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원전자료/맹자

고자 하

황성 2012. 11. 29. 09:18

▣ 고자장구하(告子章句下)


凡十六章이라


  모두 16장(章)이다.


     X:○ 맹자 ; 고자하 ; 제1장//+1

     X:○ 맹자 ; 고자하 ; 제2장//+2

     X:○ 맹자 ; 고자하 ; 제3장//+3

     X:○ 맹자 ; 고자하 ; 제4장//+4

     X:○ 맹자 ; 고자하 ; 제5장//+5

     X:○ 맹자 ; 고자하 ; 제6장//+6

     X:○ 맹자 ; 고자하 ; 제7장//+7

     X:○ 맹자 ; 고자하 ; 제8장//+8

     X:○ 맹자 ; 고자하 ; 제9장//+9

     X:○ 맹자 ; 고자하 ; 제10장//+10

     X:○ 맹자 ; 고자하 ; 제11장//+11

     X:○ 맹자 ; 고자하 ; 제12장//+12

     X:○ 맹자 ; 고자하 ; 제13장//+13

     X:○ 맹자 ; 고자하 ; 제14장//+14

     X:○ 맹자 ; 고자하 ; 제15장//+15

     X:○ 맹자 ; 고자하 ; 제16장//+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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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 고자하 ; 제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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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장(第一章)


任人이 有問屋廬子曰 禮與食이 孰重고 曰 禮重이니라


  임(任)나라 사람이 옥려자(屋廬子)에게 물었다. “예(禮)와 밥[음식]은 어느 것이 더 중(重)한까?” 옥려자(屋廬子)가 대답하였다. “예(禮)가 중(重)하다.”


任은 國名이라 屋廬子는 名連이니 孟子弟子也라


  임(任)은 나라 이름이다. 옥려자(屋廬子)는 이름이 연(連)이니, 맹자(孟子)의 제자(弟子)이다.


色與禮孰重고


  “색(色)과 예(禮)는 어느 것이 더 중(重)한까?”


任人이 復問也라


  임(任)나라 사람이 다시 물은 것이다.


曰 禮重이니라 曰 以禮食이면 則飢而死하고 不以禮食이면 則得食이라도 必以禮乎아 親迎이면 則不得妻하고 不親迎이면 則得妻라도 必親迎乎아


  “예(禮)가 중(重)하다.” “예(禮)대로 먹으면 굶어 죽고, 예(禮)대로 먹지 않으면 밥을 얻을 수 있더라도 반드시 예(禮)대로 해야 하는까? 친영(親迎)을 하면 아내를 얻지 못하고 친영(親迎)을 하지 않으면 아내를 얻더라도 반드시 친영(親迎)을 해야 하는까?”


屋廬子不能對하여 明日에 之鄒하여 以告孟子한대 孟子曰 於答是也에 何有리오


  옥려자(屋廬子)가 대답하지 못하고는 다음날 추(鄒)나라에 가서 맹자(孟子)께 아뢰자,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이것을 답함에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何有는 不難也라


  하유(何有)는 어렵지 않음이다.


不퀛其本而齊其末이면 方寸之木을 可使高於岑樓니라


  그 근본을 헤아리지 않고 그 끝만을 가지런히 한다면, 한 치 되는 나무를 잠루(岑樓)보다 높게 할 수 있다.


本은 謂下요 末은 謂上이라 方寸之木은 至卑하니 喩食色이요 岑樓는 樓之高銳似山者니 至高하니 喩禮라 若不取其下之平하고 而升寸木於岑樓之上이면 則寸木反高하고 岑樓反卑矣니라


  본(本)은 아래를 이르고, 말(末)은 위를 이른다. 방촌(方寸)의 나무는 지극히 낮으니, 식색(食色)을 비유한 것이고, 잠루(岑樓)는 누대가 높고 뾰족하여 산(山)과 같은 것으로 지극히 높으니, 예(禮)를 비유한 것이다. 만일 그 아래의 평(平)함을 취하지 않고, 한 치 되는 나무를 잠루(岑樓)의 위에 올려놓는다면, 한 치 되는 나무가 도리어 높아지고 잠루(岑樓)가 도리어 낮아질 것이다.


金重於羽者는 豈謂一鉤金與一輿羽之謂哉리오


  쇠가 깃털보다 무겁다는 것은 어찌 한 갈고리의 쇠와 한 수레의 깃털을 말함이겠는가.


鉤는 帶鉤也라 金本重而帶鉤小라 故로 輕하니 喩禮有輕於食色者요 羽本輕而一輿多라 故로 重하니 喩食色有重於禮者하니라


  구(鉤)는 띠의 갈고리이다. 쇠는 본래 무거우나 띠의 갈고리는 작기 때문에 가벼우니, 예(禮)가 식색(食色)보다 경(輕)한 경우가 있음을 비유하였고, 깃털은 본래 가벼우나 한 수레는 많기 때문에 무거우니, 식색(食色)이 예(禮)보다 중(重)한 경우가 있음을 비유하였다.


取食之重者와 與禮之輕者而比之면 奚翅食重이며 取色之重者와 與禮之輕者而比之면 奚翅色重이리오


  밥의 중(重)한 것과 예(禮)의 가벼운 것을 취하여 비교한다면 어찌 밥이 중(重)할 뿐만 이겠으며, 색(色)의 중(重)한 것과 예(禮)의 가벼운 것을 취하여 비교한다면 어찌 색(色)이 중(重)할 뿐만 이겠는가.


禮食, 親迎은 禮之輕者也요 飢而死以滅其性과 不得妻而廢人倫은 食色之重者也라 奚翅는 猶言何但이니 言 其相去懸絶하여 不但有輕重之差而已니라


  예(禮)대로 먹음과 친영(親迎)함은 예(禮)의 가벼운 것이요, 굶어 죽어서 성명(性命)[생명(生命)]을 멸함과 아내를 얻지 못하여 인륜(人倫)을 폐함은 식색(食色)의 중(重)한 것이다. 해시(奚翅)는 하단(何但)[어찌 단지]이란 말과 같으니, 그 거리가 현격하여 단지 경중(輕重)의 차이가 있을 뿐만이 아님을 말한 것이다.


往應之曰 ★兄之臂而奪之食이면 則得食하고 不★이면 則不得食이라도 則將★之乎아 踰東家牆而★其處子면 則得妻하고 不★면 則不得妻라도 則將★之乎아하라


  가서 대답하기를 ‘형의 팔을 비틀고 밥을 빼앗아 먹으면 밥을 먹을 수 있고, 형의 팔을 비틀지 않으면 밥을 먹지 못할지라도 장차 비틀겠는까? 동쪽 집의 담장을 뛰어넘어 처자(處子)를 끌어오면 아내를 얻고, 끌어오지 않으면 아내를 얻지 못할지라도 장차 끌어오겠는까?’라고 하라.”


★은 戾也라 ★는 牽也라 處子는 處女也라 此二者는 禮與食色이 皆其重者로되 而以之相較면 則禮爲尤重也니라

○ 此章은 言 義理事物이 其輕重이 固有大分이나 然이나 於其中에 又各自有輕重之別하니 聖賢於此에 錯綜斟酌하여 毫髮不差하시니 固不肯枉尺而直尋이요 亦未嘗膠柱而調瑟이라 所以斷之를 一視於理之當然而已矣니라


  진(★)은 비틂이다. 누(★)는 끎이다. 처자(處子)는 처녀(處女)이다. 이 두 가지는 예(禮)와 식색(食色)이 다 중(重)한 경우인데, 이것을 가지고 서로 비교해 보면 예(禮)가 더욱 중(重)함이 된다.

  ○ 이 장(章)은 의리(義理)와 사물(事物)은 그 경중(輕重)이 진실로 큰 분별이 있으나, 그 가운데에 또 각자 경중(輕重)의 분별이 있다. 성현(聖賢)은 이에 대하여 이리저리 종합하고 참작하여 털끝만큼도 어긋나지 않게 하시니, 진실로 한 자를 굽혀 한 길을 펴기를 즐거워하지도 않으며, 또한 일찍이 거문고의 기둥[고족(雇足)]에 아교 칠을 하고 비파를 고르지도 않는다. 그리하여 결단함에 한결같이 이치의 당연함을 볼뿐임을 말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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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 고자하 ; 제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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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장(第二章)


曹交問曰 人皆可以爲堯舜이라하니 有諸잇가 孟子曰 然하다


  조교(曹交)가 물었다. “사람은 다 요순(堯舜)이 될 수 있다 하니, 그러한 것이 있습니까?”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그러하다.”


趙氏曰 曹交는 曹君之弟也라하니라 人皆可以爲堯舜은 疑古語어나 或孟子所嘗言也라


  조씨(趙氏)가 말하기를 “조교(曹交)는 조(曹)나라 군주의 아우이다.” 하였다. 사람이 다 요순(堯舜)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의심컨대 옛말이거나, 혹은 맹자(孟子)께서 일찍이 말씀하신 것인 듯하다.


交는 聞 文王은 十尺이요 湯은 九尺이라하니 今交는 九尺四寸以長이로되 食粟而已로니 如何則可니잇고


  “제[교(交)]이 들으니, 문왕(文王)은 <신장(身長)이> 10척(尺)이요, 탕(湯)임금은 9척(尺)이라 하는데 지금 저는 9척(尺) 4촌(寸)이 되지만, 곡식만 먹을 뿐이니, 어찌하면 좋습니까?”


曹交問也라 食粟而已는 言無他材能也라


  조교(曹交)가 물은 것이다. 곡식을 먹을 뿐이라는 것은 다른 재능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曰 奚有於是리오 亦爲之而已矣니라 有人於此하니 力不能勝一匹雛면 則爲無力人矣요 今曰擧百鈞이면 則爲有力人矣니 然則擧烏獲之任이면 是亦爲烏獲而已矣니라 夫人은 豈以不勝爲患哉리오 弗爲耳니라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어찌 이에 상관이 있겠는가. 또한 그것을 할뿐이다. 여기에 어떤 사람이 있는데, 힘이 한 마리 오리새끼를 이길 수 없다고 한다면 힘이 없는 사람이 될 것이요, 이제 백균(百鈞)을 든다고 한다면 힘이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오확(烏獲)이 들던 짐을 든다면 이 또한 오확(烏獲)이 될 뿐이니, 사람이 어찌 이기지 못함을 걱정하는가. 자기가 하지 않을 뿐인 것이다.”


匹字는 本作★//주:필자본작필하니 鴨也라 從省作匹하니 禮記에 說匹爲鶩이 是也라 烏獲은 古之有力人也니 能擧移千鈞하니라


  필자(匹字)는 본래 필(★)로 되어 있으니, 오리이다. 생략하여 필(匹)로 썼으니, 《예기(禮記)》에 필(匹)을 목(鶩)[집오리]이라고 설명한 것이 이것이다. 오확(烏獲)은 옛날에 힘이 있던 사람이니, 천균(千鈞)을 들어 옮길 수 있었다.


徐行後長者를 謂之弟요 疾行先長者를 謂之不弟니 夫徐行者는 豈人所不能哉리오 所不爲也니 堯舜之道는 孝弟而已矣니라


  천천히 걸어서 장자(長者)보다 뒤에 감을 ‘공경한다’ 이르고, 빨리 걸어서 장자(長者)보다 앞서 감을 ‘공경하지 않는다’ 이르나니, 천천히 걸어가는 것이 어찌 사람들이 능히 할 수 없는 바이겠는가. 자기가 하지 않는 것이니, 요순(堯舜)의 도(道)는 효제(孝弟)일 뿐이다.


陳氏曰 孝弟者는 人之良知良能自然之性也라 堯舜은 人倫之至로되 亦率是性而已니 豈能加毫末於是哉리오 楊氏曰 堯舜之道大矣로되 而所以爲之는 乃在夫行止疾徐之間이요 非有甚高難行之事也언마는 百姓이 蓋日用而不知耳니라


  진씨(陳氏)가 말하였다. “효제(孝弟)는 사람의 양지(良知)와 양능(良能)으로, 자연의 본성(本性)이다. 요순(堯舜)은 인륜(人倫)의 지극함인데도, 또한 이 본성(本性)을 따를 뿐이었으니, 어찌 이보다 털끝만큼이라도 더할 수 있겠는가.”

  양씨(楊氏)가 말하였다. “요순(堯舜)의 도(道)가 크되 이것을 행하는 것은, 가고 멈춤을 빨리 하고 천천히 하는 사이에 있는 것이요, 심히 높아서 행하기 어려운 일이 있는 것이 아니건마는, 백성들이 날마다 사용하면서도 알지 못할 뿐이다.”


子服堯之服하며 誦堯之言하며 行堯之行이면 是堯而已矣요 子服桀之服하며 誦桀之言하며 行桀之行이면 是桀而已矣니라


  그대가 요(堯)임금이 입던 옷을 입으며, 요(堯)임금의 말씀을 외우며, 요(堯)임금의 행실을 행한다면 이 요(堯)임금일 뿐이요, 그대가 걸왕(桀王)이 입던 옷을 입으며, 걸왕(桀王)의 말을 외우며, 걸왕(桀王)의 행실을 행한다면 이 걸왕(桀王)일 뿐이다.”


言 爲善爲惡이 皆在我而已라 詳曹交之問하면 淺陋麤率하니 必其進見之時에 禮貌衣冠言動之間에 多不循理라 故로 孟子告之如此兩節云이라


  선(善)을 하고 악(惡)을 함이 모두 자신에게 달려 있을 뿐임을 말씀한 것이다. 조교(曹交)의 질문을 살펴보면 천근(淺近)하고 비루(鄙陋)하고 거칠고 경솔(輕率)하니, 반드시 그 나아가 뵐 때에 예모(禮貌)와 의관(衣冠)과 언동(言動)의 사이에 도리(道理)를 따르지 않은 것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맹자(孟子)께서 말씀하기를 이 두 절(節)과 같이 하신 것이다.


曰 交得見於鄒君이면 可以假館이니 願留而受業於門하노이다


  조교(曹交)가 말하였다. “제[교(交)]이 추(鄒)나라 군주를 뵈면 관사(館舍)를 빌릴 수 있을 것이니, 여기에 머물면서 문하(門下)에서 수업(受業)하기를 원합니다.”


假館而後受業하니 又可見其求道之不篤이니라


  관사(館舍)를 빌린 뒤에 수업(受業)하려고 하였으니, 또 그 도(道)를 구함이 돈독하지 못함을 볼 수 있다.


曰 夫道若大路然하니 豈難知哉리오 人病不求耳니 子歸而求之면 有餘師리라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도(道)는 대로(大路)와 같으니, 어찌 알기 어렵겠는가. 사람들이 구하지 않는 것이 병(病)일 뿐이니, 그대가 돌아가 찾는다면 남은 스승이 있을 것이다.”


言 道不難知하니 若歸而求之事親敬長之間이면 則性分之內에 萬理皆備하여 隨處發見하여 無不可師하니 不必留此而受業也니라

○ 曹交事長之禮旣不至하고 求道之心이 又不篤이라 故로 孟子敎之以孝弟而不容其受業하시니 蓋孔子餘力學文//주:여력학문之意요 亦不屑之敎誨//주:불설지교회也시니라


  도(道)는 알기 어렵지 않으니, 만일 돌아가서 어버이를 섬기고 어른을 공경하는 사이에서 찾는다면 성분(性分)의 안에 온갖 이치가 다 구비되어 있어, 곳에 따라 발현(發見)되어 스승 삼을 만하지 않은 것이 없으니, 굳이 이곳에서 머물며 수업(受業)할 것이 없음을 말씀한 것이다.

  ○ 조교(曹交)는 어른을 섬기는 예(禮)가 이미 지극하지 못하였고, 도(道)를 구하는 마음이 또 독실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맹자(孟子)께서 효제(孝弟)로써 가르치시고, 그의 수업(受業)을 용납하지 않으셨으니, 공자(孔子)의 ‘여력(餘力)이 있으면 글을 배운다.’는 뜻이요, 또한 불설(不屑)의 교회(敎誨)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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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 고자하 ; 제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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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장(第三章)


公孫丑問曰 高子曰 小弁(반)은 小人之詩也라하더이다 孟子曰 何以言之오 曰 怨이니이다


  공손추(公孫丑)가 물었다. “고자(高子)가 말하기를 ‘<소반(小弁)>은 소인(小人)의 시(詩)이다.’ 하였습니다.”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무엇을 가지고 말하는가.” “원망하기 때문입니다.”


高子는 齊人也라 小弁은 小雅篇名이라 周幽王이 娶申后하여 生太子宜臼하고 又得褒姒하여 生伯服한대 而黜申后하고 廢宜臼하다 於是에 宜臼之傅가 爲作此詩하여 以픊其哀痛迫切之情也하니라


  고자(高子)는 제(齊)나라 사람이다. 소반(小弁)은 〈소아(小雅)〉의 편명(篇名)이다. 주(周)나라 유왕(幽王)이 신후(申后)를 얻어 태자(太子) 의구(宜臼)를 낳고, 또 포사(褒姒)를 얻어 백복(伯服)을 낳고는 신후(申后)를 축출하고 의구(宜臼)를 폐위하였다. 이에 의구(宜臼)의 사부(師傅)가 그를 위해 이 시(詩)를 지어서 그 애통(哀痛)하고 절박(切迫)한 심정을 서술한 것이다.


曰 固哉라 高叟之爲詩也여 有人於此하니 越人이 關(만)弓而射之어든 則己談笑而道之는 無他라 疏之也요 其兄이 關弓而射之어든 則己垂涕泣而道之는 無他라 戚之也니 小弁之怨은 親親也라 親親은 仁也니 固矣夫라 高叟之爲詩也여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고루하다, 고수(高叟)[고자(高子)]의 시(詩)를 해석함이여! 여기에 사람이 있으니, 월(越)나라 사람이 활을 당겨 쏘려하거든 자기가 말하고 웃으면서 타이르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월인(越人)]을 소원히 여기기 때문이요, 그 형(兄)이 활을 당겨 쏘려하거든, 자기가 눈물을 떨구며 타이름은 다름이 아니라 그[형(兄)]을 친척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소반(小弁)>의 원망은 어버이를 친(親)히 한 것이다. 어버이를 친(親)히 함은 인(仁)이니, 고루하다, 고수(高叟)의 시(詩)를 해석함이여!”


固는 謂執滯不通也라 爲는 猶治也라 越은 蠻夷國名이라 道는 語也라 親親之心은 仁之發也라


  고(固)는 집체(執滯)하여 통하지 못함을 이른다. 위(爲)는 치(治)[다룸]과 같다. 월(越)은 만이(蠻夷)의 나라 이름이다. 도(道)는 말함이다. 친친(親親)의 마음은 인(仁)에서 나온 것이다.


曰 凱風은 何以不怨이니잇고


  “<개풍(凱風)>은 어찌하여 원망하지 않았습니까?”


凱風은 ★風篇名이라 衛有七子之母가 不能安其室이어늘 七子作此하여 以自責也하니라


  개풍(凱風)은 〈패풍(★風)〉의 편명(篇名)이다. 위(衛)나라에 일곱 아들을 둔 어머니가 그 집을 편안히 여기지 못하거늘, 일곱 아들들이 이 시(詩)를 지어 자책(自責)한 것이다.


曰 凱風은 親之過小者也요 小弁은 親之過大者也니 親之過 大而不怨이면 是는 愈疏也요 親之過 小而怨이면 是는 不可磯//주:불가기也니 愈疏도 不孝也요 不可磯도 亦不孝也니라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개풍(凱風)〉은 어버이의 과실이 작은 것이요, 〈소반(小弁)〉은 어버이의 과실이 큰 것이니, 어버이의 과실이 큰데도 원망하지 않는다면 이는 더욱 소원해지는 것이요, 어버이의 과실이 작은데도 원망한다면 이는 기(磯)할 수 없는 것이니, 더욱 소원함도 불효(不孝)요, 기(磯)할 수 없음도 또한 불효(不孝)이다.”


磯는 水激石也니 不可磯는 言微激之而遽怒也라


  기(磯)는 물이 부딪치는 돌이니, 불가기(不可磯)는 조금만 격(激)하여도 대번에 노함을 말한다.


孔子曰 舜은 其至孝矣신저 五十而慕라하시니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순(舜)임금은 그 지극한 효(孝)이실 것이다. 50세까지 사모했다.’ 하셨다.”


言 舜猶怨慕하시니 小弁之怨이 不爲不孝也니라

○ 趙氏曰 生之膝下하여 一體而分이라 喘息呼吸에 氣通於親하나니 當親而疏면 怨慕號天이라 是以로 小弁之怨이 未足爲愆也니라


  순(舜)임금도 오히려 원망하고 사모했으니, 〈소반(小弁)〉의 원망은 불효(不孝)가 되지 않음을 말씀한 것이다.

  ○ 조씨(趙氏)가 말하였다. “자식은 슬하(膝下)에서 태어나 한 몸에서 나누어졌다. 그리하여 숨을 쉬고 호흡함에 기운이 어버이와 통하니, 마땅히 친(親)해야 할 경우에 소원(疏遠)하면 원망하고 사모하여 하늘에 부르짖는다. 이 때문에 소반(小弁)의 원망이 족히 허물이 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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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 고자하 ; 제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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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4장(第四章)


宋툔이 將之楚러니 孟子遇於石丘하시다


  송경(宋툔)이 장차 초(楚)나라에 가려고 할 적에 맹자(孟子)께서 그를 석구(石丘)에서 만나셨다.


宋은 姓이요 툔은 名이라 石丘는 地名이라


  송(宋)은 성(姓)이요, 경(툔)은 이름이다. 석구(石丘)는 지명(地名)이다.


曰 先生은 將何之오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선생(先生)은 장차 어디를 가려 하십니까?”


趙氏曰 學士年長者라 故로 謂之先生이라하시니라


  조씨(趙氏)가 말하였다. “학사(學士)로서 나이가 많은 자였다. 그러므로 선생(先生)이라 이르신 것이다.”


曰 吾聞秦楚構兵이라하니 我將見楚王하여 說而罷之하되 楚王不悅이어든 我將見秦王하여 說而罷之하리니 二王에 我將有所遇焉이리라


  송경(宋툔)이 말하였다. “내 들으니, 진(秦)나라와 초(楚)나라가 병(兵)[전란(戰亂)]을 맺고 있다 하니, 내 장차 초왕(楚王)을 만나보고 달래어 싸움을 그만두게 하되, 초왕(楚王)이 기뻐하지 않거든, 내 장차 진왕(秦王)을 만나보고 달래어 싸움을 그만두게 할 것이니, 두 왕(王) 중에 내 장차 뜻이 합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時에 宋툔이 方欲見楚王하되 恐其不悅이면 則將見秦王也라 遇는 合也라 按莊子書하니 有宋퇺者 禁攻寢兵하여 救世之戰하여 上說下敎하여 强★不舍라하여늘 疏云齊宣王時人이라하니 以事考之컨대 疑卽此人也니라


  이때 송경(宋툔)이 막 초왕(楚王)을 보고자 하였는데, 초왕(楚王)이 기뻐하지 않으면 장차 진왕(秦王)을 보려고 한 것이다. 우(遇)는 합함이다. 《장자(莊子)》 책을 상고해 보면, ‘송견(宋퇺)이라는 자가 공격을 금하고 병란(兵亂)을 잠재워서 세상의 싸움을 말리되, 위로 달래고 아래로 가르쳐서 억지로 떠들고 그만두지 않았다.’ 하였는데, 주소(注疏)에 이르기를 ‘제선왕(齊宣王) 때의 사람이다.’ 하였으니, 일로써 상고해 보면 바로 이 사람인 듯하다.


曰 軻也는 請無問其詳이요 願聞其指하노니 說之將如何오 曰 我將言其不利也하리라 曰 先生之志則大矣어니와 先生之號則不可하다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내 청컨대 그 상세함은 묻지 않겠고, 그 취지를 듣기 원하니, 달래기를 장차 어찌하려 하십니까?” “내 장차 그 불리(不利)함을 말하려 하네.” “선생(先生)의 뜻은 크거니와 선생(先生)의 구호(口號)는 불가(不可)합니다.”


徐氏曰 能於戰國擾攘之中에 而以罷兵息民爲說하니 其志可謂大矣라 然이나 以利爲名이면 則不可也라


  서씨(徐氏)가 말하였다. “능히 전국(戰國)의 분란(紛亂)한 가운데에 병란(兵亂)을 중지하여 백성을 휴식시킴을 가지고 말하였으니, 그 뜻이 크다고 할 만하다. 그러나 이익으로써 명분(名分)을 삼는다면 불가하다”


先生이 以利로 說秦楚之王이면 秦楚之王이 悅於利하여 以罷三軍之師하리니 是는 三軍之士樂罷而悅於利也라 爲人臣者懷利以事其君하며 爲人子者懷利以事其父하며 爲人弟者懷利以事其兄이면 是는 君臣父子兄弟 終去仁義하고 懷利以相接이니 然而不亡者未之有也니라


  선생(先生)이 이익을 가지고 진(秦)·초(楚)의 왕(王)을 달래면 진(秦)·초(楚)의 왕(王)이 이익을 좋아하여 삼군(三軍)의 군대를 파할 것이니, 이것은 삼군(三軍)의 군사들이 파함을 즐거워하여 이익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신하된 자가 이익을 생각하여 그 군주를 섬기며, 자식된 자가 이익을 생각하여 그 부모(父母)를 섬기며, 아우 된 자가 이익을 생각하여 그 형을 섬긴다면, 이는 군신(君臣)과 부자(父子)와 형제(兄弟)가 마침내 인의(仁義)를 버리고 이익을 생각하여 서로 대하는 것이니, 이렇게 하고서도 망하지 않는 자는 있지 않습니다.


先生이 以仁義로 說秦楚之王이면 秦楚之王이 悅於仁義하여 而罷三軍之師하리니 是는 三軍之士樂罷而悅於仁義也라 爲人臣者懷仁義以事其君하며 爲人子者懷仁義以其父하며 爲人弟者懷仁義以事其兄이면 是는 君臣父子兄弟去利하고 懷仁義以相接也니 然而不王者未之有也니 何必曰利리오


  선생이 인의(仁義)를 가지고 진(秦)·초(楚)의 왕(王)을 달래면 진(秦)·초(楚)의 왕(王)이 인의(仁義)를 좋아하여 삼군(三軍)의 군대를 파할 것이니, 이는 삼군(三軍)의 군사들이 파함을 즐거워하여 인의(仁義)를 기뻐하는 것입니다. 신하된 자가 인의(仁義)를 생각하여 그 군주를 섬기며, 자식된 자가 인의(仁義)를 생각하여 그 부모(父母)를 섬기며, 아우 된 자가 인의(仁義)를 생각하여 그 형을 섬긴다면, 이는 군신(君臣)과 부자(父子)와 형제(兄弟)가 이익을 버리고 인의(仁義)를 생각하여 서로 대하는 것이니, 이렇게 하고서도 왕(王)노릇하지 못하는 자는 있지 않으니, 하필 이익을 말씀합니까.”


此章은 言 休兵息民이 爲事則一이나 然이나 其心有義利之殊하여 而其效有興亡之異하니 學者所當深察而明辨之也니라


  이 장(章)은 병란(兵亂)을 그치게 하고, 백성을 쉬게 함이 일은 똑같으나, 그 마음에는 의(義)·이(利)의 다름이 있어서 그 효험에 흥(興)·망(亡)의 차이가 있음을 말씀하였으니, 배우는 자들이 마땅히 깊이 살피고 밝게 분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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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4>T

*맹자 ; 고자하 ; 제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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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5장(第五章)


孟子居鄒하실새 季任이 爲任處守러니 以幣交어늘 受之而不報하시고 處於平陸하실새 儲子爲相이러니 以幣交어늘 受之而不報하시다


  맹자(孟子)께서 추(鄒)나라에 거(居)하실 적에 계임(季任)이 임(任)나라의 처수(處守)[유수(留守)]이 되었었는데, 폐백을 가지고 사귀자, 폐백을 받기만 하고 답례(答禮)하지 않으셨고, 평륙(平陸)에 처(處)하실 적에 저자(儲子)가 정승이 되었었는데, 폐백을 가지고 사귀자, 폐백을 받기만 하고 답례(答禮)하지 않으셨다.


趙氏曰 季任은 任君之弟라 任君이 朝會於鄰國이어늘 季任이 爲之居守其國也라 儲子는 齊相也라하니라 不報者는 來見則當報之요 但以幣交則不必報也니라


  조씨(趙氏)가 말하기를 “계임(季任)은 임(任)나라 군주의 아우이니, 임(任)나라 군주가 이웃 나라에 조회(朝會)를 가자, 계임(季任)이 그를 위하여 그 나라에 거주하면서 지킨 것이다. 저자(儲子)는 제(齊)나라 정승이다.” 하였다. 답례(答禮)하지 않은 것은 상대방이 와서 만나보면 마땅히 답례(答禮)하는 것이요, 다만 폐백을 가지고 사귀면 굳이 답례(答禮)하지 않는 것이다.


他日에 由鄒之任하사 見季子하시고 由平陸之齊하사 不見儲子하신대 屋廬子喜曰 連이 得間矣로라


  타일(他日)에 추(鄒)나라로부터 임(任)나라에 가셔서는 계자(季子)를 만나보시고, 평륙(平陸)으로부터 제(齊)나라에 가셔서는 저자(儲子)를 만나보지 않으시자, 옥려자(屋廬子)가 기뻐하며 말하였다. “내가 좋은 틈을 얻었노라.”


屋廬子知孟子之處此에 必有義理라 故로 喜得其間隙而問之하니라


  옥려자(屋廬子)는 맹자(孟子)께서 이를 처리(處理)함에 반드시 의리(義理)가 있음을 알았다. 그러므로 그 틈을 얻어 물을 수 있음을 기뻐한 것이다.


問曰 夫子之任하사 見季子하시고 之齊하사 不見儲子하시니 爲其爲相與잇가


  묻기를 “부자(夫子)께서 임(任)나라에 가셔서는 계자(季子)를 만나보시고, 제(齊)나라에 가셔서는 저자(儲子)를 만나보지 않으셨으니, 저자(儲子)가 제(齊)나라의 정승이 되었기 때문입니까?” 하였다.


言 儲子는 但爲齊相하니 不若季子攝守君位라 故로 輕之邪아


  ‘저자(儲子)는 다만 제(齊)나라의 정승이 되었으니, 계자(季子)가 대리하여 군주의 지위를 지킨 것과는 같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그를 가벼이 여긴 것입니까?’ 하고 물은 것이다.


曰 非也라 書曰 享은 多儀하니 儀不及物이면 曰 不享이니 惟不役志于享이라하니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아니다.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향(享)은 예의(禮儀)를 중시(重視)하니 예의(禮儀)가 물건에 미치지 못하면 이를 불향(不享)이라 하니, 이는 향(享)에 마음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였으니,


書는 周書洛誥之篇이라 享은 奉上也라 儀는 禮也라 物은 幣也라 役은 用也라 言 雖享이나 而禮意不及其幣하면 則是不享矣니 以其不用志于享故也니라


  서(書)는 《주서(周書) 낙고편(洛誥篇)》이다. 향(享)은 윗사람을 받드는 것이다. 의(儀)는 예의(禮儀)이다. 물(物)은 폐백이다. 역(役)은 씀이다. 비록 향(享)을 했다 하더라도 예(禮)의 뜻이 그 폐백에 미치지 못하면 이것은 불향(不享)이니, 이는 그 향(享)에 마음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한 것이다.


爲其不成享也니라


  그 향(享)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孟子釋書意如此하시니라


  맹자(孟子)께서 《서경(書經)》의 뜻을 해석하기를 이와 같이 하신 것이다.


屋廬子悅이어늘 或問之한대 屋廬子曰 季子는 不得之鄒요 儲子는 得之平陸일새니라


  옥려자(屋廬子)가 기뻐하자, 혹자가 물으니, 옥려자(屋廬子)가 말하였다. “계자(季子)는 추(鄒)나라에 갈 수 없었고, 저자(儲子)는 평륙(平陸)에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徐氏曰 季子는 爲君居守하여 不得往他國以見孟子하니 則以幣交而禮意已備요 儲子는 爲齊相하여 可以至齊之境內로되 而不來見하니 則雖以幣交나 而禮意不及其物也니라


  서씨(徐氏)가 말하였다. “계자(季子)는 군주를 위하여 나라에 거주하면서 지키고 있었으므로, 타국(他國)에 가서 맹자(孟子)를 뵐 수 없었으니, 그렇다면 폐백만 가지고 사귀어도 예(禮)의 뜻이 이미 구비된 것이고, 저자(儲子)는 제(齊)나라의 정승이 되어, 제(齊)나라의 경내(境內)에 이를 수 있는데도 찾아와 뵙지 않았으니, 그렇다면 비록 폐백을 가지고 사귀었을지라도 예(禮)의 뜻이 그 물건에 미치지 못한 것이다.”




▣ 제6장(第六章)


淳于髡이 曰 先名實者는 爲人也요 後名實者는 自爲也니 夫子在三卿之中하사 名實이 未加於上下而去之하시니 仁者도 固如此乎잇가


  순우곤(淳于髡)이 말하였다. “명(名)[명성(名聲)]과 실(實)[사공(事功)]을 먼저 하는 자는 인민(人民)을 위하는 것이요, 명(名)과 실(實)을 뒤로 하는 자는 자신을 위하는 것이니, 부자(夫子)께서 삼경(三卿)의 가운데에 계셨으나, 명(名)과 실(實)이 상하(上下)에 가(加)해지지 못하고 떠나셨으니, 인자(仁者)도 진실로 이와 같습니까?”


名은 聲譽也요 實은 事功也라 言 以名實爲先而爲之者는 是有志於救民者也요 以名實爲後而不爲者는 是欲獨善其身者也라 名實未加於上下는 言 上未能正其君하고 下未能濟其民也라


  명(名)은 명성(名聲)과 명예(名譽)요, 실(實)은 사공(事功)이다. 명(名)과 실(實)을 우선으로 여겨서 이것을 하는 자는 이는 백성을 구제함에 뜻을 둔 자요, 명(名)과 실(實)을 뒤로 여겨서 하지 않는 자는 이는 홀로 그 몸을 선(善)하게 하고자 하는 자임을 말한 것이다. 명(名)과 실(實)이 상하(上下)에 가(加)해지지 못했다는 것은 위로는 군주를 바로잡지 못하고, 아래로는 백성을 구제하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


孟子曰 居下位하여 不以賢事不肖者는 伯夷也요 五就湯하며 五就桀者는 伊尹也요 不惡汚君하며 不辭小官者는 柳下惠也니 三子者不同道하나 其趨는 一也니 一者는 何也오 曰 仁也라 君子는 亦仁而已矣니 何必同이리오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낮은 지위에 거(居)하여 어짊으로써 어질지 못한 이를 섬기지 않은 자는 백이(伯夷)였고, 다섯 번 탕왕(湯王)을 찾아가며 다섯 번 걸왕(桀王)을 찾아간 자는 이윤(伊尹)이었고, 더러운 군주를 싫어하지 않으며, 작은 관직을 사양하지 않은 자는 유하혜(柳下惠)였으니, 이 세 분들은 길은 같지 않았으나, 그 나아감은 똑같았으니, 똑같다는 것은 무엇인까? 인(仁)이다. 군자(君子)는 또한 인(仁)할 뿐이니, 어찌 굳이 같을 것이 있겠는가.”


仁者는 無私心而合天理之謂라 楊氏曰 伊尹之就湯은 以三聘之勤也요 其就桀也는 湯進之也니 湯豈有伐桀之意哉리오 其進伊尹以事之也는 欲其悔過遷善而已니 伊尹이 旣就湯이면 則以湯之心爲心矣라 及其終也에 人歸之하고 天命之하니 不得已而伐之耳라 若湯이 初求伊尹에 卽有伐桀之心이어늘 而伊尹遂相之以伐桀이면 是는 以取天下爲心也니 以取天下爲心이면 豈聖人之心哉리오


  인(仁)은 사심(私心)이 없어 천리(天理)에 합함을 이른다.

  양씨(楊氏)가 말하였다. “이윤(伊尹)이 탕왕(湯王)에게 나아간 것은 탕왕(湯王)이 세 번 초빙한 부지런함 때문이었고, 걸왕(桀王)에게 나아간 것은 탕왕(湯王)이 그를 천거해서이니, 탕왕(湯王)이 어찌 걸왕(桀王)을 칠 뜻이 있었겠는가. 이윤(伊尹)을 천거하여 섬기게 한 것은 걸왕(桀王)이 과실(過失)을 뉘우치고 선(善)으로 옮겨가기를 바라서일 뿐이었다. 이윤(伊尹)이 이미 탕왕(湯王)에게 나아갔다면, 탕왕(湯王)의 마음을 자기의 마음으로 삼았을 것이다. 그러다가 그 종말에 미쳐서 사람들이 돌아오고 하늘이 명하여 부득이 걸왕(桀王)을 정벌했을 뿐이다. 만일 탕왕(湯王)이 처음 이윤(伊尹)을 구하고는 즉시 걸왕(桀王)을 칠 마음이 있었는데, 이윤(伊尹)이 마침내 그를 도와서 걸왕(桀王)을 정벌했다면 이것은 천하(天下)를 취함으로써 마음을 삼은 것이니, 천하를 취함으로써 마음을 삼았다면 이 어찌 성인(聖人)의 마음이겠는가.”


曰 魯繆公之時에 公儀子爲政하고 子柳子思爲臣이로되 魯之削也滋甚하니 若是乎賢者之無益於國也여


  순우곤(淳于髡)이 말하였다. “노(魯)나라 목공(繆公)의 때에는 공의자(公儀子)가 정사를 하였고, 자류(子柳)와 자사(子思)가 신하가 되었으되, 노(魯)나라의 침삭(侵削)됨이 더욱 심하였으니, 이와 같이 현자(賢者)가 나라에 유익함이 없습니다.”


公儀子는 名休니 爲魯相이라 子柳는 泄柳也라 削은 地見侵奪也라 髡譏孟子雖不去나 亦未必能有爲也니라


  공의자(公儀子)는 이름이 휴(休)이니, 노(魯)나라 정승이 되었었다. 자류(子柳)는 설류(泄柳)이다. 삭(削)은 땅이 침탈(侵奪)을 당하는 것이다. 순우곤(淳于髡)은 맹자(孟子)가 떠나지 않았더라도 또한 반드시 훌륭한 일을 함이 있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기롱한 것이다.


曰 虞不用百里奚而亡하고 秦穆公이 用之而覇하니 不用賢則亡이니 削을 何可得與리오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우(虞)나라는 백리해(百里奚)를 쓰지 않아 망하였고, 진목공(秦穆公)은 그를 등용하여 패자(覇者)가 되었으니, 현인(賢人)을 쓰지 않으면 나라가 망하니, 침삭(侵削)됨을 어찌 얻을 수 있겠는가.”


百里奚는 事見前篇하니라


  백리해(百里奚)는 일이 전편(前篇)[만장하(萬章下)]에 보인다.


曰 昔者에 王豹處於淇에 而河西善謳하며 綿駒處於高唐에 而齊右善歌하고 華周杞梁之妻善哭其夫에 而變國俗하니 有諸內면 必形諸外하나니 爲其事而無其功者를 髡이 未嘗覩之也로니 是故로 無賢者也니 有則髡必識之니이다


  순우곤(淳于髡)이 말하였다. “옛적에 왕표(王豹)가 기수(淇水)가에 처함에 하서(河西)지방이 동요를 잘하였고, 면구(綿駒)가 고당(高唐)에 처함에 제(齊)나라 서쪽 지방이 노래를 잘 불렀고, 화주(華周)와 기량(杞梁)의 아내가 그 남편의 상(喪)에 곡(哭)을 잘하자, 나라의 풍속이 변했습니다. 안에 가지고 있으면 반드시 밖에 나타나는 것이니, 그러한 일을 하고서 그러한 공효가 없는 자를 제가 일찍이 보지 못했습니다. 이러므로 이 세상에는 현자(賢者)가 없는 것이니, 있다면 제가 반드시 알 것입니다.”


王豹는 衛人이니 善謳하니라 淇는 水名이라 綿駒는 齊人이니 善歌하니라 高唐은 齊西邑이라 華周, 杞梁은 二人皆齊臣이니 戰死於莒어늘 其妻哭之哀하니 國俗이 化之하여 皆善哭하니라 髡이 以此로 譏孟子仕齊無功하니 未足爲賢也니라


  왕표(王豹)는 위(衛)나라 사람이니, 동요를 잘하였다. 기(淇)는 물 이름이다. 면구(綿★)는 제(齊)나라 사람이니, 노래를 잘 불렀다. 고당(高唐)은 제(齊)나라 서쪽에 있는 고을이다. 화주(華周)와 기량(杞梁)은 두 사람 모두 제(齊)나라 신하였는데, 거(莒)땅에서 전사(戰死)하자, 그 아내가 곡(哭)하기를 애통하게 하니, 국속(國俗)이 화(化)하여 모두 곡(哭)을 잘하게 되었다. 순우곤(淳于髡)은 이것을 가지고 맹자(孟子)가 제(齊)나라에 벼슬하였어도 공(功)이 없었으니, 족히 현자(賢者)라 할 수 없다고 기롱한 것이다.


曰 孔子爲魯司寇러시니 不用하고 從而祭에 燔肉이 不至어늘 不稅(脫)冕而行하시니 不知者는 以爲爲肉也라하고 其知者는 以爲爲無禮也라하니 乃孔子則欲以微罪行하사 不欲爲苟去하시니 君子之所爲를 衆人이 固不識也니라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공자(孔子)께서 노(魯)나라의 사구(司寇)가 되셨는데, <그 말씀이> 쓰여지지 않고, 따라서 제사함에 제사고기가 이르지 않자, 면류관을 벗지 않고 떠나시니, 공자(孔子)를 알지 못하는 자들은 고기 때문에 떠났다고 하고, 공자(孔子)를 아는 자들은 무례(無禮)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공자(孔子)께서는 하찮은 죄(罪)로써 구실을 삼아 떠나고자 하여, 구차히 떠나려고 하지 않으신 것이니, 군자(君子)가 하는 바를 중인(衆人)들은 진실로 알지 못하는 것이다.”


按史記컨대 孔子爲魯司寇하사 攝行相事하시니 齊人이 聞而懼하여 於是에 以女樂遺魯君한대 季桓子與魯君으로 往觀之하고 怠於政事어늘 子路曰 夫子可以行矣니이다 孔子曰 魯今且郊하니 如致쮨(燔)于大夫면 則吾猶可以止라하시더니 桓子卒受齊女樂하고 郊又不致쮨肉于大夫어늘 孔子遂行하시니라 孟子言 以爲爲肉者는 固不足道요 以爲爲無禮도 則亦未爲深知孔子者라 蓋聖人於父母之國에 不欲顯其君相之失이요 又不欲爲無故而苟去라 故로 不以女樂去而以쮨肉行하시니 其見幾明決而用意忠厚하시니 固非衆人所能識也라 然則孟子之所爲를 豈髡之所能識哉리오

○ 尹氏曰 淳于髡이 未嘗知仁하고 亦未嘗識賢也하니 宜乎其言若是로다


 《사기(史記)》를 상고해 보면, ‘공자(孔子)가 노(魯)나라 사구(司寇)가 되어 정승의 일을 대행(代行)하시자, 제(齊)나라 사람들이 이를 듣고 두려워하여, 이에 여악(女樂)[미녀(美女)의 악사(樂師)]을 노(魯)나라 군주에게 보내 주었다. 계환자(季桓子)가 노(魯)나라 군주와 더불어 가서 이를 구경하고는 정사에 태만하니, 자로(子路)가 「부자(夫子)께서 떠날 만하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노(魯)나라가 지금 장차 교제(郊祭)를 지낼 것이니, 만일 제사고기를 대부(大夫)에게 가져다준다면 내 오히려 떠나는 걸음을 멈출 수 있다.」 하셨다. 계환자(季桓子)가 마침내 제(齊)나라의 여악(女樂)을 받고, 교제(郊際)에 또 제사고기를 대부(大夫)에게 주지 않자, 공자(孔子)께서 마침내 떠나셨다.’ 하였다.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시기를 “고기 때문이라고 한 자들은 진실로 족히 말할 것도 못되고, 무례(無禮)하기 때문이라고 말한 자들도 또한 공자(孔子)를 깊이 안 것이 되지 못한다. 성인(聖人)이 부모(父母)의 나라에 대해서 그 군주와 재상의 과실(過失)을 드러내고자 하지 아니하고, 또 연고[이유]없이 구차히 떠나려고 하지 않으셨다. 그러므로 여악(女樂) 때문에 떠나지 아니하고, 제사고기를 구실 삼아 떠나셨으니, 그 기미(幾微)를 봄이 밝고 결단성이 있으며, 뜻을 씀이 충후(忠厚)하시니, 진실로 중인(衆人)들이 능히 알 수 있는 바가 아니다.”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맹자(孟子)께서 하신 바를 어찌 순우곤(淳于髡)이 알 수 있겠는가.

  ○ 윤씨(尹氏)가 말하였다. “순우곤(淳于髡)은 일찍이 인(仁)을 알지 못하였고, 또한 일찍이 현자(賢者)를 알지 못했으니, 그 말이 이와 같음이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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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 고자하 ; 제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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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7장(第七章)


孟子曰 五覇者는 三王之罪人也요 今之諸侯는 五覇之罪人也요 今之大夫는 今之諸侯之罪人也니라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오패(五覇)는 삼왕(三王)의 죄인이요, 지금의 제후(諸侯)들은 오패(五覇)의 죄인이요, 지금의 대부(大夫)들은 지금 제후(諸侯)의 죄인이다.”


趙氏曰 五覇는 齊桓, 晉文, 秦穆, 宋襄, 楚莊也요 三王은 夏禹, 商湯, 周文武也니라 丁氏曰 夏昆吾와 商大彭, 豕韋와 周齊桓, 晉文을 謂之五覇라하니라


  조씨(趙氏)가 말하였다. “오패(五覇)는 제(齊)나라의 환공(桓公)과 진(晉)나라의 문공(文公)과 진(秦)나라의 목공(穆公)과 송(宋)나라의 양공(襄公)과 초(楚)나라의 장왕(莊王)이다. 삼왕(三王)은 하(夏)나라의 우왕(禹王)과 상(商)나라의 탕왕(湯王)과 주(周)나라의 문왕(文王)·무왕(武王)이다.”

  정씨(丁氏)가 말하였다. “하(夏)나라의 곤오(昆吾)와 상(商)나라의 대팽(大彭)·시위(豕韋)와 주(周)나라의 제환공(齊桓公)과 진문공(晉文公)을 오패(五覇)라 이른다.”


天子適諸侯曰巡狩요 諸侯朝於天子曰述職이니 春省耕而補不足하며 秋省斂而助不給하나니 入其疆에 土地辟하며 田野治하며 養老尊賢하며 俊傑在位하면 則有慶이니 慶以地하고 入其疆에 土地荒蕪하며 遺老失賢하며 掊克在位하면 則有讓이니 一不朝則貶其爵하고 再不朝則削其地하고 三不朝則六師로 移之라 是故로 天子는 討而不伐하고 諸侯는 伐而不討하나니 五覇者는 樓諸侯하여 以伐諸侯者也라 故로 曰 五覇者는 三王之罪人也라하노라


  천자(天子)가 제후국(諸侯國)에 가는 것을 순수(巡狩)라 하고, 제후(諸侯)가 천자(天子)에게 조회(朝會)가는 것을 술직(述職)이라 하니, 봄에는 교외에 나가 경작하는 상태를 살펴 부족한 자를 보조해주고, 가을에는 수확하는 상태를 살펴 부족한 자를 보조해 준다. 그 경내에 들어감에 토지가 잘 개척되었으며, 전야(田野)가 잘 다스려졌으며, 노인을 봉양하고 어진이를 높이며, 준걸(俊傑)스러운 자가 지위에 있으면 상(賞)이 있으니, 상(賞)은 땅으로 주고, 그 경내에 들어감에 토지가 황폐하며, 노인을 버리고 어진이를 잃으며, 부극(掊克)하는 자들이 지위에 있으면 꾸짖음이 있으니, 한 번 조회(朝會)오지 않으면 그 관작(官爵)을 폄(貶)하고, 두 번 조회(朝會)오지 않으면 그 땅을 떼어내고, 세 번 조회(朝會)오지 않으면 육군(六軍)을 동원하여 군주를 바꿔놓는다. 그러므로 천자(天子)는 죄를 성토(聲討)만 하고 정벌(征伐)하지 않으며, 제후(諸侯)는 정벌(征伐)하기만 하고, 성토(聲討)하지 않는다. 그런데 오패(五覇)는 제후(諸侯)를 이끌어 제후(諸侯)를 정벌하였다. 그러므로 내가 오패(五覇)는 삼왕(三王)의 죄인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慶은 賞也니 益其地以賞之也라 掊克은 聚斂也라 讓은 責也라 移之者는 誅其人而變置之也라 討者는 出命以討其罪하고 而使方伯連帥(수)으로 帥(솔)諸侯以伐之也라 伐者는 奉天子之命하여 聲其罪而伐之也라 樓는 牽也라 五覇牽諸侯하여 以伐諸侯하고 不用天子之命也라 自入其疆으로 至則有讓은 言巡狩之事요 自一不朝로 至六師移之는 言述職之事하니라


  경(慶)은 상(賞)이니, 그 땅을 보태어 상(賞)주는 것이다. 부극(掊克)은 세금을 많이 거두는 것이다. 양(讓)은 꾸짖음이다. 이지(移之)는 그 군주를 베고 다른 사람으로 바꾸어 두는 것이다. 토(討)는 명령을 내어 그 죄를 성토(聲討)하고, 방백(方伯)과 연수(連帥)로 하여금 제후(諸侯)를 거느리고 정벌하게 하는 것이다. 벌(伐)은 천자(天子)의 명령을 받들어 그 죄를 성토(聲討)하고 정벌하는 것이다. 누(樓)는 끎이다. 오패(五覇)는 제후(諸侯)를 이끌어 제후(諸侯)를 정벌하였고, 천자(天子)의 명(命)을 쓰지 않았다. 입기강(入其疆)으로부터 즉유양(則有讓)까지는 순수(巡狩)의 일을 말하였고, 일부조(一不朝)로부터 육사이지(六師移之)까지는 술직(述職)의 일을 말하였다.


五覇에 桓公이 爲盛하니 葵丘之會에 諸侯束牲載書而不歃血하고 初命曰 誅不孝하며 無易樹子하며 無以妾爲妻라하고 再命曰 尊賢育才하여 以彰有德이라하고 三命曰 敬老慈幼하며 無忘賓旅라하고 四命曰 士無世官하며 官事無攝하며 取士必得하며 無專殺大夫라하고 五命曰 無曲防하며 無曷糴하며 無有封而不告라하고 曰 凡我同盟之人은 旣盟之後에 言歸于好라하니 今之諸侯는 皆犯此五禁하나니 故로 曰 今之諸侯는 五覇之罪人也라하노라


  오패(五覇) 중에 환공(桓公)이 가장 성(盛)하였는데, 규구(葵丘)의 회맹(會盟)에 제후(諸侯)들이 희생(犧牲)을 묶어놓은 다음 그 위에 책을 올려놓고서, 피를 마시지 않고 첫 번째 명령하기를 ‘불효(不孝)하는 자를 처벌하며, 세워 놓은 아들[세자(世子)]을 바꾸지 말며, 첩(妾)을 아내로 삼지 말라.’ 하였고, 두 번째 명령하기를 ‘어진이를 높이고 인재를 길러서 덕(德)이 있는 이를 표창하라.’ 하였고, 세 번째 명령하기를 ‘노인을 공경하고 어린이를 사랑하며, 손님과 나그네를 잊지 말라.’ 하였고, 네 번째 명령하기를 ‘선비는 대대로 관직을 주지 말며, 관청의 일을 겸직시키지 말며, 선비를 취함에 반드시 얻으며, 마음대로 대부(大夫)를 죽이지 말라.’ 하였고, 다섯 번째 명령하기를 ‘제방을 굽게 쌓지 말며, 쌀을 수입해 가는 것을 막지 말며, 대부(大夫)들을 봉해 주고서 고(告)하지 않는 일이 없도록 하라.’ 하고, 말하기를 ‘무릇 우리 동맹(同盟)한 사람들은 이미 맹약(盟約)한 뒤에 좋은 데로 돌아가도록 하자.’ 하였으니, 지금 제후(諸侯)들은 모두 이 다섯 가지 금지하는 것을 범한다. 그러므로 내가 지금 제후(諸侯)들은 오패(五覇)의 죄인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按春秋傳컨대 僖公九年葵丘之會에 陳牲而不殺하고 讀書加於牲上//주:독서가어생상하여 壹明天子之禁하니라 樹는 立也니 已立世子면 不得擅易이라 初命三事는 所以修身正家之要也라 賓은 賓客也요 旅는 行旅也니 皆當有以待之요 不可忽忘也라 士世祿而不世官은 恐其未必賢也라 官事無攝은 當廣求賢才以充之요 不可以闕人廢事也라 取士必得은 必得其人也라 無專殺大夫는 有罪則請命于天子而後에 殺之也라 無曲防은 不得曲爲隄防하여 壅泉激水하여 以專小利, 病隣國也라 無遏糴은 隣國凶荒이어든 不得閉糴也라 無有封而不告者는 不得專封國邑而不告天子也라


 《춘추전(春秋傳)》을 살펴보면, ‘희공(僖公) 9년 규구(葵丘)의 회맹(會盟)에 희생(犧牲)을 진열해 놓기만 하고 죽이지 않고서 책을 읽고 희생 위에 올려놓아 천자(天子)의 금지하는 명령을 한결같이 밝혔다.’ 하였다. 수(樹)는 세움이니, 이미 세자(世子)를 세웠으면 마음대로 바꾸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첫 번째 명령한 세 가지 일은 몸을 닦고 집안을 바로잡는 바의 요점이다. 빈(賓)은 빈객(賓客)이요, 여(旅)는 행려(行旅)이니, 모두 마땅히 이들을 대접함이 있어야 하고, 경홀히 하고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선비는 대대로 녹(祿)은 주되, 대대로 관직을 주지 않는 것은 반드시 어질지는 못할까 두려워해서이다. 관청의 일을 겸직시키지 말라는 것은 마땅히 현재(賢才)를 널리 구하여 충원시킬 것이요, 사람이 없다고 하여 일을 폐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선비를 취함에 반드시 얻는다는 것은 반드시 그 적임자를 얻는 것이다. 마음대로 대부(大夫)를 죽이지 말라는 것은 죄가 있으면 반드시 천자(天子)에게 명(命)을 청한 뒤에 죽이는 것이다. 제방을 굽게 쌓지 말라는 것은 굽게 제방을 만들어서, 물을 막고 물을 격(激)하게 하여 작은 이익을 오로지 하고 이웃나라에 피해를 끼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쌀을 수입해 가는 것을 막지 말라는 것은 이웃나라에 흉년이 들거든 쌀을 수입해 가는 것을 막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봉해주고서 고(告)하지 않음이 없도록 하라는 것은 마음대로 국읍(國邑)을 봉해주고 천자(天子)에게 아뢰지 않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長君之惡은 其罪小하고 逢君之惡은 其罪大하니 今之大夫는 皆逢君之惡이라 故로 曰 今之大夫는 今之諸侯之罪人也라하노라


  군주(君主)의 악(惡)을 조장(助長)함은 그 죄가 작고, 군주(君主)의 악(惡)을 미리 맞아줌은 그 죄가 크니, 지금 대부(大夫)들은 모두 군주의 악(惡)을 미리 맞아준다. 그러므로 내가 지금 대부(大夫)들은 지금 제후(諸侯)의 죄인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君有過어든 不能諫하고 又順之者는 長君之惡也요 君之過未萌에 而先意導之者는 逢君之惡也니라

○ 林氏曰 邵子有言하되 治春秋者不先治五覇之功罪면 則事無統理而不得聖人之心이라 春秋之間에 有功者未有大於五覇요 有過者亦未有大於五覇라 故로 五覇者는 功之首요 罪之魁也라하니 孟子此章之義其亦若此也與인저 然이나 五覇得罪於三王과 今之諸侯得罪於五覇는 皆出於異世라 故로 得以逃其罪어니와 至於今之大夫하여는 宜得罪於今之諸侯하니 則同時矣로되 而諸侯非惟莫之罪也라 乃反以爲良臣而厚禮之하고 不以爲罪而反以爲功하니 何其謬哉오


  군주가 과실(過失)이 있는데 간(諫)하지 못하고, 또 그대로 순종하는 것은 군주의 악(惡)을 조장(助長)하는 것이요, 군주의 과실(過失)이 아직 싹트지도 않았는데, 뜻에 앞서서 인도함은 군주의 악(惡)을 미리 맞아주는 것이다.

  ○ 임씨(林氏)가 말하였다. “소자(邵子)가 말씀하기를 ‘《춘추(春秋)》를 공부하는 자가 먼저 오패(五覇)의 공(功)과 죄(罪)를 따지지 않는다면, 일이 통리(統理)[조리(條理)]이 없어서 성인(聖人)의 마음을 얻지 못할 것이다. 춘추시대(春秋時代)의 사이에 공(功)이 있는 자는 오패(五覇)보다 더 큰 이가 없고, 과실이 있는 자도 또한 오패(五覇)보다 더 큰 이가 있지 않다. 그러므로 오패(五覇)들은 공(功)의 으뜸이요, 죄(罪)의 괴수이다.’ 하였으니, 《맹자(孟子)》의 이 장(章)의 뜻도 이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오패(五覇)는 삼왕(三王)에게 죄를 얻었고, 지금의 제후(諸侯)들은 오패(五覇)에게 죄를 얻었는데, 이들은 모두 다른 세대에 나왔기 때문에 그 죄를 도피할 수 있거니와, 지금의 대부(大夫)에 이르러서는 마땅히 지금의 제후(諸侯)에게 죄를 얻었으니, 그렇다면 동시대(同時代)인데도 제후(諸侯)들은 비단 이들을 죄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마침내 도리어 훌륭한 신하라고 여겨 후하게 예우하며, 죄로 여기지 않고 도리어 공(功)으로 여기니, 어찌 그리도 잘못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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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 고자하 ; 제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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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8장(第八章)


魯欲使愼子로 爲將軍이러니


  노(魯)나라가 신자(愼子)로 장군(將軍)을 삼고자 하였다.


愼子는 魯臣이라


  신자(愼子)는 노(魯)나라 신하이다.


孟子曰 不敎民而用之를 謂之殃民이니 殃民者는 不容於堯舜之世니라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백성을 가르치지 않고 전쟁에 쓰는 것을 백성에게 재앙을 입힌다고 이르니, 백성에게 재앙을 입히는 자는 요순(堯舜)의 세상에는 용납되지 못하였다.”


敎民者는 敎之禮義하여 使知入事父兄하고 出事長上也라 用之는 使之戰也라


  백성을 가르친다는 것은 백성들에게 예의(禮義)를 가르쳐서 들어가서는 부형(父兄)을 섬기고 나와서는 장상(長上)을 섬길 줄을 알게 하는 것이다. 용지(用之)는 그들로 하여금 싸우게 하는 것이다.


一戰勝齊하여 遂有南陽이라도 然且不可하니라


  한 번 싸워 제(齊)나라를 이겨서 마침내 남양(南陽)을 소유한다 하더라도 이것도 불가(不可)하다.”


是時에 魯蓋欲使愼子伐齊하여 取南陽也라 故로 孟子言 就使愼子善戰하여 有功如此라도 且猶不可라하시니라


  이 때에 노(魯)나라가 아마도 신자(愼子)로 하여금 제(齊)나라를 정벌하게 하여 남양(南陽)을 취하고자 한 듯하다, 그러므로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시기를 “가령[취사(就使)]신자(愼子)가 싸움을 잘하여 공(功)을 이와 같이 세운다 하더라도 오히려 불가(不可)하다.”고 하신 것이다.


愼子勃然不悅曰 此則滑釐所不識也로이다.


  신자(愼子)가 발연(勃然)히 기뻐하지 않으며 말하였다. “이것은 제[골리(滑釐)]이 알지 못하는 바입니다.”


滑釐는 愼子名이라


  골리(滑釐)는 신자(愼子)의 이름이다.


曰 吾明告子하리라 天子之地方千里니 不千里면 不足以待諸侯요 諸侯之地方百里니 不百里면 不足以守宗廟之典籍이니라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내 분명히 그대에게 말하겠다. 천자(天子)의 땅은 방(方) 천리(千里)이니, 천리(千里)가 못되면 제후(諸侯)를 대접할 수 없고, 제후(諸侯)의 땅은 방(方) 백리(百里)이니, 백리(百里)가 못되면 종묘(宗廟)의 전적(典籍)을 지킬 수 없다.”


待諸侯는 謂待其朝覲聘問之禮라 宗廟典籍은 祭祀會同之常制也라


  제후(諸侯)를 대접한다는 것은 조회(朝會)하고 빙문(聘問)하는 예(禮)에 대접함을 이른다. 종묘(宗廟)의 전적(典籍)은 제사(祭祀)하고 회동(會同)하는 떳떳한 제도이다.


周公之封於魯에 爲方百里也니 地非不足이로되 而儉於百里하며 太公之封於齊也에 亦爲方百里也니 地非不足也로되 而儉於百里하니라


  주공(周公)을 노(魯)나라에 봉할 적에 방(方) 백리(百里)였으니, 땅이 부족하지 않았으되 백리(百里)에 제한하였고, 태공(太公)을 제(齊)나라에 봉할 적에 또한 방(方) 백리(百里)였으니, 땅이 부족하지 않았으되, 백리(百里)에 제한하였다.


二公이 有大勳勞於天下로되 而其封國이 不過百里하니라 儉은 止而不過之意也라


  두 공(公)은 천하(天下)에 큰 공로가 있었는데도 그 봉해준 나라가 백리(百里)에 불과하였다. 검(儉)은 그치고 지나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今魯는 方百里者五니 子以爲 有王者作인댄 則魯在所損乎아 在所益乎아


  지금 노(魯)나라는 방(方) 백리(百里)되는 것이 다섯이니, 그대가 생각하건대, 왕자(王者)가 나온다면 노(魯)나라는 덜어내야 할 쪽에 있겠는까? 보태주어야 할 쪽에 있겠는까?


魯地之大는 皆幷呑小國而得之니 有王者作이면 則必在所損矣리라


  노(魯)나라 땅이 커진 것은 모두 작은 나라들을 병탄(幷呑)하여 얻은 것이니, 왕자(王者)가 나온다면 반드시 덜어내야 할 쪽에 있을 것이다.


徒取諸彼하여 以與此라도 然且仁者不爲어든 況於殺人以求之乎아


  한갓 저기에서 취하여 여기에 준다 하더라도 이것도 인자(仁者)는 하지 않는데, 하물며 사람을 죽이면서 구한단 말인가.


徒는 空也니 言不殺人而取之也라


  도(徒)는 한갓이니, 사람을 죽이지 않고 취함을 말한다.


君子之事君也는 務引其君以當道하여 志於仁而已니라


  군자(君子)가 군주를 섬김은 그 군주를 이끌어 도(道)에 합하게 하여 인(仁)에 뜻하게 하기를 힘쓸 뿐이다.”


當道는 謂事合於理요 志仁은 謂心在於仁이라


  당도(當道)는 일이 이치에 합함을 이르고, 지인(志仁)은 마음이 인(仁)에 있음을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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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 고자하 ; 제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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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9장(第九章)


孟子曰 今之事君者曰 我能爲君하여 辟土地하며 充府庫라하면 今之所謂良臣이요 古之所謂民賊也라 君不鄕(向)道하여 不志於仁이어든 而求富之하니 是는 富桀也니라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지금 군주를 섬기는 자들이 말하기를 ‘내 능히 군주를 위하여 토지(土地)를 개간하며, 부고(府庫)를 충실히 할 수 있다.’ 하니, 지금의 이른바 훌륭한 신하요, 옛날의 이른바 백성의 적(賊)이라는 것이다. 군주가 도(道)를 향하지 않아 인(仁)에 뜻을 두지 않는데도 그를 부(富)하게 하기를 구하니, 이것은 걸왕(桀王)을 부(富)하게 하는 것이다.”


辟은 開墾也라


  벽(辟)은 개간(開墾)함이다.


我能爲君하여 約與國하여 戰必克이라하나니 今之所謂良臣이요 古之所謂民賊也라 君不鄕道하여 不志於仁이어든 而求爲之强戰하니 是는 輔桀也니라


  ‘내 능히 군주를 위하여 여국(與國)[동맹국]과 맹약(盟約)하여 전쟁을 하면 반드시 승리한다.’ 하니, 지금의 이른바 훌륭한 신하요, 옛날의 이른바 백성의 적(賊)이라는 것이다. 군주가 도(道)를 향하지 않아 인(仁)에 뜻을 두지 않는데도 그를 위하여 억지로 전쟁을 하기를 구하니, 이것은 걸왕(桀王)을 도와주는 것이다.


約은 要結也라 與國은 和好相與之國也라


  약(約)은 맹약(盟約)을 맺는 것이다. 여국(與國)은 우호 하여 서로 친한 나라이다.


由今之道하여 無變今之俗이면 雖與之天下라도 不能一朝居也리라


  지금의 도(道)를 따라 지금의 풍속을 바꿈이 없다면, 비록 천하를 준다 하더라도 하루아침도 차지할 수 없을 것이다.”


言必爭奪而至於危亡也라


  반드시 쟁탈(爭奪)하여 위망(危亡)함에 이름을 말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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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 고자하 ; 제1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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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0장(第十章)


白圭曰 吾欲二十而取一하노니 何如하니잇고


  백규(白圭)가 말하였다. “나는 <조세(租稅)로> 20분의 1을 취하고자 하는데 어떻습니까?”


白圭는 名丹이니 周人也라 欲更稅法하여 二十分而取其一分하니라 林氏曰 按史記컨대 白圭能薄飮食하고 忍嗜欲하여 與童僕同苦樂하며 樂觀時變하여 人棄我取하고 人取我與하여 以此居積(자)致富하니 其爲此論은 蓋欲以其術로 施之國家也니라


  백규(白圭)는 이름이 단(丹)이니, 주(周)나라 사람이다. 세법(稅法)을 변경하여 20분의 1분을 취하고자 한 것이다. 임씨(林氏)가 말하였다. “《사기(史記)》를 상고해 보면, ‘백규(白圭)는 음식을 박하게 하고, 기욕(嗜欲)을 참아서 종들과 고락(苦樂)을 함께 하였으며, 때의 변함을 보기를 좋아하여 남들이 버리면 자신은 취하고, 남들이 취하면 자신은 주어서 이것으로 물건을 쌓아 치부(致富)하였다.’ 하였으니, 그가 이러한 논(論)을 한 것은 이 방법을 가지고 국가에 시행하고자 한 듯하다.”


孟子曰 子之道는 貉道也로다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그대의 방법은 오랑캐의 도(道)이다.”


貉은 北方夷狄之國名也라


  맥(貉)은 북방(北方) 이적(夷狄)의 나라 이름이다.


萬室之國에 一人陶면 則可乎아 曰 不可하니 器不足用也니이다


  “만실(萬室)의 나라에 한 사람이 질그릇을 구우면 되겠는까?” “불가(不可)하니, 그릇을 충분히 쓸 수 없습니다.”


孟子設喩以詰圭에 而圭亦知其不可也라


  맹자(孟子)께서 비유를 베풀어 백규(白圭)를 힐난하시자, 백규(白圭) 역시 그 불가(不可)함을 안 것이다.


曰 夫貉은 五穀이 不生하고 惟黍生之하나니 無城郭宮室宗廟祭祀之禮하며 無諸侯幣帛饔飱하며 無百官有司라 故로 二十에 取一而足也니라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맥국(貉國)은 오곡(五穀)이 자라지 않고, 오직 기장만이 자라니, 성곽(城郭)과 궁실(宮室)과 종묘(宗廟)와 제사(祭祀)의 예(禮)가 없으며, 제후(諸侯)들과 폐백을 교환하고 음식을 대접하는 일이 없으며, 백관(百官)과 유사(有司)가 없다. 그러므로 20분의 1만 취하여도 족한 것이다.”


北方은 地寒하여 不生五穀이요 黍早熟이라 故로 生之라 饔飱은 以飮食饋客之禮也라


  북방(北方)은 땅이 한랭(寒冷)하여 오곡(五穀)이 자라지 못하고, 기장은 일찍 익기 때문에 생산된다. 옹손(饔飱)은 음식을 가지고 손님에게 먹이는 예(禮)이다.


今에 居中國하여 去人倫하며 無君子면 如之何其可也리오


  지금 중국(中國)에 거주하면서 인륜(人倫)을 버리며 군자(君子)가 없다면 어찌 그 가(可)하겠는가.


無君臣祭祀交際之禮면 是去人倫이요 無百官有司면 是無君子니라


  군신(君臣)과 제사(祭祀)와 교제(交際)하는 예(禮)가 없다면 이는 인륜(人倫)을 버리는 것이요, 백관(百官)과 유사(有司)가 없다면 이는 군자(君子)가 없는 것이다.


陶以寡라도 且不可以爲國이온 況無君子乎아


  질그릇이 너무 적더라도 나라를 다스릴 수 없는데, 하물며 군자(君子)가 없음에랴!


因其辭以折之하시니라


  그의 말을 인하여 꺾으신 것이다.


欲輕之於堯舜之道者는 大貉에 小貉也요 欲重之於堯舜之道者는 大桀에 小桀也니라


  <세금을> 요순(堯舜)의 도(道)보다 경감하고자 하는 자는 큰 맥국(貉國)에 작은 맥국(貉國)이요, 요순(堯舜)의 도(道)보다 무겁게 하고자 하는 자는 큰 걸왕(桀王)에 작은 걸왕(桀王)이다.”


什一而稅는 堯舜之道也니 多則桀이요 寡則貉이니 今欲輕重之면 則是小貉小桀而已라


  10분의 1의 세법(稅法)은 요순(堯舜)의 도(道)이니, 이보다 많으면 걸왕(桀王)이요, 적으면 오랑캐의 도(道)이다. 이제 이보다 경감하거나 무겁게 하고자 한다면 이것은 작은 맥국(貉國)과 작은 걸왕(桀王)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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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 고자하 ; 제1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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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1장(第十一章)


白圭曰 丹之治水也 愈於禹호이다


  백규(白圭)가 말하였다. “제[단(丹)]이 물을 다스림이 우왕(禹王)보다 낫습니다.”


趙氏曰 當時諸侯에 有小水어늘 白圭爲之築堤하여 壅而注之他國하니라


  조씨(趙氏)가 말하였다. “당시 제후국(諸侯國)에 작은 홍수(洪水)가 있었는데, 백규(白圭)가 이를 위하여 제방을 쌓아 물을 막아 타국(他國)으로 주입시켰다.”


孟子曰 子過矣로다 禹之治水는 水之道也니라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그대가 지나치다. 우왕(禹王)이 물을 다스림은 물의 길을 따르신 것이다.”


順水之性也라


  물의 성질을 순(順)히 한 것이다.


是故로 禹는 以四海爲壑이어시늘 今에 吾子는 以★國爲壑이로다


  이 때문에 우왕(禹王)은 사해(四海)를 학(壑)으로 삼으셨는데, 지금 그대는 이웃나라를 학(壑)으로 삼았도다.


壑은 受水處也라


  학(壑)은 물을 받아들이는 곳이다.


水逆行을 謂之★水니 ★水者는 洪水也라 仁人之所惡也니 吾子過矣로다


  물이 역행(逆行)함을 홍수(★水)라 이르니, 홍수(★水)는 홍수(洪水)이다. 인인(仁人)이 미워하는 것이니, 그대가 지나치다.”


水逆行者는 下流壅塞이라 故로 水逆流니 今乃壅水以害人이면 則與洪水之災無異矣니라


  물이 역행(逆行)한다는 것은 하류(下流)가 막혔기 때문에 물이 역류(逆流)하는 것이니, 지금 마침내 물을 막아서 남을 해친다면 홍수(洪水)의 재앙과 다를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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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 고자하 ; 제1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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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2장(第十二章)


孟子曰 君子不亮이면 惡(오)乎執이리오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군자(君子)가 성실하지 못하다면 어떻게 무슨 일을 잡을 수 있겠는가.”


亮은 信也니 與諒同이라 惡乎執은 言 凡事苟且하여 無所執持也라


  양(亮)은 신(信)이니, 양(諒)과 같다. 오호집(惡乎執)은 모든 일이 구차(苟且)하여 잡을 바가 없음을 말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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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 고자하 ; 제1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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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3장(第十三章)


魯欲使樂正子로 爲政이러니 孟子曰 吾聞之하고 喜而不寐호라


  노(魯)나라에서 악정자(樂正子)로 하여금 정사를 다스리게 하려고 하였다.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내 이 말을 듣고 기뻐서 잠을 이루지 못했노라.”


喜其道之得行이라


  그 도(道)가 행해질 수 있음을 기뻐하신 것이다.


公孫丑曰 樂正子는 强乎잇가 曰 否라 有知慮乎잇가 曰 否라 多聞識乎잇가 曰 否라


  공손추(公孫丑)가 말하였다. “악정자(樂正子)는 강합니까?” “아니다.” “지식과 생각이 있습니까?” “아니다.” “문견(聞見)과 식견(識見)이 많습니까?” “아니다.”


此三者는 皆當世之所尙이로되 而樂正子之所短이라 故로 丑疑而歷問之하니라


  이 세 가지는 모두 당시에 숭상하는 바였으나, 악정자(樂正子)에게는 부족한 점이었다. 그러므로 공손추(公孫丑)가 의심하여 일일이 물은 것이다.


然則奚爲喜而不寐시니잇고


  “그렇다면 어찌하여 기뻐서 잠을 이루지 못하셨습니까?”


丑問也라


  공손추(公孫丑)가 물은 것이다.


曰 其爲人也好善이니라


  “그 사람됨이 선(善)을 좋아한다.”


好善이 足乎잇가


  “선(善)을 좋아함이 족합니까?”


丑問也라


  이는 공손추(公孫丑)가 물은 것이다.


曰 好善이 優於天下어든 而況魯國乎아


  “선(善)을 좋아함은 천하를 다스리는데도 충분하거늘, 하물며 노(魯)나라에 있어서랴!”


優는 有餘裕也니 言雖治天下라도 尙有餘力也라


  우(優)는 여유가 있는 것이니, 비록 천하를 다스리더라도 오히려 여력(餘力)이 있음을 말씀한 것이다.


夫苟好善이면 則四海之內가 皆將輕千理而來하여 告之以善하고


  만일 선(善)을 좋아하면 사해(四海)의 안에서 장차 천리(千里)를 가벼이 여기고 찾아와 선(善)을 말해주고,


輕은 易也니 言不以千里爲難也라


  경(輕)은 쉬움이니, 천리(千里)를 어렵지 않게 여김을 말한 것이다.


夫苟不好善이면 則人將曰 訑訑를 予旣已知之矣로라하리니 訑訑之聲音顔色이 距人於千里之外하나니 士止於千里之外하면 則讒諂面諛之人이 至矣리니 與讒諂面諛之人居면 國欲治인들 可得乎아


  만일 선(善)을 좋아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장차 말하기를 ‘자만(自慢)해 함을 내 이미 안다.’ 할 것이니, 자만(自慢)해하는 음성과 얼굴빛이 사람을 천리(千里) 밖에서 막는다. 그리하여 선비가 천리(千里) 밖에서 발걸음을 멈춘다면 아첨하고 비위맞추는 사람들이 올 것이니, 아첨하고 비위맞추는 사람들과 더불어 거처한다면 나라가 다스려지기를 바란들 될 수 있겠는가.”


訑訑는 自足其智하여 不嗜善言之貌라 君子小人이 迭爲消長이니 直諒多聞之士遠이면 則讒諂面諛之人至는 理勢然也니라

○ 此章은 言 爲政이 不在於用一己之長이요 而貴於有以來天下之善이니라


  이이(訑訑)는 자기의 지혜를 스스로 만족히 여겨서 선언(善言)을 좋아하지 않는 모양이다. 군자(君子)와 소인(小人)은 교대로 사라지고 자라나니, 정직하고 성실하고 문견(聞見)이 많은 선비가 멀어지면 아첨하고 비위맞추는 사람이 오는 것은 이치와 형세의 당연함이다.

  ○ 이 장(章)은 정사를 함이 한낱 자기의 장점을 쓰는 데 있지 않고, 천하의 선인(善人)을 오게 함을 귀히 여김을 말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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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 고자하 ; 제1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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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4장(第十四章)


陳子曰 古之君子何如則仕니잇고 孟子曰 所就三이요 所去三이니라


  진자(陳子)가 말하였다. “옛날 군자(君子)들은 어떠하면 벼슬하였습니까?”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나아간 것이 세 가지요, 떠난 것이 세 가지였다.”


其目在下하니라


  그 조목이 아래에 있다.


迎之致敬以有禮하며 言將行其言也면 則就之하고 禮貌未衰나 言弗行也면 則去之니라


  맞이하기를 공경을 지극히 하고 예(禮)가 있게 하며, 말하기를 장차 그 말씀을 행한다고 하면 나아가고, 예모(禮貌)가 쇠하지 않았더라도 말이 시행되지 않으면 떠나는 것이다.


所謂見行可之仕//주:견행가지사이니 若孔子於季桓子是也라 受女樂而朝면 則去之矣시니라


  이른바 견행가(見行可)의 벼슬이라는 것이니, 공자(孔子)께서 계환자(季桓子)에 대해서와 같은 경우가 이것이다. 미녀악사(美女樂師)를 받아들이고 조회하지 않았은즉 떠나시는 것이다.


其次는 雖未行其言也나 迎之致敬以有禮면 則就之하고 禮貌衰면 則去之니라


  그 다음은 비록 그 말씀을 시행하지 않으나, 맞이하기를 공경을 지극히 하고 예(禮)가 있게 하면 나아가고, 예모(禮貌)가 쇠하면 떠나는 것이다.


所謂際可之仕니 若孔子於衛靈公是也라 故로 與公遊於囿에 公이 仰視蜚座而後去之하시니라


  이른바 제가(際可)의 벼슬이란 것이니, 공자(孔子)께서 위령공(衛靈公)에 대해서와 같은 경우가 이것이다. 그러므로 공(公)과 더불어 동산에서 놀 때에 공(公)이 나는 기러기를 우러러본 뒤에 떠나신 것이다.


其下는 朝不食하고 夕不食하여 飢餓不能出門戶어든 君聞之하고 曰 吾大者론 不能行其道하고 又不能從其言也하여 使飢餓於我土地를 吾恥之라하고 周之인댄 亦可受也어니와 免死而已矣니라


  그 아래로는 아침도 먹지 못하고 저녁도 먹지 못하여, 굶주려 문호(門戶)를 나갈 수 없거든, 군주가 이 말을 듣고 말하기를 ‘내 크게는 그 도(道)를 행하지 못하고, 또 그 말을 따르지 못해서, 내 땅에서 굶주리게 하는 것을 내 부끄러워한다.’ 하고 구원해 준다면 또한 그것을 받을 수 있거니와, 죽음을 면할 뿐이다.”


所謂公養之仕也라 君之於民에 固有周之之義요 況此又有悔過之言하니 所以可受라 然이나 未至於飢餓不能出門戶면 則猶不受也라 其曰免死而已라하니 則其所受亦有節矣니라


  이른바 공양(公養)의 벼슬이란 것이다. 군주가 백성에 대해서 진실로 구휼해 주는 의(義)[의무]이 있으며, 더구나 이 또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는 말이 있으니, 이 때문에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굶주려 문호(門戶)를 나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지 않는다면 오히려 받을 수 없는 것이요, 그 죽음을 면할 뿐이라고 말하였으니, 그렇다면 받는 것도 또한 절제(節制)[제한]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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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 고자하 ; 제1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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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5장(第十五章)


孟子曰 舜은 發於畎畝之中하시고 傅說은 擧於版築之間하고 膠鬲은 擧於魚鹽之中하고 管夷吾는 擧於士하고 孫叔敖는 擧於海하고 百里奚는 擧於市하니라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순(舜)임금은 견묘(畎畝)의 가운데에서 발신(發身)하셨고, 부열(傅說)은 판축(版築)의 사이에서 등용되었고, 교격(膠鬲)은 어물(魚物)과 소금을 파는 가운데에서 등용되었고, 관이오(管夷吾)는 사관(士官)에게 갇혔다가 등용되었고, 손숙오(孫叔敖)는 바닷가에서 등용되었고, 백리해(百里奚)는 시장에서 등용되었다.”


舜은 耕歷山이러시니 三十에 登庸하시고 說은 築傅巖이러니 武丁이 擧之하시고 膠鬲은 遭亂하여 ★販魚鹽이러니 文王이 擧之하시고 管仲은 囚於士官이러니 桓公이 擧以相國하고 孫叔敖는 隱處海濱이러니 楚莊王이 擧之爲令尹하니라 百里奚는 事見前篇하니라


  순(舜)임금은 역산(歷山)에서 밭을 갈았는데, 30세에 등용되셨으며, 부열(傅說)은 부암(傅巖)이란 곳에서 제방을 쌓고 있었는데, 무정(武丁)이 들어 썼고, 교격(膠鬲)은 난리를 만나 어물(魚物)과 소금을 팔고 있었는데, 문왕(文王)이 들어 썼으며, 관중(管仲)은 사관(士官)에게 갇혀 있었는데, 환공(桓公)이 들어서 나라를 돕게 하였고, 손숙오(孫叔敖)는 바닷가에 은거(隱居)하였는데, 초장왕(楚莊王)이 들어서 영윤(令尹)을 삼았다. 백리해(百里奚)에 대한 일은 전편(前篇)[만장상(萬章上)]에 보인다.


故로 天將降大任於是人也신댄 必先苦其心志하며 勞其筋骨하며 餓其體膚하며 空乏其身하여 行拂亂其所爲하나니 所以動心忍性하여 曾(增)益其所不能이니라


  그러므로 하늘이 장차 큰 임무를 이 사람에게 내리려 하실 적에는 반드시 먼저 그 심지(心志)를 괴롭게 하며, 그 근골(筋骨)을 수고롭게 하며, 그 체부(體膚)를 굶주리게 하며, 그 몸을 공핍(空乏)[빈궁]하게 하여, 행함에 그 하는 바를 불란(拂亂)시키니, 이것은 마음을 분발시키고 성질을 참게 하여, 그 능하지 못한 바를 증익(增益)해 주고자 해서이다.


降大任은 使之任大事也니 若舜以下是也라 空은 窮也요 乏은 絶也라 拂은 戾也니 言 使之所爲不遂하여 多背戾也라 動心忍性은 謂竦動其心하고 堅忍其性也라 然이나 所謂性은 亦指氣★食色而言耳니라 程子曰 若要熟也인댄 須從這裏過니라


  큰 임무를 내린다는 것은 그로 하여금 큰 일을 맡게 하는 것이니, 순(舜)임금 이하와 같은 것이 이것이다. 공(空)은 궁(窮)함이요, 핍(乏)은 다함이다. 불(拂)은 어김이니, 그들로 하여금 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게 해서 어그러짐이 많음을 말한다. 동심인성(動心忍性)은 그 마음을 송동(竦動)[경동(驚動)]시키고, 그 성질을 굳게 참는 것을 이른다. 그러나 여기에서 말한 성(性)은 또한 기품(氣★)과 식색(食色)을 가리켜 말하였을 뿐이다.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만일 완숙하기를 요구한다면 모름지기 이 시련 속을 통과해야 한다.”


人恒過然後에 能改하나니 困於心하며 衡(橫)於慮而後에 作하며 徵於色하며 發於聲而後에 喩니라


  사람은 항상 과실이 있은 뒤에 고치나니, 마음에 곤(困)하고, 생각에 걸린 뒤에 분발하여, 얼굴빛에 징험되고 음성에 나타난 뒤에 깨닫는 것이다.


恒은 常也니 猶言大率也라 橫은 不順也라 作은 奮起也라 徵은 驗也라 喩는 曉也라 此는 又言 中人之性은 常必有過然後에 能改하나니 蓋不能謹於平日이라 故로 必事勢窮蹙하여 以至困於心, 橫於慮然後에 能奪發而興起하고 不能燭於幾微라 故로 必事理暴著하여 以至驗於人之色, 發於人之聲然後에 能警悟而通曉也니라


  항(恒)은 항상이니, 대솔(大率)이란 말과 같다. 횡(橫)은 순(順)하지 못함이다. 작(作)은 분발하여 일어나는 것이다. 징(徵)은 징험이다. 유(喩)는 깨우침이다. 이것은 또한 중인(中人)의 성품은 항상 반드시 과실이 있은 뒤에 능히 고치니, 평소에 삼가지 못하기 때문에 반드시 사세(事勢)가 곤궁하고 위축되어, 마음에 곤(困)하고 생각에 걸리는데 이른 뒤에야 능히 분발하여 흥기 하고, 기미(幾微)에 밝지 못하기 때문에 반드시 사리(事理)가 크게 드러나서, 사람의 얼굴빛에 징험되고, 사람의 음성에 발(發)하는데 이른 뒤에야 능히 깨우쳐 통달함을 말씀한 것이다.


入則無法家拂(弼)士하고 出則無敵國外患者는 國恒亡이니라


  들어가면 법도(法度) 있는 집안과 보필하는 선비가 없고, 나오면 적국(敵國)과 외환(外患)이 없는 자는 나라가 항상 멸망한다.


此는 言國亦然也라 法家는 法度之世臣也요 拂士는 輔弼之賢士也니라


  이것은 나라 역시 그러함을 말씀한 것이다. 법가(法家)는 법도(法度)를 지키는 세신(世臣)이요, 필사(拂士)는 보필하는 어진 선비이다.


然後에 知生於憂患而死於安樂也니라


  그런 뒤에야 사람은 우환(憂患)에서 살고 안락(安樂)에서 죽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以上文觀之면 則知人之生全이 出於憂患이요 而死亡이 由於安樂矣니라

○ 尹氏曰 言 困窮拂鬱은 能堅人之志하여 而熟人之仁이니 以安樂失之者多矣니라


  위 글을 가지고 관찰한다면 사람이 살고 온전함은 우환(憂患)에서 나오고, 사망(死亡)함은 안락(安樂)에서 말미암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 윤씨(尹氏)가 말하였다. “곤궁(困窮)하고 불울(拂鬱)함이 능히 사람의 의지(意志)를 견고하게 하여 사람의 인(仁)을 완숙하게 할 수 있음을 말씀하였으니, 안락(安樂)으로써 잃는 자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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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 고자하 ; 제1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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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6장(第十六章)


孟子曰 敎亦多術矣니 予不屑之敎誨也者는 是亦敎誨之而已矣니라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였다. “가르침이 또한 방법이 많으니, 내 좋게 여기지 아니하여 거절함으로써 가르침은 이 또한 그를 가르치는 것일 뿐이다.”


多術은 言非一端이라 屑은 潔也라 不以其人爲潔而拒絶之가 所謂不屑之敎誨也니 其人이 若能感此하여 退自修省이면 則是亦我敎誨之也니라

○ 尹氏曰 言或抑, 或揚, 或與, 或不與를 各因其材而篤之니 無非敎也니라


  다술(多術)은 한 가지가 아님을 말한다. 설(屑)은 깨끗함이다. 그 사람을 깨끗하게 여기지 않아 거절함이 이른바 불설지교회(不屑之敎誨)라는 것이니, 그 사람이 만일 능히 이에 감동되어 물러가 스스로 자신의 과오를 닦고 살핀다면 이 또한 내가 그를 가르치는 것이다.

  ○ 윤씨(尹氏)가 말하였다. “혹은 억제하고, 혹은 드날리며, 혹은 허여해 주고, 혹은 허여해 주지 않음을 각기 그 재질에 따라 돈독히 해주니, 가르침이 아님이 없음을 말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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