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금(바지노래,歌衿) : 정사를 잘 한다는 말. 「後漢書 卷六十一」에 “염범(廉范)이 촉군(蜀郡)에 태수로 나가 전임자의 까다로운 법령을 없애니 백성들이 노래하기를 ‘염범이 왜 이리 늦게 왔는가! 예전에는 적삼도 없더니 지금은 바지가 다섯이구나!’ 하였다.”한다.
가계(家鷄) : 집에서 기르는 닭. 전(轉)하여 내집에 있는 좋은 물건. 「진중흥서(晉中興書)」에 보이는 “애들이 집의 닭은 마다하고 들의 꿩을 좋아한다.”는 대목에서 나온 문자로, 내게 있는 좋은 것을 버리고 남의 것을 좋아함을 비유하는 말로 쓴다.
가계루(이 변변치 못한, 家雞陋) : 항상 보는 것은 변변치 않게 여긴다는 말. 진(晉) 유익(庾翼)의 편지에 ‘철부지 아이들이 가계(家鷄)는 싫어하고 야치(野雉)를 좋아한다.’ 하였음.
가공언(賈公彦) : 당 나라 사람. 벼슬은 태상박사(太常博士)에 이르렀고 저서에는 「주례의소」(周禮義疏)와 「의례의소」(儀禮義疏)가 있다.『舊唐書百八十九』
가관(加官) : 본래의 직(職) 외에 기타의 관직을 더해 주는 것. 열후(列侯) 이하 낭중(郎中)까지 다 산기(散騎)․중상시(中常侍)를 가관한다고 하였다.「漢書 卷十九 百官公卿表」
가국쇠난(佳菊衰蘭) : 담운미우. 김상헌의 “淡雲微雨小姑祠 菊秀蘭衰八月時”를 말함.
가규․정현(賈·鄭) : 모두 한 나라 사람. 가규는 경학에 능통하여 경전의 주에 관한 저술이 많았는데 특히 「좌씨전(左氏傳)」에 조예가 깊었으며, 정현 역시 경학가로서 「모시전(毛詩箋)」과 「주례(周禮)」․「의례(儀禮)」․「예기(禮記)」․「역(易)」등의 주를 저술하였다. 後漢書 卷三十五, 卷六十六
가금(呵禁) : 신분이 높은 사람이 다닐 때에 하례(下隷)가 소리를 질러 행인(行人)을 금하는 일.
가기이방(可欺以方) : 정(鄭)나라의 공손교(公孫僑)가 남으로부터 잉어를 선사받고 참아 먹기를 어려워서, 하인을 시켜 그 잉어를 물에 놓으라 하였더니, 하인이 잉어를 삶아 먹고는 양양히 자유롭게 가더라고 보고하였다. 맹가(孟軻)는 이 일을 논평하기를, “군자는 이치에 어긋나지 않은 방법으로 속일 수 있다”하였다.
가도멸괵(假道滅虢) : 길은 빌어서 괵 나라를 없앰. 「좌전(左傳)」 희공(僖公) 5년에, “우(虞)나라의 길을 빌어 괵 나라를 친다”했고, 「맹자」 만장(萬章)편도 이와 같이 기재되어 있음. 이는 수길이 우리 나라의 길을 빌어 명 나라를 치겠다는 비유.
가량(嘉量) : 주대(周代)의 양기명(量器名)인데, 한 그릇으로 곡(斛)․두(斗)․승(升)․홉(合)․약(龠)등 5량(量)이 있음.棲淸古鑑
가령격(假令格) : 글 중에 어떤 일을 예를 들어 응용하는 경우를 설명할 때에 假令格이라고 말하는 데, 예를 들면 어떤 初喪의 경우에 어떤 특수한 일이 있으면 어떻게 적용한다는 예(例)를 여러 가지로 열거하는 것을 말한다.
가리(假吏) : 타군에서 와서 吏胥가 된자.
가마(加麻) : 소렴(小斂)이 끝나고 머리에 수질(首絰)을 쓰는 것이다.
가망(加望) : 吏曹에서 벼슬을 추천할 때에 三望을 올리는 데 그 中의 세 사람이 모두 임명하기 싫으면 다시 望을 첨가하여 올리라고 하는데 첨가하여 올린 가망이라 한다.
가변(加籩) : 제(祭)를 지낼 때 초헌(初獻)이 올린 음식을 시동(尸童)이 맛본 다음, 아헌(亞獻)이 다시 올리는 음식.
가봉요거전(歌鳳뇨車前) : 공자가 초(楚)나라에 있을 때 은자(隱者)로서 광(狂)이라 일컫던 접여(接輿)가 “봉이여 봉이여, 어이 이리도 덕이 쇠하였나.”하고 노래하면서 공자 앞을 지나 갔다. 史記 卷四十七 孔子世家, 論語 微子
가부(賈父) : 한(漢)나라 가표(賈彪)가 수령(守令)이 되었을 때에 백성들이 자식을 낳아 내 버리는 것을 엄금하였더니 그 아이들 이름에 가자(賈字)를 놓고 가표(賈彪)를 가부(賈父)라고 불렀다.
가부(葭莩) : 갈대 대롱 속에 있는 지극히 얇은 막(膜). 친분이 극히 박한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가부구속(可否久速) : 벼슬할 만하면 벼슬하고[可以仕則仕], 그만둘 만하면 그만두고[可以止則止], 빨리 떠날 만하면 빨리 떠난다[可以速則速]는 사지구속[仕止久速]과 같은 말.
가부기수(賈傅羈愁) : 한 나라 가의(賈誼)가 조정에서 쫓겨나 장사왕 태부(長沙王太伕)로 좌천(左遷)되어 갔다.
가부투서상수류(賈傅投書湘水流) : 한(漢) 나라의 가의(賈誼)가 일찍이 장사왕(長沙王)의 태부(太傅)를 지냈으므로 태부라 한다. 그가 상수(湘水)를 지나면서 굴원(屈原)을 조상하는 부(賦)를 지어 물에 던졌다.
가삭(家削) : 대부(大夫)의 채지(采地)와 공읍(公邑) 사이에 위치해 있는데, 국도(國都)에서 2백 리 밖부터 3백리 사이에 있다.
가생 : 가의(賈誼)를 말함. 한(漢) 나라 낙양(洛陽) 사람. 한 문제 때 나이 20세로 박사(博士)가 되었음. 뒤에 주발(周勃)과 관영(灌嬰)의 참소로 쫓겨나 장사왕(長沙王)의 태부(太傅)가 되었음 史記 卷八十四
가섭(迦葉) : 마하가섭(摩하迦葉)이라고도 하며 부처님의 10대 제자의 한 사람. 본래 바라문으로서 석존(釋尊)이 성도(成道)한 지 3년쯤 뒤에 귀의하여, 부처의 심인(心印)을 전해 받은 사람.
가섭염화(迦葉拈花, 가섭이 꽃을 쥐고) : 가섭은 마하가섭(摩하迦葉)이라고도 하는데 석가의 대제자(大弟子)임. 傳燈錄에 “세존(世尊)이 영산(靈山)의 모임에서 꽃을 뽑아 뭇 사람에게 보이니 이때 모두가 묵연하였는데 유독 가섭존자(迦葉尊者)가 파안미소(破顔微笑)했다.”하였음.
가성(佳城) : 무덤의 별칭으로 죽은 사람을 말함.
가소(賈疏) : 가의(賈誼)가 한 문제(漢文帝)에게 올린 글. 통곡할 만한 것 하나, 눈물 흘릴 만한 것 둘, 길게 탄식해야 할 것 여섯, 모두 9개조의 상소문, 가의는 명주(明主) 문제를 만나 20여세에 박사가 되어 장래가 기대됐으나, 주위의 시기로 양왕(梁王)의 태부(太傅)로 좌천되어 울분 속에서 33세로 요절하였다. 「類選」 卷八上 經史篇 論史門.
가속(家屬) : 차지(次知)
가승(家乘) : 한 개인 집안의 歷史
가승미(加升米) : 세곡(稅穀)을 징수할 때에 축날 것을 예상하여, 한 섬에 3승씩을 더 받던 쌀.
가십오성(價十五城) : 조(趙) 나라가 보옥(寶玉)을 얻었는데 진왕(秦王)이 그 보옥을 자기의 15성(城)과 바꾸기를 청하였다. 인상여(藺相如)가 옥을 가지고 갔더니 진왕이 15성을 줄 생각이 없으므로 인상여가 도로 옥을 가지고 왔다. 이상에 조(趙)에 관한 고사를 많이 쓴 것은, 상사 조형(趙珩)이 성은 조가요 이름은 형(珩)인 때문이다.
가어오의편(家語五儀篇) : 공자의 언행과 일사를 모은 책. 한 유의 위작에 속한다 함.
가요(哥요) : 송(宋)의 처주(處州)에 살고 있는 장씨(張氏) 형제가 각기 자기를 구웠는데, 형이 구운 것이 아우의 것보다 약간 더 희고 깨진 무늬가 많아서 이를 가요라 하였다.
가의(賈誼) : 낙양생(洛陽生)
가인지정위(家人之正位, 가인괘(家人卦)의 위치) : 가인괘는 「주역(周易)」의 64괘의 하나로 한 집안의 안팎이 모두 바른 상(象)이다.
가장(家獐) : 여름에 개고기를 삶거나 구워먹는 것을 말한다.
가장주서(家獐注書) : 개장국 주서. 김안로(金安老)가 개고기를 매우 좋아하였는데, 이팽수(李彭壽)가 늘 살지고 큰개를 대주었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승정원 주서(注書)에 임명되었으므로 사람들이 비루하게 여겨 이렇게 불렀다.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 : 「예기(禮記)」 단궁하(檀弓下)에 보인다. 공자가 제자들과 태산을 지나다가 한 부인이 묘(墓) 옆에서 울기에 영문을 물었더니, 그 부인은 “먼저는 우리 시아버지와 남편을 호랑이가 잡아 먹었는데, 이제 우리 아들까지 잡아 먹었습니다.” 하였다. 그 말을 듣고 공자는 “그럼 왜 이 곳을 떠나지 않는가?” 하니, 그녀는 “여기는 가혹한 정사가 없습니다.”하였다. 그러자 공자는 제자들에게 “알아두어라, 가혹한 정사는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것이다.”하였다.
가장(假將) : 조정의 명령이 빨리 통하지 못하므로 각 도의 순찰사(巡察使)등이 임시로 장수를 임명하는 것을 가장(假將)이라 한다.
가정적(柯亭笛, 가정의 젓대가락) : 한 나라 채옹(蔡邕)이 일찍이 회계(會稽) 가정(柯亭)을 지나면서 집동쪽 십육연(十六椽)의 대를 보고서 취하여 젓대를 만들었는데 과연 기이한 소리가 났다. 그 뒤에 진(晉) 나라 환이(桓伊)가 얻어 항상 자신이 보존하고 불었다고 함. 通考
가조(嫁棗) : 정월에 대추나무를 두들기는 것을 말함. 群芳譜에 “每元旦日未出時 反斧斑駁椎之謂之嫁棗 不椎則 華而不實 斫之則 子萎而落”이라 하였음.
가충(賈充) : 진(晉) 나라 사람. 자는 공려(公閭), 벼슬은 상서령(尙書令)에 이르렀음. 전혀 아첨하고 순종하는 것을 주로 한 자임.
가태부(賈太傅) : 가의(賈誼)를 이름. 전한(前漢) 문제(文帝) 때의 문신(文臣). 낙양(洛陽) 사람. 문제 때 박사(博士)에서 태중대부(太中大夫)가 되었으며, 뒤에 장사왕(長沙王)의 태부(太傅)로 좌천되었다가 다시 양회왕(梁懷王)의 태부가 되었음. 저서에 「신서(新書)」·「가장사집(賈長沙集)」이 있는데, 치안책(治安策)·과진론(過秦論) 등의 글이 가장 유명함. 당시 사람들은 그를 가태부(賈太傅) 또는 가생(賈生)이라 불렀음.
가표(賈彪) : 후한(後漢) 사람, 자는 위절(偉節), 3형제가 다 명성이 있어 가씨 삼호(賈氏三虎)라 불리움. 환제(桓帝) 때 신식장(新息長)이 되었음. 당사(黨事)가 일자, 낙양에 들어가서 두무(竇武) 등을 달래어 변명하게 하였더니, 제(帝)가 깨닫고 당인(黨人)을 놓아 줌.
가학양주천(駕鶴楊州天) : 예전에 네 사람이 모여서 소원을 말하는데 한 사람은 10만 관(貫)의 돈이 소원이라 하였고, 한 사람은 학(鶴)을 타고 하늘에 오르는 것이 소원이라 하였고, 한 사람은 양주자사(楊州刺史)가 되는 것이 소원이라 하였는데, 한사람은 허리에 10만 관(貫) 돈을 차고 학을 타고 양주 공중에 날아 오르는 것이 소원이라 하였으니, 다른 세 사람의 것을 모두 겸한 것이다.
가함(假銜) : 임시로 관직을 주는 것.
각(角)·상(商) : 각과 상은 다 오음(五音) 가운데의 명칭이나 방위(方位)로도 논하는데, 산세(山勢)의 길형(吉形)을 말하는 풍수가들의 용어
각도(閣道) : 고가복도(高架複道) 또는 산골짜기나 절벽 따위에 널빤지를 건너 질러 만든 길. 곧 잔도(棧道)를 말한다.
각모(角帽) : 모난 모자라는 뜻으로, 예사 의식 때에 쓰는 ‘에보시’[烏帽子]를 가리키는 듯하다. 그 모양이 앞뒤로 길고, 중간은 평평하며 앞뒤가 뿔이 돋힌 듯이 뾰족하게 솟았다.
각반(角飯) : 편수와 비슷한 떡. 솔잎에다 찹쌀떡을 싸서 뿔모양으로 만들었으므로 그런 명칭이 생겼음. 각서(角黍)라고도 함. 초 나라 사람들이 굴원의 투신자살을 슬퍼하여, 물고기한테 굴원의 시체를 뜯어 먹지 말라고 대통에다 쌀을 넣어 물에 던지며, 소태나무 잎으로 이 편수떡을 파고 채색실로 붙들어 매고 교룡(蛟龍)끼리 이런 떡을 먹으며 굴원의 시체를 뜯어 먹지 말라고 하였음.
각서(角黍) : 중국 남방의 풍속에는 단오일(端午日)에 각서(角黍)를 만드는데, 고엽(菰葉)에다 찹쌀을 싸서 익힌다. 또 오색실을 길게 이어 감아서 장명루(長命縷)라 하고 서로 선사한다.
각장(榷場) : 國家에서 管理하는 市場
각주실검(刻舟失劍) : 변통성이 없어 경상(經常)만을 고집하는 것을 비유한 말, 초(楚) 나라 사람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다가 칼이 물에 빠지자 빨리 뱃전에 새기면서 “여기가 내 칼이 빠진 곳이다.”하고 배가 나루에 닿은 뒤에 표를 해 놓은 뱃전 밑의 물에 들어가 찾았는데 배는 움직였지만 칼은 따라 움직이지 않았으므로 찾지못했다는 고사.呂氏春秋
각촉시(刻燭詩) : 불을 켠 초에다 금을 그어 놓고 그 금에 닿을 동안에 글을 짓도록 하는 시험을 말한다.
각·항(角亢) : 이십팔수 중 각수(角宿)와 항수(亢宿)를 지칭하는데, 각수는 창룡 일곱 별 중의 첫 번째 별이고, 항수는 창룡 일곱 별 중의 두 번째 별이다. 각수는 평도(平道)·천전(天田)·천문(天門)·진현(進賢)·남문(南門)의 별이며, 항수는 대각(大角) 밑의 만궁상(彎弓狀)의 별자리이다. 新法曆書
각헌(覺軒) : 상채(上蔡)
각저(角觝) : 각희(角戱)와 같은 말. 옛날 중국의 유희. 두 사람이 맞붙어서 힘 또는 활쏘기·말타기, 기타 여러 가지 기예(技藝)를 겨루는 일.
간기(間氣) : 천지간에 뻗쳐 있는 깨끗한 기운임. 불세출(不世出)의 영웅이 이 간기를 타고난다 함. 예전 중국에서는 5백년에 한 사람씩 큰 성인(聖人)이 난다고 하였다. 5백년간의 정기(精氣)가 모여서 한 성인이 탄생한다는 5백 년간의 간(間)과 정기(精氣)라는 기(氣)를 합하여 말하는 것으로 간기(間氣)라는 성어(成語)가 되어 있다.
간당비(奸堂碑) : 송(宋) 나라 휘종(徽宗) 2년에 채경(蔡京)이 원우(元祐)·원부(元符)때의 재집(宰執) 사마광(司馬光) 등과 대제(待制) 이상의 관(官) 소식(蘇軾) 등, 여관(餘官) 정이(程頤) 등, 무신(武臣) 왕헌가(王獻可) 등, 내신(內臣) 장사량(張思良) 등 모두 1백 20인을 간당(奸黨)이라 하여, 어서(御書)를 청하여 돌에 새겨 단례문(端禮門)에 세웠음.
간마구석(幹馬仇石) : 간마는 한간(韓幹)의 말그림이고, 구석은 구지(仇池)의 돌임.
간명취전(干名聚羶, 누린내에 모임) : 장자(莊子)는, 양고기는 개미떼를 그리워하지 않지만 개미떼들은 누린내 나는 양고기에 모여드는 것을 말하여, 순(舜)을 양고기에, 순을 따르던 백성들을 개미떼에 비유하였다. 莊子 徐无鬼
간모구현(干旄求賢) : 간모는 검은 쇠꼬리를 깃대 위에 단 기로서, 존귀한 사람이 어진 사람을 만나볼 때 깍듯이 가다듬은 용의(容儀)를 뜻한다. 위후는 춘추시대 위문공(衛文公). 「시경」 용풍(鄘風) 간모(干旄)에 보인다.
간모시(竿旄詩) : 「시경」 용풍(鄘風) 가운데 있는 시편 이름. 이 시는 위무공(衛武公)과 그의 여러 훌륭한 신하를 칭찬한 것이라 함. 「시경」에는 간모(干旄)로 되어 있음.
간문제(簡文帝) : 진(晋) 나라 제 8대의 황제 태종(太宗)을 이름. 「類選」卷八上經史篇 論史門.
간색미(看色米) : 품질의 좋고 나쁨을 알아보기 위해서, 견본(見本)삼아 일부를 보던 쌀.
간색조(看色條) : 조세(租稅)를 받아들일 때 더 받는 검사료(檢査料)의 하나. 조선 후기 때의 폐단인데 매섬마다 1~2 되를 더 받았다.
간성(干城) : 방패와 성. 방어한다는 것을 비유함. 이 간(干)을 간(扞)으로 쓰는 것은 잘못되었음. 「좌전」 “此公侯之所以扞城其民也”에 쓰인 이 간(扞)자를 그대로 쓴 것인 듯하다.
간수(看水) : 조수가 물러간 뒤 배를 타고 통발 놓은 자리로 가서 고기를 건지는 것 ○ 臣謫居海上時 與書生乘小艓親往魚篊要買大魚 魚商忌之 與船子朋奸 雖身至袵筩 目自看水 - 潮退乘舟 至袵筩取魚者 名之曰看水- 經世遺表 魚稅 (장 순범)
간악(艮嶽) : 하남성 개봉현(開封縣) 성 안 동북쪽에 있는 산이름. 송나라 휘종(徽宗)때에 쌓은 것으로 일명 수봉(壽峰)이라고도 한다.
간양록(看羊錄) : 강항(姜沆)이 선조(宣祖) 30년 정유재란(丁酉再亂)에 왜적에게 사로잡혀 일본에 압송되었다가 선조 33년 경자(庚子)에 풀려나왔는데, 일본에 있는 동안 보고 들은 인심·풍속·지리·군사 시설 등등을 기록한 서적.
간어제초(間於齊楚) : 등문공(滕文公)이 맹자(孟子)에게 묻기를, “약소(弱小)한 등(滕) 나라가 제 · 초(齊楚)에 끼었으니 제(齊)를 섬길까 초(楚)를 섬길까요.”하고 물었음.
간우(干羽) : 舜 임금이 三苗를 치다가 不服하므로 돌아와서 文德을 펴서 干羽의 춤을 추니 삼묘가 복종하여 왔다. 간우는 文舞이다.
간자(簡子) : 춘추 시대 진의 조앙(趙鞅). 간자는 그 시호. 양자의 아버지.
간재: 진여의(陳與義)의 호. 정강(靖康)의 난 이후에 북송시인(北宋詩人)이 모두 없어 지고 오직 간재만이 남았는데, 그 시재가 탁월하고 변화에 능했다 한다.四庫提要 集 別集類三
간전(間傳) : 상복(喪服)에 있어서 경중(輕重)의 적당함을 택하여 인정에 알맞게 한 것. 별록(別錄)으로서 상복(喪服)에 속해 있음.
간지(干支) :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는 천(天)의 십간(十干)이요,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는 지(地)의 십이지(十二支)이니 이것을 합하여 육갑(六甲)이 된다.
간지시종(干支始終,간지의 시종) : 천간(天干)과 지지(地支)의 처음부터 끝. 곧 갑자(甲子)·을축(乙丑)으로부터 임술(壬戌)·계해(癸亥)까지이다.
간척(干戚)과 약적(籥翟) : 아악(雅樂)의 무무(武舞) 대원(隊員)들은 간척 즉 방패와 창을 들고, 문무(文武)의 대원들은 약적 즉 피리와 꿩깃을 들고 대무(隊舞)를 춘다. 高麗史 卷七十樂一雅樂
간협(干祫) : 가묘(家廟) 없이 지내는 제사를 이름. 「예기(禮記)」 대전(大傳)에, “난리가 있을 때 대부(大夫)가 그의 고조(高祖)에게 단을 만들고 기도한다.” 하였음.
간혜(簡兮) : 「시경」 패풍(邶風)의 한 편명. 어진 자를 쓰지 않은 것을 비판한 시. 끝장에 “云誰之思 西方美人 彼美人兮 西方之人兮”라 하였음.
갈건 : 칡넝쿨로 만든 관. 도연명(陶淵明)은 술이 익으면 갈건을 가지고 술을 걸르고 다시 닦아서 머리에 썼다 한다. 宋書 陶潛傳
갈건녹주(葛巾漉酒) : 도연명(陶淵明)이 머리에 갈포건(葛布巾)을 쓰고 있었는데, 집에 술이 익으면 갈포건을 벗어서 거기에다 술을 걸러서 마시고는 다시 머리에 썼다 한다.
갈고(羯鼓) : 당나라 현종이 갈고(羯鼓)라는 서방 민족 갈(羯)족의 악기를 잘 쳤다. 어느 이른봄 아직도 꽃이 활짝 피지 아니한 때에 후원 화악루(化萼樓)에서 갈고로 한 곡조 쳤더니 후원의 꽃들이 일시에 활짝 피었다 한다.
갈관(鶡冠) : 할단새의 깃으로 장식한 관 이름. 할단새는 꿩과에 속하는 새로서 용감하여 싸우면 죽을 때까지 그치지 않는다. 그러므로 옛날 무관(武官)이 쓰는 관의 장식에 그 깃을 썼음.
갈단(鶡鴠) : 갈단(鶡鴠)이란 산새인데, 꿩 비슷하되 울지 못한다 함. 禮記·山海經
갈달(噶噠) : 서역(西域)의 나라 이름.
갈로(葛老) : 진(晋)나라 구용(鉤用)의 사람. 현(玄)의 손자. 자는 치천(稚川). 호는 포박자(抱朴子). 세상에서 소갈선옹(小葛仙翁)이라 한다. 더욱 신선 도양(神仙導養)의 법을 좋아하고 연단(煉丹)의 술을 현의 제자 정은(鄭殷)에게 배웠다. 함화의 처음에 산기상시(散騎常侍) 겸 대저작(大著作)에 불리었으나, 고사하여 취임하지 않았다. 교지(交趾)에서 단사가 난다는 말을 듣고 구하여 구루령(句漏令)이 되었다. 자질을 이끌고 광주를 지나 나부산(羅浮山)에 이르러 단(丹)을 연단하고, 이루어짐에 시해(尸解)했다. 저작에서 황백(黃白)의 일을 말할 것을 내편(內篇)으로, 기타 박잡통석(駁雜通釋)한 것을 외편(外篇)이라 한다. 그리고, 그 호에 의하여 포박자(抱朴子)라 이름했다. 따로이 신선전. 두후방(肘後方) 및 비주시부(碑誅詩賦)·잡문(雜文) 등 수백 권의 책이 있다.
갈뢰(曷뢰) : 땅 이름인데 지금 함경도 남북지대임.
갈매(渴梅,목마를 때 매화) : 위 나라 조조(曹操)가 원소(袁紹)와 싸워 패하여 달아날 적에 수하 군사들이 갈증이 나서 견디지 못하므로 조조는 일부러 말하기를 “얼마 안 가면 매림(梅林)이 있다.” 하니 군사들이 그 말을 듣고 입에 침이 돌아 위기를 면했다고 함.
갈백(葛伯) : 갈(葛)땅의 백(伯). 탕(湯) 임금이 박(박) 땅에 있을 때 갈(葛)과 이웃이었는데, 갈백이 선조에게 제사를 모시지 않으므로 탕이 사람을 시켜 “어째서 제사하지 않는가?” 하고 묻자, 갈백은, “제사에 소용되는 희생(犧牲)이 없어서 못한다.”고 하였다. 탕이 소와 양을 보내 주었으나 갈백이 먹어 버리고 또 제사하지 않았다는 고사. 이는 당시 관리들이 백성들에게 무리한 세금을 착취해서 나라에 바치지도 않고 자기들 사욕만 채우는 데에 비유한 말.
갈상지탄(曷喪之歎) : 하(夏) 나라 걸(傑)이 스스로 말하기를 “내가 천하를 둔 것은 해가 하늘에 있는 것 같은데 해가 없어져야 내가 망한다.” 한 까닭으로 백성들이 “해는 왜 없어지지 않는가?”[是日曷喪] 하고 탄식했다.書經 湯誓
갈석(碣石) : ⇒ 우갈석(右碣石)
갈원(葛元) : ⇒ 魚沈
갈장(渴葬) : 기일 전에 급히하는 장사
갈천씨(葛天氏) : 상고(上古) 시대의 제왕(帝王). 그는 말을 하지 않고 믿음으로 다스렸다 함.
갈천폐(葛天幣, 갈천백성) : 도연명의 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에 “무회씨(無懷氏)의 백성인가, 갈천씨의 백성인가.” 했음.
갈현(葛玄) : ⇒ 구루연단경(句漏鍊丹經)
갈홍천(葛洪川) : 진(晋) 나라 갈홍(葛洪)은 자(字)가 치천(稚川)인데 나부산(羅浮山)에서 선약(仙藥)을 만들었다. 여기서는 임가신(林可信)의 호(號)가 나부자(羅浮子)이므로 나부산 고사를 쓴 것이다.
감결(甘結) : 상사(上司)가 속사(屬司) 등에 공문을 보내어 지시하고 그 일에 대하여 ‘어기거나 거짓이 있으면 중한 처벌을 감수 하겠다.’는 뜻으로 서약의 글을 쓰고 착서(着署)하여 내게 하는 것. 또 이 서약의 문서를 감결이라 하며, 감결을 모아 철한 것을 감결책(甘結冊)이라 한다. 1920년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에서 편간(編刊)한 「조선어사전(朝鮮語辭典)」의 풀이에 ‘상급 관아에서 하급 관아에 발하는 공문’이라 하였고, 그 뒤 국내에서 간행된 사전류에 거의 다 이와 같이 풀이하였으며, ‘이조 때’니 ‘조선조’니 하여 감결이 행해진 시대까지 매긴 사전도 있으나, 아래 예문으로 보아 모두가 맞지 않는 말임을 알 수 있다.
감과(甘科) : 귤[柑]을 진상받고 베풀던 조선 시대의 과거 제도로, 제주 수령이 귤·유자 등을 진상하면 나라에서 이를 경하하는 뜻에서 특별한 과거를 베풀었음. 감제(柑製) 또는 황감제(黃柑製)라 하기도 함.
감괘(坎卦) : 감괘와 기제괘는 「주역(周易)」 64괘의 괘명인데, 감괘는 일의 험난한 것을 상징하며, 기제괘는 일이 이미 이루어진 괘상(卦象)이다. 감괘의 괘사(卦辭)에는 “행하면 공이 있다”하였고, 기제괘는 괘사에는 “처음에는 길하고 마침내는 어지럽다. ”했는데, 여기서는 점사(占辭)에 따라 출병함을 말한 것이다.
감구집(感舊集) : 왕어양(王漁洋)이 자기 사우(師友)의 시(詩)를 모아 편집한 책. 어양(漁洋)은 청(淸) 왕사정(王士禎)의 별호. 왕은 완정(阮亭). 청 세조(世祖) 때 진사(進士), 벼슬은 형부 상서(刑部尙書). 당시 시인(詩人)으로 이름이 높았음.
감국(監國) : 임금이 출정(出征)한 때에 태자(太子)가 수도(首都)지키는 것을 감국(監國)이라 하는데 이때에는 태자가 어리므로 동생을 시켜 감국(監國)하게 하였던 것이다.
감려·벌밀(감黎伐密) : 여(黎)와 밀(密)이란 두 나라를 침. 「서경」 주서(周書)에 서백감려(西伯감黎) 편이 있음.
감로경(甘露經) : ⇒ 국부상서
감로지변(甘露之變) : 당(唐) 문종(文宗)때 이훈(李訓)·정주(鄭注)가 환관(宦官)을 다 죽이려고 좌금오청사(左金吾廳事) 뒤의 석류(石榴) 나무에 감로(甘露)가 있다고 속여 문종이 이를 보도록 청하고, 그곳에 병사(兵士)를 숨겨 거사(擧事)하려 했으나 탄로가 나 도리어 환관에게 멸족(滅族)을 당한 일. 唐書 卷十七 文宗本紀
감리광곽(坎離匡郭) : 「참동계(參同契)」 상편에, “乾坤者易之門戶 象卦之父母 坎離匡郭 運穀正軸”라 보이는데, 그 주(註)에, ‘감(坎)은 월(月), 이(離)는 일(日), : 광은 바르다는 것. 옛말에 광성(匡城)이란 말이 있는데 오늘날 광곽(匡郭)이란 말과 같은 것으로 곧 성곽(城郭)이란 말이다. 이것은 해와 달이 수레바퀴처럼 도는 것을 비유함이다.’라고 하였다.
감명(噉名) : 명예 구하기를 주린 사람이 음식을 구하듯이 함을 이름.
감무(監撫) : 임금이 征出할 때에 太子가 남아서 나라를 지키면 그것을 監國이라고 하고 임금을 따라 출정하면 그것을 撫軍이라 한다.
감반(甘盤) : 殷 나라 高宗의 옛 스승인데 즉위 전의 임금의 스승을 감반이라 한다.
감방(勘放) : 술에 취해 방종함을 이름. 황보식(皇甫湜)의 한창려모지명(韓昌黎墓誌銘)에 “及其酣仿 豪曲快字 凌紙怪發”이하 하였음.
감서(甘鼠) : ⇒ 영양(羚羊)
감석(泔淅) : 쌀뜨물인데, 쌀뜨물처럼 흰 이빨을 가리킨 것이다.
감소공(甘昭公) : 감소공은 왕자대(王子帶) 곧 대숙(大叔)인데 혜후(惠后)에게 총애를 받다가 헤후가 죽자 대(帶)는 제(齊) 나라로 달아났다. 나중에 왕이 불러 왔으나, 또 왕후 외씨(隗氏)와 통하므로 왕이 외씨를 폐하였다. 이 때는 적(狄)의 군사를 거느리고 왕을 공격, 왕이 정(鄭)으로 갔고, 대는 외씨를 데리고 온(溫)에서 살았다. 春秋左氏傳
감실(嵌室) : 신주 모시는 조그만 벽장 같은 것.
감여(堪輿) : 천지, 건곤의 뜻이며 감여가(堪輿家)는 묘지선정 때 지질 방위에 따라 길흉을 판단하는 풍수가(風水家)나 역상(曆象)을 맡고 점성(占星)을 맡은 자 등을 말한다.
감여가(堪輿家) : 풍수지리설(風水地理說)을 주장하는 사람.
감제(柑製) : 제주(濟州)에서 새로 익은 柑子를 進上하면 궁중에서 그 감자를 문신들에게 나누어 주고 시를 짓게 하여 등급을 매기는 것이다.
감지와(坎止窩) : 물은 흐르게 되면 흘러가고 구렁이를 만나면 그치는 것인데[流行坎止] 이것은 君子가 출세할 수 있으면 나가고 亂世를 만나면 들어가 숨는다는 뜻이다.
감진(監進) : 物件을 進上할 때 감독하는 것.
감채(勘債) : 어떤 일을 마감하는 데에 요구하는 수수료.
감천(甘泉) : 한 나라 감천궁(甘泉宮)
감판 전의본(監版傳義本) : 감판은 감본(監本), 즉 관판(官版)을 말하니, 「정전(程傳)」과 「본의(本義)」를 합간한 본을 말한다.
감합(勘合) : 옛날에 군데를 파견할 적에 대나무로 만든 부계(符契)에다 인신(印信)을 덮어 둘로 짜개어 하나는 명령을 받들어 조견(調遣)하는 사람에게 주어 증거를 삼게 하고 하나는 군대 파견을 받는 주장(主將)에게 주어 명령을 받들어 조견하는 사람이 당도하는 날에 두 부계를 서로 맞추어 보는 것을 감합(勘合)이라 이름.
감합문자(勘合文字) : 반송시킬 공문서의 한 끝을 찍는 인장(印章)이나 문서이며 외국 사신이 출입할 때 이를 증명하는 문서다.
갑관요(蓋寬饒) : 한(漢) 나라 선제(先帝) 때, 갑관요(蓋寬饒)가 사예교위(司隸校尉)로 있으며 회피하지 않고 법을 시행하므로, 공경 귀척(公卿貴戚)들이 두려워하여 법을 범하는 자가 없었다. 그러므로 경사(京師)가 숙청되었지만, 강직 공렴(剛直公廉)한 성격 때문에 임금의 뜻을 간범하고 원망과 비방을 사 사직하고 북궐(北闕)에서 자살한 고사.
갑신정변(甲申政變) : 고종(高宗) 21년(1884) 10월, 사대파(事大派)인 수구당(守舊黨)과 혁신파(革新派)인 개화당(開化黨) 사이에 일어난 정치적 변란.
갑신지변(甲申之變) : 명(明) 나라 숭정(崇禎) 17년인 갑신(甲申)에 이자성(李自成)이 북경을 함락하여 명 나라를 망하게 한 변.
갑첩(甲帖) : 송대(宋代)에 열 집을 한 갑(甲)으로 했는데, 갑장은 곧 이 열 집에 대한 대장.
강(綱) : ⇒ 기(紀)
강간국(康干國) : 회흘(回紇)에 있는 나라. 강간(康干)은 회흘에 있는 하수 이름. 이 하수에 소나무를 잘라 던져 넣어서 3년이 되면 돌이 되는데 그것을 강간석(康干石)이하 한다.
강건지덕(剛乾之德) : 周易에 「건괘(乾卦)의 덕(德)은 剛」을 主 로 한다.」하였는데, 임금의 剛斷을 乾剛의 덕이다 한다.
강고어(羌古魚) [강고도어(羌古道魚)·간고어(乾古魚)] : 일본어인 ‘가쓰오[鰹]’의 음역어(音譯語). 곧 가다랭이, 또 ‘가쓰오부시[鰹節]’ 곧 가다랭이의 살만을 발라내어 끓는 물에 꼈다가 불에 쬐어 말려 조미하여 다시 햇볕에 말려서 굳힌 것을 뜻하기도 한다. 간고어라 할 때에는 ‘가쓰오부시’의 뜻으로만 쓴다.
○ 島主 以吾行之多日淹滯於海村 別遣使者 呈納柑子一籠羌古魚一級 海槎日記 十月二十一日
○ 道味魚 其俗所謂鯛者 無處無之 無時無之 羌古道魚 亦其所産 味淡可食日東記遊 物産
○ 唐韻云鰹 漢語抄云加豆乎倭名類聚抄 鰹魚
○ 乾古魚 鰹節 朝鮮熟語解譯
○ 鰹節 鰹肉乾脯者也 倭漢三才圖會鰹魚
강공(康公) : 강공은 목공(穆公)의 아들인데 목공이 죽을 때에 유언하기를, “자거씨(子車氏)의 세 아들[三良]을 나의 무덤에 순장(殉葬)하라.” 하였으므로, 강공은 유언에 따랐더니 나라 사람들이 세 어진이의 죽음을 불쌍히 여겨 시를 읊었는데, 그것이 「시경」의 황조편(黃鳥篇)이다. 유언에는 치명(治命)과 난명(亂命)이 있는데, 치명은 정신이 있어서 바르게 시킨 것이고, 남명은 정신이 착란하여서 한 것이다.
강․관(絳灌) : 한 고조의 신하 강후(絳侯) 주발(周勃)과 관영(灌嬰)을 말함.
강구(康衢) : 번화한 거리. 이 말은 당뇨 (唐堯) 때 강구동요(康衢童謠)인 “立我烝民 莫匪爾極 不識不知 順帝之則”이라고 한 것을 말한다.
강남락(江南樂) : 사(詞)의 하나인데, 사(詞)라 함은 시의 변형이다. 원래 시는 길게 노래하는 것으로서 노래를 문자로 써 놓은 것이 시였다. 그런데 시대의 변천은 노래의 가락도 변천하게 하여서, 재래의 시형(詩形)을 가지고서는 새 사람들의 노랫가락에 합치하지 아니하게 된다. 그래서 새 형식이 생겼으니 재래의 시형에서 어느 부분에서는 한 자 혹은 두 자를 빼기도 하고, 어느 부분에서는 더하기도 하여 새 사람의 음악적 감각에 합치하도록 발전된 것을 사(詞)라고 이름지었으니, 당나라 말년부터 시작하여 송나라에 와서 극성한 시대를 이루었다. 그 가락이 수백가지였는데 이 강남락도 그 중의 하나이다.
강남지란(江南之亂) : 양 무제(梁武帝) 재위 48년 중 그 전기는 남조(南朝)의 성세였으나 만년에는 불교를 숭상하여 정치가 부패했다. 그래서 후경(候景)이 반란을 일으켰는데, 이를 막으러 보낸 무제의 조카 정덕(正德)이 후 경과 내통했다. 그래서 무제는 근심과 분함을 못이겨 병이 되어 굶어 죽고 말았다. 資治通監 梁紀
강녀망부(姜女望夫) : 민간에서 전승(傳承)되는 정부(貞婦)의 이야기. 진시황(秦始皇) 때 범칠랑(范七郞)이란 이가 장성(長城) 쌓은 역사에 징발되어 가매, 그의 처인 맹강녀(孟姜女)가 겨울옷을 지어 가지고 남편에게 갔더니, 남편은 이미 죽고 없으므로 그녀가 성 밑에서 곡을 하다가 그대로 망부석이 되었다고 한다. 희곡․가곡 등에 자주 나타나는 이야기다.
강도(江都) : 동중서를 이름. 동자(董子)가 일찍이 강도상(江都相)으로 있었음.
강도사(江都事, 강도(江都)의 사실) : 병자호란 때 강도 검찰사(江都檢察使) 김경징(金慶徵)이 주색에 빠져 청군의 침입을 모르고 있다가 강도[江華]가 함몰된 일을 말한다.
강등(降等) : 服을 감하는 것
강랑(江郞) : 남조(南朝) 고성(考城) 사람 강엄(江淹)인데 자는 문통(文通)이고 벼슬은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에 이르렀으며, 예릉후(醴陵侯)에 봉해졌다. 소시적부터 문예(文譽)가 있었으며 유명한 한부(漢賦)를 지었음.
강루(降婁) : 성차(星次)의 이름으로서, 규성(奎星)과 누성(婁星) 두 별이 위치한 자리를 말함.
강릉(岡陵) : 강은 소산(小山), 능은 구릉(丘陵)으로 장수를 뜻한다. 詩經 大雅에 “산(山)과 같고 부(阜)와 같으며, 강(岡)과 같고 능(陵)과 같다.” 하였다.
강리(綱吏) : 강운(綱運)을 맡아 보는 관리. 강운은 화물(貨物)을 전운(轉運)할 때 그 차량(車輛)과 선척(船隻)을 계산하여 약간의 수효로 일비(一批)를 만들고, 자호(字號)를 편입하여 조사를 편리하게 하는 일.
「강목(綱目)」 : 59권. 「자치통감」을 강과 목으로 나눈 것으로 주자가 손수 만든 한 권의 범례에 의거하여 그 문인 조사연(趙師淵)이 전편을 작성함.
강문통(江文通) : ⇒ 필단오색(筆端五色)
강변칠우(江邊七友) : 이 사실은, 서얼(庶孼)의 금고(禁錮)에 대해 불만을 품은 명문 서자(庶子)인 박응서(朴應犀)․서양갑(徐羊甲)등 7인이 강변칠우(江邊七友)라 자처하면서 여주(驪州)의 북한강(北漢江) 근처에서 시주(詩酒)로 세월을 보내다가, 광해군4년(1612) 조령(鳥嶺)에서 은상인(銀商人)을 죽이고 은을 약탈한 사건인데, 뒤에 발각되어 박응서를 제외하고 다 주륙당한 것을 말한다. 만력은 명 신종(明神宗)의 연호이고, 칠우는 즉 박응서․서양갑․심우영(沈友英)․허홍인(許弘仁)․박치의(朴致毅)․이경준(李耕俊)․김경손(金慶孫)이다.
강복(降服) : 아들에 대하여 기년복을 입지 않는 것.
강사(强仕) : 40세의 별칭 「예기」곡례(曲禮) 상편에, “四十强而仕”라는 말에서 유래되었음.
강상(綱常) : 군신래의(君臣來義)를 말함.
강서(江西) : 소식(蘇軾)을 이름.
강서녀(姜庶女) : 昭顯世子의 嬪 姜氏를 폐하여 庶人을 만들었으므로 姜庶女라 부른 것이다.
강서지돈오(江西之頓悟) : 육구연(陸九淵)의 학설을 말함. 그는 강서성(江西省) 금계(金鷄) 사람이며, 돈오란 불가(佛家)의 말로 순간에 진리를 깨닫는다는 뜻인데, 그의 학문이 불교에 가깝기 때문에 이렇게 일컬은 것이다. 그는 주자의 주지적(主知的) 철학에 반대하여 심즉리(心則理)의 학설을 주장하였다.
강서지학(江西之學) : 송(宋) 나라의 육상산(陸象山)의 학을 말함. 그가 강서의 금계(金鷄)에서 출생했으므로 그의 학을 강서학파라 한다.
강서학파(江西學派) : 여기 강서라 함은 물론 학파를 말한 것일텐데, 그 때에 육상산 계통의학자로서 누가 강서에서 이름난 사람이 있는지 아직 알 수 없다. 그 당시 강서에서 주자와 가장 대치되는 학설을 주장한 것은 진용천(陳龍泉)․섭수심(葉水心) 등 사공파(事功派)의 학자들이었는데, 혹시 이들을 가리켜 말한 것이 아닌가 한다.
강선(絳船) : 강(絳)은 화물(貨物) 운반을 뜻하는 말. 즉 관유(官有) 화물을 운송하는 배.
강설(絳雪) : 신선의 약이름. 漢武帝 內傳에 “선가의 상약에는 현상(玄霜)과 강설(絳雪)이 있다.”하였음.
강설반(絳雪盤) : 강설(絳雪)을 담은 소반. 강설은 선가(仙家)에서 말하는 단약(丹藥)의 이름이다. 漢武帝內傳에 “선가(仙家)의 상약(上藥)으로는 현상(玄霜)과 강설이 있다.”하였다.
강수은(姜睡隱) : 이름은 항(沆), 자는 태초(太初), 호는 수은(睡隱). 진주(晋州) 사람. 선조 때 유학자로서 정유재란에 포로가 되어 일본에 들어갔다가 선조 33년 경자(庚子)에 돌아왔음. 저서에는 「수은집(睡隱集)」․「간양록(看羊錄)」 등이 있음.
강씨손주(姜氏遜邾) : 춘추(春秋)에 “부인 강씨(姜氏)가 주(邾)나라에 손(遜)하였다”고 썼는데, 그것은 노(魯)나라 임금의 어머니 강씨(姜氏)가 죄가 있어 친정인 주(邾)나라로 쫓겨간 것을 기록한 것이다.
강엄(江淹) : ⇒ 몽중필(夢中筆)
강왕(康王) : 주 성왕(周成王)의 아들. 성․강(成康)의 세대에 40여 년 동안 형옥(刑獄)이 비어 주(周) 나라의 태평시대를 이루었다.
강운위수(江雲渭樹) : 두보(杜甫)가 이백(李白)에게 지어준 시에, “위북춘천수(渭北春天樹) 강동일모운(江東日暮雲)”이란 글귀가 있다. 위북은 자기가 있는 곳이요 강동은 이백이 있는 곳이다.
강유(綱維) : 절 안을 통찰하고 불사(佛事)를 유지하는 역할을 하는 자로, 사주(寺主)․상좌(上座)․도유나(都維那) 3인이 있어 그것을 삼강(三綱)이라고도 한다. 고려의 국사는 이러한 중국의 강유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강유교착(剛柔交錯) : 강(剛)과 유(柔)가 서로 뒤섞이는 것. 「주역」 비(賁)괘 단(彖)에, “賁享……小利有攸往 天文也”라 보이는데, 천문(天文) 위에 강유교착(剛柔交錯)이 빠졌다는 것.
강유분별(剛柔分別) : 여기에 나오는 강(剛)․유(柔) 두 기호란 서양 음악의 기호이다. 명나라 말기에서 청 나라 초기에 걸쳐 서양 음악이 중국으로 흘러들어와 연구가 성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율려정의(律呂正義)」의 이기기음(二記紀音)에 “유악(柔樂)은 탁성(濁聲)으로서 ‘b’의 기호를 쓰니, 이는 그 유동적이고 원만한 형상을 취한 것이요, 강악(剛樂)은 청성(淸聲)으로서 ‘#’의 기호를 쓰니, 이는 그 모나고 굳센 형상을 취한 것이다.”하였다. 그런데, 유(柔)의 기호인 ‘b’은 반음의 낮은 소리를 표시하는 것이고 강(剛)의 기호인 ‘#’은 반음의 높은 소리를 표시할 때 쓰는 기호이다.
강이장(剛而丈) 이정(李楨) : 강이는 이정의 자이며 호는 구암(龜巖)이고 본관은 사천(泗川).
강일(剛日) : 일진(一陣)에 갑(甲)․병(丙)․무(戊)․경(庚)․임(壬)이 든 날. 禮記 曲禮에 “외사는 강일에 하며 내사는 유일에 한다.”[外事以剛日 內事以柔日]하였는데, 그 소(疏)에 “10일 중에 기수일이 다섯, 우수일이 다섯인데 갑․병․무․경․임은 강일이며, 을․정․기․신․계는 유일이 된다.”[十日 有五奇五偶 甲丙戊庚壬爲剛 乙丁己辛癸爲柔]하였다. 여기에서 말한 외사는 치병(治兵)․순수(巡狩)등의 일, 내사는 종묘 제사․관혼 상제를 뜻한다.
강자(腔子) : 가슴과 배 사이에 있는 빈 곳. 옛사람들이 심장(心臟)이라고 하는 곳.
강장(絳帳) : 後漢書 馬融傳에 “융의 거처(居處) 기복(器服)이 치식(侈飾)이 많아서 항상 고당(高堂)에 앉아 강사장(絳紗帳)을 치고서 앞으로는 생도들을 가르치고 뒤로는 여악(女樂)을 벌였다.”하였음. 그래서 후세에 강좌(講座)를 지칭하여 강장이라 함.
강절(絳節) : 선인이 가지는 붉은 기를 이름.
강정(降定) : 품관을 강등하여 군사로 정하는 것.
강조(腔調) : 악곡의 성률(聲律). 율(律)로 말하면 조(調)라 하니, 궁조(宮調)․상조(商調)와 같은 것이고, 발성(發聲)으로 말하면 강(腔)이라 하니 진강(秦腔)․곤강(昆腔)과 같은 것.
강좌(江左) : 양자강(揚子江)의 동쪽 지방, 곧 지금의 강소성(江蘇省).
강좌칠현(江左七賢) : 중국 위진(魏晉) 때 노장사상(老莊思想)에 기울어 청담(淸談)으로 때를 보낸 일곱 선비인, 완적(阮籍)․혜강(嵆康)․산도(山濤)․상수(向秀)․완함(阮咸)․유영(劉伶)․왕융(王戎)을 말한다. 죽림칠현(竹林七賢).
강책(絳幘, 붉은 수건) : 계관(鷄冠)을 비유하여 한 말임. 당 나라 왕유(王維)의 시에 “絳幘鷄人報曉籌”라 하였음.
강추사(江秋史) : 청 나라 강덕량(江德量)임.
강충(降衷) : 書經에 “上帝가 백성에게 衷을 降하여 주었다.”하였다. 衷은 中正의 덕을 말한 것인데, 하늘이 사람에게 착한 本性을 주었다는 말이다.
강필(江泌) : 옛날에 강필(江泌)은 밤에 촛불이 없이 눈[雪]에 비치어 글을 읽었고, 차윤(車胤)은 반딧불을 모아 엷은 비단 주머니에 달아서 글을 비치었다.
강하유만고(江河流萬古) : 문장을 말함. 두보의 시에 “不廢江河萬古流”라 하였음.
강한(江漢) : ⇒ 추양(秋陽)
강한조종우해(江漢朝宗于海, 강(江)과 漢이 바다에 朝會한다.) : 양자강과 漢水 등의 모든 물은 결국 바다로 향하여 들어간다. 이 말은 모든 속국들이 大國을 우러러 섬기는데 비유한 것이다.
강항(姜沆) : ⇒ 간양록(看羊錄)
강해(康海) : 자는 덕함(德涵), 호는 대산(對山). 명 나라 홍치(弘治)때 진사가 되어 수찬(修撰)이 되었고 십재자중의 한 사람이었다. 유근(劉瑾)이 그를 결탁하려 했으나 만나 주지 않다가 이 몽양이 하옥되매 구출을 부탁하게 되자 하는 수 없이 유근을 달래어 이몽양을 구출해 주었음.
강향(降香) : 황제가 봉산(封山)할 때에 향을 하사하는 의식.
강호상망(江湖相忘) : “물고기들이 강호(江湖)에서 서로 잇는다.”하였다. 그물에 든 고기는 서로 거품을 나누어 먹이며, 서로 애끼고 불쌍히 여기는 것 같으나 강호에서 자유로 노는 고기들은 서로 있는 줄을 모르는 것처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자유스럽고 좋다는 뜻이다.
강호지성(江湖之性) : 옛날 장자(莊子)와 혜자(惠子)와의 문답(問答)에서 나온 말인데, 물고기는 강호(江湖)에 있어야만 그 적성을 이룰 수 있다는 뜻. 莊子 秋水
강화(疆華) : ⇒ 적복(赤伏)
강회우천월(江淮牛喘月, 달 보고 헐떡여) : 강회(江淮) 지방에서 생장한 물소는 더위를 무서워하기 때문에 달을 보고도 해로 착각하고는 미리 놀래어 헐떡인다 한다. 진(晉)의 만분(滿奮)이 바람을 두려워하여 유리병(琉璃甁)을 빈틈으로 착각하고는 난색을 짓자, 무제(武帝)는 이를 보고 웃으니, 만분은 “저는 오(吳) 나라 소가 달을 보고도 헐떡이는 것과 같습니다.”[臣猶吳牛 見月而喘] 世說新語 言語하였다. 오 나라는 바로 강회 지방에 해당한다.
강후(姜侯) : 주 선왕이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 후부인(后夫人)을 방에서 떠나지 못하게 하였다. 하루는 강후가 밖에 나갔다가 들어오더니, 비녀와 귀걸이를 벗고 선왕에게 대죄하면서 말하기를 “첩이 재주가 없어 군주로 하여금 예를 잃게 하고 늦게 일어나게 만들었으니 죄주기 바랍니다.”하였다. 列女傳 賢明 周宣姜后傳
강흡량(糠合郞) : 허적(許●)이 감찰(監察)이었을 때에, 그 성품은 총찰(總察)하였으나 청대(請臺)하는 관사(官司)에서 바치는 것은 강직(糠稷) 5흡(合)에 지나지 않았다 하여, 집안에서 전하며 우스개로 부르던 별호.
○ 監察之於各司請臺 司吏納價于法司 頭吏圖之於分臺 其糢糊寬縱者則高價 剛察不可 者價必廉 其來久矣 許 爲監察性甚總察 一日惠民署吏來許筠家劑藥 筠戲問近日殿中之價誰卑 答曰許監察眞糠稷五合也 一門傳笑號爲糠合郞 識小錄
개(介) : 개(介)는 빈주(賓主) 사이의 말을 전달하는 자를 이름. 옛날에는 주(主)는 빈(●)을 두고, 빈(賓)은 개(介)를 두었음.
개(玠) : 개(玠)는 개규(介圭)를 이름. 옛날에 사자(使者)를 보낼 적에 개규를 주어 신표로 삼게 하였음.
개국(開國)․정난(靖難) : 개국은 이 태조가 고려를 멸하고 나라를 세운 공신에게 준 훈호(勳號), 정난은 태종이 방석(芳碩)의 난을 평정한 공신에게 준 훈호임.
개마(介馬) : 갑옷을 입인 말.
개물성무(開物成務) : 사물의 진상(眞象)을 드러내어 인사(人事)로 하여금 각기 그 온당함을 얻게 하는 것임. 周易 繁辭上에 “「역경」은 개물성무하고 천하의 일체 도리를 포괄하니 이와 같은 것일 뿐이다.”하였음.
개방(開方) : 수학 용어로서 즉 평방근(平方根)을 구하는 산법(算法)이다.
개보후(開寶后) : 송 태조(宋太祖) 조광윤(趙匡胤)의 황후.
개봉호적(開封戶籍) ; 宋나라때에 虔州 사람인 君行의 제자가 서울에 있으면서 과거 기일이 임박하여 본적지에 가서 호적 수속을 할 사람이 없으므로 임시로 開封의 戶籍을 꾸미려 하니 군행이, “임금을 처음 섬기려 하면서 임금을 속임은 부당하다”하였다.
개산 : 춘추 시대 진(晋) 나라의 개지추(介之推)임. 진 문공(晉文公)이 19년 동안의 망명생활 끝에 본국에 돌아와 그 동안 자기를 따라다니며 고생한 사람들을 논상하였는데, 개지추만이 누락되었다. 그는 어머니와 함께 금산(錦山) 속에 은거하고 있었는데, 한식일에 문공이 그를 산에서 나오게 하기 위하여 산에다 불을 질렀으나 끝내 나오지 않고 불타 죽었다. 春秋左傳 僖公 二十四
개상(介相) : 국빈(國賓)을 접대하는 부상(副相).
개석(介石) : 뜻을 굳게 지켜 상도(常道)를 따른다는 뜻. 개석은 지조가 돌과 단단함을 말한다. 周易 豫卦에 “지조가 돌보다 단단한지라도 하루가 다 안 가니 정길하다.”[介于石 不終日 貞吉] 하였는데, 이것은 뜻이 굳어 안일(安逸)에 빠지지 않고 하루가 안 되어 회복하기 때문에 길하다는 뜻이다.
개선(開先) : 신(神)이 무엇인가를 열어놓을 때는 그에 앞서 그 조짐을 미리 내놓는다는 것. 곧 용마(龍馬)가 팔괘(八卦)의 그림을 지고 하수(河水)에서 나온 일을 말함. 禮記 孔子閒居에 “성인이 장차 왕이 되려고 할 때는 신이 먼저 그 조짐을 내놓는다.”하였음.
개색(改色) : 올해 새 곡식이 나오면, 창에 저장했던 묵은 곡식을 팔고 새 곡식을 사들여서 바꾸던 일. ‘색갈이’라고도 함.
「개성석경(開成石經)」 : 당 문종(唐文宗) 태화(太和) 7년에 현도(玄度)가 칙명을 받고, 석경 자체(字體)를 정하여 9경과 「논어」․「이아」등 도합 1백 59권을 석각(石刻)하여 개성(開成) 2년에 완성하였으므로 「개성석경」이라 한다.
개세(蓋世) : 당대를 압도한다는 뜻. 史記 卷七 項羽本紀에 “힘은 산을 뽑고 기운은 당대를 압도하는데, 시기가 불리하니 추마(騅馬)도 아니 가네.[力拔山兮氣蓋世 時不利兮騅不逝]”하였음.
개시(開市) : 조선 시대 함경도와 평안도 국경 지대에 두어 곳을 지정해서 일정한 기일 내에 중국의 물화와 교역하는 것을 허가하던 일.
개악(祴樂) : 개하(祴夏)라는 악인데, 술취한 손님이 나갈 때 이 악을 울려서 실례하는 일이 없게 함.
개옥(改玉) : 패옥을 갈아 참. 즉, 반정(反正)의 비유. 「국어(國語)」에, “진문공(晉文公)이 청수(請隧)한 데 대해 왕(王)이 허락하지 않고, 선민(先民)의 말에, ‘찬옥을 고치면 행실도 고쳐야 한다.’ 하였으니, 그대로 해낼 수 있겠느냐.”는 말에서 나왔음.
개원(開元) : 지명(地名)임. 감숙현(甘肅縣) 구영하부(舊寧夏府)의 경계에 있음. 당(唐) 나라 때에 그곳에 기미주(羇縻州)를 설치하였음.
개자추(介子推) : 자(子)는 지(之)로도 쓰는데 모두 조사(助詞). 추(推)가 이름. 중국 춘추(春秋)대의 진(晉)나라 사람. 진 문공(晉文公)과 함께 19년간 망명하였다가 돌아온 뒤 문공에게 소외당하매 면산(緜山)에 숨어 살았는데, 뒤늦게 깨달은 문공이 그를 찾는 마지막 방법으로 산에 불을 질렀으나, 끝내 나오지 않고 타 죽었다. 옛 풍속에 이 달에 개자추가 불에 타 죽었으므로 신령이 불 피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여, 찬 음식을 먹는다는 일이 있음.
개지추(介之推) :⇒ 개자추
개정(介亭) : 홍점전(洪占銓)
개정삭(改正朔) : 왕이 처음 건국하면 연초(年初)와 월초(月初)를 고쳐 천하에 반포하여, 정삭(正朔)은 통치권(統治權)이 행하여지는 영역에서 사용된다.
개제(改題) : 봉사손(奉祀孫)이 죽었을 경우, 다음 봉사손의 대수(代數)에 맞추어 신주(神主)를 다시 쓰는 것.
개천(盖天) : 하늘이 지구를 덮어 가운데는 높고 네 병은 낮다는 논설.
개체(芥蔕) : 목구멍에 걸려서 기분이 상쾌하지 않거나 마음에 원혐이 생기는 것을 비유하여 쓰는 말임. 소식(蘇軾)의 시(詩)에, “온통 가슴 속의 불쾌를 씻어버린다.”[洗芥蔕胸]하였음.
개롱장(開壟匠) : 옛날, 은광(銀鑛)에서 장마가 진 뒤 갱내(坑內)에 물이 고였을 때 이 물을 퍼내기 위하여 후한 노임(勞賃)을 주고 고용되는 사람. 그들은 은 구덩이 옆에 지하도를 파고 들어가다가 은 구덩이에 비교적 가까워진 것을 알면 지하도 곁에 몸이 겨우 들어갈만한 또 하나의 구덩이를 파고 구덩이와 지하도를 막고 있는 흙을 힘껏 파낸다. 이때 구덩이를 자주 곁눈질해 가늠해 가면서 판다. 그러다가 물꼭지가 터져나올 듯하면 재빨리 옆의 구덩이로 뛰어들어간다. 물이 터져나오는 기세가 세찰 때에는 며칠씩 구덩이에게 굶으며 있다가 물이 다 빠진 뒤에 나오게 되는데, 이때 함몰되어 죽은 사람이 많다.
○ ……銀坑經霖而水積 則不可汲 故厚貲給人號開壟匠 於是坑傍穿地道入 而知近坑 則地道旁又穿一穴 可容身 復力穿隔坑之土 頻睥睨旁穴 水頭漰 而出 則始躍而入旁穴也 水出勢悍而不息數晝夜迺止 匠只飢坐也 地道口 其妻子彷徨焦心 待流屍之出也 幸不爲水所衝 乘水縮 然而出 復得得夸大其善穿地也 靑莊館全書卷五十 耳目口心書 三
개인(開印) : 인뒤웅이를 엶. 관인(官印)을 맡아 사무(事務)를 주장(主掌)하는 관원(官員)이 관아(官衙)에 나아가, 어제 또는 지난해에 집무(執務)를 마치고 인신(印信)을 간수하여 두었던 인궤(印櫃)를 열고 집무를 개시한다는 뜻
개풍한천(凱風寒泉) : 개풍은 「시경」 패풍(邶風) 중의 편명. 한천은 개풍 증 ‘원유한천’(爰有寒泉)의 구절에서 인용된 것인데, 이는 자식들이 어버이를 잘못 섬기는 것을 자책한 시다.
개화(改火) : 불을 새롭게 하는 뜻으로 대궐 안에서 나무를 서로 비비어 신화(新火)를 내어 구화(舊火)를 고치는 의식. 병조에서 춘․하․추․동의 4절과 늦여름의 토왕절에 1년에 5번 불을 만들었음.
객사(客舍) : 객사는 각 고을에 있는 관사(館舍)로서 전패(殿牌)를 안치하고 초하루와 보름에 향망궐배(向望闕拜)를 행하는 한편 使臣의 숙소로도 사용하였다.
객성(客省) : 外賓을 안대하는 官書
객성범자미성(客星犯紫微星) : 엄군평이 장건에게 한 말이다. “어느날 저녁에 천문을 보니 당치 않은 별[客星]이 자미성(紫微星 옥황상제 있는 곳)에 범하였었는데 그 당치않은 별이 바로 당신이구려.”하고 말하였다 한다.
갱가(賡歌) : 연속하여 노래하는 것. 「시경」익직(益稷)편에 갱재가(𢉼載歌)란 말이 있음.
갱알후(羹頡侯) : 한 고조(漢高祖) 유방(柳房)이 그 형의 아들 신(信)을 봉한 벼슬. 고조가 즉위하기 이전에 일을 의논하기 위해 자주 손을 데리고 그 형의 집으로 갔다. 그러나 그 형수가 미워하여 국솥을 긁으니 그 소리가 알알하게 들림으로써 손이 떠나가곤 했는데 떠나간 뒤에 보면 국이 솥에 남아 있었다. 그 뒤에 고조가 즉위하여 다른 조카들은 다 땅을 봉해 주면서 신(信)은 봉하지 않았다. 고조의 아버지 태상황(太上皇)이 그 이유를 물은즉, 고조가 대답하기를, “잊은 것이 아니고 큰 형수가 어른답지 못했기 때문이라.” 하고는, 국솥을 긁을 때 알알하는 소리를 따라서 갱알후로 봉했다는 고사. 史記 楚元王世家
갱장(羹墻) : 사람을 심히 그리워한다는 뜻임. 갱장이란 문구는 옛날 요(堯)가 돌아간 뒤에 순(舜)이 3년 동안이나 앙모(仰慕)하여 앉아서는 요를 담에서 보고, 밥 먹을 때는 요를 국에서 보았다는 말이 있다. 後漢書
갱재(賡載) : 이어 화답한다는 뜻. 임금이 지은 시가(詩歌)에 화답하여 시가를 짓는 것 또는 그 시가. 書經益稷
갱힐후(羹頡侯) : ⇒ 요갱(轑羹)
거가사(車駕司) : 병부의 속사(屬司)이다. 역전(驛傳)․우부(郵符) 및 목마(牧馬)에 관한 정령(政令)을 관장하며, 다른 사(司)와 마찬가지로 낭중․원외랑․주사가 있다.
거거(車渠) : 보석. 서역(西域)에서 나는 칠보(七寶) 가운데 하나. 두보(杜甫)의 시에 “價重百車渠”라고 한 것에서 취한 것임.
거경(居卿) : 후한(後漢) 범식(范式)의 자. 여남(汝南) 장소(張邵)와 절친한 벗이었는데 장소가 병이 들어 죽은 뒤에 범식의 꿈에 나타나 “거경아, 나는 모일(某日)에 죽었다. 모시에 땅에 묻혀 영원히 황천에 돌아갈 것인데 그대가 나를 잊지 않았다면 와 주지 않겠는가.” 하였다. 범식은 꿈을 깨고 비탄에 잠겨 눈물을 흘리면서 달려갔다고 한다. 後漢書 卷八十一 范式傳
거경(居敬) : 거경은 거경궁리(居敬窮理)의 약칭인데, 주자학(朱子學) 수양(修養)의 안목(眼目)으로 한시도 쉬지 않고 심성(心省)하여 원리를 규명한다는 뜻이다.
거교(鋸橋) : 은주(殷紂)의 큰 곡식 창고가 있던 땅. 주무왕(周武王)의 주(紂)를 치고, 거교의 조[粟]을 꺼내어 은 나라의 주린 백성들을 진휼(賑恤)했다. 史記
거구(倨句) : 규(矩)의 긴쪽 한 변이 거이고, 직각으로 굽어서 짧은 쪽이 구임.
거국곡묘(去國哭墓) : ⇒ 안회자로지증언
거제(蘧蒢) : 추악한 병명(病名). 거저(蘧蒢)는 원래 죽석(竹席)의 이름인데, 그것으로 둥근 곳집[囷]을 만들면, 마치 종기가 나서 구부릴 수 없는 사람과 같다. 그러므로 병명을 한 것이다.
거려: 역말 집을 말함. 莊子 天運에 “인의(仁義)는 선생의 거려(遽廬)이다.”하였는데, 그 주에 “거려는 역말 집이다.”했다.
거령비희(巨靈贔屭) : 신(神)이 힘차게 산하(山河)를 만들었다는 뜻. 거령은 하신(河神)의 이름인데, 장형(張衡)의 서경부(西京賦)에 “거령이 힘차게 손바닥으로 높이 떠받들고 발바닥으로 멀리 차버려 하수를 흐르게 하였다.”[巨靈贔屭高掌遠蹠 以流河曲] 한 것을 인용한 것이다.
거록(鉅鹿) : 지명. 항우(項羽)가 진(秦)나라 장감(章邯)의 군사를 격파한 곳.
거립(車笠) : 우의(友誼)가 두터운 것을 일컬음. 즉 옛 월 나라 풍속에 처음 남과 사귈 때 토단(土壇)을 쌓고, 개․닭을 잡아 제사지내면서 ‘거립(車笠)’이라는 말로 축원했다. 월요가(越謠歌)에 ‘그대는 수레를 타고 나는 입(笠)을 쓰고, 다른 날 만나면 수레에서 내려 서로 읍하고, 그대는 우산[등(簦)]을 쓰고 나는 말을 타고, 다른 날 다시 만나면 그대를 위해 말에서 내리겠네.’ 했다.
거마목(拒馬木) : 거마(拒馬)는 글자 그대로 하면 말[馬]을 막는다는 말이 된다. 옛날 적군을 방어하는 시설의 일부를 말하는 것인데, 나무를 앞에 차(叉)자 형으로 세운 것.
거마차자(拒馬叉子) : 귀인(貴人)의 문밖에 설치하여 말타고 들어오는 것을 금하는 것.
거마창(拒馬槍) : 전쟁에 쓰는 방수용(防守用) 병기. 요해지(要害地)에 두어서 적기(敵騎)의 진격을 막음.
거말(距末) : 고기(古器)의 이름. 「금석색(金石索)」에 상(商) 나라 거말도(距末圖)가 있음.
거벽(巨擘)․교초(翹楚) : 무리에서 뛰어난 자를 말함.
거복(莒僕) : 춘추 시대 거기자(莒紀子)의 태자. 기공이 거복을 낳고, 또 계타(季佗)를 낳았는데, 계타를 사랑하고 복을 내쳤으며, 또 궁중에서 무례한 짓을 많이 행하므로 복이 기공을 시해한 다음 보옥을 가지고 노(魯)로 망명하였다. 이 때 노의 대부 계문자(季文字)가 사람을 시켜 그의 입국을 막았는데, 본문의 말이 그것이다.左傳 成公 十六
거빈(去邠) : 이 말은 주 태왕(周太王) 즉 고공단보(古公亶父)가 이 빈(豳) 땅에 있을 때 적인(狄人)에게 했던 일을 말함. 즉 주 태왕이 빈 땅에서 선정(善政)을 하고 있을 때 적인이 쳐들어와서 재물을 구하므로 그대로 주었더니, 뒤에 다시 와서 땅과 백성을 요구하므로 백성들이 노하여 싸울 것을 주장하매 태왕이 “백성이 있어 임금을 세우는 것은 백성을 이롭게 하기 위함인데, 이제 적인이 와서 싸우는 것은 백성과 땅 때문이라, 백성이야 내 밑에 있으나 그 밑에 있으나 상관없는 것이 아닌가. 백성들이 나를 위해 싸우고자 하지만, 나는 남을 죽이면서까지 싸울 수가 없다.”하고, 이에 빈을 버리고 기산 아래[岐下]로 옮겨갔다는 고사를 말한다. 史記 周本紀 第四
거빈(去邠) : ⇒ 태왕사적(太王事狄)
거사(去思) : 사민(士民)이 장관(長官)의 덕정(德政) 있는 자에 대하여 그가 간 뒤에도 항상 생각한다는 뜻임. 한서(漢書)에 “왕성․황패들은 관에 있으면 백성이 부유하고 관을 떠나면 백성이 생각한다.”[王成 黃覇等 所居民富 所去見思]하였음.
거사비(去思碑) : 전임 지방 장관(地方長官)이 간 후에 그 선정을 추모하여 백성들이 세우는 비.
거실(居室) : ⇒ 수주(數珠)
거애(擧哀) ; 초상이 났을 때 초혼(招魂)을 하고 나서 슬피 우는 것.
거오(巨鰲) : 바다 위의 삼신산(三神山)을 큰 거북이 등에 지고 있다 함.
거원(遽瑗) : 전국 때 위(衛)의 현인으로서, 나이 50이 되어서 49세까지의 잘못을 깨달았다.
거원지비(遽瑗之非) : 춘추(春秋) 시대 거원(遽瑗)의 나이 50세에 49년의 그른 것을 알았다 한다.
거인(擧人) : 지방에서 국가 고시에 합격하고 중앙 고시에 응할 자격을 지닌 선비.
거자(擧子) : 과거 보는 선비.
거전(車戰) : ⇒ 방관(房琯)
거주(擧主) : 천거한 사람. 사람을 천거했다가 그 추천당한 사람에게 과오가 있을 경우 천거한 사람도 죄에 걸림
거주연좌(擧主連坐) : 천거(薦擧)한 사람도 벌을 받는 것. 거인(擧人: 천거된 사람)을 벼슬에 제수할 때는 그 고신(告身)에 천거된 사유와 천거한 사람의 성명을 기록해 두었다가, 후일 그 행적이 천거한 내용과 같지 않을 경우에는, 본인은 물론 천거한 사람도 벌을 받는다. 그러나 거인이 변절하거나 법을 어길 염려가 있으면 천거한 사람은 그 잘못 천거한 실수를 자수(自首)하고 그 죄를 면한다.宋史 選擧志
거직녀(去織女) : ⇒ 발원규(拔園葵)
거치(擧觶) : ⇒ 양치(揚觶)
거협과 탐낭 : 상자를 열고 주머니를 더듬는 도둑을 말함. 장자 胠篋
건(健) : 「주역(乾卦)」에, “천행이 건하니, 군자가 이것으로 자강하여 쉬지 않는다.”[天行健 君子以 自疆不息]하였다. 건(健)은 곧 쉬지 않은 강건(剛健)함을 뜻한다.
건거록(巾車錄) : ⇒ 간양록(看羊錄)
건괘상구(乾卦上九) : 건괘라 함은 ☷를 가키킨 것인데, 易經의 64괘 중에서 제일 첫머리에 나오는 괘로서 가장 으뜸되는 괘이다. 上九라 함은 제일 윗자리에 있는 陽爻를 말한다. 원래 六畫卦는 6개의 효가 모여 한 괘를 구성한다. 그것을 아래에서부터 初爻․2효․3효․4효․5효․上爻라 부르며, 또 陽爻를 9, 陰爻를 6이라 한다. 따라서 상구는 상효가 양효인 경우이다. 양효는 强剛한 것을 상징하고, 음효는 유순한 것을 상징한다. 그런데 건괘는 6효가 전부 양효만으로 구성되어서 가장 강강한 것을 상징하는 것인데, 그것의 최상의 위치인 상효가 양효인 건괘의 상구는 가장 상승의 극한 상태, 강성의 절정을 의미한다. 사람 특히 군왕은 이러한 최고의 상태에서 근신하고 두려워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건괵(巾幗) : 비겁한 대장부를 조롱하는 말. 촉한(蜀漢)의 제갈량이 진 선제(晋宣帝)와 대적하고 있을 때 아무리 싸움을 걸어도 응하지 않으므로 일부러 부인이 쓰는 물건[巾幗婦人之飾]하였다. 晋書 宜帝紀
건극(建極) : 인륜(人倫)의 표준을 세워서 여러 백성에게 모범이 되게 함. 「서경(書經)」 주서(周書) 홍범(洪範) 편에 보임.
건량주방(乾糧廚旁) : 중국에 가는 사신이 가지고 간 말린 식량으로 차린 음식.
건몰(乾沒) : 횡령(橫領)함. 타인의 위탁한 물건을 횡취(橫取)함.
건문제(建文帝) : 건문은 명 혜제(明惠帝)의 연호. 곧 혜제를 이름.
건안(建安) : 동한(東漢) 마지막 황제인 헌제(獻帝)의 연호. 이때 조자건(曹子建) 부자와 업중(鄴中)의 일곱 사람들의 시가 유명했으므로 건안체(建安體)라는 말까지 생겼음. 滄浪詩話 詩體
건안다(建安茶) : 양만리(楊萬里)의 시에 “傳呼惠山水 來瀹建安茶”라 하였음.
건영수(建瓴水) : 영(瓴)은 암기와이니 영수(瓴水)는 암기와[지붕이라고도 한다.]에서 흘러 내리는 물로, 그 기세를 막을 수 없다는 뜻. 건영수라고 하면 세워 놓은 암기와에서 쏟아지는 물이니 기세가 더욱 강하다는 뜻이다.
건유 : 方言 一에 “죽이고 도적질함을 건유라 한다. 진(秦), 진(晋), 송(宋), 위(衛)의 사이에서 죽이는 것을 유라 하고 도적질을 건이라 한다.”하였음.
건인(建寅) : 인월(寅月:음력 정월)을 세수(歲首)로 한 하 나라 정월(正月).
건자(建子) : 하(夏)가 인월(寅月)로 정월을 삼아 인통(人統)이 되고 은(殷)이 축월(丑月)로 정월을 삼아 지통(地統)이 된 데 대하여, 주(周)는 자월(子月)로 정월을 삼아 천통(天統)이 되었다는 것.
건정(建正) : 건자(建子)․건축(建丑)․건해(建亥) 등으로 정월을 삼음.
건정질문(建正質文) : 세수(歲首)의 정월(正月)을 세우고 정사는 질(質)과 문(文)으로 한다는 것. 즉 하상충(夏尙忠), 은상질(殷尙質), 주상문(周尙文)을 의미함.
건주삼위(建州三衛) : 위는 벼슬 이름. 명 성조(明成祖) 때 설치. 옛날 여진족(女眞族)이 살던 일대의 만주(滿洲) 지역. 본래의 건주위(建州衛)에 좌위(左衛)와 우위(優位)를 증설하여 삼위라 했는데, 청조(淸朝)의 발상지(發祥地)이기도 함.
건주여진(建州女眞) : 명 성조(明成祖) 때에 만주 길림진(吉林眞) 일대에 건주위(建州衛)을 설치했으니, 여기에 살던 여진족을 건주여진이라고 불렀음.
건주위(建州衛) : 명나라 태조가 만주의 여진족을 회유하기 위하여 1403년 이조 태종 34년에 건주위를 설치하고, 하루아[火兒哈]의 추장이던 아하치[阿哈赤]을 건주위의 지휘사로 삼았다. 이 건주위 여진은 이조에 대하여 조공을 바치면서 하친을 원했으므로 이조에서도 회유책을 썼으나, 그들의 침략이 잦아지자 이에 대비하여 사군(四郡)과 육진(六鎭)을 설치했다.
건착도(乾鑿度) : 당(唐) 이전의 경문(經文)을 수록하여 설명한 2권의 책자로, 역위(易緯)의 하나이며 정현(鄭玄)이 주석하였다.
건초(乾初) : 「주역(周易)」의 건괘(乾卦)에 있는 초구(初九)의 효사(爻辭)를 이름인데, 그 효사는, “물속에 잠겨 있는 용(龍)이니 쓰지 말 것이다.”[潛龍勿用]이다.
건황극(建皇極) : 「서경(書經)」 홍범편 구주(九疇) 오황극에 있는 말로, 임금이 백성을 다스리되 모든 표준을 세우기를 중앙 황극(皇極)에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즉 임금은 모든 정무를 오직 중용으로 지공무사해야 하며, 어느 한쪽에 치우쳐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인도(人道)의 표상(表象)을 말한다.
걸견폐요(桀犬吠堯, 걸(桀)의 개가 요(堯)를 보고 짖는 것) : 요는 성인이요 걸은 악인이나 걸의 집 개는 요를 보고는 짖는 다는 말이다.
걸교(乞巧) : 荊楚歲時記에 “칠석날에는 부인이 채색실을 맺어 칠공침(七共鍼)에 꿰어 놓은 다음 오이 과일을 뜨락에 차려놓고 직녀에게 걸교를 하는데 거미새끼가 오이 위에 내려와 그물을 치면 소원대로 된다고 좋아했다. ”하였음.
걸교문(乞巧文) : 칠석날 밤에 부녀자가 견우․직녀 두 별에게 길쌈과 바느질 솜씨가 좋아지기를 비는 것을 서술한 문장임.
걸구지변(桀狗之辨) : 괴생은 초한 시대(楚漢時代)의 괴철(蒯徹)이라 하는 웅변가인데, 그는 그때의 한나라의 대장인 제왕 한신(齊王韓信)을 달래어서 한나라와 분리하여, 독립하기를 권하였으나, 한신이 듣지 아니하였다. 그후에 한신이 실각하여 한나라 임금에게 죽음을 당한 뒤에 한신을 반역하라고 꾀었다고 괴철을 체포하여다가 심문할 적에 괴철의 말이,“걸주의 개가 요순을 보고도 짖는 것은 요순이 착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주인이 아니기 때문인데, 나도 내 주인이 아니라서 그랬다. 나도 내 주인인 한신을 위하여 충실하게 할 뿐이었다.”고 답변하여 살려주게 되었다.
걸미서(乞米書, 안진경의 걸미서) : 당 나라 안 진경의 걸미서(乞米書)가 있는데, 그 내용인즉 “생계가 졸하여 온 집이 죽을 먹고 지내는데 이미 몇 달을 지내고 보니 지금은 그것마저 떨어졌다.”라고 하였음.
걸익(桀溺) :⇒ 장저(長沮)
걸해치사(乞骸致仕) : 벼슬하던 사람이 물러가려고 할 때에는 임금에게 “骸骨을 고향에 돌아가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하는 것이다. 致仕는 옛날 의 제도인데, 벼슬하던 사람이 70세가 되면 벼슬을 바치고 돌아가는 것이다.
검로지기(黔驢之技) : 겉치레뿐이고 실속이 보잘 것 없는 솜씨. 금주(黔州)에는 노새[驢]가 없는데 그곳에 어떤 사람이 노새를 끌고 갔을 때 범이 보고 노새의 우는 소리가 크므로 두려워하였는데, 노새의 발길에 채어 보니 노새의 힘이 보잘 것 없는 것을 알고 마침내 노새를 잡아 먹었다는 고사. 柳宗元 三戒
검록성경(검錄聖經) : 검록( 錄)은 칼에 대한 해설서, 성경은 天文에 관한 기록서.
검루(黔婁) : 춘추 시대 제(齊)의 어진 사람. 제왕이 정승으로 맞이하려 했으나 나가지 않았음. 집이 몹시 가난해서 죽은 후에 염습(斂襲)할 이불이 없다고 함.
검모잠(劒牟岑) : 고구려의 애국자, 벼슬은 대형(大兄). 보장왕 27년(688)에 나라가 망하자 신라 문무왕 10년(670)에 유민을 규합하여 당병을 물리치고 신라로 가는 도중, 보장왕의 외손자 안승(安勝)을 만나 왕으로 세웠었는데, 뒤에 알력이 생겨 안승에게 피살되었다. 三國史記
검지(劍池) : 강소성 오현 호구한에 있음.
겁구아(怯仇兒) : 몽고의 풍속으로, 머리 꼭대기에서 이마까지 방형(方形)으로 깎고 한가운데의 머리를 남겨 두는 것.
○ 몽고속 제정지액방기형 유발기중 위지겁구아 東史綱目 剃十一下 甲戌 元宗十五年
겁련구(怯憐口) : 원(元) 나라 말로 사속인(私屬人)을 말한다. 충렬왕(忠烈王)의 비(妃) 제국공주(齊國公主)가 올 때 많은 사속인을 데리고 왔는데, 고려에서 성명(姓名)을 하사받고 귀하게 된 자가 많았다.
○ 賜公主怯憐口等姓名 怯憐口 華言 私屬人也東史綱目 十二上 忠烈王 三年
겁진(劫塵) : 천지가 한 번 생겼다가 한 번 없어지는 것을 불교에서는 겁(劫)이라 하고, 선가(仙家)에서는 진(塵)이라 한다.
겁화동(劫火洞) : 세계가 멸망해 없어지는 때에 일어난다는 큰 불이 났던 곳.
게(偈) : 부처의 공덕이나 교리를 찬미하는 노래나 글귀. 4구로 되어 경의 끝에 붙는다.
게려(揭厲) : 「시경」패풍(邶風) 포유고엽장(匏有苦葉章)에 “깊거든 옷입는 대로 건너고, 얕거든 옷을 걷고 건널 것이다.”[深則厲 淺則揭]를 약해서 인용한 것이다. 「시경」주(註)에 “옷 입은 대로 건너는 것을 여, 옷 걷고 건너는 것을 게라한다.”[以衣而涉曰厲 蹇衣而涉曰揭]라고 하였음.
게첩(揭帖) : 내어 걸어 붙이는 것이나 또는 그 문서(文書)를 말한다.
게해사(揭●斯) : 원(元) 나라 성종(成宗)․순제(順帝) 때의 문신. 자는 만석(曼碩), 시호는 문안(文安). 「경세대전(經世大典)」․「요사(遼史)」․「금사(金史)」․「송사(宋史)」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문학에 뛰어나서 우집(虞集)․양재(楊載)․범형(范 )과 함께 원대(元代) 사대가(四大家)라 불린다. 저서로는 「문안집(文安集)」이 있다. 元史 卷一百八十一
격구(擊毬) : 말을 타고 달리면서 막대[枚]로 공을 쳐서 구문(毬門)에 넣는 무예.
격기(格氣) : 해의 위 또는 아래에 가로놓인 듯이 나타나는 푸르고 붉은 운기(雲氣)
○ 日下有格氣-氣之靑赤者 謂之格氣明宗實錄 二十年 四月 壬申
격물치치편:「대학(大學)」을 말함. 대학 팔조목에 격물치지가 가장 앞에 있는 조목으로 사물의 이치를 연구해서 지식을 지극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격사홀(擊蛇笏) : 뱀을 쳐 죽인 홀. 영주(寧州) 천경관(天慶觀)에 큰 뱀이 나타났는데 사람들이 용이라 하여 가서 전배(奠拜)를 드리니 공도보(孔道輔)가 요물(妖物)이라 하여 홀(笏)로 쳐서 죽였으므로 이렇게 부름. 석개(石介)의 격사홀명(擊蛇笏銘)이 있다. 宋史 二九七 孔道輔傳․古文眞寶
격산(鬲山) : 서로 격절(隔絶)된 산을 말함.
격옹도(擊瓮圖) : 중국 송(宋)나라의 유명한 정치가 사마광(司馬光)이 어려서 여러 아이들과 같이 놀다가 물이 가득한 큰 물독에 한 아이가 빠졌으므로 여러 아이들은 모두 도망치는데, 사마광은 가서 큰 돌을 가져다가 그 독을 깨어서 물이 쏱아지니 그 아이가 살았다 한다. 후세에서 그것을 그림으로 그렸으니 그것을 격옹도라 한다.
격집(擊楫) : 진(晋)나라 조적(祖逖)이 북벌(北伐)할 때에 양자강을 건너며 돛대를 치면서 맹세하기를, “중원(中原)을 평정하지 못하고 다시 건넌다면 이 강과 같으리라.”하였다. 그는 드디어 석륵을 무찌르고 황하 이남의 땅을 회복하였다. 인하여 이 말은 천하를 평정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격팔 상생(隔八相生) : 율관(律管)이 서로 생하는 순서. 1률(律)과 1려(呂)가 순차로 배열되어 돌아가면서 각기 시초가 되는 것인데, 즉 황종(黃鍾) 8위를 마주 건너서 임종(林鍾)이 되는 유이다.
견(繭) : 길을 걸어서 발이 부르터 누에고치처럼 된다는 말.
견거지쟁(牽裾之諍) : 삼국 시대(三國時代) 위 문제(魏文帝) 때 사람 신비(辛毗)가 문제를 간한 고사. 문제가 기주(冀州)의 사가(士家) 10만 호를 하남(河南)으로 옮기려 하였다. 그때 마침 황충[蝗]의 피해로 흉년이 들어 신하들이 불가하다고 간하였으나 문제는 듣지않고 내전으로 들어가려 하였다. 그러자 신비는 문제의 옷자락을 붙잡고 들어가지 못하게 하여 절반만 옮기게 하였다. 三國志 魏書 卷二十五 辛毗傳
견분(蠲忿) : 古今注에 “合歡蠹忿 萱草無憂”가 있음.
견빙지계(堅氷之戒) : 화단(禍端)을 미리 막으라는 뜻. 견빙은 굳은 얼음을 말한다. 周易 坤卦 初六爻辭에 “서리를 밝으면 굳은 얼음이 이른다.”[覆霜堅氷至] 하였는데, 곤괘의 초륙효는 맨 아래에 있어서 아직은 미미하지만 미구에 형세가 커짐을 말하는 것으로, 초륙효를 소인(小人)에 비유하여 이들의 세력이 점차 커지면 서리가 얼음이 되듯 막을 수 없으니 미리미리 경계하여 제거하여야 한다는 뜻이다.
견사(繭絲) : 견사(繭絲)는 백성에게 세금 받기를 마치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듯이 끝까지 한다는 말임. 보장(保障)은 백성을 사랑하고 잘 살도록하여 국가의 보장(保障)이 됨을 말한다. 「類選」 卷四下 人事篇 治道門.
견수(肩隨) : 나이가 많은 사람과 길을 갈 때, 어깨를 나란히 해서 가되 조금 뒤로 물러서서 가는 것을 말한다.
견아(犬牙) : 옛날에 지방을 나눌 때에 이 군(郡)과 저 군과의 경계를 평행(平行)으로 하지 않고 개의 어금니[犬牙]처럼 서로 교착(交錯)하게 되었다.
견아상제(犬牙相制) : 개의 이빨처럼 서로 엇맞아 견제하는 것. 한 고제(漢高帝)가 자제에게 땅을 봉하되 견아(犬牙)가 서로 제어하듯 하였다 한다. 史記 孝文紀
견조이사(見棗而思) : 효도를 말하는 것으로 증삼(曾參)의 아버지 증석(曾晳)이 대추[羊棗]를 즐겼는데, 증삼은 증석이 죽은 뒤 어버이를 생각하여 차마 대추를 먹지 못하였다고 한다.孟子 盡心章 下
견지(繭紙) : 품질이 질기고 아름다운 옛날 우리 나라 종이의 한 가지.
견포도이사(見葡萄而思) : 당(唐) 나라 진숙달(陳叔達)의 어머니가 병들어 목이 마를 때면 포도를 먹고 싶어하였는데, 진 숙달이 임금이 내린 음식상에 놓인 포도를 먹지 않으므로, 당 고조(唐高祖)가 그 까닭을 듣고 곧 포도를 주었다고 한다.
견마지치(犬馬之齒) : 자기의 연령을 겸사(謙辭)로 말할 때에 견마(犬馬)의 나이라 칭하는데, 신하가 임금에게 많이 쓰는 말이다.
견․회․구․혁(畎澮溝洫) : 밭과 밭 사이에 있는 도랑. 묘 사이에 있는 너비 1척 깊이 1척의 도랑이 견(畎), 동(同: 사방 백 리) 사이에 있는 너비 두 길[尋]의 도랑이 회, 정(井) 사이에 있는 너비 4척 깊이 4척의 도랑이 구, 성(成: 사방 십리) 사이에 있는 너비 8척 깊이 8척의 도랑이 혁이다. 周禮 冬官 考工記 匠人
결(玦) : 결(玦)은 둥근 구슬[環]에 한 쪽이 트인 것을 말한다. 옛날에 신하가 죄를 지으면 변경을 방치해 놓고, 3년 동안 움직이지 못하게 하다가 환(環)을 보내면 부른다는 뜻이고, 결을 보내면 쫒는다는 뜻이었다 한다.
결미(結米) : 논밭의 조세조로 바치는 쌀.
결속색(結束色) : 승여(乘輿)에 관한 사무를 맡은 계원. 즉 승여사.
결습(決拾) : 활을 쏠 때는 쓰는 제구. 결(決)은 짐승 뼈로 만든 것으로서 오른쪽 엄지손가락에 끼워서 활줄을 당기는 깍지. 습(拾)은 가죽으로 된 것인데 왼팔에 걸어서 활줄이 옷에 닿는 것을 막는 것임.
결영(結纓) : 자로가 전사(戰死)할 때에 적의 창에 맞아 갓끈이 끊어졌으므로 다시 매고 죽었다고 한다.
결옥 치속(決獄治粟) : 「사기(史記)」 진승상세가(陳丞相世家)에, “문제(文帝)가 우승상(右丞相) 발(勃)에게 ‘한 해에 결옥이 얼마며, 출납되는 전곡(錢穀)은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는데 모두 몰라서 땀만 흘리고 있자 진 평이 대답하기를, ‘폐하(陛下)께서 결옥을 알려면 정위(廷尉)에게 묻고 전곡을 알려면 치속내사(治粟內史)에게 물어야 합니다.”라고 한 데서 보임.
결초보은(結草報恩) : 춘추(春秋) 시대에 晋 나라 魏武子가 병이 들어서 아들 魏顆에게 말하기를, “내가 죽거든 내 妾을 다른 데로 改嫁시켜 주라.”하더니, 병이 위독하여 죽을 임시에는 다시 遺言하기를, “내가 죽거든 妾을 나와 함께 산채로 묻어라”하였다. 아버지가 죽은 뒤에 魏顆는 말하기를, “첩을 改嫁시키라는 것은 아버지의 정신이 있을 때의 명령이요, 첩을 같이 묻으라는 것은 아버지의 마지막에 정신이 없을 때의 명령이니, 나는 먼저의 명령을 따르겠다.”하고 첩을 개가 시켰다. 그 뒤에 魏顆가 秦나라 장수 杜回와 싸울 때에, 한 노인이 풀밭의 풀을 맺어[結草] 秦 나라 장수 杜回가 그 맺은 풀 때문에 자빠져서 魏顆에게 사로잡혔다. 그날 밤 위과의 꿈에 노인이 와서 말하기를, “나는 네가 개가시킨 첩의 아들이다. 네가 나의 딸을 죽여서 묻지 않고 개가시킨 그 은혜를 갚기 위하여 풀밭에 풀을 맺어 秦나라 장수를 사로잡게 한 것이다.”하였다.
결초옹(結草翁) : 죽은 뒤에도 꼭 은혜를 갚는다는 뜻. 진(晋)의 대부(大夫) 위 무자(魏武子)가 병들자 그 아들 과(顆)를 불러 말하기를 ‘내가 죽으면 첩(妾)을 시집보내라.’ 하더니, 병이 위독해지자 과에게 다시 이르기를 ‘순장(殉葬)하라’ 하였으나, 과가 첩을 다른 데로 시집보냈다. 뒤에 진(秦)의 용사 두회(杜回)와 싸울 때, 어떤 노인이 풀을 묶어 회를 쓰러뜨렸으므로 회를 사로잡았다. 과의 꿈에 그 노인이 나타나 ‘나는 첩의 아비로서 그대의 은혜를 갚았다.’고 한 고사(故事). 左傳 宣公十五年
결함(結銜) : 외국에 사행을 보낼 때 임시로 품계를 올려 주던 일. 예컨대 정 2품을 종 1품에 결함하고, 정 5품은 정 4품으로 결함하는 것이 그것이다.
○ 正二品 結銜從一品 正五品 結銜正四品 通文館志 事大 正三品 結銜從二品 正五品 結銜正四品 萬機要覽 財用編 燕使 (이정섭)
겸관(兼官) : 어느 고을에 수령(守令)이 결원(缺員)되어 미처 후임자가 오기 전에 고을의 수령이 겸직하는 것을 겸관(兼官)이라 한다.
겸대(兼臺) : 다른 관직으로 대관을 겸한 것.
「겸명서(兼明書)」 : 오대(五代) 때 구광정(邱光庭)이 찬(撰) 한 고증(考證) 문헌으로 먼저 제서(諸書)를 총론하고, 다음 오경(五經)과 「논어」․「맹자」․「효경」을 논하였으며, 다음, 잡설(雜說)을 논하고 다음 자서(字書)를 논하여 12개 부문으로 나눈 것이 모두 1백 20조(條)가 되는데 모두 증거를 대고 자세히 변증하였음. 四庫全書總目提要 子婦 雜家類
겸선: 「孟子 盡心上」의 “궁하면 홀로 그 자신을 닦아 선하게 하고 현달하면 천하 사람을 다 선으로 돌아오게 한다.[窮則獨善其身 達則兼善天下]”에서 나온 것임.
겸습독사(兼習讀事) : 이조 때 훈련원(訓鍊院)의 종 9품의 무관직.
겸애(兼愛) : 겸애(兼愛)는 墨子의 思想인데, 제몸 제집 제나라만을 사랑하지 말고, 다른 사람 다른 집 다른 나라도 겸하여 사랑한다는 뜻으로, 길가는 사람을 부모처럼 보라 하였는데, 유교에서는 이것을 반대하여, “모든 사람을 차별이 없이 사랑한다면, 끝에 가서는 부모를 길 가는 사람처럼 보게 된다.”하였다.
겸제(箝制) : 겸(箝)은 재갈 먹인다는 말이니, 원래 말[馬]에 쓰는 말인데 사람도 어떤 압력을 주어 말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겸재라고 말한다.
경(更) : 과문(科文)의 고시(考試) 등급의 하나인데, 차하(次下)의 다음임.
경(頃) : 대개 백보(百步)가 1묘가 되고 백묘가 1頃이 된다.
경각화(頃刻花) : 당(唐) 나라 때의 대문장가 한 퇴지(韓退之)의 조카로 한상(韓湘)이란 사람이 있었다. 하루는 퇴지가 상에게 시(詩)를 지으라고 했더니, 그는 “준순주를 빚을 줄 알고, 경각화를 피울 수 있다.”[解造逡巡酒 能開頃刻花]하고는 이어 흙을 모아서 분(盆)으로 덮어 둔지 얼마 안 되어 다시 그 분을 들어올리자, 어린 모란 두 송이가 피어 있었다 한다. 太平廣記, 詩人玉屑 卷二十 方外
경개(景盖) : 길가에서 서로 만나 수레를 나란히 몰고 가면서 대화를 나누자니 두 일산이 서로 맞대어 아래로 기울어진다는 뜻임. 「가어(家語)」에, “공자가 섬(剡)땅에 가다가 길에서 정자(程子)를 만나 경개(傾盖)하고 말했다.”하였음. 그래서 후인이 처음 만난 것을 들어 이름.
경거보(瓊琚報) : 「시경(詩經)」에, “나에게 목과(木瓜)를 던져 주기에 아름다운 옥[瓊琚]으로써 갚는다.”하였음. 여기서는 일본 중의 시를 옥에 비한 것임.
경계(經界) : 맹자(孟子)의 말 : 「맹자」 등문공상(滕文公上)에 “대저 어진 정사는 반드시 경계를 바로 하는 데서부터 시작하니, 경계가 바르지 못하면 정지(井地)가 고르지 못하다.”하였다.
경계지난(庚癸之亂) : 고려 의종(毅宗) 24년, 정중부(鄭仲夫)․이의방(李義方) 등이 문신(文臣)들을 많이 죽이고 왕과 태자를 쫒아낸 경인년(庚寅年)의 난과 명종(明宗) 3년, 김보당(金甫當)이 전왕(前王) 의종을 다시 세우려다 실패하여 문신들이 크게 화를 당한 사건.
경계추배법(經界推排法) : 송대에 전세(田稅)를 개정하던 법. 전묘(田畝)와 세액(稅額)을 조사하고 도적(圖籍)에다 기재해서 백성에게 일정한 재산이 있고 재산에 일정한 세액이 있으며, 세액은 확정된 도적이 있게 하였다.
경고(瓊膏) : ⇒ 아간(牙簡)
경공언선 형혹퇴사(景公言善熒惑退舍) : 형혹성은 화성(火星)의 별명으로서 이 별이 나타나면 큰 병란 등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난다고 한다. 춘추 시대 송(宋)의 분야에 형혹성이 나타나 임금 경공(景公)이 이를 근심하자, 사성 자위(司星子韋)가 그 재앙을 짐승이나 백성, 또는 연세(年歲)에 옮길 수 있다고 했다. 경공은, ‘정승은 나의 팔다리고, 백성은 내가 의지하는 바이며, 연세는 흉년이 들면 백성이 곤궁해지니 옮길 수 없다.’고 했다. 그리하자 자위는 경공이 ‘임금다운 말 세마디를 했으니 하늘이 반드시 감동할 것이다.’고 하였는데, 과연 형혹성이 1도(度)를 옮겨갔다 한다.十八史略 宋紀
경과(經科) : 고려 때의 과거(科擧)의 한 과목. 「상서(商書)」․「주역」․「모시(毛詩)」․「춘추」․「예기」등으로 시험 보이는데, 원래는 제술과(製述科)와 동격(同格)이었으나 뒤에 차츰 떨어져서 제술과에 미치지 못하게 되었다. 「類選」 卷四上 人事篇五治道門二.
경관(京官) : 서울 안에 있는 각 관직(官職)과 개성(開城)․강화(江華)․수원(水原)․광주(廣州)의 유수(留守)
경구보(瓊玖報) : 「시경(詩經)」에, “나에게 목리(木李)를 던져 주는데 옥[瓊玖]으로써 보답한다.”는 글귀가 있음.
경궁 요대(瓊宮瑤臺) : 경궁 요대는 하(夏)의 걸왕(桀王)과 은(殷)의 주왕(周王)이 옥으로 만든 궁전(宮殿)과 누대이고, 아방궁(阿房宮)과 만리장성은 진 시황이 쌓은 궁전과 성으로, 모두 백성의 재력을 피폐시켜 만들었다가 패망을 초래하였다.
경권(經權) : 경(經)은 정상적인 것이요, 권(權)은 임시로 변통하는 것인데, 예를 들면 수숙(嫂叔) 간에 예의를 차리는 것은 경이요, 형수나 제수가 물에 빠졌을 때에 시숙(時叔)이 손으로 건져내는 것은 권이다. 여기에서는 임금과 대비가 딴 궁에 별거하는 것을 권이라 하였다.
경규(傾葵) : 해바라기가 해에 따라서 기울어짐과 같이 신하가 마음을 기울여 군왕을 사모하는 것을 가리킴. 이 대문은 손 승종이 전원으로 걸귀(乞歸)한 것을 말함.
경기전(慶基殿) : 태조의 영정(影幀)을 안치(安置)한 곳.
경덕궁(慶德宮) : 경희궁(慶熙宮)의 초명(初名). 영조 36년(1760)에 영조가 경덕궁의 이름이 원종(元宗)의 시호 경덕(敬德)과 음이 같다고 해서 고치기를 명하여 경희궁으로 됨.
○ 慶熙宮 初名慶德 庚辰 英宗敎以與章陵諡號同名 凡殿門號 文任擬望 宮號則大臣館閣堂上 會賓廳擬入 以昌化․昌腹․慶熙擬入 以慶熙落點 鄭元容 著 袖香編 卷一
경덕재(經德齋) : 고려 예종(睿宗) 4년(1109)에 국학(國學)에 베푼 7재(齋) 중의 하나로 모시(毛詩)를 전공하던 곳이다.
경도(競渡) : 배를 타고 서로 빨리 건너가리를 다투는 노래. 초(楚)나라 굴원(屈原)이 멱라수(汨羅水)에 빠져 죽은 후, 모두 그를 슬퍼하여 그가 죽은 단오날 이 경도라는 노래를 부르면서 그의 영혼을 위로했다는 고사가 있음.
경동도(京東道) : 송대(宋代)의 변경(汴京)에서부터 산동성(山東省)․하남성(河南省)까지의 전역을 가리킨 것이다.
경력(經歷) : 명대에는 중군․좌군․우군․후군의 다섯 도독부(都督府)가 있고 각 도독부에는 경력사가 있으며, 경력은 종5품의 관명이며 군사의 일을 관장하였다. 明史 職官志
경렴당(景濂堂) : 경렴당(景濂堂)은 중국 송나라의 선비 주돈이(周敦頤)가 강서성 염계(濂溪) 사람이므로 주돈이를 염계라고 부른다. 여기 경렴이란 말은 염계 즉 주돈이를 사모한다는 말이니, 그는 일찍이 애련설(愛蓮說)을 지어서 연꽃을 무척 찬양하였다.
경례(經禮) :⇒ 곡례(曲禮)
경루(瓊樓) : 소동파(蘇東坡)가 귀양가 있으면서 지은 수조사(水調詞)에, “다만 경루 옥우(瓊樓玉宇)에 추위가 견디지 못할까 걱정이 된다.”하였는데, 궁녀(宮女)가 그 노래를 부르니, 임금이 듣고, “소식(蘇軾)이 끝내 임금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구나”하였다.
경리(經理) : 우리 나라에 구원하러 온 中國 將帥의 職名
경방(京房) : 漢 나라 元帝 때의 易學者인데 점치는 방법과 재변의 徵驗을 설명한 역전을 지었다.
경방역전(京房易傳) : 경방(京房)의 「역전(역전)」 : 한(漢) 나라 사람 경방이 「주역(周易)」이 이치를 부연하여 재이변괴(災異變怪)를 적은 책.
경병(競病) : 어려운 운자(韻字)의 시. 남조(南朝)의 양조(梁曺) 경종(景宗)이 위사(魏師)를 이기고 돌아와 잔치하며 시를 지을 새 운자가 경(競)․병(病) 두 자가 남았을 뿐이나 그가 곧 다음과 같이 읊어 무제(武帝)의 격찬을 받았다. “去時兒女悲, 歸時笳鼓競, 借向行路人, 何如霍去病”
경사(經師) : 경문을 읽는 도사.
경사몽복(京師蒙福) : ⇒ 하윤구리(河潤九里)
경산(京山) : 지금의 하북성(河北省) 북평시(北平市) 신무문(神武門)밖에 있음. 명말(明末) 의종황제(毅宗皇帝)가 이 곳에서 순사(殉死)한 곳임.
경삼아(傾三雅, 석 잔을 기울였는데) : ‘雅’는 술그릇을 말함. 梅谷偶筆에 “魏文帝典論 荊州牧劉表弟子以酒器命三爵 上曰伯雅 中曰仲雅 小曰季雅”
경상초(庚桑楚) : 경상 초는 노자(老子)의 제자로 노 나라에 있는 외루 산중에 거처하자 3년 동안 크게 풍년이 들어 외루 사람들이 그를 위해 제사하였다.莊子
경성(傾城) : 경도(傾到)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으로 진성(盡城)과 같은 말임. 文選의 손초(孫楚)시에 “傾城遠追送”의 구가 있음.
경성(經星) : 곧 항성(恒星)․삼원(三垣)․이십팔수(二十八宿)․오제(五帝)․헌원(軒轅) 및 북두(北斗) 등의 성좌.
경소(京所) : 각 지방에서 덕망이 높은 사람을 서울에 불러서 동향(同鄕) 사람끼리 묵게 하여 그 지방의 일을 주선시키고 의논하게 하던 회소(會所).
경수(涇水) : 강물 이름으로 하류에서 위수(渭水)와 합하는데, 경수는 흐리고 위수는 맑다.[涇濁渭淸]한다.
경수(瓊樹) : 사람의 인격이 고결함을 비유한 말. 「진서(晋書)」 왕융전(王戎傳)에 “왕연의 모습이 고매하여 마치 경수 요림(瑤林)과 같다.” [王衍神姿高徹如瑤林瓊樹]하였다.
경술지변(庚戌之變) : 현종(顯宗) 원년(1010)에 강조(康兆)가 일으킨 정변으로 글안이 침입하는 구실이 되었다. 高麗史 卷四
경신(耕莘) : 평민으로 있으면서 농사짓는 것을 말함. 孟子 萬章上에 “이윤은 유신의 들판에서 밭갈면서도 요순의 도를 즐겼다.[伊尹耕於有莘之野 而樂堯舜之道焉]”하였음.
경신제(庚申帝) : 원(元) 나라 순제(順帝)를 가리킴. 원 순제가 경신일(庚申日)에 망했다 하여 붙여진 칭호. 「원사(元史)」 순제기(順帝紀)에, “八月庚申大明兵入京城國亡”이라 보임.
경약(徑約) : 지식은 넓히지 않고 예절을 시행하려는 것이다.
경양왕(頃襄王) : 초(楚) 나라 37대 임금 미횡(羋橫)의 왕호.
경어벽해(鯨魚碧海) : 배오(排奡)는 교건(矯健)의 모양. 한유의 시에 “妥貼力排奡”가 있음. 고래를 끈다는 것은 시의 힘이 굉장한 것을 말한 것으로 두보의 시에 “未掣鯨魚碧海中”의 구가 있음.
경연(經筵) : 임금 앞에서 경서(經書)를 강론하는 자리.
⇒ 금화지연(金華之筵)
경영(京營) : 조선 시대에 서울에 두던 훈련도감(訓練都監)․금위영(禁衛營)․어영청(御營廳)․수어청(守禦廳)․총융청(摠戎廳)․용호영(龍虎營)을 통칭한 것임.
경련(京輦) : 경련은 서울, 곧 사람과 사물이 많이 모여 있는 도회지라는 뜻. 산림은 여느 사람들이 사는 세상을 멀리 떠난 산간. 「類選」卷二上 人事篇一 論學門.
경요(更徭) : 변수(邊戍)를 일컫는 말. 즉 변수의 요역(徭役).
경원(涇原) : 당 덕종(唐德宗) 4년(783) 이희열(李希烈) 등이 반란을 일으키고 왕(王)을 참칭하자, 경원(涇原) 등지의 군사로 이를 쳤으나 실패했다. 뒤에 덕종이 봉천(奉天)으로 피난하려 하자, 이들 군인들이 절도사 장일(張鎰)을 죽이고 반란을 일으켰다. 唐書 卷十二 德宗本紀
경위(經緯) : 옳고 그름과 청탁(淸濁)에 대한 분별이 엄격함을 이르는 말. 원래는 중국 섬서성(陝西省)에 있는 두 물 이름인데, 경수(涇水)는 물이 탁하고 위수(渭水)는 맑기 때문에 비유한 것이다.
경은황후(敬隱皇后) : 후한(後漢) 숙종(肅宗)의 후비 송귀인(宋貴人). 그의 아들 청하효왕(淸河孝王) 경(慶)이 태자가 되자 두황후(竇皇后)가 그들을 미워하여 참소하니 왕이 소황문(小黃門) 채윤(蔡倫)에게 조사하게 하자 음독자살하였다. 그의 손자 안제(安帝)가 즉위하자 건광(建光) 원년(元年 12)에 경은후(敬隱后)로 추존했다. 後漢書 五 安帝本紀 同 五五 淸河孝王傳
경(敬)․의(義)의 공부 : 마음속으로는 경하고 일을 처리할 때에는 의롭게 하는 것. 周易 坤卦 文言에 “군자는 경으로써 안(마음)을 곧게 하고, 의로써 바깥(일)을 바르게 하니, 경과 의가 확립되어 덕이 외롭지 않다.[君子敬以直內 義以方外 敬義立而德不孤]”하였다.
경인(磬人) : 「주례(周禮)」 동관(冬官)의 한 편명. 「주례」에는 경씨(磬氏)로 되었으니 여기에 인(人)은 잘못 쓰인 듯함.
경일순작(景逸馴鵲) : 까치가 지저귀는 것을 보고 반가운 소식 올 것을 안다는 뜻. 경일(景逸)은 성은 여(黎)이며 당(唐)나라 사람이다. 그는 일찍이 공청산(空靑山)에 살면서 까치 한 마리를 길러 길들였다. 뒤에 경일이 무함을 당하여 옥에 갇히었는데, 하루는 이 까지가 감옥의 지붕으로 날아와 경일을 내려다 보며 반갑게 지저귀었다. 조금 뒤에 관연 사(赦)하는 조서가 왔다 한다.事文類聚 後集 卷四十四 鵲 금계(金鷄)는 죄수를 사할 때에 베풀었던 물건으로 7척쯤 되는 대나무에 4척의 닭을 만들어 매다는데, 머리를 황금으로 꾸미기 때문에 금계라 한다. 唐書 百官志에 “죄수를 사하는 날 금계를 의장(儀仗)의 남쪽에 설치해 놓는다.”하였다. 이것은 하늘에 금계성(金鷄星)이 있는데 이 별이 움직이면 죄수들을 사한다는 전설에서 비롯된 것이다. 즉 경일은 까치가 기쁘게 지저귀는 것을 보고 금계를 베풀어 자기를 사할 것을 알고는 마음을 놓았다는 뜻이다.
경자박우(卿子搏牛) : 경자(卿子)는 서로 높이는 말로 공자(公子)와 같은 것이니, 곧 경자 관군(卿子冠君)의 칭호를 얻은 초한(楚漢) 때의 송의(宋義). 조(趙)를 포위한 진군(秦軍)을 치자는 항우(項羽)의 말에 송의는, “소의 등에[蝱]를 치는 것으로 이를 잡을 수 없다.”고 한였다. 史記 項羽紀
경장(瓊漿) : 음료(飮料)로 아주 맛있는 것이라 한다. 「초사(楚辭)」 송옥(宋玉)의 초혼(招魂)에 “화려한 술잔 이미 베풀어졌는데 경장도 있네”[華酌旣陳 有瓊漿些]하였다.
경재잠(敬齋箴) : 송(宋)나라 주희(朱熹)가 장경부(張敬夫)의 주일잠(主一箴)을 읽고 그 빠뜨린 뜻을 보충하여 경재잠을 지어 벽에 써 붙여 스스로를 경계한 글인데, 그 전문은 다음과 같다. 正其衣冠 尊其瞻視 潛心以居 對越上帝 足容必重手容必恭 擇地而蹈 折旋蟻封 出門如賓 承事如祭 戰戰兢兢 罔敢或易 守口如甁 防意如城 洞洞屬屬 罔敢或輕 不西以東 不南以北 當事而存 靡他其適 不貳于二 弗參于三 惟心惟一 萬變是監 從事於斯 是曰 持敬 動靜無違 表裏交正 須臾有間 私欲萬端 不火而熱 不氷而寒 毫釐有差 天壞易處 三綱旣淪 九法亦( ) 於乎小子 念哉敬哉 墨卿司戒敢告靈臺.
경절절선(磬折折旋) : 경절은 몸을 경쇠의 형상처럼 구부정하게 구부리는 것이며, 절선은 곡절주선(曲折周旋)의 약으로 둥글게 꺾어도는 것을 말한다.
경제(擎梯) : 사다리를 들고 재주 부리는 놀이.
경조 윤(京兆尹) : 한성판윤(漢城判尹)을 말한다.
경종(景鍾) : 춘추시대 진(晋)나라의 종(鍾)이름인데, “위과(魏顆)가 진(秦)나라 군사를 물리쳤으므로 그 공훈을 경종에 새기라[魏顆以其身却退秦師其勳銘於景鍾]”하였다. □語:晋語 또 그 해(解)에, “경종은 경공(景公)의 종이다.”하였다.
「경직의방(敬直義方)」 : 주역의 경이직내 의이방외(敬以直內 義以方外)란 말을 줄여서 쓴 것인데, 주역 원문대로 번역하면, “경으로써 안을 곧게 하고 의로써 밖을 바르게 한다.”로 되고, 줄인 말대로 번역하면 “경으로 곧게 의로 바르게”라고 해야 할 것이다.
경천주(擎天柱) : 하늘을 버티고 있는 8기둥. 「초사(楚辭)」에 “하늘에 여덟 산이 있어 기둥이 된다.”[天有八山爲柱]는 말이 있다.
경천탑(擎天塔) : 경천사 십층 석탑(擎天寺十層石塔). 원래 개풍군(開豊郡) 부소산(扶蘇山) 경천사에 있던 것을 일본인들이 가져갔다가 다시 돌려 주어 지금은 경복궁 경내에 있다. 1348년 원 나라 기술자의 도움으로 만들었다는 설도 있으며, 파고다 공원의 원각사탑(圓覺寺塔)은 이 탑을 본뜬 것이라 한다. 고유섭(高裕燮) 韓國塔婆의 연구
경첨(更籤) : 야간에 공무나 기타 민간에 긴급한 일이 있을 때 통행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발급하는 표신(標信)으로 순관 및 경수소원(警守所員)이 휴대함.
경추문(景秋門) : 창덕궁의 서문.
경칠공 신사(耿七公神祠) : 경씨(耿氏) 일곱 사람을 모신 사당.
경편(駉篇) : 「시경(詩經)」 노송(魯頌)의 편명. 경야(坰野)에서 먹이는 말들이 크고 살찐 것을 노래한 것.
경풍도(慶豊圖) : 정재(呈才)에 경풍도무(慶豊圖舞)를 출 때 쓰는 그림. 풍년의 경사(慶事)를 그려 둘둘 말아서 보(褓)에 싸서 두 끝을 매어 드리움.
경필(警蹕) : 천자(天子)가 나갈 때에는 경(警)이라 외치고 들어올 때는 필(蹕)이라고 외쳐서 길을 밝히고 행인을 금하였다.
경현당(景賢堂) : 한훤당( 暄堂) 김굉필(金宏弼)을 모신 사당. 본집 제 2권의 경현당 기문(記文)에 자세히 보인다.
경화(更化) : 更化는 歐治를 변경하여 새로이 한다는 말인데 여기서는 갑술년에 閔中殿이 復位한 것을 말한다. 다음에 나오는 更張․改紀도 이와 같은 뜻이다.
계강자(季康子) : 춘추 시대의 노(魯) 나라 대부(大夫) 계손 비(季孫肥)를 이름.
계극(鷄戟) : 일명은 유극(油戟)이라도 하는데, 검붉은 깁으로 입힌 극(戟)이다. 옛날에 관리(官吏)가 나갈 적에는 그로써 전구(前驅)를 삼았음.
계도(桂櫂) : 초야에 살면서는 백성들의 의식을 풍족하게 해줄 수 없다는 것임. 계도는 계수나무로 만든 노로서 고상한 은자(隱子)의 상징임. 楚辭 九歌 湘君에 “계목의 노와 난목의 갑판으로 얼음으로 깨고 저어가도 눈이 곧 쌓이누나[桂櫂兮蘭枻 斲氷兮積雪]”하였음.
계두(鷄頭) : 鷄頭는 닭 대가리에 있는 부드러운 닭의 벗이다. 여기서는 剛하던 사람도 부드럽게 되어 버린다는 뜻이다.
계두영반(桂頭盈盤) : 계수나무 속의 전갈벌레[갈(蝎)]. 계수 먹은 전갈이 맛이 매운데, 그 전갈을 꿀에 절여 먹음. 남월(南粤)의 별미라 함. 漢書 南粤趙佗傳
계등(溪藤) : 종이의 별칭. 중국 절강성에 섬계(剡溪)가 있는데 그 물이 종이를 만들기에 적합하고, 그 부근에서 나는 등나무 껍질로 만든 종이가 유명하므로 나온 이름임.
계라(啓螺) : 거둥할 때에 취타(吹打)하기를 임금에게 아룀. 또는 아뢰는 사람.
계력(季歷) : 무왕(武王)의 할아버지 이름.
계륵(鷄肋) : 닭의 갈빗대. 먹을 만한 살은 없지만 버리기는 아까운 것. 가치가 적으나 버리기 어려운 것의 비유.
계면조(界面調) : 우리 음악에서의 우아한 곡조 또는 애운성을 띤 비곡 계열로 양악의 단조(短調)에 해당한 것.
계명구도(鷄鳴拘盜) : 이 말은, 진 소왕(秦昭王)이 맹상군을 잡아 가두고 죽이려 할 때 맹상군은 그의 문객 중에서 개 도둑질 잘하는 사람을 뽑아 진 나라 궁중에 있는 호백구(狐白裘)를 훔쳐 내게 하여 진 소왕에게 바치고 풀려난 다음, 또 문객 중에서 닭울음 잘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새벽닭 역할을 하게 해서 관문이 열리게 되자 밤에 국경을 탈출했던 고사에서 나온 것임. 史記 孟嘗君傳
계목(鷄鶩) : 따오기는 흔하지 않은 것이므로 귀하게 여기고 닭은 늘 보는 것이므로 하찮게 안다는 말임.
계묘지란(癸卯之亂) : 공민왕 12년(1363) 윤삼월에 김용(金鏞)이 흥왕사(興王寺)의 행궁(行宮)에 있는 왕을 없애려고 흥왕사를 습격한 사건.
계문지삼사(季文之三思) : 魯 나라 季文子가 每事를 반드시 세번씩 생각한 뒤에 행한다는 것을 공자가 두 번 생각하는 것이 옳다고 하였다. 그 뒤에 계문자가 일을 잘못 처리한 것이 있었으므로 선비들이 세 번 생각한 탓이라고 말하였다.
계민(啓民) : 돌궐 추장 사발략(沙鉢略)의 아들 이름. 염간(染干)으로서 수 양제(隋煬帝)의 총애를 받은 사람.
계방(契房) : 공역(公役)을 면제받기 위해 또는 다른 도움을 얻기 위해서 아전에게 돈이나 곡식을 주는 일.
계번(鷄幡) : 죄인들을 대사(大赦)할 때 금계(金雞)를 만들어 깃발 위에 세우고 영을 내린다. 唐書百官志
계병(契屛) :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그 일을 맡아보던 도감(都監)들이 그 일을 기념하기 위해서 당시의 일을 그려서 만들던 병풍.
계사(稧事) : 왕희지의 고사임. 왕희지 난정서(蘭亭序)에 “永和九年歲在癸丑暮春之初會于會稽山陰之蘭亭 修稧事也”라 하였음.
계리(計吏) : 地方의 層計를 中央에 와서 보고하는 官吏.
계서(鷄黍) : 닭을 잡아서 국을 끓이고 기장으로 밥을 지어서, 음식을 대접한다는 뜻으로 씀.
계선(繼善) : 「주역」 계사 상(繫辭上)에, “繼之者善 成之者性”이라 하고 그 주에 ‘繼言其發也 善謂化育之功’라고 보임.
계성묘(啓聖廟) : 중국의 5성(五聖)인 공자․안자․자사․증자․맹자의 아버지를 모신 사당. 현종 10년(1669)에 건립되었음.
계성사(啓聖祠) : 계성사는 공자의 아버지 숙량흘(叔梁紇), 안자 아버지 안유(顔由), 증자 아버지 증점(曾點), 자사의 아버지 공이(孔鯉) 및 맹자 아버지 격공의(激公宜)를 제사하는 곳이다.
계성사류(鷄聲似柳) : 고려 충선왕이 원 나라에 들어가 지은 시에 “鷄聲恰似門前柳”라는 글구가 있음.
계수(啓手) : 증삼(曾參)이 병들어 제자들을 훈계한 말로 ‘몸을 온전히 보전하여 죽는 것도 효도의 하나인데, 이를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論語 泰伯
계심(桂心) : 계피(桂皮)의 겉껍질을 벗긴 속껍질인데 먹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으로부터 베임을 당하고, 저(樗) 나무는 쓸모가 없기 때문에 사람이 베어가지 않으므로 제 수명을 다한다는 말이다. 莊子 逍遙遊․人間世즉 사람도 재주가 뛰어난 사람은 남으로부터 시기를 받아 반드시 피해를 입게 되고, 재주는 적어도 덕이 있는 사람은 그런 피해를 입지 않는다는 뜻이다.
계심(季心) : 한(漢) 나라 사람으로 계포(季布)의 동생이다. 기개가 높아 관중(關中)을 뒤덮었으며 용맹이 있고 호협하고 사람 대접하기를 공근하게 하였으므로 사방의 선비들이 죽음으로 따랐다. 일찍이 중위사마(中尉司馬)가 되었음.
계우(季友) : 춘추 시대 노 환공(魯桓公)의 아들. 장공(莊公)의 아우. 성계(成季)라고도 한다. 장공이 죽자 계우가 그의 아들 반(般)을 세웠으나, 반이 경보(慶父)에게 살해되어, 계우는 진(陳)으로 망명하였다. 뒤에 장공의 아들 신(申)을 세워 희공(僖公)이 되었다. 그의 자손이 계손씨(季孫氏)가 되었다. 左傳 莊公 二十七
격우포상(擊于苞桑) : “망할 듯 망할 듯하더니, 뽕나무 우거진 줄기에 매었다.[其亡其亡擊于苞桑] 周易 하였으니, 망할 듯 하다가 다시 유지된다는 뜻이다.
계응노(季鷹鱸) : 진(晋) 나라 장한(張翰)의 자(字)가 계응(季鷹)인데 낙양(洛陽)에 와서 벼슬하다가 가을 바람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우리 고향 강동(江東)의 노어회(鱸魚膾)가 생각이 난다”하고는 곧 벼슬을 버리고 돌아갔다.
계인(鷄人) : 벼슬 이름임. 제삿날 밤에 새벽이 되려하면 백관들을 불러 일깨워서 일어나게 하는 사람임.
계자천향(桂子天香) : 당나라 송지문(宋之問)의 영은사시(靈隱寺詩)에, “계수가 달 가운데 떨어지니 하늘 향기가 구름밖에 나부끼네.”[桂子月中落, 天香雲外飄]라는 글귀가 있다.
계정(啓禎) : 계종(啓倧)의 잘못인 듯함. 계종은 명말에 여러 벼슬을 거쳐 병마전량(兵馬錢糧)을 관장하였음. 청병(淸兵)이 이르자 자살하였음.
계정(戒定) : 불교(佛敎)에 계(戒)․정(定)․혜(慧)의 삼학(三學)이 있는데 계는 5계(五戒)와 2백 5십계(二百五十戒)를 지켜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요 정은 마음에 동요 됨이 없고 안정된 것이요, 혜는 밝게 깨달은 지혜이다. 곧 계는 그릇이요, 정은 그릇에 담긴 고요한 물이요, 지혜는 물에 비치는 달과 같다.
계찰(季札) : 계찰은 춘추(春秋) 오왕(吳王) 수몽(壽夢)의 넷째 아들. 상국(上國)에 사신가서 두루 당세의 현대부(賢大夫)와 사귐. 노(魯) 나라에 사신가서 주(周) 나라의 음악을 들고 열국(列國)의 치란 흥망(治亂興亡)을 알았음.
계찰관악(季札觀樂) : 계찰은 춘추 시대 오왕(吳王) 수몽(壽夢)의 작은 아들인데 아주 어질었다. 일찍이 노(魯)에 가서 주(周)의 악(樂)을 보고서 열국의 치란 흥쇠를 알았다 한다.
계첩(稧帖) : 계첩은 왕 희지의 난정계첩(蘭亭稧帖)이고 판향은 흠모한다는 뜻임.
계축(癸丑)의 화 : 광해군(光海君) 5년 즉. 계축년에 일어난 옥사(獄事)로 영창대군(永昌大君)을 역모죄로 몰아 죽이고 인목대비(仁穆大妃)를 폐모시켜 서궁(西宮)에 유폐시킨 사건.
계출(繼出) : 경상도 영천(永川) 등지에서 생산되는 최상등 황마포(黃麻布)를 일컫는 말.
○ 令諸道 貢二十升黃麻布 紡績女工最難 慶尙道永川等地 出此布 俗名 繼出 東史綱目 十三上 忠烈王 二十七年
계충(雞蟲) : 작은 이해와 득실을 이르는 말로 닭이 벌레를 쪼아먹고 사람이 그 닭을 잡아먹는 일을 말한다.
계포(季布) : 계포는 본래 항우(項羽)의 장수로 여러 번 유방(劉邦) 즉 한 고조를 곤경에 몰아 넣었다. 유방이 항우를 멸하고 천하를 정하자 계로를 잡아들인 자에게 천금(千金)을 주겠다고 하였다. 그러자 등공(藤公)이 그의 어짐을 알고 고조에게 간하여 죄를 사하고 낭중(郎中)을 삼았다. 史記 卷一百 季布傳
계해반정(癸亥反正) : 계해년(1623)에 일어난 인조반정(仁祖反正)을 말한다.
계화(界畫) : 중국 회화(繪畵)의 화법(畵法). 궁실(宮室)․누대(樓臺), 배나 수레 따위를 그리는 데에 계척(界尺)을 사용하여 직선을 만드는 섬세한 필법(筆法).
계환(髻鬟) : 상투머리인데 산의 별칭임.
고(孤) : 주(周) 나라 벼슬 이름. 삼공(三公)의 다음이 삼고(三孤)이니, 삼고는 소사(少師)․소부(少傅)․소보(少保)이다.
고개지(顧愷之) : 진(晋) 나라의 고개지(顧愷之)가 사탕수수를 씹는데 사탕수수의 맛있는 부분 꽃을 놓아 두고, 뿌릿땀에서부터 씹기 시작함으로 다른 사람들이 웃으니 고개지의 말이, “이렇게 하여야 점차로 아름다운 지경에 들어간다.”라고 하였다.
고건(櫜鞬) : 활과 화살을 넣어 등에 지는 기구. 동개․궁시대(弓矢袋).
고경(枯莖)․후골(朽骨) : 고경은 시초(蓍草), 후골은 거북을 이르는데, 모두 점치는 데 쓰는 물건이다.
고경지비거영녹산지사(杲卿之緋 榮綠山之賜) : 상산 태수(常山太守) 안고경(顔杲卿)은 안녹산(安祿山)이 반란하자 그와 대항하여 싸우다가 중과부적으로 사로잡혀 사지를 찢기면서도 큰 소리로 녹산을 꾸짖었다. 그때 안녹산은 하북․하동의 채방사이었고, 상산은 안녹산의 지배하에 있었다.唐書 卷一百九十二 顔杲卿傳
고광(古狂) : 명 나라 화가 두근(杜菫)의 호. 산수를 잘 그리고 인물화 역시 백묘(白描)의 고수임.
고괘지상구(蠱卦之上九) : 현인 군자가 시대에 불우하고 고결함을 스스로 지키면서 세무(世務)에 매이지 않는 것을 뜻한다. 周易 蠱卦 上九爻辭에 “왕후를 섬기지 않고 그 일을 고상히 한다.”[不事王侯 高尙其事]하였다.
고굉(股肱) : 서경에 임금은 원수(元首)요 대신은 고굉(股肱)이라 하였다.
고굉군(股肱郡) : 漢 나라 文帝가 河東郡守인 季布를 御史大夫로 임명하려고 불러 들였다가 술이 과하여 쓸 수 없다는 말을 듣고 舍館에 머물게 한 지 한달만에 계포를 도로 하동으로 돌려 보내니 그가 불러들였던 이유를 물은 즉 문제가, “하동은 나의 고굉군이므로 불러 보았다”고 하였다. 고굉군은 팔다리와 같은 중요한 고을이란 뜻이다. 여기서는 수원 광주 果川의 세고을을 두고 한 말이다.
고굉․조아(股肱爪牙) : 이목구비(耳目口鼻)와 손발처럼 왕을 보필한다는 뜻. 「서경」 우서 익직(益稷)에, “……帝曰臣作朕股肱耳目……”이라고 보이며 「시경」소아 기보(祈父)에, “……予王之爪牙之士……”라고 보인다.
고구유요(羔裘有曜) : 「시경」 회풍( 風) 고구(羔裘)편의 한 대문. 회( )의 임금이 의복이나 깨끗이 차려 입고 놀음에만 빠져 있음을 걱정한 것임.
고구지잠(苦口之箴) : 자기의 잘못을 말해주는 충고(忠告)를 가리킨다. 고구는 입에 쓴 독한 약을 말하는데, 史記 留侯世家에 “충고해 주는 말은 귀에 거슬리지만 행실에 이롭고 독한 약은 입에 쓰지만 병에 이롭다.”하였다.
고궁(固窮) : 군자의 절조(節操)를 말한 것인데, 곤궁한 것을 당연함으로 알고 태연히 처하는 것. 「논어」 위령공(衛靈公)에, “군자는 본디 곤궁한 것이니, 소인은 곤궁하면 본분을 잃는다.”[君子固窮 小人窮斯濫矣]하였다.
고귀향공(高貴鄕公) : 삼국(三國) 때의 위 문제(魏文帝)의 손자 조모(曹髦)로 자는 사언(士彦)이다. 정시(正始) 연간에 담현(郯縣) 고귀향공에 봉해졌으므로 그렇게 불렀다. 제왕 방(齊王芳)이 폐립되자 그가 영립(迎立)되었다. 태학(太學)에 참여하여 여러 선비들과 「서경」․「역경」 및 예(禮)를 논했는데, 여러 선비들이 그에 미치지 못하였다 한다. 감로(甘露) 연간에 황룡(黃龍)이 영릉(寧陵)의 우물 속에 보이자, 이것을 상서롭지 못한 것으로 여기고 잠룡시(潛龍詩)를 지어서 스스로를 풍자했는데 사마소(司馬昭)가 보고 미워했으며, 영립된 지 7년 만에 소에게 시해되었다. 그의 연호는 정원(正元)과 감로 둘이었다.
고금인물표(古今人物表) : 반고(班固)가 지은 「한서(漢書)」 속에 있는 10표 중의 하나임.
고․기․이․부․주․소(皐夔伊傅周召) : 순(舜)의 신하 고요(皐陶)․기(夔)와, 탕(湯)의 신하 이윤(伊尹), 상 고종(商高宗)의 신하 부열(傅說), 주성왕(周成王)의 삼촌이자 신하인 주공(周公)․소공(召公). 모두 어진 신하였다.
고독(蠱毒) : 남 몰래 음식에 독약을 타서 사람을 해치는 것. 大典, 刑典, 推斷
고량자제(膏粱子弟) : 고량 진미만 먹고 귀엽게 자라나서 고생을 모르는 부귀한 집 자제.
고령역(高嶺驛) : 요동도지휘사사(遼東都指揮使司) 광녕전둔위(廣寧前屯衛)의 서남쪽 35리에 있으며 서쪽으로는 산해관(山海關)에 들어가는 길이 있다. 讀史方輿紀要 권37
고로(孤露) : 부모가 죽으면 몸을 보호하던 옷을 벗은 것 같다는 뜻에서 부모가 죽은 것을 말함.
고립(雇立) : 다른 사람을 대신 보내어 공역(公役)을 치르게 하는 일.
고루퇴쇄(高樓槌碎) : 이백(李白)의 시에 “한주먹으로 황학루(黃鶴樓)를 때려부셨다.”라는 글귀가 있음.
고릉(觚稜) : 전당(殿堂)의 옥근(屋根)이 높이 치솟음을 말한다. 두목(杜牧)의 두추랑시(杜秋娘詩)에 “觚稜拂斗極 回省常遲遲”라 하였고, 「상촌집(象村集)」에는, “觚稜金碧蘚”라고 하였다.
고마(雇馬) : 지방 관아(官衙)에서 백성에게 징발(徵發)하던 말.
고명(顧命) : 임금이 유언으로 뒷일을 부탁하는 것.
고목(告目) : 이두(吏讀)로서, 아랫 사람이 웃사람에게 하는 편지.
고목한아(枯木寒雅, 고목나무 갈가마기) : 주 학년이 “갈가마귀 떠났어라 고목만 우뚝하고 나그네 당도하자 석양이 아스랗네.[古木崢巆鴉去後 夕陽迢遰客來初]”라는 고시(古詩)의 시정(詩情)을 취하여 그린 그림을 두고 한 말이다.
「고문(古文)」 : 한 문제(漢武帝) 때 노 공왕(魯恭王)이 공자의 옛집을 헐다가 고문(古文)인 전서(篆書)로 된 「상서」․「예기」․「효경」등 수십 편을 얻었는데, 복생(伏生)의 「금문상서(今文尙書)」에 비하여 16편이 더 많았다. 공안국(孔安國)이 칙명으로 「고문상서전(古文尙書傳)」을 지었으나 무고(巫蠱)를 만나 학관(學官)에 서지 못하였다. 그 뒤 동진(東晋)의 매색(梅賾)에게서 다시 「고문상서」가 나왔는데 복생의 「금문상서」보다 25편이 더 많았다. 처음에는 「금문상서」와 나란히 학관에 세웠던 것을 육덕명(陸德明)이 「석문(釋文)」을 짓고, 공영달(孔穎達)이 「정의(正義)」를 지음으로부터 「금문상서」 29편과 합쳐 한 편으로 만들어 오늘에 전하여지고 있다.
고문상서(古文尙書) : 노(魯) 나라 공왕(恭王)이 공자의 구택(舊宅)을 헐었을 때 벽 속에서 「서경」이 나왔는데 이것은 고체(古體)인 선진시대(先秦時代)의 과두문자(蝌蚪文字)로 씌어져 있었기 때문에 ‘고문상서’(古文尙書)는 모두 45편으로 「금문상서」보다 16편이 많다. 이것은 복 승이 다 기록하지 못하여 탈락이 있었기 때문이라 한다.
고문지학(古文之學) : 당대(唐代)의 고체(古體) 산문(散文)을 고문이라 하는데, 문(文)은 진한(秦漢)이전을, 시는 성당(盛唐) 이전을 본보기로 해야 한다는 주장.
고반(考槃) : 현자가 세상을 피하여 은둔해 살면서 즐거움을 이루는 곳. 詩經 衛風 考槃에 “考槃在澗 碩人之寬”하였는데, 주에 “고(考)는 이루는 것이요, 반(槃)은 즐거움이다.”하였음.
고반문촉(扣盤捫燭) : 인식(認識)이 참되지 못하고 잘못이 많은 것을 비유한 말. 소식(蘇軾)의 「일유(日喩)」에 나오는 다음 이야기에서 유래된 말이다. 즉, 나면서부터 소경인 자가 해를 알지 못하였다. 눈 있는 사람이 ‘해의 형상은 구리쇠 반(盤)과 같다.’고 말하였다. 소경이 반을 두드려 보고 그 소리를 들었다. 뒷날 종소리를 듣고 그는 해라고 하였다. 또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해의 빛이 촛불과 같다.’고 하였다. 소경이 초를 만져 보고 그 형상을 알게 되었다. 뒷날 그는 배밀대[籥]를 만져 보고 이를 해라고 말하였다.
고후(皐復) : 사람이 죽으면 그의 옷가지를 가지고 지붕 위에 올라가 그 영혼을 부르던 것. 禮記 禮運 여기서는 객지에서 죽었다는 뜻.
고봉지주(高峯之柱) : 지주(砥柱)는 산의 이름. 옛적에 우(禹)가 홍수(洪水)를 다스릴 때 이 산을 파서 황하(黃河)의 물을 통하였는데, 황하가 나뉘어서 이 산을 싸고 흐르므로 먼 데서 보기에 마치 기둥과 같이 보이기 때문임.
고불고(觚不觚) : 이는 공자가, 당시에 고(觚)의 그릇 모양이 옛 제도를 잃었으므로 도(道)가 없어짐을 한탄한 말. 「논어」옹야(雍也)에 보인다. 그 주에 “고(觚)는 능(稜)인데, 혹은 술그릇, 혹은 목간(木簡)이라고 하였으니, 모두 모[稜]가 있는 그릇이다.”고 하였다. 말하자면, 이름만 있고 실속이 없음을 비유한 거이다. 이 때문에 대하여 학자들은 나름대로 변론이 많았는데,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은 주자의 집주가 틀렸다고 반박하였고, 모기령(毛奇齡)은 “觚不觚者 戒酗也……實則不副 何以稱名”이라 하였으며, 요입방(姚立方)은 “觚者酒器也……通俗文曰 木四方爲稜 八稜爲觚是也 字從角者 以其有稜角也 又從瓜者 以其知瓜瓣也 其觚之觚 今不可考”라고 하였는데, 오주는 고를 술그릇으로 보는 것이 이치에 타당하다고 했다. 與猶堂全書 經集論語古今注
고비(皐比) : 교사(敎師)를 그만 둠. 고비는 호피(虎皮)인데, 옛날에는 스승이 학문을 강론할 때 모두 호피를 깔고 앉았었으므로 교사의 뜻으로 쓰인다.
고사(考査) : 관청에서 사무처리상 백성이나 관리의 진상(眞狀)을 조사하는 것.
고사(孤槎) : 사절이 타고 가는 배. 장건(張騫)의 고사.
고사(瞽史) : 瞽史는 눈먼 장님이 점을 치고 글을 외어 들리는 것이다.
고사(瞽史)의 인도(引導) : 일을 임해서는 태사(太師)의 인도를 받는 것을 이른다.國語 楚語上
고삭지양(告朔之羊) : “노(魯) 나라 문공(文公) 때부터 종묘에 매달 초하룻날 고삭(告朔)하는 예식을 폐지하고 희생으로 사용하는 양(羊)만은 그대로 바치게 하였다. 자공(子貢)이 그것마저 없애 버리려고 하니 공자가 말하기를, ‘사(賜:자공의 이름)야 너는 양을 아끼느냐? 나는 예를 아끼노라’하였다.”論語集註 八佾
고산(孤山) : 송(宋) 나라 은사(隱士) 임포(林逋)의 호.
고산대사원(固山大四員) : 고산(固山)은 만주어(滿洲語)에서 미칭(美稱)으로 쓰이는 것인데, 중요한 직무를 띤 네 명의 관원이란 뜻.
고산설흥(孤山雪興) : 송 나라 임포(林逋)가 고산(孤山)에 살면서 매화를 많이 심었다.
고산앙지(高山仰止) : 시경 소아(小雅) 거할(車舝)에, “高山仰止 景行行止 四牡騑騑 六轡如琴 覯爾新昏 以慰我心”이라 보이는데, 이는 대부가 주 유왕(주유왕)을 나무란 시.
고산액진(固山額眞) : 청의 벼슬 이름. 고산장경(固山章京)이라고도 함. 고산은 만주 말에서 아름다운 칭호이므로 그들의 벼슬 이름 위에 씌워서 불렀다.
고생(故眚) : 고는 고의적인 것을 뜻하고, 생은 어쩌다 실수로 과오를 범하는 것을 뜻한다.
고선(罛船) : 후릿배. 후릿 그물을 싣고 나가 고기를 잡는 배.
○ 士船客船大船小船凡罛船-揮羅船-經世遺表 魚稅
고선(姑洗) : ⇒ 황종(黃鐘)
고소(姑蘇) : 중국 강소성(江蘇省) 오현(吳縣)에 있는 산 이름.
고소대(姑蘇臺) : 오왕(吳王) 부차(夫差)가 충신 오자서(伍子胥)의 말을 듣지 않고 고소대를 쌓고 미녀들과 놀다가 월 나라에게 패망한 것을 가리킨다. 일설에는 고소대는 부차의 선왕 합려(闔閭)가 쌓은 것이라 한다.
고소성(姑蘇城) : 당 나라 시인 장계(張繼)의 시에 “고소성 밖 한산사에 밤 종소리가 손의 배에 이르네.”[姑蘇城外寒山寺 夜半鍾聲到客船]란 이름난 시가 있음.
고소성외 한산사(姑蘇城外寒山寺) : 당(唐) 나라 시인 장계(張繼)가 지은 풍교야박시(楓橋夜泊詩)의 한 구절. 전문(全文)은 다음과 같다.“月落烏啼霜滿天江楓漁火對愁眠姑蘇城外寒山寺夜半鍾聲到客船”
고송유수(古松流水) : 소식이 말하기를 “予嘗獨遊廬山白鶴觀……聞 聲於古松流水之間…”라 하였음.
고수(瞽瞍) : 순임금의 아버지임. 어리석어 선악을 판단하지 못하였으므로 아들 순을 죽이려 하였다.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을 고(瞽), 눈알이 없는 것을 수(瞍)라 하는데, 순같은 아들을 몰라 보았다 하여 그런 별명이 붙여졌다.
「고수부담(孤樹裒談)」 : 명(明) 나라 학자 이묵(李黙)이 명태조(明太祖)~무종(武宗) 때까지의 사적(事蹟)을 30여 종의 책에서 뽑아 편년체로 기록한 소설류(小說類)의 책임. 내용은 대체로 항간(巷間)에 떠도는 이야기를 기록한 것. 四庫全書總目提要子部 小說家類 存目
고순(高順) : 후한(後漢) 삼국 시대 사람. 여포(呂布)의 독장(督將)이 되어 싸우면 반드시 이겼다.
고슬(鼓瑟) : 아황과 여영이 순을 사모하여 상수(湘水)에 몸을 던져 죽은 후 수신(水神)으로 되어 상령 고슬(湘靈鼓瑟)이라는 명칭이 있다.
고슬희(鼓瑟希) : 공자(孔子)가 자로(子路)․증석(曾晳)․염유(冉有)․공서화(公西華)와 함께 있다가 각자의 하고 싶은 뜻을 말하게 하였다. 증석은 비파를 타고 있다가 [鼓瑟希], 비파를 놓고 대답하기를, ‘늦은 봄에 봄옷이 이미 이루어졌을 때에 관자(冠者) 5~6인과 동자(童子) 6~7인을 데리고 기수(沂水)에서 목욕하고 무(舞雩)에서 바람을 쐰 뒤에 노래 부르며 돌아오고 싶습니다.’라 하니, 공자가 탄식하며 ‘나도 증석과 같이 하고 싶구나’라고 하였다는 고사(故事)가 있다.
고신씨(高辛氏) : 태고 시대의 제왕으로 황제의 증손이라 하는데 고신은 호이며 이름은 곡(嚳)이라고 전하며, 제곡(帝嚳) 고신씨라고도 한다.
고야신선(姑射神仙) : 막고야산(藐姑射山)에 산다는 살결이 희고 고운 신선으로 매화에 비유한 것임.
고양(高陽) : 지명(地名). 송(宋) 나라 경조부 고릉현(京兆府高陵縣)의 와전임.
고양 문중 : 행주 기씨(幸州奇氏)를 말함. 행주는 고양의 고호임.
고양지피(羔羊之皮) : 벼슬에 있는 자가 안온하고 절약 정직하게 된다는 뜻. 「시경」 소남(召南)에 “염소 가죽 갖옷이여! 흰실로 다섯 군데 장식했도다.”[羔羊之皮 素絲五紽]하였다.
고어지사(枯魚之肆) : 굶어 죽는다는 말의 비유. 「장자(莊子)」 외물(外物)에 “임금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면 일찌감치 나를 마른 고기 파는 가게에서 찾는 것만 같지 못할 것입니다.”[君乃言此曾不如早索我於枯魚之肆] 하였다.
고역(雇役) : 실역(實役)에 종사하지 않는 자에게 규정에 따라 금품을 거두시어 사람을 사서 대역(大役)시키는 것.
고염무(顧炎武) : 청나라 곤산(昆山) 사람. 자는 영인(寧人), 호는 정림(亭林). 강희(康熙) 연간에 박사에 천거되어 「명사(明史)」를 편찬했다. 박학다문하여 천문․지지․정치제도․법전․농(農)․병(兵) 등을 다 통하였다. 저서에는 「일지록(日知錄)」․「좌전두해보정(左傳杜解補正)」 「구경오자(九經誤字)」․「석경고(石經考)」 등 약 20종 수백 권이 있다. 明人小傳四․淸史稿 卷四百八十七
고도(皐陶) : 「맹자(孟子)」 진심(眞心)에, 도응(桃應)이 “순 임금이 천자로 있고 고요가 사(士)가 되었는데, 고수(瞽瞍: 순 임금의 아버지)가 살인하였으면 어떻게 하리까?” 하고 물으니, 맹자는 “집행할 따름이다.”하였다. 이는 순 임금이 아버지를 형벌할 수 없으므로 이런 질문을 내어 성현의 용심을 살펴본 것이지, 참으로 이런 일이 있는 것은 아니다.
고우(藁牛) : 입춘(立春) 날 토우(土牛: 흙으로 소를 만들어 농사철의 시작을 알리는 옛 제도) 대신 짚으로 만들어 쓰던 소. 조선 시대 함흥(咸興) 지방의 풍속인데 짚으로 소를 만들고 멍에를 씌워, 관청 뜰에서 밭가는 시늉을 하였다.
○ 昨日卽立春也 州人以藁爲牛而駕之引繩爲機 回旋來去 而背加耕具 入于官家之庭 作耕田之狀 驅牛者歌農歌而隨其後 是士牛之遺制也 壬戌錄 鍾山集抄 十二月十八日
고의(高儀): 자는 자상(子象), 호는 남우(南宇), 전당인(錢塘人), 가정(嘉靖) 20년에 진사, 예부 상서(禮部尙書)를 지냈는데, 목종(穆宗)이 즉위할 무렵에 제대전례(諸大典禮)를 모두 그가 배정(配定)하였음. 明史 高儀傳
고의(故意) : ⇒ 고재(顧載)
고인(誥印) : 천자가 제후를 봉하고 내려 주는 인(印)과 고명(誥命).
고인혹리(故人酷吏) : 고시(古詩)에 “大署酷吏去 淸風故人來”라는 글구가 있음.
고임(顧臨) : 송신종(宋神宗) 때 사람. 호원(胡瑗)에게 배워 경학에 통하였다. 한림학사(翰林學士)로 소성(紹聖) 초년에 지정주(知定州)가 되었다. 당인(黨人)으로 지적되어 요주(饒州)로 귀양가서 죽었다.
고자(告子) : 고자는 전국(戰國)시대의 사상가(思想家)로 이름은 불해(不害)이며, 단수(湍水)는 여울 물, 고자는 일찍이 ‘사람의 본성은 여울 물과 같다. 여울 물은 동쪽으로 터놓으면 동쪽으로 흐르고 서쪽으로 터놓으면 서쪽으로 흐르니, 사람의 본성 역시 선(善)으로 인도하면 선해지고 악(惡)으로 인도하면 약해진다.’하였다. 孟子 告子上
고재(高才) : 고(顧)는 고(故)와 같고 재(載)는 재(哉)와 같다. 고재는 고의(故意)라는 뜻이다.
고적(考績) : ⇒ 당․우(唐虞)
고정신(顧鼎臣) : 명(明)의 곤산(昆山)사람. 자는 구화(九和)이고, 홍치(弘治) 연간에 진사 제일이 되고, 또 수찬(修撰)이 되었다가 예부 우시랑에 이르렀다.
고조마등(高曹馬鄧) : 고(高)는 송영종(宋英宗) 후비(后妃)인 고씨를 가리키며, 철종(哲宗) 때에 섭정하여 왕안석(王安石)을 물리치고 사마광(司馬光)을 써서 선정을 베풀었음. 조(曺)는 조후(曺后)를 가리키며 송신종(宋神宗)때 섭정하여 왕안석을 물리치기를 권하였음. 마(馬)는 후한(後漢) 명제(明帝)의 후비(后妃) 마씨를 가리키며, 장제(章帝)가 외숙을 봉하려 하매 반대하였음. 등(鄧)은 후한 화제(和帝)의 후비 등씨를 가리키며, 화제가 죽자 섭정하여 선정을 베풀었음.
고종(高宗) : 송(宋) 나라 휘종의 아홉째 아들로서 강남(江南)에서 남송을 세웠다.
고종몽부열(高宗夢傅說) : 동군(東君)은 봄을 맡은 신(神)이다. 문여가(文與可)는 송(宋) 나라 사람으로 대를 잘 그렸다. 그는 소식(蘇軾)과 친하여 소식에게 양주(洋州)의 운당곡(篔簹谷)에 누워 있는 대나무를 그려 주었다. 蘇東坡集 卷三十二 文與可畫篔簹谷偃竹記여기서는 대나무를 잘 그리는 문여가에게, 은(殷) 나라 고종(高宗)이 훌륭한 신하를 얻는 꿈을 꾸고 그 형상을 그려 천하에 찾게 하여 부열(傅說)을 만난 고사를 이끌어, 꿈에 본 대나무를 그려 찾게 하였다는 것이다.
고종지시민(高宗之時敏) : 고종(高宗)은 은(殷) 나라 제 20대 왕 무정(武丁). 현상(賢相) 부열(傅說)의 보필을 얻어서 은 나라를 중흥시켰다.
고종치구(高宗雉雊) : 치구(雉雊)는 꿩이 솥에 날아와 운다는 뜻이다. 書經 高宗肜日에 “고종(高宗)이 융제(肜齊)하는 날에 꿩이 솥에 날아와 울자, 조기(祖己)는 말하기를 ‘먼저 왕의 그릇된 마음을 바로잡고 그 일을 바르게 해야 합니다’했다.” 하였는데 그 주에 의하면, 융제에 꿩이 솥에 날아와 우는 것은 하나의 재이(災異)였지만, 고종은 이를 계기로 그 그릇된 마음을 바로 잡고 중흥을 이룬 것이라고 하였다.
고주(苦主) : 사람이 피살되었을 때 가까운 친척으로서 관에 고소하는 사람.
고주(孤注) : 도박(賭博)을 하는 사람이 돈을 다 잃고 조금만 남았을 때에 모두 다 털어 놓고 그것마저 잃으면 그만이요 혹시 따게 되면 다시 계속하여 본전을 찾아 보자는 것이니, 마지막 거는 돈을 고주라 함.
고주몽(高朱蒙) : 천제(天帝)의 아들 해모수(解慕漱)와 정을 통하고 버림을 받은 하백(河伯)의 딸 유화(柳花)가 태백산 우발수(優渤水)에 북부여왕(北夫餘王) 금와(金蛙)를 만나 그의 궁중에 유폐되어 오던 중, 어느날 해모수가 햇빛이 되어 유화에 비추어 잉태시켜 알을 낳게 했는데, 여기에서 태어난 것이 고구려 시조 주몽이라고 전한다.
고주(沽酒) : 고주인(沽酒引)은 술사는 표다.
고죽(孤竹) : 고죽은 외따로 큰 대를 말하는데 이것으로 퉁소를 만든다. 백이(伯夷)․숙제(叔齊)는 은(殷) 나라 말엽의 청렴한 의사(義士)들로서 고죽국(孤竹國)의 왕자들이었으므로, 외따로 난 대를 빌어 고죽국의 백이․숙제를 말하였다. 혼돈(渾沌)은 중앙의 신(神)이었는데, 남해의 신인 숙(儵)과 북해의 신인 홀(忽)이 그를 위하여 보고 듣게 하려고 하루에 하나씩 구멍을 뚫어 7개의 구멍을 뚫었다. 史記 卷六十一 伯夷列傳, 莊子 應帝王
고죽군(孤竹君) : 고죽군은 상(商) 나라 묵태씨(墨胎氏)를 처음 봉했던 군호(君號)이다. 史記 伯夷叔齊傳에 “백이(伯夷)․숙제(叔齊)는 고죽군의 아들이다.” 하였는데, 여기서는 고죽군을 특별히 난 대[孤竹]에 비유한 것으로, 周禮 春官에 “특별히 난 대로 피리를 만든다.”한 말에서 따온 것이다.
고춘추(古春秋) : 고춘추란 공자가 노(魯) 나라의 사기(史記)를 산수(刪修)하여 「춘추」를 편찬하기 이전에 있었던 여러 나라의 「춘추」를 말하는데, 오주가 고춘추를 설명함에 있어, 육교(六敎)․육학(六學)을 인용하여 옛날의 이른바 육예(六藝)가 바로 육경(六經)임을 강조하고, 예(禮)․악(樂)․사(射)․어(御)․서(書)․수(數)의 육예설(六藝說)을 배제하고 있다.
고취(鼓吹) : 원래 북․징․젓대 등의 합주를 가리키는 말로 선전(宣傳)을 의미하기도 함.
고침(槀砧) : 빨랫돌이나 다듬잇돌을 말함. 옛날 고침시(槀砧詩)에, “槀砧今何在山上復有山 何當大刀頭 破鏡飛上天”이라고 보임.
고탁(高倬) : 명말 때 사람. 자는 지루(枝樓). 복왕(福王) 때엔 형부상서(刑部尙書)가 되었음. 청병이 남경(南京)에 입성(入城)하자 자살하였음.
고한양왕(故韓襄王) : ⇒ 한왕신(韓王信)
고허(孤虛) : 갑자(甲子)에서부터 계유(癸酉)까지를 갑자순중(甲子旬中)이라 하니, 갑자순중에는 술해(戌亥)가 없으므로 술해를 고(孤)라 하고, 술해의 상충방(相冲方)인 진사(辰巳)를 허(虛)라 한다.
고헌과(高軒過) : 높은 수레가 지나간다는 뜻인데, 당나라 때의 이장길(李長吉)이 어릴 적에 재주가 있다고 이름이 났으므로, 한유(韓愈)가 보러 가서 시를 짓게 하였더니, 이런 제목의 시를 지었다고 한다.
고현(苦縣)․칠원(漆園) : 노자(老子)와 장자(莊子)를 가리킨다. 노자는 고현(苦縣) 사람으로 성은 이씨(李氏)이고 이름은 이(耳) 또는 중이(重耳)이며, 자는 담(聃), 또는 백양(伯陽)이다. 장자는 몽(蒙) 땅 사람으로 이름은 주(周)인데 일찍이 몽 땅 칠원(漆園)의 아전이 되었다. 史記 卷六十三 老子列傳
고협(鼓篋) : 북을 쳐서 학생을 모으고 상자를 열어 책을 꺼낸다는 뜻. 공부하러 모여드는 것을 비유한 것. 禮記 學記
고화미소(枯花微笑) : 문자(文字)의 말에 의하지 않고 마음을 마음으로 전수(傳受)하는 것. 석가가 연화(蓮花)를 따서 제자들에게 어떤 뜻을 암시했으나 아무도 모르고 오직 가섭(迦葉)만이 그 뜻을 알아, 혼자 미소(微笑)했다는 고사. 五燈會元
고황부천석(膏肓負泉石) : 당나라 은사(隱士) 전유암(田遊岩)이 기산(箕山)에 들어가 사는데 고종(高宗)이 친히 그 집에 찾아가니, 유암이 야복으로 나와 영접하였다. 고종이, “선생은 근일에 평안하신가”하니, 답하기를, “신은 연하고질(烟霞痼疾)이요 천석고황(泉石膏肓)입니다.” 하였다.
고황제(高皇帝) : 明 나라 太祖
高后 : ⇒ 高曹
곡강(曲江) : 곡강은 못 이름인데, 당(唐) 나라 때에는 봄에 그해의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한 자들을 모두 곡강의 정자에 모여 놓고 잔치를 베풀었다. 舊唐書 卷十三 德宗紀 여기서는 과거에 급제한 것을 뜻한다.
곡강연(曲江宴) : 당(唐) 이래로, 당년의 진사(進士)에 급제한 사람들에게 곡강(曲江)의 정자(亭子)에서 내리던 큰 잔치. 歲華紀麗
곡개(曲蓋) : 수레 위에 받쳐 햇빛을 막는 것. 곡직화개(曲直華蓋)란 것도 있고, 청곡병대산(靑曲柄大傘)이라는 것도 있다.
곡구경(谷口耕) : 한(漢) 나라 성제(成帝) 때 곡구(谷口) 사람 정자진(鄭子眞)이 학문과 도덕이 높아 대장군(大將軍) 왕봉(王鳳)이 예로 맞아들이려 하였으나, 뜻을 굽히지 않고 암석 아래에서 받을 갈았다 한다. 漢書 卷七十二 王貢兩龍飽傳
「곡대(曲臺)」 : 한(漢)의 후창(后蒼)이 찬(撰)한 것으로, 한의 천자의 사궁(射宮)인데, 후창(后蒼)이 거기에서 예경(禮經)을 편찬 교정하였다.
곡량(穀梁) : 「곡량전(穀粱傳)」을 지은 곡량 적(穀梁赤). 이 말은 「곡량전」 소공(昭公) 19년 기사에, “허세자(許世子) 지(止)가 그의 임금 매(買)를 죽였다.”는 공자의 경문(經文)에 달린 전.
곡량자(穀梁子) : 춘추시대 노(魯)의 곡량 적(穀梁赤). 「춘추」의 삼전(三傳) 가운데 「춘추곡량전(春秋穀粱傳)」을 전하였다.
곡례(曲禮) : 예(禮)에 있어서 줄거리를 말하는 것을 경례(經禮)라 하고, 그 대강령을 실천하기 위하여 필요한 절차에 관한 것을 곡례(曲禮)라 한다. 예기(禮記)의 예기편(禮記篇)에, “경례삼백(經禮三百)이나 되고 곡례삼천(曲禮三千)이나 되지만, 그 극치[致]는 하나이다[一也].”고 하였다. 여기 하나라 한 일(一)은 경(敬)을 말한 것으로 되어 있다. 즉 경례와 곡례가 아무리 많아도 그 근본 취지는 공경된 마음을 표현하자는 것이란 뜻이다.
곡산(鵠山) : 개성(開城) 송악산(松嶽山)의 별칭
곡상미(斛上米) : 세미를 받을 때 서해(鼠害)등의 손실이 있을 것을 미리 요량하고 한 섬에 몇 되씩 더 받던 쌀.
곡수(曲水) : 난정(蘭亭)의 유상곡수(流觴曲水)를 말함.
곡신 추장(谷神酋長) : 곡신은 무형(無形) 무해(無骸) 무역(無逆) 무위(無違)의 묘도(妙道)를 비유한 말. 老子文. 추장은 오랑캐나 도적의 우두머리를 이르는 말인데, 여기서는 노(老)․불(佛) 같은 異端의 무리로서 道를 깨쳤다하여 저들의 추앙을 받는 사람을 이름이다.
곡역후(曲逆侯) : 한(漢) 진평(陳平)의 봉호(封號). 진평이 교사(郊社)의 재(宰)가 되어 고기 나누기를 매우 고르게 하자, 부로(父老)들이 모두 갸륵하게 여겼는데, 그는 천하를 다스리더라도 이 고기 나누는 것과 같이 하겠다고 했다.
곡좌(曲座) : 고려 시대 도병마사(都兵馬使)의 합좌(合座) 때에 수상(首相)이 앉는 자리.
○ 首相至 則亞相以下 皆下庭東向上北以迎之 首相西向對揖 然後升堂拜揖 亦如前儀 首相獨座於東 謂之曲座 櫟翁稗說, 東史綱目 十二上 忠烈王五年 所引
곡직과 횡사 : 굽고 곧음과 가로 세로를 말함. 송 나라 소옹(邵雍)이 하도낙서(河圖洛書)를 풀이하면서 서로 연결되고 유통되어 횡사곡직에 모두 통하여 하도낙서가 피차 구분이 없다고 한다. 易學啓蒙 卷一
곤(鯀) : 우(禹)의 아버지 이름. 요(堯) 임금 때 9년 홍수(洪水)에 치수를 잘못했다는 죄로 우산(羽山)에 유폐(幽閉)되었음.
곤강(崑崗) : 아름다운 옥(玉)이 많이 난다는 중국 서방(西方)에 있는 산 이름.
곤강지맹염(昆岡之猛焰) : 곤강은 옥(玉)이 나는 산인데 이 산에 불이 붙으면 옥과 돌이 함께 탄다[玉石俱焚]는 뜻으로, 선악을 구분하지 않는다는 뜻. 書經 胤征
곤괘(困卦) : 태괘(兌卦)와 감괘(坎卦)를 합친 것.
곤명(昆明) : 섬서성(陝西省) 장안현(長安縣) 서남쪽에 있는 곤명지(昆明池)를 가리킨다. 한 나라 무제(武帝)가 인도로 통하려 함을 방해하는 곤명이(昆明夷)를 가리킨다. 한 나라 무제(武帝)가 인도로 통하려 함을 방해하는 곤명이(昆明夷)를 치려고, 이 못을 파서 수전(水戰)훈련을 시켰다. 운남(雲南)의 곤명지를 본따서 만들었다고 한다. 漢書 武帝紀
곤명생겁회(昆明生劫灰) : 겁회는 불교에서 말하는, 세계가 파멸할 때 일어난다는 큰 불의 재. 한무제(漢武帝)가 곤명지를 파는데 밑에서 흑회(黑會)가 나와 동방삭(東方朔)에게 물어도 몰랐다. 후에 서역(西域)의 중이 와서 알아보니, 천지가 다 타고 남은 재라고 했다 한다.
곤명지(昆明池) : 섬서성에 있는 못 이름. 한 무제가 여기서 군사들로 하여금 수전(水戰)을 익히게 했다. 운남의 곤명지를 본따서 만들었음.
곤방(棍棒) : 단단한 나무로 만든 길이 7척의 막대기 끝에 2촌 길이의 날이 붙어 있어, 치고 누르고 찌르는 등 여러 가지로 쓸 수 있는 무기. 또 그 것을 쓰는 무예(武藝)
곤수(閫帥) : 지방의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와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
곤양(昆陽) : 곤양은 지금의 하남성(河南省)의 한 현명(縣名). 유수(劉秀: 뒤의 후한 광무제(光武帝)임)가 곤양․정릉(定陵)․언(郾)을 쳐 이기매, 왕망(王莽)이 산동(山東)으로 군사를 보내며 그 때 호표․서상(虎豹犀象) 따위를 몰아 병세(兵勢)를 돕게 하였는데, 그 군사는 백여 만을 호칭하고 정기(旌旗)는 천리에 이음. 한(漢)의 여러 장수가 그 성한 군사를 보고 다 도망하여 곤양에 들어가 흩어지려 하는데, 수가 스스로 결사대 3천을 거느리고 나아가 중견(中堅)을 치니 적진이 어지러워지매, 한병이 여세를 몰아 성안의 군사도 나와 합세하여 치니 외치는 소리가 천지를 흔들었음. 망의 군사가 크게 궤멸(潰滅)하여 달아나는데, 마침 큰 뇌우(雷雨)가 쏟아져 호․포․서․상 등도 겁이나 다리를 떨었다는 고사.
곤양지전(昆陽之戰) : 한 나라 광무제(光武帝)가 왕망(王莽)의 백만 대군을 깨뜨린 싸움으로, 곤양은 하남성에 있다.
곤잠(鯤岑) : 장수하는 것을 뜻한다. 莊子 逍遙遊에 “북명(北溟)에 곤(鯤)이란 고기가 있는데, 그 크기가 몇 천 리나 되는지 모른다.”고 하였다.
곤재 정씨(困齋鄭氏) : 이름은 개청(介淸), 본관은 고성(固城), 자는 의백(義伯). 조선 선조 때 문인이며 학자. 저서에는 「곤재우득록(困齋愚得錄)」이 있음.
곤지(困知) : 어렵게 배워서 안다는 뜻. 「중용(中庸)」 제 20장에 “더러는 나면서부터 알고, 더러는 배워서 알고, 더러는 어렵게 배워서 안다.”하였다.
곤지기(困知記) ; 「곤지기」는 명의 나정암(羅整菴), 이름은 흠순(欽順)의 저술이다. 그는 양명학(陽明學)을 비판하였고 그의 주기적(主氣的) 이기설(理氣說)은 우리 명․선(明宣)대의 도학자들에게 영향하였으며 특히 노수신(盧守愼)은 그의 인심도심설(人心道心說)을 받아들여 퇴계(退溪)․일재(一齋) 등과 논쟁을 한 바 있었다. 一齋集․退溪集․蘇齋集․河西集
곤직(袞職) : 임금의 직책. 또는 임금을 보필하는 삼공(三公)의 직책이라고도 함.
곤지기론(困知記論) : 노소재는 곤지기를 옳다고 하였으므로 선생이 그의 잘못을 통박하였다. 그후 무진년(戊辰年) 5월 노소재와 또다시 「곤지기」의 내용을 논하면서 그것이 옳은 것 같으나 잘못되었음을 논척하였으며, 기사년(己巳年)에는 곤지기론을 지어 논변하였다. 이 내용은 「眉巖日記」에 자세히 보인다.
곤포월폄(袞褒鉞貶) : 곤월은 화곤(華袞)과 부월(鈇鉞)의 약칭으로 곧 비평을 하는 데 쓰이는 말. 범영(范寧)의 春秋傳序에 “한 글자의 칭찬이 화근보다 낫고, 한 글자의 꾸지람이 부월보다 엄하다.”하였다.
곤해 : 곤은 크기가 수천리나 된다는 물고기로서 큰 바다를 말함. 원대한 앞 길에 비유한 것임. 莊子 逍遙遊
곤후함장(坤厚含藏) : 주역 坤卦에 “坤은 厚德으로 含藏한다”하였다.
골돌화(榾 火) : 숯의 대용으로 나무 토막을 잘라 쓰는 것임. 골돌(榾 )은 골돌(榾柮)이라고도 씀.
골륜탄조(鶻圇呑棗) : 골륜(鶻圇)은 곧 혼륜(渾淪)의 뜻이다. 음식물을 씹지 않고 그냥 넘기는 것을 골륜탄이라 하는데, 대추를 씹지 않고 그냥 삼키면 전혀 맛을 알 수 없듯이 학문을 강론하면서 조리를 분석하지 않고 두리뭉실 넘겨 정확한 뜻을 모른다는 말이다.
골진[汨陳] : 「서경」 홍범(洪範)에, “오행의 배열을 어지럽힌다.”[汨陳其五行]라 보임.
공거(公據) : 記明書
공거대조(公車待詔) : 한 나라 때에 선비들의 올리는 글을 접수하는 곳을 공거(公車)라 하고, 글을 올린 뒤에 회보를 기다리는 것을 대조(待詔)라 한다. 공거란 것은 천하에 불러 올리는 사람을 공거의 수레로 실어 올리므로 칭한 것인데, 후세에 서울에 와서 시험보는 것을 공거라 한다.
공곡(空谷) : 큰 골짜기.「시경(詩經)」 백구(白駒)에 “하얀 망아지가 저 공곡에 있으니”라 하였는데, 백구편은 주 선왕(周宣王)이, 어진이가 산야로 떠나는 것을 말리지 못함을 풍자한 시라고 한다.
공곡지구(空谷之駒) : 은거를 뜻한다. 詩經 白駒에 “교교한 백구가 저 공곡에 있도다.”하였는데, 그 주에 현자(賢者)가 떠나는 것을 만류할 수 없으므로, 그가 백구를 타고 공곡으로 들어가는 것을 서운히 여기는 것이라 하였다.
공공(共工) : 「서경(書經)」 요전(堯典)의 정주(鄭註)에는, “공공은 물을 다스리는 벼슬 이름이다. 그 지명은 듣지 못했다.” [共工 水官名 其氏名未聞]했고, 순전(舜典)에는, “공공을 유주로 귀양보냈다.”[流共工于幽洲] 했음.
공공(蛩蛩)과 궐(蟨) : 서로 의지함을 말함. 공공은 공공거허(蛩蛩巨虛)라는 잘 달리는 짐승이고 궐(蟨)은 앞발은 쥐의 발 같고 뒷발은 토끼의 다리와 같아서 잘 달리지 못하므로 공공이 늘 궐을 위해 먹이를 구해주고 급한 일이 있으면 업고 달아난다고 함. 淮南子 道應訓
공공씨(共工氏) : 공공씨(共工氏)가 전욱(顓頊)과 싸우다가 성이 나서 부주산(不周山)을 머리로 받으매 하늘 기둥이 꺾어져 하늘은 서북으로 기울고 땅은 동남으로 꺼졌다 함.
공공촉불주(共工觸不周) : 「열자(列子)」에, “공공씨(共工氏)가 전욱(顓頊)과 싸워서 성이 나서 머리가 부주산(不周山)에 부딪쳐서 천주(天柱)를 꺾었다.”하였음.
공광지고사(孔光之故事) : 한(漢) 평제(平帝) 때 태후(太后)가 왕망(王莽)에게 정사를 맡겨 그의 권세가 날로 커가므로 태사(太師) 공광은 병을 핑계하고 벼슬을 사양하니, 이에 태9후는 궤장(几杖)을 내려 성중(省中)에서 궤장을 사용하도록 하였다. 그런 후에 10일에 한번씩 입조(入朝)하고 나머지는 집에서 자양(自養)하며, 그 속관(屬官)들은 항상 그 직무를 광의 집으로 가져가게 하였다. 漢書 卷八十一 孔光傳
공교(公僑) : 정자산(鄭子産). 그가 사명(使命)에 능했음. 左傳
공궁(公宮) : 중국 궁성제도
공근(孔僅) : 弘羊
공덕장(孔德璋) : 육조(六朝)시대에 주옹(周翁)이 처음에 종산(鍾山)에 고상한 처사(處士)로 있다가 뒤에 부름을 받아 벼슬하였는데, 지방에 수령(守令)으로 가면서 고향에 한 번 들리려 하니, 그의 친구 공덕장(孔德璋)이 북산이문(北山移文)을 지어 종산(鍾山)의 신령을 대신하여 주옹을 오지 못하게 조롱하였다. 명추(鳴騶)니 원학(猿鶴)이니 하는 것은 모두 북산이문 중에 있는 문구(文句)다.
공도보(孔道輔) : 송 태종(宋太宗)~인종(仁宗) 연간의 정치인. 자는 원노(原魯). 좌정언(左正言)․권어사중승(權御史中丞) 등을 지냈다. 매우 강직하여 일을 간(諫)함에 꺼림이 없었다. 공자(孔子)의 45대 손. 宋史 二九七
공동(崆峒) : 서울을 말함. 옛사람은 북극성이 하늘 중앙에 있고 북극의 아래는 공동(崆峒)이라고 여겼는데, 낙양(洛陽)은 땅 중앙에 위치하므로 낙양을 공동이라고 하였음. 중국의 낙양은 우리 나라의 서울과 같음.
「공동자(空同子)」 : 명(明)의 이몽양(李夢陽)이, 양웅(揚雄)의 「법언(法言)」을 모방하여 유학(儒學)을 천명해 놓은 책. 공동자는 그의 호(號)이다.
공두(栱斗) : 기둥 꼭대기에 물건을 받치도록 둥그렇게 만들어 붙인 것, 그런 형상의 것을 포개 올려서 지주 대신으로 한 것이다.
공려(公閭) : ⇒ 가충(賈充)
공명(孔明) : 제갈량(諸葛亮)을 말함.
공명사당(孔明祠堂) : ⇒ 정형(井陘)
공명첩(空名帖) : 국가에 관직을 많이 팔아 먹기 위하여 아무 관직을 임명하는 첩(帖)에 사람의 성명을 기입하지 않고 비워 둔채로[空名] 사방으로 나누어 보내어 값을 내는 사람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성명을 기입하여 임명한다. 이것이 공명첩이다.
공명축(空名𨋀) : 벼슬을 주는 사령장(辭令狀)에 姓名을 쓰지 않은 것을 空名𨋀이라 하는 데 韓琦가 宦官인 임수충(任守忠)을 밖으로 내쫓고자 하여 별안간 지방 관리로 임명할 공명축을 가져와서 임수충의 이름을 기입하여 곧 지방으로 내보내었다.
공목(公木) : 공목(公木)은 대마도(對馬島)와의 공무역(公貿易)에 사용하는 무명, 권현당(權現堂)은 덕천 가강(德川家康)의 원당(原堂). 권현당의 제사 밑천 명목으로 공무역(公貿易)을 허락해 준 무명. 대마도에서 동․납․단목(丹木)․흑각(黑角) 등을 우리 나라에 헌납하고 대가를 받아 가지고 돌아갔다. 通文館志 年例送使, 春官志
공목관(孔目官) : 文書 맡은 관리.
공방(攻防) : 진(晋)나라 때 노포(魯褒)가 전신론(錢身論)을 짓기를 「지금 사람들이 돈을 좋아하여 「孔方」이라 자[字]를 짓고 형님이라 부른다. 金門을 헤치고 자달에 들어 간다」 하였다.
공백지처 서우백주(共伯之妻 誓于柏舟) : 「시경」의 한편. 衛 나라 세자 공백(共伯)이 일찍 죽으므로 그 처가 수절하였는데, 부모가 억지로 재가시키려 하니, 맹세코 거절하여 노래를 지었는데, 그 중에, “어즈버 그이뿐 내 임이시가 죽어도 딴 마음 아니 먹노라[見維我儀之死失廉他]”하였다.
공번(公反) : 공변됨․공평(公平)․공정(公正)․공공(公共) 등, 곧 무사(無私)․비사(非私)의 뜻. 이것을 이두(吏讀)로 보고 ‘고로’ 또는 ‘고루’로 읽는 것은 근거가 희박하여 받아들이기 어려우며, 아래의 예문에서도 명사의 관형용법(冠形用法)임이 분명하므로 부사로 볼 수 없다.
○ 下金淨獄中上疏 其略曰······不一問公反事干問鄭熊及金允浩等三人 夫熊 急於自脫 而不顧人之枉死 允浩等三人 奸細無知 但承奉主守之言 不計事之虛實 是皆自前日務爲構捏陷臣之人 而非有公反事干參其間 其踵前誣罔 蓋無足怪 中宗實錄 十五年六月辛未
○ 若同居尊長 應分家財 不均平者 罪亦如之 同居族長等戈只 公反家産乙 平均分執不冬爲在乙良 罪同 大明律直解 戶律 卑幼私擅用財
공법(貢法) : 전부(田賦) 이외에 그 지방 특산물을 시기에 따라서 나라에 바치도록 마련한 법.
공벽지문[공벽의 글] : 한 무제(漢武帝) 말년, 노(魯)의 공왕(恭王)이 공자(孔子)의 구택(舊宅)을 헐고 그 궁(宮)을 넓히려 하다가 발견했다는 고문(古文)으로 된 경전(經典). 「고문상서(고문상서(古文尙書)」)․「예기(禮記)」․「논어(論語)」․「효경(孝經)」 등 수십 종에 달했다 한다.
공북(拱北) : 제후들이 천자에게 귀향(歸向)하는 것을 이름. 공신(拱辰). 공자는, “정사를 덕으로써 하는 것이 비유하건대, 북신이 그 자리에 있으면 모든 별이 귀향하는 것과 같다.”[爲政以德 譬如北辰 居其所 而衆星 共之]하였다. 論語 爲政
공사(供辭) : 죄인이 자백한 말.
공산(公山) : 계씨(季氏)의 재신(宰臣) 공산 불요(公山弗擾)를 말함. 「논어」양화편에, “公山不擾 以費畔召 子欲往”이라 보임.
공산 불뉴(公山弗狃) : 계씨(季氏)의 재(宰)로서 비읍(費邑)에서 반란을 일으켜 계환자(季桓子)를 죽이려 하다가 실패하였다.
공상 친잠(公桑親蠶) : 공상은 천자 또는 제후의 상전(桑田)임. 친잠은 후비(后妃)가 몸소 누에 치는 것. 「예기」 제의(祭義)에, “古者 天子諸侯 必有公桑蠶室”이라는 말이 보임.
공생(貢生) : ⇒ 우공(優貢)
공서적(公西赤) : 공자(孔子)의 제자. 자는 자화(子華). 이 말은 「논어」 선진(先進)에, “종묘(宗廟)의 제사와 제후들의 회동(會同) 같은 일에 예복을 갖춰 입고 소상(小相)이 되기를 원합니다.”하니, 공자가, “적이 겸손한 말로 소상이나 하겠다고 한다면 누가 큰 보필이 되겠느냐?[宗廟之事 如會同 端章甫 願爲小相焉······赤也爲之小 熟能爲之大]”라고 한 것을 인용하였음.
공선(貢船) : 조세(租稅)를 실은 배.
공선(供饍) : 임금의 반찬으로 바침.
공소지난(恭昭之難) : 태조(太祖)의 아들 방번(芳蕃)의 시(諡)는 소도(昭悼)이니 왕자(王子)의 난을 말함.
공손교(公孫僑)와 양설힐(羊舌●) : 공손교는 춘추 시대 정 나라 대부로 교린(交隣)에 능숙하였고, 양설 힐은 춘추시대 진(晉) 나라 사람으로 일명 숙힐(叔●)이라 하는데 예․양(禮․讓)으로 나라를 다스렸다. 春秋左傳 襄公十六年
공손석부(公孫碩膚) : 손(孫)은 둔(遁) 또는 손(遜), 석(碩)은 대(大), 부(膚)는 미(美)의 뜻. 주공(周公)이 미덕(美德)을 가졌으면서도 유언비어를 만나면 그 자리를 떠나 동쪽에 가 있어 평상시와 조금도 다른 바가 없었음을 뜻한다. 詩經 幽風 狼跋
공손연(公孫淵) : 삼국 시대 연왕(燕王)의 이름. 그의 할아버지 공손도(公孫度)가 요동 태수(遼東太守)로서 자칭 요동후(遼東候)라고 한 후부터 자칭 연왕이라 하였음.
공손지합(公孫之閤) 한(漢) 무제(武帝) 때의 정승 공손홍(公孫弘)이 객관을 짓고 동각(東閣)을 열어 현인들을 맞아들인 겻을 비유한 것이다. 漢書 卷五十八 公孫弘傳
공손추지혹(公孫丑之惑) : 공손 추가, 소반(小弁)의 시가 소인(小人)의 시라는 고자(高子)의 말을 듣고 맹자에게 물으니, 맹자는, 소반의 시에서 원망한 것은 친(親)을 친애(親愛)하는 것이니 곧 인(仁) 이라 하였다. 孟子 告子下
공송(工誦) : 樂工이 시편을 외어서 임금에게 들려 주는 것
공수전(公須田) : 중앙에서 지방에 나가는 관리를 접대하는 비용에 충당하기 위해 각 부(府)․군(郡)․현(縣)에 지정해서 잘라 준 전지.
공시당상(貢市堂上) : 의정부의 당상관의 하나로 공계(貢契), 시전(市廛)에 관한 사무를 관장함.
공신사패비(功臣賜牌婢) : 공신이란 명목으로 나라에서 하사 받은 종. 사패란 궁가(宮家)나 공신에게 나라에서 산림(山林)․토지․노비(奴婢) 등을 내려주던 것을 말한다.
공승(龔勝) : 한(漢) 나라 팽성(彭城) 사람으로 자는 군실(君實), 한애제(漢哀帝) 때 간대부(諫大夫)․광록대부(光錄大夫)를 역임했는데, 왕망(王莽)이 집정하자 물러났다. 왕망이 자주 사람을 보내 초빙했지만 끝내 불응, 문인들에게 염상(斂喪) 기구 준비를 명령한 다음 그대로 단식(斷食) 하여 14일 만에 죽었으니, 향년은 79세.
공신(拱辰) → 拱北
공심위상(公心爲上) : 이 말은 남중(南中)을 정벌할 때 마속(馬謖)이 제갈 양에서 답한 말 중에, “용병(用兵)의 도(道)는 마음을 공격하는 것이 상책이고 성(城)을 치는 것은 하책이며, 심전(心戰)이 상책이고 병전(兵戰)은 하책이니, 공은 그들의 마음을 복종시키기 바랍니다.”[用兵之道 攻心爲上 攻城爲下 心戰爲上 兵戰爲下 願公服其心] 한 것을 말함. <襄陽記 三國志 蜀志 馬謖傳注> 마속은 촉한(蜀漢)의 장수로 재략이 뛰어나 중용되었으나 가정(街亭)의 싸움에서 패하여, 제갈 양에게 처형됨. 읍참마속(泣斬馬謖)
공안(供案) : 罪人의 공술서
공안국(孔安國) : 전한(前漢)의 대유(大儒)로 자는 자국(子國). 공자의 12대손임. 신공(申公)에게 「시」를 배웠고 복생(伏生)에게 「상서(尙書)」를 배웠다. 공벽(孔壁)에서 나온 고문(古文)으로 풀어 읽었으므로 칙명을 받아 「서전(書傳)」 58편과 「효경전(孝經傳)」․「論語解」를 지었다.
공영달(孔穎達) : 당 나라 사람. 태종의 명을 받고 「오경정의(五經正義)」를 찬하였다. 唐書百九十八․舊唐書百五十
공원(貢院) : 試場
공원은교(公遠銀橋) : 당(唐) 도사(道士) 나공원(羅公遠)이 중추 계장(桂杖)을 공중에 던져 은다리를 만들어 현종(玄宗)과 함께 월궁(月宮)에 올라 선녀들의 춤을 구경하고 예상우의곡(霓裳羽衣曲)을 듣고 돌아왔다 함.
공유(公劉) → 후직
공융(孔融) : 후한의 학자. 자는 문거(文擧). 건안칠자(建安七子)의 한 사람으로 헌제(獻帝) 때 북해(北海)의 상(相)이 되어 학교를 세우고 유학(儒學)을 가르쳤음. 한실(漢室)을 구하고자 했으나 성공 못하고, 누차 조조(曹操)를 간(諫)하다가 미움을 사서 피살되었음. 저서에 「공북해집(孔北海集)」이 있음.
공의전(恭懿殿) : 옛적 한 나라에서 태후를 모신 궁 이름인데, 태후나 대비 모신 곳의 대명사가 되었다.
공인(貢人) : 나라에 공물(貢物)을 먼저 바치고 나중에 비싼 값으로 백성에게서 타내는 사람.
공임(公壬)
너무도 흉악한 마음을 내포하는 것, 또는 그런 사람. 「서경」 고요모(皐陶謨)에 “어찌 말을 교묘하게 하고 기색을 좋게만 하는 공임을 두려워하리오”[何畏乎巧言令色公壬]하였음.
공자불모인장(恭者不侮人章) 「맹자(孟子)」 이루(離婁)에 있는 말로, 공손한 사람은 남을 업신여기지 않는다는 뜻.
공자비(公子比) → 장화대(章華臺)
공자세가(孔子世家) : 「사기(史記)」 속의 한 편명. 송나라 왕안석이 공자는 세가에 넣어도 더 높아지지 않고 열전에 넣어도 더 낮아지지 않는다고 여기고 사마 천의 의견을 비난하면서 독공자세가(讀孔子世家)라는 글을 썼다.
공자(孔子)의 애(哀)․락(樂) : 안연(顔淵)이 죽었을 적에 애통해한 것과, 민자(閔子)․자로(子路)․염유(冉有)․자공(子貢)이 옆에서 모시고 있을 때 공자가 기뻐한 것을 말한다.論語 先進
공자주소정묘(孔子誅少正卯) : 노 정공(魯定公) 14년에 공자가 대사구(大司寇)가 되어 국정(國政)을 맡아 하면서 난정자(亂政者)인 대부(大夫) 소정 묘를 죽인 일을 말한다.사기 孔子世家
공자흔시(公子欣時) : 춘추 시대 조(曹) 나라 공자 흔시(公子欣時)의 고사. 그의 자가 자장인데 그는 조나라 선공(宣公)이 죽고, 공자 부추(公子負芻)가 태자를 죽이고 스스로 임금이 되자, 다른 나라로 망명하려 했다. 그러자 나라 사람들이 모두 그를 따르려고 했다. 겁이 난 성공(成公 : 負芻)이 가지 못하게 만류하여 나라 안에 있게 했는데, 후에 제후들이 성공을 토벌하고 자장을 임금으로 삼으려 했다. 그러자 그는 사양하면서 말하기를 ‘옛 기록에 성(聖)은 절(節)에 통달한 것이요, 다음은 절을 지키는 것이요, 제일 아래는 실절(失節)하는 것이라 했으니 임금이 되는 것은 나의 절이 아니다.’ 했음.左傳 成公 十三年
공장(公狀) : 수령(守令)․찰방(察訪) 등이 공식으로 상관을 만날 때 먼저 명함을 써서 드리는 것.
공장(孔璋) : 당(唐) 나라 현종(玄宗) 때 이옹(李邕)이 옥에 갇혀 죽게 되자, 공장이 포의(布衣)의 신분으로, “옹(邕)은 나라에 공이 있지만 신(臣)은 살아도 세상에 도움이 없으니 신을 대신 죽여 달라.”는 내용의 상소를 했다가 영남(嶺南)에 유배되어 죽었음.
공적(空寂) : 텅비고 고요함. 불교(佛敎)에서 말하는 우주 만물(宇宙萬物)의 그 실체(實體)가 모두 공이라는 것.
공정권서 : 공정은 정종(定宗)의 시호(諡號), 권서는 임시로 남을 대신하여 국사를 다스림. 「類選」 卷九上 經史篇 論史門.
공제(公除) : 왕이나 왕비등의 장사 때는 일반 공무를 36일간 중지하고 조의를 표하는 것을 말함.
공족(公族) : 종친(宗親)을 말함.
공좌부(公座簿) : 지금의 출석부와 같으며, 어떤 공석(公席)에 참석했을 때 성명을 기록하는 방명록, 또는 재명록(載名錄)을 말함. 여기서의 공좌(公座)는 “관리가 공무(公務)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을 말한다.
공조연(功曹掾) : 공조는 한(漢)의 관명. 서사(書史)를 맡은 하급 관리. 연은 보좌관, 또는 속관(屬官). 즉, 지방 군현의 서사를 맡은 하급 관리.
공죄(公罪) : 사사로운 나쁜 마음으로 지은 죄가 아니고 공무상(公務上)으로 실수한 것을 말한다.
고죽국(孤竹國) : 고죽국은 백이․숙제가 은 나라에서 봉(封)을 받은 나라인데, 그들은 주의 무왕이 은의 주왕을 토벌하는 것을 반대하고 수양산(首陽山)에 숨었다가 끝내는 아사(餓死)한 사람이다. 史記 卷 61 伯夷列傳
공중니(孔仲尼) : 공자(孔子)의 자를 가리킴. 공자가 노(魯) 나라 사구(司寇)로 부임한 지 7일 만에 소정묘(少正卯)를 처형시켰는데 어진 신하를 죽였다는 비난이 일어나자, 공자께서 그의 열 가지 죄목을 들어 모든 비난을 가라앉게 하였다. 孔子家語
공총자(孔叢子) : 공자(孔子) 및 그 일족(一族)에 관한 것을 서술한 책 이름으로 전 7권이 있음. 한(漢) 나라 공부(孔鮒)의 찬(撰)이라고 전하나 후인(後人)의 위찬(僞撰)으로 보기도 한다.
공치규(孔穉圭) → 산령미이문(山灵未移文)
공친(功親) : 복을 입는 친척으로 대공친(大功親)과 소공친(小功親)의 구별이 있다. 대공친은 9개월, 소공친은 5개월의 복을 입는다.
공탁(公槖) : 공물(公物)을 넣어두는 그릇.
공택(公擇) : 송(宋)나라 이상(李常)의 자임. 그는 산방(山房)에 수천 권 서책을 쌓아 글읽는 이에게 공개했는데, 소동파(蘇東坡)는 「이씨산방장서기(李氏山房藏書記)」를 썼음.
공학군(控鶴軍) : 임금을 숙위(宿衛)하는 군사
공해전(公廨田) : 고려 때 국가기관 또는 왕실 궁원(宮院)의 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둔 토지. 중앙에는 일반 관청을 비롯하여 능침(陵寢)․창고․궁사(宮司) 등에 이것이 설정되었고 지방에도 모두 설정하였다. 이에 따른 것은, 지방 관리 봉급 및 기타 경비에 충당할 공수전, 지방 관청에서 쓰는 종이․붓․먹, 기타 잡비에 충당할 지전, 관․역의 장(長)이 공비(公費)에 충당할 장전 등의 구분이 있었다. 高麗史 食貨志
공험성(公嶮城) : 「신증동국여지승람」 회령도호부(會寧都護府) 고적에 공험진(公嶮鎭)이 보이고, 그 주에는, “自高靈鎭渡豆滿江 蝓古羅耳 歷吾童站英哥站 至蘇下江 江濱有公嶮鎭古基”라는 기록이 보임.
공형(公兄) : 삼공형(三公兄)의 준말. 각 고을의 호장(戶長)․이방(吏房)․수형리(首刑吏)의 세 관속(官屬)을 말함.
공홍방백(公洪方伯) : 당시에는 충청도를 공홍도(公洪道)로 개칭(改稱)하였으므로 충청감사를 공홍방백이라 한 것임.
공화지란(共和之亂) : 주 여왕(周厲王)이 무도한 정치를 하다가 난리를 만나 체(彘)로 출분(出奔)했을 때, 공백화(共伯和)가 제후의 권유로 14년간 천자의 일을 섭행(攝行)한 일을 말한다. 공화(公和)는 공경들이 서로 화합하여 함께 정사 보는 것을 말하는데, 「사기(史記)」에는 “주공(周公)․소공(召公)이 협의하여 정사를 행하였다”고 되었으나 사실이 맞지 않았다는 설이 있다. 주 선왕이 그 뒤를 이어 즉위하여 주 나라를 중흥시켰다. 史記 卷四 周本紀 注, 竹書紀年
공황(恭皇) : 한(漢) 나라 애제(哀帝)는 그 아버지 정도왕(定陶王)을 높여 공황으로 삼았다.
공후(箜篌) : ① 현악(絃樂)의 일종으로서 백제금(百濟琴)이라고도 한다. 이 공후(箜篌)에는 수공후(竪箜篌)․와공후(臥箜篌)․봉수공후(鳳首箜篌)가 있다. 수공후는 서구(西歐)의 하프와 비슷하고 와공후는 비파류이다. 通典에는 “그 모양은 비파와 같으며 굽었고 길고 현(絃)으로 되어 있으며, 가슴에 대고 두 손으로 탄다.”하였다. ② 배를 말한다. 「주역(周易)」 하경(下經) 풍뢰 익괘(風雷益卦) 단사(彖辭)에 “큰 내를 건너려면 배[木道]라야 한다”한 데서 나온 말. 周易 下經 益
과(窠) ① 관리의 정원 또는 원수의 뜻이니, 가령 과결(窠缺)이라면 결원이라는 뜻이며, 과착(窠窄)이라면 정원수가 적다는 뜻이다. ② 관리의 자격 또는 진출하는 길이라는 뜻이니 가령 출신과(出身窠)는 과거 합격자로 등용하는 자격이란 뜻이며, 무예청과는 무예청 근무자를 등용하는 길이라고 하는 뜻이다.
과경(過庚) : 삼복(三伏)은 언제나 경일(庚日)이므로 과경이라 하였음.
과구(課口) : 세금을 납부하는 사람
과기(瓜期) : 일년의 임기(任期)를 말한 것임. 「좌전(左傳)」에 “제후(齊侯)가 연칭(連稱) 관지부(管至父)로 하여금 규구(葵丘)에 가 지키게 하면서 말하기를 ‘외를 먹는 때에 가니 외 먹을 때가 되면 돌아오라.’했다.”하였음.
과노제묘(過魯祭廟) → 식마논도
과두(科頭) : 머리에 갓이나 건을 쓰지 않고 맨머리로 있는 것.
과두(蝌蚪) : 옛날 창힐(倉頡)이 지었다는 서체(書體). 글자 모양이 개구리와 올챙이처럼 되었다는 것.
과리지혐(瓜李之嫌) : 외밭에서 신끈을 매고 오얏나무 밑에서 갓을 바룸으로 남에게 사실 아닌 의심을 받음.
과만(瓜滿) : 제 양공(齊襄公)이 연칭(連稱)․관지보(管至父)를 시켜 한 부대를 인솔하고 규구(葵丘)에 수자리 살라 하였는데, 그 기한을 물으니 제 양공이 마침 참외를 먹으면서 ‘지금 참외가 한창이니 명년 이 때로 만기(滿期)를 정한다.’ 하였다. 다음해 참외철이 되었으나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으므로 마침내 반란을 일으켜 제 양공을 살해하였다.
과부(夸父) : 신(神)의 이름인데, 해그림자를 좆아갈 만한 빠른 걸음을 가졌다 함.
과부자(寡婦子) : 「예기(禮記)」 방기(坊記) 편에 “子曰寡婦之子 不有見焉 則不友也 君子以辟遠也”라 하였음.
과부청(寡婦淸) : 진 시황(秦 始皇)때의 부자였던 과부, 이름이 청(淸). 파촉(巴蜀)의 과부 청(淸)은 그 선대의 재물을 받아 잘 지키고 재물을 써서 스스로를 호위하여 침범을 당하지 않으매, 진 시황이 정부(貞婦)라 하여 객례(客禮)로 대접하고, 여회청대(女懷淸臺)를 쌓았음.
과분(瓜分) : 오이를 쪼개는 것처럼 땅을 신하에게 나누어 줌.
과식(科式) : 수 양제(隋煬帝)가 진사과(進士科)를 제정하여 시부(詩賦)․책론(策論)의 시험을 과정(課定)하였으니, 이것이 과거의 형식을 갖춘 시호임.
과아(夸娥) : 옛날에 과아(夸娥)가 산을 옮겨 놓았다는 전설이 있다.
과옹(撾翁) : 漢나라 第五倫이 벼슬을 하는데, 公正하여 사정이 없기로 유명하였다. 임금이 묻기를, “남들이 말하기를 자네가 법을 쓰는 데에 사정이 없어서, 장인이 법을 범하므로 매를 때렸다 하니 사실인가” 하였다. 그는 대답하기를, “臣이 장가를 세 번 갔으나 모두 아비 없는 딸이 었습니다.”하였다.
과전(科田) : 조선 태조가 권문 세가(權門勢家)의 사유전지(私有田地)를 혁파해서 경기(京畿) 전지를 각급 관원(各級官員)에게 갈라주던 전지.
과제(課製) : 課製는 成均館에서 月倒의 試驗으로 글을 짓게 하는 것으로 老子와 莊子에서 問題를 내는 것은 당시의 위법이었다.
과처(寡妻) : 과처(寡妻)의 과(寡)자는 덕이 적다는 뜻이니, 곧 덕이 적은 나의 아내라는 겸사다. 주주에도 “寡德之妻 謙辭也”라 하였다.
과축(薖軸) : 과축은 현인의 은일(隱逸)을 비유한 것이다. 시경 위풍(衛風) 고반장(考槃章)에, “考槃在阿 碩人之薖···碩人之薖···”이 있고, 잔주에 과는 기의(飢意), 축은 병(病)이라 하였으며, 왕융시서(王融詩序)에는 “薖軸之病己消”라 하였고, 주에는 현인이 은거(隱居)하여 병곤(病困)을 떠남을 말한다 하였다.
과하마(果下馬) : 과일나무 밑으로 타고 지나 갈 수 있는 작은 종류의 말이란 뜻.
과혁(裹革) : 한서(漢書) 마원전(馬援傳)에, “남아가 마땅히 전장에 나가 싸워 시체로 말가죽에 싸여 돌아와야지 어찌 아녀자의 손에 죽을소냐”[男兒當以馬革裹尸還葬安可死於兒女手乎]하였음.
과호(課戶) : 과구(課口)가 있는 호, 즉 부세를 납부할 사람이 있는 호.
곽개(郭開) : 조 나라의 간인으로 장수 이목(李牧)을 조왕(趙王)에게 참소하여 죽인자. 이목이 죽자 멀지 않아 패자(覇者)가 될 조 나라는 진 나라에 멸망당했다. 漢書 卷五十馮唐傳
곽거(郭巨) : 후한(後漢) 때 사람으로 24 효(孝)중의 한 사람이다. 곽거는 집이 가난하였는데 노모를 모시고 있었다. 곽거의 어머니는 늘 자기의 음식을 3살 된 자식에게 주는 것이었다. 곽거가 자기의 처에게 하는 말이, “자식은 다시 얻을 수 있으나 어머니는 다시 얻을 수 없다.”하고, 자식을 땅에 묻고자 두 자 남짓 팠을 때에 황금 솥 하나가 갑자기 나타났다. 솥 위에는 하늘이 효자 곽거에게 주는 것이니 벼슬아치도 앗을 수 없고 남도 가질 수 없다.[天賜孝子郭巨官不得奪人不得取]라 써 있었다.
곽급(郭伋) → 하윤구리(河潤九里)
곽리종(郭理宗) : 곽공(郭公)은 예전 춘추시대에 괵공(㶁公)의 변음이다. 괵공이 나라의 임금으로 선한 사람을 선한 줄 알면서 등용하지 못하고, 악한 사람은 악한 줄 알면서 쫒지 못하여 결국 나라를 망하게 하였다. 이종(理宗)은 송(宋)나라 말년의 황제로 학문 특히 성리학을 잘 알지만, 간신들에게 미혹되어 나라를 망하게 하였다 한다.
곽박(郭璞) : 진(晋) 나라 사람. 자는 경순(景純). 원제(元帝) 때에 벼슬은 저작랑(著作郞)․상서랑(尙書郞)에 이르렀고 「이아(爾雅)」․「산해경(山海經)」․「목천자전(穆天子傳)」․「초사(楚詞)」 등을 주석했다. 晋書七十二․神仙傳九
곽분양(郭汾陽) : 당(唐)의 곽자의(郭子儀). 안녹산(安祿山)․사사명(史思明)의 난(亂)을 평정하여 그 공으로 분양왕(汾陽王)으로 봉해져, 세상에서 곽분양(郭汾陽)으로 일컫는다.
곽수경(郭守敬) : 원 나라 때의 천문학자. 수시력(授時曆)을 지음.
곽외(郭隗) : 전국 때 연소왕이 현인을 구하매 곽외가 소왕을 보고 천리마(千里馬)의 고사를 이끌어서 스스로 추천 등용되었다.
곽우․곽산․연왕(霍禹․霍山․燕王) : 한나라 宣王때에 霍禹․霍山 등은 燕王을 추대하고 反逆을 음모하였다.
곽자의(郭子儀) : 당 현종(唐玄宗) 때에 삭방 절도사(朔方節度使)가 되어 안녹산(安祿山)과 사사명(史思明)을 평정한 명장으로서, 뒤에 벼슬이 중서령(中書令)에 이르고 분양왕(汾陽王)에 봉해졌음.
곽태사(郭太史) : 곽수경(郭守敬). 원 나라 사람으로, 세조(世祖)의 명을 받고 중서좌승(中書左承) 허형(許衡) 등과 함께 누대(累代)의 역법을 참고 개선하고, 다시 일월성신의 소식 운행(消息運行)의 법을 측정하여 수시력(授時曆)을 만들었다.
곽해(郭解) : 전한 무제 때의 협객(俠客)으로 자(字)는 옹백(翁伯)이며 지현(軹縣) 출신. 신체가 왜소하였으나 호협(豪俠)을 좋아하여 증오하는 인물이 있으면 반드시 살해하곤 하였으나, 뒤에는 행실을 고쳐 공손하였으므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마침 그의 문객(門客)이 지현 출신의 유생(儒生)을 살해한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사실 곽해 자신은 그 사건과 무관하였으나 국법을 확립하여야 한다는 조정의 의논으로 대역무도죄(大逆無道罪)로 처형되었다. 그 후 春秋․戰國 시대로부터 유행하던 협객이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漢書 卷九十二 游俠列傳
곽흠(郭欽) : 후한(後漢) 왕망(王莽) 때 진외장군(塡外將軍)으로 유명한 자.
관각(館閣) → 대성
관개(冠盍) : 갓과 일산(日傘)을 말하는 데 벼슬한 사람을 가르키는 것이다.
관결(官結) : 조세(租稅)를 말한다. 결(結)은 토지 단위를 말한다. 4방 한 자를 파(把), 10파를 속(束), 10속을 부(負), 1박부를 결(結)이라 한다. 大典會通 戶典
관고(貫高) : 한 고조가 조왕 장오(趙王張敖)의 상(相)으로 삼았었는데, 장오를 위해 한 고조를 죽이려하다가 원가(怨家)들의 밀고로 투옥되었던 일이 있음.
관고(官誥) : 지금의 사령장(辭令狀)과 같은 것인데 다만 그 당시에는 임명하는 傳敎의 문장을 지어서 첨부하였다.
관고지변(貫高之變) : 한고조(漢高祖)가 조(趙) 나라를 지나가다 들렸는데 조상(趙相) 관고가 고조를 시해(弑害)할 음모를 하다가 발각되었는데 조왕(趙王) 장오(張敖)는 그 음모를 알지 못하였으므로 연좌(緣坐)되지 아니하였다.
관과(館課) : 문신들에게 시험을 보이는 월과(月課)「類選」 卷四上 人事篇五 致道門二
관광(瘝曠) : 벼슬아치가 병을 핑계해서 공무를 잘 살피지 않는 것. 또는 그 사람.
관구검(毋邱儉) : 위(魏) 나라 유주 자사(幽州刺史)로 동천왕 11년 갑자에 고구려를 침략해서 환도성(丸都城)을 함락하였음. 함락하였음.
관규여측(管窺蠡測) : 대통 구멍으로 하늘을 보고 전복껍질로 바닷물 양을 헤아린다는 말이다.
관남(關南) : 마천령 이남의 함경도.
관내후(關內候) : 경기(京畿 서울)에 있어서, 후(候) 라는 칭호(稱號)는 있어도 봉토(封土)는 없음. → 유현(劉玄)
관노(管輅) : 중국 삼국 시대 위(魏) 나라 사람. 「주역(周易)」․천문학․복서(「주역(周易)」․천문학․卜筮) 등에 밝았으며 특히 풍향을 보고 기후 점치리를 잘했다 함.
관단마 : 말 이름. 「후한서(後漢書)」에 “관단마와 하택거(下澤車)를 타다.”하였고, 주(註)에 ‘관(觀)은 느리다는 뜻’이라 하였음.
관례(冠禮) : 아이가 어른이 되는 예식. 남자는 상투를 짜서 갓을 쓰고 여자는 쪽을 찜. 유교에서는 원래 20세에 관례를 하고 혼례를 하는 것이나, 조혼(早婚)의 풍습이 성행하자 관례와 혼례를 겸하여 행하였다. 家禮冠禮條
관로(管輅) : 삼국 시대 위(魏) 나라 사람. 「주역」에 밝아 점을 잘 쳤음. 그는 자기가 48세 때에 남혼 여가를 보지 못할 것이라 하였는데, 과연 48세에 죽었음.
관룡방묘(關龍逄墓) → 정형(井陘)
관면(冠冕) : 우두머리를 말함.
관목황조(灌木黃鳥) : 詩經 周南 葛覃에 “黃鳥于飛 集于灌木 其鳴喈喈”라 하였음.
관반사(館伴使) : 이조 때 서울에 묵고 있는 외국의 사신을 접대하기 위하여 임시로 임명한 정3품 벼슬
관방집록(關防集錄)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의 편찬을 맡았던 이만운(李萬運 1736년 ~ ?)이 정조 때에 편집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관백장입(關伯藏入) : 그 땅에서 나오는 세금이 관백에게 들어감을 뜻하는데, 우리나라의 내수(內需) 또는 탕목읍(湯沐邑)과 비슷한 말임.
관부(灌夫) : 한 대의 무장으로 무제 때에 오(吳)나라를 쳐 용맹을 떨쳤으나 뒤에 실세(失勢)한 두영(竇嬰)과 날마다 교유했으며 사람됨이 호협(豪俠)하고 강직하며 술주정을 잘 했다. 뒤에 승상 전분의 좌석에서 주정을 부리며 좌중을 욕하여 분의 노여움을 사서 온 가족이 처형되었다.
관북(關北) : 마천령(摩天嶺) 이북의 함경도.
관복도(冠服圖) : 관복의 만듦새를 그린 그림. 이 그림은 지금 전해오지 않는다.
관색(貫索) 별이름.
관삭잔탁(貫槊殘拓) : 중국 남북조(南北朝)시대에 북방의 탁발씨(拓拔氏)의 위국(魏國)이 남방의 송나라를 칠 때에 온갖 잔폭(殘暴)한 짓을 다하여 어린애를 창 끝에 꿰어 희롱하였다.
관산(冠山) : 관산은 장흥(長興)의 별호로서 정인관 자신이 현재 장흥부사로 봉직 중임을 말함.
관성(붓대, 管城) : 붓의 일명이 관성자(管城子)임. 한유의 모영전(毛潁傳)에 보임.
관성자(管城子) → 도홍(陶泓)
관세은(關稅銀) : 육해(陸海) 각 관소(關所)에서 징수한 세은.
관수(館守) : 관수왜(館守倭) 또는 관수차왜(館守差倭)라고도 한다. 인조 17년(1639)에 대마도주 평의성(平義成 : 宗義成)이 조정에 요청하여 허락을 받아, 왜관(倭館)의 왜인 단속을 강화하기 위하여 두기 시작한 왜관의 우두머리. 增正交隣志 差倭
관숙(管叔) : 무왕이 죽고 어린 성왕(成王)이 즉위하자, 주공(周公)이 섭정하였는데, 성왕의 숙부들인 관숙(管叔)과 채숙(蔡叔)은 주공이 왕위를 엿보는 것으로 의심하여 주(紂)의 아들 무경(武庚)과 더불어 반란을 꾸몄다. 그래서 주공은 성왕의 명을 받들어 이들을 죄주었다. 史記 周本紀 ← 채숙
관승선(毌承宣) → 사대수(査大受)
관아재(觀我齋) : 숙종 때 사람 조영석(趙營祐)의 호. 문․서․화에 능하여 삼절(三絶)이란 칭호를 받았음.
관약(管籥) : 자물쇠와 열쇠
관어(觀魚濠) : 봉양현(鳳陽縣) 동쪽 관어대(觀魚臺 : 일명 장주대(莊周臺)) 아래에 있는 해자에 물고기가 노는 것을 보고 장자가 혜자(惠子)에게, ‘이것이 어락(魚樂)인저.’하자, 혜자가 ‘자네가 물고기가 아닌데 어찌 물고기의 낙을 아는가?’ 하니, 장자가 ‘자네가 내가 아닌데 어찌 내가 물고기의 낙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는가?’ 하였다 함. 莊子
관영(觀影) : 소식(蘇軾)이 전신(傳神)에 “觀虎頭云 傳形寫影 都在阿睹中 其次在觀頰”이라 했음.
관영(管寧) : 관영(管寧)은 삼국 시대 위(魏) 나라 주허(朱虛) 사람으로 자는 유안(幼安)이다. 어려서 화흠(華歆)과 자리를 함께 하여 글을 읽다가 화흠이 문밖으로 지나가는 벼슬아치를 보러가자 관영은 즉시 나와 자리를 나누어 앉아 그를 친구로 여기지 않았다. 한말(漢末) 황건적의 난 때 요동(遼東)으로 피난을 갔는데 따르는 자가 매우 많았으며 관영의 덕화에 백성들이 감화되어 다투거나 송사하는 일이 없었다. 난이 평정되자 본군으로 돌아갔는데 조정에서 누차 불렀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三國志魏志 十一 高士傳下
관옥(冠玉) : 「한서(漢書)」 진평전(陳平傳)에 있는 말. 마치 옥으로 꾸민 갓과 같아서 비록 밖에 나타나는 빛은 아름다우나 그 내용은 변변하지 못함을 이른 말이다.
관왕묘(關王廟) : 원래 관왕묘는 중국 삼국시대 촉한(蜀漢)의 무장 관우(關羽)를 모시기 위해 세운 묘로서, 일명 관제묘(關帝廟)라고도 한다. 관우를 신(神)으로 신봉하면 전시(戰時)에 관우가 나타나 적을 멸해 준다는 전설에서 건립되었으며, 우리나라에는 임진왜란시인 선조(宣祖) 31년 경상도 성주(星州)와 안동(安東)에 명군이 처음 세웠고, 이어 서울에도 동묘(東廟 : 지금 신설동에 있음)와 남묘(南廟)가 세워졌다. 여기서의 남관왕묘는 바로 남묘를 말하는데, 남대문 밖 도동(桃洞)에 명장(明將) 마귀(麻貴)가 관우 제사를 지낸 후, 선조 32년 왕명으로 묘를 세우고 「현령소덕무안왕묘(顯靈昭德武安王廟)」라 이름하여 춘․추로 장신(將臣)을 보내어 제사드렸으며 때로는 왕이 친림하기도 했다 한다. 1908년 향사(享祠) 정리 때 이를 폐지 했다. 漢京識略 參考 그런데 이 남관왕묘는 왕명을 받은 사신(使臣)들이 여기에 이르르면 일단 왕기(王畿)에 벗어나고 들어가는 의식절차를 차리는 것이 상례(常禮)인 듯하다. 그것은 김 역사 동사록(金譯士東槎錄) 해제 참조의 11월 16일조 귀경(歸京) 직전의 기사에 “到關王廟 換着紅團領節鉞 裨將以對先導 各行員役 隨後陪從······”이라고 한 것에서 관왕묘에 이르러 홍단령의 관복을 갈아 입고 절월(節鉞)을 들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묘(武廟)
관원(關原) : 일본 중부 지방의 지명. 수뢰를 지지하는 서군과 가강을 지지하는 동군이 이곳에서 크게 회전하여 서군이 대패하였음. 원본에는 동서 양군이 관백의 궁전에서 회전했다 하였는데, 이는 착오이므로 이에 시정하였음.
관유안(管幼安) : 이름은 영(寧), 유안은 자(字), 삼국(三國) 때 위(魏) 나라 사람. 황건적(黃巾賊)의 난 때에 요동(遼東)으로 피해 옮겼는데 학문을 잘하여 따르는 사람이 많았음. 문제(文帝)와 명제(明帝)가 벼슬과 녹훈(錄勳)으로 불렀으나 모두 받지 않음.
관음(觀音) :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Avaloki-tesvara). 세상의 중생이 구원을 청하는 소리를 들으면 곧 구원해 준다는 것으로, 구원을 청하는 양상이 천태만상인 데 따르느라 관세음보살도 천변만화한다고 한다.
관자(管子) : 책 이름, 24권. 춘추 시대에 관중(管仲)이 찬(撰)했다고 하나 책중에 관중이 죽은 이후의 일이 많이 실려 있는 것으로 보아 후세 사람이 많이 부익(附益)한 것이 틀림 없음. 법치주의(法治主義)․경제정책(經濟政策)을 서술하고 기타 철학․윤리까지도 언급하였음. 또 관중의 경칭(敬稱)이기도 함.
관자내정편(管子內政篇) : 「관자」에 내정편이란 편명은 없고, 소광(小匡) 내언(內言)에 제 환공(齊桓公)이 군제(軍制)를 묻자 “내정(內政)을 지어 군령을 붙이십시오”[作內政而寓軍令] 한 부분을 가리킴. 관중은 이어 다섯 집을 궤(軌)라 하고 다섯 사람을 오(伍)라 하여, 봄 가을로 사냥을 시켜 상벌을 주고, 딴 곳으로 이사를 하지 못하게 하여 유사시에는 이웃간에 서로 지키게 했다. 그러면 상부상조하게 되고 싸울 때 밤에는 서로 소리를 알아 적과 구별하고, 낮에는 얼굴을 식별하기 때문에 싸우면 이긴다고 했다.
관저(關雎) : 관저는 「시경(詩經)」 국풍(國風) 주남(周南)의 편명으로 후비(后妃)의 덕을 노래한 것인데 부부의 도가 행해지면 천하가 다 아름답게 화한다고 하였으며, 인지(麟趾)는 소남(召南)의 편명으로 공족(公族)의 번성함을 노래한 것인데, 비록 쇠미한 세상의 공자(公子)라도 신후(信厚) 하기가 인지의 시대와 같다고 하였다.
관정도량(灌頂道場) : 수계(受戒)하여 불문(佛門)에 들어갈 때, 향수(香水)를 정수리에 끼얹는 의식의 장소
관중․악의(管仲․樂毅) : 관중은 춘추 시대 제(齊) 나라의 현상(賢相)으로 이름은 이오(夷吾). 제 환공(齊桓公)을 도와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이룩하였다. 악의는 전국 시대 연(燕)나라의 장수로 한(韓)․위(魏)․조(趙)․연(燕)의 연합군을 거느리고 제(齊) 나라를 쳐서 70여성을 빼앗았다.
관지(款識) : 옛날 종이나 솥 따위에 새겨 놓은 글자나 표인데, 음각(陰刻)을 관(款), 양각을 지(識)라 일컫는다.
관학(館學) : 성균관(成均館)과 사부학당(四部學堂)
관향(觀鄕) : 그 고을을 본다는 뜻. 「가어(家語)」에 “그 고을 사람의 말을 드고 그 고을의 일을 보며, 그 나라 사람의 말을 듣고 그 나라의 일을 보며, 천하(天下) 사람의 말을 듣고 천하의 일을 본다.” 하였다.
관향․협향(寬鄕․狹鄕) : 인구에 비해 전토가 많은 고을이 관향(寬鄕)이고, 인구에 비해 전토가 적은 고을이 협향(狹鄕)이다.
관헌(祼獻) → 증상
관혁등장(貫革鐙杖) : 의장의 한 가지. 금동으로 만든 등자를 긴 나무 자루에 자주색 끈으로 맨 것으로, ‘관혁’은 여기서는 나무자루를 가죽으로 쌌음을 말한다.
관형(官刑) : 관형(官刑)은 관청의 형벌. 이윤(伊尹)이 태갑을 훈계하는 말에 “탕임금이 관형을 제정하여 관리들을 경계했습니다.”하였다. 書經 商書 伊訓 ← 이훈(伊訓)
괄지지(括地志) : 당 태종(唐太宗)이 그의 신하에게 시켜 만든 일종의 지리서.
광간(狂簡) : 孔子가 陳나라에 있다가 “<魯國으로> 돌아가리로다. 五黨의 小子들이 狂簡하여 재단[裁]할 바를 모르도다.”하였다. 광간은 뜻과 기상은 높으면서 실지를 다 채우지 못한 것을 말한 것이다.
광거(廣居) : 넓은 집으로 곧 어진 마음을 뜻함. <孟子 滕文公下>에 “천하의 가장 넓은 집에 머무른다.[居天下之廣居]”에서 나온 것임.
광견(狂狷) : 중용(中庸)의 도에서 벗어나 지나치게 뜻만 높거나 지나치게 의리를 고집하는 행위 또는 그 사람. → 향원
광경(光景) : 여기 광경이란 말은 후한서 공도이전(後漢書邛都夷傳)에 나온 말이다. 그 전에 이르기를, “청령현(靑蛉縣) 우동산(禹同山)에 벽계(碧鷄)와 금마(金馬)가 있는데 광경이 때때로 나타난다[光景時時出現].”고 하였다. 이에 대한 주(註)도 화양국지(華陽國志)를 인용하여 이르기를 “벽계의 광경은 사람들이 흔히 볼 수 있다.” 하였고, 후한서 음의(音義)에는, “금계는 말과 같고 벽형(碧形)은 닭과 같다.”고 하였다. 이것으로 보면 광경은 어떤 물체의 존재하는 모양․형태 같은 것을 사람이 직접 접근해서 본 것이 아니요 멀리서 바라보며 그 모양을 이러니 저러니 하면서 평가하는 것을 의미한 말이다. 그래서 완농광경(玩弄光景)이란 말도 있다 자기가 직접 체험하고 똑바로 인식한 것이 아니라, 남의 말을 듣고 자기로서 짐작해서 이렇다 저렇다 주장해 보는 것을 ‘광경을 맞히는 장난’이라고 한다.
광기조대(廣己造大) : 나의 도덕을 넓혀 대위(代位)에 나아갈 마음을 도모하는 것. 莊子山木
광대이진정미(廣大而盡精微) : 역시 「중용」제 27장에 있는 말. “군자는 덕성(德性)을 높이고 학문(學問)을 행하니, 광대함을 이루고 정미함을 다하며, 고명(高明)을 극도로 하고 중용을 이루며, 옛것을 복습하여 새것을 알며, 돈후(敦厚)하여 예를 높인다.”[故君子尊德性而道問學 致廣大而盡精微 極高明而道中庸 溫故而知新 敦厚而崇禮]했다.
광려산시게(匡廬山詩偈) : 광려산은 중국의 여산(廬山). 소식의 제서림벽시(題西林壁詩)에 “不識廬山眞面目 只綠身在此山中”이라고 한 것을 말하는데, 산의 참모습의 쉽게 알 수 없음을 뜻함.
광록시(光祿寺) : 한(漢)대부터의 관명(官名)이었는데 그 명칭은 조금씩 달랐다. 광록시는 궁정에서 소용되는 식물(食物)을 관장하는데 실은 황제에게 제공되는 것이며, 명(明)대에는 황제의 이름을 빌어서 간리(奸吏)들이 부정하는 온상이 되었다. 歷代職官表
광릉산(廣陵散) : 광릉산은 거문고의 곡조. 진(晉) 나라 혜강(嵆康)이 형(刑)을 당하여 죽을 때에 거문고를 가져오라 하여 광릉산 한 곡조를 타고는 “내가 이 곡조를 나만 알고 다른 사람에게는 전해 주지 않았더니, 이제는 영영 세상에서 없어졌다.”하였다.
광명대(光明臺) : 등불과 촛불을 받치는 제구. 아래에 세 발이 있고 가운데 한 줄기가 있는데, 형상은 대나무와 같아 마디 하나씩으로 이어진다. 위에는 쟁반이 하나 있고 그 가운데 사발 하나가 놓여 있어 촛불을 켤 수 있게 하였다. 불을 켤 때는 사발에 기름을 붓고 심지를 세워 돌로 지지른 다음 여기에 불을 붙였다.
○ 光明臺擎燭之具也 下有三足 中立一榦 形狀如竹 逐節相承 上有一盤 中置一甌 甌中有口可以燃燭 若燃燈則···貯油立炬 鎭以小石 而絳紗籠之 高四尺五寸 盤面闊一尺五寸 高麗圖經 卷二十八 供張
광무(光武) : 동한(東漢)의 시조 유수(劉秀)의 묘호. 자는 문숙(文叔). 「후한서」 광무기(光武紀)에, “世祖光武皇帝 高麗九世孫也 出自景帝子長沙定王發······宛人李通等 以圖讖說光武 劉氏復起 李氏爲輔”라 하였음.
광문한(廣文寒) : 당(唐) 나라 때 광문관 박사(廣文館博士) 정건(鄭虔)은 시서화(詩書畫) 삼절(三絶)로 일컬어질 만큼 재명(才名)이 뛰어났으나 매양 빈궁에 쪼들렸고, 어려서는 종이가 없어서 감나무 잎[柿葉]에다 글씨를 익혔다. 新唐書 卷二百二 鄭虔列傳
광복산․나부산(光福山․羅浮山) : 광복산은 일명 등위산(鄧尉山)이라 하는데 강소(江蘇) 오현(吳縣)의 서남 칠십 리 지점에 있다. 앞으로는 태호(太湖)가 보이어 풍경이 극히 아름다우며 산에는 매화가 많아 꽃이 피면 온통 눈세계가 됨. 나부산은 광동(廣東) 증성현(增城縣)에 있는데 매화가 많음. 소식의 시에 “羅浮山下梅花村 玉雪爲骨冰爲魂”이라 하였음.
광부(曠夫) → 원부(怨婦)
광사(狂士) : 뜻은 크나 일을 하는데는 다소 소략(疎略)한 사람.
광산(匡山) : 중국 여산(廬山)을 말하는데, 옛날 은자(隱者) 광유(匡裕) 선생이 이 여산에 숨어서 글을 읽으며 지냈기 때문에 여산을 광려산(匡廬山)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광성자(廣成子) : 중국 상고(上古) 적의 선인(仙人). 공동산(崆峒山) 석실(石室)에 은거했는데, 황제 헌원씨(皇帝軒轅氏)가 그에게 수신법(修身法)을 물었음. 莊子․淮南子
광아(廣雅) : 위(魏) 나라 때 장읍(張揖)이 편찬한 자전(字典). 「삼창(三蒼)」․「설문(說文)」 등을 참고로 증보한 것임. 10권.
광악(光岳) : 삼광(三光 : 일(日)․월(月)․성신(星辰)임)과 오악(五嶽 : 중국의 다섯 영산(靈山)으로 태산(泰山)․화산(華山)․항산(恒山)․숭산(崇山)임)을 말한다.
광악기분(光岳氣分) : 광악기분(光岳氣分)의 광은 주염계의 광풍제월(光風霽月)의 기상을, 악은 주자의 태산교악(泰山喬嶽)의 기풍을 말한 것이므로, 모두 송학자(宋學者)들의 득도(得道)한 인격과 기상을 말한 것이다.
광연(筐鷰)의 성서 : 황후가 될 상서를 말한다. 한 원제(漢元帝)의 비(妃)가 황후가 되기 전에 흰 제비가 흰 돌을 물고 와서 길쌈 광주리 속에 떨어뜨렸다. 왕후가 가져다 보았더니, 그 돌이 절로 쪼개졌는데, 모천지(母天地)라는 세 글자가 있었다 한다. 西京雜記
광왕거(光王琚) → 살삼자(殺三子)
광운(廣韻) : 본래의 이름은 「절운(切韻)」으로서 수(隋) 나라 육법언(陸法言)․유진(劉溱)․안지추(顔之推) 등이 수록, 글자를 2백 6운으로 분류하여 5권을 지었는데, 당 현종(唐玄宗) 때 손면(孫愐)이 이를 간정(刊定)하여 「당운(唐韻)」이라 개명하였다. 그후, 잘못된 것이 많다 하여, 송진종(宋眞宗)이 다시 진팽년(陳彭年)․구옹(邱雍) 등에게 명하여 1만 4천 36자를 더하여 중수하고 「대송중수광운(大宋重修廣韻)」이라 하였다. 수록된 글자 수에 대하여 주양공(周亮工)의 「서영(書影)」 9권에는 2만 2천 1백 94자로 되어 있다.
광의(匡懿) : 송 태종(宋太宗)의 이름. 형 태조를 죽이고 왕위에 올랐음.
광장(匡章) → 신생(申生)
광정앙천(廣庭仰天) : 식견은 높으나 행실이 부족함을 이름. 栗谷 李珥가 梅月堂 金時習을 廣庭仰天이라고 평했는데, 註에, ‘言見高而行未到也’라 한 데서 유래. 栗谷集 卷十四 雜著 金時習傳
광종(光宗) : 남송(南宋) 제3대 임금 조돈(趙惇)의 묘호.
광지영(廣智營) : 창덕궁 뒤 응봉(鷹峰) 밑에 있었음.
광평(廣平) : 광평은 당(唐)의 현상(賢相) 송경(宋璟)의 봉호인 광평군공(廣平郡公)의 약. 그는 천성이 고결하고 마음이 철석과 같이 곧았다 한다. 唐書 卷九十六 宋璟傳
광풍제월(光風霽月) : 황정견(黃庭堅)이 주돈이(周敦頤)의 인품을 평한 말로, 천성(天性)이 고명하고 흉중(胸中)이 맑아서 비가 갠 뒤의 풍월(風月)처럼 맑고 시원함을 이름. 宋史 周敦頤傳
광학보(廣學寶) → 불명경보(佛名經寶)
광한전(廣寒殿) : 천상에 있다는 가상적인 궁궐. 당명황(唐明皇)이 신천사(申天師)․홍도객(鴻都客)과 더불어 팔월 보름날 저녁에 달 속에서 함께 노닐었는데 방(榜)을 보니 ‘광한청허지부’(廣寒淸虛之府)라 씌어 있었다 한다.
괘관(掛冠) : 한(漢) 나라 매복(梅福)이 벼슬을 버리고 성동문(城東門)에 관을 걸어 두고 가버렸다.
괘관거(掛冠去) : 한(漢) 나라 남창위(南昌尉) 매복(梅福)이 나라가 망할 것을 보고, 성(城)의 동문(東門)에 관을 걸어두고 가버렸다.
괘라(掛羅) → 掛衣
괘락(掛絡) → 掛衣
괘안동문(掛眼東門) : 춘추 시대 월(越)이 오(吳)에게 패하자 월왕(越王) 구천(句踐)은 미인 서시(西施)를 바치면서 강하를 간청했다. 오왕(吳王) 부차(夫差)는 이를 승낙하고 간하는 충신 오자서(伍子胥 : 이름은 원(員))마저 자결하게 했다. 그러자 오자서는 집사람에게, ‘내가 죽거든 내 눈을 빼서 동문(東門) 밖에 걸라. 월이 오를 망치는 것을 보겠다.’하였다. 그 뒤 9년 후에 과연 월이 오를 멸하였다는 고사.
괘의(掛衣) : 괘락(掛絡)․괘라(掛羅)․괘자(掛子) 등의 별칭이 있는데, 선승(禪僧)이 평소에 사용하는 작은 약식 가사.
괘자(掛子) → 掛衣
괘책수(掛策數) : 6효 점을 할 때, 시초를 세어가기 전에 시초 한 줄기를 뽑아 약지(藥指)와 새끼손가락 사이에 끼는 것을 가리킨다.
괴국(槐國) : 南柯夢의 說話인데, 꿈에 大槐國에 들어가서 南柯太守로서 富貴를 누리다가 깨어 본 즉, 대괴국이 곧 槐木밑에 있는 개미가 사는 곳이요, 남가는 괴목의 남쪽 가지였다.
괴당(槐堂) : 삼공(三公) 지위의 높은 관직을 말한다. 송(宋) 나라 때에 왕호(王祜)가 자기 마당에 손수 느티나무[槐] 세 그루를 심고 말하기를 “내 자손은 반드시 삼공이 될 것이다.” 하였는데, 뒤에 과연 그의 둘째아들 단(旦)이 재상에 올랐다. 蘇東坡集 三槐堂銘
괴두노계(魁頭露紒) : ‘모자 따위를 쓰지 않고 맨머리를 드러내다’의 뜻. 괴두는 머리를 따거나 말아서 올린 상투. 文獻通考 馬國 注
괴마(拐馬) → 충거(衝車)
괴소(塊蘇) : 흙덩이와 땔나무임. 주 목왕(周穆王)이 신선의 옷을 입고 하늘을 올라, 자기의 궁궐을 바라보니 흙덩이와 나뭇가리 같았다 한다. 列子
괴시(槐市) : 한(漢) 나라 때 장안성(長安城) 동쪽에 설치한 시장의 이름으로, 주변에 괴수(槐樹)를 많이 심었던 까닭에 괴시라 했다. 삭망(朔望)이면 제생(諸生)들이 여기에 모여 각자 자기 출신 지방의 산물(産物)이나 기타 경전(經傳)과 악기(樂器)인 생(笙)․경(磬) 등을 매매하였다.
괴원(槐院) : 承文院을 말함.
괴철(蒯徹) → 걸구지변(桀狗之辨)
굉달법(觥撻法) : 벌주를 먹이고 종아리를 때리는 것.
교(郊) : 옛날 천자(天子)가 상제(上帝)에게 지내던 제사.
교건(驕蹇) : 이율곡(李栗谷)이 驕蹇이란 罪名으로 탄핵을 받아 辭職한 일이 있었는데 여기서는 율곡에 비유한 것이다.
교관(敎觀) : 교상(敎相)과 관심(觀心)의 두 문(門)을 말하는데, 교상은 이론이고 관심은 실천의 뜻이다.
교광(交廣) : 지금의 광동(廣東)과 광서(廣西) 사이 즉 오령(五嶺) 지대를 이른다.
교구(郊丘) : 교구는 임금이 하늘에 제사하는 곳, 종사는 종묘와 사직단인데 종묘는 임금의 선조를 제사하는 곳이고, 사직단은 임금이 백성을 위하여 땅 귀신과 곡식 귀신에게 제사하는 곳이다.
교동(狡童) : 「시경(詩經)」 정풍(鄭風)의 편명. 음란함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우왕을 가리킴.
교득채근(咬得菜根) : 小學에 있는 말인데 나물뿌리를 먹어야 온갖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교력(巧曆) : 수술(數術)에 정통해서 역법(曆法)에 밝았던 사람.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에 “修有善巧曆算之人”이라고 보임.
교리(蛟螭) : ① 비석인데 최해의 비를 말함. ② 교(蛟)는 교룡, 이(螭)는 용처럼 생겼으나 빛깔이 누런 것이라 하나, 모두 아직 용이 못된 상태에 있다는 상상의 동물
교․묘(郊․廟) : 교는 교사(郊社)로, 천지(天地)에 제사하는 곳. 묘는 종묘(宗廟)로, 임금의 선조(先祖)에 제사하는 곳.
교방(敎坊) : 고려 때 기생학교(妓生學校)를 말하는 데, 후에는 기생학교가 있는 지역을 지칭하기도 하였다.
교비(敎匪) : 교비(敎匪)는 백련교 난비(白蓮敎亂匪)의 약칭. 백련교는 불교 백련사(佛敎白蓮社)에서 나온 일종의 비밀교파(秘密敎派). 원대(元代) 한산동(韓山童), 명대 왕삼(王森), 청대 유송(劉松) 등에 의해 계속 전도되었는데, 청대에 와서는 더욱 각 지방에 전파되어 호북(湖北)․사천(四川)․섬서(陝西) 등지는 완전히 그들의 소굴이 되어, 간간이 반란을 일으키는 등 작폐가 심했음.
교산(橋山) → 弓劍
교서(敎書) : 임금이 내리는 글.
교소(鮫綃) : 바닷속 인어(人魚)가 짠 비단.
교송(郊送) : 城밖에 나가서 전송하는 것
교심북선우(驕甚北單于) : 한 나라 여후(呂后)가 여주(女主)로 있을 때에 북선우 묵특(冒頓)이 강성한 국력을 믿고 교만하여 여후에게 편지를 보내어, “당신은 과부이니 당신과 몸에 없는 것과 나의 몸에 있는 것 서로 합합시다.”하였다.
교심충(蓼心蟲) : 역귀 속에 살고 있는 벌레는 해바라기로 옮길 줄을 알지 못하니, 역귀는 쓰고 해바라기는 달기 때문이다. 각기 편안한 곳에 있어야 함을 일렀다.
교․악(喬․偓) : 옛 신선 왕교(王喬)와 악전(偓佺)을 말함.
교언(巧言) → 하인사(何人斯)
교왕과직(矯枉過直) : 구부러진 것을 바로 잡으려다가 너무 곧게 함. 곧 잘못된 것을 바로 잡으려다가 너무 지나치어 오히려 나쁘게 함.
교위(校尉) : 무직(武職)의 관명(官名)이며 당(唐)대에는 6품 이하의 무직을 교위라고 높여 불렀으나 명(明)대에는 금의위의 위사(衛士)도 교위라고 불렀고, 이는 수만 명에 이르렀으며 보통은 흰신을 신는데 공(功)이 있으면 검은 신을 신었다 한다. 野獲篇
교인(鮫人) : 물속에 산다는 괴상한 인어(人魚). 「술이기(述異記)」에 “남해 속에 교인의 집이 있어 물에 사는 것이 물고기와 같다.”[南海中有鮫人室水居如魚]하였음. → 연객(淵客)
교인법(交引法) : 송대에 대전(代錢)을 서울에 납부한 상인에게 교부해서 국경에 나간 다음에 현품을 인도(引渡)하도록 허가하던 감찰(鑑札)
교주(鮫珠) : 바다에 사는 교인(鮫人)이 있는데, 울면 그 눈물이 구슬이 된다고 한다.
교주조슬(膠柱調瑟) : 비파[瑟]를 탈 때, 줄 밑에 기둥[柱]을 받쳐서 이리 저리 옮기면서 곡조를 조절하는[調] 것인데, 그 기둥을 아교로 풀칠하여[膠] 고정시켜 놓고 곡조를 조절하려 하는 것을 교주조슬(膠柱調瑟)이라 한다. 변통할 줄 모르는 외고집을 풍자하는 말.
교지(交趾) : 남방에 있는 국가의 이름. 주공(周公) 때에 교지(交趾)의 월상씨(越裳氏)가 조공(朝貢)을 하였다는 말이 있는데, 교지는 지금의 월남이다.
교천(郊天) : 교(郊)는 교제(郊祭)인데 하늘에 제사하는 것을 이름
교천대사(郊天大赦) : 교외(郊外)에서 제천(祭天)하는 경사(慶事)로 크게 사면(赦免)하는 것.
교체(郊禘) : 천자가 하늘에 제사지내던 교제(郊祭)와 조상에게 제사지내던 체제(禘祭)
교초(翹楚) → 거벽(巨擘)
교추(喬楸) : ‘교(喬)’는 ‘교재(喬梓)’의 교이고 ‘추(楸)’는 선영(先塋)을 말함.
교칠(膠柒) : 아교[膠]는 칠(漆)속에 넣으면 딱 붙는 것인데, 여기서는 변통성 없이 굳게 지킨다는 뜻이다.
교칠교(膠柒交) → 교칠분(膠柒盆)
교칠분(膠柒盆) :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긴밀한 관계이니 교칠교(膠柒交)란 말도 있다.
교태(交泰) : 「역경(易經)」의 태괘(泰卦)에 보면 상(象)에 “천지가 사귀는 것이 태(泰)이다.”[天地交泰]하였으니, 천지가 서로 동하는 것을 말한다.
교환(巧宦) : 벼슬하는 자가 줄을 잘 타는 것을 이름. 晉書 潘岳傳에 보임.
구(甌) : 부(缶)의 일종임. 12개의 사발에 물을 가득 채우고 저(著)로 두드려서 12율의 음을 내는 것이다.
구가(九歌) : 굴원(屈原)이 참소로 인하여 조정에서 쫒겨나자, 이 글을 지어 임금에게 충성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뜻을 붙였음. 모두 11편인데 곧 동황태일(東皇太一)․운중군(雲中君)․상군(湘君)․상부인(湘夫人)․대사명(大司命)․소사명(少司命)․동군(東君)․하백(河伯)․산귀(山鬼)․국상(國殤)․예혼(禮魂)으로 되어 있음. 구가라고 말한 것은 신(神)이 아홉 종류가 있는 때문인데, 11편 가운데 상군과 상부인이 합하여 하나가 되고 대사명과 소사명이 합하여 하나가 됨.
구강태수(九江太守) : 후한 광무제 때의 구강 태수(九江太守) 송균(宋均)의 고사. 송균이 구강에 호랑이가 많은 것을 보고 “호랑이가 산에 있는 것은 자라가 물에 있는 것과 같다. 지금 백성을 해치는 것은 잔혹한 관리이다.”하고는 간리(奸吏)를 물리치기에 힘썼더니, 호랑이가 모두 동쪽으로 강을 건너가 버렸다 한다. 後漢書 卷四十一 宋均傳
구거(篝車) : 구는 대바구니이고 거는 수레. 史記 卷一百二十六 滑稽列傳에 “돼지발 하나 술 한 그릇으로 풍년을 기원하기를 ‘곡식이 높은 땅에서는 대바구니에 가득 차고[滿篝] 낮고 비옥한 땅에서는 수레에 가득차게[篝車] 하소서’라고 했다.”한 것에서 인용한 것으로 금년에는 으레 풍년이 들 것이라는 것임.
구격창안(鸜鵒蒼眼) : 구격은 구격새이고 파란 눈은 연석(硯石) 위에 둥근 형체의 반점이 있는 것을 말함. 당 나라 유공권(柳公權)이 벼루를 논하기를 “물고이는 곳에 적․백․황색의 점이 있는 것을 구격안(鸜鵒眼)이라 한다.” 하였다.
구겸지(寇謙之) : 후위 사람으로 도술이 있었고, 송양(松陽)에 은거하다가 육신(肉身)으로 신선이 되었다고 함.
구경(九京) : 구원(九原)으로 경대부(卿大夫)들의 무덤을 말한 것인데, 여기서는 훌륭한 분에게 의지하고 싶다는 뜻이다. 「예기(禮記)」 단궁(檀弓)에, “구경(九京)의 선대부를 따르려한다.”[以從先大夫於九京] 하였다.
구경(九經) : 유교의 아홉 가지 경전인데 「주역(周易)」․「좌전(左傳)」․「시경(詩經)」․「서경(書經)」․「주례(周禮)」․「의례(儀禮)」․「공양전(公羊傳)」․「예기(禮記)」를 들기도 하고, 「주역」․「시경」․「서경」․「예기」․「춘추(春秋)」․「효경(孝經)」․「논어(論語)」․「맹자(孟子)」․「주례」를 들기도 한다.
구경(九卿) : 아홉 사람의 장관, 곧 태상(太常)․광록훈(光祿勳)․대홍려(大鴻臚)․대사농(大司農)․위위(衛尉)․태복(太僕)․정위(廷尉)․종정(宗正)․소부(少府)임
구경(具慶) : 부모가 구존(俱存)함을 이름. 「이정전서(二程全書)」에 ‘생일날 술을 마련하여 잔치하는 것은 구경(具慶)의 처지라면 할수 있다.’ 하였음.
구경산(丘瓊山) : 경산은 명나라 사람 구준(丘濬)의 호. 자는 중심(仲深), 벼슬이 문연각 대학사(文淵閣大學士)에 이르렀음. 주자학에 정통했음. 저서에 「대학연의보(大學衍義補」.「오륜전비(五倫全備)」 등이 있음. 「명사(明史)」 구준열전(丘濬列傳)에 보임.
구계(臼季) : 춘추 시대 진(晉) 나라 대부(大夫). 진문공(晉文公)을 따라 망명 생활을 하였다.
구고(九皐) : 지하 구층 언덕의 밑을 말함. 詩經 小雅 鶴鳴에 “鶴鳴于九皐 聲聞于天”이라 하였음. 이는 실상이 있으면 아무리 숨어 있어도 이름이 드러난다는 뜻임.
구고(句股) : 직각 삼각형에서 직각을 끼고 있는 두 변(邊)을 말한다. 짧은 것을 구(句), 긴 것을 고(股)라 한다. → 방원(方圓)
구고법(句股法) : 직각삼각형의 논이나 밭을 측량하는 법.
구곡(九穀) : 아홉가지 곡식. 곧 메기장[黍]․찰기장[稷]․차조[秫]․벼[稻]․깨[麻]․콩[大豆]․팥[小豆]․보리[大麥]․밀[小麥]을 이름. 周禮 天官
구곡산(句曲山) → 도홍경(陶弘景)
구공(九功) : 육부(六府)와 삼사(三事). 6부는 수(水)․화(火)․금(金)․목(木)․토(土)․곡(穀)을 맡은 곳이요, 3사는 정덕(正德)․이용(利用)․후생(厚生).「서경(書經)」 대우모(大禹謨)에 ‘구공이 이루었다.’[九功惟叙]했음.
구괴저연(歐怪褚硏) ↔ 저연 : 구양순(歐陽詢)의 괴와 저수량(褚遂良)의 연을 말함.
구구(九丘) : 구주(九州)의 지리․풍토․방물지(方物志)였는데 전하지 않는다. 공 안국의 상에, “九州之志 謂之九丘 丘聚也 言九州之所有 土地所生 風氣所宜 皆聚此書也”이라고 보인다.
구구(具區) : 호(湖) 이름으로 오월(吳越) 사이에 있음.
구군(九軍) : 신라의 삼국 통일 이후의 군제(軍制)의 하나로, 왕의 직속인 중앙군단(中央軍團)이었다. 고유의 명칭은 9서당(誓幢)으로 각 군을 금색(衿色)으로 구분하였다. 三國史記 職官
구궁법(九宮法) : 구궁 돌리는 방법은 일천록(一天祿)․이안손(二眼損)․삼식식(三食神)․사증파(四甑破)․오귀(五鬼)․육합식(六合食)․칠진귀(七進鬼)․팔관인(八官印)․구퇴식(九退食)을 차례로 꼽아 해당되는 궁으로 길흉을 판단함. 天機大要
구궤(九軌) : 아홉의 수레가 나란히 갈 수 있는 폭이 넓은 길. 옛 국중(國中 : 성내(城內)임)의 길이 이러했다 함. 周禮 考工記
구귀법(九歸法) : 옛날 나눗셈의 한 방법. 5자로 된 구구 곧 九歸歌에 의하여 주판 또는 산가지로 계산하는 방법
구기(九畿) : 주대(周代)에 왕기를 사방 1천 리로 하고, 그 바깥 5백 리마다 구역을 정해서 내6복(內六服)으로 후기(侯畿)․전기(甸畿)․남기(男畿)․채기(采畿)․위기(衛畿)․요기(要畿)가 있었고, 외3복(外三服)으로 이기(夷畿)․진기(鎭畿)․번기(蕃畿)가 있었다.
구담(瞿曇) : 교답리(喬答羅)라고도 하는데, 석가모니(釋迦牟尼) 선대의 본성(本姓)이다. 후대에 와서는 부처나 중을 구담이라고도 불렀는데 여기에 구담 늙은이[瞿曇老]는 고 노승(老僧)을 의미하는 것이다.
구당(瞿塘) : 협(峽) 이름이며, 3협의 하나로 양자강 상류 강 가운데 있는데, 양편 절벽 사이에 강물이 노격(怒激)하고, 협구(峽口)의 염예퇴(灩澦堆)가 강심에 솟아 있어 뱃길이 매우 험악하다.
구덕(九德) : 충(忠)․신(信)․경(敬)․강(剛)․유(柔)․화(和)․고(固)․정(貞)․순(順)
구독막지(溝瀆莫知) : 아무도 모르게 개천 속에서 목매어 죽음. 「논어(論語)」 헌문(憲問)편에, “微管仲 吾其被髮左衽矣 豈若匹夫匹婦之諒也 自經於溝瀆而莫之知也”라 보임.
구독지량(溝瀆之諒) : 논어(論語) 헌문(憲問) 편에 “어찌 필부의 작은 믿음을 위하여 스스로 도랑에서 목을 매어 죽어도 남에게 알려지지 않는 그런 것과 같을 것인가?”(豈若匹夫匹婦之諒也 自經於溝瀆而莫之知也)라고 管仲을 두고 한 말이 있다. 여기서는 미천한 사람을 두고 한 말이다.
구두(九頭) → 선통(禪通)
구등(九等) : 상․중․하(上中下)를 다시 각각 상․중․하로 나눠서 아홉 등급으로 만들었음.
구래공지충성(寇萊公之忠誠) : 내공은 구준(寇準)의 봉호(封號). 구준이 뇌주(雷州)의 참군(參軍)으로 좌천되어 죽자, 서경(西京)으로 장사를 지내려고 경남(京南)의 공안현(公安縣)을 지나게 되었다. 사람들이 모두 길가에 나와 곡(哭)하며 제(祭)를 지내는데 대[竹]를 잘라 땅에 꽂고 지전(紙錢)을 걸어 놓았더니, 몇 달 있다가 보니 마른 대나무에서 순(筍)이 모두 나왔다 한다. 宋史 卷二百八十一 寇準傳
구려(九黎) : 야만족을 말하는데, 당서(唐書)에, “구려가 덕을 해치니 전호(顓●)가 이를 쳤다.”라는 말이 있다.
구련성(九連城) : 안동현치(安東縣治) 동북 20리에 있으며 명말에는 여기에 진강성(鎭江城)을 축조하였던 바, 조선 왕조의 사행 경로이자 분계(分界)이며 요동도사와는 4백 60리, 봉황성과는 백 20리를 상거한 곳이다. 安東縣治 卷 1 地理條
구련우락(鉤連隅落) : 사우사락(四隅四落)이 서로 이리저리 연결되는 일. 「이위공문대(李衛公問對)」에, “隅落鉤連曲折相對”라고 보임.
구령(九齡) : 90세를 말함. 무왕(武王)이 꿈 속에서 천제(天帝)로부터 치아 아홉 개를 받았는데 문왕(文王)이 이는 타고난 수명이 구십 세라고 해몽하였다. 禮記 文王世子
구로(劬勞) : 詩經 蓼莪에 “아버지 나를 낳으시고 어머니 나를 기르셨으니, 슬프고 슬프다 부모여, 나를 낳으시기 수고하셨소.”[父兮生我 母兮鞠我 愛愛父母 生我劬勞]라고 보인다.
구루연단경(句漏鍊丹經) : 구루는 진(晉)의 갈홍(葛洪)이 선도(仙道)를 닦던 곳. 연단경은 도를 닦는 사람이 먹던 약의 처방을 적은 책. 갈홍의 종조(從祖) 갈현(葛玄)이 일찍이 신선술을 터득하였기 때문에 갈홍은 연단의 비술을 전해 받아 많은 의서를 저술하였다. 晉書 卷七十二 葛洪傳
구류(九流) : 한 대(漢代)의 아홉 학파, 즉 유가(儒家)․도가(道家)․음양가(陰陽家)․명가(名家)․종횡가(縱橫家)․잡가(雜家)․농가(農家) 등을 말함.
구리(句履) : 첨단에 장식이 있는 구형(矩形)의 신.
구림(球琳) : 아름다운 옥을 말함. 書經 禹貢에 “厥貢惟球琳琅玕”이란 대문이 있음.
구마라집․달마(鳩摩羅什․達摩) : 원문의 「구라마집(鳩羅摩什)」은 오기. 이는 서역(西域) 구자(龜玆)의 명승으로, 중에와 많은 불경을 변역했다. 불도징(佛圖澄)은 진(晋)나라 때 천축(天竺)의 명승. 달마(達摩)는 양무제(梁武帝) 때 중국으로 와 중국 선종(禪宗)의 시조가 된 남인도 향지국(香至國)의 명승. 마(摩)는 일반적으로 마(磨)로 쓴다.
구마라습(鳩摩羅什) → 요흥(姚興)
구명(九命) : 주(周) 나라 벼슬의 품질. 일명(一命)에서 구명(九命)까지 있으니, 구명은 상공(上公)에 해당한다.
구목(丘木) : 묘지(墓地) 옆에 심은 나무.
구문(狗門) : 구문(狗門)은 개가 드나드는 문. 춘추(春秋) 때 제(齊)의 안영(晏嬰)이 단구(短軀)였다. 초(楚)에 사신갔는데 초 나라에서 조그마한 문을 만들어 놓고 맞이하므로, 안영이 들어가지 않으며 말하기를, ‘개 나라에 사신왔다면 개문[狗門]으로 들어가겠지만, 나는 초 나라에 사신왔으므로 개문으로는 들어가지 않겠다.’ 하였다는 고사. 淵鑑類函
구문(龜文) : 봉(鳳)의 모양이 앞은 기린(麒麟), 뒤는 사슴, 뱃의 머리에 고기 꼬리, 용의 무늬에 거북의 등[龍文龜背] 오색이 있다 하였다. 說文
구미속초(狗尾續貂) : 봉작(封爵)을 남수(濫授)하는 것을 비웃는 말. 진(晋) 나라 조왕 윤(趙王倫)의 당(黨)이 모두 경상(卿相)이 되어 하인에게까지 작위를 준 결과, 조회 때마다 초선(貂蟬)이 가득하였으므로, 그 때 사람들이 속담을 지어 ‘담비꼬리가···’ 운운하였다 한다. 晉書 趙王倫傳
구방고(九方皐) : 진 목공(秦穆公)이 천리마를 구하려고 말을 잘 보는 백락(伯樂)의 제자 구방고(九方皐)를 보냈더니, 석 달 만에 돌아와서 천리마를 구해 놓았다고 아뢰었다. “무슨 말이냐?” 물으니, “누른 암말입니다.” 하였다. 목공이 사람을 보내어 말을 몰고 오니, 검은 수말이었다. 목공이 백락에게 “자네의 제자가 수말인지 암말인지, 누른지 검은지도 모르니, 어찌 말을 알아 보았겠는가?” 하니, 백락은, “구방 고는 말의 천기(天機)만 보기 때문에 속만 알고 겉은 잊어버린 것입니다.” 하였다. 과연 그 말이 천하에 좋은 말이었다.
구법(九法) : 주례(周禮) 하관(夏官) 대사마(大司馬)에 「방국(邦國)에 구법(九法)을 세워 왕을 보좌하고 나라를 편안하게 하였으니, 경기(京畿)를 제정하고 나라를 봉하여 방국을 바로잡으며, 의례(儀禮)의 직위(職位)를 설정하여 나라의 등급을 정하며, 현인(賢人)을 올리고 공을 이루어 나라를 건설하고, 감(監) 목(牧)을 세워서 나라의 벼리를 정하고 군제(軍制)와 금고(禁錮)를 만들어 나라를 바로잡고, 공물(貢物)을 베풀고 직분을 나누어 나라 일에 임하고, 향민(鄕民)을 뽑아 나라 일에 쓰고, 고루 법을 지키어 나라를 편케 하고, 작은 나라로 큰 나라를 섬겨 나라를 평화롭게 한다.」라 있다.
구병(朐邴) : 한(漢) 나라 때 임구(臨朐)에서 거만(鉅萬)의 부를 이룩한 병씨(邴氏) 鹽鐵論
구보거행(句步倨行) : 구는 직선이고 거는 곡선인데 周禮 考工記에 보임. 여기서는 한 발자국 한 걸음이 법에 맞게 행동함을 말함. /완당집3/
구복(舊服) : 옛날부터 하던 일이라는 뜻인데, 여기서는 학문을 말한다. /고봉집3/
구봉(九峯)의 내편도설(內篇圖說) : 구봉은 송(宋) 나라 채침(蔡沈)의 호. 채침이 「홍범황극내편(洪範皇極內篇)」을 저술하였다. 宋史 卷四百三十四
구부(九賦) : 9종의 부세(賦稅) 「주례」천관(天官) 태재조(太宰條)에 9종의 부세로써 재물을 거두었다. 방중지부(邦中之賦)․2교지부(二郊之賦)․방전지부(邦甸之賦)․가삭지부(家削之賦)․방현지부(邦縣之賦)․방도지부(邦都之賦)․관시지부(關市之賦)․산택지부(山澤之賦)․폐여지부(弊餘之賦)름 말함.
구부(口賦) : 인구에 따라서 거두던 세, 진대(秦代)에 처음 시행되었음.
구부(九夫)의 제도 : 즉 정전법(井田法)을 말한다. 정전 제도에 의해 여덟 집[八家]에서 각기 사전(私田) 1백 묘를 합해서 구부가 된다.
구부환법(九府圜法) : 주(周) 나라 관제(官制)에, 대부(大府)․옥부(玉府)․내부(內府)․외부(外府)․천부(天府)․직내(職內)․직금(職金)․직폐(職弊)가 있는데, 모두 재물을 관장하던 관직이었다 환(圜)이란 고르게 유통하는 것을 이르는 것이다. 前漢食貨志第四下師古註
구분전(口分田) : 공전(公田)의 하나로 생활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준 토지이다. → 영업전(永業田)
구비(口碑) : 비석을 세워서 글을 새겨 칭찬할 것이 없어 여러 사람들의 입으로 칭찬하는 것이 비석과 같다는 것이다.
구사(九思) : 군자는 아홉 가지 생각하는 일이 있으니 볼 때는 밝게 보기를 생각하고[視思明], 들을 때는 밝게 듣기를 생각하고[聽思聰], 얼굴빛은 온화하기를 생각하고[色思溫], 용모는 공손하기를 생각하고[貌思恭], 말할 때는 충성되기를 생각하고[言思忠], 일할 때는 조심하기를 생각하고[事思敬], 의심날 때는 묻기를 생각하고[疑思問], 분노할 때는 어려움을 생각하고[忿思難], 얻을 것을 보고서는 마땅히 가질 것인가를 생각하라[見得思義].
구산(九山) : 구산문(:九山門)의 약.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부터 불교가 한창 성할 때에 고승들이 중국에 들어가서 달마선법(達磨禪法)을 받아와 종풍(宗風)을 크게 드날린 것이 산문이다. 즉 실상산문(實相山門)․가지산문(迦智山門)․사굴산문(闍崛山門)․동리산문(桐裡山門)․성주산문(聖住山門)․사자산문(師子山門)․희양산문(曦陽山門)․봉림산문(鳳林山門)․수미산문(須彌山門)이다.
구산(舊酸) : 구일(舊日)의 유산(儒酸)을 이름. 유산은 빈한한 선비를 지칭함. 소식의 시에 “豪氣一洗儒生酸”이라 하였음.
구산적(緱山笛) : 구산은 하남성(河南省)에 있는데, 일명 구씨산(緱氏山)이라고도 한다. 주영왕(周靈王)의 태자였던 왕자 진(晉)은 직간(直諫)하다가 폐하여 서인이 되었는데 피리 불기를 좋아하였다. 도사(道士) 부구생(浮丘生)이 진을 인도하여 숭고산(崇高山)에 올라간 지 30여 년에 환량(桓良)을 보고 “7월 7일 나를 구씨산에서 기다리라고 우리집에 고하라.” 하였다. 그날이 되자 과연 백학을 타고 산봉우리에 머물렀다. 列仙傳
구새(九塞) : 중국 옛날의 9개소의 요새. 즉 태분(汰汾)․민액(澠阨)․형완(荊阮)․방성(方城)․효판(殽阪)․정형(井陘)․영자(令疵)․구주(句注)․거용(居庸)
구색전분(邱索典墳) : 고대의 서적으로 팔색(八索)․구구(九邱)․삼분(三墳)․오전(五典)을 말함.
구석선문(九錫禪文) : 천자가 제후에게 최고 공훈을 표창하는 아홉 가지의 문건을 내릴 때의 고시문.
구성(九成) : 악(樂)의 구장(九章)을 다 마친 것을 이름. 「서경(書經)」 익직(益稷)에 “소소9곡을 끝내니 봉황이 와서 춤춘다.”[簫韶九成 鳳凰來儀] 하였음.
구성(九聖) : 중국 고대의 아홉 성인. 공영달(孔穎達)의 「주역정의(周易正義)」에 의하면 즉 복희(伏羲)․신농(神農)․황제(黃帝)․요(堯)․순(舜)․우(禹)․문왕(文王)․주공(周公)․공자(孔子)를 말한다.
구소(九霄) : 하늘의 가장 높은 곳을 말한다. 구소는 신소(神霄)․청소(靑霄)․벽소(碧霄)․단소(丹霄)․경소(景霄)․옥소(玉霄)․낭소(琅霄)․자소(紫霄)․태소(太霄)이다. 여기서는 황제를 비유한 말이다. /동국3/
구수(九數) : 방전(方田)․속미(粟米)․차분(差分)․소광(少廣)․상공(商功)․균수(均輸)․방정(方程)․영부족(贏不足)․방요(房要) 등 수학의 아홉 가지 계산법. 「주례」지관 보씨의 구수에 대한 주에 보인다.
구승(丘乘) : 옛날 토지 구획(區劃)의 명칭. 4정(井)이 읍(邑), 4읍이 전(甸)인데, 전에서는 바퀴가 큰 수레 1승(1乘)을 내므로 구승이라 한다. 周禮 地官 稱人疏
구실(衢室) : 네거리에 있는 서민 계급의 허술한 집.
구실등가(九室登歌) : 종묘의 9室에 각각 樂章을 올려 노래하는 것.
구야(歐冶) : 춘추 시대 월(越) 나라 사람. 칼을 아주 잘 만든 자. 월왕(越王)이 가진 담로(湛盧)․거궐(巨闕)․승사(勝邪)․어장(魚腸)․순구(純鉤)라는 다섯 자루의 칼과 초왕(楚王)이 가진 용연(龍淵)․태아(泰阿)․공포(工布)라는 세 자루의 칼을 모두 구야가 만들었다고 함.
구양공(歐陽公) : 구양공은 송(宋)의 구양수(歐陽脩)를 말한다. 구양수는 일찍이 ‘창승부’(蒼蠅賦)를 지어 파리를 미워하였으므로 이것을 본받아 벼룩을 미워하는 시를 지었다는 뜻이다.
구양문충(歐陽文忠) : 송기(宋祁)가 당사(唐史)를 편수할 적에 쉬운 글자를 어려운 글자로 고치자, 구양수(歐陽脩)는 그를 풍자하기 위하여 큰 글씨로 그의 벽에다 “꿈자리가 좋지 않으면 문에다 홍휴라 쓴다.”[宵寐匪貞 札闥洪休]라고 썼다. 송기가 이를 보고 말하기를 “이는 ‘꿈자리가 상서롭지 못하면 문에다 대길이라 쓴다’[夜夢不祥 題門大吉]란 뜻이 아닌가? 그런데 하필 남과 다르게 하려는가?”고 하므로, 구양수는 답하기를 “이것이 곧, 공이 편수한 「당서」이정전(李靖傳)에 ‘빨라서 미처 귀를 막지 못했다’[震雷不及掩耳]라는 것을, ‘빨라서 귀를 막을 겨를이 없었다.’[震雷無暇掩聰]라고 고친 것과 같은 것이다.”고 하니, 송기는 부끄러워 물러났다.
구양수(歐陽脩) → 구양영숙(歐陽永叔)
구양영숙(歐陽永叔) : 구양 영숙(歐陽永叔)은 송(宋) 나라의 학자 구양수(歐陽脩). 영숙은 자(字). 호는 취옹(醉翁) 또는 육일거사(六一居士). 추밀부사(樞密府使)․참지정사(參知政事) 등을 역임하였음. 군서(群書)에 널리 통하고 시문(詩文)으로 유명하여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으로 꼽힘. 저서에 「신당서(新唐書)」․「신오대사(新五代史)」 기타 시문집(詩文集) 등이 있음. 채군모(菜君謨)는 송(宋) 나라의 정치가 채양(蔡襄). 군모는 자(字). 지간원(知諫院)․직사관(直史館) 등 여러 벼슬을 역임 하였음. 서예(書藝)에 능하여 당시 제일인자가 되었음. 시호는 충혜(忠惠)임. 저서에 「다록(茶錄)」․「충혜집(忠惠集)」이 있다.
구양철(歐陽澈) : 이말은, 왕함(王咸)이 전한(前漢) 때 사람으로 박사(博士) 제자였는데, 명사였던 포선(鮑宣)이 옥에 갇히자 태학에서 기를 들고 동지 수천 명을 모아서 구제하였으며 漢書 卷七十二 王咸傳, 하번(何蕃)은 당 나라 태학생이었는데 주자(朱泚)가 반란을 일으키니 같은 학생으로 그에게 붙좇는 자가 있자, 하번은 크게 질책(叱責)하여 못하게 하였으므로 육관(六館)의 학생들이 아무도 더럽힌 자가 없었고, 구양 철은 본성이 국가를 사랑하고 시대를 안타까이 여겼는데 고종(高宗)이 즉위하자 행재(行在)에 도보로 가서 대궐에 엎드려 봉사(封事)를 올려 대신들을 신랄히 비판하다가 노여움을 사 마침내 죽임을 당하였다는 것이다. 新唐書 卷一百九十四 何蕃傳 宋史 卷四百四十五 歐陽澈傳
구양파척(歐陽波磔) : 당나라 구양순의 서체로 썼다는 말임.
구언(求言) : 나라에 위급한 일이나 재변(災變)이 있을 때에 정치에 관한 바른 말을 국중(國中)에 널리 구하는 것이다.
구역(九罭) : 九罭은 詩經에 篇名인데 周公을 칭찬한 말이다.
구오(九五) : 龍飛九五라는 말이 있는데, 새로 제왕의 위에 오른 것을 말하는 것이다.
구오(九五)위 : 건괘(乾卦)의 6효(爻) 중 밑에서 다섯 번째의 양효(陽爻)를 구오(九五)라고 한다. 「역경(易經)」의 乾卦에 “구오(九五)는 나는 용이 하늘에 있음이다.”[九五飛龍在天]하였으니, 임금의 자리를 구오(九五)의 위(位)라 함.
구요(久要) : 옛 약속을 이르는 말인데, 여기서는 친지(親知)의 뜻으로 쓰인 듯하다.
구옥훼독(龜玉毁櫝) : 거북과 구슬은 나라의 소중한 보물인데 이것이 부서진 것은 나라가 낭패한 것을 지적한 말.
구요(咎繇) : 고요(皐陶). 중국 순 임금 때 형벌을 맡았던 관원의 이름.
구우(옛 친구 舊雨) : ‘雨’는 ‘又’와 동음이므로 벗의 뜻으로 씀. 두 보의 시소서(詩小序)에 “尋常車馬之客 舊友來 今雨不來”라고 하였음.
구우(邱隅) : 詩經 小雅 綿蠻에 “綿蠻黃鳥 止于丘隅”가 있음.
구우(求牛) : 복(福)을 빌기 위하여 바치는 소. 「주례」 지관(地官) 우인 주에 “求牛 禱於神祈 求福之牛也”라 했다.
구운(舊韻) : 수(隋) 나라 때 육법언(陸法言)이 종래의 운서(韻書)를 정리하여 이를 총 1백 93운(韻)을 거쳐 송(宋) 나라 진팽년(陳彭年) 등에 의해 이루어진 「대송중수광운(大宋重修廣韻)」의 2백 6운(韻) 체계는 원(元) 나라 초기 음 시부(陰時夫) 이후의 1백 6운 체계에서 볼 때 그것이 곧 구운(舊韻)이 되는 것이요, 한위(漢魏)․육조(六朝) 시대의 고운(古韻)을 가리킨 것은 아니다.
구원경(九畹莖) : 구원경의 구원은 초사(楚辭)의 “난지구원(蘭之九畹)”에서 나온 말로서 난초가 있는 곳.
구육일․굴좌도(歐六一․屈左徒) : 구육일은 구양수(歐陽脩)를 말한다. 구는 구양의 준말이며, 육일은 구양수의 호이다. 굴좌도는 굴원(屈原)을 일컫는다. 굴원은 초(楚)의 좌도 벼슬을 하였으며, 그가 지은 초사(楚辭) 구장(九章) 가운데 귤송(橘頌)이 있다.
구의(九疑) : 중국 호남성(湖南省)에 있는 산 이름. 아홉 봉우리가 모양이 모두 비슷해서, 보는 사람이 어느 것이 어느 봉우리인지를 모른다 한다. 즉 분간하기 어려움을 이름.
구이(九夷) : 아홉 종류의 오랑캐. 이 말은 「논어」 자한(子罕)편에 있음.
구익부인(鉤弋夫人) : 한나라 무제(武帝)의 후궁인데, 무제는 장성한 아들이 없이 늦게야 구익부인이 아들을 낳았으므로, 그를 후계로 정하고, 후일에 황제의 모친으로 정권에 간여할까 염려하여 사랑하는 구익부인을 사약하여서 죽였다.
구인득인(求仁得仁) : 길야은(吉冶隱)의 절개를 옛날 은(殷) 나라 절사(節士) 백이(伯夷)․숙제(叔齊)에게 비유한 것. 자공(子貢)이 공자에게 “백이․숙제는 어떤 사람입니까?”라고 물으니, 공자는 “옛날 어진 사람이다.” 하였다. 자공이 또 “후회를 하였읍니까?”라고 물으니, “인(仁)을 구하여 인을 얻었으니 또 무엇을 후회하랴.” 하였다. 論語 述而
구일제(九日製) : 9월 9일에는 文臣에게 시를 짓게하여 시험을 보이는 것으로 節製日의 하나이다.
구자(龜玆) : 한(漢) 나라 때 서역(西域)의 나라 이름. 천산(天山) 남쪽의 고차(庫車) 부근. 효선제(孝宣帝) 때 정길(鄭吉)이 오루성(烏壘城)의 도호(都護)가 된 이후 한 나라에 예속되었다.
구장(九章) : 아홉 가지 그림을 그린 복장(服章). 옛날에는 천자(天子)의 면복(冕服)을 12장으로 하다가, 주(周) 나라에 와서 일(日)․월(月)․성신(星辰) 세 가지는 기(旗)에다 그리고 면복에는 9장으로 하였으니, 용(龍)․산(山)․화충(華蟲)․화(火)․종이(宗彛)․조(藻)․분미(粉米)․보(黼)․불(黻)을 그려 수놓았다.周禮 春官 司服
구장(鳩杖) : 노인의 지팡이 머리에 비둘기를 새긴 것인데, 그것은 음식을 조심하라는 것이다.
구장면복(九章冕服) : 임금의 면복(冕服)에 天子는 九章이고 諸侯는 七章인데 章은 무늬의 가지 수이다.
구전(區田) : 적의한 지역을 가려 전(田)을 만들어 종곡(種穀)함을 이름.
구전(口傳) : 벼슬아치를 주의(注擬)할 때에 승정원(承政院)을 통하여 아뢰고서 낙점(落點)을 받는 일. 원래 관원(官員)을 임명할 때는 으레 대궐에 나아가 주의를 하고서 낙점을 받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인데, 긴급한 일이 있을 때에는 이런 격식을 생략하고 이조 판서가 직접 승정원으로 하여금 아뢰게 하여 낙점을 받는 것을 이름.
○ 臺諫啓前事 又啓曰 節度使守令察訪等 皆令口傳(政事 則例就闕庭 注擬受點 銓曹堂上 不詣闕庭 從便注擬 由政院以啓 受點者 名曰口傳) 若一二員有闕 而事闕國家 則不得已口傳可也 然擬望人物于私弟 其未便 請自今以後 勿令口傳中宗實錄 五年庚午 六月 己亥
○ 口傳有政 以崔有海爲兵曹佐郞(以口傳差出郞官始此 是後 至於亞卿 每口傳差下矣)光海君日記 十四年 壬戌九月朔甲午(鼎足山本)
구절창포(九節菖蒲) : 창포 중에도 구절창포가 선약(仙藥)이라 한다.
구절판(九折坂) : 중국 사천성(泗川省) 영경현(榮經縣) 서쪽에 있는데 산길이 아주 험하여 오르는 자는 회곡(廻曲)하여 아홉 번 접어 들어야 마침내 오르게 된다고 함.
구정(丘井) : 옛날의 토지법. 구는 16정. 1정은 9백 묘(畝)이다.
구정상침(九鼎尙沈) : 구정은 하우(夏禹) 때부터 내려오던 신기(神器)였으므로 나라가 망한 것을 구정이 잠겼다 한다. 여기서는 주(周)가 망했다는 말.
구재(九齋) : 고려 12도(徒) 사학(私學)의 효시인 최충(崔冲)의 시중 최공도(侍中崔公徒)를 가리킴. 최충은 사숙(私熟)을 열어 몰려오는 학생들을 낙성(樂聖)․대중(大中)․성명(誠明)․경업(敬業)․조도(造道)․솔성(率性)․진덕(進德)․대화(大和)․대빙(待聘)의 9재로 반을 편성하여 교수했다.
구제궁(九梯宮) : 영명사(永明寺) 안에 있는데, 동명왕의 궁이라 하나, 輿覽 고려시대 이궁(離宮)인 듯하다.
구조반(九條班) : 사절(使節)을 맞는 반열(班列). 구조는 공(公)․후(侯)․백(伯)․자(子)․남(男)과 고(孤)․경(卿)․대부(大夫)․사(士)
구족계(具足戒) → 受具
구주(九州) : 통일 신라 이후 전국을 상주(尙州)․양주(良州)․강주(康州)․웅주(熊州)․전주․(全州)․무주(武州)․한주(漢州)․삭주(朔州)․명주(溟州)의 아홉 행정 구역으로 나누어 다스렸다.
구주(句住) : 구류(句留)와 같은 말임. 백거이의 시에 “句留醉客夜徘徊”라 하였음.
구주지여범(九疇之餘範) : 본래는 하(夏) 우왕(禹王)이 요순(堯舜) 이래의 사상을 정리한 정치 도덕의 기본이 되는 대법(大法). 뒤에 기자(箕子)가 무왕(武王)에게 전수하였다 한다. 여기 서는 기자의 동래설(東萊說)을 두고 한 말이다. /동사강목3/
구준(丘濬) : 명나라 학자. 자는 중심(仲深), 호는 심암(深菴) 또는 경산(瓊山), 시호는 문장(文莊)임. 주자학(朱子學)에 정통하였고, 문연각 태학사(文淵閣太學士)를 지냈음. 저서에는 「대학연의보유고(大學衍義補遺稿)」․「주자학적(朱子學的)」․「가례의절(家禮儀節)」등이 있음.
구준(寇準) : ① 송 진종 때의 명상(名相). 글안이 침입했을 때 조정의 의론을 반대하고 글안을 칠 것을 주장하여 전주(澶州)에서 격퇴시키고 불가침동맹을 맺게 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이 공로로 내국공(萊國公)에 봉해짐. ② 송(宋) 나라 진종(眞宗)때에 구준(寇準)은 정승이 되고 정위(丁謂)는 참정(參政)이 되었는데, 준(準)에게 심히 아첨하였다. 일찍이 중서성(中書省)에서 회식하는데 구준의 수염에 국물이 묻었다. 정위가 천천히 일어나서 털어 주니 준이 웃으며 말하기를, “참정은 나라의 대신인데 관장(官長)을 위하여 수염을 씻어 주는가?”하니, 위가 대단히 부끄러워하였다. 뒤에 준을 참소하여 쫒아버리고 제가 대신하였음.
구중․양중(求仲․羊仲) : 한(漢) 나라 때 고사(高士). 장후(蔣詡)란 사람이 두릉(杜陵)에 은거해 살면서 이 두 사람과 친하게 지냈다 한다. 蒙求 蔣詡三經
구진지린(九眞之麟) : 구진은 나라 이름. 한(漢) 나라 선제(宣帝) 때 구진국(九眞國)에서 기린을 바쳤다. 淵鑑類函 卷四百二十九 獸部 麟
구촉(龜燭) : 구촉은 거북과 촛불. 거북점을 치고 어둔 곳에서의 촛불마냥 의심이 깨끗이 풀렸다는 것임.
구추(九推) : 밭을 아홉 번 가는 것. 「예기(禮記)」 월령(月令) 편에, “천자(天子)는 밭을 세 번 갈고, 삼공(三公)은 다섯 번 갈고, 경(卿)․제후(諸侯)는 아홉 번 간다.” 하였음.
구탈(區脫) : 북쪽 오랑캐가 경계선에 만든 척후용(斥候用)의 움막.
구탈(甌脫) : 원문‘甌脫’. 호지(胡地)의 사람 못살 버린 땅, 또는 토굴. 史記 匈奴傳
구토(九土) : 구주(九州)의 땅. 임금이 중국을 9주로 나누었으므로 곧 종국 전체를 말함.
구폐(九弊) : 당(唐) 나라의 육지(陸贄)가 임금에게 말한 구폐(九弊)로 즉 남을 이기기 좋아하는 것, 자기 단점을 말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 말재주만을 부리는 것, 자기의 총명만을 믿는 것, 위엄을 너무 피우는 것, 멋대로 강퍅(强愎)을 부리는 것인데 이상은 웃사람에 해당하며, 아첨하는 것, 사세를 관망하여 자기에게 유익하게 하는 것, 두려워하고 겁내는 것, 이상은 아랫사람에 해당한다. 新唐書 卷一百五十七 陸贄傳
구폐(救弊) : 대책문(對策文)을 짖는 데는 먼저 후대(候對)를 쓰고 다음에 구폐(救弊)를 말하는 대목이 있다.
구품전최(九品殿最) : 구품은 상상(上上)․상중(上中)․상하(上下)․중상(中上)․중중(中中)․중하(中下)․하상(下上)․하중(下中)․하하(下下)의 아홉 등급. 전최(殿最)는 성적을 평가(평가)하는 것, 즉 벼슬아치의 성적을 심사하여 아홉 등급으로 나누는 것임.
구품중정(九品中正) : 위(魏) 문제(文帝)가 인재의 우열(優劣)에 의하여 관리를 전형하던 아홉 등급. 通典 職官典 秩品
구학(溝壑) : 쓰레기를 버리는 곳. 「설원(說苑)」 입절(立節)에, “자사(子思)가 위(衛) 나라에 있을 때 옷은 다 떨어졌고 두 달 동안에 밥을 아홉 끼밖에 먹지 못하였다. 이 소문을 들은 전자방(田子方)은 사람을 시켜 호백구(狐白裘)를 자사에게 보내며 받지 않을까 염려하여 ‘내가 이 옷을 남에게 빌었는데, 누구에게 빌었는지 잊었다. 그러므로 내가 남에게 주는 것은 버리는 것과 같다.’ 라고 했다······ 자사가 ‘내가 아무리 가난하나, 내몸을 차마 구학이 되게 할 수 없다.’하고 받지 않았다.”고 보인다.
구한(九韓) : 「해동안홍기(海東安弘記)」에서 말하는 구한(九韓)은 1. 일본(日本) 2. 중화(中華), 3. 오월(吳越), 4. 탁라(乇羅 : 耽羅), 5. 응유(鷹遊), 6. 말갈(靺鞨), 7. 단국(丹國 : 契丹), 8. 여진(女眞), 9. 예맥(穢貊)임.
구합(九合) : 아홉 차레의 회합. 제 환공(齊桓公)이 노 장공(魯莊公) 10년에 북행(北杏)에서 희합하여 송(宋) 나라를 토벌, 노 희공(魯僖公) 4년에 초(楚) 나라를 정벌, 6년에 정(鄭) 나라를 정벌한 것이 소위 “세 번을 병거로 보였다.”는 것이고, 장공 14년에 견(鄄)에서 회합, 15년에 또 인에서, 16년에 유(幽)에서 연맹, 희공 5년에 수지(首止)에서 회합, 8년에 도에서 연맹, 9년에 규구(葵丘)에서 회합한 것이 소위 “여섯 차례를 승거로 보였다.”는 것인데, 이 말은 「좌전」 양공(襄公) 11년 조에 보임.
구향(仇餉) : 먹여 주는 자를 원수로 삼았다는 말로서, 「서경」 중훼지고(仲虺之誥)에, “葛伯 仇餉”이라고 하였는데 「맹자」 등문공(滕文公)편에서 자세하게 해설하였다.
구계(朐界) : 구현(朐縣) 경계. 구현은 현명(縣名)으로 진 나라 때 주였고, 성은 강소성(江蘇省) 동해현(東海縣)에 남쪽에 있음. 진 시황 35년에 동쪽을 순수하여 돌을 위 구현 경계 가운데 세워서 동쪽의 문으로 삼았음. 讀史方輿紀要 江南 淮安府 海州
구호(口號) : 시제(詩題)의 하나. 글자로 쓰지 않고 마음에 떠오르는 대로 곧장 읊조린다는 뜻. 양 간문제(梁簡文帝)의 ‘앙화위위신유후순성구호’(仰和衛尉新渝侯巡城口號)에서 비롯되어, 당(唐)에 와서 성행하였다.
구후(舅後)가 되지 못하는 적부(適婦) : 남편이 죽고 자식도 없어 전중(傳重)하지 못하는 맏며느리.禮記 喪服小記
구흡서강수(口吸西江水) : 추사 자신이 일생 동안 황정견의 영향을 많이 받았음을 말함. 傳燈錄에 “양주(襄州) 방 거사 온(龐居士蘊)이 마조(馬祖)에게 참알(參謁)하여 묻기를 ‘만법(萬法)과 더불어 짝을 하지 않으면 이 무슨 사람입니까?’ 하니, 마조가 답하기를 ‘네가 한 입으로 서강수(西江水)를 다 들이마시게 되면 너에게 일러주리라.’ 하자, 거사는 그 한 마디 말에 곧 깨달았다.” 하였음.
국구(國舅) : 임금의 장인
국미춘(麴米春) : 술 이름. 「주소사(酒小史)」에 ‘운안(雲安)의 국미주(麴米酒)’라 하였고, 두보(杜甫)의 시에, “이 술 한 잔을 마시면 곧 취한다.” 하였다.
국부상서(麴部尙書) : 술을 잘 마시는 사람에 대한 해학적인 별명이다. 당(唐) 나라 여양왕(汝陽王) 진(璡)은 집에 술을 빚는 특별한 방법이 있어 감로경(甘露經)이라 이름하였으며 ‘양왕 겸국부상서’(釀王兼麴部尙書)라 자칭하였다. 醉仙記
국비(國比) : 천하 인민의 수효와 재물을 다시 비교해서 조사하는 것.
국사(國士) : 비상한 인재를 말한다. 史記 淮陰侯傳에 “소하(蕭何)가 ‘여러 장수는 쉬 얻을 수 있으나, 한신(韓信) 같은 이는 국사(國士)라 짝할 이가 없다’ 했다.” 하였다. 여기서는 김응하를 명장 한신(韓信)에 비한 것이다./성호Ⅲ 161/
국성(國姓) : 임금의 성, 또는 본관과 성이 임금과 같은 것. 당(唐) 나라 국성은 이(李). 이연(李淵)과 이세민(李世民)이 창건함. /성호Ⅴ 22/
국인전(麴引錢) : 인(引)은 면허증과 같은 것. 누룩 제조에 발급하던 면허장에 대한 세전.
국자좨주(國子祭酒) : 귀족의 자제 및 준수한 자를 교육하기 위하여 서울에 설치한 학교의 장관. 「좨주」란 옛날에 회동(會同)하여 향연(饗宴)을 베풀 때 존장(尊長)이 먼저 술을 땅에 부어 신(神)에게 제사 지낸 데서 나온 말인데, 국자감 장관의 별칭이 되었다.
국자학석경(國子學石經) : 당 문종(唐文宗) 개성(開成) 2년에 국자제주(國子祭主) 정담(鄭覃) 등이 십이경(十二經)의 문자를 돌에 새겨 장안(長安)의 태학(太學)에 세운 것을 이름. 이 석경은 섬서성(陝西省) 서안부학(西安府學)에 남아 있는데, 「역경」9석(石)․「서경」10석․「시경」16석․「주례」17석․「의례」20석․「예기」33석․「좌전」67석․「공양전」17석․「곡량전」16석․「효경」1석․「논어」7석․「이아」5석으로 도합 2백 18석이다.
국조상위(國朝象魏) : 상위는 성문(城門)이며 상은 치상(治象), 법상(法象)이니 주례(周禮)에, “치상의 법을 궐문에 걸어서 만인에게 치상을 보게 하였다”고 하였다. 따라서 “국조의 법률을 모은 법전”이란 뜻이다.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 세종(世宗)의 명을 받아 허주(許稠) 등이 오례의 편찬에 착수하고, 세조 때는 강희맹(姜希孟) 등의 손을 거쳐 성종 5년에 신숙주(申叔舟)․정척(鄭陟) 등이 와성한 예서(禮書) 8권을 이른다
국진(麴塵) : 원래 본 뜻은 글자대로 누룩에 생기는 담황색 티끌 같은 균(菌)이란 뜻인데, 전(轉)하여, 담황색옷[鞠衣]을 비유한다. 우교(牛矯)의 「버들가지」 시에, “춤추는 치마는 새로 국진 나(羅)를 물들였네.”란 구절이 있다.
국책(國策) : 「전국책(戰國策)」의 약칭. 주 안왕(周安王)으로부터 진 시황(秦始皇)까지의 전국 시대 여러 나라 사실을 국가별로 기록한 책. 한(漢) 나라 유향(劉向)이 지었다고 함.
국출신(局出身) : 인조 15년(1637)에 7국 출신을 설정하고 분번(分番)하여 위(衛)를 지키게 하였음.
국충(國忠) → 楊國忠 : 국충은 양귀비의 친족인데 국사를 그르쳐 안록산(安祿山)의 난이 일어 났다. 당나라 명황(明皇)이 안록산에게 쫓겨 촉중(蜀中)으로 파천(播遷)할 때 중로에서 양국충의 목을 베었다. 여기서는 이산해를 가리킨 것이다. /연려실기술15/
국풍(國風) : 「시경(詩經)」의 국풍(國風)을 말함. 이소(離騷) 주에 ‘국풍은 여색을 좋아하면서 음탕하지 않다.’ 하였다.
군(軍) : 「주례(周禮)」 하관(夏官) 서관(序官)에 “무릇 군데를 편성함은 1만 2천 5백 명을 1군으로 한다. 왕은 6군, 대국(大國)은 3군, 차국(次國)은 2군, 소국은 1군으로 한다.”[凡制軍 萬有二千五百人爲軍 王六軍 大國三軍 次國二軍 小國一軍]했음.
군경(君卿) → 두우(杜佑)
군공봉사(軍功奉事) : 임진왜란 때 각 지방에서 의병이 일어나 군공을 세웠으므로 이것을 조사하기 위하여 설치한 것이 군공청이며, 봉사는 다른 관청의 예로 보아 종 8품(從八品) 벼슬임.
군기감(軍器監) : 병기를 맡아 관리하는 관청.
군기시(軍器寺) : 병기(兵器)․기치(旗幟) 등의 제조를 관장한 관아.
군뢰선래(軍牢先來) : 중국으로부터 임무를 마친 조선 사행이 돌아올 때 군뢰(軍牢) 한 사람을 선발, 만부(灣府 ; 義州)에 보내 책문(柵門)에 당도할 일자를 보고케 한다. 보고를 접수한 만부에서는 사행 영접을 위한 모든 의식을 갖추어 지정한 날짜에 미리 책문에 도착하였다가 사행을 맞아 돌아가게 된다. 이때 사행이 만부로 파견하던 군뢰를 ‘군뢰선래’라 한다.
○ 到此 先送軍牢一人於灣府 以報到柵日字是所謂軍牢先來 盖軍牢出去後 自灣府諸般迎接之節 趁期來待云 燕行錄選集 Ⅺ 燕轅直指 卷五 回程錄
○ 朝於瀋陽 先送軍牢一人 出龍灣 是稱軍牢先來 燕行錄選集 Ⅷ 薊山紀程 卷四
군보(軍保) : 정병(正兵)을 돕기 위하여 두는 조정(助丁)을 일컫는 말. 이조의 군제에 현역병 1명에 조정(助丁) 2명씩을 두고, 현역병의 농작을 대신헤 주도록 했는데 이조 후기에는 양병의 비용에 쓰기 위해 조정에서 역을 면해 주고 그 가로 군포(軍布)를 바치게 하였음.
군신비약(君臣秘藥) : 아주 좋은 약이라는 뜻이다. 병을 다스림에 있어 주약(主藥)과 보조약(補助藥)이 있는데, 군(君)은 곧 주약이고 신(臣)은 곧 보조약이다.
군․신․좌․사(君臣佐使) : 나라 다스리는 데는 임금과 신하 등이 있듯이, 병을 다스리는 데에도 군․신․좌․사의 역할을 하는 각종 약재를 가미(加味)하는 것.
군옥산(羣玉山) : 신선이 사는 곳.
군자군(君子軍) : 월왕(越王)이 전군(全軍)을 반절로 나눠 좌우군(左右軍)으로 하고 사졸군자(私卒君子) 6천 명으로 중군(中軍)을 삼았음. 吳越春秋 句踐伐吳外傳
군자도장신(君子道長辰) : 동지절(冬至節)을 말함. 易 復傳에 “양은 군자의 도이니 군자의 도가 소극(消極)했다가 다시 자라난다.” 하였음.
군재(郡齋)의 재는 재사(齋舍)․사당(祀堂)․향교(鄕校) 등을 말하나 여기서는 군의 관아(官衙)를 말하며 하곡의 형은 고양 군수였다.
군지(軍持)․박만(撲滿) : 군지는 물병. 범어(梵語)의 음역으로 군지(君遲)․군치가(裙穉迦)라고도 한다. 천수관음(千手觀音) 40수(手) 중의 군지수(軍持手)에 가지고 있는 병이라는 뜻이다. 琅瑯代醉編 박만은 돈을 넣어두는 작은 항아리. 돈이 가득하면 깨어버리기 때문에 생긴 이름으로 저금옥(貯金玉) 또는 박만자(撲滿子)라고도 한다. 西京雜記 五
군첨(軍簽) : 군역(軍役)을 정해서 발부(發付)하는 통지서.
군포법(軍布法) : 15세에서 60세까지의 남정(男丁)으로서 군역(軍役)이 있는 자에게서, 평상시(平常時) 1년에 무명 1필씩을 징수하던 법.
굴대부(屈大夫) : 전국시대 초나라 사람이다. 이름은 평(平)이고 자는 원(原)이오 호는 영균(靈均)이라고 하였다. 원(原)은 초나라의 귀족으로서 회왕(懷王)을 섬겨 벼슬이 좌도(左徒)에 이르고 큰 신임을 받았다. 회왕이 장의(張儀)의 연횡술책에 빠지는 것을 간하여 장의를 죽이고자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대부들의 시기를 받아 방축되어 장사(長沙)의 멱라수(汨羅水)에 투신자살하였다. 「굴원부(屈原賦 205편)」으로 유명하다. → 屈原
굴산(屈産) : 좌전(左傳) 곡량전(穀粱傳) 주(註)에, 굴(屈)은 고을 이름이요, 산(産)은 말을 산출 하는 것이라 하였고, 공양전(公羊傳) 주(註)에는 굴산(屈産)은 땅 이름인데 명마(名馬)를 산출하는 땅이라 하였다.
굴원(屈原) : 굴원(屈原)이 초회왕 때 벼슬하다가 대부의 참소를 당하매, 이소(離騷)를 지어 왕의 감오(感悟)를 기대했다. 회왕의 아들 양왕(襄王)이 즉위하자 장사(長沙)에 좌천되매, 어부사(漁父辭) 등 제편(諸篇)을 지어 뜻을 표시하고, 멱라수(汨羅水)에 빠져 죽었다. 史記 卷八十四 屈原傳 → 競渡
굴좌도(屈左道) → 구육일(歐六一)
궁기(弓箕) : 조상의 세업(世業)을 계승함을 말한다. 禮記 學記에 “활을 잘 다루는 자의 아들은 키를 잘 만들게 되고 쇠를 잘 불리는 자의 아들은 갖옷을 잘 만들게 된다.”[良弓之子 善爲箕 良治之子 善爲裘]한 말에서 나온 말이다.
궁기(窮奇) : 요(堯) 임금 시대 사흉(四凶)의 하나인 공공(共工)의 별칭. 공공이 충신(忠信)을 버리고 악행을 좋아하며 그의 실행과 취미가 궁흉(窮凶)하고 기괴하다는 뜻에서 불려진 이름.
궁루(宮漏) : 궁중(宮中)의 물시계[水時計]인데, 시각마다 북을 쳐서 때를 알림.
궁리진성(窮理盡性) : 이치를 궁구하여 천성(天性)을 다하는 것. 周易 說卦傳에 “窮理盡性 以至於命”이라 하였는데, 그 주석에 ‘천하의 이치를 궁구하고 인물의 성을 다하여 천도에 합치되게 하는 것이다.’[窮天下之理 盡人物之性 而合於天道] 하였다.
궁발(窮髮) : 土蕃의 不毛地를 말한 것인데 지금의 티베트이다.
궁선(宮線) : 날짜가 지남에 따라 조금씩 더 많아지는 것을 비유하는 말. 唐書 律曆志의 “궁중에서 여공(女功)으로 해가 길고 짧은 것을 측정하였는데, 동지(冬至)가 지나면 실 한가닥[一線] 만큼의 여공이 늘었다.”는 대목에서 나온 문자이다.
궁신지화(窮神知化) : 이 말은 「주역(周易)」 계사(繫辭)에 보임.
궁야(弓冶) : 선인(先人)의 업을 이어 받는다는 뜻. 禮記 學記 주에 “양궁의 자제들은 그 부형이 나무와 뿔을 휘어 활 만드는 것을 보고, 버들 가지를 가져다가 휘어서[箕] 만들 줄을 알게 되고 양야(良冶)의 자제들은 그 부형이 쇠를 녹여 그릇을 땜질하는 것을 보고, 짐승 가죽을 조각조각 이어서 꿰매어, 갖옷[裘] 만들기를 배운다.” 하였다.
궁예(弓裔) : 태봉국주(泰封國主)임. 철원에 도읍하였으므로 한 말임. /완당집3/
궁장(宮牆) : 사문(師門)의 의리를 비유한 말. “자공(子貢)이 중니(仲尼 : 공자의 자(字)임) 보다 낫다.” 하는 숙손무숙(叔孫武叔)의 말을 전해 들은 자공은, “궁장(宮牆)에 비유하건대, 사(賜 : 자공의 이름임)의 담은 어깨까지 닿아서 집안의 좋은 것을 엿볼 수 있지만, 부자(夫子 : 공자를 말함)의 담은 몇 길이라 그 문을 찾아내서 들어가지 않으면, 종묘의 아름다움과 백관의 많은 것을 보지 못할 것이니, 그 문을 찾아낸 자가 적으므로 그 분의 말이 또한 마땅하지 않겠는가?” 하였다. 論語 子罕 /연행9-144/
궁정(弓旌) : 무사는 활로, 대부는 정(旌)으로 초대하는 예물이란 뜻이다. /하곡2-505/
궁헌(宮軒) : 궁현(弓縣)과 헌현(軒縣)을 말한다. 현(縣)은 즉 종(鍾)․경(磬) 등 악기를 돌에 단다는 뜻이다. 「주례」 춘관(春官) 소서(小胥)에 “악기 다는 위치를 정하는 데 있어 왕은 궁현(宮縣)이고 제후는 헌현(軒縣)이다······”하였고 정현(鄭玄)의 주에 의하면, 순거(簨簴 : 악기를 다는 틀)의 4면에 다 악기를 다는 것은 궁현이고 3면에만 다는 것은 헌현이라고 하였다. /오주17-98/
권관(權管) : 변경의 직으로 진보(鎭保)에 두었던 종구품의 수장(守將)이다. /대동6-30/
권당(捲堂) : 성균관(成均館) 유생들이 불평이 있을 때 시위(示威)로 관을 비우고 나가버리는 일. /면암집1/
권도(權道) : 정상적인 방법인 경도(經道)와 대립되는 일시 변통의 방법을 권도(權道)라 한다.
권마성(勸馬聲) : 높은 관리의 행차에 앞서, 하인이 위엄을 돋우고 일반 행인을 물러서게 하기 위하여 길게 부르는 소리. /열하일기1/
권무군관(勸武軍官) : 훈련도감(訓練都監)․금위영(禁衛營)․어영청(御營廳)에 소속된 군관. 이들에게는 특명으로 권무시(勸武試)를 치르게 하여 합격자는 전시(殿試)에 바로 나갈 수 있는 특전이 있었음. /만기2/
권법(拳法) : 맨손으로 적을 치고 막는 무예, 지금의 태권도와 비슷함. /만기2/
권분(勸分) : 고을 윈이 관하 부유한 백성에게 빈민(貧民)을 구제하도록 권유하는 일. /경세2-382/
권안소(權安所) : 임시로 봉안(奉安)한 곳./연려실기술17/
권여(權輿) : 처음[始]이란 뜻. 「이아(爾雅)」에, “權輿始也”라 보이고, 「대대례(大戴禮)」 고지(誥志)에는, “於時泳泮發蟄 百權輿”라 보이는데 맹아(萌芽)의 뜻으로 쓰여졌으며, 「한서」 양웅전(揚雄傳)에도, “萬物權輿於內 徂落於外”라 보이는데 처음이란 뜻으로 쓰였음. 성호가 말한 수레와 저울로 쓰여진 곳은 아직 보이지 않음. 「類選」 卷六上 經史篇一 經史門. /성호사설7/
권장음(捲帳飮) : 장막(帳幕)을 걷어 올리고 술을 마신다는 뜻으로, 공회(公會) 때에 장막을 연접하여 있는 사헌부(司憲府)와 사간원(司諫院)의 관원이 장막을 걷어 올리고 서로 술을 마시던 일을 이르는 말.
○ 舊例公會 臺諫必連幕而次 或時飮酒捲帳相屬 號曰捲帳飮 筆苑雜記
권점(圈點) : 이조 때 청관(淸官)을 임명할 때에 후보자들의 성명을 적어 놓고 뽑는 사람들이 각기 뽑고자하는 사람의 성명 아래에 찍는 둥근 점. /대동야승12-148/
권정(權停) : 형편에 依하여 停止하는 것 /燃藜室記述/
권조(權厝) : 임시로 가매장하는 것. /연려실기술15/
권초지례(捲草之禮) : 산실(産室)에 깔았던 거적자리를 걷어 치우는 예(禮). /대동1-56/
권현당(權現堂) → 공목(公木) /해행10-191/
궐리(闕里) : 공자의 洞里 /고려사절요8/
궐내행하(闕內行下) : 수령이 지방에 임관되어 떠날 때 대전별감(大殿別監)이나 정원사령(政院使令)들이 그 수령에게 뜯어내던 돈. 나가는 수령의 문벌이 낮을 경우에는 더욱 귀찮게 토색하며 못견디게 굴었다.
○ 守令辭朝之日 掖隸院隸 討索例錢 名之曰 闕內行下 多者 數百兩 小者 五六十兩 蔭官武官及寒遠之人 或所施滿其欲 或執衣袂 窘辱罔狀 牧民心書 赴任
궐음풍목(厥陰風木) : 오운 육기(五運六氣) 중의 하나. 오운 육기는 소음군화(少陰君火)․태음습토(太陰濕土)․소양상화(少陽相火)․양명조금(陽命燥金)․태양한수(太陽寒水)․궐음풍목(厥陰風木). /성호1-239/
궐의(闕疑) : 공자의 말에 「많이 듣고도 의심나는 것은 모르는 그대로 궐(闕)하여 두라」 하였다.
궐희(闕戱) : 성균관 유생(成均館儒生)들이 베풀던 일종의 모의(模擬) 조정(朝廷)놀이. 공자(孔子)를 왕으로 삼고 사학(四學)에 각각 나라를 배포하여, 관직을 제수하며 벌을 주며 하는 등 다채로운 놀이였다.
○ 每歲夏冬 成均儒生 書紙爲闕字 尊孔子爲王而奉之 以東學爲復聖公之國 南學爲述聖公之國 中學爲宗聖公之國 西學爲亞聖公之國 如諸侯之仰天子 以館中上下舍之人 注百官之職吏曹掌銓選 辨別賢否···人性有孔字丘字者 皆注宗正之職 如有不遊者 以細條乍鏁鎖項而來囚于房下板下 命義禁府提調推之 甚至橫逆者作草人像斬之 慵齋叢話 卷之九
궤범사(軌範師) → 아사리(阿闍梨)
궤사(饋食) : 옛날 길례(吉禮)의 하나. 제사에 숙식(熟食)을 올리던 것. /성호 5-22/
궤언빙견(詭言氷堅) : 광무제가 왕랑(王郞)의 군사를 피하여 호타하(滬沱河)로 향할 때 왕패로 하여금 물을 건널 수 있겠는가를 보게 하였다. 왕패는 거짓으로 얼음이 얼었다 하였더니 군사가 그 곳에 이르자 얼음이 과연 얼었으며, 건너자 곧 풀어졌다 하였다. /열하11-63/
궤연(几筵) : 삼년상(三年喪)안에 혼백․신주를 모셔 두는 곳.
궤함(匭函) : 당(唐) 나라 무 측천(武則天) 수공(垂拱) 2년에 설치한 여론함(輿論函). 「당서」 측천황후기(則天皇后紀)에 “수공 2년에 처음으로 조당(朝堂)에 궤를 설치하여, 글을 올려 일을 말하고자 하는 자는 글을 올려 그 궤에 넣도록 하였다.”라고 보인다. /성호4-319/
귀곡선생(鬼谷先生) : 전국(戰國) 시대 사람 왕후(王詡)의 호. 소진(蘇秦)과 장의(張儀)에게 종횡술(縱橫術)을 가르쳤고, 1백세를 살았다고 하며, 저서로는 「귀곡자(鬼谷子)」가 있음. /성호7-146/
귀돈(歸豚) : 돼지고기를 보낸다는 말로서, 「논어」 양화(陽貨) 편에, “양화가 공자를 보려 했으나 공자가 만나지 않자, 공자를 자기 집에 오게 하기 위해 되지 고기를 보냈다.”라고 보인다. /성호7-172/
귀마방우(歸馬放牛) : 「서경(書經)」 주서(周書) 무성(武成) 편에, “주 무왕(周武王)이 주(紂)를 쳐서 이긴 후, 말은 화산(華山)의 남쪽으로 돌려보내고 소는 도림(桃林) 들에 놓아 먹이면서 다시는 싸움에 이용하지 않겠다는 뜻을 백성에게 보였다.”한 것을 이름./성호7-289/
귀수(鬼宿) : 28수(宿) 중의 하나. 남방 주작(朱雀)의 제 2성을 이름.
귀신 출후(鬼神出後) : 죽은 사람이 양자 나가는 것을 말함. 조선조 고종(高宗) 때 선보도유사 이재만(李載晩)이 5세에 요절한 용성대군(龍城大君 : 인조의 4남)의 후사(後嗣)로 들어가고, 또 선원파(璿源派)에서 1세 혹은 3세에 죽은 대군이나 왕자 또는 무후(無後)한 집안에다가 1백 년 혹은 2백 년 전에 죽은 사람으로 대를 잇게 하였다.
○ 所謂鬼神出後者 璿源譜都有司李載晩 卽故正言 尙重孫而福平君煙後也······自願出後於五歲夭折之龍城大君 凡大君王子 一歲三歲而夭者及各派中 無昭穆可繼而嗣絶者 並以一二百年已鬼之人 任意充數 至挈父祖以上九世而出後者比比有之 勉菴集 附錄卷之一年譜 癸酉年十一月
귀여지탄(歸與之歎) : 이 말은 「논어」 공야장(公冶長) 편에 공자가 진(陳)에서 말하기를, “돌아가야겠다! 돌아가야겠다! 우리 고장의 젊은이들은 광간(狂簡)하여 재(裁)할 바를 알지 못한다.” 하였는데 이를 가리킴. /성호7-284/
귀역분사(鬼𧌒噴沙, 모래 뿜는 물여우 같고) : 남을 은근히 해치는 것을 말한다. 詩經 小雅 何人斯 “귀신이고 물여우라면 말할 수 없다 하거니와”[爲鬼爲𧌒 則不可得] 하였는데, 집주(集注)에 “물여우는 모래를 머금어 물에 비치는 사람의 그림자를 쏘면 그 사람은 곧 병이 드는데 여우의 형체는 보이지 않는다.” 하였다. /청장1-44/
귀운망(歸雲望) : 당 나라 적 인걸(狄仁傑)이 병주자사(幷州刺史)로 나가는 길에 태행산(太行山)에 올라서 멀리 흰 구름을 바라보며 “우리 어버이가 저 아래에 계시겠구나.”하고 슬퍼하였다. /해행5-333/
귀장(歸藏) : 삼역(三易)의 하나. 은역(殷易)인데, 만물이 모두 땅으로 돌아간다는 뜻을 취하여 귀장이라 하였음. /성호5-225/
귀제법(歸除法) : 나눗셈의 한 방법. 가령 12를 3으로 나눌 때에 먼저 3을 덜어내고 남은 9에서 또 3을 덜어내어 수가 다 없어질 때까지 하나하나 덜어내는 방법 /퇴계집2-148/
귀진천(歸震川) : 명(明) 나라 귀유광(歸有光) 자는 희보(熙甫). 진천은 그의 호. 일대의 문장가로 당시 유행했던 전․후칠자(前後七子)를 반대하고 당송고문(唐宋古文)의 전통을 존중했음. 창강이 그의 문장을 퍽 숭배했다. /여한332/
귀천(鬼薦) : 무과에 급제한 사람 중 대장 후보에 추천하는 것. 장귀천(將鬼薦) /만기2/
귀탁(歸橐) : 지방 관원이 임기(任期)가 만료되어서 돌아갈 때에 가지고 가는 짐 따위 /경세11-186/
귀향(歸鄕) : 벼슬아치에게 실시하던 輕罰의 한가지. 高麗 때의 律名으로 被罪者를 故鄕에 돌아가 머물게 하던 것인데 朝鮮朝 적의 放歸田里와 같고 지금의 政淨法과 비슷하다. 그런데, 朝鮮朝末期에 와서는 徒․流․竄․置를 통틀어 歸鄕이라고 일컬음과 동시에 그 律을 偏重하게 적용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星湖 李瀷은 僿說에서 그 페단을, 茶山 丁若鏞은 雅言覺非에서 그 잘못을 각각 지적였다.
○ 歸鄕 勝國之制 其竄黜重者 謫無人島 輕者歸鄕 歸鄕者 放歸田也 殺之可也 置之松栢之間可乎 歸鄕雖若太輕 使歸其鄕 而不敢離 則亦甚苦可懲衣···今世朋黨之禍 究其源不外於縻爵 或以此得罪遠黜 不幾何時而較其遠近 超擢賞功 蠖屈所以求伸 故蹈死地而有不憚也 若申歸鄕之律 擇黨心者大則限十年 小則限五年 施歸鄕之律 家于京者 屛郊坰之外 任其閑住 則有寬刑之號而 小懲大戒矣 我若遇赦便解 則法不行矣 達官奏而釋之 則法不行矣 故曰一年再赦好人暗啞 亦須先防次路 而後方有效瀷 李墍 著 星湖僿說類選 人事篇七 治道門四刑法附赦 歸鄕
○ 歸鄕者 高麗之律名 今之所謂放歸田里也 今徒流竄置 通稱歸鄕非矣 高麗史刑法志云 官吏受財枉法者 徒杖勿論收職田歸鄕 僧人盜寺院米穀歸鄕 貿易官物者 除歸鄕 依律科罪 又云 判鎭人犯歸罪者 仍留配本處 其律 在笞杖之上徒流之下. 丁若鏞 著 雅言覺非 歸鄕
규(圭) : 하늘과 땅을 모방하여 위는 둥글고 아래는 네모지게 만든 서옥(瑞玉). /삼봉집 2-259/
규구(葵丘) : 춘추시대(春秋時代)의 두 곳 지명(地名). 하나는 제(齊) 나라에 있는 규구로 제 양공(齊襄公)이 연칭(連稱)․관지보(管至父)를 시켜 수자리 살게 한 곳이요, 하나는 송(宋) 나라에 있는 규구로 맹대(盟臺)가 있으며 제 환공(齊桓公)이 제후를 모아 동맹(同盟)한 곳. /연행2-193/
규구준승(規矩準繩) : 規는 圓을 만드는 기구요, 矩는 方形을 만드는 기구이며, 準은 測平器요, 繩은 먹줄이니, 여기서는 法度란 뜻이다. /퇴계집2-235/
규두필문(圭竇蓽門) : 시골 오두막집을 말한 것임. /해행7-372/
규루(奎婁) : 이십팔수(二十八宿)의 백호(白虎) 7성(星) 중 첫째 별자리인 규성과 둘째 별자리인 누성. /동사강목1/
규문(閨門)의 부끄러운 덕 : 소자왕(巢刺王 : 당 태종(唐太宗)의 아우 원길(元吉)의 시호)의 비(妃)를 맞아들인 것. 뒤에 열네째 아들 조왕(曹王) 명(明)을 후사로 삼게 하고 그를 문덕 황후(文德皇后)의 뒤를 이어 후(后)로 삼으려 하다가 위징(魏徵)의 간언으로 중지하였다. 그 외에도 아버지 연(淵)이 거사(擧事)하자는 자기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자 진양궁인(晋陽宮人)을 이용하여 위협하였고, 형인 은태자(隱太子) 건성(建成)과 아우 제왕(齊王) 원길(元吉)을 죽였으며, 태자 승건(承乾)을 폐하여 죽이고, 아홉째 아들 진왕(晉王) 치(治)를 태자로 삼는 일 등 부자 형제 사이에서도 부끄러운 덕이 많았다. 通鑑節要 唐紀 太宗皇帝 /삼봉2-42/
규봉선사(圭峯禪師) : 규봉선사는 보지 못하였지만, 규봉선사의 비문(碑文)은 읽어 보았다는 뜻. 규봉선사는 당(唐) 나라 때의 고승(高僧)으로 비는 섬서성(陝西省) 호현(鄠縣)에 있는데, 배휴(裵休)가 비문을 찬하고 글씨를 썼으며, 유공권(柳公權)이 전액(篆額)을 썼다. 寰宇訪碑錄 唐 /청자1-150/
규성전차(奎星躔次) : 규성은 문장을 맡은 별임. 전차는 그 별의 성좌(星座)임. /해행5-367/
규염객전(虯髥客傳) : 전기 소설의 하나. 당(唐) 나라 장열(張說)이 지었음. /성호8-262/
규장각(奎章閣) : 역대 임금의 글․글씨․고명(顧命)․유교(遺敎)․선보(璿譜)․보감(글․글씨․고명(顧命)․유교(遺敎)․선보(璿譜)․寶鑑) 등을 보관하던 관아(官衙) /만기2/
규전(圭田) : 50묘(畝)가 되는 깨끗한 밭으로, 거기서 나오는 곡식으로 제사를 받들게 한 제전(祭田) /성호5-314/
규필(圭蓽) → 규두필문(圭竇蓽門)
규화향양(葵花向陽) : 해바라기 꽃이 태양을 쳐다 보는 것을 신하가 임금에게 충성하는 것과 같다고 한다. /해행5-433/
균(均) : 토지를 모두 국가에서 거두어들여 백성에게 고루 나누어 주는 제도(制度). 중국 북위(北魏)․북주(北周) 및 당(唐) 나라 때 토지를 공유(公有)로 하고 백성에게 토지를 고루 나누어 주던 균전법(均田法)으로, 당 고조(唐高祖) 때에 18세 이상의 남자에게 농토 1백 묘(畝)를 주고 20묘를 영업전(永業田), 80묘를 구분전(口分田)으로 하여 그 사람 일대(一代)에 한하여 나누어 주었다. 「類選」 卷四下 人事篇六 治道門.
균역(均役) : 영조(英祖) 26년에 조세를 고르게 매기기 위해서 정한 제도. 정년자(丁年者)에게 군역(軍役) 대신 징수하던 양포(良布) 2필 중에 1필을 줄이고 그 부족액은 어업세(漁業稅)․염세(鹽稅) 따위로 보충했음. /경세3-99/
균역청(均役廳) : 균역법(均役法) 실시에 따른 여러 가지 사무를 맡아보는 관아(官衙) /만기2/
균인(均人) : 주(周)나라 시대의 관직. 인민․우마․거련(車輦)의 역(役)을 맡음. /경세2-163/
균천(鈞天) : 균천(鈞天)은 「중앙」의 뜻. 장로의 법명(法名)이 주남(周南)이나 일명 균천(鈞天)인데, 그의 접인(接引)이 남쪽에서 뿐만 아니라 중앙에까지 두루 미쳤다는 시의(詩意) /해행5-215/
균천광악(鈞天廣樂) : 목공은 춘추 때 오패(五覇)의 하나. 그는 훌륭한 신하 백리해(百里奚)를 얻어 옹주(雍州) 지방을 차지하고 패업(覇業)을 이룩하였다. 균천(勻天)은 균천(鈞天)이라고도 하는데, 균천광악(鈞天廣樂)의 준말로 천상(天上)의 음악을 말한다. 진 목공은 병들어 사람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는데, 곧 깨어나서 “내가 옥황상제 있는 곳에 갔더니 매우 즐거웠으며 여러 신선들과 균천광악을 들었다.” 하였다. 列子 周穆王 註 /청장1-139/
균평(均平) : 대학에 제일(第一) 두 자를 직접 말한 것은 없고, 제가․치국을 말하는 제 9장에서, “한 가정이 인하면 온 나라가 인하게 되고, 한 가정이 겸양하면 온 나라가 겸양하게 되고 한 사람이 탐욕스러우면, 온 나라가 혼란스러워진다.”[一家仁 一國興仁 一家讓 一國興讓 一人貪戾 一國作亂] 이라 하여, 임금된 사람의 모든 언어와 행동이 국가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을 말한 것이 있는데, 혹 이것을 가리켜 제일(第一)이라 한 것이 아닌가. 약보(若保)는 여보(如保)라고도 하는데 대학 장구 제 9장에서 강고(康誥)에 이르기를, “적자를 보호하듯이[如保赤子]······”라고 서경의 말을 인용한 것이 있다. 적자를 보호하듯이 한다. [如(若)保赤子]는 말인데, 여기 약보(若保) 두 자는 이에서 따온 생략된 말이다. 균평(均平)이란 말도 대학에서 직접 사용된 말은 아니다. 다만 치국․평천하를 말하는 제 10장에서 소위 혈구지도(絜矩之道)를 말하였는데, 혈구지도가 「균평(均平)」을 원리로 한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가리켜 「균평」이라고 말한 것 같다. /하곡1-103/
균포(均包) : 조선 후기 연행 사신에게 고루 분배하여 주던 은. 팔포(八包)의 제도를 폐지한 뒤 연경에 가는 상인에게 사사로 화물을 가져가지 못하게 하고 ‘포’라는 이름을 붙여 가지고 가게 했는데, 화물을 달아서 값이 은 1백 냥의 값이 되면 은 12냥을 떼어서 각원에게 고루 나누어 주던 제도인 듯하다.
○ 此法遂廢 令諸商之貨于燕者 不許私帶貨物就包名帶入 皆稱其輕重折價 價滿銀百兩 則折稅銀十二兩 均分 分屬於各員 謂之均包 朴思浩, 心田稿 燕薊紀程
귤림서원(橘林書院) : 송시열이 그의 아우와 손자에게 글을 주어 귤림서원(橘林書院)에 고하게 한 일. 이 서원에는 충암(冲庵) 김정(金淨), 규암(圭菴) 송인수(宋麟壽),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 동계(桐溪) 정온(鄭蘊)을 향사하는 곳으로 숙종 21년(1695)에 송시열을 배향하였다. 宋子大全 年譜 卷十一 /완당집3/
귤리정정(橘裏丁丁, 유자 속의 낙자 소리) : 위기(圍棊)의 즐거움을 말함. 촉(蜀) 나라 사람이 귤원(橘園)이 있어 가을에 귤을 수확했는데 대귤(大橘)이 크기가 항아리 같은 것이 있어 그것을 쪼개 보니 그 속에서 두 노인이 바둑을 두고 있었다고 하였음. 幽怪錄 /완당집3/
귤만거(橘滿車) : 당(唐) 두목(杜牧)이 풍채가 좋은 문장으로, 취하여 양주(揚州)를 지나매, 길가 청루의 기생들이 다투어 귤을 던져 그의 탄 수레에 가득했다. /해행5-190/
귤송(橘頌) : 「초사(楚辭)」 구장(九章)의 편명으로 초(楚)의 굴원(屈原)이 자신의 고결하고 변하지 않는 지절(志節)을 귤나무에 비해 읊은 것이다. /면암3-8/
극결(郤缺) : 중국 춘추시대 진의 대부이다. 기(冀)에서 밭을 갈 때 그 아내가 들밥을 내왔는데 서로 공경하여 대하기를 손님과 같이 하였다. 구계(臼季)가 이를 보고 함께 돌아가서 문공(文公)에 말하여 하군대부(下軍大夫)를 삼았으며 기를 식읍으로 삼아 주었다. 성공(成公) 때에 조돈(趙盾)을 대신하여 집정(執政)하였다. /담헌2-124/
극기(克己) : 자기의 사욕을 지혜로 이겨 없앤다는 뜻. 「논어」 안연(顔淵)에 “顔淵問仁 子曰 克己復禮爲仁 一日克己復禮 天下歸仁焉 爲仁由己 而由人乎哉”라고 하였음. /성호8-239/
극기복례(克己復禮) : 몸의 사욕을 이기어 예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니 시․청․언․동(視聽言動)의 사물(四勿)은 그 조목인 것이다. 안연(顔淵)이 인(仁)을 물은 데 대하여 공자가 답한 것이다. /하곡집 2-43/
극복존양(克復存養) : 克復은 克己復禮인데, 논어에 있는 말이요, 存養은 存心養性인데 孟子에 있는 말이다.
극성(棘城) : 獄을 말함. /연려실기술6-275/
극식(克食) : 천자(天子)가 식선(食膳)을 하사하는 것. 은전(恩典)을 뜻함. /연행5-311/
극원(兢院) : 고시장(考試場). 과거장(科擧場)에 가시 울타리를 하여 사람의 출입을 금하였으므로 그렇게 말한다고 한다. 일설에는 주(周) 나라 때 회나무와 가시나무를 정부(政府)의 좌우(左右)에 심었다 하여, 정부를 가리키는 말이라고도 한다. /양촌2-75/
극위(棘圍) : 출입금지의 考試場 /연려실기술9-172/
극진미신(劇秦美新) : 진 나라를 나쁘게 여기고 신 나라를 아름답게 생각함. 양웅(揚雄)이 왕망(王莽)에게 아첨하여 극진미신서(劇秦美新序)를 지었음. /성호9-321/
근기(根器) : 불가의 말. 식물은 뿌리가 지엽(枝葉)을 생기게 하고, 그릇은 물건을 담는다. 그러나 생기게 한 것과 담는 것에는 대소․다과의 차이가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수도자(修道者)의 능력에도 고하가 있기 때문에 이렇게 비유한 것이라 한다. /동국3-215/
근당(瑾璫) : 명 무종(明武宗) 때의 환관(宦官) 유근(劉瑾)을 가리킴. 본성은 담씨(談氏)였는데 중궁(中宮) 유씨(劉氏)의 성을 따라서 유근이라 하였음. 무종에게 신임을 얻은 후 불궤(不軌)를 꾀하다가 처형됨. /성호8-436/
근등진서(近滕眞鋤) : 일본 외교관. 외무성 서기관으로 내한했으며 그 후 영사․대리공사․임시 대리대사 등을 지냈다. 우리 나라에 와 있는 동안 청국과 러시아의 세력을 경계하는 한편 일본의 한국 침략의 전초 공작을 하였다. /해행11-59/
근사록(近思錄) : 송(宋) 나라 때 주자(朱子)와 여동래(呂東萊)가 함께 지은 글로, 주염계(周濂溪)․정명도(程明道)․정이천(程伊川)․장횡거(張橫渠) 등의 저서와 어록(語錄) 중에서 뽑은 것. /성호7-162/
근습(近習) : 임금이 가까이하는 신하. 근신(近臣)과 같음. 예기 월명 /성호8-318/
근왕(勤王) : 임금의 일에 힘을 다한다는 것. 춘추좌전(春秋左傳)에, “제후(諸侯)를 모으게 하려면 왕사(王事)에 힘을 다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다.”고 하였다. 이것은 임금이 난을 만나면 군사를 일으켜 평정한다는 것. /대동7-600/
근체(近體) : 율시(律詩)의 체(體)는 당 나라에서 시작되었으므로 당 나라 시인들이 율시를 근체(近體)라 한다. /해행5-595/
근체시(近體詩) : 한시의 율시(律詩)․절구(絶句) 등을 가리킴. 그 자 수, 구(句) 수가 한정되어 있으며 평측(平仄)이 또한 일정한 법칙이 있어서 고시(古詩)에 비해 상당히 까다로운 점이 있다. /삼봉1-236/
글과 칼 : 글을 읽어 관리가 되고 칼을 잡고 종군(從軍)하는 것으로 문관이나 무관이 되는 것을 말함. 孟浩然集 卷三 自洛之越 시에 “삼십 년을 허둥지둥 글과 칼 다 못 이뤘네. [遑遑三十年 書劍兩無成]” 하였음. /고봉집2/
글안 : 몽고계의 한 부족. 10여 계의 부족집단으로, 당(唐), 고구려, 돌궐 사이를 전전하며 이들에게 예속하였으나 당에 복속하고부터 차츰 결합하여 요련씨(遙輦氏) 집단으로 바뀌자 당의 굴레를 벗어나 글안제국 즉 요(遼)의 기반을 잡았다. 이들은 고려에도 3번이나 침입하였는데, 현종(1010) 때 40만 대군으로 침범한 것이 두 번째 침략이었는데, 이때 개성이 함락되어 왕 현종은 나주로 피난했다가 드디어 굴욕적인 화친을 하였다. /만기2/
금감록(金鑑錄) : 張九齡은 당나라 玄宗 때의 정승으로, 당시 황제의 생일에는 신하들이 거울을 바쳐서 축하하는 貫例가 있었는데, 장구령은 千秋金鑑錄이란 책을 지어 올렸다. 그 책은 역대 정치의 잘하고 잘못한 것을 편찬하여 정치의 거울로 삼은 것이다. /퇴계록 1-131/
금갑지화(琴匣之禍) : 소지왕(炤智王)의 사랑하는 왕비가 승(僧)과 부동하여 정월 보름날에 궁중에서 왕을 살해하려고 왕비의 방안 거문고 갑속에 중을 숨겨 놓은 것을, 까마귀가 떨어트린 종이쪽에 쓰인 글을 보고 왕이 먼저 거문고 갑을 활로 쏘아서 중을 죽였다. 그래서 왕이 화(禍)를 면한 것이다. /승람3/
금강저(金剛杵) : 불가의 용어인데 번뇌를 끊고 악마를 굴복시키는 병기로서 견고해서 부서지지 않는 신통력을 말함. /완당집3/
금경(金莖) : 구리로 만든 기둥. 「후한서(後漢書)」 반고전(班固傳)에, “擢雙立之金莖”이라는 주에, ‘孝武作柏梁銅柱 承露仙人掌之屬 金莖銅柱也’라고 보임. /성호8-386/
금경책(金鏡策) : 원(元) 나라 세조(世祖) 지원(至元) 말엽에 동평(東平)의 선비인 조천린(趙天獜)이 올린 태평금경책(太平金鏡策)을 이름. /성호7-239/
금계(金溪) : 절강 개화현(浙江開化縣) 북쪽의 마금령(馬金嶺)에서 발원(發源)한 마루과, 서북쪽 백제령(百際嶺)에서 발원한 물이 문계(文溪)에서 합수(合水)하여 구강(衢江)이 되는데, 이를 금계라 한다. /고봉집3/
금계(金鷄) : 新羅 /고려사절요1-87/
금계방사(金鷄放赦) : 금계를 상징하여 죄인을 석방시킨다는 뜻으로 다음과 같은 고사가 전함. 당(唐) 나라 때 사령(赦令)을 내리는 날 나무로 넉 자쯤 되게 만든 닭을 머리는 금으로 꾸미고 입에는 비단으로 만든 기를 물려서 채반(采盤)에다 높이 세우고 하늘의 천계성(天谿星)을 상징했다 함. 唐書 禮儀志 /성호2-394/
금고(金鼓) : 軍中에서 북을 치면 전진하고 쇠[金]를 치면 퇴각하는 것이다. /고려사절요1-258/
금고(琴高) : 옛날 선인(仙人)의 이름. 거문고를 잘 타서 송 강왕(宋康王)의 사인(舍人)이 되었다. 명의「일통지(一統志)」에 “금고는 경현(涇縣) 사람으로, 도술(道術)에 있어서 물에 들어가도 젖지 않았다. 일찍이 기주(冀州) 탁군(涿郡)에서 2백여 년 동안을 놀고 다니다가 하루는 여러 사람들을 하직하고 탁수(涿水)로 들어갔다. 그 뒤에 적리(赤鯉)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그 제자들이 보았다.” 하였다. /해행8-353/
금고(禁錮) : 벼슬의 길을 막아 드용하지 않는 것. /연려실기술1-85/
금고폐기(禁錮廢棄) : 벼슬 길에 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 /연려실기술 7-396/
금곡(金谷) : 진(晉) 나라 부호(富豪)였던 석숭(石崇)이 땔나무 대신 밀[蠟]로 밥을 지었다 한다. 금곡은 그의 별장이 있던 곳이며, 제노(齊奴)는 석숭의 별명이다.晉書 卷三十三 石崇傳 /청장2-251/
금관성(錦官城) : 성도성(成都城)의 별칭(別稱). 두보(杜甫)의 시에 “금관성밖에 잣나무가 삼삼하다.”[錦官城外柏森森] 하였다. /청장1-281/
금구(金甌) : 튼튼한 것을 비유한 말. 「남사(南史)」 주이전(朱异傳)에, “우리 국가는 금구와 같아서 조금도 손상이 없다.”[我國家 猶若金甌 無一傷缺] 하였음. /성호1-211/
금구(金龜) : 옛날 중국인들의 패물의 하나이다. 당(唐) 나라의 문장인 하지장(賀之章)이 이 금구로 술을 바꾸어 이태백과 함께 술을 마셔서 유명하다. /여지1-312/
금구환백(金裘換白) : 당 나라 하지장(賀之章)이 이태백(李太白)을 처음 만나 허리에 찼던 금구를 풀어서 술집에 잡히고 술을 샀다. 금구는 벼슬한 사람이 찼던 인(印). /해행5-544/
금규(金閨) : 금규(金閨)는 곧 금마문(金馬門)이다 한 무제(漢武帝) 때에 학사(學士)로 하여금 금마문에서 조서를 기다리게 한 고문(顧問)에 비(備)하였음. /동국5-118/
금궤(金櫃) : 금궤는 김해 김씨(金海金氏) 시조의 고사를 가리킴. /성호8-27/
금궤석실(金櫃石室) : 금으로 만든 궤와 돌로 지은 집이라는 뜻으로 한(漢) 나라의 장서각을 말함. /성호8-210/
금낭(錦囊) : 가작(佳作)의 시. 시낭(詩囊)을 말함. 당(唐) 나라 이하(李賀)는 좋은 시를 얻을 적마다 비단 주머니에 넣어 두었기 때문에 생긴 말. /연행2-190/
금당(金璫) : 한 명제(漢明帝) 이후로는 내시들이 전횡하였으므로 환관을 당(璫)이라 칭함. /삼봉1-133/
금도왜(禁徒倭) : 일본의 이른바 메스께[目付]로, 감찰․단속의 일을 맡은 자인데, 그 지위와 소속․소관 범위에는 차등이 많으며, 우리 나라 왜관(倭館)에도 금도왜가 1년 교체로 나와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금도왜는 사신 일행을 호행하는 왜인들을 단속하는 자이다.增正交隣志 差倭 /해행10-15/
금돌(黔突) : 묵자(墨子)가 세상을 구제하러 사방으로 다녔으므로 거처하는 집에 구들이 검을 겨를이 없이 자주 이사를 다녔다. /해행5-383/
금두공(金斗拱) : 황금으로 장식한 두공(斗拱). 두공은 성두(星斗)의 형상으로 만든 것.
금등(金縢) : 「서경(書經)」의 한 편명. 주 무왕(周武王)이 혁명한 후 병이 들었을 때 주공(周公)이 그에게 청명(請命)한 말을 적어서 궤에 넣고 자물쇠로 잠가 두었다는 일종의 비장. /성호사설9-15/
금란 : 벗과 의기가 서로 투합한 것을 말함. 周易 繫辭上에 “두 사람이 마음을 함께 하면 그 예리함이 쇠를 자를 만하고 마음을 함께 한 말은 그 향기가 난초와 같다.” 하였음. /고봉집2/
금란(金卵) → 금궤(金櫃) /성호8-27/
금란문(金鑾門) : 홍문관 정문
금란지가(禁亂知家) : 금란패(禁亂牌)를 가지고 금령을 위반한 사람을 수색하여 잡아 한때 길 가의 집에 맡겨 두는 것. /대동16-474/
금란지계(金蘭之契) : 절친한 친구의 교분(交分)을 말한다. 周易 繫辭上에 “두 사람이 마음을 함께 하면 날카로운 것이 쇠[金]를 자를 수 있고 뜻이 서로 맞는 말은 향기로움이 난초[蘭]와 같다.” 하였는데 여기서는 금(金)자와 난(蘭)자를 따온 것이며, 계는 교분을 말한 것이다. /청장관1-37/
금랑경중(錦囊輕重) : 당 나라 시인 이장길(李長吉)이 매일 놀러 나갈 적에 아이종에게 주머니 하나를 들고 따르게 하여 자기의 지은 시를 그 주머니 속에 집어 넣으니 저녁에 돌아와 보면 주머니가 가득하였다. 그 어머니가 보고는 “이 애가 심간(心肝)을 다 토해 내고야 말겠구나.” 하였음. /해행5-38/
금려(黔驢) : 말의 일종인 나귀이다. 당(唐) 나라 유종원(柳宗元) 글에 금려(黔驢)란 편이 있다. 금 지방에 나귀 한 마리가 있었는데, 호랑이가 그 소리에 놀라서 마구 잡아먹지 못하고 그 곁에 가서 집적거리어 보니 발로 차는 것뿐이라, 호랑이 생각에, “이놈이 소리는 크지마는 재주는 발로 차는 것뿐이다.” 하고, 달려들어 잡아먹었다는 것이다. /대동7-613/
금련보(金蓮步) : 제(齊)의 동혼후(東昏侯)가 황금으로 연화(蓮花)를 만들어 땅에 깔고 총희인 반비(潘妃)를 시켜 그 위를 걷게 하여 ‘걸음 걸음 연꽃이 핀다.’고 하였다 함. 따라서 여자의 아름다운 걸음걸이를 말함. /연행6-219/
금련촉(金蓮燭) : 금련촉(金蓮燭)은 임금만이 쓰는 촛불인데, 당 나라 영호도(令狐鋾)와 송 나라 소동파(蘇東坡)가 모두 임금 앞에서 밤늦도록 있다가 물러나올 때에 임금이 특별히 금련촉을 주어 보낸 일이 있었다. /해행5-444/
금릉 : 강진의 옛 이름으로 강진 원님을 말함. /고봉집1/
금망(禁網) : 법으로 금지시키기를 마치 그물로 물고기 잡듯이 빠뜨리지 않는다는 뜻. 즉 법망(法網). /성호7-276/
금목(金木) : 형구(刑具). 금(金)은 도거(刀鋸)․부월(斧鉞)이며, 목(木)은 매질하는 나무와 질곡(桎梏)을 가리킴. 莊子 列禦寇 /서애1-306/
금문(今文) : 진 시황(秦始皇)이 시․서(詩書)를 불태운 뒤 망실된 「상서」를 복생이 한 문제(漢文帝)의 사신으로 간 조조(鼂錯)에게 외어서 29편을 전하였는데, 한 대(漢代)에 통용하던 예서(隸書)로 써서 세상에 반포(頒布)했으므로 「금문상서」라 했다. /오주16-185/
금문(金門) : 금마문(金馬門)의 준말. 한 무제(漢武帝)가 학사(學士)로 하여금 금마문에서 대조(待詔)하여 고문(顧問)에 대비하게 하였다. 미앙궁(未央宮) 앞에 동마(銅馬)가 있으므로 생긴 이름이다. /삼봉1-90/
금문우객(金門羽客) : 宋 나라 때에 道師 林靈素가 宮中에 出入하였는데 皇帝가 金門羽客이란 칭호를 주었다. 金門은 한 나라 궁전의 金馬門, 羽客은 道師를 말한 것이다. /고려사절요1-406/
금발차(金跋遮) : 금속으로 만든 금강저(金剛杵), 불승이 번뇌 파쇄의 상징으로 손을 들고 있는 인도의 고대 무기. 범어 Vajra의 음역으로 ‘跋闍羅’로 쓰기도 한다. 菩薩本綠經 卷三 ‘跋遮’로 쓰는 것은 중국 송대에 그런 물건을 손에 들고 춤을 추는 발차곡(跋遮曲)이 있는데서 연유된다. 晁補之 鷄肋集鈔 跋遮曲 /고려도경/
금보장(錦步障) : 비단으로 만든 보장(步障). 보장은 옛날에 귀현(貴顯)한 자가 출행(出行)할 때에 바람과 먼지를 가리기 위하여 길 좌우에 치는 휘장. /연행9-169/
금복(金伏) : 봄은 나무[木], 여름은 불[火], 가을은 금[金], 겨울은 물[水]이라 하고, 금은 불에 녹으므로 불을 겁낸다. 여름 더위가 한창이면 불의 기운이 왕성한 때이므로 가을인 금이 나올 차례이다. /승람4/
금봉(金鳳) → 朶雲
금부(金鳧) : 진 시황(秦始皇)의 묘에 부장품(副葬品)으로 쓴 황금으로 만든 오리 모양의 향로(香爐). /연행11-355/
금붕(錦繃) : 갓 돋은 죽순을 말함. /완당집3/
금붕영아(錦繃嬰兒) : 죽순(竹筍)을 말한 것인데, 죽순을 싼 껍질이 얼룩얼룩하므로 죽순을 비단 포대기에 쌓인 어린애에 비유했다. /동문선6/
금비(金篦) : 금으로 만든 칼. 그것으로 눈에 끼어 있는 백태를 긁어 낸다고 한다. /대동2-347/
금산(金山)․금시(金始) : 거란(契丹)의 왕자 금시(金始)와 거란의 유종(遺種)인 금산(金山)은 1217년 몽고에 쫓기어 9만의 대군을 이끌고 고려의 서북계를 침입하여 서해도(西海道)로 침범해 왔다가 다음 해에 여진(女眞)에 들어간 나라이다. /동사2-89/
금산사(金山寺) → 정형(井陘)
금석문기(金石文記) : 고염무가 찬(撰) 한 책으로 여섯 귄에 금석문(金石文) 3백여 종을 기록했음. /오주16-60/
금선(金仙) : 불타(佛拕)의 별칭. 문수는 문수사리보살(文殊師利菩薩 Manjunri), 부처의 지혜를 나타내는 보살로 알려진다. 보현은 보현보살(普賢菩薩 Samantabhadra)로, 문수보살과 함께 석가불 곁에 시립하여 부처의 이․정․행(理定行)의 덕을 맡아 보는 것으로 되어 있다. /고려도경/
금설(金屑) : 눈병의 신약(神藥)을 말함. /완당집3/
금성(金城) : 쇠로 만든 성이라는 뜻으로 산하가 요새지(要塞地)로 되어 견고함을 말한다. 漢書 剻通傳에 “모두 쇠로 만든 성과 끊는 못이 되어 공격할 수 없다.”[皆爲金城湯池 不可攻也]하였다. /청장1-107/
금성(金聲) → 孫綽
금성(錦城) : 금성은 사천성(四川省) 성도현(成都縣)에 있는 금관성(錦官城)을 말한다. 이곳에는 삼국시대(三國時代) 촉한(蜀漢)의 승상 제갈량(諸葛亮)을 모신 공명묘(孔明廟)가 있으므로 이것을 가리킨 말이다. 노백(老柏)은 오래 묵은 잣나무를 말하는데, 공명묘에는 오래 묵은 잣나무가 있어 유명하다. 두보(杜甫)의 촉상시(蜀相詩)에 “승상의 사당이 어느 곳에 있는고 하면 금관성 밖 잣나무 무성한 곳일세.”[丞相祀堂何處尋 錦官城外柏森森]하고, 또 고백행(古柏行)에 “공명의 사당 앞에 노백이 있으니 가지는 청동 같고 뿌리는 철과 같네.”[孔明廟前有老柏 柯如靑銅根如鐵] 하였다. 즉 이 은행나무는 공명묘의 잣나무에 손색이 없다는 뜻이다. /청장1-52/
금성락(錦城樂) : 중국 성도(成都)에 있는 금관성(錦官城). 이 태백의 촉도난에 “금성이 아무리 좋다 해도 일찍이 집에 돌아가는 것만 못하네.”[錦城雖云樂 不如早還家] 하였음. /삼봉1-393/
금성옥진(金聲玉振) : 금은 종(鍾)이고 옥은 경(磬)임. 음악을 합주할 때 먼저 종을 쳐서 시작하여 마지막에 경을 쳐서 마치기 때문에, 전하여 사물의 집대성(集大成)을 찬미하는 말로 쓰인다. /양촌3-149/
금성방략(金城方略) : 한(漢) 나라 宣帝가 趙充國으로 西羌을 치러 보내면서 계책을 물었더니 충국이 답하기를,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보다 못하니, 신이 직접 金城에 가서 지도를 그려 方略을 아뢰었습니다.” 하였다. /퇴계집1-62/
금속여래(金粟如來) : 이백(李白)은 스스로 금속여래의 후신이라 칭하였다. 금속여래는 유마거사(維摩居士)의 전신(前身)이라 하나 경문에 근거가 없다. /청장2-241/
금슬호접(錦瑟蝴蝶) : 당 나라 시인 이상은(李商隱)의 금슬시(錦瑟詩)에 “莊生曉夢迷蝴蝶 望帝春心託杜鵑”이 있음. /완당집3/
금시(金始) → 금산(金山)
금시(金翅) : 고대 인도(印度)의 괴조(怪鳥)로서 범어(梵語)로는 가유라(迦留羅)인데 구역에는 금시조요 신역(新譯)에는 묘시조(妙翅鳥)이다. 천룡팔부(天龍八部)의 하나인데 그새의 두 날개는 서로의 거리가 삼백 삼십 육만 리라 한다. 그 새가 용을 잡아먹고 삶으로 용은 항상 두려워하여 열뢰(烈惱)를 품고 있는데 오직 아유달용(阿耨達龍)만 두려움이 없다 함. 法苑珠林 /완당집3/
금신 석난산(金身錫蘭山) : 금신은 여래(如來)의 금신. 석난산은 인도양 가운데 있는 섬.
금아(金雅) : 전해 오는 말에 해[日] 속에 발 세 개 달린 까마귀가 있다고 한다. 따라서 해[日]를 금까마귀라 일컫는다. /승람3/
금어(金魚) : 귀천을 나타내는 장신구. 「송사(宋史)」 여복지에 “어대의 제도는 당(唐) 나라 때에 시작하였는데, 대개 고기 모양으로 생긴 병부[符契]를 넣어 가지고 다니므로 어대라 했다. 송 나라에서도 그 제도를 인습하여 금․은(金銀)으로 고기 모양처럼 만들어서······귀천을 밝혔다.”고 보이고, 「금사(金史)」 여복지에도 “왕은 옥어(玉魚)를 차고, 1품(品)부터 4품까지는 금어를 찬다.”고 보인다. /성호사설4-230/
금어부(金魚符) : 금어부(金魚符)는 금으로 고기의 모양처럼 만들어서, 그것을 둘로 쪼개어서 하나는 임금이 가지고, 하나는 지방관에게 주어 명령 내리는 데에 그것을 찍어 보내야 정확한 것으로 알게 된다. 여기서는 그런 금어부같은 것은 모두 대단하지 않은 것이다 하는 말이다. /승람3/
금연분(金蓮盆, 금연동이) : 당나라 단문창(段文昌)이 소시에 말하기를, “장래에 부귀하여 금련화분(金蓮花盆)에 발을 씻으리라” 하더니, 뒤에 과연 말대로 하연다. /동문선2/
금오(金鼇) : 발해(渤海) 동쪽에 큰 구멍이 있고 가운데 다섯 산이 있었는데, 백리가 연착(連着)되지 않아 늘 물결을 따라 아래 위로 흔들리니, 상제(上帝)가 노하여 서극으로 귀양 보내니, 뭇 성인들이 살 곳을 잃었다. 이에 큰 자라 열 다섯 마리에게 시켜 머리를 들어 이[戴]게 하였다 한다. 성인들이 살 만한 산을 말한다. /동문선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