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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사(進士)

황성 2020. 5. 29. 23:07

禮義升諸司馬曰進士

사마왈진사.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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吁升自司馬而進於爵祿故名其士曰

進士何則盈科後進鄒傳有訓乃進

于王設命有着今夫士之進於爵祿者

司馬主之士之進於官職者司馬掌之

則士之升於司馬者其德之已進而所以

將進於爵祿也士之登於政官者其位

之方進而所以將進於王所也玆故別於

秀士之名而名之以進士異於造士之稱

而稱之以進士則進士之云不其然乎蓋

升諸司馬而其德已進其位漸進則其

曰進士者宜矣夫如是故其所以爲言者惟

在於此亦在於是自其已然者而觀之則

是義也不待他求而可知也不啻丁寧而可明

也若知是言之爲切要舍是這箇字而奚

以哉欲知此義之爲深切舍此這裏字而曷

以哉於乎古人立言垂戒之意何莫非後學

之規範亦莫非後生之模楷而叔季歸來經

義歸於弁髦聖訓視若土苴只知尋章樀

 

禮義 升諸司馬曰進士 吁, 升自司馬 而進於爵祿 故名其士曰進士 何則 盈科後進 鄒傳有訓 乃進于王 說命有着 今夫士之進於爵祿者 司馬主之 士之進於官職者 司馬掌之 則士之升於司馬者 其德之已進 而所以將進於爵祿也 士之登於政官者 其位之方進 而所以將進於王所也 玆故 別於秀士之名 而名之以進士 異於造士之稱 而稱之以進士 則進士之云 不其然乎 蓋升諸司馬 而其德已進 其位漸進 則其曰進士者宜矣夫 如是 故其所以爲言者 惟在於此 亦在於是 自其已然者而觀之 則是義也 不待他求 而可知也 不啻丁寧而可明也 若知是言之爲切要 舍是這箇字 而奚以哉 欲知此義之爲深切 舍此這裏字 而曷以哉 於乎 古人立言垂戒之意 何莫非後學之規範 亦莫非後生之模楷 而叔季 歸來經義 歸於弁髦 聖訓 視若土苴 只知尋章摘句

 

예의(禮義)에 사마(司馬)에 오르는 것을 진사(進士)라고 한다. , 사마에서 올라 작록에 나아가기 때문에 그 사()를 이름하여 진사(進士)라고 한다. 왜 그런고? 구덩이를 가득 채운 뒤에 나아가는 것은 추전(鄒傳 맹자)에 훈계를 드리운 것이고, 마침내 왕()에게 진언(進言)한 것<열명(說命)>에 드러난 것이다. 지금 선비가 작록에 나아가는 것을 사마(司馬)가 주관하고, 선비가 관직에 나아가는 것을 사마가 담당하니, 선비가 사마에 오르는 것은 그 덕성이 이미 진보가 있어서 장차 작록에 나아가려는 것이다. 선비가 조정의 관직에 오르는 것은 그 지위가 바야흐로 나아가 장차 왕이 있는 곳에 나아가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수사(秀士)의 명칭과 구별하여 진사(進士)라고 이름하고, 조사(造士)의 칭호와 다르게 하여 진사라고 이름하니, 진사라고 말하는 것이 그 옳지 아니한가.

대개 사마에 올라서 그 덕성이 이미 진보가 있고 그 지위가 점점 오르니, 진사라고 말하는 것이 마땅할 것인저. 이와 같기 때문에 말하는 바의 것이 오직 여기에 있다. 또한 여기에 있으니, 이미 그러한 것으로부터 관찰한다면 이는 의()이니, 다른 곳에서 구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알 수 있다. 정녕 간곡할 뿐만이 아니라 분명하게 드러난다. 만약 이 말이 긴요하다는 것을 안다면 이 글자를 버리고 어디서 구하겠는가. 이 의리가 매우 적절함을 알고자 한다면 이 글자를 버리고 어디서 구하겠는가. , 고인이 말을 세우고 경계를 드리운 뜻은 어찌 후학의 규범이 아님이 없으며, 또한 후생의 모범이 아님이 없지 않겠는가. 하지만 말세에는 경전의 뜻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변모(弁髦)처럼 취급하고, 성인의 훈계를 토저(土苴)처럼 취급하고 다만 심장적구(尋章摘句)만 알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