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원전자료/맹자

맹자집주서설

황성 2012. 11. 29. 09:03

맹자집주서설(孟子集註序說)


史記列傳曰 孟軻는 騶人也니 受業子思之門人하다 道旣通에 游事齊宣王하되 宣王不能用하고 適梁하되 梁惠王不果所言하니 則見以爲迂遠而濶於事情이라 當是之時하여 秦用商鞅하고 楚魏用吳起하고 齊用孫子田忌하여 天下方務於合從(縱)連衡(橫)//하여 以攻伐爲賢이어늘 而孟軻乃述唐虞三代之德하시니 是以로 所如者不合일새 退而與萬章之徒로 序詩書하고 述仲尼之意하여 作孟子七篇하시니라


 《사기(史記)》 열전(列傳)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맹가(孟軻)는 추(騶)땅 사람이니, 자사(子思)의 문인(門人)에게 수업(受業)하였다. 도(道)를 이미 통달하자, 제(齊)나라에 가서 선왕(宣王)을 섬겼으나 선왕(宣王)이 쓰지 못하였고, 양(梁)땅에 갔으나 양혜왕(梁惠王) 역시 말한 바를 행하지 못하였으니, 현실과 우원(迂遠)하여 사정(事情)과 거리가 멀다고 여김을 받았다.

  이 때를 당하여 진(秦)나라에서는 상앙(商鞅)을 등용하고, 초(楚)나라와 위(魏)나라에서는 오기(吳起)를 등용하고, 제(齊)나라에서는 손자(孫子)와 전기(田忌)를 등용해서 천하(天下)가 막 합종(合縱)과 연횡(連橫)을 힘써 공격과 정벌을 훌륭한 것으로 여기고 있었는데, 맹가(孟軻)는 마침내 당우(唐虞)[요순(堯舜)]과 삼대(三代)의 덕(德)을 말씀하였다. 이 때문에 가는 곳마다 뜻이 합하지 못하자, 물러나 만장(萬章) 등의 문도(門徒)들과 더불어 《시경(詩經)》과 《서경(書經)》을 서술하고, 중니(仲尼)의 뜻을 기술하여 《맹자(孟子)》 7편(篇)을 지으셨다.”


韓子曰 堯以是傳之舜하시고 舜以是傳之禹하시고 禹以是傳之湯하시고 湯以是傳之文武周公하시고 文武周公은 傳之孔子하시고 孔子傳之孟軻러시니 軻之死에 不得其傳焉하니 荀與揚也는 擇焉而不精하고 語焉而不詳하니라

○ 又曰 孟氏는 醇乎醇者也요 荀與揚은 大醇而小疵니라

○ 又曰 孔子之道 大而能博하니 門弟子不能徧觀而盡識也라 故로 學焉에 而皆得其性之所近이러니 其後離散하여 分處諸侯之國할새 又各以其所能으로 授弟子하니 源遠而末益分이라 惟孟軻는 師子思而子思之學은 出於曾子하니 自孔子沒로 獨孟軻氏之傳이 得其宗이라 故로 求觀聖人之道者는 必自孟子始니라

○ 又曰 揚子雲曰 古者에 楊墨塞路어늘 孟子辭而闢之廓如地라하니 夫楊墨行하면 正道廢하나니 孟子雖賢聖이나 不得位하여 空言無施하니 雖切何補리오 然이나 賴其言하여 而今之學者尙知宗孔氏, 崇仁義, 貴王賤覇而已요 其大經大法은 皆亡滅而不救하고 壞爛而不收하니 所謂存十一於千百 安在其能廓如也리오 然이나 向無孟氏면 則皆服左衽而言侏離矣리라 故로 愈嘗推尊孟氏하여 以爲功不在禹下者는 爲此也니라


  한자(韓子)[한유(韓愈)]이 말하였다. “요(堯)임금은 이것을 순(舜)임금에게 전하시고, 순(舜)임금은 이것을 우왕(禹王)에게 전하시고, 우왕(禹王)은 이것을 탕왕(湯王)에게 전하시고, 탕왕(湯王)은 이것을 문왕(文王)·무왕(武王)과 주공(周公)에게 전하시고, 문왕(文王)·무왕(武王)과 주공(周公)은 이것을 공자(孔子)에게 전하시고, 공자(孔子)는 맹가(孟軻)에게 전하셨는데, 맹가(孟軻)가 죽자, 그 전함을 얻지 못하였다. 순자(荀子)[순황(荀況)]과 양자(揚子)[양웅(揚雄)]은 선택은 하였으나 정(精)하지 못하였고, 말은 하였으나 상세하지 못하였다.”

  ○ 또 말하였다. “맹자(孟子)는 순수하고 순수한 자요, 순자(荀子)와 양자(揚子)는 크게는 순수하나 약간의 하자(瑕疵)[병폐]이 있다.”

  ○ 또 말하였다. “공자(孔子)의 도(道)가 크고도 넓어서 문하(門下)의 제자(弟子)들이 두루 보고 다 알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배움에 모두 그 성질[소질]의 가까운 바를 얻었는데, 그후 이산(離散)하여 제후(諸侯)의 나라에 나누어 거처하면서 또 각기 자기의 능한 것으로써 제자(弟子)들에게 전수해 주니, 근원(根源)이 멀어짐에 지엽(枝葉)이 더욱 나누어졌다. 오직 맹가(孟軻)는 자사(子思)를 스승으로 삼았는데, 자사(子思)의 학문(學問)은 증자(曾子)에게서 나왔으니, 공자(孔子)가 별세한 뒤로부터 유독 맹가씨(孟軻氏)의 전통(傳統)이 그 종주(宗主)를 얻었다. 그러므로 성인(聖人)의 도(道)를 관찰하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맹자(孟子)》로부터 시작하여야 한다.”

  ○ 또 말하였다. “양자운(揚子雲)[양웅(揚雄)]이 말하기를 ‘옛날에 양주(楊朱)·묵적(墨翟)이 정도(正道)를 막았는데,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여 물리쳐서 훤하게 열어놓았다.’ 하였다. 양주(楊朱)·묵적(墨翟)의 도(道)가 행해지면 정도(正道)가 폐해진다. 맹자(孟子)가 비록 현성(賢聖)이었으나 지위를 얻지 못해서 빈 말 뿐이요, 시행함이 없었으니, 비록 간절한들 무슨 보탬이 있었겠는까? 그러나 그 말씀을 힘입어서 지금의 배우는 자들이 아직도 공씨(孔氏)를 종주(宗主)로 삼고 인의(仁義)를 높이며, 왕도(王道)를 귀히 여기고, 패도(覇道)를 천히 여길 줄 알고 있다. <그러나> 이 뿐이요, 그 대경대법(大經大法)은 모두 없어져 구원하지 못하고, 파괴되어 수습되지 못하였으니, 이른바 천(千)과 백(百)에 십(十)과 일(一)이 남아 있다는 것이니, ‘훤하게 열어놓았다’는 것이 어디에 있는까? 그러나 지난번에 맹씨(孟氏)가 없었더라면 우리들은 다 왼쪽으로 옷깃을 하는[좌임(左衽)] 오랑캐 옷을 입고 오랑캐 말을 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내 일찍이 맹자(孟子)를 추존하여 공로가 우왕(禹王)의 아래에 있지 않다고 말한 것은 이 때문이다.”


或問於程子曰 孟子를 還可謂聖人否잇가 程子曰 未敢便道他是聖人이라 然이나 學已到至[聖]處

○ 程子又曰 孟子有功於聖門을 不可勝言이라 仲尼는 只說一箇仁字어시늘 孟子는 開口便說仁義하시고 仲尼는 只說一箇志어시늘 孟子는 便說許多養氣出來하시니 只此二字 其功甚多니라

○ 又曰 孟子有大功於世는 以其言性善也니라

○ 又曰 孟子性善養氣之論은 皆前聖所未發이니라

○ 又曰 學者全要識時니 若不識時면 不足以言學이라 顔子陋巷自樂은 以有孔子在焉이요 若孟子之時엔 世旣無人하니 安可不以道自任이리오

○ 又曰 孟子는 有些英氣하시니 才(纔)有英氣면 便有圭角이니 英氣甚害事니라 如顔子는 便渾厚不同하시니 顔子는 去聖人只毫髮間이요 孟子는 大賢이니 亞聖之次也니라 或曰 英氣見於甚(삼)處잇가 曰 但以孔子之言比之면 便可見이니 且如氷與水精이 非不光이로되 比之玉하면 自是有溫潤含蓄氣象이요 無許多光耀也니라


  혹자(或者)가 정자(程子)에게 묻기를 “맹자(孟子)도 성인(聖人)이라고 이를 수 있습니까”하자,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감히 그 분이 곧 성인(聖人)이라고 말할 수는 없으나 학문은 이미 성인(聖人)의 경지에 이르셨다.”

  ○ 정자(程子)가 또 말씀하였다. “맹자(孟子)가 성문(聖門)에 공로가 있음을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중니(仲尼)께서는 다만 하나의 인자(仁字)만을 말씀하셨는데, 맹자(孟子)는 입을 여시면 곧 인의(仁義)를 말씀하였으며, 중니(仲尼)는 다만 하나의 지(志)를 말씀하셨는데, 맹자(孟子)는 곧 허다한 양기(養氣)를 말씀하셨으니, 다만 이 두 글자가 그 공로가 매우 큰 것이다.”

  ○ 또 말씀하였다. “맹자(孟子)가 세상에 큰공이 있는 것은 성선(性善)을 말씀하였기 때문이다.”

  ○ 또 말씀하였다. “맹자(孟子)의 성선(性善)과 양기(養氣)에 대한 의논은 모두 전성인(前聖人)들이 미처 발명(發明)하지 못하신 것이다.”

  ○ 또 말씀하였다. “배우는 자들은 온전히 때를 알아야 하니, 만일 때를 알지 못한다면 족히 학문을 말할 수 없다. 안자(顔子)가 누추한 골목에서 스스로 즐긴 것은 공자(孔子)가 계셨기 때문이요, 맹자(孟子) 때로 말하면 세상에 이미 그러한 사람이 없었으니, 어찌 도(道)로써 자임(自任)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까?”

  ○ 또 말씀하였다. “맹자(孟子)는 약간의 영기(英氣)가 있었으니, 조금이라도 영기(英氣)가 있으면 곧 규각(圭角)이 있는 바, 영기(英氣)는 매우 일에 해롭다. 안자(顔子)는 혼후(渾厚)하여 이와 같지 않으니, 안자(顔子)는 성인(聖人)과의 거리가 다만 털끝 만한 사이였고, 맹자(孟子)는 대현(大賢)이니 아성(亞聖)의 다음이시다.”

  혹자가 묻기를 ‘영기(英氣)가 어느 곳에 나타납니까?’하니, <내가> 대답하였다. “다만 공자(孔子)의 말씀을 가지고 비교하면 곧 볼 수 있다. 또 예컨대 얼음과 수정(水精)이 빛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을 옥(玉)에 비교하면 옥(玉)은 자연히 따뜻하고 윤택하고 함축한 기상(氣象)이 있고, 허다한 빛은 없는 것과 같다.”


楊氏曰 孟子一書는 只是要正人心이니 敎人存心養性하여 收其放心이라 至論仁義禮智하여는 則以惻隱羞惡辭讓是非之心으로 爲之端하시고 論邪說之害에는 則曰生於其心하여 害於其政이라하시고 論事君에는 則曰格君心之非니 一正君而國定이라하여 千變萬化가 只說從心上來라 人能正心이면 則事無足爲者矣라 大學之修身齊家治國平天下는 其本이 只是正心誠意而已니 心得其正然後에 知性之善이라 故로 孟子遇人에 便道性善이어시늘 歐陽永叔은 却言 聖人之敎人에 性非所先이라하니 可謂誤矣로다 人性上에는 不可添一物이니 堯舜所以爲萬世法은 亦是率性而已니 所謂率性은 循天理 是也라 外邊에 用計用數면 假饒立得功業이라도 只是人欲之私니 與聖賢作處로 天地懸隔이니라


  양씨(楊氏)가 말하였다. “《맹자(孟子)》 한 책은 다만 인심(人心)을 바로잡고자 하였으니,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을 보존하고 성(性)을 길러 그 방심(放心)을 거두려고 하였다. 인(仁)·의(義)·예(禮)·지(智)를 논함에 있어서는 측은(惻隱)·수오(羞惡)·사양(辭讓)·시비(是非)의 마음으로써 그 단서(端緖)를 삼았고, 부정한 학설의 폐해를 논함에 있어서는 ‘그 마음에 생겨나서 그 정사(政事)에 해를 끼친다.’ 하였고, 군주(君主)를 섬김을 논함에 있어서는 ‘군주(君主)의 마음의 그릇됨을 바로잡아야 하니, 한 번 군주(君主)의 마음을 바로잡으면 나라가 정해진다.’ 하여, 천만 가지 변화를 다만 마음으로부터 말씀하였다. 사람이 마음을 바르게 한다면 일은 족히 할 것이 없다. 《대학(大學)》의 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는 그 근본이 다만 마음을 바루고 뜻을 성실히 하는 것일 뿐이니, 마음이 그 올바름을 얻은 뒤에야 성(性)의 선(善)함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맹자(孟子)는 사람을 만나면 곧 성선(性善)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런데 구양영숙(歐陽永叔)[구양수(歐陽脩)]은 ‘성인(聖人)이 사람을 가르침에 성(性)은 먼저 할 바가 아니다.’라고 말하였으니, 이것은 잘못되었다고 이를 만하다. 인성(人性)의 위에는 한 가지 일도 더할 수가 없으니, 요(堯)·순(舜)이 만세(萬世)의 법(法)이 되심도 또한 이 본성(本性)을 따랐을 뿐이다. 이른바 ‘본성(本性)을 따른다’는 것은 천리(天理)를 따르는 것이 이것이다. 이외에 계책(計策)을 쓰고 술수(術數)를 쓰면 가요(假饒)[가사(假使)] 공업(功業)을 세운다 하더라도 이것은 다만 인욕(人慾)의 사(私)일 뿐이니, 성현(聖賢)이 하시는 것과는 천지(天地)처럼 현격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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