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몽구

鳴鶴日下. 士龍雲間

황성 2009. 6. 8. 10:17

49. 鳴鶴日下(50) 50. 士龍雲間(50)

晉書 陸雲字士龍 六歲能屬文. 性淸正有才理. 少與兄機齊名. 雖文章不及機 而持論過之 號二陸. 幼時吳尙書閔鴻見而奇之曰 此兒若非龍駒是鳳雛. 後擧雲賢良. 吳平入洛. 雲與荀隱未相識. 嘗會張華坐. 華曰 今日相遇 可勿爲常談. 雲因抗手曰 雲閒陸士龍. 隱曰 日下荀鳴鶴. 鳴鶴隱字也. 雲又曰 旣開靑雲覩白雉. 何不張爾弓挾爾矢. 隱曰 本謂是雲龍騤騤. 乃是山鹿野麋 獸微弩强. 是以發遲. 華撫手大笑. 刺史周浚召爲從事. 謂人曰 士龍當今之顔子也. 官至中書侍郞 與機同被害. 初雲嘗行逗宿故人家 夜暗迷路 莫知所從. 忽望草中有火趣之 至一家寄宿. 見一年少美風姿 共談老子. 辭致深遠. 向曉辭去 行十許里 至故人家. 云 此數十里中無人居. 雲意始悟. 卻尋昨宿處 乃王弼冢. 雲本無玄學. 自此談老殊進.

진서(晉書) 육운(陸雲)의 자는 사룡(士龍)이니, 6세에 속문(屬文)에 능하였다. 성품이 청정(淸正)하며 재리(才理)가 있었다. 젊어서 형 육기(陸機)와 이름이 나란하였다. 비록 문장이 육기에게는 미치지 못하지만 지론(持論)은 뛰어나 이륙(二陸)이라 불렀다. 어릴 때 오나라 상서 민홍(閔鴻)이 보고서 기이하고 여기고 말하기를, “이 아이는 만일 용구(龍駒)가 아닐 것 같으면 봉추(鳳雛)일 것이다.” 하였고, 뒤에 육운을 현량에 천거하였다. 오나라가 평정됨에 낙양에 들어갔다. 육운은 순은(荀隱)과 알지 못하였다. 일찍이 장화(張華)를 만나 마주 앉았다. 장화가 말하기를, “오늘 서로 만났으니 평범한 담론을 하지 말기 바랍니다.” 하니, 육운이 이어서 손을 들어 말하기를, “구름 사이 육사룡이다.” 하니, 순은이 “해 아래 순명학(鳴鶴)이다.” 하였다. 명학(鳴鶴)은 순은의 자이다. 육운이 또 말하기를, “이미 청운이 열리고 흰 꿩이 보이는데 어찌 너의 활을 베풀어 너의 화살을 끼우지 않는고?” 하니, 순은이 말하기를, “본래 운룡은 규규(騤騤)1)하다 말하니, 바로 산야의 사슴이어서 짐승이 작고 활이 강하다. 이 때문에 발사함이 느리다.” 하니, 장화가 손을 저으면서 크게 웃었다. 자사(刺史) 주준(周浚)이 불러 종사관으로 임명하고서는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사룡은 지금 안자(顔子)이다.” 라고 하였다. 관직이 중서시랑에 이르렀다. 육기와 참소를 입었다.

초에 육운이 일찍이 두(逗) 땅에게 가서 친구 집에 유숙하였는데, 밤에 어두워 길을 잃어버리고는 갈 곳을 알지 못했는데, 풀 사이로 불이 있는 것을 바라보고 달려가 어떤 집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한 소년이 아름다운 풍모와 자태가 있었는데, 함께 노자(老子)에 대해서 말하니 말이 매우 심원하였다. 새벽에 사례하고 떠나 10리 쯤 가서 친구 집에 이르렀다. 육운이 과정을 설명하니, 주인이 말하기를, “이 곳 수 십리에는 인가가 없다.”고 하였다. 육운이 생각이 처음 깨닫고 다시 어제 유숙한 곳을 찾으니, 바로 왕필의 무덤이었다. 육운은 본디 현학(玄學)을 알지 못하였는데, 이로부터 노자를 말함이 더욱 진보가 있었다.


1) [騤騤】1.馬行雄壯貌. 《詩·小雅·采薇》:“駕彼四牡, 四牡騤騤.” 晉摯虞《太康頌》:“龍馬騤騤, 風於華陽.” 宋曾鞏《送叔延判官》詩:“況遇朝廷方急材, 驥騄騤騤足當騁.” 淸龔自珍《送廣西巡撫梁公序》三:“溽暑永晝, 騤騤駪駪, 不遑息, 日斜馬嘶, 休於旅舍, 能無懷乎?”2.張目注視貌. 騤, 用同“睽”. 淸袁枚《新齊諧·宿遷官署鬼》:“淮徐道姚公廷棟駐劄宿遷, 封翁壽期, 演劇於堂, 堂旁牆極高, 見牆外有人頭數千, 眼騤騤然, 俱來觀劇.” 淸方履籛《鄧完白先生墓表》:“片羽僅存, 衆目騤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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