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안동 인물

황성 2021. 8. 5. 21:42

1) 도은동(道隱洞)현재 안동시 북후면 석탑리에 위치한 곳으로, 저자의 조모 양주 송씨(楊州宋氏) 및 종선조의 묘소가 있다.

2) 계여(啓汝)권건(權鍵, 1803~1873)이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계여, 호는 회은(晦隱)이다. 저자의 차남인 박우양(朴右陽, 1831~1869)의 장인이다.

3) 권흠(權欽)1798~1869. 본관은 안동, 자는 치경(穉敬)이다. 그의 아들 권준하(權準厦, 1832~1892)가 저자의 사돈인 권건의 후사가 되었다.

4) 노동서당(魯東書堂)노동서사(魯東書舍)라고 불리는 안동 권씨 문중 시설이다. 현재 안동시 풍천면 가곡리에 있는데, 1835년에 병곡(屛谷) 권구(權榘, 1672~1749)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다.

5) 우형(遇亨)류진황(柳進璜)이다. 본관은 풍산(豐山), 자는 우형이다. 하회에 거주하였으며, 저자의 매부이다.

6) 박진수(朴晉壽)1810~1864.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덕로(德老)이다. 진사시에 입격하였고 음관으로 출사하여 의흥 현감, 영원 군수(寧遠郡守) 등을 역임하였다.

7) 사공간(司空榦)1811~? 본관은 군위(軍威), 자는 사영(士英)이다. 진사시에 입격하였다.

8) 이정화(李鼎和)1811~1860. 본관은 청안(淸安), 자는 문실(文實), 호는 오산재(五汕齋)이다.

9) 박종휴(朴宗休)1788~1865. 본관은 반남, 자는 원팔(元八)치용(稚容)이다.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경주 부윤, 대사간 등을 역임하였다.

10) 순옥(舜玉)박제칠(朴齊七, 1808~1894)이다. 본관은 반남, 자는 순옥, 호는 죽남재(竹南齋)이다. 초명은 제문(齊文)이다. 저자의 재종제(再從弟)이다.

11) 초택(初擇)공도회(公都會)의 초택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공도회란 각도의 도사(都事)와 개성부강화부의 유수(留守)가 매년 해당 지방 유생들에게 보였던 시험으로, 제술(製述)과 고강(考講)으로 구분하였는데, 합격하면 식년 생원진사시의 복시(覆試)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였다. 초택과 복시가 있다.

12) 최두석(崔斗錫)1800~?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경수(景受)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정언에 임명된 바 있다.

13) 손상일(孫相馹)1812~?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선일(善一), 호는 오루(梧樓)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지평에 임명된 바 있다.

14) 이재소(李在韶)1812~? 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성원(聲遠)이다. 진사시에 입격하였다.

15) 이진상(李晉祥)1792~1854. 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노백(魯伯)명윤(明允)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동부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16) 이해상(李海祥)1781~? 본관은 여주, 자는 종백(宗伯)이다. 생원과 진사시에 입격하였다.

17) 이능섭(李能燮)1812~1871. 본관은 여주, 자는 공리(公理), 호는 노석(老石)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경주 부윤, 자인 현감 등을 역임하였다. 당시 그는 지평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18) 이재립(李在立)1798~1854. 본관은 여주, 자는 자화(子華), 호는 계서(稽棲)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정언 등에 임명되었다.

19) 이태수(李泰壽)1799~1857. 본관은 여주, 호는 묵헌(黙軒)이다.

20) 박헌수(朴巘壽)1796~1861. 본관은 반남, 자는 준여(峻汝)이다. 음관으로 출사하여 용담 현령 등을 역임하였다.

21) 이 판서(李判書)형조 판서에 오른 운곡(雲谷) 이희발(李羲發, 1768~1850)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22) 학사(學士) 이돈우(李敦禹)1807~1884.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시능(始能), 호는 긍암(肯庵)만회정(晩晦亭)이다. 홍문관 관직을 역임하였기 때문에 그를 학사라고 칭한 것이다. 다만 그가 홍문관 관직에 최초 임명된 시기는 1861년이기 때문에, 시기적으로 학사라는 칭호가 맞지 않다. 따라서 본 일기는 1861년 이후 정리필사된 본인 것으로 보인다.

23) 이문직(李文稷)1809~1877. 본관은 한산, 자는 법조(法祖), 호는 정촌(靜村)이다.

24) 옹시(甕市)옹천(甕泉) 저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옹천은 안동시 북후면에 있는데, 영주로 진입하는 초입에 위치해 있다.

25) 영강정(映江亭)영주시 평은면 용혈리에 위치한 정자로, 용담(龍潭) 권유선(權有善, 1528~?)이 건립하였다.

26) 저곡(渚谷) 종매(從妹)권경연(權敬淵, 1836~1898)에게 출가한 저자의 사촌누이를 가리킨다. 저자의 숙부인 박재경(朴在經)의 딸이다.

27) 박규수(朴珪壽)1807~1876. 본관은 반남, 자는 환경(桓卿)환경(瓛卿), 호는 환재(桓齋)환재(瓛齋)이다. 이 무렵 경상좌도 암행어사로 파견되었다.

28) 정철교(丁喆敎)1803~1874.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겸미(兼美)이다. 진사시에 입격하였다.

29) 도은동(道隱洞)……갔다이해 윤711일 밤중에 관노(官奴) 권후금(權後金)이 도은동에 위치한 저자의 조모 양주 송씨(楊州宋氏) 및 종선조 묘소의 단백호(單白虎)에 몰래 쓴 자신의 처의 무덤을 이때에 이르러 파내 간 것이다. 저자는 권후금과 그 아들 권희관(權喜寬)을 상대로 안동 부사와 겸관 수령 등에게 누차 제소하여 승소하고, 본 일기 내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조속한 처리를 위해 암행어사로 파견된 박규수(朴珪壽)에게도 청한 바 있다.

30) 운곡서원(雲谷書院)영주 출신의 학자인 금강(錦江) 장신(張璶, 1629~1711)1667년 영주 남쪽에 있는 운곡리에 서당을 건립하였는데, 그의 사후인 1723년에 지역 사림이 이를 서사(書社)로 삼고 그의 위판을 봉안하였다. 1780년에 서원으로 격을 높이고, 1823년에는 그의 조부인 사계(砂溪) 장여화(張汝華, 1566~1621)를 주향(主享)으로 삼았다.

31) 권맹선(權孟善)권석원(權錫元, 1798~1871)이다. 본관은 안동, 자는 맹선, 호는 밀와(密窩)이다. 일포(逸圃) 박시원(朴時源)의 문인으로, 저자와는 동문이다.

32) 군수영주 군수 이휘부(李彙溥, 1809~1869)이다.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박여(博如), 호는 치옹(痴翁)이다. 생원시에 입격하였고 음관으로 출사하여 여러 군현의 지방관 등을 역임하였다.

33) 사계서원(泗溪書院)1654년에 사림이 영주 서쪽에 위치한 망궐리(望闕里)의 사계(泗溪)에 서당을 창건하였고, 1703년에는 사당을 세워 귀암(龜巖) 황효공(黃孝恭, 1496~1553)과 매음(梅陰) 나이준(羅以俊, 1602~1676)을 병향하고 사계서당이라 명명하였다. 이후 80년이 지나 사림이 서원으로 승격시키고, 사액(賜額)도 청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34) 주가(州家)고을 관아나 고을의 지방관을 의미하는 말이다.

35) 하회河上에서 출발한 내행(內行)내행은 친정 방문 등의 목적으로 먼 길을 나들이하는 집안의 부녀자를 일컫는 말이다. 저자에게는 하회에 거주한 풍산 류씨(豐山柳氏) 류진황(柳進璜)에게 시집간 여자 형제가 있다.

36) 서재무(徐在懋)1816~1897.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원미(元美), 호는 동사(東沙)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지평, 정언 등에 임명되었다.

37) 이만규(李晩奎)1798~1863.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경휴(景休)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정언 등에 임명되었다.

38) 김계진(金季鎭)김종태(金宗泰, 1800~1883)이다. 본관은 풍산(豐山), 자는 계진, 호는 취헌(翠軒)이다. 생원시와 문과에 합격하여 지평, 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39) 김낙풍(金樂灃)1825~1900. 본관은 예안(禮安), 자는 성발(聖潑), 호는 소하(小下)해우당(海愚堂)대은(大隱)이다.

40) 도년(道年)박명수(朴明壽, 1823~1882)이다. 본관은 반남, 자는 도년, 호는 국천(菊泉)이다. 저자의 스승인 일포(逸圃) 박시원(朴時源)의 손자이다. 1870(고종7) 문과에 급제하였다.

41) 박승수(朴昇壽)1806~1873. 본관은 반남, 자는 평로(平老)이다. 진사시와 문과에 합격하였다.

42) 강주옥(姜周玉)강면규(姜冕奎, 1804~1862)이다.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주옥, 호는 면와(俛窩)이다. 1840(헌종6) 저자와 함께 문과에 급제하였다. 관직은 교리, 제주 목사, 대사간 등을 역임하였다.

43) 강진오(姜晉五)강진규(姜晉奎, 1817~1891)이다. 본관은 진주, 자는 진오, 호는 역암(櫟菴)은구(隱求)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예조 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44) 권교준(權敎準)1803~1864.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원가(遠可)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지평, 장령 등을 역임하였다.

45) 식가(式暇)시제(時祭), 기제(忌祭)를 지내야 하는 관원에게 주는 휴가이다. 저자의 부친 박재순(朴在純, 1789~1849)의 기일이 117일이다.

46) 안치묵(安致黙)1826~1867.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사상(士祥)사휴(士休), 호는 죽남(竹南)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정언 등을 역임하였다.

47) 박기전(朴基戩)1804~?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기숙(祺叔)이다. 생원시에 입격하였다.

48) 이휘승(李彙承)18071889.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경천(敬天)경천(景天)경천(擎天), 호는 신옹(信翁)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장령, 좌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49) 황인하(黃仁夏)1811~1885.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유선(幼善)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지평, 동부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50) 망극하다저자의 부친 박재순(朴在純, 1789~1849)의 기일이기 때문이다.

51) 박초수(朴初壽)1789~1861. 본관은 반남, 자는 시경(始卿)태초(太初), 호는 홍객(鴻客)이다. 진사시에 입격하고 음관으로 출사하여 양구 현감 등을 역임하였다.

52) 박제형(朴齊珩)1811~1885. 본관은 반남, 자는 행옥(行玉), 호는 판교(板橋)이다. 생원시에 입격하고 음관으로 출사하여 사포서 별제, 목천 현감 등을 역임하였다.

53) 김경회(金景會)김규운(金奎運, 1801~1881)이다. 본관은 풍산(豐山), 자는 경회, 호는 오촌(梧村)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정언, 수찬 등에 임명되었다.

54) 신대응(申大膺)1789~1863.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대유(大猷), 호는 화석(華石)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병조 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55) 정석린(鄭錫麟)1778~1864.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성구(聖九), 호는 상산(商山)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사간, 병조 참지 등을 역임하였다.

56) 류 장흥(柳長興)장흥 부사에 임명되었던 류후조(柳厚祚, 1798~1876)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본관은 풍산(豐山), 자는 재가(載可), 호는 매산(梅山)낙파(洛坡)영매(嶺梅)이다. 진사시와 문과에 합격하여 좌의정에 올랐다.

57) 이만승(李晩昇)1821~1885.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평숙(平叔)이다. 진사시에 입격하였고 음관으로 출사하여 함창 현감 등을 역임하였다.

58) 인릉(仁陵)순조(純祖)의 능으로, 당시에는 경기도 파주시의 장릉(長陵) 국내(局內)에 있었다.

59) 홍병원(洪秉元)1803~?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순유(舜有)순보(舜輔)이다. 진사시에 입격하였고 음관으로 출사하여 남원 현감, 진주 목사 등을 역임하였다.

60) 박정현(朴定鉉)1819~?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맹윤(孟允)망윤(望允), 호는 유옹(由翁)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승지에 올랐다.

61) 장용규(張龍逵)1823~1908.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진백(震伯), 호는 유헌(遊軒)운전(雲田)이다. 후에 석룡(錫龍)으로 개명하였다. 문과에 급제하여 대사헌, 형조 판서에 올랐다. 유학자로서도 명망이 높았다.

62) 호동(壺洞)의 판부사(判府事)박회수(朴晦壽, 1786~1861)이다. 본관은 반남, 자는 자목(子木), 호는 호산(壺山)호하(壺下)이다. 진사시와 문과에 합격하여 좌의정에 이르렀다.

63) 박제승(朴齊承)1816~1860. 본관은 반남, 자는 비경(丕卿)이다. 박초수(朴楚壽)의 아들로서 박회수의 후사가 되었다. 진사시와 문과에 합격하여 금산 군수, 정언 등을 역임하였다.

64) 박제소(朴齊韶)1807~1874. 본관은 반남, 자는 문재(聞哉)이다. 박초수(朴楚壽)의 장남이다. 진사시와 문과에 합격하여 예조 판서에 올랐다.

65) 손상욱(孫相煜)1801~?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사선(士善)이다.

66) 배상현(裵象鉉)1814~1884. 본관은 흥해(興海), 자는 이옥(耳玉), 호는 오산(浯山)이다. 진사시와 문과에 합격하여 이조 정랑 등을 역임하였다.

67) 서전(西銓)서반직(西班職)의 인사권을 관장하는 병조, 혹은 그 관원인 병조 판서 등을 지칭하는 말이다.

68) 류양천(柳養天)1795~1862.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백존(伯存)이다.

69) 태평한……않는다동중서(董仲舒)의 말로, 서경잡기(西京雜記)등에 보인다.

70) 손종책(孫鍾策)1794~1869.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원방(元方), 호는 예헌(藝軒)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 첨정 등을 역임하였다.

71) 이원조(李源祚)1792~1871.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주현(周賢), 호는 응와(凝窩)호우(毫宇)이다. 초명은 영조(永祚)이다. 문과에 급제하였고, 이 시기 직전에 좌승지로 재직하였다.

72) 오늘은……날이다이날은 저자의 아들 박우양(朴右陽, 1831~1869)의 첫째 부인인 안동 권씨(安東權氏, 1824~1851)가 사망한 날이다.

73) 김국원(金國元)김진우(金鎭右, 1805~1861)이다.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국원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동부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74) 권한성(權翰成)1811~1879. 본관은 안동, 자는 익보(翼甫)익부(益夫), 호는 긍파재(肯播齋)이다. 생원시와 문과에 합격하여 성균관 전적, 이조 정랑 등에 임명되었다.

75) 이박상(李博祥)1795~1864. 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계문(季文)이다. 진사시에 입격하였고 음관으로 출사하여 형조 정랑, 목천 현감 등을 역임하였다.

76) 강이서(姜而瑞)강세규(姜世奎, 1809~1861)이다.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이서경서(景瑞), 호는 부오재(負誤齋)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정언, 부수찬 등에 임명되었다. 그는 강필신(姜必臣)의 아들인데, 강필신은 저자의 장남 박좌양(朴左陽, 1826~1872)의 장인이다.

77) 박종간(朴宗衎)1800~? 본관은 반남, 자는 치화(稚和)이다. 무과에 급제하였다.

78) 박대수(朴岱壽)1803~1869. 본관은 반남, 자는 망여(望汝)이다. 진사시에 입격하였고 음관으로 출사하여 양근 군수, 선산 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79) 성주(星州)의 족인(族人)형 박일수(朴一壽)의 옥사 때문에 올라온 박필수(朴弼壽)를 가리킨다.

80) 명릉(明陵)숙종(肅宗)과 계비인 인현왕후(仁顯王后) 민씨, 2계비인 인원왕후(仁元王后) 김씨의 능으로,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의 서오릉 내에 위치해 있다.

81) 10년이……보니저자는 1844419일 명릉 별검(明陵別檢)에 임명되어 재직한 바 있다.

82) 조모의 기일저자의 조모는 양주 송씨(楊州宋氏)로 서계(西溪) 송동윤(宋東胤, 1729~1799)의 딸이다. 그의 기일은 12일이다.

83) 권재대(權載大)1778~1859. 본관은 안동, 자는 여거(汝車), 호는 정산(晶山)이다. 1795810일 제릉 참봉(齊陵參奉)에 임명되었고, 그 후 청산 현감, 예산 현감 등을 역임하였다. 특히 그는 증조부인 평암(平庵) 권정침(權正忱)이 설서(說書)로서 사도세자의 교육에 참여하고 임오화변(壬午禍變) 이후로 종신토록 은거하였으므로, 정조로부터 각별한 관심을 받기도 하였다.

84) 권약규(權若奎)1776~1866. 본관은 안동, 자는 취문(聚文)이다. 대간(臺諫)을 역임한 권교준(權敎準)의 부친이다.

85) 김기수(金驥壽)1786~1860.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덕로(德老)이다. 승지를 역임한 김진우(金鎭右)의 부친이다.

86) 홍 남원(洪南原)의 부친홍승연(洪升淵, 1773~?)이다.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성룡(聖龍)이다. 생원시에 입격하였고 음관으로 출사하여 순창 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87) 박인수(朴麟壽)1796~1871. 본관은 반남, 자는 인서(仁瑞)이다. 음관으로 출사하여 남평 현감, 곡성 현감 등을 역임하였다.

88) 은계(銀溪)강원도 회양군 하북면 은계리(銀溪里)에 있던 역 이름이다. 당시 그 찰방으로 영주 출신의 김기헌(金騏獻, 1797~1873)이 재직하고 있었다. 본관은 함창(咸昌), 자는 순거(舜擧), 호는 관복재(觀卜齋)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주서, 은계 찰방 등을 역임하였다.

89) 박제헌(朴齊憲)1808~1863. 본관은 반남, 자는 문유(文有)이다. 생원시와 문과에 합격하여 도승지, 이조 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90) 셋째 아들박이양(朴頤陽, 1837~1854)이다. 본관은 반남, 자는 경로(景老)이다.

91) 권대긍(權大肯)1790~1858. 본관은 안동, 자는 계구(季構), 호는 사야(史野)이다. 진사시와 문과에 합격하여 예조 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92) 도정(都正) 어른김중하(金重夏, 1784~1860)이다. 본관은 풍산(豐山), 자는 치상(穉常), 호는 동소(桐巢)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돈녕부 도정, 형조 참의 등에 제수되었다.

93) 혜당(惠堂)선혜청 당상(宣惠廳堂上)의 약칭인데, 당시 호조를 능가하는 최대 재정기관을 지휘감독하는 요직이었다. 구체적으로는 1854114일에 사망한 김수근(金洙根)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세도가 출신으로, 동생 김문근(金汶根)은 철종의 장인으로 부원군에 봉해졌으며, 두 아들 김병학(金炳學)과 김병국(金炳國)은 모두 정승을 지낸 인물이다. 그는 1852년에 선혜청 당상이 되었다. 아울러 안동 부사를 역임한 이력도 있어, 안동 지역과의 연관성이 깊었다.

94) 수향(受香)헌관(獻官) 등이 향축(香祝)을 받는 의식을 일컫는 말이다.

95) 김우수(金禹銖)1804~1874.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내석(乃惜)내석(乃錫), 호는 학포(鶴浦)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수찬, 봉화 현감, 예안 현감 등을 역임하였다. 당시 교리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96) 이효순(李孝淳)1789~1878.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원백(源百), 호는 낙북(洛北)이다. 1822(순조22)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좌승지, 형조 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97) 류진한(柳進翰)1798~1856. 본관은 풍산(豐山), 자는 경석(景奭)이다. 진사시와 문과에 합격하여 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98) 김진형(金鎭衡)1801~1865.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덕추(德錘), 호는 겸와(謙窩)청사(晴蓑)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정언, 교리 등을 역임하였다.

99) 인릉(仁陵)순조(純祖)의 능으로, 경기도 파주시 교하의 장릉(長陵) 국내(局內)에 초장하였다가 풍수지리상 불길하다는 이유로 1856년 지금의 자리인 헌릉(獻陵) 오른쪽으로 이장하고, 다음해 그 비인 순원왕후(純元王后) 김씨가 죽자 합장하였다.

100) 류계의(柳季懿)류도병(柳道秉, 1805~?)이다. 본관은 풍산(豐山), 자는 계의계응(季應)이다. 하회 출신이다.

101) 재과(齋窠)성균관 유생이 아닌 자에게 성균관 유생들을 대상으로 보이는 원점과(圓點科)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되는 자리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102) 수릉(綏陵)효명세자(孝明世子)였던 익종(翼宗)과 신정왕후(神貞王后) 조씨(趙氏)의 능으로, 경기 구리시의 동구릉 가운데 하나이다. 이전에는 양주 용마봉(龍馬峰) 아래 있었는데, 이해에 현재의 자리로 옮겼으며, 1890년 신정왕후가 죽자 이곳에 합장하였다.

103) 휘경원(徽慶園)정조의 후궁이자 순조의 사친(私親)인 수빈(綏嬪) 박씨(朴氏)의 원으로, 현재 서삼릉에 있다. 처음 양주 배봉산 근처에 조성되었는데, 이해에 순강원(順康園) 근처로 옮겨졌다가, 풍수가 불길하다는 이유로 1863년 현재의 자리로 다시 옮겨졌다.

104) 김여락(金驪洛)1809~1863.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응일(應一), 호는 화서(花西)이다.

105) 권형국(權衡國)1803~? 본관은 안동, 자는 재언(宰彦), 호는 병암(屛巖)이다. 생원시에 입격하였다.

106) 송태인(宋泰仁)1827~1900. 본관은 야성(冶城), 자는 노첨(魯瞻), 호는 소남(小南)광서(廣墅)이다. 생원시에 입격하였다.

107) 류광목(柳光睦)1813~1870. 본관은 풍산(豐山), 자는 겸수(謙叟), 호는 용주(蓉洲)이다.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108) 박종망(朴宗望)박제륜(朴齊崙, 1824~1878)이다. 본관은 반남, 자는 종망이다. 화석(華石) 신대응(申大膺)의 사위이다.

109) 율봉(栗峰) 대부(大父)박용천(朴龍天, 1782~1855)이다. 본관은 반남, 자는 성집(聖執), 호는 관란재(觀瀾齋)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율봉 참봉 등을 역임하였다.

110) 장인원(張仁遠)1809~1871.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공무(公武), 호는 운초(雲樵)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111) 중현(仲賢)김낙운(金樂澐, 1811~1862)이다. 본관은 예안(禮安), 자는 중현이다. 진사시에 입격하였다.

112) 봄은 하늘의 화기(和氣)이다동중서(董仲舒)의 저작으로 알려진 춘추번로(春秋繁露)에 보이는 구절이다.

113) 음악의……형상한다:《예기(禮記)》 〈악기(樂記)에 나오는 구절이다.

114) 삼하일(三下一):《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이날 기사에는 삼하(三下)로 되어 있다.

115) 반곡의 족대부(族大父)일포(逸圃) 박시원(朴時源)의 아들인 박종후(朴宗垕, 1792~1864)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해 64세의 나이로 생원시에 입격하였는데, 과거 응시를 위해 서울에 기거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본관은 반남, 자는 중후(仲厚), 호는 성암(惺庵)삼일당(三一堂)이다.

116) 박제문(朴齊文)1823~1896. 본관은 반남, 자는 성연(性然)안여(安汝)이다. 생원시에 입격하고 음관으로 출사하여 양지 현감 등을 역임하였다.

117) 한계원(韓啓源)1814~1882.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공우(公佑), 호는 유하(柳下)이다. 생원시와 문과에 합격하여 승지 등을 역임하고 우의정에 이르렀다.

118) 권대철(權大澈)1800~1862. 본관은 안동, 자는 숙함(叔涵)이다. 생원시에 입격하고 음관으로 출사하여 영해 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119) 박상수(朴商壽)1811~1874. 본관은 반남, 자는 원보(元輔)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교리, 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120) 정현덕(鄭顯德)1810~1883. 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백순(伯純), 호는 우전(雨田)이다.

121) 권종헌(權宗憲)1795~? 본관은 안동, 자는 성칙(聖則)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교서관 교리 등을 역임하였다.

122) 원릉(元陵)영조(英祖)와 계비 정순왕후(貞純王后) 김씨(金氏)의 능으로, 경기 구리시의 동구릉 가운데 하나이다.

123) 전사관(典祀官)원문은 奠祀官인데, 일반적인 용례에 근거하여 으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이하 동일하다.

124) 반곡(蟠谷)의 연로하신 유생박종후(朴宗垕, 1792~1864)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125) 박제홍(朴齊弘)1808~1881. 본관은 반남, 자는 능옹(能翁)이다. 음관으로 출사하여 원릉 참봉, 합천 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126) 장석준(張錫駿)1813~1868.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현가(見可)현가(顯可), 호는 춘고(春臯)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목릉 별검, 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127) 공자는……같다:《맹자집주(孟子集註)》 〈만장장구 하(萬章章句下)에 나오는 구절이다.

128) 동방은 봄이다:《예기(禮記)》 〈향음주의(鄕飮酒義)에 나오는 구절이다.

129) 밭 갈고……없었다:《맹자(孟子)》 〈공손추 상(公孫丑上)에 나오는 구절이다.

130) 천하……있다소식(蘇軾)결옹폐(決壅蔽)에 나오는 구절이다.

131) 의제(疑題)()는 사서의(四書疑), 사서 가운데 문의(文義)가 서로 상충되거나 모순된다는 의심이 드는 부분에 대해 견해를 서술하게 하는 논술형 과거 과목이다. 의제는 이 과목의 시제(試題)이다.

132) 대학(大學)……것이고구체적으로, 정심장(正心章)의 수장(首章)은 유심(有心)한 자의 병폐에 대해 설명하고 다음 장은 무심(無心)한 자의 병폐에 대해 설명하였는데 유심도 불가하고 무심도 불가하다면 유심, 무심 외에 과연 어떤 공부를 해야 정심(正心)할 수 있겠는가를 묻는 문제였다. 乙卯式司馬榜目 附錄

133) 의제(義題)()는 오경의(五經義), 오경의 글 뜻을 해석하게 하는 논술형 과목이다. 의제는 이 과목의 시제이다.

134) 기월(旣月):《서경(書經)》 〈우서(虞書) 순전(舜典)에 나오는 구절이다.

135) 이소(二所)원문은 一所인데, 문맥을 살펴 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136) 맹자(孟子)……것이고구체적으로, 맹자는 제후 중에 문왕의 정사를 행하는 자가 있다면 7년 안에 반드시 천하에 정사를 할 것이다.”라고 하였고 공손추(公孫丑)문왕께서는 훌륭한 덕을 가지고 교화를 펴다가 백 년 뒤에 돌아가셨는데도 여전히 천하에 교화가 두루 미치지 못하였다.”라고 한 언급에 대해 정치와 덕이 속도나 속성의 차이가 있는지를 묻고, 만약 덕이 정치보다 늦다고 한다면 공자가 덕이 유행되는 것이 파발마로 명을 전달하는 것보다 빠르다.”라고 하고 만약 정치가 덕과 다르다고 한다면 공자가 또 덕으로써 정치를 한다.”라고 한 것은 어째서인가를 묻는 문제였다. 乙卯式司馬榜目 附錄

137) 이연락가빈지심(以燕樂嘉賓之心):《시경(詩經)》 〈소아(小雅) 녹명(鹿鳴)에 나오는 구절이다.

138) 천릉(遷陵)양주 용마봉(龍馬峰) 아래 있던 수릉(綏陵)을 옮기는 것이다.

139) 건원릉(健元陵)태조(太祖)의 능으로, 경기 구리시의 동구릉 국내(局內)에 있다.

140) 반곡(蟠谷)의 족장(族丈)박종후(朴宗垕, 1792~1864)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해 64세의 나이로 생원시에 입격하였다. 본관은 반남, 자는 중후(仲厚), 호는 성암(惺庵)삼일당(三一堂)이다.

141) 정필주(鄭必周)1799~1863.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성집(聖緝), 호는 소석(韶石)이다. 이해에 생원시에 입격하였다.

142) 김중연(金重淵)1827~1864. 본관은 풍산(豐山), 자는 천경(天卿)이다. 이해에 생원시에 입격하였다.

143) 반곡(蟠谷)의 대부(大父)박종후(朴宗垕, 1792~1864)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해에 사마시에 입격하였다.

144) 삼빈을……형상한다:《예기(禮記)》 〈향음주의(鄕飮酒義)에 나오는 구절이다.

145) 기뻐하며……하였다:《사기(史記)55유후세가(留侯世家)에 나오는 구절이다.

146) 현륭원(顯隆園)정조(正祖)의 생부 사도세자(思悼世子)와 혜빈(惠嬪) 홍씨(洪氏)의 원이다.

147) 춘상갑(春上甲)……불길하다춘상갑은 입춘 뒤 첫 번째로 맞는 갑자일이다. 사시찬요(四時纂要)에 의하면, 이날 비가 내리면 심한 가뭄이 든다고 한다.

148) 류경만(柳景萬)류교목(柳敎睦, 1810~1874)이다. 본관은 풍산(豐山), 자는 경만이다. 생원시에 입격하였다.

149) 육상궁(毓祥宮)숙종(肅宗)의 후궁이자 영조(英祖)의 사친(私親)인 숙빈(淑嬪) 최씨(崔氏)의 신판(神版)을 봉안한 궁이다.

150) 연호궁(延祜宮)원문은 延祐宮인데, 일반적인 용례에 근거하여 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영조의 후궁이자 진종(眞宗)의 사친인 정빈(靖嬪) 이씨(李氏)의 신판을 봉안한 궁이다.

151) 방노(榜奴)과거 응시자 본인이나 지방의 그 가족들에게 합격 소식을 전하는 노복을 일컫는 말이다.

152) 김발(金墢)1826~1877. 본관은 선산(善山), 자는 치발(致發)이다. 이해에 생원시에 입격하였다.

153) 권정화(權鼎和)1808~1889. 본관은 안동, 자는 중실(中實), 호는 성서(醒棲)이다. 이해에 생원시에 입격하였다.

154) 이기상(李驥相)1826~1903.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치천(穉千), 호는 민와(敏窩)이다. 이해에 생원시에 입격하였다.

155) 이관희(李觀熙)1824~1895.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희빈(羲賓), 호는 포수(浦叟)이다. 이해에 생원시에 입격하였다.

156) 이경장(李景章)이기동(李基東, 1809~1896)이다.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경장, 호는 석당(石堂)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지평 등을 역임하였다.

157) 서호순(徐頀淳)1799~? 본관은 대구(大邱), 자는 치성(穉成)이다. 생원시에 입격하였고 음관으로 출사하여 임실 현감 등을 역임하였다.

158) 박순양(朴順陽)1829~1877. 본관은 반남, 자는 경화(景和)이다. 생원시에 입격하였고 음관으로 출사하여 광흥창 수(廣興倉守) 등을 역임하였다.

159) 김진구(金鎭久)1811~1879.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가원(可遠)이다.

160) 이만형(李晩瀅)1825~1877.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양수(揚叟), 호는 남반(南沜)이다. 이해에 문과에 급제하여 교리, 집의 등을 역임하였다.

161) 찌를……얻었다여기서 찌를 뽑는 것은 강서(講書) 응시자를 시험장에 들여보내는 순서, 즉 천자문 순서로 된 자호(字號)를 추첨하는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강서 시험에서의 자호 추첨 규례는 글자를 모르는 향군(鄕軍)으로 하여금 옷을 벗고 지붕에 올라가 글자가 적힌 찌를 잡고 뽑아내어 떨어뜨리게 하면, 사관소(四館所)의 추첨관(抽籤官)이 초시 합격자가 기록된 방목의 순서대로 채워 배정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만약 후순위의 자호가 걸릴 경우 앞에서 급제자의 액수(額數)가 찬 뒤에는 재촉을 받아서 14분 이하의 성적을 받기 일쑤였기 때문에 응시자들은 온갖 방법으로 선순위의 자호를 얻기를 바랐고, 추첨관도 제멋대로 농간을 부렸다고 한다. 저자는 박명수(朴明壽)65번째 자호인 해() 자에 배정되어 불리한 상황에서 응시하여 급제가 확정되는 14분 반 이상을 얻지 못하였다고 아쉬워한 것이다. 承政院日記 英祖 38327

162) 비교(比較)……만하나식년 문과 회시 초장(初場)인 강서의 성적이 14분 이상인 자가 급제 정원 33인 이상인 경우 14분인 사람끼리 제술(製述)을 보여 32인을 뽑는 일을 말한다. 그 나머지 1인은 생획(生劃, 生畫)을 보여 선발하였다. 저자는 박명수가 14분 반 이상을 얻어 급제가 확정되지는 못하였으나, 이 비교를 통해 급제할 가능성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위안이 될 만하다고 한 것이다. 典律通補 禮典 諸科》 《經世遺表 卷15 春官修制 科擧之規1

163) 이휘림(李彙林)1829~1893.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평수(平叟), 호는 일암(逸岩)이다. 이해에 문과에 급제하여 율봉 찰방, 지평 등에 임명되었다.

164) 권노연(權魯淵)1825~1878. 본관은 안동, 자는 성원(聖源), 호는 하석(霞石)이다. 이해에 문과에 급제하여 승지 등에 임명되었다.

165) 강운중(姜運重)1827~1881.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성회(聖會), 호는 두산(斗山)이다. 이해에 문과에 급제하여 장령 등을 역임하였다.

166) 김수연(金壽淵)1828~1889.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기원(箕源), 호는 사산(史山)이다.

167) 이승덕(李承德)1802~1876.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명길(明吉), 호는 만회(晩悔)이다. 이해에 문과에 급제하여 지평 등을 역임하였다.

168) 김문응(金文應)김시룡(金始龍, 1798~1883)이다.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문응이다.

169) 강경규(姜景奎)1827~1869.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순가(舜歌)이다. 이해에 문과에 급제하여 지평 등을 역임하였다.

170) 이민희(李民熙)1807~1862.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성수(聖綏)운수(雲綏), 호는 등파헌(登坡軒)이다. 이해에 문과에 급제하여 장령 등을 역임하였다.

171) 대평(大坪)의 상소사도세자를 추숭(追崇)하여 부묘(祔廟)하기를 청하는 정재(定齋) 류치명(柳致明, 1777~1861)의 상소이다. 대평은 류치명의 거주지로서 그를 지칭하는 말로도 쓰인다. 본 상소는 그의 문집인 정재집1에 수록되어 있는 청행경모궁전례소(請行景慕宮典禮疏)이다.

172) 위에서……아름답다:〈대학장구 서문에 나오는 구절이다.

173) 국가가……것이다:《순자(荀子)》 〈부국(富國)에 나오는 구절이다. 다만 순자승정원일기이날 기사에는, ‘盤泰盤石으로 되어 있다.

174) 박제인(朴齊寅)1818~1884. 본관은 반남, 자는 치량(稚亮)이다. 생원진사시와 문과에 합격하여 남평 현감, 이조 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175) 진실로……여시었다:《시경(詩經)》 〈주송(周頌) ()에 나오는 구절이다.

176) 순강원(順康園)선조(宣祖)의 후궁이며 추존 왕인 원종(元宗)의 사친(私親)인 인빈(仁嬪) 김씨(金氏)의 원으로, 경기 남양주 진접읍에 위치해 있다.

177) 순강원(順康園) 좌측 기슭:《승정원일기철종 6410일 기사에 의하면, 순강원 우측 언덕으로 되어 있다.

178) 곽태로(郭泰魯)1803~?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형원(馨遠, 亨遠)이다. 대구(大邱) 출신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정언, 지평 등에 임명되었다.

179) 배선만(裵善萬)1805~1880. 본관은 흥해(興海), 자는 성호(性浩), 호는 두호(杜湖)이다. 생원시에 입격하였다.

180) 소수(疏首) 어른이휘병(李彙炳, 1790~1869)이다.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회가(晦可), 호는 소계(素溪)이다. 이해 5월에 올린 사도세자(思悼世子) 추존소(追尊疏)의 소두였다.

181) 소하(疏下)연명 상소에서 제일 첫 연명자인 소수(疏首) 혹은 소두(疏頭) 다음에 연명한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182) 김중휴(金重休)1797~1863. 본관은 풍산(豐山), 자는 현도(顯道), 호는 학암(鶴庵)이다. 진사시에 입격하였고 음관으로 출사하여 제릉 참봉(齊陵參奉)을 역임하였다.

183) 김덕오(金德吾)김낙홍(金樂泓)이다. 본관은 예안(禮安), 자는 덕오이다. 영주 귀정(龜亭) 출신이다.

184) 정치범(鄭稚範)정창석(鄭昌錫)이다.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치범이다. 영주 소천(韶川) 출신이다.

185) 김순흠(金舜欽)김여룡(金汝龍)이다. 본관은 함창(咸昌), 자는 순흠이다. 영주 상현(商峴) 출신이다.

186) 성명(聖明)김광희(金光熙, 1803~1856)이다. 본관은 청도(淸道), 자는 성명이다. 영주 한저(閑渚) 출신이다. 저자의 사촌인 소헌(小軒) 박제항(朴齊恒)의 장인이다.

187) 박수영(朴秀英):《소청일록(疏廳日錄)》 〈소청동고록(疏廳同苦錄)에는 ()’()’으로 되어 있다.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화서(和瑞)이다.

188) 성민교(成民敎)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중오(重五)이다. 영주 번포(反浦) 출신이다.

189) 이경화(李敬和)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여용(汝用)이다. 영주 신야(新野) 출신이다.

190) 김휘경(金輝京)본관은 예안(禮安), 자는 광언(光彦)이다. 영주 우금(友琴) 출신이다.

191) 순칠(舜七)박제정(朴齊政, 1837~1876)이다. 본관은 반남, 자는 순칠이다. 진사시에 입격하였다. 의흥 현감(義興縣監) 박진수(朴晉壽)의 아들이다.

192) 용간(用幹)박제경(朴齊敬, 1831~1904)이다. 본관은 반남, 자는 용간이다. 생원시에 입격하였다. 방목 등에는 자가 용간(用簡)으로 기재되어 있다.

193) 고성겸(高聖謙)1810~1886. 본관은 개성(開城), 자는 치희(穉希), 호는 녹리(甪里)이다. 진사시에 입격하였다.

194) 조현거(趙鉉擧)조현기(趙鉉基)이다. 본관은 풍양(豐壤), 자는 현거이다. 소청일록(疏廳日錄)》 〈소청동고록(疏廳同苦錄)에는 ()’()’으로 되어 있다.

195) 강휴응(姜休應)강운흠(姜運欽)이다.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휴응이다.

196) 정붕거(鄭鵬擧)정운규(鄭雲逵)이다.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붕거이다.

197) 이만익(李晩翊)1799~?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형진(亨進)이다. 생원시에 입격하였고 음관으로 출사하여 의금부 도사, 인제 현감 등을 역임하였다.

198) 이담구(李潭九)1803~1860. 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성관(聖觀)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 정랑 등에 임명되었다.

199) 김인(金鏔)1813~1890.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숙통(叔通)이다.

200) 방외 유생(方外儒生)성균관(成均館)에서 기숙하지 않는 유생을 일컫는 말이다.

201) 김경연(金景淵)김우수(金遇洙, 1804~1877)이다.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경연, 호는 하재(下齋)이다. 생원시에 입격하였다.

202) 두 친구김휘경(金輝京)과 김우수(金遇洙)이다.

203) 김경옥(金景玉)김휘온(金輝蘊, 1808~1882)이다. 본관은 예안(禮安), 자는 경옥, 호는 만회(晩悔)이다.

204) 이수여(李粹汝)이능엄(李能儼)이다. 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수여이다.

205) 김정서(金庭瑞)1796~? 본관은 안동, 자는 성세(晠世)이다. 생원시에 입격하였다. 원문은 金廷瑞인데, 방목 등에 근거하여 으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206) 김유용(金幼用)김기운(金驥雲, 1806~?)이다. 본관은 안동, 자는 유용이다. 생원시에 입격하였다.

207) 류주로(柳周老)류도황(柳道璜)이다. 본관은 풍산(豐山), 자는 주로이다.

208) 하형(夏亨)류진우(柳進瑀, 1808~1886)이다. 본관은 풍산(豐山), 자는 하형, 호는 송주(松洲)이다.

209) 오늘은 ……날이니이날은 저자의 큰며느리인 진주 강씨(晉州姜氏, 1822~1848)가 사망한 날이다.

210) 오백겸(吳伯兼)오광일(吳光一, 1802~?)이다. 본관은 고창(高敞), 자는 백겸이다. 생원시에 입격하였다. 방목 등에는 자가 백겸(伯謙)으로 기재되어 있다.

211) 이이백(李而百)이장익(李章翊, 1806~?)이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이백이다. 진사시와 문과에 합격하여 지평 등을 역임하였다.

212) 류순형(柳舜亨)류진휘(柳進徽, 1814~1881)이다. 본관은 풍산(豐山), 자는 순형, 호는 와서(瓦西)이다. 진사시에 입격하였고 음관으로 출사하여 혜릉 참봉 등을 역임하였다.

213) 응민(應敏)송응찬(宋應燦, 1808~1885)이다. 본관은 야성(冶城), 자는 응민, 호는 경재(敬齋)이다.

214) 일중식(日中食)가난 때문에 아침과 저녁은 굶고 낮에 한 번만 식사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215) 이명윤(李命允)1804~1863.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치백(致伯), 호는 안호(安湖)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정언 등에 임명되었다.

216) 자내(自內)의 예로 하였다이는 왕이 예식을 위해 출궁하면서 정식으로 동가할 때 마련하는 군병의 호위와 백관의 영접 등을 생략하거나 간소하게 마련하여 거둥하는 것을 말한다. 특히 정조는 사도세자의 사당인 경모궁에 편리하게 배알하기 위해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弘化門) 옆에 별도로 일첨문(日瞻門), 월근문(月覲門)을 세우고 수시로 이 문을 통해 경모궁에 배알하였다. 이때 대부분 자내의 예로 동가하였는데, 이를 월근문으로 동가할 때의 규례月覲門例라고 표현한다.

217) 김성(金金+)1800~1871.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대용(大容), 호는 우소(愚巢)이다.

218) 김석모(金錫模)1800~? 본관은 선산(善山), 자는 범구(範九)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헌납, 지평 등을 역임하였다.

219) 류치흠(柳稚欽)류기목(柳祈睦, 1802~1861)이다. 본관은 풍산(豐山), 자는 치흠, 호는 부강(芙江)이다. 생원시에 입격하였고 음관으로 출사하여 예안 현감(禮安縣監) 등을 역임하였다.

220) 추상갑(秋上甲)……난다추상갑은 입추 뒤 첫 번째로 맞는 갑자일이다. 이때 비가 오면 추수 때 장마가 져서 수확하기도 전에 곡식에서 싹이 난다는 의미이다. 산림경제(山林經濟)등의 문헌에 언급되어 있다.

221) 유곡(酉谷)의 상소정산(晶山) 권재대(權載大)의 상소를 가리킨다. 유곡은 속칭 닭실로 안동 권씨 문중의 세거지이며 권재대의 출신지이다. 그는 사도세자를 추숭하는 전례를 거행하기를 청하기 위해 상소하였다.

222) 권평중(權平仲)권재형(權載衡, 1808~1861)이다. 본관은 안동, 자는 평중이다. 생원시에 입격하였다.

223) 관록(館錄)본관록(本館錄)이라고도 하는데, 홍문관에서 옥당(玉堂)을 뽑기 위해 홍문관 자체 내에서 먼저 행하는 권점을 말하기도 하고, 그 결과를 말하기도 한다. 즉 홍문관에서 동벽(東壁)인 직제학 이하 응교(應敎)가 주관하고 부제학이 확정하여 서벽(西壁)인 교리(校理)부교리(副校理)또는 수찬(修撰)부수찬(副修撰)의 후보를 뽑는 회권(會圈)이다. 弘文館志 館規 會圈》 《登瀛錄》 《六典條例 吏典 議政府 薦選

224) 조 합하(趙閤下)당시 우의정으로 있던 조두순(趙斗淳)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225) 조부의 기일저자의 조부는 박성간(朴成榦, 1771~1836)이다.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여정(汝楨)이다. 그는 710일에 사망하였다.

226) 한저(閑渚)의 종수(從嫂)저자의 사촌인 소헌(小軒) 박제항(朴齊恒)의 처 청도 김씨(淸道金氏)를 가리킨다. 그녀는 이해 65일에 사망하였다. 한저는 현재 영주시 가흥1동에 위치한 마을로, 청도 김씨 문중의 세거지이다.

227) 실천(實薦)주천(注薦)이라고도 하는데, 주서를 지낸 사람들이 자신의 후임이 될 사람을 스스로 미리 선발하는 것을 말한다. 典律通補 吏典 京官格式 注薦

228) 이규창(李圭昌)1804~?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여문(汝文)이다. 진사시에 입격하였고 음관으로 출사하여 안산 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229) 홍사직(洪士直)홍전(洪壂, 1804~1864)이다.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사직, 호는 노운(老雲)이다. 생원시에 입격하였다.

230) 이공무(李公茂)이만송(李晩松, 1805~1875)이다.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공무, 호는 계서(溪西)이다. 진사시와 문과에 합격하여 전적, 지평 등에 임명되었다.

231) 이계로(李啓魯)1828~1886.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성건(聖建), 호는 석림(石林)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병조 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232) 망극하고 망극하다이날이 저자의 모친인 안동 권씨(安東權氏, 1784~1847)의 기일이기 때문이다.

233) 희릉(禧陵)중종(中宗)의 계비(繼妃) 장경왕후(章敬王后)의 능으로, 경기도 고양시에 있다. 서삼릉(西三陵)의 하나이다.

234) 효릉(孝陵)인종(仁宗)과 그 비인 인성왕후(仁聖王后) 박씨(朴氏)의 능으로, 경기도 고양시에 있다. 서삼릉(西三陵)의 하나이다.

235) 이 동래(李東萊)이휘령(李彙寧, 1788~1861)이다.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군목(君睦), 호는 고계(古溪)이다. 생원시에 입격하였고 음관으로 출사하여 동래 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236) 목릉(穆陵)선조(宣祖)와 비 의인왕후(懿仁王后) 박씨(朴氏), 계비 인목왕후(仁穆王后) 김씨(金氏)의 능으로,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의 동구릉 내에 있다.

237) 휘릉(徽陵)인조(仁祖)의 계비인 장렬왕후(莊烈王后) 조씨(趙氏)의 능으로,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의 동구릉 내에 있다.

238) 김문일(金文一)김두흠(金斗欽, 1804~1877)이다. 본관은 풍산(豐山), 자는 문일, 호는 낙애(洛厓)이다. 문과와 중시에 급제하여 동부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239) 정성언(丁成彦)정집교(丁集敎, 1811~1886)이다.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성언, 호는 금암(錦巖)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지평, 형조 참의 등에 임명되었다.

240) 신지정(辛志鼎)1800~1865. 본관은 영산(靈山), 자는 성양(聖養), 호는 국포(菊圃)포와(匏窩)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사간 등을 역임하였다.

241) 갑시(甲時)에 발인하고:《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이날 기사에 의하면, 신시(申時)에 수릉(綏陵)의 발인이 있었다.

242) 강기(姜?)1824~1880.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국보(國寶), 호는 석당(石堂)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장령 등을 역임하였다.

243) 정성언(丁成彦)원문은 丁彦인데, 본서 1855820일 기사 등에 근거하여 을 보충하여 번역하였다.

244) 이능형(李能亨)1821~1867. 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회가(會可)이다. 생원시에 입격하였고 음관으로 출사하여 희릉 참봉, 의흥 현감 등을 역임하였다.

245) 이원숙(李元叔)이상성(李相聖, 1801~1860)이다. 본관은 재령(載寧), 자는 원숙, 호는 가산(可山)이다.

246) 박당수(朴堂壽)1813~1855.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굉수(觥叟)이다. 저자의 스승인 일포(逸圃) 박시원(朴時源)의 손자이다.

247) 별단(別單)에 써서 들였다:《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이날 기사에 의하면, 상전(賞典)을 시행하기 위해 천릉도감(遷陵都監)과 산릉도감(山陵都監)의 총호사(摠護使) 이하 관원을 별단에 기록하여 올린 것이다.

248) 이양직(李養直)이벽수(李璧洙, 1824~1892)이다. 본관은 공주(公州), 자는 양직, 호는 현암(玄菴)이다. 생원시에 입격하였다.

249) 기산(箕山)의 김씨 어른김시룡(金始龍, 1798~1883)이다.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문응(文應)이다.

250) 김병려(金炳礪)1804~? 본관은 안동, 자는 여용(汝用)이다. 생원시에 입격하였다.

251) 권응기(權應夔)1815~1863. 본관은 안동, 자는 요장(堯章), 호는 소진(所珍)이다. 진사시와 문과에 합격하여 춘천 부사, 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252) 연객(延客)문객(門客) 즉 사위를 맞이하는 혼례를 뜻하는 말인 듯한데, 자세한 것은 미상이다.

253) 광릉(光陵)세조(世祖)와 그 비인 정희왕후(貞熹王后) 윤씨(尹氏)의 능으로,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에 있다.

254) 이윤민(李允敏)1809~1892.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성보(成輔)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정언 등을 역임하였다.

255) 이윤민(李允敏)원문은 李允인데, 본서 1855919일 기사 등에 근거하여 을 보충하여 번역하였다.

256) 전동(典洞)의 치제(致祭)철종이 당시 세도가인 고() 김수근(金洙根, 1798~1854)에게 영의정을 증직하고 각신(閣臣)을 보내 치제하게 한 사실을 가리킨다. 전동은 김수근의 거주지이면서 그를 지칭하는 말로 쓰였다. 承政院日記 哲宗 6922

257) 안자(晏子)의 마부세도가에 빌붙는 듯한 태도를 취한 일부 안동 유생들을 비꼬기 위해 인용한 말이다. 안자의 마부란 위세를 믿고 득의양양해 하다가 한 번에 깨달음을 얻고 허물을 고친 인물이다. 안자가 제()나라의 재상이 되어 외출할 때 그 마부의 아내가 의기양양한 태도를 취하며 말을 모는 남편의 모습을 문틈으로 엿보았다. 마부인 남편이 돌아오자 그 아내가 떠나겠다고 하므로 남편이 그 이유를 물었다. 이에 처는 안자는 키가 6척도 되지 않지만 제나라의 재상이 되고 명성이 제후 사이에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가 그가 외출하는 모습을 보니 뜻과 사려가 깊은지라 늘 스스로를 낮추려는 겸손한 태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당신은 키가 8척이나 되면서 남의 마부 노릇이나 하고 있고 그러면서도 당신은 스스로 만족해하고 있으니 그래서 제가 떠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였다. 이후 마부가 스스로 겸손하게 처신하자 안자가 이상하게 여겨 물으니 사실대로 대답해 주었다. 이에 안자가 마부를 천거하여 대부(大夫)로 삼았다고 한다. 晏子春秋 內篇雜上

258) 천자는 엄숙하게 계시도다:《시경(詩經)》 〈()에 나오는 구절이다.

259) 도당록(都堂錄)옥당(玉堂)의 후보로 올릴 사람을 권점을 통해 선발하는 절차를 홍문록(弘文錄)이라고 하는데, 세부적으로는 본관록(本館錄)이조록(吏曹錄)도당록의 세 단계로 나누어 행하였다. 여기서 도당록은 의정부, 이조, 홍문관 당상들이 도당(都堂)에 모여 홍문관과 이조를 거쳐 올라온 명단을 검토하여 적합한 후보를 추가한 뒤에 후보의 이름에 권점을 찍어 일정한 점수를 얻지 못한 사람은 탈락시키고 나머지 사람만을 점수 순서대로 명단을 작성하게 된다.

260) 류필신(柳必臣)류치윤(柳致潤, 1805~1880)이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필신이다. 음관으로 출사하여 하양 현감(河陽縣監) 등을 역임하였다.

261) 망극하다저자의 부친 박재순(朴在純, 1789~1849)의 기일이기 때문이다.

262) 오제의……같다소옹(邵雍)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4관물내편(觀物內篇)9에 나오는 구절이다.

263) 박규서(朴奎瑞)가 집의에:《승정원일기이날 기사에 의하면, 박규서는 장령에 낙점되었다. 원문은 朴圭瑞인데, 문과 방목 등에 근거하여 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264) 손영로(孫永老)1820~1891.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이석(而錫), 호는 목서(木西)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정언 등을 역임하였다.

265) 승보시(陞補試)서울의 사학(四學 東學西學南學中學)과 지방의 개성부(開城府)제주목(濟州牧) 유생들에게 시()()를 시험 보여 식년(式年) 감시(監試) 복시(覆試)의 응시 자격을 부여하던 일종의 감시 초시(初試), 1년에 10(대전통편(大典通編)이후에는 12) 시험을 보여 점수를 매기고 연말에 1년 동안 받은 총 점수가 10() 이상인 자를 점수가 높은 순서로 소정의 인원만큼 선발하였다. 大典會通 禮典 諸科 陞補

266) 조극승(曺克承)1803~1877.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경휴(景休), 호는 귀애(龜厓)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정언, 사간 등에 임명되었다.

267) 중복(重卜)한번 이상 의정(議政)을 역임한 사람을 다시 의정의 후보에 올려 뽑는 것, 또는 그렇게 뽑힌 사람을 말한다.

268) 송종륜(宋鍾崙)1803~? 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성첨(聖瞻)이다. 생원시에 입격하였다.

269) 오늘은……날이니이날은 저자의 아들 박우양(朴右陽, 1831~1869)의 첫째 부인인 안동 권씨(安東權氏, 1824~1851)가 사망한 날이다.

270) 통독(通讀)매년 성균관 대사성이 서울과 지방의 유생에게 제술(製述)과 강서(講書)를 보이고 연말에 점수를 합산하여 10인을 선발해서 식년(式年) 문과(文科) 복시(覆試)에 응시할 자격을 주었던 시험 제도이다. 제술에서는 부() 1, ()()() 1편을, 강서에서는 사서(四書)와 삼경(三經)을 배강(背講)하여 시험 보였다. 문과 초시(初試)의 기능을 하였다. 大典會通 禮典 諸科 通讀》 《六典條例 禮典 成均館 科舉

271) 조영승(曺瑩承) 명거(明擧)1805~?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명거, 호는 규산(圭山)이다. 전라도 화순(和順) 출신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지평, 태천 현감(泰川縣監) 등을 역임하였다.

272) 이약우(李若愚)1782~1860.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경용(敬容), 호는 호거(壺居)이다. 진사시와 문과에 합격하여 형조 판서 등을 역임하였고 자급은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