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문학선/설

竄利說

황성 2010. 11. 5. 14:17

竄利說  

 

吾竄乎,奚竄?吾竄利也。利所趨也,所竄也。吾將爲吾之所爲也,吾豈爲人之所爲也哉!今是頑人,曾無不忍之心,然常獨有忍心者,由害於利也。且謂螻螾大於麋鹿,則許之乎?聲不許也。然人顧而遭螻螾,則迂足而活之,過而傷螻螾,則失聲而痛之。顧而見麋鹿,則援弓而逐之,幸而中麋鹿,則失聲而喜之。忍於大者,不忍於小者,何歟?麋鹿利於口腹也,螻螾不利也。故居於利,則雖麋鹿忍也;不居於利,則螻螾不忍也。然則羈於利而忍於麋鹿者,獨小人耶?長人有甚焉!長人則果忍於人矣,烏有是哉!前有將官兵以誅恒蔡叛者,不十餘戰而能殺萬人則師喜,不能殺萬人則師恥。豈翅忍乎?從有侈富而劫死者,有怨曠而奸死者,有饑寒而道路死者,有加兵死之數。今是長人,固有不忍之心,然獨時有忍心者,亦由害於利也。是故利滋博者,忍滋多也。吾方與之角利,將在所不忍乎。故曰吾竄乎,奚竄?吾竄利也。如此,俛讀倚詠,孳孳於策試者,竄而非邪?然吾之所竄,竄乎心也,不竄乎身。昔者趙狐正晉先盟五合諸侯,傳曰生不及利,彼豈竄吾身哉。


내 도망가겠다. 무슨 이유로 도망가는가? 내 이로움 때문에 도망가는 것이다. 이(利)는 추구하는 것이며, 도망가는 것이다. 내 장차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것이니, 내 어찌 남이 하는 것을 따라 하리오. 지금 완악한 사람은 일찍이 남에게 차마 잔인하게 하지 못하는 마음이 없지만 항상 유독 남에게 잔인하게 하는 마음이 있는 것은 이익에 피해를 받는다. 장차 지렁이가 사슴보다 크다고 한다면 인정하겠는가? 큰소리를 치며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돌아보고 지렁이를 만나면 발로 밟지 않고 지렁이를 살려 줄 것이요, 실수로 밟아 지렁이를 죽인다면 실성하여 통곡할 것이다. 그러나 돌아보고 사슴을 본다면 활을 당겨 사슴을 따라갈 것이다. 다행히 사슴을 잡는다면 크게 소리며 좋아할 것이다. 그러면 큰 짐승에게는 잔인하게 죽이고 하찮은 미물에게는 불인지심을 가지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사슴은 내 몸에 이롭고, 지렁이는 이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로움에 처하면 비록 사슴이라 할지라도 잔인하게 죽이고, 이익에 처하지 않으면 비록 지렁이라 할지라도 잔인하게 죽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익에 얽매여 사슴을 잔인하게 죽이는 것이 다만 소인(평민)뿐이겠는가? 장인(長人)은 이보다도 더 심하다. 장인은 사람에게 조차도 과연 잔인한 짓을 할 것이다. 그러나 어찌 이러한 일이 있는가? 앞서 관병(官兵)을 거느리고 항(恒) 채(蔡)에게 반란을 일으킨 사람을 죽인 사람이 있다. 겨룬 지 10여 차례가 되지 않았는데 능히 만 명을 죽인다면 군사는 좋아하고 만 명을 죽이지 못한다면 군사는 부끄러워하니, 어찌 차마하지 못할 뿐이겠는가? 이어서 사치하고 부귀하여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으며, 원광(怨曠)1)하여 간통으로 죽음을 구하는 사람이 있으며, 굶주림과 추위로 도로에서 죽은 자가 전사자의 숫자보다 많다. 진실로 불인지심이 있지만 그러나 유독 때때로 차마하는 마음이 있는 것은 또한 이익에 해가 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익이 더욱 넓은 것은 잔인한 마음이 더욱 많다. 내 막상 그와 더불어 이익을 다툼에 장차 차마하지 못하는 것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내 '달아날 것이다. 무슨 이유로 도망가는가? 나는 이익 때문에 도망하는 것이다.'고 하였다.이와 같다면 열심히 독서하고 기대어 시를 읊조리며 책시(策試)에 부지런히 힘쓰는 사람은 달아나는 것이 아니랴? 그러나 내가 달아나는 것은 마음에 달아나는 것이고, 몸에 달아나는 것이 아니다. 옛적 조최와 호언이 진(晉)나라의 앞선 맹약을 바로잡아 다섯 번 규합하였네. 전에 이르기를 “생이 이로움에 이르지 않았다.” 하니, 저들이 어찌 자신의 몸으로 도망가겠는가?


1) 원광(怨曠) : 시집·장가를 제때에 못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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