 성인(聖人)의 덕(德)이 실로 쉽게 형용하여 말하기 어려움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子曰 女奚不曰 其爲人也發憤忘食하고 樂以忘憂하여 不知老之將至云爾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어찌 그의 사람됨이 분발하면 먹는 것도 잊고, <이치를 깨달으면> 즐거워 근심을 잊어 늙음이 장차 닥쳐오는 줄도 모른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未得則發憤而忘食하고 已得則樂之而忘憂하여 以是二者로 俛焉日有孶孶하여 而不知年數之不足이니 但自言其好學之篤爾라 然이나 深味之면 則見其全體至極하여 純亦不已之妙가 有非聖人不能及者라 蓋凡夫子之自言이 類如此하니 學者宜致思焉이니라


  진리를 터득하지 못하면 분발하여 먹는 것도 잊고, 이미 터득하면 즐거워 근심을 잊는다. 이 두 가지를 가지고 힘써 날마다 꾸준히 힘쓰면서 연수(年數)가 부족함도 알지 못하니, 이는 다만 학문(學問)을 좋아함이 독실함을 스스로 말했을 뿐이다. 그러나 깊이 음미(吟味)해보면, 그 전체가 지극하여 순수(純粹)함이 그침이 없는 묘(妙)가 성인(聖人)이 아니면 미칠 수 없는 것이 있음을 볼 수 있다. 부자(夫子)께서 스스로 말씀하신 것은 대체로 이와 같으니, 배우는 자들이 마땅히 생각을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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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술이 ; 제19장

#R:176//2//4//T//-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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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9장(第十九章)


 子曰 我非生而知之者라 好古敏以求之者也로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나면서부터 안 자가 아니라, 옛것을 좋아하여 급급(汲汲)히 그것을 구한 자이다.”


生而知之者는 氣質淸明하고 義理昭著하여 不待學而知也라 敏은 速也니 謂汲汲也라

○ 尹氏曰 孔子以生知之聖으로 每云好學者는 非惟勉人也라 蓋生而可知者는 義理爾니 若夫禮樂名物古今事變은 亦必待學而後有以驗其實也니라


  나면서부터 안다는 것은 기질(氣質)이 청명(淸明)하고 의리(義理)가 밝게 드러나, 배우기를 기다리지 않고도 저절로 아는 것이다. 민(敏)은 빠른 것이니, 급급(汲汲)히 함을 말한다.

  ○ 윤씨(尹氏)가 말하였다. “공자(孔子)는 나면서부터 저절로 안 성인(聖人)으로서 매양 배우기를 좋아했다고 말씀한 것은, 비단 사람들을 면려(勉勵)시키려 해서일 뿐만 아니라, 나면서부터 저절로 알 수 있는 것은 의리(義理)일 뿐이요, 예악(禮樂)과 물건에 대한 명칭과 고금(古今)의 사변(事變)으로 말하면, 역시 배운 뒤에 그 실제를 징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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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술이 ; 제2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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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0장(第二十章)


 子不語怪力亂神이러시다


  공자(孔子)께서는 괴이(怪異)함과 용력(勇力)과 패란(悖亂)의 일과 귀신(鬼神)의 일을 말씀하지 않으셨다.


怪異, 勇力, 悖亂之事는 非理之正이니 固聖人所不語요 鬼神은 造化之迹이니 雖非不正이나 然이나 非窮理之至면 有未易明者라 故로 亦不輕以語人也시니라

○ 謝氏曰 聖人은 語常而不語怪하고 語德而不語力하고 語治而不語亂하고 語人而不語神 이니라


  괴이(怪異)함과 용력(勇力)과 패란(悖亂)의 일은 이치의 바른 것이 아니니, 진실로 성인(聖人)이 말씀하지 않는 것이요, 귀신(鬼神)은 조화(造化)의 자취이니, 비록 바르지 않은 것은 아니나, 이치를 궁구 함이 지극하지 않고는 쉽사리 밝힐 수 없는 것이 있으므로, 또한 가벼이 사람들에게 말씀하지 않으신 것이다.

  ○ 사씨(謝氏)가 말하였다. “성인(聖人)은 떳떳한 일을 말씀하고 괴이한 일을 말씀하지 않으며, 덕(德)을 말씀하고 힘을 말씀하지 않으며, 다스려짐을 말씀하고 패란(悖亂)의 일을 말씀하지 않으며, 인간(人間)의 일을 말씀하고 귀신의 일을 말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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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술이 ; 제2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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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1장(第二十一章)


 子曰 三人行에 必有我師焉이니 擇其善者而從之요 其不善者而改之니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세 사람이 길을 감에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으니, 그 중에 선(善)한 자를 가려서 따르고, 선(善)하지 못한 자를 가려서 자신의 잘못을 고쳐야 한다.”


三人同行에 其一은 我也니 彼二人者一善一惡이어든 則我從其善而改其惡焉이면 是二人者皆我師也라

○ 尹氏曰 見賢思齊하고 見不賢而內自省이면 則善惡皆我之師니 進善이 其有窮乎아


  세 사람이 함께 길을 가면 그 중의 하나는 나 자신이니, 저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선(善)하고 한 사람은 악(惡)하다면, 나는 그 선(善)한 사람의 선행(善行)을 따르고, 그 악(惡)한 사람의 악행(惡行)을 경계 삼아 고쳐야 한다. 이것은 이 두 사람이 모두 나의 스승이 되는 것이다.

  ○ 윤씨(尹氏)가 말하였다. “어진이의 행동을 보고 나도 그와 똑같이 하기를 생각하고, 어질지 못한 이의 행동을 보고 안으로 자신을 살펴본다면, 선(善)과 악(惡)이 모두 나의 스승일 것이니, 선(善)에 나아감이 어찌 다함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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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술이 ; 제22장

#R:179//2//4//T//-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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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2장(第二十二章)


 子曰 天生德於予시니 桓魋其如予何리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하늘이 나에게 덕(德)을 주었으니, 환퇴(桓魋)가 나에게 어찌 하겠는가.”


桓魋는 宋司馬向魋也니 出於桓公이라 故로 又稱桓氏라 桓欲害孔子한대 孔子言天旣賦我以如是之德하시니 則桓魋其奈我何리오하시니 言必不能違天害己라


  환퇴(桓魋)는 송(宋)나라 사마(司馬)인 상퇴(向魋)이니, 환공(桓公)에게서 나왔으므로 환씨(桓氏)라고도 칭한다. 환퇴(桓魋)가 공자(孔子)를 해치려 하자, 공자(孔子)께서 말씀하기를 “하늘이 이미 나에게 이와 같은 덕(德)을 주었으니, 환퇴(桓魋)가 나를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하셨으니, 이는 반드시 하늘의 뜻을 어기고 자신을 해칠 수 없음을 말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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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술이 ; 제2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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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3장(第二十三章)


 子曰 二三子는 以我爲隱乎아 吾無隱乎爾로라 吾無行而不與二三子者是丘也니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들은 내가 무엇을 숨긴다고 여기는가? 나는 그대들에게 숨기는 것이 없노라. 행하고서 그대들에게 보여주지 않은 것이 없는 자가 바로 나[구(丘)]이다.”


諸弟子以夫子之道高深하여 不可幾及이라 故로 疑其有隱하니 而不知聖人作止語黙無非敎也라 故로 夫子以此言曉之라 與는 猶示也라

○ 程子曰 聖人之道猶天然하여 門弟子親炙而冀及之然後에 知其高且遠也라 使誠以爲不可及이면 則趨向之心이 不幾於怠乎아 故로 聖人之敎가 常俯而就之如此하시니 非獨使資質庸下者勉思企及이라 而才氣高邁者亦不敢躐易而進也니라 呂氏曰 聖人體道無隱하여 與天象昭然하여 莫非至敎라 常以示人이로되 而人自不察이니라


  제자(弟子)들은 부자(夫子)의 도(道)가 높고 깊어서 거의 따라갈 수가 없다고 여겼다. 그러므로 숨기는 것이 있는가 의심하고, 성인(聖人)의 동정(動靜)과 어묵(語黙)이 어느 것도 가르침 아닌 것이 없음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부자(夫子)께서 이 말씀으로 깨우쳐 주신 것이다. 여(與)는 보여주다G:〔示〕와 같다.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성인(聖人)의 도(道)는 하늘과 같아, 문하(門下)의 제자(弟子)들이 가까이 해서 가르침을 받아 미치기를 바란 뒤에야 그 높고 멀다는 것을 안다. 가령 진실로 따라갈 수 없다고 여긴다면, 도(道)를 추향(趨向)하는 마음이 태만해지는 데 가깝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성인(聖人)의 가르침은 늘 낮추어서 나아가기를 이와 같이 하신 것이다. 이는 비단 자질이 용렬하고 낮은 자로 하여금 힘쓰고 생각하여 따라가기를 바라게 할뿐만 아니라, 재기(才氣)가 고매(高邁)한 자도 등급을 건너뛰고 쉽게 하여 나아가지 못하게 하신 것이다.”

  여씨(呂氏)가 말하였다. “성인(聖人)은 도(道)를 체행(體行)함에 숨김이 없어 마치 천상(天象)과 같이 환하여, 지극한 가르침이 아닌 것이 없다. 그리하여 항상 사람들에게 보여주되 사람들이 스스로 살피지 못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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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술이 ; 제2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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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4장(第二十四章)


 子以四敎하시니 文行忠信이러시다


  공자(孔子)께서는 네 가지로써 가르치셨으니, 문(文)·행(行)·충(忠)·신(信)이었다.


程子曰 敎人以學文修行而存忠信也니 忠信이 本也니라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사람을 가르치되 글을 배우고, 행실(行實)을 닦으며 충신(忠信)을 마음에 간직하게 한 것이니, 이중에 충신(忠信)이 근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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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술이 ; 제2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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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5장(第二十五章)


 子曰 聖人을 吾不得而見之矣어든 得見君子者면 斯可矣니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성인(聖人)을 내가 만나볼 수 없으면, 군자(君子)만이라도 만나보면 된다.”


聖人은 神明不測之號요 君子는 才德出衆之名이라


  성인(聖人)은 신명(神明)하여 헤아릴 수 없는 이의 칭호요, 군자(君子)는 재덕(才德)이 출중한 이의 이름이다.


 子曰 善人을 吾不得而見之矣어든 得見有恒者면 斯可矣니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선인(善人)을 내가 만나볼 수 없으면, 떳떳한 마음G:〔恒心〕이 있는 자만이라도 만나보면 된다.”


子曰字는 疑衍文이라 恒은 常久之意라 張子曰 有恒者는 不二其心이요 善人者는 志於仁而無惡이니라


  자왈(子曰) 두 글자는 연문(衍文)인 듯하다. 항(恒)은 항상 하고 오래한다는 뜻이다.

  장자(張子)가 말씀하였다. 항심(恒心)이 있는 자란 그 마음을 이랬다 저랬다 하지 않는 것이요, 선인(善人)이란 인(仁)에 뜻을 두어 악(惡)한 일이 없는 것이다.


 亡(無)而爲有하며 虛而爲盈하며 約而爲泰면 難乎有恒矣니라


  없으면서 있는 체하며, 비었으면서 가득한 체하며, 적으면서 많은 체하면 항심(恒心)을 두기가 어려울 것이다.”


三者는 皆虛쥕之事니 凡若此者는 必不能守其常也라

○ 張敬夫曰 聖人君子는 以學言이요 善人有恒者는 以質言이라 愚謂 有恒者之與聖人은 高下固懸絶矣라 然이나 未有不自有恒而能至於聖者也라 故로 章末에 申言有恒之義하시니 其示人入德之門이 可謂深切而著明矣로다


  이 세 가지는 모두 허황되게 과장하는 일이니, 이와 같은 자는 반드시 떳떳함[항상]을 지킬 수 없다.

  ○ 장경부(張敬夫)가 말하였다. “성인(聖人)과 군자(君子)는 학문(學問)으로써 말한 것이요, 선인(善人)과 항심(恒心)이 있는 자는 자질(資質)로써 말한 것이다.”

  내가 생각건대, 항심(恒心)이 있는 자와 성인(聖人)과의 관계는 그 고하(高下)가 진실로 현격하다. 그러나 항심(恒心)이 있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지 않고서 성인(聖人)의 경지에 이르는 자는 있지 않다. 그러므로 장(章)의 끝에 항심(恒心)을 두는 뜻을 거듭 말씀하신 것이니, 덕(德)에 들어가는 문(門)을 사람들에게 제시해 주신 것이 깊고 간절하며 매우 분명하다고 이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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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술이 ; 제2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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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6장(第二十六章)


 子는 釣而不綱하시며 弋不射(석)宿이러시다


  공자(孔子)께서는 낚시질은 하시되 큰 그물질은 하지 않으시며, 주살질은 하시되 잠자는 새를 쏘아 잡지는 않으셨다.


綱은 以大繩屬網하여 絶流而漁者也요 弋은 以生絲繫矢而射也라 宿은 宿鳥라

○ 洪氏曰 孔子少貧賤하여 爲養與祭하여 或不得已而釣弋하시니 如獵較//주:엽각是也라 然이나 盡物取之와 出其不意//주:출기불의는 亦不爲也시니 此可見仁人之本心矣라 待物如此하니 待人可知요 小者如此하니 大者可知니라


  강(綱)은 굵은 노끈으로 그물을 연결하여 물줄기를 가로질러 물고기를 잡는 것이다. 익(弋)은 생사(生絲)를 화살에 매어서 쏘는 것이다. 숙(宿)은 잠자는 새이다.

  ○ 홍씨(洪氏)가 말하였다. “공자(孔子)가 젊었을 적에 가난하여 부모의 봉양과 조상의 제사에 바치기 위해 혹 마지못해 낚시질과 주살질을 하였으니, 엽각(獵較) 같은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큰 그물질로 생물을 모조리 잡거나, 잠자는 새를 쏘아 뜻하지 않은 것으로 나오는 일은 또한 하지 않았으니, 여기에서 성인(聖人)의 본심(本心)을 볼 수 있다. 미물(微物)을 대함이 이와 같았으니 사람 대하는 것을 알 만하며, 작은 일에 이와 같았으니 큰 일을 알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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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술이 ; 제2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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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7장(第二十七章)


 子曰 蓋有不知而作之者아 我無是也로라 多聞하여 擇其善者而從之하며 多見而識(지)之가 知之次也니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알지 못하면서 함부로 행동하는 것이 있는가? 나는 이러한 일이 없노라. 많이 듣고서 그 좋은 것을 가려서 따르며, 많이 보고서 기억해 둔다면 이것이 아는 것의 다음이 된다.”


不知而作은 不知其理而妄作也라 孔子自言未嘗妄作하시니 蓋亦謙辭라 然이나 亦可見其無所不知也라 識는 記也라 所從을 不可不擇이요 記則善惡을 皆當存之하여 以備參考니 如此者는 雖未能實知其理라도 亦可以次於知之者也니라


  부지이작(不知而作)은 그 이치를 알지 못하고서 함부로 행동하는 것이다. 공자(孔子)께서 스스로 “나는 일찍이 함부로 행동한 적이 없다.”고 말씀하신 것이니, 이것도 겸사(謙辭)이다. 그러나 또한 그 알지 못함이 없음을 볼 수 있다. 지(識)는 기억하는 것이니 좇는 것은 가리지 않을 수 없으며, 기억해둠은 선(善)과 악(惡)을 다 마음속에 기억해 두어서 참고에 대비하는 것이니, 이와 같이 하는 자는 비록 실제로 그 이치를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아는 자의 다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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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술이 ; 제2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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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8장(第二十八章)


 互鄕은 難與言이러니 童子見(현)커늘 門人惑한대


  호향(互鄕) 사람과는 더불어 말하기 어려웠는데, 호향(互鄕)의 동자(童子)가 찾아와 공자(孔子)를 뵈니, 문인(門人)들이 의혹을 하였다.


互鄕은 鄕名이니 其人이 習於不善하여 難與言善이라 惑者는 疑夫子不當見之也라


  호향(互鄕)은 지방의 이름이니, 그곳 사람들이 불선(不善)에 습관 되어 함께 선(善)을 말하기가 어려웠다. 혹(惑)이란 부자(夫子)께서 그를 마땅히 만나지 말으셔야 한다고 의심한 것이다.


 子曰 與其進也요 不與其退也니 唯何甚이리오 人潔己以進이어든 與其潔也요 不保其往也며(子曰 人潔己以進이어든 與其潔也요 不保其往也며 與其進也요 不與其退也니 唯何甚이리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몸을 가다듬어 깨끗이 하고서 찾아 나오거든 그 몸을 깨끗이 한 것을 허여 할 뿐이요, 지난날의 잘잘못을 보장할 수는 없는 것이며, 그 찾아옴을 허여할 뿐이요, 물러간 뒤에 잘못하는 것을 허여 하는 것은 아니다. 어찌 심하게 할 것이 있겠는가?”


疑此章有錯簡하니 人潔至往也十四字는 當在與其進也之前이라 潔은 修治也요 與는 許也요 往은 前日也라 言人潔己而來면 但許其能自潔耳요 固不能保其前日所爲之善惡也며 但許其進而來見耳요 非許其旣退而爲不善也라 蓋不追其旣往하고 不逆其將來니 以是心至면 斯受之耳라 唯字上下에 疑又有闕文하니 大抵亦不爲已甚之意라

○ 程子曰 聖人待物之洪이 如此시니라


  이 장(章)에는 착간(錯簡)이 있는 듯하다. 인결(人潔)로부터 왕야(往也)까지의 14자(字)는 마땅히 “여기진야(與其進也)”의 앞에 놓여야 한다. 결(潔)은 가다듬어 다스리는 것이요, 여(與)는 허여 하는 것이며, 왕(往)은 지난날이다.

  사람이 자신을 가다듬어 깨끗이 하고 찾아오면, 다만 그가 스스로 가다듬어 깨끗이 한 것을 허여할 뿐이요, 지난날의 선악(善惡)을 보장할 수는 없는 것이며, 다만 그 찾아와 뵙는 것을 허여할 뿐이요, 물러간 뒤에 다시 불선(不善)을 하는 것을 허여 하는 것은 아님을 말한다. 이는 지난날의 잘잘못을 추론(追論)하지 않고, 장래[미래]의 악행을 미리 예측하지 않으며, 이러한 마음을 갖고 찾아오면 그대로 받아들일 뿐임을 말씀한 것이다.

  유자(唯字)의 위아래에 또 빠진 글자가 있는 듯한데, 대체로 너무 심하게 하지 않는다는 뜻일 것이다.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성인(聖人)이 남을 대함에 있어 넓은 도량이 이와 같으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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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술이 ; 제2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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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9장(第二十九章)


 子曰 仁遠乎哉아 我欲仁이면 斯仁至矣니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인(仁)이 멀리 있는가? 내가 인(仁)을 하고자 하면 인(仁)이 당장 이르는 것이다.”


仁者는 心之德이니 非在外也로되 放而不求라 故로 有以爲遠者하니 反而求之면 則卽此而在矣니 夫豈遠哉리오

○ 程子曰 爲仁由己라 欲之則至니 何遠之有리오


  인(仁)이란 마음의 덕(德)이니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 놓아두고 찾지 않으므로 멀다고 여기는 자가 있으나, 돌이켜 찾는다면 곧 여기에 있는 것이니, 어찌 멀리 있겠는가?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인(仁)을 행하는 것은 자신에게 달려 있어서 인(仁)을 하고자 하면 이른다. 어찌 멂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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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술이 ; 제3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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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0장(第三十章)


 陳司敗問 昭公知禮乎잇가 孔子曰 知禮시니라


  진(陳)나라 사패(司敗)가 “소공(昭公)이 예(禮)를 알았습니까?” 하고 묻자, 공자(孔子)께서 “예(禮)를 아셨다.” 하고 대답하셨다.


陳은 國名이요 司敗는 官名이니 卽司寇也라 昭公은 魯君이니 名稠니 習於威儀之節하여 當時以爲知禮라 故로 司敗以爲問에 而孔子答之如此하시니라


  진(陳)은 나라 이름이다. 사패(司敗)는 관명(官名)이니 곧 사구(司寇)이다. 소공(昭公)은 노(魯)나라 임금으로 이름은 주(稠)이니, 위의(威儀)의 예절(禮節)에 익숙하여 당시 사람들이 예(禮)를 잘 안다고 말하였다. 그러므로 사패(司敗)가 이것을 가지고 질문하자, 공자(孔子)께서 대답을 이렇게 하신 것이다.


 孔子退어시늘 揖巫馬期而進之하여 曰 吾聞君子不黨이라하니 君子亦黨乎아 君取(娶)於吳하니 爲同姓이라 謂之吳孟子라하니 君而知禮면 孰不知禮리오


  공자(孔子)께서 물러가시자, 사패(司敗)가 무마기(巫馬期)에게 읍(揖)하여 나오게 하고 말하였다. “내가 들으니 군자(君子)는 편당(偏黨)하지 않는다 하였는데, 군자(君子)도 편당을 하는가? 임금[소공(昭公)]께서는 오(吳)나라에서 장가드셨으니, 동성(同姓)이 된다. 그러므로 그 사실을 숨기기 위해 오맹자(吳孟子)라고 불렀으니, 임금께서 예(禮)를 아셨다면 누가 예(禮)를 알지 못하겠는가?”


巫馬는 姓이요 期는 字니 孔子弟子로 名施라 司敗揖而進之也라 相助匿非曰黨이라 禮에 不取同姓이어늘 而魯與吳皆姬姓이니 謂之吳孟子者는 諱之하여 使若宋女子姓者然이라


  무마(巫馬)는 성(姓)이요, 기(期)는 자(字)이니, 공자(孔子)의 제자(弟子)로, 이름은 시(施)이다. 사패(司敗)가 그에게 읍하여 앞으로 나오게 한 것이다. 서로 도와 나쁜 짓을 숨겨주는 것을 당(黨)이라 한다. 예(禮)에 “동성(同姓)에게는 장가들지 않는다.” 하였는데, 노(魯)나라와 오(吳)나라는 다 희성(姬姓)이었다. 오맹자(吳孟子)라 칭한 것은 그 사실을 숨겨 마치 송(宋)나라 여자인 자성(子姓)[자씨성(子氏姓)]인 것처럼 한 것이다.


 巫馬期以告한대 子曰 丘也幸이로다 苟有過어든 人必知之온여


  무마기(巫馬期)가 이것을 아뢰자,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나[구(丘)]는 다행이다. 만일 잘못이 있으면 남들이 반드시 아는구나.”


孔子不可自謂諱君之惡이요 又不可以取同姓爲知禮라 故로 受以爲過而不辭하시니라

○ 吳氏曰 魯는 蓋夫子父母之國이요 昭公은 魯之先君也라 司敗又未嘗顯言其事하고 而遽以知禮爲問하니 其對之宜如此也라 及司敗以爲有黨하여는 而夫子受以爲過하시니 蓋夫子之盛德이 無所不可也라 然이나 其受以爲過也에 亦不正言其所以過하여 初若不知孟子之事者하시니 可以爲萬世之法矣로다


  공자(孔子)는 임금의 불미스러운 일을 숨긴 것이라고 스스로 말할 수도 없고, 또 동성(同姓)에게 장가든 것을 예(禮)를 안다고 할 수도 없었다. 그러므로 받아들여 허물로 삼고 사양하지 않으신 것이다.

  ○ 오씨(吳氏)가 말하였다. “노(魯)나라는 공자(孔子)의 부모지국(父母之國)[고향 나라]이요, 소공(昭公)은 노(魯)나라의 선군(先君)[선대의 임금]이다. 사패(司敗)는 또 그 일을 드러내어 말하지 않고, 갑자기 예(禮)를 아는가 하고 질문을 하였으니, 그에 대한 답변은 마땅히 이와 같이 하여야 하는 것이다. 사패(司敗)가 편당(偏黨)을 한다고 말함에 미쳐서는 부자(夫子)께서 그대로 받아들여 허물로 삼으셨으니, 부자(夫子)의 성대(盛大)한 덕(德)은 불가(不可)한 것이 없다. 그러나 그 받아들여 허물로 삼을 때에도 허물을 짓게 된 까닭을 바로 말씀하지 않아, 애당초 오맹자(吳孟子)의 일을 알지 못한 것처럼 하셨으니, 만세(萬世)의 법(法)이 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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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술이 ; 제3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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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1장(第三十一章)


 子與人歌而善이어든 必使反之하시고 而後和之러시다


  공자(孔子)께서는 남과 함께 노래를 불러 상대방이 노래를 잘하면, 반드시 다시 부르게 하시고 그 뒤에 따라 부르셨다.


反은 復也라 必使復歌者는 欲得其詳而取其善也요 而後和之者는 喜得其詳而與其善也라 此見聖人氣象從容하고 誠意懇至하며 而其謙遜審密하여 不掩人善이 又如此하니 蓋一事之微에 而衆善之集을 有不可勝旣者焉이니 讀者宜詳味之니라


  반(反)은 반복(反復)하는 것이니, 반드시 반복(反復)하여 노래를 부르게 하는 것은, 그 상세함을 알아 그 좋은 점을 취하려는 것이요, 뒤에 따라 부른 것은 자세한 것을 앎을 기뻐하고 그의 좋은 점을 허여(許與)[인정]해 준 것이다. 이는 성인(聖人)의 기상(氣象)이 종용(從容)하고 성의(誠意)가 간절하며, 또 겸손하고 자상하여 남의 좋은 점을 가리우지 않음이 이와 같음을 볼 수 있으니, 한 가지 일의 사소한 것에 온갖 선(善)이 모인 것을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읽는 자는 마땅히 자세히 음미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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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술이 ; 제3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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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2장(第三十二章)


 子曰 文莫吾猶人也아 躬行君子는 則吾未之有得호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문(文)은 내 남과 같지 않았겠는가마는, 군자(君子)의 도(道)를 몸소 행함은 내 아직 얻은 것이 있지 못하다.”


莫은 疑辭라 猶人은 言不能過人而尙可以及人이요 未之有得은 則全未有得이니 皆自謙之辭로되 而足以見言行之難易緩急이니 欲人之勉其實也라

○ 謝氏曰 文은 雖聖人이나 無不與人同이라 故로 不遜이요 能躬行君子는 斯可以入聖이라 故로 不居하시니 猶言君子道者三에 我無能焉이니라


  막(莫)은 의문사이다. 남과 같다는 것은 남보다 낫지는 못하나 그래도 남에게 미칠 수는 있다는 것이요, 얻은 것이 있지 못하다 함은 전혀 얻음이 없다는 말씀이다. 모두 스스로 겸양하신 말씀이나, 언행(言行)의 난이(難易)와 완급(緩急)을 족히 볼 수 있으니, 사람들이 그 실행(實行)을 힘쓰게 하려고 하신 것이다.

  ○ 사씨(謝氏)가 말하였다. “문(文)은 비록 성인(聖人)이라 할지라도 일반인과 같지 않음이 없으므로 겸손해 하지 않은 것이요, 군자(君子)의 도(道)를 몸소 실행하면, 성인(聖人)의 경지에 들어갈 수 있으므로 자처하지 않으신 것이다. ‘군자(君子)의 도(道)가 셋인데 나는 이중에 하나도 능한 것이 없다.’는 <《중용(中庸)》의 내용과>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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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술이 ; 제3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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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3장(第三十三章)


 子曰 若聖與仁은 則吾豈敢이리오 抑爲之不厭하며 誨人不倦은 則可謂云爾已矣니라 公西華曰 正唯弟子不能學也로소이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성(聖)과 인(仁)으로 말하면 내 어찌 감히 자처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인성(仁聖)의 도(道)를> 행하기를 싫어하지 않으며, 남을 가르치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 것으로 말하면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하셨다. 공서화(公西華)가 말하였다. “바로 이것이 저희 제자(弟子)들이 배울 수 없는 점입니다.”


此亦夫子之謙辭也라 聖者는 大而化之요 仁은 則心德之全而人道之備也라 爲之는 謂爲仁聖之道요 誨人은 亦謂以此敎人也라 然이나 不厭不倦은 非己有之면 則不能이니 所以弟子不能學也라

○ 晁氏曰 當時에 有稱夫子聖且仁者라 以故로 夫子辭之하시니 苟辭之而已焉이면 則無以進天下之材하고 率天下之善하여 將使聖與仁爲虛器하여 而人終莫能至矣라 故로 夫子雖不居仁聖이나 而必以爲之不厭과 誨人不倦으로 自處也라 可謂云爾已矣者는 無他之辭也라 公西華仰而歎之하니 其亦深知夫子之意矣로다


  이것도 공자(孔子)의 겸사(謙辭)이다. 성(聖)은 대인(大人)으로서 화(化)한 것이요, 인(仁)은 마음의 덕(德)이 온전히 보전되고 인도(人道)가 갖추어진 것이다. 위지(爲之)는 인성(仁聖)의 도(道)를 하는 것이요, 회인(誨人)은 이것으로 사람을 가르침을 말한다. 그러나 싫어하지 않고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은 자기가 인성(仁聖)의 도(道)를 지니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것이니, 이 때문에 제자(弟子)들이 배울 수 없는 것이다.

  ○ 조씨(晁氏)가 말하였다. “당시에 부자(夫子)를 성인(聖人)이고 또 인자(仁者)라고 일컫는 자가 있었기 때문에 부자(夫子)께서 사양하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사양만 할뿐이라면, 천하의 인재를 진취시키고 천하의 선(善)을 솔선수범하게 할 수가 없어서, 장차 성(聖)과 인(仁)으로 하여금 빈자리가 되게 하여, 마침내 사람들이 이를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부자(夫子)께서 비록 인(仁)과 성(聖)을 자처(自處)하지 않으셨으나, 반드시 행하기를 싫어하지 않고 남을 가르치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 것으로 자처하신 것이다. 가위운이이의(可謂云爾已矣)라는 것은 딴것이 없다는 말씀이다. 공서화(公西華)가 우러러 탄식하였으니, 그도 부자(夫子)의 뜻을 깊이 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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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술이 ; 제3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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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4장(第三十四章)


 子疾病이어시늘 子路請禱한대 子曰 有諸아 子路對曰 有之하니 쬊曰 禱爾于上下神祇라하니이다 子曰 丘之禱久矣니라


  공자(孔子)께서 병환(病患)이 위중하시자, 자로(子路)가 신(神)에게 기도(祈禱)할 것을 청하였다. 공자(孔子)께서 “이런 이치가 있는가?” 하고 묻자, 자로(子路)가 대답하기를 “있습니다. 뇌문(쬊文)[제문(祭文)]에 ‘너를 상하(上下)의 신명(神明)에게 기도(祈禱)하였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하였다. 공자(孔子)께서 “나는 기도(祈禱)한 지가 오래이다.” 하셨다.


禱는 謂禱於鬼神이라 有諸는 問有此理否라 쬊者는 哀死而述其行之辭也라 上下는 謂天地니 天曰神이요 地曰祇라 禱者는 悔過遷善하여 以祈神之佑也라 無其理면 則不必禱요 旣曰有之면 則聖人未嘗有過하여 無善可遷하여 其素行이 固已合於神明이라 故로 曰丘之禱久矣라하시니라 又士喪禮에 疾病에 行禱五祀하니 蓋臣子迫切之至情에 有不能自已者요 初不請於病者而後禱也라 故로 孔子之於子路에 不直拒之하고 而但告以無所事禱之意하시니라


  도(禱)는 귀신(鬼神)에게 비는 것을 말한다. 유저(有諸)는 “그러한 이치가 있는가?” 하고 물은 것이다. 뇌(쬊)는 죽은 이를 애도하면서 그의 행적을 서술한 글이다. 상하(上下)는 하늘과 땅을 말하니, 하늘의 신(神)을 신(神)이라 하고, 땅의 신(神)을 기(祇)라 한다. 기도는 잘못을 뉘우치고 선(善)에 옮겨가 신(神)의 도움을 비는 것이다. 그런 이치가 없다면 빌 필요가 없는 것이며, 이미 그런 이치가 있다고 하더라도, 성인(聖人)은 일찍이 잘못이 없어 옮겨갈 만한 선(善)이 없어서 평소의 행동이 진실로 이미 신명(神明)에 합치한다. 그러므로 “나는 기도한 지가 오래이다.”라고 말씀한 것이다. 또 《예기(禮記)》〈사상례(士喪禮)〉에 “병이 위독하면 오사(五祀)의 신(神)에게 기도를 한다.”고 하였는데, 이는 신자(臣子)의 절박한 정(情)에서 그대로 있을 수 없어서이고, 당초에 병자(病者)에게 청한 뒤에 기도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공자(孔子)께서는 자로(子路)에게 곧바로 거절하지 않고, 다만 기도를 일삼을 것이 없다는 뜻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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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술이 ; 제3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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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5장(第三十五章)


 子曰 奢則不孫하고 儉則固니 與其不孫也론 寧固니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사치하면 공순하지 못하고 검소하면 고루하니, 공순하지 못한 것보다는 차라리 고루한 것이 낫다.”


孫은 順也요 固는 陋也라 奢儉俱失中이나 而奢之害大니라

○ 晁氏曰 不得已而救時之弊也시니라


  손(孫)[손(遜)]은 공순(恭順)한 것이요, 고(固)는 고루한 것이다. 사치와 검소는 모두 중도(中道)를 잃었으나 사치의 해가 더 크다.

  ○ 조씨(晁氏)가 말하였다. “부득이 하여 당시의 폐단을 구제하려고 하신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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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술이 ; 제3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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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6장(第三十六章)


 子曰 君子는 坦蕩蕩이요 小人은 長戚戚이니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君子)는 평탄하여 여유가 있고, 소인(小人)은 늘 걱정스러워 한다.”


坦은 平也라 蕩蕩은 寬廣貌라 程子曰 君子循理라 故로 常舒泰하고 小人役於物이라 故로 多憂戚이니라

○ 程子曰 君子坦蕩蕩은 心廣體胖이니라


  탄(坦)은 평탄한 것이다. 탕탕(蕩蕩)은 너그럽고 넓은 모양이다.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군자(君子)는 천리(天理)를 따르므로 항상 몸과 마음이 펴지고 태연하며, 소인(小人)은 외물(外物)에 사역(使役)을 당하므로 걱정과 근심이 많은 것이다.”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군자탄탕탕(君子坦蕩蕩)은 마음이 넓고 몸이 펴져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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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술이 ; 제3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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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7장(第三十七章)


 子는 溫而厲하시며 威而不猛하시며 恭而安이러시다


  공자(孔子)께서는 온화(溫和)하면서도 엄숙하시며, 위엄이 있으면서도 사납지 않으시며, 공손하면서도 편안[자연스러움]하셨다.


厲는 嚴肅也라 人之德性이 本無不備로되 而氣質所賦는 鮮有不偏하니 惟聖人은 全體渾然하여 陰陽合德이라 故로 其中和之氣見於容貌之間者如此라 門人熟察而詳記之하니 亦可見其用心之密矣라 抑非知足以知聖人而善言德行者면 不能記라 故로 程子以爲曾子之言이라하시니 學者所宜反復而玩心也니라


  여(厲)는 엄숙한 것이다. 사람의 덕성(德性)은 본래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 없으나 타고난 기질(氣質)은 편벽 되지 않은 자가 드물다. 오직 성인(聖人)은 전체가 혼연(渾然)[완전히 보존됨]하고 음양(陰陽)[강유(剛柔)]의 덕(德)이 합한다. 그러므로 중화(中和)의 기상(氣象)이 용모에 나타나는 것이 이와 같다. 문인(門人)들이 익히 관찰하여 상세히 기록하였으니, 또한 그 마음씀이 치밀함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지혜가 성인(聖人)을 알 만하고 덕행(德行)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자가 아니면 이것을 기록할 수 없다. 그러므로 정자(程子)는 증자(曾子)의 말씀이라고 하였으니, 배우는 자는 마땅히 반복(反復)하여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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