王導公忠(19)
晉王導字茂弘 光祿大夫覽之孫. 少有風鑒 識量淸遠. 陳留高士張公見而奇之 謂其從兄敦曰 此兒容貌志氣將相之器也. 元帝爲琅邪王 與導素相親善. 導知天下已亂 遂傾心推奉 潛有興復之志. 帝亦雅相器重. 會帝出鎭下邳 請導爲安東司馬. 軍謀密策 知無不爲. 帝常謂曰 卿吾之蕭何也. 屢遷中書監錄尙書事. 及帝登尊號 百官陪列 命導升御床共坐. 導固辭曰 若太陽下同萬物 蒼生何由仰照. 帝乃止. 進位司空.
진(晉)나라 왕도(王導)의 자는 무홍(茂弘)이니 광록대부(光祿大夫) 왕람(覽)의 손자이다. 어려서 풍감(風鑒)이 있었고, 식견과 도량이 청원(淸遠)하였다. 진류(陳留) 땅 고사(高士) 장공(張公)이 보고서 기이하게 여기고, 그 종형 돈(敦)에게 말하기를, “이 아이 용모와 지기는 장상(將相)의 그릇입니다.” 하였다.
원제가 낭야왕(琅邪王)이 되었을 때 왕도와 평소 매우 친하였다. 왕도가 천하가 이미 어지러워 질 것을 알고 마침내 마음을 기울여 받들었으며, 몰래 진나라를 부흥시키려는 뜻이 있었다. 황제도 평소 큰그릇으로 여겨 중용하였다. 마침 황제가 나가 하비(下邳)에서 주둔하여 왕도에게 안동사마(安東司馬)가 될 것을 부탁하였다. 그는 군대의 전략이나 비밀스러운 책략을 알아서 하지 않는 일이 없었다. 황제가 항상 말하기를, “그대는 나의 소하(蕭何)1)이다.” 라고 하였다. 여러 번 승진하여 중서감록상서사(中書監錄尙書事)가 되었다. 원제가 황제에 등극함에 미쳐서 백관들이 모시고 도열함에 왕도에게 어상(御床)에 올라 함께 앉을 것을 명령하니, 왕동가 진실로 사양하여 말하기를, “만약 태양이 아래로 만물과 함께 있는다면 창생은 무엇으로 우러러 비출 것을 바라겠습입니까?” 하니, 황제가 마침내 그쳤다. 승진하여 사공(司空)에 이르렀다.
1) 소하(蕭何) : ?~B.C.193. 한 고조 유방이 천하를 평정하는 데 큰 공을 세워 이른바 개국명상(開國名相)으로 꼽혀 장량(張良)ㆍ한신(韓信)과 함께 삼걸(三傑)로 불리기도 한다. 《漢書 卷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