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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황성 2026. 6. 18. 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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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포재(寒圃齋) 이 선생(李先生) : 이건명(李健命, 1663~1722)으로, 본관은 전주, 자는 중강(仲剛), 호는 한포재, 시호는 충민(忠愍)이다. 우승지ㆍ대사간ㆍ이조 판서ㆍ좌의정 등을 역임하였다. 경종 초 신임사화(辛壬士禍)에 화를 입은 노론 사대신 중의 한 명으로 전라도 흥양(興陽)의 나로도(羅老島)에 위리안치되, 그해 8월에 참수형에 처해졌. 저서는 한포재집이 있다.

2) 이두(李杜) : 성당(盛唐)의 대표적인 시인인 이백(李白)과 두보(杜甫)의 병칭이다. 한유(韓愈)의 시 조장적(嘲張籍)이백과 두보의 문장이 지금도 남아 있어, 만 길이나 드높이 광염을 뿜어내도다.[李杜文章在, 光焰萬丈長.]”라는 말이 나온다. 全唐詩 卷340 調張籍

3) 범부(范富) : 범중엄(范仲淹, 989~1052)과 부필(富弼, 1004~1083)의 병칭이다. 범중엄ㆍ부필ㆍ한기(韓琦) 세 사람은 함께 인종 경력(慶曆) 연간의 신정(新政)을 주도하였으며 서하(西夏)의 침략을 물리쳐 명성을 떨쳤다. 또 이 세 사람은 수레를 밀어주는 사람[推車子]’과 같아서 항상 나라를 잘 다스리는 데 마음을 두었다고 하였다. 宋史 范仲淹列傳》 《宋史 范仲淹列傳

4) 네 분 어른 : 노론의 4대신으로, 이건명과 함께 화를 당한 김창집(金昌集)ㆍ이이명(李頤命)ㆍ조태채(趙泰采)를 말한 듯하다.

5) 벽혈(碧血) : 푸른 피라는 뜻으로, 억울하게 죽은 충신의 피를 뜻한다. ()나라 영왕(靈王) 때에 장홍(萇弘)이 참소를 당하여 촉()으로 쫓겨나 자결하였는데, 그 피가 3년 만에 푸르게 변했다는 고사에서 나왔다. 莊子 外物

6) 왕춘(王春) : 음력에 있어서 신춘(新春)을 말한다. 공자가 춘추(春秋)를 편찬할 때 주나라 왕실을 높이고 대일통(大一統)의 사상을 표시하기 위해 노()나라 은공(隱公) 원년 조에 춘왕정월(春王正月)’이라고 쓴 데서 온 말이다.

7) 석실 선생(石室先生) : 김상헌(金尙憲, 1570~1652)으로, 석실은 중년에 양주 석실에 은거할 적에 사용한 호인 석실노인을 줄인 것이다. 본관은 안동, 자는 숙도(叔度), 또 다른 호는 청음(淸陰), 시호는 문정이다. 병자호란 때 대표적인 척화파(斥和派)로 좌의정을 지냈으며, 효종이 즉위하여 북벌을 추진할 때 이념적 상징으로 추앙되어 대로(大老)라는 존칭을 받았다.

8) 화양대로(華陽大老) :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을 가리킨다.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영보(英甫), 호는 우암(尤庵),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9) 도정절(陶靖節) : 죽은 뒤에 정절공의 시호를 받은 진()나라의 은사(隱士) 도잠(陶潛, 365~427)을 말한다. 자는 연명(淵明) 또는 원량(元亮)이다. 팽택 영(彭澤令)을 지냈으므로 도령(陶令)이라 칭하기도 하고, 집 앞에 다섯 그루의 버드나무가 서 있으므로 오류선생(五柳先生)이라 칭하기도 한다.

10) 형초(荊草) : 원문의 반형(班荊)’은 지기(知己)를 만나 정을 나누는 기쁨을 표현하는 말이다. 춘추 시대 초()나라의 오거(伍擧)가 채()나라의 성자(聲子)와 세교를 맺고 있었는데, 두 사람이 우연히 정()나라 교외에서 만나 풀 자리를 깔고 앉아서 옛날이야기를 주고받았던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春秋左氏傳 襄公26

11) 송사(松沙) : 기우만(奇宇萬, 1846~1916)의 호이다. 본관은 행주(幸州), 자는 회일(會一)이다. 기정진(奇正鎭)의 손자로, 그 학업을 이어받아 일찍이 유학자로 이름이 높았다. 김평묵(金平默) 등과 함께 유생을 이끌고 조정의 개혁을 요구하는 만인소를 올렸으며,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과 싸우다가 체포되어 복역하고 출옥한 다음, 순천에서 다시 의병을 일으킬 계획을 하던 중 고종이 강제로 퇴위를 당하자 해산하고 은둔 생활을 하였다. 저서는 송사집이 있다.

12) 열운정(悅雲亭) : 전라북도 특별자치도 고창군에 있는 정자로, 강필주(姜弼周, 1621~1682)가 만년에 고산(高山)의 옥녀봉(玉女峰) 아래에 초당을 지어 여생을 마쳤던 곳이다. 강필주의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대로(大老), 호는 송암(松庵)이며, 강희맹(姜希孟, 1424~1483)7세손이다.

13) 기식재(奇植齋) : 식재는 기재(奇宰, 1854~1921)의 호이다. 본관은 행주(幸州), 자는 입부(立夫)이다. 기정진(奇正鎭)의 문인으로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족형(族兄) 기우만(奇宇萬)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왜적을 토벌하려고 하였는데 조정에서 의병을 해산시키라는 조칙을 내리자 몹시 원통해하며 포기하였다. 저서는 식재집이 있다.

14) 반곡(盤谷) : 산이 에워싸고 있는 깊숙한 골짜기로 은거지를 말한다. 한유(韓愈)가 반곡으로 은거하러 가는 친구 이원(李愿)을 전송한 글에 반곡이 이렇듯 막혀 있으니, 그대의 처소를 누가 와서 다투겠는가.[盤之阻, 誰爭子所?]”라고 한 말이 나온다. 古文眞寶 後集 卷4 送李愿歸盤谷序

15) 붉은 화덕 : 원문의 단조(丹竈)’는 선약(仙藥)을 만들 때 사용하는 화덕을 말한다.

16) 노자(老子) : 원문의 주사(柱史)’는 주하사(柱下史)의 약칭으로, 주하사 벼슬을 지낸 노자를 가리킨다. ()나라가 장차 쇠해지려는 것을 보고 서쪽으로 떠나가다가 함곡관(函谷關)을 지나게 되었다.

17) 칠실(漆室)……걱정 : 원문의 이부휼위(漆嫠恤緯)’는 칠실지우(漆室之憂)와 이불휼위(嫠不恤緯) 두 가지 고사(故事)를 합하여 말한 것으로, 자신의 일을 잊고서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을 뜻한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소공(昭公) 24년 기사에 이르기를 과부가 베를 짜는 씨줄이 끊어지는 것은 걱정하지 않고서 주나라가 망할 것을 걱정하였는데, 이는 그 재앙이 자기에게도 미칠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嫠不恤其緯, 而憂宗周之隕, 爲將及焉.]”라고 하였다. 그리고 노()나라 칠실(漆室) 고을의 과년한 여자가 기둥에 기대어 울고 있기에 이웃 여인이 그 이유를 묻자, 대답하기를 노나라의 임금은 늙었고 태자는 어리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이웃 여인이 그것은 경대부(卿大夫)가 근심할 일이다.”라고 하니, 과년한 여자가 말하기를 그렇지 않다. 예전에 손님의 말이 달아나 내 남새밭을 밟아서 내가 한 해 동안 남새를 먹지 못하였다. 노나라에 환난이 있으면 군신ㆍ부자가 다 욕을 당할 것인데 어찌 여자만 피할 곳이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列女傳 魯漆室女傳

18) 시름에……뒤틀리네 : 사마천(司馬遷)이 자신의 극심한 심적 고통을 표현하면서 하루에 애간장이 아홉 번이나 뒤틀린다.[腸一日而九回.]”라고 했다. 漢書 卷62 司馬遷傳

19) 자지가(紫芝歌)……불렀고 : 자지가는 진()나라 말기에 상산(商山)에 은거한 사호(四皓), 즉 동원공(東園公)ㆍ기리계(綺里季)ㆍ하황공(夏黃公)ㆍ녹리선생(甪里先生)이 불렀다는 노래로, 은사들의 지취(志趣)를 담은 노래이다. 상잠(商岑)은 중국의 섬서성(陝西省) 상현(商縣) 동쪽에 있는 상산(商山)을 말하는데, 진 시황(秦始皇)의 학정을 피해 그곳에 은거하여 지초를 캐 먹으며 살았다고 한다. 史記 卷55 留侯世家

20) 표음(瓢飮)……즐겼네 : 공자의 제자인 안회(顔回)가 안빈낙도(安貧樂道)했던 고사를 가리킨다. “어질도다, 안회여! 한 대그릇의 밥과 한 표주박의 물로 누추한 시골에 있는 것을 다른 사람들은 그 근심을 견뎌내지 못하는데, 안회는 그 즐거움을 변치 않는구나. 어질도다, 안회여![賢哉, 回也! 一簞食, 一瓢飮,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 賢哉, 回也.]”라고 하였다. 論語 雍也

21) 저력(樗櫟) : 가죽나무와 참나무로, 오래 살기만 할 뿐 쓸모가 없어서 어떤 목수도 돌아보지 않는 나무를 의미한다. 莊子 逍遙遊

22) 검려(黔驢) : 검주(黔州)의 나귀란 뜻으로, 졸렬한 기능(技能)을 비유한 말이다. 검주에는 본디 나귀가 없었는데, 어떤 사람이 나귀를 싣고 들어가 그곳 산 밑에 풀어 놓았더니, 호랑이가 처음에는 나귀의 큰 체구와 큰 울음소리로 인해 나귀를 대단히 무서워했으나, 나귀와 점차 가까워진 다음 나귀의 발길에 한 번 차여 보고 나서는 나귀에게 그 밖의 다른 기능이 없음을 알아차리고 마침내 나귀를 물어 죽였다는 고사가 있다. 柳河東集 卷19 三戒 黔之驢

23) 천지(天地) 다스려진 : 원문의 평성(平成)’서경(書經)대우모(大禹謨)땅이 편평해지자 하늘이 이뤄진다.[地平天成]”를 줄인 것인데, 즉 천지가 다스려진다는 뜻이다. 채침(蔡沈)의 전()에 의하면, 수토(水土)가 다스려진 것을 ()’이라 하니, 수토가 이미 다스려지자, 만물(萬物)이 이루어짐을 이른 말이라고 한다.

24) 신우(神禹) : 요순(堯舜) 때에 홍수(洪水)를 다스린 우()임금을 높여 일컫는 말이다.

25) 청평검(靑萍劍) : 전국 시대 월()나라 왕 구천(句踐)의 명검(名劍)으로, 설촉(薛燭)의 감정을 받고서야 그것이 명검임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26) 석인(碩人) : 속세를 떠나 은거한 덕이 높은 은자를 가리킨다. 시경》 〈위풍(衛風) 고반(考槃)시냇가에 안식처를 마련하니, 석인의 넉넉한 마음이로다. 혼자 자고 깨고 혼자 말하여도, 길이 잊지 않기로 맹서하도다.[考槃在澗, 碩人之寬. 獨寐寤言, 永矢弗諼.]”라고 하였다.

27) 혜려(嵇呂) : ()나라 혜강(嵇康)과 여안(呂安)을 말한다. 여안과 혜강이 상대방이 그리워질 때마다 천 리 길을 멀다 하지 않고 수레를 대령하여 상대방을 방문했다.[每一相思, 輒千里命駕.]”라는 고사가 있다. 世說新語 簡傲

28) 유라(庾羅) : 대유(大庾)와 나부(羅浮)의 줄임말로, 대유령(大庾嶺)과 나부산(羅浮山)을 뜻한다. ()나라 장구령(張九齡)이 대유령에 새 길을 뚫을 때 매화를 심어 매령(梅嶺)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일화가 독사방여기요(讀史方輿紀要)강서(江西) 중험(重險)에 전하고, ()나라 조사웅(趙師雄)이 나부산의 매화나무 아래에서 잠들었다가 매화 선녀를 꿈에 보았다는 전설이 유종원(柳宗元)용성록(龍城錄)에 전한다.

29) 청도(淸都) : 옥황상제가 산다는 천상(天上)의 궁전을 가리킨다.

30) 파리한 가도(賈島) : 779~843. 중당(中唐) 때의 시인으로, 자는 낭선(浪仙)이다. 일찍 출가해 승려가 되어 법명을 무본(無本)이라 하였지만 한유를 만난 후 환속하였다. 소식(蘇軾)제유자옥문(祭柳子玉文)맹교(孟郊)는 신산하고 가도는 처량하며, 원진(元稹)은 경박하고 백거이(白居易)는 속되다.[郊寒島瘦, 元輕白俗.]”라고 그들의 시풍을 평한 데서 온 말이다.

31) 빈한한 맹교(孟郊) : 751~814. 중당의 시인으로, 자는 동야(東野)이다. 50세에 과거에 급제했으나 평생을 불우하게 보냈기에 그의 시는 한산(寒酸)하다. 가도의 시는 파리하다. 그러므로 송()나라의 소식(蘇軾)이 교한도수(郊寒島瘦)라 평하였으니, 즉 맹교의 시는 한산(寒酸)하여 살풍경하고, 가도의 시는 메말라서 힘이 없다는 뜻이다. 東坡集 卷35 祭柳子玉文

32) () 소리 :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이별을 비유한다. 전국 시대 형가(荊軻)는 축의 명인 고점리(高漸離)와 벗이 되어, 술이 취하면 형가는 노래하고 고점리는 축을 연주하곤 하였다. 형가가 진왕(秦王)을 죽이기 위해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며 역수가(易水歌)를 부를 때 고점리는 축을 연주하였다.史記 勸86 刺客列傳 荊軻

33) 남창(南牕)에 기대어 오만하게 : 얽매임이 없이 자유분방함을 말한다. 도잠(陶潛)귀거래사(歸去來辭)남창에 기대어 오만한 마음을 부치니, 무릎이나 겨우 들어갈 작은 집이 편안한 줄을 알겠노라.[倚南窓以寄傲, 審容膝之易安.]” 하였다.

34) 유도유(柳道裕) : 도유는 유후열(柳厚烈, 1867~1919)의 자이다. 본관은 문화(文化), 호는 후서(後西)이다. 후석 오준선과 학문을 닦았다.

35) 오주(吳州)에 달 뜨거든 : 몸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같이 달을 보면서 정을 나누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이백(李白)강동으로 가는 장사인을 보내며[送張舍人之江東]라는 시에서 오주에서 달을 보거든 천 리 밖에서 날 생각해 주오.[吳州如見月, 千里幸相思.]”라고 하였다. 古文眞寶前集 卷1

36) 유하(柳下) : 유하혜(柳下惠), ()나라 대부 전금(展禽)이다. 유하(柳下)에 살았고 시호가 혜()이기 때문에 유하혜라 부르게 되었다. 맹자》 〈공손추 상(公孫丑上)에는 유하혜는 더러운 임금을 섬기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며 작은 벼슬을 낮게 여기지 않았다.[柳下惠, 不羞汚君, 不卑小官.]” 하였고, 맹자》 〈만장 하(萬章下)에는 유하혜의 풍모를 들은 사람은 비루한 사람이 너그러워지며 야박한 사람이 돈후해진다.[聞柳下惠之風者, 鄙夫寬, 薄夫敦.]”라고 하였다.

37) ……: ()나라 때 왕휘지(王徽之)가 산음(山陰)에 살 적에 한밤에 눈이 내려 흥이 나자 배를 타고 섬계(剡溪)에 사는 친구 대규(戴逵)를 찾아갔다가 그의 집 문 앞에 이르러 흥이 다하자 친구를 만나지도 않고 돌아왔던 고사를 말한다. 晉書 卷80 王徽之列傳

38) 난와(難窩) : 오계수(吳繼洙, 1843~1915)의 호이다.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중함(重涵), 노사 기정진의 문인이다. 1895(고종32) 을미사변이 일어나 일본인들에 의하여 민비(閔妃)가 시해되자, 이를 토평하기 위하여 기우만(奇宇萬)이 나주에서 의병을 일으킬 때 그에 가담하였다. 경술국치 후 세상과 인연을 끊고 두문불출하던 중 은사금(恩賜金)을 거절한 일로 장성 헌병부대에 끌려가서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도 끝내 굴하지 않았다. 저서는 난와유고(難窩遺稿)가 있다.

39) 명홍(冥鴻) : 아득히 하늘 위로 치솟아 사라지는 기러기라는 뜻으로, 세상을 초월하여 멀리 떠나 은둔하는 생활을 비유하는 말이다.

40) ()나라 호공(虎公) : 춘추 시대 위()나라의 현군(賢君)이다. 강숙(康叔)의 정치를 계승하여 백성들을 화목하게 했고 주()나라를 도와 융적(戎狄)을 평정한 공이 많았으며, 재위 55년에 95세까지 살았다. 원문에 ()’라고 쓴 것은 고려 혜종의 휘가 ()’이므로 휘한 것이다.

41) 백인(伯仁)처럼……흘리고 : 백인은 서진(西晉) 때 주의(周顗, 262~322)의 자이다. ()나라가 중원이 함락되어 강남으로 옮겨 갔을 때 신정(新亭)에서 술자리를 베풀었는데, 여러 신하와 함께 그곳에서 통곡했다고 한다. 世說新語 言語

42) 두로(杜老)처럼……품네 : 두로는 두보(杜甫)를 가리킨다. 두보는 평소에 애군 우국(愛君憂國)의 충정(衷情)이 남달라, 그의 시에 웅혼하고 침통하고 충후한 뜻이 겉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이른 말이다.

43) 잣나무 읊고 : 두보(杜甫)고백행(古栢行)을 가리킨다. 제갈량(諸葛亮)의 사당인 성도(成都)의 무후사(武侯祠) 곁에 서 있는 오래된 측백나무에 빗대어 지사(志士)의 충정(忠貞)을 읊은 시이다. 주희가 만년에 남송(南宋)이 중원(中原)을 회복하지 못하는 것을 한탄하며 누대 아래에서 고백행을 읊었다는 고사가 전한다. 宋子大全箚疑 卷1

44) 석전(石田) : 이최선(李最善, 1825~1883)의 호이며, 노사 기정진의 문인이다.

45) 숨었던……우네 : 주역의 복괘(復卦)를 형용한 것으로, 동지(冬至)가 되었다는 말이다. 동지가 되면 밑에서 일양(一陽)이 시생(始生)하는 지뢰복(地雷復 )의 괘()를 이루게 되는데, 이는 땅속에서 우레가 울리는 것을 상징한다.

46) 율관(律管)……옮기니 : 원문의 가회(葭灰)’는 갈대 속의 엷은 막()을 태운 재로, 과거 중국에서 갈대의 재를 악기의 율관 속에 넣어서 절기를 헤아린 데서 따온 말이다. 세 겹으로 밀폐한 방 안에 나무 탁자 12개를 각각 방위에 따라 비치한 다음에 황종(黃鐘)ㆍ태주(大簇)ㆍ고선(姑洗)ㆍ유빈(蕤賓)ㆍ이칙(夷則)ㆍ무역(無射)ㆍ대려(大呂)ㆍ협종(夾鐘)ㆍ중려(仲呂)ㆍ임종(林鐘)ㆍ남려(南呂)ㆍ응종(應鐘) 등 십이율려(十二律呂)의 율관을 탁자 위에 두고서 갈대의 재를 각각의 율관에 채워 넣고 절기를 기다려 살피면, 늘 한 절기가 이를 때마다 해당 율관의 재가 날아 움직인다고 한다. 11월 동지(冬至)에는 황종(黃鐘) 율관(律管)의 재가 움직인다고 한다.

47) 양백하(梁柏下) : 양상형(梁相衡)을 가리킨다.

48) 사공(謝公)의 누각 : 남조(南朝) ()나라의 시인 사조(謝脁)의 누각이다. 그가 일찍이 선성 태수(宣城太守)로 있을 적에 산 남쪽에 높은 누대를 짓고 앞산의 경치를 감상하였다. 후대에 이 누대를 사루(謝樓)라도 하고, 그 산 이름을 사공산(謝公山)이라고 불렀다.

49) 연명(淵明) : ()나라 도잠(陶潛, 365~427)의 호이다. 자는 원량(元亮), 별호는 오류선생(五柳先生), 사시(私諡)는 정절(靖節)이다. 팽택 현령(彭澤縣令)의 벼슬을 버리고 고향인 심양(潯陽)의 율리(栗里)로 돌아와 유유자적하면서 여생을 마쳤다. 晉書 陶潛列傳

50) 유도(有道)의 비문 : 유도는 후한 때의 명사(名士)인 곽태(郭泰, 128~169)의 호이다. 채옹(蔡邕)이 그의 비문을 곽유도비문(郭有道碑文)이란 제목으로 짓고 노식(盧植)에게 말하기를 내가 비명(碑銘)을 지은 것이 많았는데, 모두 그 덕()에 부끄러움이 있었으나 오직 이 사람의 비문은 부끄러움이 없다.”라고 하였다. 後漢書 卷58 高士傳

51) 옥수(玉樹) : 지란옥수(芝蘭玉樹)의 준말로, 명가(名家)의 영재(英材)를 비유하는 말이다. ()나라 사현(謝玄)이 숙부인 사안(謝安)에게 지란옥수가 섬돌에 피어나 향기를 내뿜게 하는 것처럼 하고 싶다.[如芝蘭玉樹欲使其生於庭階耳.]”라고 소망을 밝힌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晉書 謝安列傳

52) 최면암(崔勉菴) : 면암은 문신이며 학자이자 의병장인 최익현(崔益鉉, 1833~1906)의 호이다.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찬겸(贊謙)이다. 이항로(李恒老)의 문인이다.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실정(失政)을 상소하여 대원군 실각의 결정적 계기를 만들었다. 일본과의 통상 조약을 체결하려 하자 격렬한 척사소(斥邪疏)를 올렸으며, 단발령에 반대하였다.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창의토적소(倡義討賊疏)를 올리고 항일의병운동을 전개하였다. 74세의 고령으로 태인(泰仁)과 순창(淳昌)에서 의병을 이끌고 관군 및 일본군에 대항하여 싸웠으나 패전한 후, 체포되어 대마도(對馬島)에 유배 생활하던 중에 유소(遺疏)를 구술(口述)하고,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저서는 면암집(勉菴集)이 있다.

53) 송연재(宋淵齋) : 연재는 송병선(宋秉璿, 1836~1905)의 호이다.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화옥(華玉),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학행으로 천거를 받아 성균관 좨주(成均館祭酒)에 기용되었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울분을 참지 못하고 음독 자결하였다. 저서는 연재집(淵齋集)이 있다.

54) 의대찬(衣帶贊) : 문천상이 죽은 뒤에 그의 의대(衣帶) 속에서 발견된 절필유언(絶筆遺言)안의 찬문(贊文)을 말한다. 그 전문(全文)공자는 인()을 이룬다 하고 맹자는 의()를 취한다 하였으니, 그 의를 다하면 인이 지극해진다네. 성현의 글을 읽었으니 배운 것이 과연 무엇이겠나. 지금에 와서야 부끄러움이 없게 되었도다.[孔曰成仁, 孟曰取義, 惟其義盡, 所以仁至. 讀聖賢書, 所學何事? 而今而後, 庶幾無愧!]”라고 하였다.

55) 송서(宋瑞) : 남송(南宋)의 마지막 재상 문천상(文天祥, 1236~1282)의 자이다. 자는 이선(履善), 호는 문산(文山), 시호는 충렬(忠烈)이다. 원나라 군대가 침입하여 수도가 함락되자 단종(端宗)을 받들고 근왕군(勤王軍)을 일으켜 대항하다가 사로잡혀 연옥(燕獄)3년 동안 구금되어 있었으나 끝내 굴복하지 않고 절의를 지키다가 처형되었다. 옥중에서 지은 정기가(正氣歌)가 고금에 회자된다. 宋史 文天祥列傳

56) 신가(晨歌) : 새벽에 부른 노래라는 뜻인데, 공자가 자신의 죽음을 암시한 꿈을 꾼 이튿날 새벽에 일어나 문밖에서 서성거리며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의미를 담은 노래를 불렀다는 데서 위대한 인물의 죽음을 뜻한다.

57) ()나라 기둥의 꿈 : 죽음을 가리키는 말로, 송연재의 죽음을 말한다. 예기》 〈단궁 상(檀弓上)에 공자가 하나라는 동쪽 계단 위에 빈()하였으니 여전히 주인의 자리인 조계(阼階)에 둔 것이고, 은나라는 두 기둥 사이에 빈하였으니 손님과 주인의 자리 사이에 둔 것이며, 주나라는 서쪽 계단 위에 빈하였으니 손님으로 대한 것과 같다. 나는 은나라 사람인데, 내가 지난밤 꿈에 두 기둥 사이 마루에 앉아서 궤전(饋奠)을 받았다. 밝은 임금이 나오지 않았으니, 천하에 어느 누가 나를 존숭하겠는가. 내가 아마 곧 죽으려나 보다.[夏后氏殯於東階之上, 則猶在阼也; 殷人殯於兩楹之間, 則與賓主夾之也; 周人殯於西階之上, 則猶賓之也. 而丘也殷人也, 予疇昔之夜, 夢坐奠於兩楹之間. 夫明王不興, 而天下其孰能宗予? 予殆將死也.]”

58) 새벽녘……기억하랴 : 송연재의 죽음을 알아주는 이가 없음을 슬퍼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공자가 자신의 죽음을 암시한 꿈을 꾼 이튿날 새벽에 일어나 문밖에서 서성거리며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의미를 담은 노래를 불렀다는 고사가 있고, 예기주소(禮記註疏)7은나라 사람은 두 기둥 사이에 빈소를 마련하였다. …… 나는 은나라 사람이다. 내가 어젯밤 꿈에 두 기둥 사이에 앉아서 전헌을 받았다. …… 명왕이 나오지 않으니 천하에 누가 나를 높이겠는가. 내가 장차 죽을 것이다.[殷人殯於兩楹之間. …… 丘也殷人也. 予疇昔之夜, 夢坐奠於兩楹之間. …… 夫明王不興, 而天下其孰能宗予. 予殆將死也.]”라고 하였는데, 7일 뒤에 과연 공자가 운명하였다는 고사가 있다.

59) 강수(江水)……흘러감 : 만절필동(萬折必東)의 의리와 같은 뜻으로, 여기서는 명나라의 은혜에 감사한다는 의미이다. 만절필동은 중국의 황하가 굽이져 흐르지만 반드시 동쪽으로 흘러들어 간다는 뜻이다.

60) 대로(大老) : 덕과 명망이 높은 나라의 큰 어른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을 가리킨다. 연재 송병선이 송시열의 9세손으로, 가학을 계승하였다.

61) 기백수(奇白水) : 1852~? 백수는 그의 호이다. 본관은 행주(幸州), 자는 성초(性初), 호는 우몽(宇蒙),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의 문인이면서 넷째 손자이다. 기만연(奇晩衍)의 셋째 아들이며,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과 형제간이다.

62) 상자……끊어졌고 ; 자신의 거문고를 들어 주던 친구가 죽어서 다시는 거문고를 타지 않는다는 뜻으로, 전하여 자신을 알아주던 친구가 죽은 것을 말한다. 춘추 시대 거문고의 명인 유백아(兪伯牙)가 연주할 때마다 그의 벗 종자기(鍾子期)가 제대로 알아듣고 품평을 하였는데, 종자기가 죽은 뒤로는 백아가 더 이상 지음(知音)이 없다면서 거문고 줄을 끊어 버리고 다시는 연주를 하지 않았다는 고사가 전한다. 呂氏春秋 孝行覽 本味

63) 강가에서 모시던 해 : 스승 노사를 모실 때를 말한다.

64) 학문의 유익함 : 원문의 봉마(蓬麻)’는 주위에 있는 훌륭한 사람의 도움을 받아 자신이 바르게 됨을 비유하는 말이다. 쑥은 굽은 것이고 삼은 곧은 것인데, ‘쑥이 삼밭 가운데서 자라면 일으켜 세우지 않아도 절로 곧아진다.[蓬生麻中, 不扶而直.]’라는 말이 나온다. 荀子 勸學

65) 송옹(松翁)……나왔는데 : 송옹은 기우만(奇宇萬, 1846~1916)을 가리키는데,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과 싸우다가 체포되어 복역하고 출옥한 일을 말한다. 본관은 행주(幸州), 자는 회일(會一), 호는 송사(松沙)이다. 참봉을 지내 기 참봉으로 불렸으며, 호남의 거유(巨儒) 기정진(奇正鎭)의 손자로 그 학업을 이어받아 문유(文儒)로 추앙받았다.

66) 꽃나무……모임 : 원문의 화수위가회(花樹韋家會)는 당나라 위씨(韋氏)의 가족들이 꽃나무 아래에서 화목을 다지기 위해 모임을 가진 전통적 가풍을 말한다. ()나라 잠삼(岑參)위원외화수가(韋員外花樹歌)라는 시에 그대의 집 형제를 당할 수 없나니 열경과 어사 상서랑이 즐비하구나. 조회에서 돌아와서는 늘 꽃나무 아래 모이나니, 꽃이 옥 항아리에 떨어져 봄술이 향기로워라.[君家兄弟不可當, 列卿御使尙書郞. 朝回花底恒會客, 花撲玉缸春酒香.]” 한 데서 유래한 것으로, 친족끼리의 모임을 뜻한다.

67) 지란(芝蘭)……돈대(墩臺) : 지란은 지란옥수(芝蘭玉樹)’의 준말로, 남의 집안의 우수한 자제를 예찬하는 말이다. 사부(謝傅)는 동진(東晉) 때의 태부(太傅) 사안(謝安)을 가리킨다. ()나라 사현(謝玄)이 숙부인 사안(謝安)에게 지란옥수가 섬돌에 피어나 향기를 내뿜게 하는 것처럼 하고 싶다.[如芝蘭玉樹欲使其生於庭階耳.]”라고 소망을 밝힌 고사가 있다. 晉書 謝安列傳

68) 은거 : 원문의 기영(箕潁)’은 기산(箕山)과 영수(潁水)를 말한다. () 임금 때에 고사(高士)인 소부(巢父)와 허유(許由)가 기산, 영수 사이에 은거하여 은거의 대명사로 쓰인다.

69) 오복(五福) : 서경》 〈주서(周書) 홍범(洪範)오복은 첫째는 장수하는 것이고, 둘째는 부유한 것이고, 셋째는 편안한 것이고, 넷째는 덕을 좋아하는 것이고, 다섯째는 천명대로 살다가 죽는 것이다.[五福, 一曰壽, 二曰富, 三曰康寧, 四曰攸好德, 五曰考終命.]”라는 말이 나온다.

70) 하천장(下泉章) : 시경(詩經)》 〈국풍(國風) 조풍(曹風)에 있는 시로, 극도로 쇠미해진 주()나라를 생각하지만 적당한 인재가 없어 주나라가 부흥되지 않음을 읊은 내용이다.

71) 원천에서 콸콸 쏟아져 : 주자(朱子)관서유감(觀書有感)조그맣고 모난 연못에 한 거울이 열리어, 하늘빛 구름 그림자가 함께 배회하네. 묻노니 어찌하면 저처럼 맑을까, 원천에서 콸콸 쏟아져 내려서라네.[半畝方塘一鑑開, 天光雲影共徘徊. 問渠那得淸如許, 爲有源頭活水來.]”라고 하여, 학문을 통해 심성을 수양하는 즐거움을 읊었다.

72) 호계(虎溪) : 중국 여산(廬山)의 동림사(東林寺) 앞에 있는 시내 이름이다. ()나라의 고승 혜원(慧遠)이 손님을 전송할 때 호계(虎溪)를 건너지 않았는데, 도잠(陶潛)과 육수정(陸修靜)을 배웅할 적에는 자신도 모르게 호계를 건넜으므로, 세 사람이 크게 웃으며 헤어졌다는 호계삼소(虎溪三笑)’의 고사가 전한다. 유자와 승려와의 교분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그냥 세 사람의 고사만 인용한 듯)

73) 풍성(豐城)……쏘았네 ; ()나라 때 충신 장화(張華)가 일찍이 두성과 우성 사이에 기이한 자색 서기(瑞氣)가 뻗치는 것을 보고, 뇌환(雷煥)을 보내 풍성현(豐城縣)의 옛 옥사(獄舍)에서 용천(龍泉)’태아(太阿)’ 두 명검을 얻은 고사가 있다. 참고로 당나라 왕발(王勃)등왕각서(滕王閣序)물건의 정화는 하늘의 보물이니, 용천검의 광채가 우성과 두성의 자리를 쏘아 비추고, 사람이 걸출함은 땅이 영특해서이니 서유가 진번의 자리를 내려놓게 하였다.[物華天寶, 龍光射斗牛之墟; 人傑地靈, 徐孺下陳蕃之榻.]”라고 하였다. 晉書 卷36 張華列傳》 《古文眞寶 後集 卷2 滕王閣序

74) 일전어(一轉語) : 선가(禪家)에서 유래한 말로, 미혹에서 벗어나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게 하는 한마디 말을 이르는 것이다.

75) 나물을……해내고 : 청빈한 생활을 말한다. 참고로 사람이 항상 나물 뿌리를 캐 먹고 살 줄만 알면, 어떤 일이라도 모두 행할 수 있다.[人常咬得菜根, 則百事可做.]”라는 왕신민(汪信民)의 말을 듣고는 강후(康侯) 호안국(胡安國)이 무릎을 치며 감탄했다는 말이 송()나라 여본중(呂本中)동래여자미사우잡지(東萊呂紫微師友雜志)에 나오고, 주희(朱熹)내가 보건대, 오늘날 사람들이 나물 뿌리를 캐 먹지 못하고서 자기 본심을 어기기까지 하는 자가 많으니, 어찌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某觀今人因不能咬菜根, 而至違其本心者衆矣, 可不戒哉?]”라고 경계한 말이 주자어류(朱子語類)13에 나온다.

76) 그대의……말게 : 상대방의 소식이나 편지를 높여 표현한 말이다. 시경》 〈백구(白駒)그대의 목소리를 금옥처럼 아껴서, 나를 멀리하는 마음을 두지 말라.[毋金玉爾音, 而有遐心.]”라는 말이 나오는데, 여기서는 학문에 힘써 좋은 소식을 보내 달라고 요청한 말이다.

77) 많은 스승 : 배울 만한 스승이 많음을 이르는 말이다. 전국 시대 조()나라 임금의 아우인 조교(曹交)가 맹자의 문하에 들어가서 요순(堯舜)의 도를 배우겠다고 청했을 때, 맹자가 이르기를 무릇 도는 큰 길과 같으니 어찌 알기 어렵겠는가. 사람이 도를 구하지 않는 것이 병통일 뿐이니, 자네가 집에 돌아가서 이 도를 구하기만 한다면 배울 만한 스승이 많으리라.[夫道若大路然, 豈難知哉? 人病不求耳, 子歸而求之, 有餘師.]”라고 하였다. 孟子 告子下

78) 곤륜산(崑崙山)……가지 : 흔히 과거에 급제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나라 극선(郤詵)이 현량(賢良) 대책(對策)에 급제하여 관원이 되었는데, 자신을 평가해 보라는 무제(武帝)의 말에, “대책(對策)으로 천하제일이니, 비유컨대 계수나무 숲 속의 한 가지요[桂林一枝], 곤륜산의 편옥[崑山片玉]과 같습니다.”라고 대답한 고사가 있다. 晉書 卷52 郤詵列傳

79) 문헌공(文憲公) : 기대승(奇大升, 1527~1572)의 시호이다. 본관은 행주(幸州), 자는 명언(明彦), 호는 고봉(高峰) 등이다. 스승 이황과 12년 동안 서한으로 사단칠정(四端七情)에 대한 토론을 벌였다. 그때의 왕복서한은 양 선생 사칠이기 왕복설(兩先生四七理氣往復說)2권으로 남아있다. 저서는 고봉집주자문록(朱子文錄)논사록(論思錄)등이 있다.

80) 마음……훈계로 :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 1510~1560)문인에게 보여주다[示門人]라는 시에 潛心勿向他岐惑, 慰此摧頹一病身라는 구절이 나온다.

81) 담로(湛老) : 담재(湛齋) 김인후(金麟厚, 1510~1560)를 말한다. 본관은 울산(蔚山), 자는 후지(厚之), 호는 담재(湛齋)ㆍ하서(河西),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1545(인종1) 인종이 승하하고 곧이어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병을 칭탁하고 향리로 돌아가 학문 연구와 제자 양성에 전념하였다.

82) 만취정(晩翠亭) : 조선 말 우국지사인 만취(晩翠) 심원표(沈遠杓, 1853~1939)가 후학을 가르치기 위해 1913년에 지은 정자이다. 심원표는 젊어서는 기정진(奇正鎭)에게, 중년에는 송병순(宋秉珣)에게 공부하였으며, 기우만ㆍ오준선 등과 교유하였다. 구한말 감역관(監役官)을 지냈고, 일본이 주는 은사금(恩賜金)을 거부하고 고향에 은둔해 강학과 효도로써 한 평생을 마쳤다.

83) 금릉(金陵) : 전라남도 강진(康津)의 옛 이름이다.

84) 상곡사(上谷祠) : 전라남도 강진군 작천면에 있는데, 도암(道菴) 문옹(文雍, 1425~1494), 사재(思齋) 문빈(文彬, 1441~1506), 월파(月坡) 문구연(文九淵, 1458~1519) 등의 충효와 도학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1858(철종9)에 사림들이 창건하였다.

85) 기심(機心) 잊으니 : 뭔가 꾀를 내어 해보려는 사심(私心)을 모두 잊어버리는 것을 말한다. 바닷가에서 아무런 기심(機心)도 없이 갈매기와 벗하며 친하게 지내던 사람이 부친의 부탁을 받고 갈매기를 잡으려는 마음을 갖게 되자 갈매기들이 벌써 알아채고 그 사람 가까이 날아오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列子 黃帝

86) 초소(楚騷)의 방초(芳草) : 초소는 초()나라 굴원(屈原)이소(離騷)라는 뜻으로, 초사(楚辭)를 가리킨다. 방초는 초나라 굴원의 이소어찌하여 예전의 향기롭던 풀들이, 지금은 단지 이렇게 쑥덤불이 되었는가.[何昔日之芳草兮! 今直爲此蕭艾也.]”라고 하여, ‘방초로 어진 인물을 비유하고 쑥덤불로 불초한 인물을 비유한 데서 온 말이다.

87) 식재(植齋)ㆍ석전(石田) : 식재는 기재(奇宰, 1854~1921)의 호이고, 석전은 이최선(李最善, 1825~1883)의 호이다.

88) 문주(文酒) : 문사(文士)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시를 짓고 술을 마시며 즐기는 것을 말한다.

89) 화수(花樹) 모임 : 친족끼리 화목하게 지내는 것을 말한다. 당나라 위장(韋莊)이 친족을 모아 놓고 술을 마셨는데, 이에 대해 잠삼(岑參)위원외화수가(韋員外花樹歌)그대의 집 형제를 당할 수가 없나니, 열경(列卿)과 어사(御史)와 상서랑(尙書郞)이 즐비하구나. 조회에서 돌아오면 늘 꽃나무 아래로 모이나니, 꽃이 옥항아리에 떨어져 봄 술은 향기로웠지.” 하였다. 岑參集 卷4

90) 중국이 오랑캐 : 의상(衣裳)은 중국을 말하고, 개린(介鱗)은 단단한 껍질과 비늘을 아울러 이르는 말로 오랑캐를 비유한다.

91) 명양(鳴陽)……작별하지만 : 명양은 창평(昌平)의 옛 이름으로 직교(直敎)가 사는 곳이고, 금북(錦北)은 나주 북쪽으로 오준선이 사는 곳을 가리킨다.

92) 나중에는……경생(庚生) : 심종대 군의 생일과 그 부친의 생년을 알 수 없어서 시구의 의미를 이해하기가 어렵다.

93) 식희(飾喜) : 기쁨을 꾸민다는 뜻으로, 부모 연세가 많아 장수하신 것을 알면 잔치를 열어 그 기쁜 마음을 드러내는 효성을 이른다. 예기》 〈악기(樂記)음악은 선왕이 기쁨을 드러내는 방법이었으며, 군대와 부월은 선왕이 노여움을 드러내는 방법이었다.[夫樂者, 先王之所以飾喜也, 軍旅鈇鉞者, 先王之所以飾怒也.]”라고 하였다.

94) 색동옷……춤추며 : 부모를 잘 봉양함을 뜻한다. 춘추 시대 초()나라 사람 노래자(老萊子)가 효성으로 어버이를 봉양하여 일흔의 나이에도 색동옷을 입고 어린아이처럼 재롱을 부림으로써 어버이를 기쁘게 해 드렸다 한다. 小學 稽古

95) 남극노인성(南極老人星) : 사람의 수명을 관장하는 별로, 노인성(老人星)ㆍ수성(壽星)이라고도 하며 장수를 상징한다.

96) 장수(長壽) : 원문의 미수(眉壽)’는 예부터 눈썹이 빼어나게 긴 사람은 장수를 한다고 하기 때문에 붙여진 말이다. 시경》 〈빈풍(豳風) 칠월(七月)봄 술을 빚어서 장수를 축원하네.[爲此春酒, 以介眉壽.]”라는 말이 나온다.

97) 전춘일(餞春日) : 봄의 마지막 날, 즉 음력 3월 그믐을 가리킨다.

98) 기수(沂水)에서 목욕하니 : 공자의 제자 증점(曾點)늦은 봄에 봄옷이 만들어지면 관을 쓴 벗 대여섯 명과 아이들 육칠 명을 데리고 기수에 가서 목욕을 하고 기우제 드리는 곳에서 바람을 쏘인 뒤에 노래하며 돌아오겠다.[暮春者, 春服旣成, 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 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라고 자신의 뜻을 밝히자, 공자가 감탄하며 허여한 고사가 있다. 論語 先進

99) 동군(東君) : 봄을 맡은 신()으로, 동제(東帝)ㆍ동황(東皇)ㆍ청황(靑皇)ㆍ청제(靑帝)라고도 한다. 송나라 당경(唐庚)의 시 이월견매(二月見梅)아직도 한 가지 매화가 있을 리 없으니, 동군이 억지로 손님을 머물게 한 것이리라.[不應尙有一枝梅, 可是東君苦留客.]”라고 하였다. 古文眞寶 前集 卷4 二月見梅

100) 지어재(志於齋) : 조선 영조 때 광산에 살던 동강(東岡) 오대하(吳大夏, 16771743)가 강학터로 지어 지냈던 곳으로, 나주목읍지(羅州牧邑誌)에는 삼가면(三加面)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지금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도동에 해당한다. ‘지어논어》 〈술이(述而)도에 뜻을 두고, 덕을 굳게 지키며, 인에 의지하고, 예에 노닐어야 한다.[志於道, 據於德, 依於仁, 游於藝.]”라는 공자 말의 의미를 담고 있다. 오대하는 본관이 나주(羅州), 자는 관보(觀甫), 호는 동강(東岡)이다.

101) 이형중(李亨仲) : 형중은 이종택(李鍾宅, 1865~1942)의 자이다. 본관은 함평(咸平), 호는 육봉(六峯)이다.

102) 푸른 노을 : 뜻이 매우 고상함을 말한다.

103) 고현와(高弦窩) 광선(光善) : 1855~1934. 본관은 장택(長澤), 호는 현와(弦窩)ㆍ복헌(復軒)이다.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과 덕암(德巖) 나도규(羅燾圭)의 문인이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세속과의 인연을 끊고 숨어 지내면서 1906년에 엄이재(掩耳齋)를 지었다. 엄이는 귀를 막고 듣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저서에 현와유고가 있다.

104) 양지(良知)와 양능(良能) : 양지는 저절로 아는 것, 양능은 저절로 능한 것을 말한다. 맹자가 이르기를 사람이 배우지 않고도 능한 것은 양능이요, 생각하지 않고도 아는 것은 양지이다.[人之所不學而能者, 其能也: 所不慮而知者, 其良知也.]”라고 하였다. 孟子 盡心上

105) 지주(砥柱) : 중국의 황하(黃河)의 거센 물살 가운데 우뚝 서 있는 바위산으로, 혼탁한 세속에 휩쓸리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의 절조를 지키는 군자에 비유된다.

106) 상상(祥桑)이 말라 죽는구나 : 상상은 이상한 뽕나무로, 뽕과 곡식의 두 가지 나무가 합하여 한 그루가 되어 생겼다고 하는데, 이는 왕이 공손하지 못하여 받는 벌이라고 한다. ()나라 7대 임금인 태무(太戊) 때 박()이라는 곳에 상상이 나는 변괴가 있었는데, 태무가 덕을 닦자 상상이 저절로 말라 죽었으며, 상나라 왕실은 부흥하고 제후는 귀순하였다고 한다. 十六國春秋 北燕 馮跋

107) : 底本에는 ”. 일반적인 용례에 근거하여 수정.

108) 면추(綿芻) : 면주(綿酒)와 생추(生芻), 소박한 제물(祭物)을 말한다. 면주는 솜에 적신 술로, 옛날 먼 곳으로 조문 갈 때 휴대하기에 간편하게 하기 위하여 술을 솜에 적셔 닭 속에 넣어가지고 갔던 데서 유래하였고, 생추는 새로 베어 싱싱한 풀로, 후한 때 명사인 서치(徐穉)가 곽태(郭泰)의 모친상에 조문하러 갔다가 가난하여 제수를 마련하지 못하자 생추 한 다발을 놓아두고 상주(喪主)를 보지 않은 채 돌아간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後漢書 卷53 徐穉傳

109) 곡란(鵠鸞)……있구나 : 곡란은 고니와 난새라는 뜻으로, 부조(父祖)의 업()을 능히 지킬 만한 훌륭한 자손을 가리킨 말이다. 한유(韓愈)전중소감마군묘지명(殿中少監馬君墓誌銘)물러 나와 소부를 보매, 푸른 대나무와 벽오동나무에 난새와 고니가 우뚝 서 있는 것 같았으니, 그 업을 능히 지킬 만한 사람이었다.[退見少傅, 翠竹碧梧, 鸞鵠停峙, 能守其業者也.]”라는 말이 나온다.

110) 옥경(玉京) : 백옥경(白玉京)으로, 도교(道敎)에서 말하는 천제(天帝)가 산다는 하늘 위 궁궐이다.

111) 말계(末契) : 하교(下交)와 같은 말로, 나이 많은 사람이 나이 적은 사람과 사귐을 뜻하는데, 서로 교제하는 사이에 상대방을 높여 표현하는 말이다.

112) 그윽한……했네 : 그윽한 회포는 오준선의 마음을 말한 것으로, 숨어지내느라 조문하지 못했다는 뜻으로 보인다. 범경(范卿)은 한()나라의 범식(范式)을 가리키는데, 장소(張劭)와 헤어질 때에 2년 뒤 915일에 시골집에 찾아가겠다고 약속을 하였으므로, 그날 장소가 닭을 잡고 기장밥을 지어 놓고[殺雞作黍] 기다리자 과연 범식이 찾아왔다는 고사가 있다. 後漢書 卷81 獨行列傳 范式

113) 효성(孝誠)……있는데 : 두 아들이 있다는 뜻이다.

114) 언덕……날아가네 : 형제 중에 한 사람은 죽고, 한 명이 남았다는 뜻이다.

115) 어등산(魚登山) :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산동에 있는 산이다.

116) 포로(圃老)와 송옹(松翁) : 포로는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 1488~1545)을 가리키고, 송옹는 송천(松川) 양응정(梁應鼎, 1519~1581)으로 양팽손의 아들이다.

117) 두 동이 술 : 시경》 〈빈풍(豳風) 칠월(七月)두 동이의 술로 연향을 베풀다.[朋酒斯饗.]”라는 말이 나온다.

118) 이웃집 피리소리 : 친구들과 함께 지냈던 추억을 생각하며 그리워함을 말한다. ()나라 상수(向秀)가 혜강(嵇康)ㆍ여안(呂安)과 산양(山陽)에서 함께 살며 서로 가까이 지냈는데, 두 벗이 죽은 뒤 상수가 산양의 옛터를 지나다가 이웃 사람이 부는 피리소리를 듣고 옛날 함께 놀던 두 벗을 그리며 인적부(隣笛賦)를 지었다는 고사가 있다. 晉書 卷49 向秀列傳

119) 탁영탁족(濯纓濯足)의 뜻 : 탁영탁족은 갓끈을 씻고, 발을 씻는다는 뜻으로, 세상의 추이에 따라 산다는 말이다. 맹자(孟子)》 〈이루 상(離婁上)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는다.[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라고 하였다. 또한 초나라의 굴원(屈原)이 지은 어부사(漁父辭)의 맨 마지막 부분에도 나온다.

120) 읍상루(挹爽樓) : 나주시 다시면에 임노규(林魯圭)가 지은 누정인데,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121) 염우(廉隅) : 방정한 품행과 굳건한 절조를 말한다. 예기(禮記)》 〈유행(儒行)문장을 가까이하고 염우를 연마한다.[近文章, 砥礪廉隅.]”라고 하였다.

122) 오이……고후(故侯) : 고후(故侯)는 옛 진()나라 때의 동릉후(東陵侯) 소평(邵平)을 이르는데, 동릉후 소평이 진나라가 멸망한 뒤에는 포의(布衣)가 되어 장안성의 청문 밖에 오이를 재배하면서 여생을 보냈던 고사를 말한다. 史記 蕭相國世家

123) 국화……원량(元亮) : 원량(元亮)은 진()나라 도잠(陶潛)의 자이다. 도잠의 음주 이십수(飮酒二十首)중 제5수에, “동쪽 울밑에서 국화꽃을 따다가, 유유히 남산을 바라보노라.[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라는 구절이 있다. 陶淵明集 卷3

124) 오산정(梧山亭) : 광주광역시 오치동의 산 정상에 있는 누정이다.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의 학통을 이은 오산(梧山) 이용헌(李龍憲, 1851~1895)1911년에 정자를 지었으나 완성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자, 그 아들 송천(松泉) 이계익(李啓翼, 1878~1946)1910년에 짓고 부친의 호를 붙였다.

125) 오시(吳市)……따르니 : 오시는 오() 지방의 시가(市街), 지금의 강소성(江蘇省) 소주(蘇州)에 있었던 시장의 거리이다. 선위(仙尉)는 한()나라 때 남창 현위(南昌縣尉)를 지낸 매복(梅福)을 가리키는 말이다. 전한(前漢)의 은사(隱士)인 매복(梅福)은 경학(經學)에 뛰어나 군()의 문학(文學)이 되고 남창 현위(南昌縣尉)를 지냈으나, 왕망(王莽)이 정권을 전횡하자 처자를 버리고 구강(九江)으로 가서 은둔하였다. 뒤에 이름을 바꾸고 오나라 시장의 문지기로 있었다고 하며,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고도 한다. 漢書 梅福傳

126) 화봉인(華封人)……원하네 : 화봉인은 화() 땅의 경계를 지키던 사람이다. ()임금이 화() 땅을 지날 때 그 지역을 봉토(封土)로 받은 사람이 요임금에게 부귀하고 장수하며 아들을 많이 두라고 축원한 일을 말한다. 莊子 天地

127) 결사(結社) : 원래 불교도들의 결사를 말하는데, 전하여 같은 뜻을 지향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128) 이 번역서 전체에 상전벽해에 대한 고사는 조금 풀이서 설명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우선 상전벽해가 변화를 겪는 것이 아닌지? 그럼 상전벽해를 겪다라고 하면 두 번 겪는 것이 아닌지요?

129) 영유(甯兪)처럼……모습 : 영유는 공자가 칭찬한 위()나라 대부 영무자(甯武子)이다. 나라가 편안할 때에는 드러난 공적이 없는 것 같다가 나라가 위태로울 때 충성을 다하여 타국에 잡혀가 죽게 된 임금을 구하였다. 논어》 〈공야장(公冶長)영무자는 나라에 도가 있을 때는 지혜롭고 나라에 도가 없을 때는 어리석었으니, 그 지혜는 따를 수 있으나 그 어리석음은 따를 수 없다.[甯武子邦有道則知, 邦無道則愚, 其知可及也, 其愚不可及也.]”라는 말이 나온다.

130) 주차(朱箚) : 송시열(宋時烈)주자대전차의(朱子大全箚疑)를 말한다. 줄여서 주서차의(朱書箚疑)혹은 주차(朱箚)라고도 한다. 송시열이 미처 손질하지 못한 초고를 권상하(權尙夏)가 정리하려다가 완성하지 못하였는데, 녹문이 송자대전(宋子大全)에서 본차(本箚)를 베껴 내용을 보충하고 교정하는 등 10여 년 동안 공력을 들인 끝에 이 일을 마치고 제목을 차의보(箚疑補)라고 하였다.

131) , 체포되어 대마도(對馬島)유배 생활하던 중에 유소(遺疏)를 구술(口述)하고,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문집에 면암집(勉菴集)이 있다. (번역원db 주석 검색요)

도암집답종제덕장서의 뒤에 씀書陶庵集答從弟德章書後| 성재집(省齋集) | 2015

132) 강한(江漢)과 추양(秋陽) : 도덕이 밝게 드러나 빛나고 깨끗함을 비유한 말로, 선사(先師)를 그리워한다는 뜻이다. 증자(曾子)가 공자의 인품을 찬양하면서 장강(長江)과 한수(漢水)의 물에 깨끗이 세탁해서 따가운 가을 햇볕[秋陽]에 말리면 그보다 더 하얀 것이 있을 수 없는 것과 같다.”라고 비유하였다. 孟子 滕文公上

133) 정대서(鄭大舒) :

대서는 정영원(鄭榮源, 1853~1940)의 자이다. 본관은 진주(晉州), 호는 태호(台湖)이다. 기정진의 문인인 노포(老圃) 정면규(鄭冕奎)의 손자로,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삼태(三台)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기정진과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아 경전에 해박하였다. 학행으로 천거되어 유릉 참봉(裕陵參奉)을 지냈다. 저서로는 태호유고(台湖遺稿)가 있다. (번역원 디비 인물관계 정보)

134) 기송사(奇松沙) : 송사는 기우만(奇宇萬, 1846~1916)의 호이다. 본관은 행주(幸州), 자는 회일(會一)이다. 기정진(奇正鎭, 1798~1879)의 손자로, 그 학업을 이어받아 일찍이 유학자로 이름이 높았다. 김평묵(金平默, 1819~1891) 등과 함께 유생을 이끌고 조정의 개혁을 요구하는 만인소를 올렸으며,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과 싸우다가 체포되어 복역하고 출옥한 다음, 순천에서 다시 의병을 일으킬 계획을 하던 중 고종이 강제로 퇴위를 당하자 해산하고 은둔 생활을 하였다. 저서는 송사집(松沙集)이 있다.

135) 기묘년……: 선사는 기정진(奇正鎭)을 이른다. ??

136) ()과 사()의 해 : 옛날부터 간지(干支)에 용을 말하는 진()과 뱀을 말하는 사()가 들어간 해에는 흉한 일이 일어난다고 믿었다. 여기서는 송사가 죽은 1916년 병진년(丙辰年)을 가리킨다.

137) 정삽(旌翣) : ()은 붉은 천에 사자(死者)의 관직과 성명을 쓴 조기(弔旗)이고, ()은 네모진 화포(畫布)에 다섯 자 길이의 자루를 붙여 상여의 양옆에 세우고 가는 제구(諸具)이다.

138) 대방(帶方) : 남원(南原)의 옛 이름이다.

139) 최정언(崔正彦) : 정언은 최규현(崔圭鉉, 1849~1917)의 자이다. 본관은 수성(隋城), 호는 현호(玄湖)이다. 구한말의 독립운동가로 노사 기정진의 문인이다.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나주에서 송사 기우만이 일으킨 의병 활동에 가담하였고, 1910년 경술국치 이후에는 두문불출하였으며, 일제의 은사금을 거절하였다는 죄목으로 일본군 헌병부대로 끌려가 고초를 겪었다.

140) 숙야재(夙夜齋) : 전라남도 나주에 있는 최규현의 서재이다. 숙야라는 재호는 송사 기우만이 지어준 것이다.

141) 왕상(王祥)의 튀어나온 잉어 : 왕상은 진()나라 때의 이름난 효자이다. 계모가 겨울에 산 물고기를 먹고 싶어 하기에 왕상이 얼음을 깨고 물고기를 잡으러 물에 들어가려 하니 얼음이 저절로 녹아 잉어 한 쌍이 튀어나왔다는 고사를 말한다. 小學 善行

142) ()임금의 닭 소리 : 맹자》 〈진심 상(盡心上)닭이 울면 일어나서 부지런히 선행을 닦는 자는 순임금의 무리이고, 닭이 울면 일어나서 부지런히 이익을 위한 행위를 하는 자는 도척(盜蹠)의 무리이다.[鷄鳴而起, 孶孶爲善者, 舜之徒也, 雞鳴而起, 孶孶爲利者, 跖之徒也.]”라는 말이 나온다.

143) 기구(箕裘) : 키와 가죽옷이라는 뜻으로, 아버지의 뛰어난 자질을 아들이 이어받음을 의미한다. 예기》 〈학기(學記)풀무질을 잘하는 사람의 자식은 반드시 그것을 배워서 갖옷을 만들게 되고 활을 잘 만드는 사람의 자식은 반드시 그것을 배워서 키를 만들게 된다.[良冶之子, 必學爲裘, 良弓之子, 必學爲箕.]”라고 하였다.

144) 옥수(玉樹) : 지란옥수(芝蘭玉樹)의 준말로, 남의 집안의 빼어난 자제를 칭찬하여 부르는 말이다. 세설신어(世說新語)》 〈언어(言語), ()나라 사안(謝安)이 여러 자제에게 어떤 자제가 되고 싶냐고 묻자, 그의 조카인 사현(謝玄)비유하자면 지란옥수가 뜰 안에 자라게 하고 싶습니다.[譬如芝蘭玉樹, 欲使其生於階庭耳.]”라고 대답하였다.

145) 영하정(暎荷亭) : 일암(逸菴) 김정준(金廷浚, 1489~1558)이 지은 정자이다. 기묘사화(己卯士禍)를 맞아 정암 조광조의 원통함을 풀기 위해 상소를 올리는 등 노력하였으나 이루지 못하고 관직을 그만두고 초당을 짓고 시를 읊으며 유유자적했던 곳이다. 당시에는 나주군 대화면이었으나 지금은 장성군 동화면이다.

146) 태을진인(太乙眞人) : 도가(道家)에서 말하는 천신(天神) 가운데에서 가장 존귀한 신으로, 태일진군(太一眞君)ㆍ태일소자(泰壹小子)ㆍ태일(泰一)ㆍ태을(泰乙)이라고도 한다. 북송(北宋)의 저명한 화가인 이공린(李公麟)이 큰 연잎 위에 누운 채로 책을 펴서 읽고 있는 태을진인의 모습을 그린 태을진인연엽도(太乙眞人蓮葉圖)가 유명하다.

147) 봉황대(鳳凰臺) :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에 있는 누대이다.

148) 구포(九苞) : 봉황의 깃털에 나타나는 아홉 종류의 빛으로, 봉황에 대한 미칭이다. 구포는 입은 함부로 울지 않음[口包命], 마음은 법도에 합함[心合度], 귀는 멀리까지 잘 들음[耳聽達], 혀는 소리의 변화를 잘 냄[舌詘伸], 깃의 색은 문채가 남[彩色光], 벼슬은 붉은색임[冠矩朱], 발톱은 날카로움[距銳鈎], 소리는 멀리까지 들림[音激揚], 배는 아무 것이나 먹지 않음[腹文户]의 아홉 가지이다. 初學記 卷30 鳥部

149) 용진사(湧珍山) : 현 광주광역시 광산구 임곡동에 소재한 산 이름이다.

150) 난와(難窩) : 오계수(吳繼洙, 1843~1915)의 호이다.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중함(重涵)이다. 1895(고종32) 을미사변이 일어나 일본인들에 의하여 민비(閔妃)가 시해되자, 이를 토평하기 위하여 기우만(奇宇萬)이 나주에서 의병을 일으킬 때 그에 가담하였다. 경술국치 후 세상과 인연을 끊고 두문불출하던 중 은사금(恩賜金)을 거절한 일로 장성 헌병부대에 끌려가서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도 끝내 굴하지 않았다. 그 뒤로는 영사재(永思齋)에 들어가 오직 독서만으로 생애를 보냈다. 이기론(理氣論)에 있어 이()는 본성(本性)이고, ()는 기형(器形)으로, 둘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 표리와 같이 불리부잡(不離不雜)한 하나라는 일물론(一物論)을 주장하였다. 저서는 난와유고(難窩遺稿)이 있다.

151) 용진정사(湧珍精舍) : 일제 강점기에 오준선(吳駿善)이 후학을 가르치며 머물렀던 곳이다. 1910년 오준선이 일제가 지급한 은사금(恩賜金)을 거부하고 이 정사를 지어 1917년부터 후진을 양성하며 한말 의병장들의 열전을 기술하였으며, 의병부대의 주둔지이자 일본군과의 격전지이기도 하였다.

152) 용 울음소리 : 이백(李白)의 청취적(聽吹笛) 시에 바람이 불어 종산을 감아 도니, 일만 구렁이 다 용의 울음 소리로다.[風吹繞鍾山, 萬壑皆龍吟.]”라고 하여, 본래는 젓대 소리를 형용한 것인데, 여기서는 소나무에 부는 바람 소리의 형용사로 전용하였다.

153) 도가(櫂歌) : 주자(朱子)가 무이정사(武夷精舍)에 머물던 순희(淳煕) 11년 갑진년(1184)에 지은 무이도가(武夷櫂歌) 10수를 말한다. 朱子大全 卷9 6~7

154) 진산(珍山) : 용진정사가 있는 용진산(湧珍山)을 가리킨다. 광주광역시 광산구 사호동과 선동, 지산동 경계에 있는 산이다. 용진산 동쪽으로는 황룡강이 흐르고 있다.

155) 갈재 : 원문의 위령(葦嶺)’은 노령(蘆嶺)이라고도 한다. 전라북도 특별자치도 정읍(井邑)에서 전라남도 장성(長城) 쪽으로 뻗어 있는 재로, 노령산맥(蘆嶺山脈)의 주봉(主峰)이다.

156) 현송(絃誦) : 옛날에 시경을 배울 때 거문고, 비파 등 현악기에 맞추어 노래로 불렀는데 이를 현가(絃歌)’라 하고, 악기의 반주 없이 낭독하는 것을 ()’이라고 하였다. 이 둘을 합하여 현송(絃誦)’이라고 하였으나, 이후에는 대부분 글을 읽는다는 의미로 쓰였다.

157) 욕심 없는 : 원문의 효효(囂囂)’는 스스로 만족하여 욕심이 없는 모양을 말한다. 맹자(孟子)가 송구천(宋句踐)에게 그대가 유세하기를 좋아하는가? 내가 그대에게 유세하는 법을 말해 주겠다. 남이 나를 알아주어도 욕심 부리지 않고 자족하며,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욕심 부리지 않고 자족하는 것이다.[子好遊乎? 吾語子遊. 人知之囂囂, 人不知囂囂.]”라고 하였다. 孟子 盡心上

158) ……듯했네 : 원문의 금성척지(擲地金聲)’는 문장이 아름답고 힘이 있는 것으로, 훌륭한 시문을 말한다. ()나라 손작(孫綽)천태산부(天台山賦)를 지은 뒤, 벗이었던 범영기(范榮期)에게 이 글을 땅에 던져 보았더니 금석의 악기 소리가 나더라.”라고 하였는데, 범영기가 읽어 보고는 칭찬이 끊이지 않았다 한다. 晋書 卷56 孫綽列傳

159) 진사(辰巳) : 진년(辰年)과 사년(巳年)을 말한다. 용사(龍蛇)와 같은 말로 현인군자가 죽는다는 흉세(凶歲)이다.

160) 침문(寢門) : 친구의 죽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원래는 가장 안쪽의 문을 뜻하는데, 보통 내실(內室)의 문을 가리킨다. 예기》 〈단궁 상(檀弓上)형제의 경우에는 사당에서 곡하고, 아버지의 벗의 경우에는 사당문 밖에서 곡하고, 스승의 경우에는 정침(正寢)에서 곡하고, 붕우의 경우에는 침문(寢門) 밖에서 곡하고, 아는 사람의 경우에는 들에서 곡한다.”라고 하였다.

161) 경계하고 삼간 : 원문의 임리(臨履)’는 항상 두려워하는 자세로 조심함을 뜻한다. 시경(詩經)》 〈소아(小雅) 소민(小旻)시에 매우 두려워하고 조심하여 깊은 못에 임한 듯, 얇은 얼음을 밟는 듯이 한다.[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冰.]”라고 하였다.

162) 노옹(蘆翁)의 문하 : 노옹은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의 문하를 말하는데, 여기서는 기정진의 손자인 기우만(奇宇萬)의 문하를 가리킨다.

163) 삼난(三難) : 남조(南朝) 사영운(謝靈運)의 의위태자업중시집서(擬魏太子鄴中詩集序)천하에 좋은 날[良辰], 아름다운 경치[美景], 기쁜 마음[賞心], 즐거운 일[樂事] 네 가지가 다 갖춰지기는 어렵다.” 하였다. 왕발(王勃)의 등왕각서(滕王閣序)네 가지 아름다움[四美]이 갖춰졌다.”라는 것도 이를 뜻한다. 여기서는 이 중 세 가지가 갖추어졌다는 뜻이다.

164) 훈지창화(塤篪唱和) : 훈지는 악기 이름으로, 질나발[]과 지[]이다. 형제가 서로 화목한 것을 말한다. 시경(詩經)》 〈하인사(何人斯)백씨(伯氏)가 질나팔을 불거든 중씨(仲氏)는 젓대를 부는지라, 너와 더불어 한 꿰미에 있는 듯하노니 진실로 나를 모른다고 할진댄 이 세 물건을 꺼내어 너와 맹약하리라.伯氏吹壎, 仲氏吹篪, 給爾如貫, 諒不我知, 出此三物, 以詛爾斯.]”라고 하였다.

165) 오랜 세월 : 원문의 호겁(浩劫)’은 본래 불교의 용어로, 숫자로 셀 수 없는 긴 시간을 의미하는데 속어(俗語)로는 긴 시간과 대재난의 두 가지 의미가 있다.

166) 고종명(考終命) : 사람이 제명대로 살다가 편안히 죽는 것으로, 서경》 〈주서(周書) 홍범(洪範)아홉 번째 오복은, 첫째는 장수이고, 둘째는 부유함이고, 셋째는 강녕함이고, 넷째는 덕을 좋아함이고, 다섯째는 천수를 누리는 것이다.[九五福, 一曰壽, 二曰富, 三曰康寧, 四曰攸好德, 五曰考終命.]”라고 하였다.

167) 말계(末契) : 하교(下交)와 같은 말로, 나이 많은 사람이 나이 적은 사람과 사귐을 뜻하는데, 서로 교제하는 사이에 상대방을 높여 표현하는 말이다.

168) 척서정(陟西亭) : 전라남도 나주시 노안면에 있는 정자로, 고려 후기 무신 정지(鄭地, 1347~1391)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후손 정해일(海鎰, 1858~1925)1915년에 건립한 영당(靈堂)이다. 정지는 본관은 나주(羅州), 시호는 경렬(景烈)으로, 공민왕(恭愍王) 때에 왜구를 평정할 방책을 왕에게 올려 전라도 안무사(全羅道按撫使)가 되고, 뒤에 다시 순천도 병마사(順天道兵馬使)가 되어 순천과 낙안(樂安) 등지에 침입한 왜구를 소탕하였다.

169) 담락재(湛樂齋) : 조진익(趙鎭翼, 1788~1858)과 조진룡(趙鎭龍, 1803~1860) 형제가 이 1841(헌종7) 현 전라남도 순천시 주암면 구산리 구산마을에 지은 강학 장소이다.

170) 지란(芝蘭)과 옥수(玉樹) : 명문가의 우수한 자제를 예찬하는 말이다. ()나라 사현(謝玄)이 숙부인 사안(謝安)에게 비유하면 지란과 옥수가 집안 섬돌에 피어나 향기를 내뿜는 것과 같게 하겠다.[譬如芝蘭玉樹, 欲使其生於庭階耳.]”라고 자신의 소망을 밝힌 고사가 있다. 晉書 卷79 謝玄列傳

171) 달덕사(達德祠) : 전라남도 함평군 월야면에 있는데, 면암 최익현을 배향한 사우(祠宇)이다.

172) 기수(箕山)와 영수() : 기산은 함평읍의 진산이고, 영수는 함평천으로 바로 영천(潁川)을 말한다.

173) 칠분(七分)의 초상화 : 글이나 그림으로는 그 사람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이 7분에 불과하다는 말인데, 초상으로 그 사람의 모습을 잘 표현하였음을 말한다. 정이(程頤)역전(易傳)을 짓고서 문인들에게 주며 단지 7분만 말한 것이니, 배우는 사람들은 반드시 다시 스스로 살피고 궁구해야 한다.[只說得七分, 學者更須自體究.]”라고 하였는데, 문인인 장역(張繹)이 그에 대한 제문을 지으면서 그의 말을 인용하여 선생의 말씀으로 문자에 드러난 것은 7분의 마음이 있고, 단청으로 그려진 것은 7분의 용모가 있다.[先生有言見於文字者, 有七分之心, 繪於丹靑者, 有七分之儀.]”라고 하였다. 二程全書 附錄 祭文

174) 사모하는 마음 : 원문의 갱장(羹墻)’은 경모(敬慕)하고 추념(追念)함을 일상적으로 실천함을 이르는 말이다. 요 임금이 죽은 뒤 순임금이 지극히 사모하여 앉아서는 요 임금을 담장[]에서 보았고, 식사할 때는 국[]에서 보았다고 한다. 後漢書 卷63 李固列傳

175) 삼석(三席) : 세 사람의 자리가 들어갈 수 있는 거리라는 뜻인바, 가르침을 받을 적에 스승과 대하는 거리가 이러했기 때문에 스승을 달리 칭하는 말로 쓰인다. ‘1()을 용납한다는 뜻의 함장(函丈)이 스승을 달리 칭하는 말로 쓰이는 것과 같다. 禮記 文王世子》 《禮記 曲禮上

176) 추양(秋陽)의 생각 : 훌륭한 스승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말한다. 맹자》 〈등문공 상(滕文公上), 증자(曾子)가 공자의 도덕을 칭송하면서 강수와 한수에 씻고 가을볕에 말린 것처럼 깨끗하여 더할 나위 없으시다.[江漢以濯之, 秋陽以暴之, 皜皜乎, 不可尙已.]”라는 말이 나온다.

177) 암비(巖扉) : 암동(巖洞)의 문으로, 은사(隱士)의 처소를 뜻한다. 당나라 맹호연(孟浩然)야귀녹문가(夜歸鹿門歌)암비와 송경은 늘 적요한데, 오직 유인만이 스스로 오고 가네.[巖扉松徑長寂寥, 惟有幽人自來去.]”라는 말이 나온다.

178) 백설가(白雪歌) : 너무도 고상해서 따라 부르기 힘든 노래를 말한다. 춘추 시대 초()나라의 대중 가요인 하리(下里)파인(巴人)은 수천 명이 따라 부르더니, 고상한 백설(白雪)양춘(陽春)의 노래는 너무 어려워서 겨우 수십 명밖에 따라 부르지 못하였다는 이야기가 송옥(宋玉)대초왕문(對楚王問)에 나온다. 文選 卷23

179) 고죽국(孤竹國) : 백이와 숙제의 고국(故國)이다.

180) 자릉대(子陵臺) : 자릉은 엄광(嚴光)의 자()이다. 그가 낚시하던 대를 자릉대(子陵臺) 또는 엄광대(嚴光臺)라고 한다. 엄광은 젊어서부터 이름이 높았고 한나라 광무제(光武帝)와 같이 유학하였는데, 광무제가 즉위하자 성명을 바꾸고 숨어서 나타나지 않았다. 광무제가 찾아서 간의대부(諫議大夫) 벼슬을 주려 하였으나 사양하고 부춘산(富春山)에서 밭 갈며 평생을 마쳤다. 후한서(後漢書)83은일전(隱逸傳) 엄광전(嚴光傳)

181) ()임금의 장수 축원하네 : 임금의 장수를 축원하는 의미를 말한다. 옛날 화 봉인(華封人)이 요 임금에게 수()와 부()와 다남(多男)을 기원하며 축도를 올렸다는 이야기가 장자천지(天地)에 나온다.

182) 근폭(芹曝) : ‘미나리를 바치다는 뜻의 헌근(獻芹)햇볕을 바치다는 뜻의 폭헌(曝獻)을 합친 말로, 하찮은 것이라도 임금께 바치려고 하는 아랫사람의 정성을 의미한다. 헌근은 옛날에 미나리를 즐겨 먹던 가난한 농부가 그 지방 부호에게 미나리가 맛이 좋다고 자랑하여 그 부호가 맛을 보았는데 입만 쏘고 배만 아팠다고 한다. 헌폭은 송()나라의 농부가 따뜻한 봄 햇볕을 쪼이며 그 아내에게 햇볕의 따뜻함을 사람들이 모르니 이 햇볕을 가져다가 임금께 바치면 반드시 상을 내릴 것이다.”라 했다고 한다. 列子 楊朱

183) 한후정(寒後亭) : 전라남도 화순군 쌍봉리에 있는 정자로, 1905년에 양재경(梁在慶)이 지었다.

184) ()ㆍ인()ㆍ용() : 사람이 누구나 지니고 있는 삼달덕(三達德)을 말한다. 중용장구20장에 , , 용 세 가지는 천하의 달덕이다. [知仁勇三者, 天下之達德也.]”라고 하였다.

185) ()ㆍ도()ㆍ교() : 중용장구수장(首章)의 소주(小註)에 파양 이씨가 말하기를 중용장구는 성()ㆍ도()ㆍ교() 세 글자가 책 전체의 강령이 되고, ‘()’라는 한 글자가 세 글자의 강령이 된다.[中庸一書, 性道敎三言爲一篇之綱領, 而道之一字爲三言之綱領.]”라는 말이 나온다.

186) 성명(誠明) : 중용장구21장에 ()으로 말미암아 밝아지는 것을 성()이라 하고 명()으로 말미암아 성()해지는 것을 교()라 이르니, ()하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성()해진다.[自誠明, 謂之性, 自明誠, 謂之敎, 誠則明矣, 明則誠矣.]”라는 말이 나온다.

187) 계구(戒懼) : 계신공구(戒愼恐懼)의 준말이다. 중용장구1장의 도라는 것은 잠시도 떠날 수가 없는 것이다. 떠날 수가 있다면 그것은 도가 아니다. 그런 까닭에 군자는 보이지 않을 때에도 경계하고 근신하는 것이며, 들리지 않을 때에도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것이다.[道也者, 不可須臾離也, 可離非道也. 是故君子戒愼乎其所不睹, 恐懼乎其所不聞.]”라는 말이 나온다.

188) 동오정(東塢亭) : 전라북도 특별자치도 고창군 고창읍에 동오(東塢) 조의곤(曺毅坤, 1832~1893)1885년에 지어 많은 학자와 함께 도학을 논하였던 곳으로, 동오정사(東塢精舍)라고도 불렀다. 처음에는 고창군 고창읍 석정리에 지었는데, 현재는 고창읍 월산리로 옮겨졌다. 편액은 석파(石坡), 곧 대원군(大院君)이 썼으나 지금은 걸려있지 않다. 조의곤은,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사홍(士弘), 호는 동오(東塢)이며, 기정진의 문인이다.

189) 도잠(陶潛)의 울타리 : 도연명이 국화를 따던 울타리라는 말로, 한가한 생활을 의미한다. 도연명의 시 음주(飮酒)동쪽 울타리 아래에서 국화를 따다가, 유연히 남쪽 산을 바라보누나.[采菊東籬下, 悠然見南山.]”라고 하였다. 陶淵明集 卷3 飮酒

190) 소산(小山)에서 계수나무 부여잡았고 : 소산은 한()나라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의 밑에 모인 문사들을 가리키는데, 그들이 지은 초은사(招隱士)계수나무가 무더기로 자라누나 산골 깊은 곳이로다. 꼿꼿하고 굽은 가지 서로 얽혔도다.……계수나무 가지를 부여잡고 애오라지 머무르노니, 범과 표범이 싸우고 큰 곰 작은 곰이 으르렁대도다.[桂樹叢生兮山之幽, 偃蹇連蜷兮枝相繆.……攀援桂枝兮聊淹留, 虎豹鬪兮熊羆咆.]”라고 하였다.

191) 붉은……: 장수하는 노어른의 신선 같은 풍모를 비유한 것이다. 노자(老子)가 소를 타고 서쪽으로 함곡관을 나갈 적에, 관문을 지키던 윤희(尹喜)가 붉은 서기(瑞氣)가 관문 위에 떠 있음을 미리 알고서 노자가 그곳을 통과할 줄 알았다는 고사가 있다. 史記 卷63

192) ……: 원문의 설부고야(雪膚姑射)’장자(莊子)에 나오는 고야산(姑射山)의 신선으로, 살결이 눈처럼 희고 깨끗한 신선을 뜻하는데, 심상면의 아버지가 깨끗하고 건강한 노인임을 칭찬한 말이다.

193) ()나라의 명령(榠靈)나무 : 열자(列子)》 〈탕문(湯問), “()나라 남쪽에 명령(榠靈)이라는 나무가 있으니, 5백 년을 봄으로 삼고, 5백 년을 가을로 삼는다.”라고 하였다.

194) 박석음(朴石陰) 노술(魯述) : 석음은 박노술(朴魯述, 1851~1917)의 호이다. 노사 기정진의 문인이다. 항일의병 활동에 참여하고 문학절의(文學節義)로 세속과의 인연을 끊고 율리전사(栗里田舍)에서 후진을 양성하였다.

195) 북해(北海) 마을의 강성(康成) : 강성은 한()나라 때의 경학자(經學者) 정현(鄭玄)의 자이다. 북해(北海) 고밀(高密) 사람으로, 마융(馬融)의 문인이고 한나라 때의 대표적인 경학가(經學家)로서 삼경(三經)을 비롯한 많은 책의 주석서를 남겼고 당시 순유(純儒)라고 추앙을 받았다. 모시전(毛詩箋)주례(周禮)의례(儀禮)예기(禮記)()등의 주()를 저술하였다.

196) 낙빈(駱賓) 나이의 왕자 : 왕자는 당()나라의 천재 시인 왕발(王勃)을 말한다. 이 두 사람은 당나라 초기 대표적인 시인으로, 모두 어린 나이에 신동으로 이름을 날렸다. 양형(楊炯)ㆍ노조린(盧照鄰) 등과 함께 초당사걸(初唐四傑)로 일컬어졌던 시인이다. 왕발은 6살 때 이미 글을 썼고, 10대 중반에 관직에 나갈 정도로 신동이었고, 낙빈왕은 7살 때 거위를 노래한 시를 지어 온 나라를 놀라게 했다고 한다.

197) 오 장령(吳掌令) : 오광수(吳光洙, 1844~?)를 가리키는데,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덕빈(德賓)이다. 1874년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무안에서 거주하였다.

198) 지잠(芝岑)의 노인 : ()나라 말기 난세를 피해 상산(商山)에 은거했던 네 명의 노인을 말한 것으로, 즉 상산사호(商山四皓)를 가리킨다. 지초를 캐서 먹으며 고결하게 살았던 은자를 말한다.

199) 문헌 선생(文憲先生) : 문헌은 기대승(奇大升, 1527~1572)의 시호이다. 본관은 행주(幸州), 자는 명언(明彦), 호는 고봉(高峯)ㆍ존재(存齋)이다. 성리학에 밝아 이황(李滉)12년에 걸쳐 서한을 교환하였는데, 그 가운데 1559년부터 1566년까지 8년 동안에 이루어진 이른바 사칠논변(四七論辨)’은 유학사상 지대한 영향을 끼친 글로 평가되고 있다. 저서는 고봉집이 있다.

200) 어머니 : 원문의 고당(高堂)’은 높다랗게 지은 집이라는 뜻으로 다른 사람의 부모, 특히 어머니를 높여 부르는 말이다.

201) 냄새 좇아 : 원문의 축취(逐臭)’는 기호(嗜好)가 아주 괴벽(乖僻)한 사람을 좇는다는 뜻으로, 작자 오준선을 가리키는 말이다. 여씨춘추(呂氏春秋)14 우합(遇合)몹시 냄새가 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친척이나 형제, 처첩, 친구들이 아무도 같이 살 수가 없자 스스로 괴로워하다가 바닷가에 홀로 살았다. 그런데 바닷가 사람 중에 그 냄새를 좋아하는 자가 있어 밤낮으로 그를 따라다니며 떠나지 못하였다.[人有大臭者, 其親戚兄弟妻妾知識無能與居者, 自苦而居海上. 海上人有說其臭者, 晝夜隨之而弗能去.]”라는 말이 나온다.

202) 정옥(庭玉) : 뜰의 아름다운 나무라는 뜻으로, 상대방의 자식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203) 자리의 보배 : 자신의 노력에 의하여 뛰어난 학덕을 소유하게 된 유자를 비유할 때 쓰는 표현이다. 노나라 애공(哀公)이 공자에게 자리를 권하자, 공자가 모시고 앉아서 유자는 자신의 자리 위에 진귀한 보배를 준비해 놓고서 초빙해 주기를 기다리는 사람이다.[儒有席上之珍以待聘.]”라고 말한 고사가 있다. 禮記 儒行

204) 기춘담(奇春潭) : 기동준(奇東準, 1860~1918)의 호이다. 본관은 행주(幸州), 자는 평중(平仲)이다. 기대승(奇大升)의 후손으로 노사 기정진의 문인이다.

205) ……의심하고 : 친구를 생각하는 정이 간절한 것을 표현하는 말이다. ()나라 두보(杜甫)가 강남(江南)에 유랑하는 이백(李白)을 생각하여, 그의 꿈을 꾸고 지은 시인 몽이백(夢李白)에 이르기를 달빛이 들보에 가득 비추니, 흡사 그대 안색을 본 듯하오.[落月滿屋梁, 猶疑見顔色.]” 하였다.

206) 아양곡(峨洋曲) : 말하지 않아도 묵묵히 서로를 알아줄 것이라는 말이다. 춘추 시대 백아(伯牙)가 타고 그의 벗 종자기(鍾子期)가 들었다는 아양곡을 가리킨다. 백아가 거문고를 타며 높은 산에 뜻을 두자 종자기가 높디높기가 마치 태산과 같도다![峨峨兮若泰山!]” 하였고, 또 흐르는 물에 뜻을 두자 넓디넓기가 마치 강하와 같도다![洋洋兮若江河!]”라고 하였다. 列子 湯問

207) 이윤(伊尹) : 유신씨(有莘氏)의 들판에서 농사를 짓다가 탕()임금의 재상이 되어 천하를 다스렸다.

208) 술사(述事) : 어버이의 일을 잘 따라서 하는 것을 말한다.

209) 계지(繼志) : 어버이의 뜻을 잘 계승하는 것을 말한다.

210) 향기로운……타버렸네 : 재능을 다 펼치지 못하고 인재가 죽은 것을 애석해 하는 비유한 표현이다.

211) 알려고 애쓰는 : 원문의 분비(憤悱)’, ()은 마음으로 통하려 해도 잘 되지 않는다는 뜻이고, ()는 입으로 표현하려 해도 잘 되지 않는다는 뜻으로, 공부를 하면서 어려운 곳을 알고자 하는 고민과 의욕이 충만한 상태를 말한다. 논어》 〈술이(述而)마음속으로 통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열어 주지 않으며, 애태워하지 않으면 말해 주지 않는다.[不憤不啓, 不悱不發.]”라고 하였다.

212) 난새와……듯하네 : 원문의 난곡정(鸞鵠停)’은 고니가 우뚝 서 있고 난새가 멈춰 서 있는 듯하다는 말로, 사람의 위의(威儀)와 태도가 단정하고 엄숙함을 형용하는 말이다. 당나라 한유(韓愈)가 지은 전중소감마군묘명(殿中少監馬君墓銘)난새와 고니가 우뚝 서 있다.[鸞鵠停峙]”라는 말이 나온다. 古文眞寶後集 卷4 殿中少監馬君墓銘

213) 천하를 경륜할 뜻 : 원문의 호시(弧矢)’상호봉시(桑弧蓬矢)’의 줄임말로, 천지 사방을 경륜할 남아의 큰 뜻을 상징하는 말이다. 옛날에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뽕나무로 활을 만들고 쑥대로 화살을 만들어 천지 사방으로 쏘면서 장차 이처럼 웅비(雄飛)할 것을 기대했던 풍습이 있었다. 예기(禮記)》 〈내칙(內則)나라의 임금이 세자를 낳으면 사인(射人)이 뽕나무로 만든 활로 쑥대로 만든 화살 여섯 개를 천지 사방으로 쏘았다.[國君世子生, 射人以桑弧蓬矢六, 射天地四方.]”라는 말이 나온다.

214) 분전(墳典) : ‘삼분오전(三墳五典)’의 줄임말이다. 본래 삼황(三皇)이 남긴 책을 삼분이라 하고, 오제(五帝)가 남긴 책을 오전이라 하는데, 이를 통틀어 옛 전적을 의미하는 말로 쓰인다.

215) 함지(咸池) : 해가 목욕하는 곳, 곧 해가 막 수면 위로 떠오르는 곳을 말한다. 회남자(淮南子)》 〈천문훈(天文訓)해가 양곡에서 나와 함지에서 목욕한다.[日出於暘谷, 浴於咸池.]”라고 하였다.

216) 봉해(蓬海) : 봉래도(蓬萊島)가 있는 바다로 동해(東海)를 의미하는데, 여기서는 중국의 동해, 즉 우리의 서해를 가리킨다.

217) 태사(太史) : ()나라 사마천(司馬遷)를 가리킨다. 사마천은 천성이 유람하기를 좋아하여 일찍이 20세 때부터 남쪽으로 강수(江水)와 회수(淮水), 북쪽으로는 문수(汶水)와 사수(泗水)를 건너 제()ㆍ노()를 거쳐 양()ㆍ초() 지역까지 두루 유람하였다. 史記 太史公自序

218) 장생(莊生) : 장자(莊子)를 가리킨다. 장자(莊子)소요유(逍遙遊)북쪽 바다에 고기가 있는데, 그 이름을 곤()이라고 한다. 곤의 크기는 몇천 리나 되는지 알 수가 없다. 이것이 변하여 새가 되면 붕()이 된다. 붕의 등도 길이가 몇천 리나 되는지 알 수가 없다.”라는 말이 나온다.

219) 육경(六經) : 유가(儒家)의 기본 경전인 시경서경역경춘추예경악경(樂經)을 가리킨다.

220) 논어(論語) : 원문의 노론(魯論)’은 진()나라의 분서(焚書) 이후 한대(漢代)제론(齊論)고론(古論)노론(魯論)3종의 논어가 있었는데, 노론은 노인(魯人)이 전했다는 것으로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읽는 논어를 말한다.

221) 희요(羲繇) : 희는 복희씨(伏羲氏)가 그린 괘()를 지칭한 것이고, 요는 문왕(文王)이 괘의 아래에 해석을 단 말로, 주역을 가리킨다. 주역참동계(周易參同契)분장주(分章註)복희(伏羲)가 괘를 그리고 문왕(文王)이 요사(繇辭)를 달았으며 주공(周公)이 효사(爻辭)를 지었는데, 모두 합하여 2편인데, 이를 정경(正經)이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222) 수사(洙泗)를 거슬러 올라가고 : 공자(孔子)의 사상까지 거슬러 올라가 유학을 탐구하였다는 말이다. 원문의 수사(洙泗)’는 중국 산동성(山東省)에 있는 두 강인 수수(洙水)와 사수(泗水)이다. 공자가 이곳에서 제자를 가르쳤다고 한다.

223) 심법(心法)……강론했으니 : 송유(宋儒)가 말하는 마음의 본체를 보존해 수양하고 마음의 작용을 성찰하는 법이다. 정이(程頤)ㆍ정호(程顥)와 주희(朱熹)가 창도하였다.

224) ()……사람인가 : 성현의 경지에 오르기를 다짐하여 뜻을 세운다는 말이다. 안연(顔淵)순 임금은 어떤 사람이며 나는 어떤 사람인가? 순 임금이 되려고 노력하는 자는 또한 순 임금 같이 될 것이다.[舜何人也? 予何人也? 有爲者亦若是.]”라고 하였다. 孟子 滕文公上

225) 경전(經傳)……전답(田畓)이니 : 농사는 전답이 있어야 지을 수 있듯이 모든 학문의 시작은 경서의 가르침에 있음을 말한 것이다. 금방 개간한 농지를 치()라고 하고, 3년 된 밭을 여()라고 한다. 한유(韓愈)가 아들 한부(韓符)에게 준 권학시(勸學詩) 부독서성남(符讀書城南)문장이 어찌 귀하지 않겠냐만, 경서의 가르침이 바로 전답이라네.[文章豈不貴, 經訓乃菑畬.]”라고 하였다. 古文眞寶 前集 卷1

226) 본령(本領) : 근본(根本)이 되는 큰 줄거리나 요점(要點)을 뜻한다.

227) ()와 장() : 대들보로 쓸 수 있는 좋은 나무로, 훌륭한 인재를 비유한다. 회남자(淮南子)》 〈제속훈(齊俗訓)()ㆍ남()ㆍ여()ㆍ장()을 베어 다듬어서 혹은 관곽(棺槨)을 만들고 혹은 기둥과 들보를 만든다.[楩楠櫲章而剖梨之, 或爲棺槨, 或爲柱梁.]”라는 말이 나온다.

228) 붕성(崩城)의 눈물 : 춘추 시대 제()나라 장공(莊公)의 대부 기량(杞梁)이 전사하자 그의 아내가 시체를 성 아래에 놓고 열흘 동안 통곡하니 성이 무너졌다 한다. 列女傳일설에는 진 시황(秦始皇) 때 기량(杞良)이란 사람이 장성(長城)을 쌓다가 억울하게 죽음을 당하여 그 시체가 성을 쌓은 돌무더기 속에 들어 있었는데, 그의 아내가 가서 통곡하자 성이 무너지고 기량의 시체가 나타났다 한다.

229) 빈렴(殯斂) : 죽은 이를 염습하여 초빈(草殯)하는 것을 말한다.

230) 수의(禭衣) : 죽은 사람에게 입히는 옷을 말한다.

231) 정성(定省) : 혼정신성(昏定晨省)의 준말로, 밤이면 어버이의 이부자리를 보아 드리고 새벽이면 밤사이 잘 주무셨는지 살피는 것을 이른 말이다. 예기》 〈곡례(曲禮)모든 자식 된 사람의 예는 겨울이면 어버이를 따뜻하게 해 드리고 여름이면 서늘하게 해 드리며, 저녁에는 잠자리를 편안하게 보아 드리고 새벽에는 안부를 살피는 것이다.[凡爲人子之禮, 冬溫而夏凊, 昏定而晨省.]”라고 하였다.

232) 서석(瑞石) : 광주(光州)의 옛 이름이다.

233) 낭주(朗州) : 전라남도 영암(靈巖)의 옛 이름이다.

234) 회암(晦菴) : ()나라 주희(朱熹)의 자이다.

235) 상로(霜露) 밟는 : 선조를 사모하며 그린다는 뜻이다. 예기》 〈제의(祭義)서리와 이슬이 내리면 군자가 이것을 밟고 반드시 슬픈 마음이 있게 되니, 이는 추워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봄에 비와 이슬에 젖으면 군자가 이것을 밟고서 반드시 두려운 마음이 있게 되니, 돌아가신 부모님을 뵐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霜露旣降, 君子履之, 必有悽愴之心, 非其寒之謂也. 春雨露旣濡, 君子履之, 必有怵惕之心, 如將見之.]”라고 하였다.

236) 홍경(弘景)……즐기고 : 홍경은 남조(南朝) ()나라의 도홍경(陶弘景)을 말한다. 도홍경은 모산(茅山)에서 은둔하였으므로 산중재상(山中宰相)’이라고 불리었다. 그는 특히 솔바람 소리를 좋아한 나머지 정원에 온통 소나무만 심어 놓고는 그 음향을 들을 때마다 흔연히 즐거워하였다고 한다.

237) 두옹(杜翁)……듯하네 : 두옹은 두보(杜甫, 712~770)를 가리키는데, 자는 자미(子美)이다. 성당(盛唐) 시대 시인으로 시성(詩聖)이라 불렸으며, 또 이백(李白)과 병칭하여 이두(李杜)라고 일컫는다. 안녹산(安祿山)의 난이 일어나자 적군에게 포로가 되어 장안에 연금되었으나 탈출하여 숙종(肅宗)의 행재소(行在所)에 달려가 좌습유(左拾遺)에 올랐다. 48세에 관직을 버리고 사천성(四川省)의 성도(成都)에 정착하여 완화계(浣花溪)에 초당을 세웠다. 그 후 방랑 중에 동정호(洞庭湖)에서 병을 얻어 59세를 일기로 병사하였다.

238) 백발……있겠네 : 문왕(文王)은 노인을 잘 봉양하니, 문왕의 경로잔치를 기다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맹자》 〈이루 상(離婁上)태공이 주왕을 피하여 동해의 바닷가에 거주하다가, 문왕이 일어났다는 말을 듣고는 흥기하여 말하기를 내가 어찌 그에게 귀의하지 않겠는가. 내가 듣건대 서백은 노인을 잘 봉양한다고 하였다.’ 하였다.[太公避紂, 居東海之濱, 聞文王作, 興曰盍歸乎來? 吾聞西伯善養老者.]”는 말이 나온다.

239) 금릉(金陵) : 전라도 강진(康津)의 옛 이름이다.

240) 금강(錦江) : 나주 영산강을 말하는데, 금강 또는 금천(錦川)으로 불렀다.

241) 손명복(孫明復) : 명복은 손복(孫復)의 자이다. 북송의 손복이 태산에 은거하여 문도를 모아 가르치고 글을 저술하며 특히 춘추(春秋)를 전문으로 가르쳤는데, 세상에 널리 이름이 나서 태산 아래의 손명복[泰山下有孫明復.]’이라 불리었다. 宋名臣言行錄

242) 무이산(武夷山)……있네 : 무이산은 중국 복건성에 있는 산으로, 주자가 무이정사(武夷精舍)를 지어 의리를 강론하였던 곳이고, 파곶(巴串)은 괴산군 화양구곡 중의 하나로 우암 송시열이 의리를 강론하였던 곳이다.

243) 벽의 불빛 빌릴 : 원문의 차벽광(借壁光)’은 한()나라 광형(匡衡)이 공부할 적에 자기 집은 가난하여 촛불이 없고 이웃집에는 촛불이 있었지만, 그 불빛이 자기 집에까지 미치지 못하였다. 그러자 광형은 마침내 자기 집의 벽을 뚫고서 이웃집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으로 책을 읽었다고 하는 고사를 말한다. 西京雜記

244) 결록(結綠) : ()나라의 아름다운 구슬 이름이다.

245) 겨울……공부했네 : 겨울철에 학문에 매진하는 것을 말한다. 동방삭(東方朔)이 한 무제에게 올린 글에 저는 13세에 처음으로 글을 배워 겨울 석 달간 문사를 익혔는데, 그것만으로도 응용하기에 충분하였습니다.[年十三學書, 三冬文史足用.]”라고 하였다. 漢書 東方朔傳

246) 근독(謹獨) : 홀로 있을 때 삼간다는 뜻인 신독(愼獨)과 같은 말이다. 중용장구1장에 숨겨진 것보다 더 나타나는 것이 없고, 미세한 것보다 더 드러나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혼자 있을 때를 삼가는 것이다.[莫見乎隱, 莫顯乎微, 故君子愼其獨也.]”라고 하였다.

247) 단발령(斷髮嶺) : 강원도 금강군 내강리에 있는 고개 이름으로, 신라 말기 마의태자(麻衣太子)가 이 고개에서 삭발하고 출가하였다 하여 단발령이라 하였다. 금강산으로 들어가는 초입에 해당하여 많은 시인이 시를 읊었고, 겸재 정선은 단발령망금강산(斷髮嶺望金剛山)이란 유명한 그림을 남겼다.

248) 영원(靈源) : 영원동(靈源洞)으로 백천동(百川洞)이라고도 하는데, 동쪽에 내수점(內水岾)이 있고 가운데에는 영원암(靈源菴)이 있다.

249) 외물 공()이네 : 원문의 색상(色相)’은 본래 불교 용어로, 겉으로 드러난 만물의 모습을 말한다. 색상은 본래 실체가 없는 공()이라고 한다.

250) 긍월(恒月) : 초승달에서 점점 차오르는 달로, 흥성하여 발전하기를 축원하는 뜻으로 쓰인다. 시경》 〈천보(天保)달이 차오르는 것과 같으며, 해가 떠오르는 것과 같으며, 남산이 장수하는 것과 같아서 이지러지지 않고 무너지지 않으며, 송백이 무성함과 같아서, 그대를 계승하지 않음이 없도다.[如月之恆, 如日之升. 如南山之壽, 不騫不崩. 如松柏之茂, 無不爾或承.]”라는 말이 나온다.

251) 부상(扶桑) : 동해바다에 있는 신목(神木)으로 해가 뜰 때 이 나뭇가지를 스치고 떠오른다고 한다. 산해경(山海經)》 〈해외동경(海外東經)탕곡 위에 부상이 있어 열 개의 해가 목욕하는 곳인데 흑치국의 북쪽에 있다.[湯谷上有扶桑, 十日所浴, 在黑齒北.]”라고 하였다.

252) 마하연(摩訶衍) : 금강산(金剛山)에 있는 유점사(楡岾寺)의 말사(末寺), 신라 때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지었다는 절인데, 만폭동(萬瀑洞)의 가장 깊은 곳에 있다. 금강산에서 이름난 절의 하나로 경관이 빼어난 곳이다.

253) ()의 도끼 : 우임금이 천하 하천(河川)의 물길을 다스릴 적에, 이 도끼로 용문산(龍門山)을 끊어 물길이 통하게 하였다고 하며, 중국 전체를 구주(九州)로 나누어 다스렸다고 한다. 淮南子

254) 유점사(楡岾寺) : 금강산 동쪽에 있는 사찰이다. 신라 때에 고성 태수(高城太守) 노춘(盧椿)이 해안에 이른 53불을 안치하기 위해 창건한 절이라고 한다.

255) 삼일포(三日浦) : 관동팔경의 하나로 고성에 있는 바다의 호수인데, 옛날에 포구였던 것이 오랜 세월이 지나 호수가 되었다. 석호(潟湖)로 북서쪽에 거암이 솟아 있고, 남쪽 호안에는 기암이 많은 구릉이 있다. 신라 시대에 영랑(永郞)ㆍ술랑(述郞)ㆍ남석랑(南石郞)ㆍ안상랑(安祥郞) 등 사국선(四國仙)이 뱃놀이를 하다가 절경에 매료되어 3일 동안 돌아가는 것을 잊었기 때문에 삼일포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256) 광간(狂簡) : 뜻은 크지만 실제는 소략한 사람을 말한다. 논어》 〈공야장(公冶長)우리 고장 젊은이들은 뜻은 크나 일에는 소략하여 찬란하게 문장을 이루었을 뿐 그것을 마름질할 줄 모른다.[吾黨之小子狂簡, 斐然成章, 不知所以裁之.]” 하였다. 주희(朱熹)는 광간을 뜻은 크지만 행동이 제대로 따라 주지 못하는 사람으로 풀었다.

257) 총석정(叢石亭) : 강원도 통천군 고저(庫低)에 있는 정자이다. 그 아래 바닷속에 현무암의 육각 돌기둥이 무리 지어 서 있어 절경을 이룬다. 관동 팔경(關東八景)의 하나이다.

258) 기왕(箕王)의 나라 : 조선을 가리킨다. 기왕은 기자(箕子), ()나라가 망하자 은나라의 왕족이었던 기자가 조선으로 와서 평양에 도읍하였다 하므로 조선을 기왕의 나라라고 한 것이다.

259) 한 잎……: 태을진인(太乙眞人)은 태을선(太乙仙)이라고도 하는데, 천신(天神)의 이름이다. 송나라의 이름난 화가인 이공린(李公麟)태을진인연엽도(太乙眞人蓮葉圖)를 그렸던 바, 그 내용은 대략 태을진인이 하나의 큰 연잎 위에 누운 채로 서책을 펴서 쳐다보고 읽는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인데, 한구(韓駒)가 이 그림에 제()한 시에 태을진인이 연잎 배를 탔는데, 두건 벗고 머리털 내놓아 찬바람에 날리네. 가벼운 바람을 돛으로 삼고 물결을 노로 삼아, 누워서 옥자를 보며 중류에 둥둥 떠 있구나.[太乙眞人蓮葉舟, 脫巾露髮寒颼颼, 輕風爲帆浪爲楫, 臥看玉字浮中流.]”라고 하였다. 古文眞寶 前集

260) 송경(松京) : 고려의 도읍이었던 개성(開城)을 말한다.

261) 만월대(滿月臺) : 개성 송악산 남쪽 기슭에 있는 고려의 궁궐터이다. 홍건적의 침입으로 소실되어 폐허가 되었다.

262) 채하동(彩霞洞) : 만월대 뒤쪽 송악산 기슭에 있는 골짜기이다. 지금의 황해북도 개성시 고려동(高麗洞) 북쪽에 있는 자하동(紫霞洞) 마을로, 가을단풍이 우거진 것이 마치 붉은 노을이 피어오르는 것과 같다고 하여 자하동이라고 하고, 또 오색영롱한 구름이 늘 떠도는 것 같은 골짜기라고 하여 채하동이라고 했다고 한다.

263) 선죽교(善竹橋) : 개성시 선죽동에 있는 고려 시대의 석교(石橋)로 본래의 이름은 선지교(善地橋)이다. 고려 말 충신 정몽주(鄭夢周)가 이방원(李芳遠)이 보낸 조영규(趙英珪) 등에 의해 철퇴를 맞고 피살되었는데, 이때 다리 옆에서 참대가 솟아 나와 선죽교로 고쳐 불렀으며, 당시 정몽주의 핏자국이 지워지지 않고 계속 남아 있다고 한다.

264) 벽옥(碧玉)으로 변했네 : 충신이나 지사를 칭송하는 말이다. 장자(莊子)》 〈외물(外物)장홍이 촉 땅에서 죽었는데, 그의 피를 간직했더니 삼 년 만에 벽옥이 되었다.[萇弘死于蜀, 藏其血, 三年而化爲碧.]”라는 말이 나온다.

265) 숭양(崧陽) : 개성(開城)의 별칭이다.

266) 염옹(濂翁) : ()나라 때의 학자 주돈이(周敦頤), 자는 무숙(茂叔), 호는 염계(濂溪)이다. 태극도설(太極圖說)통서(通書)등을 저술하였다.

267) 삼근당(三近堂) : 전라남도 함평군 월야면에 있는 정자로, 정릉(鄭陵)을 제향하는 재실로 사용하였다.

268) 명성(明誠) : 이치를 밝게 깨달아 성()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 중용장구21장에 성으로 말미암아 밝아지는 것을 성이라 하고, 명으로 말미암아 성해지는 것을 교라 하니, 성하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성해진다.[自誠明, 謂之性; 自明誠, 謂之敎; 誠則明矣, 明則誠矣.]”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269) 삼근(三近) : 중용장구20장의 배우기를 좋아함은 지혜에 가깝고, 힘써 행함은 인에 가깝고, 부끄러움을 앎은 용기에 가깝다.[好學, 近乎知; 力行, 近乎仁; 知恥, 近乎勇.]”라는 구절을 말한다.

270) 그 뜻과……계승하라는 : 원문의 선계선술(善繼善述)’, 선계는 어버이의 뜻을 잘 계승하는 것을 말하며, 선술은 어버이의 사업을 잘 따라 행하는 것을 말한다. 공자가 말하기를 효도란 것은 어버이의 뜻을 잘 계승하며, 어버이의 사업을 잘 따라 행하는 것일 뿐이다.[夫孝者, 善繼人之志, 善述人之事者也.]”라고 하였다. 中庸章句 第19

271) 아름다운 문장 : 원문의 운장(雲章)’은 아름다운 문장이라는 뜻으로 임금의 글씨나 시문 따위를 말한다.

272) 다함이……: 시경》 〈기취(旣醉)에 나온다.

273) 대명매(大明梅) : 매화나무의 한 종류인데, 고경명(高敬命)의 손자인 월봉(月峯) 고부천(高傅川, 1578~1636))1621(광해13) 명나라 특사로 갔을 때 희종 황제에게 받은 홍매 한 그루를 담양군 창평면 유천리에 심은 데서 유래한다.

274) 은후(隱侯)의 시 : 은후는 중국 남조(南朝) ()나라 심약(沈約)의 시호이다. 그의 별범안성(別范安成)시에 평소 젊은 시절에는, 헤어져도 만날 기약이 쉽더니, 그대와 함께 늙어 버린 지금은, 다시 이별할 때가 아니라네.[生平少年日, 分手易前期, 及爾同衰暮, 非復別離時.]”라는 말이 나온다. 古今詩刪 卷9 梁詩

275) 좌석의 진귀한 보배 : 원문의 석상진(席上珍)’은 선비의 재덕(才德)을 뜻한다. 춘추 시대 노 애공(魯哀公)이 일찍이 공자에게 유복(儒服)과 유행(儒行)에 대해 질문한 다음 공자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명하자, 공자가 이르기를 선비는 석상의 보배를 가지고 초빙을 기다립니다.”라고 하였다. 禮記 儒行

276) ()으로……마쳐 : 원문의 금성옥진(金條玉振)’은 맹자(孟子)공자 같은 분을 집대성이라고 하니, 집대성이란 바로 음악을 연주할 때 금속 악기로 발성을 시작하여 옥의 악기로 소리를 거두는 것과 같은 것이다. 금으로 소리를 낸다는 것은 처음의 조리요, 옥으로 거둔다는 것은 마침의 조리이니, 처음의 조리는 지혜의 일이요, 마침의 조리는 성의 일이다.”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孟子 萬章下

277) 태호정(台湖亭) : 전라북도 특별자치도 고창군 성송면에 있는 정자로, 정영원(鄭榮源, 1853~1940)이 건립하였다. 정영원은 본관이 진주(晉州), 자는 대서(大舒), 호는 태호(台湖)이다. 노사 기정진과 송사 기우만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았다. 저서는 태호유고(台湖遺稿)가 있다.

278) 섬계(剡溪)의 흥취 : ()나라 때 산음(山陰)에 살던 왕휘지(王徽之)가 어느 날 밤에 큰 눈이 막 개고 달빛이 휘영청 밝은 것을 보고는 갑자기 섬계(剡溪)에 사는 친구 대규(戴逵)가 생각나서, 즉시 거룻배를 명하여 타고 밤새도록 가서 다음 날 아침에야 섬계에 당도했는데, 대규의 집 문 앞까지 가서는 흥()이 다했다 하여 그의 집에는 들어가지 않고 그대로 되돌아왔던 고사를 말한다. 晉書 卷80 王徽之傳

279) 용성(龍城) : 전라북도 특별자치도 남원(南原)의 옛 이름이다.

280) 주리(侏離) : 중국 고대 서방의 소수민족, 혹은 그들의 음악을 가리키는 말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 오랑캐의 소리를 뜻하기도 한다.

281) 최운재(崔雲齋) : 운재는 최영조(崔永祚, 1859~1927)의 호인데,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 1833~1906)의 아들이다.

282) 면옹(勉翁) : 면암 최익현을 가리킨다.

283) 뜰 지나가던 이() : 공자의 아들 이가 뜰 앞을 지나갈 때 공자가 ()와 예()를 배우라.” 하는 교훈을 하자, 이는 물러나서 시와 예를 배웠다.

284) 주살 피하는 홍곡(鴻鵠) : 뜻이 높고 큰 군자를 비유하고 있다. 한 고조(漢高祖)가 상산사호(商山四皓)가 태자를 보필하는 것을 보고 태자를 폐위하려던 당초의 생각을 바꾸고서 읊은 노래에 큰 고니가 높이 날감이여, 단번에 천 리를 가도다. 날개가 이미 자람이여, 사해를 가로지르도다. 사해를 가로지르나니, 또한 어찌하리요. 아무리 주살이 있은들 오히려 어디에 쓰겠는가.[鴻鵠高飛, 一擧千里. 羽翼以就, 橫絶四海. 橫絶四海, 又可奈何? 雖有矰繳, 尙安所施?]” 하였다. 漢書 張良傳

285) 때까치 혀 : 남방의 언어를 말하는데, 여기서는 왜적의 언어를 가리킨다. 맹자(孟子)지금 남만의 때까치 혀를 놀리는 사람이 주장하는 것은 선왕의 도가 아니다.[今也, 南蠻鴃舌之人, 非先王之道.]”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孟子 滕文公上

286) 식곡(式穀) : 자식을 착한 데로 인도한다는 뜻이다. 시경》 〈소완(小宛)언덕 가운데의 콩을 서민들이 거두어 가는 것처럼, 명령의 새끼를 과라가 업어 데리고 가서 키우니, 그대도 아들을 잘 가르쳐서, 좋은 방향으로 닮도록 하라.[中原有菽, 庶民采之, 螟蛉有子, 蜾蠃負之, 敎誨爾子, 式穀似之.]”라고 하였다.

287) 종장(宗匠) : 원문의 우이(牛耳)’집우이(執牛耳)’의 줄임말로, ‘소귀를 잡는다라는 것은 회맹(會盟)을 주도하는 사람을 가리키는데, 후세에는 주로 어떤 방면에 영도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춘추 시대에 제후들이 회맹을 할 때 소귀를 잘라 피를 받아 삽혈(歃血)을 행하였는데, 이때 회맹을 주관하는 맹주(盟主)가 소귀를 담은 소반을 잡고 회맹에 참석한 자들로 하여금 입에 피를 발라 믿음을 변치 않는 마음을 보이도록 한데서 유래하였다. 춘추좌씨전애공(哀公) 17년조에 제후가 맹약하는 자리에 누가 소의 귀를 잡을 것인가.[諸侯盟, 誰執牛耳?]”라는 말이 나온다.

288) 녹천 고공(鹿泉高公) : 한말 호남 지역의 의병장인 고광순(高光洵, 1848~1907)을 가리키는데, 녹천은 그의 호이다. 본관은 장흥(長興), 자는 서백(瑞伯)이다.

289) 삼경(三逕)의 국화 : 삼경은 전한(前漢) 때 장후(蔣詡)가 두릉(杜陵)에 은거하면서 집 안에 세 갈래 길을 내고 소나무ㆍ대나무ㆍ국화를 심어 당시 고사(高士)였던 양중(羊仲)과 구중(求仲) 두 사람하고만 어울렸던 데에서 유래한다. 도잠(陶潛)귀거래사(歸去來辭)세 오솔길은 묵었으나, 소나무와 국화는 아직 남아 있도다.[三徑就荒, 松菊猶存.]”라는 말이 나온다.

290) 아홉 줄기 지초(芝草) : 지초는 선초(仙草)의 이름이다. 한서(漢書)선제기(宣帝紀)함덕전(函德殿) 동지(銅池) 가운데 금지초 아홉 줄기가 자랐다.”라는 말이 나온다.

291) 고니와 난새 : 뛰어난 후손들을 말한다. 한유(韓愈)전중소감 마군 묘명(殿中少監馬君墓銘)푸른 대 푸른 오동에 난새와 고니가 우뚝 선 듯하니, 능히 그 가업을 지킬 만한 이였다.[翠竹碧梧 鸞鵠停峙, 能守其業者也.]”라는 말이 나온다.

292) 양암정(羊巖亭) : 광주광역시 광산구 어등산의 북쪽 황룡강 가에 있었던 정자이다. 양암처사(羊巖處士) 최형(崔衡, 1663~?)이 학문을 강구하며 소요하던 정자였다.

293) 대로(大老)……있고 : 대로는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1607~1689)를 가리킨다.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이 양암정 중건하면서 쓴 양암정기(羊巖亭記)에 전하고 있다.

294) 소산정(小山亭) : 환학(喚鶴) 조여심(曺汝諶)이 문인 묵객들과 더불어 소요하던 유적을 기리기 위해 후손인 동호당(桐湖堂) 조은환(曺殷煥)1927년에 건립한 정자로, 전라남도 담양군 고서면에 있다.

295) 초은시(招隱詩) : ()나라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이 지은 시편(詩篇)초은사(招隱士)를 말한다. 이 시는 관직에서 물러나 산림에 은거해 지내면서 자신의 몸을 깨끗이 하는 것을 노래하였다.

296) 뛰어난 후손 : 원문의 난옥(蘭玉)’은 지란옥수(芝蘭玉樹)의 줄임말로, 남의 집안의 빼어난 자제를 칭찬하여 부르는 말이다. 세설신어(世說新語)》 〈언어(言語), ()나라 사안(謝安)이 여러 자제에게 어떤 자제가 되고 싶냐고 묻자, 그의 조카인 사현(謝玄)비유하자면 지란옥수가 뜰 안에 자라는 것처럼 되고 싶습니다.[譬如芝蘭玉樹, 欲使其生於階庭耳.]”라고 대답하였다.

297) 벽호정(碧壺亭) : 전라남도 구례군 산동면에 1920년 쯤 지어졌다고 알려지고 있으나 지금은 없다. 망호정(望壺亭)이라고도 불렀다.

298) 김연사(金蓮史) : 김택주(金澤柱, 1855~1926)의 호이고, 다른 호는 회석(晦石)이다.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평집(平集)이다. 1893년 호남 지역의 유생을 이끌고 남원 지역에서 위정척사운동을 주도하였고, 190511월 을사늑약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

299) 자양(紫陽) : ()나라 주희(朱熹)를 가리킨다. 주희의 아버지 주송(朱松)이 자양산(紫陽山)에서 글을 읽었는데, 뒤에 주희가 복건(福建) 숭안(崇安)에서 살면서 정사의 이름을 자양서실(紫陽書室)’이라 명명하여 잊지 아니한다는 뜻을 표하였다.

300) 회헌(晦軒) : 안향(安珦, 1243~1306)의 호이다. 처음 이름은 유(),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사온(士蘊), 시호는 문성(文成)이다. 원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주자전서(朱子全書)그리고 공자(孔子)와 주자(朱子)의 화상을 가져옴으로써 우리나라에 주자학을 처음 도입하였다. 문묘(文廟)와 임강서원(臨江書院)ㆍ회헌영당(晦軒影堂)ㆍ소수서원(紹修書院)에 제향되었다.

301) 흐르는 물 : 원문의 활수(活水)’는 주자의 관서유감(觀書有感)묻거니 어이하여 그처럼 맑을까, 근원에서 콸콸 물이 솟아나기 때문일세.問渠那得淸如許? 爲有源頭活水來.]”라는 말이 나온다. 朱子大全 卷2

302) 봉호산(蓬壺山) : 신선이 산다는 삼신산(三神山)의 하나인 봉래산(蓬萊山)의 별칭으로 그 모양이 병과 같이 생겼다 하여 이름한 것인데, 여기서는 금강산을 가리킨다.

303) 유경(柳京) : 버드나무가 많은 도시라는 뜻으로, 평양(平壤)의 옛 이름이다.

304) 금초 학사(錦樵學士) : 무안 출신인 오광수(吳光洙, 1843~1925)을 말한다.

305) 기성(箕星)을 탔네 : 어진 신하의 죽음을 가리킨 것이다. ()나라 재상(宰相) 부열(傅說)은 죽은 뒤에 기성(箕星)을 타고 하늘에 올랐다고 한다.

306) 명이(明夷) : 주역64괘의 하나로 내괘(內卦)는 문명(文明)의 상인 이괘(離卦)이고, 외괘(外卦)는 유순의 상인 곤괘(坤卦)이다. 군자가 소인에게 해침을 당하는 어려운 때를 뜻하는 말이다. 주역》 〈명이괘(明夷卦)밝음의 덩어리가 땅속으로 들어가는 상이 명이이니, 군자는 이 상을 보고서 무리를 대할 적에 어둠을 써서 밝게 한다.[明入地中, 明夷, 君子以, 莅衆, 用晦而明.]”라고 하였다.

307) 상제(上帝)……불러가니 : 향안리(香案吏)는 원래 하늘의 궁궐에서 옥황상제를 모시는 관리를 말하는데, 여기서는 궁중에서 임금을 수행하는 관원인 오 장령(吳掌令)을 가리킨다. 당나라 원진(元稹)이주택과우낙천(以州宅夸于樂天)나는 옥황상제의 향안을 담당하는 아전이었던지라 인간 세상에 귀양 와서도 봉래산에 머문다네.[我是玉皇香案吏, 謫居猶得小蓬萊.]”라는 말이 나온다.

308) 상서로운 바위 : 광주광역시에 있는 서석산(瑞石山), 즉 무등산(無等山)을 가리킨 듯하다.

309) 화표(華表)에 신선(神仙)의 새 : 호표는 화표주(華表柱), 요동 사람 정영위(丁令威)가 신선이 되고 나서 1천 년 만에 학으로 변해 다시 고향을 찾아와서는 요동 성문의 화표주(華表柱) 위에 내려앉았는데, 소년 하나가 활을 쏘려고 하자 허공으로 날아올라 배회하다가 탄식하면서 떠나갔다는 전설이 전한다. 搜神後記 卷1

310) 영양(潁陽) : 중국 영수(潁水)의 북쪽으로, 은자인 소부(巢父)와 허유(許愈)가 이곳에 은거하였다고 한다.

311) 창랑(滄浪) : 굴원(屈原)어부사(漁父辭)에 나오는 강 이름으로, 속세를 벗어난 은자가 부르는 노래의 대명사이다. 맹자》 〈이루 상(離婁上)에 어떤 동자가 창랑수가 맑으면 내 갓끈을 빨고, 창랑수가 탁하면 내 발을 씻으리라.”라고 노래하였는데, 공자(孔子)는 이 노래를 듣고서 물이 맑으면 갓끈을 빨고 물이 탁하면 발을 씻는다고 했으니, 모두가 자기 스스로 취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나온다.

312) 복룡산(伏龍山) : 광주광역시 광산구 용곡동에 있는 산인데, 이중권(重權)이 살았던 곳으로 추정된다.

313) 세한(歲寒) : 곤궁할 적에도 지조와 의리를 지키는 것을 이른다. 공자가 일찍이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뒤늦게 시듦을 알 수 있다.[歲寒然後, 知松柏之後彫也.]”라고 하였는바, 이는 혼란한 세상이나 곤궁한 때를 당하여야 군자의 변치 않는 절개를 볼 수 있음을 비유한 것이다. 論語 子罕

314) 운곡서사(雲谷書舍) : 황철원(黃澈源, 1878~1932)이 학문을 닦으면서 지냈던 곳으로, 전라남도 화순군 도림면에 있다. 황철원은 본관이 장수(長水), 자는 경함(景涵), 호는 중헌(重軒)이다. 기정진의 제자인 정의림(鄭義林, 1845~1910)과 정재규(鄭載圭, 1843~1911)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저서는 중헌집(重軒集)이 있다.

315) 운곡(雲谷)이란……것이라네 : 운곡은 주희(朱熹)가 초당을 짓고 독서하던 산 이름으로, 회암집(晦庵集)78에 주희의 운곡기(雲谷記)가 수록되어 있다. ‘민옹(閩翁)’은 민() 지방에서 살았던 주자(朱子)를 높여 칭한 것으로, 민 지방은 지금의 복건성(福建省)이며 당시에는 복주(福州)로 불렸다.

316) 춘곡정(春谷亭) : 전라북도 특별자치도 고창군 고창읍에 있는 정자로, 1929년에 임재환(林在煥, 1852~1938)이 늘그막에 학문하던 곳이다.

317) 평암자(平菴子) : 염재균(在均)의 호로 추정된다.

318) 파교(灞橋) : 장안(長安) 동쪽의 파수(灞水)에 놓인 다리를 가리키지만 일반적으로 시상(詩想)이 잘 떠오르는 곳을 의미한다. ()나라 때 재상(宰相) 정계(鄭綮)가 본디 시()를 잘했는데 혹자가 정계에게 상국(相國)께서는 요즘 새로운 시를 짓습니까?”라고 묻자, 대답하기를 시상은 바람 불고 눈 내리는 가운데 파교를 지나가는 나귀의 등 위에 있는데, 여기서 어떻게 시를 얻을 수 있겠는가?[詩思在灞橋風雪中驢子上, 此何以得之.]”라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氏族大全

319) 고산처사(孤山處士) : ()나라 인종(仁宗) 때의 은자(隱者) 임포(林逋)를 가리키는데, 항주(杭州)에 돌아와 서호(西湖)의 고산(孤山)에 집을 짓고 사니, 장가도 들지 않고 자식도 없이 이곳에 살면서 오직 매화와 학()을 기르며 살아 고산처사(孤山處士)라 하였다. 매화를 아내로 삼고 학을 자식으로 삼았다.[梅妻鶴子]’라고 말하기까지 하였다. 宋史 卷457 林逋列傳

320) 향사(香社) : 당나라 회창(會昌) 연간에 백거이(白居易)가 벼슬을 그만두고 향산(香山)의 승려 여만(如滿)과 향화사(香火社)를 결성하고 직접 수행하며 자호(自號)를 향산거사(香山居士)라 하였다. 이즈음 나이가 많고 벼슬에서 물러난 여덟 사람과 낙양(洛陽)에 모여 모임을 결성하니, 향산구로회(香山九老會)이다. 그 구성원은 백거이를 비롯하여 호고(胡杲)ㆍ길교(吉皎)ㆍ유진(劉眞)ㆍ정거(鄭璩)ㆍ노정(盧貞)ㆍ장혼(張渾)ㆍ이원상(李元爽)과 승려 여만(如滿)이다. 舊唐書 卷166 白居易列傳

321) 아몽(阿蒙) : 삼국시대 오()나라 장수 여몽(呂蒙)을 말한다. 여몽이 군무(軍務)에만 종사하다 손권(孫權)의 권유로 열심히 독서하여 노사숙유(老士宿儒)보다 나을 정도의 학식을 쌓았는데, 노숙(魯肅)이 그와 담론해 보고는 이미 예전 오나라의 아몽이 아니구려.”라고 하자, 여몽은 선비는 이별한 지 3일이면 눈을 비비고 다시 봐야 합니다.[士別三日, 卽更刮目相對.]”라고 답하였다. 三國志 吳志 呂蒙傳

322) 태어난 날 헤아려 : 원문의 남규지초(覽揆之初)’는 굴원(屈原)이 지은 이소(離騷)선친께서는 내가 태어나던 때를 헤아리시고, 비로소 나에게 아름다운 이름 주셨네. 이름을 정칙이라 하고, 자를 영균이라 하셨네.[皇覽揆余于初度兮, 肇錫予以嘉名. 名余曰正則兮, 字余曰靈均.]”라는 말이 나온다.

323) 춘주(春酒) : 시경》 〈빈풍(豳風) 칠월(七月)“8월에 대추를 따고 10월에 벼를 수확하여 춘주를 빚어다가 장수를 기원하네.[八月剝棗, 十月穫稻, 爲此春酒, 以介眉壽.]”라고 한 것에서 유래하여 술을 춘주라고도 하는데, 겨울에 빚어 봄에 익기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당나라 이후로는 좋은 술의 이름에 자를 붙였다.

324) 초은정(樵隱亭) : 오준선의 기문에 따르면 북구 효령동 죽취봉 아래의 학동마을 남쪽에 지었다고 했다. 초은(樵隱) 이호헌(李顥獻, 1858~1919)이 정자의 터를 닦았으나 이를 다 이루지 못해 아들 이상호(李相皓)와 이상학(李相鶴)이 지어 아버지의 아호를 따라 초은정이라 했다. 오늘날 본래의 정자는 없어지고 북구 수곡동으로 옮겨 정각정으로 이름을 바꿨다.

325) 만곡사(萬谷祠) : 전라남도 장성군 삼서면에 있는 사당이다. 1791(정조15)에 송혜(松蹊) 봉유례(奉由禮, 1354~1419)ㆍ풍애(楓崖) 봉즙(奉楫, 1378~1439)ㆍ묵헌(黙軒) 봉여해(奉汝諧, 1419~1456) 등을 추모하기 위해 단을 설치했던 곳이다. 그 뒤 정조 17(1793)에 신당인 만곡사를 세워 봉여해만 모시다가 1862(철종13)에 봉유례ㆍ봉즙ㆍ봉단의(奉端懿, 1538~1592)를 추가로 모시게 되었다. 1868(고종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03년에 다시 세웠다. 봉유례는 봉여해의 조부로 고려 때 전리 판서(典理判書)를 역임하였다. 봉즙은 봉여해의 부친이다. 봉여해의 자는 화보(和甫)이며, 박팽년(朴彭年)ㆍ성삼문(成三問) 등과 함께 박중림(朴仲林)의 문하에서 수학, 학문으로 명성을 떨쳐 학행(學行)으로 사옹원 별좌(司饔院別坐)가 되었으며, 1456(세조2)에 성삼문 등 사육신(死六臣)의 단종 복위 사건이 일어나자 이에 가담한 혐의로 사형을 당했다.

326) 낭주(朗州) : 전라남도 영암(靈巖)의 옛 이름이다.

327) 강석(講席) : 원문의 치유(緇帷)’는 검은 휘장을 친 것처럼 숲이 무성하게 우거진 곳으로, 고인(高人) 현사(賢士)가 학문을 강론하는 장소를 말한다. 장자(莊子)》 〈어부(漁父)공자가 치유의 숲에서 노닐고 행단 위에서 휴식을 취하였는데, 제자들은 글을 읽고 공자는 노래를 부르며 거문고를 타고 있었다.[孔子遊於緇帷之林, 休坐乎杏壇之上, 弟子讀書, 孔子絃歌鼓琴.]”라는 말이 나온다.

328) 푸른 눈동자를 비볐네 : 남의 학식이 부쩍 향상한 것을 보고 놀란다는 괄목상대(刮目相對)의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 삼국 시대 오()나라 여몽(呂蒙)이 노숙(魯肅)에게 선비가 서로 헤어지고 나서 사흘만 지나도 괄목상대하게 되는 법이다.[士別三日, 卽更刮目相待.]”라고 말한 일화가 있다. 三國志 卷54 吳志 呂蒙傳

329) 흰 망아지 : 현자(賢者)나 은사(隱士)가 타고 다니는 말인데, 말을 묶어 놓아 어진 이가 떠나는 것을 만류하는 것이다. 시경》 〈백구깨끗한 흰 망아지가 내 밭곡식 먹었다 핑계 대고 발을 동여매고 고삐를 묶어서 오늘 아침 더 오래 있게 하여 귀한 이 손님을 더 놀다 가게 하리라.[皎皎白駒, 食我場苗, 縶之維之, 以永今朝, 所謂伊人, 於焉逍遙.]”라는 말이 나온다.

330) 해가 남쪽에 이르렀다고 : 원문의 일남지(日南至)’는 태양이 남쪽에 이른다는 것으로, 동지(冬至)를 가리킨다. 춘추좌씨전희공(僖公) 5년 기사에 태양이 남쪽에 이르렀다.[日南至]” 하였는데, 두예(杜預)의 주()동짓날에는 태양이 남쪽 끝에 있다.[冬至之日, 日南極.]” 하였다.

331) 우레가 돌아왔으니 : 주역의 복괘(復卦)를 형용한 것으로, 동지(冬至)가 되었다는 말이다. 동지가 되면 밑에서 일양(一陽)이 시생(始生)하는 지뢰복(地雷復)의 괘()를 이루게 되는데, 이는 땅속에서 우레가 울리는 것을 상징한다.

332) 휘흠(徽欽) : 송나라 흠종(欽宗)과 휘종(徽宗)의 병칭으로, 금나라의 침입을 받아 포로로 잡혀갔다.

333) 진회(秦檜) : 중국 송()나라 말기의 간신이다. ()나라와의 화친을 적극 주장하여 송나라의 중흥을 방해하였을 뿐만 아니라 충신 악비(岳飛)를 죽이고, 장준(張浚)ㆍ조정(趙鼎) 등을 내쫓고 정권을 마음대로 농락한 결과, 송나라를 패망의 길로 이르게 하였다.

334) 장허(張許) : 장순(709~757)과 허원(許遠, 709~757)의 병칭이다. 당나라 현종(玄宗) 때의 충신들로 장순은 진원(眞源)의 현령이었고 허원은 수양 태수(睢陽太守)였는데, 천보(天寶) 연간에 안녹산(安祿山)이 반란을 일으키자 함께 군사를 일으켜 강회(江淮)의 보장(保障)인 수양성(睢陽城)을 지켰으나 중과부적으로 성이 함락되자 함께 죽어 순국하였다. 舊唐書 卷187 張巡傳

335) 제운(霽雲) : 남제운(南霽雲)을 말한다. 안녹산(安祿山)이 반란을 일으키자 남제운은 장순(張巡)과 허원(許遠)을 따라 하남성 수양성을 지켰으나 포로가 되었고, 절개를 지키다가 순절하였다.

336) 식희(飾喜) : 기쁨을 드러낸다는 뜻으로, 음악을 연주하며 잔치를 베푸는 것을 뜻한다. 예기(禮記)》 〈악기(樂記)음악은 선왕이 기쁨을 드러내는 방법이었으며, 군대와 부월은 선왕이 노여움을 드러내는 방법이었다.[夫樂者, 先王之所以飾喜也, 軍旅鈇鉞者, 先王所以飾怒也.]”라는 말이 나온다.

337) 평상의……아름답고 : 시경》 〈여왈계명(女曰鷄鳴)에 부부의 화락한 모습을 형용하여 자리에 있는 금슬도, 고요하고 아름답지 않음이 없도다.[琴瑟在御, 莫不靜好.]”라는 구절이 나온다.

338) ()……가지 : 원문의 옥수경지(玉樹瓊枝)’는 고귀한 가문의 자제를 일컫는 말이다. 사안(謝安)이 여러 자제들에게 왜 사람들은 모두 자기의 자제가 출중하기를 바라는가?”라고 물었는데, 조카 사현(謝玄)이것은 마치 지란(芝蘭)과 옥수(玉樹)가 자기 집 정원에서 자라나기를 바라는 것과 같습니다.”라고 하였다. 晉書 卷79 謝安列傳

339) 선경(善慶) : 조상이 선덕을 쌓아 자손에게 끼친 복록을 일컫는다. 주역》 〈곤괘(坤卦) 문언(文言)선행을 쌓은 집안은 반드시 자손에게 남은 경사가 있다.[積善之家, 必有餘慶.]”라는 말이 나온다.

340) 동방삭(東方朔) : 전한(前漢) 무제(武帝) 때의 문신으로, 자는 만천(曼倩)이다. 해학과 변설(辯舌), 직간(直諫)으로 무제의 총애를 받아 수십 년간 측근으로 있으면서 태중대부 급사중(太中大夫給事中)까지 올랐다. 서왕모의 복숭아를 훔쳐 먹고 장수하여 삼천갑자를 살았다는 속설이 있다. 史記 卷126 滑稽列傳

341) 금슬(琴瑟)……조화롭고 : 부부 사이의 정이 매우 두텁고 화락함을 말한 것이다.

342) 뽕나무……화살 : 천하를 경영하려는 남아의 큰 포부를 뜻한다. 고대에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뽕나무 활에 쑥대 화살을 메워서 천지 사방에 쏨으로써 장차 천하에 원대한 일을 할 것을 기대하였던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禮記 內則

343) 남전(藍田) : 미옥(美玉)의 생산지로 유명한 중국 섬서성(陝西省)의 고을 이름이다.

344) 음덕(陰德) : 원문의 음즐(陰騭)’음즐(陰隲)’과 같으며 음복(陰福), 곧 하늘이 말없이 보살펴 주는 복을 말한다. 서경》 〈주서(周書) 홍범(洪範)하늘은 백성들에게 음복을 주어 그들의 삶을 돕고 화합하게 한다.[惟天陰騭下民, 相協厥居.]”라는 말이 나온다.

345) 무송정(撫松亭) : 광주광역시 남구 칠석동에 있는 정자이다. 서태환(徐台煥, 1857~1940)이 세상을 비관하여 숨어 지내기 위해 1922년에 지었다.

346) 북신(北辰) : 북극성으로, 임금을 의미한다.

347) 형제(兄弟) : 원문의 체악(棣萼)’은 아가위꽃을 받치고 있는 꽃받침을 말하는데, 꽃과 꽃받침은 한 가지에서 나왔다 해서 형제간의 우애를 뜻한다. 시경》 〈소아(小雅) 상체(常棣)아가위의 꽃이여, 꽃받침이 화사하지 않는가. 무릇 지금 사람들은, 형제만 한 이가 없느니라.[常棣之華, 鄂不韡韡? 凡今之人, 莫如兄弟.]”라는 말이 나온다.

348) 수초(遂初)의 뜻 : 벼슬을 그만두고 은거하려고 했던 본래의 뜻이라는 말이다. ()나라 손작(孫綽)수초부(遂初賦)를 지어 산림(山林)에 숨어 살려는 자신의 뜻을 서술한 고사가 있다. 晉書 卷56 孫楚列傳 孫綽

349) 예위(禮闈) : 과거(科擧)의 회시(會試) 또는 그 회시를 보이는 장소를 지칭하며, 예조(禮曹)에서 주관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예위(禮圍)’라고도 한다.

350) 들판 할미새 : 형제간의 우애를 상징하는 말이다. 시경》 〈소아(小雅) 상체(常棣)들판에 있는 할미새처럼, 급하고 어려울 땐 형제들이 돕는다네. 좋은 벗이 매양 있다 해도, 그저 길게 탄식할 뿐이라오.[鶺鴒在原, 兄弟急難. 每有良朋, 況也永歎.]”라는 말이 나온다.

351) 만사(輓詞) : 원문 해가(薤歌)’는 해로가(薤露歌),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는 노래이다. 상여가 나갈 때 부르는 노래인데, 원래 옛날 해로가1()염교 위 아침 이슬은 어찌 그리 빨리 마르는가.[薤上朝露何易晞.]”로 시작하기 때문에 이런 명칭이 붙게 되었다.

352) 백종(伯鍾)……끊어지고 : 백종은 백아(伯牙)와 종자기(鍾子期)의 병칭으로, 옛날에 백아는 거문고를 잘 타고 벗 종자기는 거문고를 잘 감상하였다. 백아가 높은 산을 생각하고 연주하면 종자기는 대번에 좋구나! 우뚝하기가 태산 같도다![善哉! 峨峨兮若泰山.]” 하며 감탄하였고, 흐르는 물을 생각하고 연주하면 좋구나! 넘실대는 것이 강하와 같도다.[善哉! 洋洋兮若江河.]”라고 감탄할 정도로 백아의 마음을 잘 이해하였다. 뒤에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자기의 연주를 이해할 사람이 없다며 더 이상 거문고를 연주하지 않았다고 한다. 列子 湯問

353) 장범(張范)처럼……갈라졌다네 : 장범은 동한(東漢)의 장소(張劭)와 범식(范式)을 아울러 일컬은 말이다. 후한(後漢) 때 이 두 사람은 절친한 사이였고 서로 신의가 돈독하였다. 범식의 꿈에 장소가 나타나 말하기를 나는 며칠에 죽고 언제 장사를 치러 영원히 황천으로 돌아갈 것이네. 그대가 나를 잊지 않았다면 그때 와주지 않을 텐가?” 하였다. 범식은 서둘러 길을 떠났으나 그가 미처 도착하기 전에 상여가 발인하여 무덤을 쓰게 되었다. 그런데 널이 계속 움직이지 않고 있다가, 마침 범식이 도착하여 통곡하며 말하기를 여보게 떠나게나. 생사의 길이 갈렸으니 이제 길이 하직하세.” 하고 상여줄을 잡아끌자, 비로소 움직여 손수 무덤을 조성한 뒤에 떠났다고 한다. 後漢書 范滂列傳, 獨行列傳

354) 동생(董生)의 나무함 : 동생은 당()나라 때의 고사(高士) 동소남(董邵南)을 말한다. 한유(韓愈)가 지은 동생행(董生行)! 동생이여. 아침이면 나가 밭 갈고, 밤이면 돌아와 옛사람의 책을 읽도다. 종일토록 쉬지 못하였으니, 혹은 산에서 나무하며, 혹은 물에서 고기 잡네. 부엌에 들어가 맛있는 음식을 장만하고 당()에 올라 안부를 물었네.[嗟哉董生, 朝出耕, 夜歸讀古人書. 盡日不得息, 或山而樵, 或水而漁. 入廚具甘旨, 上堂問起居.]”라고 하였다. 小學 善行

355) 선조에게……: 서경》 〈군아(君牙)지금 그대에게 명하노니 나를 도와 나의 다리와 팔과 심장과 허리가 되어, 옛날에 하던 일을 이어 그대의 조고를 욕되게 하지 말라.[今命爾, 予翼, 作股肱心膂, 纘乃舊服, 無忝祖考.]”라는 말이 나온다.

356) 신경의(愼敬儀) : 경의는 신종봉(愼宗鳳, 1854~?)의 자이다. 본관은 거창, 호는 전긍재(戰兢齋)이다. 최익현의 문인이며 전라남도 영암군 출신이다.

357) 아침저녁으로……여겼다 : 장자》 〈제물론(齊物論)만세 후에라도 이 이야기의 뜻을 아는 대성인을 한번 만난다면, 이것은 아침저녁으로 만나는 것과 같다.[萬世之後而一遇大聖, 知其解者 是旦暮遇之也.]”라는 말이 나온다.

358) 주자(朱子)……만들어진다 : 주자가 진동보(陳同甫)에게 보낸 편지에 나온다. 朱子大全 卷36

359) 공경을 유지하는 : 원문의 지경(持敬)’은 거경(居敬) 또는 주경(主敬)이라고도 한다. 주희가 정자(程子)본성을 함양하는 방법은 반드시 경()으로써 해야 한다.’라고 한 주경설(主敬說)의 의미를 드러내 강조한 용어이다. 곧 경은 사물을 대하면서 마음을 오직 한 곳에 집중한다는 뜻의 주일무적(主一無適)’을 대변한 명사인데, 이와 같은 자세를 견지한다는 것이다.

360) 오봉정사(五鳳精舍) : 전라남도 구례군 문척면에 있는 강학소로, 임현주(林顯周, 1858~1934)이 설립한 것이다. 임주현은 본관이 평택(平澤), 자는 희서(希瑞), 호는 경당(警堂)이다. 최익현의 문인으로 최익현과 함께 의병을 일으킨 12의사(義士) 중에 한 사람이다. 봉기 후에 순창에서 싸우다가 최익현과 함께 체포된 뒤 감옥에서 고문을 당하여 반신불수가 되었다. 그 뒤 구례 문척면(文尺面) 오봉산(五峰山) 아래에 오봉정사(五鳳精舍)를 짓고 교육에 전념하였으며, 오봉정사 위에 봉산사(鳳山祠)’를 세워 최익현과 주희(朱熹)를 배향하였다.

361) 율리(栗里) : 도연명이 팽택 현령(彭澤縣令)을 그만두고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읊으며 돌아가 은거하였던 곳이다.

362) 자지가(紫芝歌)……상안(商顔)이네 : 자지가는 은자(隱者)의 노래이고, 상안은 상안산(商顔山)으로 즉 한 고조(漢高祖) 때에 사호(四皓)가 숨어 살았다는 상산(商山)을 말한다. ()나라 말기에 상산(商山)의 사호(四皓), 즉 동원공(東園公)ㆍ기리계(綺里季)ㆍ하황공(夏黃公)ㆍ녹리선생(甪里先生)이 난리를 피하여 남전산(藍田山)에 들어가 은거하면서 한 고조(漢高祖)의 초빙을 거절하고 자지(紫芝)를 캐 먹으면서 부른 노래이다.

363) 문채가……된다 : 논어》 〈옹야(雍也)에 나온다.

364) 석인(碩人)……맹세하고 : 은거하며 조용히 지내는 삶을 표현한 것으로, 시경》 〈고반(考槃)고반이 높은 언덕에 있으니, 석인이 머물러 지내는구나. 홀로 잠들고 홀로 깨어나지만 길이 이 즐거움을 남에게 말하지 않으리라.[考槃在陸, 碩人之軸, 獨寐寤宿, 永矢不告.]”라는 말이 나온다.

365) 푸른……공부하네 : 주자의 벗인 승사 진극기(陳克己)에게 장난삼아 주다[戲贈陳勝私老友]시에 산전 3백 이랑 간청하여 얻고는, 푸른 등불 아래 밤새도록 농서를 읽네.[乞得山田三百畝, 靑燈徹夜課農書.]”라는 말이 나온다.

366) 구련(龜蓮)과 부조(鳧藻) : 구련은 천년을 사는 거북이가 연잎 위에서 논다는 뜻으로 장수를, 부조는 물풀에서 노는 오리라는 뜻으로 부부의 금슬을 상징한다. ()나라 주희(朱熹)가 어머니의 생신날 축수한 시 수모생조(壽母生朝)구련을 올려 천년의 수를 기원하고 영원히 부조로 하여금 한 집안을 풍요롭게 하게 하네.[願上龜蓮千歳壽, 永令鳬藻一家肥.]”라고 하였다.

367) 옥수(玉樹)와 난근(蘭根) : 옥 같은 나무와 난초의 뿌리라는 뜻으로, 뛰어난 자질을 소유한 자손들을 가리킨다.

368) 염량(炎涼) : 더위와 추위로, 권세가 있을 때는 아첨하여 붙좇고 권세가 없어지면 푸대접하는 염량세태(炎涼世態)를 비유한다.

369) 명협(蓂莢) : ()임금의 대궐 섬돌에 자라났다는 상서로운 식물이다. 매월 초하루부터 15일까지는 매일 한 잎씩 나오고 16일부터 그믐날까지는 매일 한 잎씩 떨어졌으므로, 이것으로 날을 계산하여 달력으로 삼았다는 고사가 전한다. 竹書紀年 卷上 帝堯陶唐氏

370) 영빈(潁濱) : ()나라의 문장가 소철(蘇轍, 1039~1112)의 호이다. 소철은 자가 자유(子由) 또는 동숙(同叔)이며, 시호는 문정(文定)이다. 아버지 소순(蘇洵), 형 소식(蘇軾)과 함께 삼부자가 당송팔대가에 꼽힌다. 영빈이란 호는 만년 영창(潁昌)에 은거하였기 때문에 썼던 호인 영빈유로(潁濱遺老)에서 연유한 것이다.

371) 동뢰(桐瀬) : 절강성(浙江省) 동려현(桐廬縣)과 엄릉뢰(嚴陵瀨)를 합칭한 것으로, 엄자릉(嚴子陵)을 가리킨다. 엄자릉은 후한(後漢) 때의 은사(隱士)인 엄광(嚴光)을 말하는데, 자릉(子陵)은 그의 자이다. 엄광은 한나라 광무제(光武帝)와 동문수학한 사이였는데, 광무제가 황제에 오른 뒤 엄광을 간의대부(諫議大夫)에 임명하며 조정에 머물러 있기를 권하였으나, 엄광은 절강성(浙江省)에 있는 부춘산(富春山)으로 들어가 엄릉뢰(嚴陵瀨)라는 물가에서 낚시질을 하며 지냈다. 後漢書 卷83 逸民列傳 嚴光

372) 구령(緱嶺) : 구지산(緱氏山)의 산봉우리이다. ()나라 유향(劉向)열선전(列仙傳)춘추 시대 주 영왕(周靈王)의 태자(太子) ()이 피리를 매우 잘 불어서 피리로 봉황새의 울음소리를 내곤 했는데, 그가 도사(道士)인 부구공(浮丘公)과 숭산(嵩山)에 올라가 30여 년 만에 구지산으로 신선이 되어 올라갔다.”라고 하였다.

373) 술잔 : 원문의 우상(羽觴)’은 새 모양으로 만들어 양쪽에 날개를 붙인 술잔이다. 이백(李白)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화려한 자리 벌여 꽃 사이 앉아, 술잔을 주고받으며 달빛 아래 취한다.[開瓊宴以坐花, 飛羽觴而醉月.]”라는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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