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서발/기서발

양심당시집서

황성 2009. 4. 6. 11:57

養心堂詩集序

[朴啓賢] 


 養心堂詩集者 箕城趙先生諱晟字伯陽之所作也 昔在丱角之年 得拜先生於其第 方敎授生徒 本之經史 振作以詩騷 因其才之高下以成就之 賢誠樂之而願學焉 其時年尙少 挾冊受業 但認其引物取譬 諄諄然善導人 厥後受室於先生之妹之子 於屬爲親近 久久見其所自爲與所以敎人者異 然後始訝其爲有道 而先生未嘗强以語人 故及門之士鮮或知之 時有能問焉者 則亦欣然語之而無隱也

 󰡔�양심당시집󰡕�은 기성(평양을 이르는 말 인듯, 조성의 관향이 평양조씨임) 조성(자는 백양)선생이 지은 시집이다. 예전 총각 때 자리에서 선생을 배알할 수 있었는데 마침 생도들을 교수하실 적에 경사에 근본하고 시로 진작시켜 재주의 높고 낮음에 따라 성취하도록 하시어, 내가 진실로 좋아하여 배우고자 하였다. 당시 나이가 아직 적었고, 서책을 끼고 다니며 수업을 받았는데, 내가 다만 사물을 끌어다 비유를 하여 자상하게 타인을 잘 끌었던 것을 인정하시고는 그 후에 선생 누이의 딸과 결혼하여 가까운 친족이 되었다. 스스로 하시는 것이 남을 가리키는 것과 차이가 있다는 것을 오랫동안 보고난 후에야 비로소 방책이 있을 것이라 의심했지만, 선생께서는 일찍부터 일부러 다른 사람들에게 말씀해주시지 않으셨기에, 문하의 선비들 중 아는 자가 적었다. 그 때 질문을 할 수 있는 이가 있었더라면 또한 기쁘게 말씀해주시고는 숨기지 않으셨을 것이다.   


 昕夕之間 從容函丈 論及學問之事 則擧古人思之思之 又重思之 思之不得 鬼神將通之之語告之曰學貴乎思 此向上去處 賢魯人也 雖欲奉以周旋 罔敢失墜 然未能實用其力 悠悠至此 尙何言哉 其後數年 先生舊患心病復作 謝遣諸生 閉戶不出 賢亦趨大人東郡之庭 加以隨俗應擧 喪其本心 遂至所向迷方 不盡侍席之懽 常自愧卒業之無期 及至繫官于朝 延緣多事 越自西鄙而還 遽聞先生疾革 馳往省之 已不能言矣 以嘉靖乙卯四月日屬纊

 아침저녁으로 조용히 스승을 모시며 학문의 일을 토론하였으니, 고인의 ‘생각하고 생각하며, 또 거듭 생각하되, 생각해도 얻을 수 없으면 귀신이 장차 통하리라’라고 한 말을 인용하며 가르쳐주시기를, “배움은 생각하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 라고 하였다. 이것은 위로 향하여 가는(진보하는) 곳이다. 나는 노둔한 사람이니, 비록 받들어 실천하여 감히 실추하지 않으려하였지만 실로 그 힘을 쓸 수 없어 아득히 지금에 이르렀으니 오히려 무슨 말을 하겠는가? 그 후 몇 년 뒤 선생은 마음의 병이 다시 생길까 예전부터 염려하여 제생들을 사양해 보내고서 문을 닫고 출입하지 않으셨다. 나도 또한 부친이 동쪽으로 고을살이함을 따라갔고, 게다가 세속을 따라 과거시험에 응시하느라 그 본심을 잃어 마침내 지향하는 바가 방향을 잃게 되어 자리를 모시는 기쁨을 다하지 못하고 항상 스스로 졸업에 기한이 없음을 부끄러워하셨다. 조정에서 관직이 매여 있을 때 많은 일로 인해 서쪽의 변방에서 돌아왔더니, 갑작스레 선생의 병이 심해졌다는 소식을 듣고는 빨리 달려가 찾아뵈었지만 이미 말씀을 하실 수 없으셨다. 가정 을묘( 년) 4월에 돌아가셨다.


 嗚呼痛哉 空懷梁壊之悲 不復恍然瞻依於躍如之際 侯芭之守子雲 與誰賴耶 嘗語先生之嗣舜賓曰先生才周九流而效之於小官 知包萬物而用之以末藝 故世之論先生者 皆於其末而不於其本 吁 亦淺矣 且其平生 不事於言語文字之間 所爲詩文 亦未多見 久知若干首尙在舊藏 幸余得可爲之地 印行于世 雖不足爲先生增重 而其在吾儕 亦不但已也 賓曰諾

 아. 슬프구나. 헛되이 집이 무너지는 슬픔을 품게되어 다시는 도약하려는 시점1)에서 찬란히 바라보고 의지할 수 없게 되었으니, 후파2)가 양자운3)을 지킬 때에 누구와 의지하겠는가. 일찍이 선생의 아들 순빈(舜賓)에게 말하길, “선생은 재주가 구류를 맴돌았으나 미관에서 효과를 보았고, 지혜는 만물을 껴안을 정도였지만 말단의 기예로 사용되었다. 그리하여 세상에서 선생을 논하는 이들은 모두 ‘말단에 있는 것이지 근본에 있는 자가 아니다’라고 하였으니, 아! 또한 천박하도다! 선생은 또한 평소에 글 짓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지은 시문이 또한 많지 않았다. 오래도록 약간의 시가 여전히 옛 상자에 보관된 것을 알았고, 다행히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어서 인쇄하여 세상에 배포하니, 비록 선생을 위하여 가치를 더 높이기에는 부족하지만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다만 그만 둘 수 없을 뿐만이 아니다.”라고 하니, 손님들이 “알았다.”라고 하였다.


 隆慶丁卯冬 余有南伯之行 舜賓以詩若文一帙歸之 謹受而伏讀之 氣象雄渾 詞意淸通 蒼然之光 含晦而莫露 蔚然之色 絢爛而不邪 理窟無底 德言有章 允矣有本者如是 而無非忠厚之至也 不區區於矩繩 而典刑俱存 不屑屑於雕琢 而運用無迹 此豈摻觚弄墨 疲精竭力 學爲文章之士所能幾及 而蕭散沖澹之趣 簡古端雅之言 直自陶柳門庭中來 其讀易比卦一詩 論五行一書 可以見所詣之一二 而又安能盡先生之能事

 융경 정묘년(  ) 겨울에, 내가 호남땅의 방백(역자주 : 관찰사)으로 가는 행차가 있었는데 선생의 아들 순빈이 시와 문 한 질을 보내주어 삼가 받아서 경건하게 읽어보니, 기상이 웅장 혼연하고 말의 뜻이 맑게 통하여 푸르른 광채가 어둠을 머금어 드러나지 않고, 아름다운 빛이 빛나 어긋나지 않은 듯 하고, 이치의 동굴이 끝이 없고 덕언에 법도가 있었으니, 진실로 근본이 있는 것이 이와 같아 충후의 지극함 아닌 것이 없었다. 법도에 매이지 않았으나 전형이 모두 갖추어져 있고, 조탁하는 것데에 애쓰지 않았으나 문사를 운용하는데 흔적이 없었으니, 이것이 어찌 붓을 놀려가며 정신과 힘을 피로하게 하여 글짓기를 배우는 선비들이 능히 미칠 수 있는 것이겠는가. 소산하고 충단한 아취와 간고하고 단아한 말은 다만 도연명과 유종원 문정에서 나왔으니, ‘讀易比卦’ 한 수의 시와 ‘論五行’ 한 편의 글은 선생의 조예 한 둘을 볼 수 있지만 또한 어찌 선생의 능사를 다할 수 있겠는가?


 其他篇多有少時作也 然才品甚高 上自聖經賢傳 下至諸子百家 至於天文地誌 醫藥卜筮 鐘律算法 百工技藝 旁及玄牝眞空之說 無不可讀之書 無不可窮之理 無不可做之事 無不可究之妙 尤邃於易學長於事親之術 有時彈琴自樂 度曲淸越 第以住世之年 疾病居多 不能自强於力踐 是則雖先生亦自以爲歉然 而求全才通儒於末世 夫豈易得 若使遊於考亭之門 其蔡季通之流亞歟 到界之初 卽囑慶山宰鄭君彥珪 圖所以入板 明年戊辰春 數閱月而功訖 鄭亦門徒也

  기타 저술은 대부분 젊었을 때 지은 것이다. 그러나 재주와 품성이 매우 높아 위로 성현의 경전으로부터 아래로 제자백가에 이르기까지 깊이 이해하였으며, 천문지리 · 의약 · 복서 · 종률 · 산법 · 여러 장인의 기예와 두루 도교와 불교의 학설에 이르러서는 읽지 못한 책이 없었고, 궁리하지 못한 이치가 없으며, 하지 못하는 일이 없고, 궁구하지 못하는 묘법//이 없다. 더욱 주역에 심오하였고 부모님을 잘 봉양하였으며, 때때로 거문고를 연주하며 스스로 즐겼으니, 곡을 연주하는 것이 맑고 빼어났다. 다만 살아계실 때 질병이 많아 스스로 실천하는 데에 힘쓰지 못했으니, 이점은 비록 선생도 또한 스스로 부족하게 여긴 것이지만 온전한 재주와 통달한 선비를 말세에서 구함이 어찌 쉽겠는가? 만약 주자의 문하에서 유학하게 했다면 채계통의 부류에 버금//갔지 않겠나? 고을에 이른 초기에 경산 읍재 정언규에게 부탁하여 판을 들일 것을 도모하였고, 다음 해 무진년(1568) 봄, 몇 개월 지난 뒤 일을 마쳤다. 정언규도 또한 그의 문인이다.


 噫 斯集也 實吾師之說 則凡在昔日門下之士 所當不背 而後之覽者 泝其流而尋其源 見其外而得其內 先生之高才隱德 必將於是焉可徵 不然 豈敢肆爲誇誕之說 以自詑於師門 重得罪於知言之君子哉 其必有諒余者云 時隆慶二年孟夏上浣 門人嘉義大夫慶尙道觀察使兼兵馬水軍節度使 疑川近思齋朴啓賢 謹書

 아! 이 시집은 실로 우리 스승의 말씀으로, 무릇 옛날 문학하는 선비들에게 있어 마땅히 배격해서는 안될 것이었으니, 후세의 독자들은 그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 근원을 찾아본다면 밖을 보아 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선생의 높은 재주와 숨은 덕은 반드시 장차 여기에서 징험 할 수 있을 것이지만,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어찌 감히 제멋대로 허탄한 말을 하여 스스로 師門에다 자랑하여 말을 아는4) 군자들에게 거듭 죄를 얻겠는가. 반드시 나를 믿는 자가 있을 것이다. 융경 2년 초여름 상순에 문인 가의대부(嘉義大夫) 경상도관찰사(慶尙道觀察使) 병마수군절도사(兵馬水軍節度使) 응천(疑川) 근사재(近思齋) 박계현(朴啓賢)은 삼가 쓰다.




1) 약여(躍如) : 논어에


2) 후파(侯芭) : 법을 전해 받은 제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후파는 한(漢)나라 양웅(揚雄)의 제자로서, 《태현경》과 《법언(法言)》 등의 저술을 전수받았는데, 양웅이 가난하게 살다가 죽은 뒤에 분묘(墳墓)를 세우고 3년 동안 상복(喪服)을 입었다. 《漢書 卷87下 揚雄傳》


3) 양자운(揚子雲) : 한(漢)나라 양웅(揚雄)의 자.


4) 지언(知言) :


'기서발 > 기서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우헌집서  (0) 2009.04.06
태재선생문집서  (0) 2009.04.06
별동집속집발  (0) 2009.03.26
기우선생문집  (0) 2009.03.26
양촌집중간서  (0) 2009.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