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2/자료

조선 왕릉

황성 2014. 4. 11. 10:55

육전 승정원 월령


王大妃殿 : 헌종의 두 번째 부인 明憲王后.

坐不坐單子 : 政院啓言坐不坐單子每五日申前來呈例也而工曹坐不坐單子連加催促終不來呈事極未安當該堂上請推考允之<일성 고종26년 1월 30일>

閭家奪入無乎單子 : 漢城府啓言士大夫閭家奪入借入貰入各別禁斷之意連爲申飭五部矣卽接南部都事 南命寬所報則劉敬敏家及第金若行買入池得球家幼學朴道燮今又借入分付該府一幷出送而金若行 朴道燮不有禁令買入借入之罪竝令該府該曹請依律勘處允之<일성 정조5년 4월 11일>

決等公事 : 그 기간에 처리한 공사<주>政院啓言奏御文字何等審愼而刑曹決等公事有所誤書致勤下敎臣之矇然捧入不勝惶悚原公事今方改修正以入而當該堂上不可無警請推考允之敎以爾亦推考<일성 철종9년 4월 1일>  刑曹判書 李得臣啓言本曹決等公事卽公私賤許贖後補充隊也自本曹入啓啓下兵曹後成給立案而年前回決等之一時數多自上或慮荒年勒贖之爲弊有所下敎故其後本曹斜出殆無月無之而只以無乎二字月三修啓者事涉不誠且當此軍伍難充之時閑丁之公然見漏亦甚可惜固當修明舊例從實入啓而雖曰襲謬旣係年久事當一經筵稟後擧行故敢達敎以卿言是矣依爲之<일성 정조17년 8월 22일>

月終單子 : 강  命內侍受祿人自吏曹單子啓下  목  敎曰內侍之元定額此後勿爲報狀直自該曹依外司頒祿例當月頒給其他如長番對客等名色之隨時增減者依前自內侍府報戶曹受祿而增減之窠如外朝之軍職今朔雖小而來朔則多此朔雖增而後朔則減難以憑據至於不下備忘於政院自內府只令罷職者安知無虛實之相蒙乎此雖小事宮府一體之義不可不存當朔增減之窠中受祿人自吏曹月終單子啓下以寓周禮天官冢宰無不統攝之意 <일성 영조52년 6월 18일>

五家統單子 : 五家作統 : 民戶 다섯 집을 한 統으로 편성하는 호적법. 경국대전 戶籍條에, ‘서울이나 지방에 5호를 1통으로 하고, 통에 統主를 둔다.’ 하였다.

統內無乎單子 : 통내의 이상유무 보고서.<주>

南壇 : 남방토룡단(南方土龍壇)의 준말. 곧 남방통룡제(南方土龍祭)를 지내는 제단(祭壇).<고> 지금의 남단(南壇)은 바로 옛날 교사(郊祀)하던 원구단(圓丘壇)이다. 아조(我朝)에 이르러서는 혐의를 구별하고 미세함을 밝히는 뜻이 엄하여 원구단의 예가 혹 소국(小國)에서 감히 지낼 제사가 아니라 하여 세조(世祖) 이후에는 원구단의 호칭을 남단이라 고쳐 일컫게 되었으니, 대개 군국(郡國)․주현(州縣)에서는 각기 풍사(風師)․우사(雨師)에게 제사지내는 제도를 쓴 것이다. 주단(主壇)을 풍운뇌우단(風雲雷雨壇)이라 하는데 위(位)는 중앙에 있고 남면(南面)을 하며 축(祝)에서는 ������조선 국왕 신 성휘(朝鮮國王臣姓諱)������라고 일컬으며 정1품 관원을 보내 초헌관을 삼는다. 악(樂)은 육성(六成)을 사용하여 특별히 사령(祀令)은 중사(中祀)의 열에 두었다. 시일은 양중월(兩仲月)에서 가리고 산천(山川)과 성황(城隍)의 위판(位版)을 좌우로 배열(配列)하는데 모두 남면이다.<정조실록16년 8월 12일>

南方土龍壇 : 조선 시대에, 오방 토룡제를 지내던 제단의 하나. 서울 남산의 남쪽 기슭, 한강 북쪽에 있었다.<표>

啓聖祠 : 孔子, 顔子, 子思, 曾子, 孟子의 父를 제사하는 祠.<주>

尊經閣 : 조선조 9대 성종 6년에 성균관 안에 지었던 도서를 보관하는 전각. 11대 중종 9년에 불에 타서 16대 인조 4년에 다시 지었음.<고>

用齋 : 領議政 金左根啓言我國祀享用齋與前代不同遠近忌辰皆用二日內外官司不得開坐竝與外任下直公事出納而俱爲停免若連値之時則民國機務多日留滯謹稽孝宗元年籌司啓刑獄詞訟各司坐衙上祀三日中祀一日忌辰從遠近行一兩日餘竝勿拘伏承允從之敎矣今則用齋之日比其時加多臣意則用齋規例一依孝廟受敎定式令儀曹裁稟施行凡各司開坐外官辭朝文書出納則雖値齋日竝爲勿拘似好故敢達矣從之<일성록 철종4년 8월 25일>

儲慶宮 : 조선조 16대 인조의 잠저(潛邸). 전 이름은 송현궁(松峴宮)이었음. 21대 영조 31년에 추존한 원종의 생모(生母)인 인빈 김씨(仁嬪金氏)의 신위(神位)를 이곳에 봉안하고 이 이름으로 고침. 지금의 서울 소공동(小公洞)의 전 서울 치대(齒大) 자리에 있음.<고>

毓祥宮 : 조선조 역대 임금 중 정궁(正宮) 출신이 아닌 임금의 생모(生母) 신위(神位)를 안치한 사당. 궁정동(宮井洞)에 있음. 영조 원년(1725)에 영조가 그 어머니 숙빈최씨(淑嬪崔氏)를 육상묘(毓祥廟)에 모신데서 발단(發端)하여 순종 원년(1907)에 서울의 모든 사묘(私廟)를 철폐하고 그 신위를 이곳으로 옮김. 곧 원종의 어머니인 인빈 김씨(仁嬪金氏), 경종의 어머니 희빈 장씨(禧嬪張氏), 진종의 어머니 정빈 이씨(靖嬪李氏), 장조의 어머니 수빈 박씨(暎嬪李氏), 순조의 어머니 수빈 박씨(綏嬪朴氏), 등인데 1929년에 이은(李垠)의 어머니 순비 엄씨(淳妃嚴氏)를 합하여 7신위가 됨. 궁정동 칠궁(宮井洞七宮)이라고도 함.<고>

延祜宮 : 추존(追尊)한 조선조 진종(眞宗)의 생모(生母)인 정빈이씨(靖嬪李氏)의 사당.<고>

景祐宮 : 조선조 23대 순조의 생모인 수빈 박씨(綏嬪朴氏 ; 정조의 후궁)의 사당(祠堂).<고>

懿昭廟 : 조선조 21대 영조의 세손(世孫) 의소세손의 무덤. 뒤에 의령원(懿寧園)이라 하였고 양주(楊州)에 있음.<고>

文禧廟 : 조선조 정조의 세자(世子) 문효세자(文孝世子 ; 1782~86)를 모신 사당. 묘(墓)는 효창원(孝昌園)에 있었음.<고>

宣禧宮 : 조선 영조의 후궁인 영빈(暎嬪) 이 씨(李氏)의 사당으로 쓰던 집. 칠궁(七宮)의 하나이다.<표>

七宮 : 수진궁(壽進宮)ㆍ명례궁(名例宮)ㆍ어의궁(於義宮)ㆍ육상궁(毓祥宮)ㆍ용동궁(龍洞宮)ㆍ선희궁(宣禧宮)ㆍ경우궁(景祐宮)을 가리킴.<고>

藏譜閣 : 어필(御筆)로 ������장보각(藏寶閣)������ 석 자(字)를 써서 효장묘(孝章廟) 동쪽 행랑에 걸도록 명하였으니, 바로 연보(年譜) 판본(板本)을 갈무리해 두는 누각이다.<영조실록41년 11월 18일> 영희전(永禧殿)에서 작헌례(酌獻禮)를 행하고 창의궁(彰義宮)에 나아가 장보각(藏譜閣)을 봉심(奉審)하였다.<정조실록 2년 5월 25일>  영묘(英廟)의 잠저(潛邸) 때 어적(御籍)을 강화부(江華府)의 적고(籍庫)에 간직하였는데, 연신(筵臣)이 거론하여 아뢰자, 차사원(差使員)을 정하여 성외(城外)로 가져오게 한 다음 경조 당상(京兆堂上)으로 하여금 배봉(陪奉)하여 오라고 명하였다. 임금이 열람하고 나서 창의궁(彰義宮) 장보각(藏譜閣)에 봉안(奉安)하였다.<정조실록 5년 12월 20일> 육상궁(毓祥宮)에서 작헌례(酌獻禮)를 친히 행하고 봉안각(奉安閣)을 참배하였다. 이어서 연호궁(延祜宮)․선희궁(宣禧宮)에 나아가 작헌례를 행하고 창의궁(彰義宮)에 나아가 장보각(藏譜閣)을 참배하고 의소묘(懿昭廟)에 나아가 작헌례를 행하였다.<정조21년 11월 6일>

開氷祭 : 개빙사한제(開氷司寒祭). 음력 2월 춘분(春分)날에 얼음 창고를 처음 열 때 지내는 사한제. 고려 때 시작되어 조선조 때까지 계속되었으며, 임금이 직접 나가 지내는 것이 아니라, 대리를 보냈음.<고>

四賢詞: 영조 원년에 성균관의 곁에 세웠는데, 중국의 하번(何蕃), 진동(陳東), 구양철(歐陽澈) 세 사람의 위패를 모시다가 뒤에 조선의 윤지술(尹志述)을 함께 모시었다. 뒤에 숭절사(崇節祠)로 고쳤다.<고> 崇節祠 : 불의에 항거하여 높은 기개를 편 중국 서진(西晉)의 동양(董養), 당(唐)의 하번(何蕃), 송(宋)의 진동(陳東)과 구양철(歐陽澈)을 모신 사당. 조선 영조 원년(1725)에 성균관 근처에 세웠다.

傳香番 : 敎以傳香番次在近禮房承旨兼帶金吾之任許遞<일성록 정조22년 9월 27일> 敎曰直提學帶承旨本職則傳香番次事係所重此外卯酉等本院供劇每與閣務相妨今後除本院仕事定式<일성록 정조5년 7월 9일>

馬祖壇 : 마조, 곧 방성(房星)에 제사지내는 단. 말의 이용이 인류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므로 감사와 기원을 겸하여 제사하는 것임. (將用馬力必祭基先) 제사지내는 시기는 말에 관한 중요성의 차례대로 봄에 마조(馬祖), 여름에 선목(先牧), 가을에 마사(馬社), 겨울에 마보(馬步)에 제사 지냄. 제단은 동대문 밖에 있는데 조선조 태조 때에 설치함.<고>

城隍發告祭 : 서낭신에게 기원하는 제사.<고> 城隍神 : 서낭신. 토지와 부락을 지켜준다는 신. 원래는 각 고을마다 제도적으로 모시게 하였으나, 차츰 巫俗化되어 민간에서 마을마다 고갯마루의 고목이나 돌무더기를 쌓아서 상징화시켜 모셨고, 간혹 그 옆에 집을 지어 모시기도 하였다.<단>

厲祭 : 여귀(厲鬼)에게 지내는 제사. 봄에는 청명, 가을에는 7월 보름, 겨울에는 10월 1일에 지냄.<고> 나라에 역질이 돌 때에 여귀에게 지내던 제사. 봄철에는 청명에, 가을철에는 7월 보름에, 겨울철에는 10월 초하루에 지냈다.<표>  厲祭壇 : 여귀(厲鬼)에게 제사하는 단(壇). 서울과 각 고을에 있음. 여단(厲壇).

祧遷陵 : 代盡하여 신주를 永寧殿으로 移奉한 이의 陵.<고>

各宮 : 각 궁방. 龍洞宮, 於義宮, 明禮宮, 壽進宮, 毓祥宮, 宣禧宮, 景祐宮 등의 각 궁방.

各廟 : 무자년에 상이 전각 뜰에서 향 지영례(香祗迎禮)를 행하였는데, 효장묘(孝章廟) 이하 각묘의 향축(香祝)에 대하여, 여러 신하들이 압존(壓尊)이라는 이유로 즉시 몸을 굽히지 않자, 상이 성난 소리로 배참(陪參)한 신하들을 파직시키라고 명하고<정조실록13년 10월 7일>

各陵 :

濬源殿 : 함경남도 영흥군 순녕면 흑석리에 있다. 태조 5년에  건립하고, 세종 25년에 태조의 초상을 봉안하였다. 이곳은 이성계가 태어난 곳으로, 그 태를 묻었던 곳인데, ㅡ 태를 桓祖의 舊邸로 옮기고 이 전각을 지어 조선의 발상지를 기념한 것이다.<단>

北道六陵 : 咸興의 德陵, 義陵, 純陵, 定陵. 安邊의 智陵. 文川의 淑陵.

穆陵 : 동구릉(東九陵)의 하나. 조선조 14대 선조(宣祖)와 선조비(宣祖妃)의인 왕후(懿仁王后) 및 계비(繼妃) 인목왕후(仁穆王后)의 능. 지금 양주군(楊洲郡) 구리면(九里面) 인창리(仁倉里)에 있음.<고>

吏文製述 : 조선시대, 승문원(承文院)의 당하관(堂下官)으로서 나이가 30세 이상 49세 미만인 사람을 선발하여, 해마다 춘추(春秋)로 보이던 이문의 제술 시험. 《銀臺條例, 禮攷, 吏文製述》<단>

日次儒生殿講 : 조선시대, 성균관(成均館)․사학(四學)의 거재 유생(居齋儒生)으로서 도기(到記)의 원점(圓點)이 50점 이상 되는 자를 가려 임금이 매년 2월․4월․6월․8월․10월․12월의 16일마다 궁중에 모아서 삼경(三經)을 강(講)하여 시험하던 일. 일정한 날짜를 정하여 놓고 행하였기 때문에 일차라는 말을 붙여 이른 것이다.

弘陵 : 조선조 영조(英祖)의 원비(元妃) 정성 왕후(貞聖王后)의 능으로서 경기도 고양에 있음.<고>

寧陵 : 조선조 17대 효종과 비 인선 왕후(仁宣王后)의 능. 경기도 여주군 능서면(陵西面)에 있음.<고>

各道年終御覽會計案 :   戶曹啓言各道年終錢穀御覽會計每於翌年二月二十五日修整入啓定式矣今年他道會案皆已來到而開城府會案限內不爲上來當該留守推考御覽會計待其會案來到請修整以入允之<일성순조1년 2월 25일> 戶曹啓言各道年終錢穀御覽會計每於翌年二月二十五日啓請受出自是定式矣今年各道會案幾盡上來而全羅道 慶尙道 平安道各邑糴勘自致遲延寬限差退之意三道道臣旣已狀聞江原道則不爲上來又無狀聞謄移之事有違格例當該道臣推考都會官從重推考御覽會計待其會案齊到請修正以入允之<일성 순조13년 2월 25일>   該曹啓言各道終年錢穀御覽會計每翌年二十五日啓請修正自是定式而慶尙道 全羅道限內不爲上來又無狀聞有違格例該道臣推考都會官從重推考御覽會計待其會案齊到修正以入啓<일성 고종26년 2월 25일>

宣武祠 : 명(明) 나라 병부 상서(兵部尙書) 형개(邢玠)와 도어사(都御史) 양호(楊鎬)를 제향하는 사당. 도성 남문 안에 있었으며,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도왔기 때문임.<고>

先蠶壇 : 잠신(蠶神)에게 제사하는 단. 동대문 밖에 있었음.  先蠶祭 : 잠신(蠶神), 곧 선잠에게 그해 누에 농사가 잘 되도록 기원하는 제사. 음력 3월의 사일(巳日)에 거행함.<고>

雩祀壇 : 祈雨祭를 지내는 단. 南郊에 있다. 孟夏의 上旬에 제사한다.<漢京識略><단>

兩本宮 : ① 조선조 태조의 위로 오대조(五代祖)의 신위(神位)를 제사하는 함흥(咸興) 본궁. ② 환조(桓祖)ㆍ태조(太祖)의 신위 및 태조의 화상(畵像)을 모시는 영흥(永興) 본궁<고>

西北別付料軍官 : 서ㆍ북도의 무예출신과 한량(閑良)을 반반씩 나누어 시험을 쳐서 각각 40명을 뽑아 유급군관(有給軍官)에 임명하고 금군청(禁軍廳)에 소속시켜 어가(御駕)를 시위하게 하였으며, 매월 사법(射法)을 시험하여 그 궁술(弓術)의 점수에 따라 그 직석(職席)을 주었음.<고>

禧陵 : 조선조 11대 중종의 계비 장경(章敬)왕후의 능. 고양(高揚)에 있음. 西三陵에 있음.<고>

懿昭墓 : 영조(英祖)의 세손(世孫)이자 사도세자(思悼世子)와 혜빈홍씨(惠嬪洪氏)의 장남인 의소(懿昭)의 묘<용>

元陵 : 동구릉(東九陵)의 하나. 조선조 21대 영조(英祖)와 계비(繼妃) 정순 왕후(貞純王后)의 능(陵).<고>

健陵 : 조선조 22대 정조와 비(妃) 효의왕후(孝懿王后) 김씨의 능(陵). 경기도 화성군(華城郡) 화산(華山)에 있음.<고>

顯隆園 : 조선조 22대 정조의 생부(生父)인 사도세자(思悼世子)의 무덤. 대한 제국 때 장조(莊祖)로 추존되고 융릉(隆陵)을 봉함. 수원(水原)에 있음.<고>

華寧殿 : 조선조 22대 정조(正祖)의 효심(孝心)과 유덕(遺德)을 기리기 위하여 수원(水原)에 세운 전각(殿閣). 정조의 진영(眞影)을 모시고 매년 제향을 올렸음.<고>

昭寧園 : 조선조 21대 영조(英祖)의 생모(生母:숙종의 후궁) 숙빈(淑嬪) 최씨의 묘. 경기도 양주군에 있음.<고>

田賦考俵灾冊 : 전세(田稅)의 고사(考査)와 재해(災害)의 경중(輕重) 등을 기록한 부책(簿冊).<고>

英陵 : 조선조 4대 세종 대왕과 비 소헌 왕후(昭憲王后)의 능(陵). 광주(廣州)에 있는 것을 8대 예종 원년(1469)에 경기도 여주군(驪州郡) 능서면(陵西面)으로 옮김.<고>

明陵 :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조선 숙종과 계비(繼妃) 인현 왕후(仁顯王后) 및 인원 왕후(仁元王后)의 능. 서오릉(西五陵)의 하나이다.<표>

光陵 : 조선조 제7대 임금 세조와 정희왕후(貞熹王后)의 능. 경기도 양주군 진집면 부평리에 있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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