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송사(奇松沙) : 송사는 기우만(奇宇萬, 1846~1916)의 호이다. 본관은 행주(幸州), 자는 회일(會一)이다. 기정진(奇正鎭, 1798~1879)의 손자로, 그 학업을 이어받아 일찍이 유학자로 이름이 높았으며, 의병과 독립운동을 하였다. 문집으로 《송사집》이 있다.
2) 기식재(奇植齋) : 식재는 기재(奇宰, 1854~1921)의 호이다. 본관은 행주(幸州), 자는 입부(立夫)이다. 기정진(奇正鎭)의 문인으로,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족형(族兄)인 기우만(奇宇萬)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왜적을 토벌하려고 하였는데, 조정에서 의병을 해산시키라는 조칙을 내리자 포기하였다. 문집으로 《식재집》이 있다.
3) 기보산(奇普山) : 보산은 기우승(奇宇承, 1858~1907)의 호이다. 본관은 행주(幸州), 자는 효술(孝述)이다. 기정진의 문인이며, 문집으로 《보산선생유고(普山先生遺稿)》가 있다.
4) 무신(撫辰) : ‘무우오신(撫于五辰)’의 준말로, 계절 따라 제때에 모든 일이 원만하게 성취된다는 뜻이다. 《서경》 〈고요모(皐陶謨)〉에 “백공이 때에 따라 사계절을 순히 하여 모든 공적이 이루어질 것입니다.[百工惟時, 撫于五辰, 庶績其凝.]”라고 하였다.
5) 봄바람……섰네 : 문하에 들어가 제자가 되었다는 말이다. 북송(北宋)의 대학자인 명도(明道) 정호(程顥)와 이천(伊川) 정이(程頤)는 형제간으로 명도는 온화하고 이천은 엄격했는데, 주광정(朱光庭)이 명도를 여주(汝州)에서 뵙고 돌아와 “내가 춘풍 속에서 한 달 동안 앉아 있었다.”라고 말한 고사와, 양시(楊時)와 유초(游酢)가 이천을 찾아갔을 때 이천이 오래도록 명상을 하고 있었으므로 물러간다는 말을 못하고 시립하여 기다렸는데 그 사이 문밖에 눈이 한 자나 쌓였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近思錄 卷14》
6) 산이……꺾였네 : 스승이나 훌륭한 사람의 죽음을 말한 것으로, 여기서는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 1798~1879)을 말한다. 공자(孔子)가 자신이 별세할 꿈을 꾸고 아침 일찍 일어나 뒷짐을 지고 지팡이를 끌고 문 앞에 한가로이 노닐며 노래하기를, “태산이 무너지겠구나. 들보가 부러지겠구나. 철인이 죽게 되겠구나.[泰山其頹乎! 梁木其摧乎! 哲人其萎乎!]”라고 하더니, 얼마 후에 별세한 일에서 유래하였다. 《禮記 檀弓上》
7) 강한(江漢) : 높이 우러르고 깊이 사모한 대상을 비유한 말이다. 《맹자》 〈등문공 상(滕文公上)〉에, 증자(曾子)가 공자를 찬양하여 “양자강과 한수(漢水)로 씻은 것 같고 가을볕으로 쪼이는 것 같아서, 밝고 깨끗하기가 이보다 더할 수 없다.[江漢以濯之, 秋陽以暴之, 皜皜乎不可尙已.]”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다.
8) 공자(孔子)……감손(鑑孫)이었네 : 기정진의 학문과 집안을 손자인 기우만(奇宇萬)이 계승했다는 말이다. ‘술성공(述聖公)’은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이며, ‘감손’은 손자인 감(鑑)이란 말로, 주자(朱子)의 장자(長子) 주숙(朱塾)의 맏아들인 주감(朱鑑)을 가리킨다.
9) 하남(河南)의 군자 : 전라남도 장성군 황룡면 아곡리 하남마을에 거주한 보산(普山) 기우승(奇宇承)을 가리킨다.
10) 한……같고 : 기우승의 온화한 태도를 정호(程顥)에 빗댄 표현이다. 송(宋)나라 학자 사현도(謝顯道)가 스승인 정호를 형용하면서 “명도 선생은 앉아 있을 때에는 흙으로 빚은 소상처럼 근엄하지만 다른 사람을 접할 때에는 혼연히 한 덩어리의 온화한 기운이다.[明道先生坐如泥塑, 接人則渾是一團和氣.]”라고 하였다. 《二程全書 卷12》 ‘백순(伯淳)’은 정호의 자(字)이다.
11) 스승의……같았네 : 기우승이 스승인 기정진의 가르침을 잘 따랐다는 말이다. ‘안씨’는 공자의 제자인 안연(顔淵)을 가리킨다. 《논어》 〈위정(爲政)〉에 공자가 안회(顔回)에 대해서 “내가 안회(顔回)와 온종일 이야기를 함에 내 말을 어기지 않아 어리석은 사람처럼 보이더니, 물러간 뒤의 사생활을 살펴보건대 또한 충분히 발명하니, 안회는 어리석지 않구나.[吾與回言終日, 不違如愚, 退而省其私, 亦足以發, 回也不愚.]”라고 하였다.
12) 이미……않았네 : 기우승이 중용(中庸)의 덕성을 지녔다는 표현으로, 《서경》 〈홍범(洪範)〉에 “침잠한 사람은 강건함으로 다스리고, 고명한 사람은 부드러움으로 다스린다.[沈潛剛克, 高明柔克.]”라고 한 말을 원용한 것이다. 이에 대한 집주에, “침잠은 침착하고 물러나서 중(中)에 미치지 못하는 자이다. …… 침잠한 사람은 강건함으로 다스린다는 것은 강건함으로 부드러움을 다스리는 것이다.[沈潛者, 沈深潛退, 不及中者也. …… 沈潛剛克, 以剛克柔也.]”라고 하였다.
13) 범장(范張) : 후한(後漢)의 범식(范式)과 장소(張劭)로, 우의가 지극히 돈독하여 죽을 때까지 교분이 변치 않았다고 한다. 《後漢書 卷81 范式列傳》
14) 초월(楚越) : 초나라와 월나라를 말한다. 이 두 나라는 서로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어서 아무 상관이 없는 사이란 뜻으로 사용한다.
15) 내한 부군(內翰府君) : 오희도(吳希道, 1583~1623)를 말한다.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득원(得原), 호는 명곡(明谷)이다. 1623년(인조1) 알성 문과에 급제한 뒤 예문관 검열을 지냈는데, 이해에 천연두에 걸려 41세의 나이로 요절하였다.
16) 은거지(隱居地) : 원문의 ‘토구(菟裘)’는 춘추 시대 노(魯)나라의 지명으로, 은거지를 뜻한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은공(隱公) 11년에, 은공이 “토구에 집을 짓게 하였으니, 내가 장차 그곳에서 노년을 보낼 것이다.[使營菟裘, 吾將老焉.]”라고 하였다.
17) 뽕나무와……한다 : 《시경》 〈소반(小弁)〉에 보인다.
18) 쇠퇴한 세상 : 원문의 퇴파(頹波)는 거세게 아래로 흘러내려 가는 물살을 말하는데, 무너져 가는 세상의 풍속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19) 지주석(砥柱石) : 삼문협(三門峽)을 통해 흐르는 황하의 한복판에 우뚝 선 바위산으로, 황하의 거센 물결에도 굳건하게 서 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난세에 절조를 지킨다는 뜻으로 쓴다.
20) 행단(杏壇) : 공자가 고향 마을 곡부(曲阜)의 야외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던 곳이다. 《장자(莊子)》 〈어부(漁父)〉에 “공자가 치유의 숲에서 노닐고 행단의 위에 앉아서 쉬었는데, 제자들은 글을 읽고 공자는 거문고를 타며 노래를 불렀다.[孔子遊乎緇帷之林, 休坐乎杏壇之上, 弟子讀書, 孔子絃歌鼓琴.]”라고 하였다.
21) 오교(午橋) : 오교장(午橋莊)의 준말로, 당(唐)나라 재상 배도(裴度)의 별장이다. 환관(宦官)이 권력을 전횡하자 이에 환멸을 느껴 벼슬을 그만두고 낙양(洛陽) 교외의 오교에다 녹야당(綠野堂)을 지어 놓고는 날마다 천석(泉石)과 시주(詩酒)를 즐기며 소요했던 ‘오교천석(午橋泉石)’의 고사가 전한다. 《新唐書 裴度列傳》
22) 일창삼탄(一唱三歎) : 한 사람이 노래를 선창하면 세 사람이 화답한다는 뜻으로, 음악이나 시문이 매우 뛰어남을 뜻한다. 《예기》 〈악기(樂記)〉에 “청묘의 슬은 붉은 현으로 되어 있고 소리가 느릿하여서, 한 사람이 선창하면 세 사람이 화답하여 여운이 있다.[淸廟之瑟, 朱絃而疏越, 壹倡而三歎, 有遺音者矣.]”라고 하였다.
23) 담비 꼬리에 잇대어 : 원문의 ‘초미속(貂尾續)’은 ‘구미속초(狗尾續貂)’의 변용으로, 뛰어난 시의 뒤를 보잘것없는 시로 잇는다는 뜻이다. 진(晉)나라 때 조왕 윤(趙王倫)의 당여(黨與)가 모두 경상(卿相)에 제수되어 그의 노복들까지도 모두 작위를 받게 되었다. 이에 관(冠)에 장식하는 초미(貂尾)가 부족해서 개 꼬리로 장식하였는데, 사람들이 이를 구미속초(狗尾續貂)라고 비난한 데서 온 말이다. 《晉書 卷59 趙王倫傳》
24) 청전(靑氊) : 푸른 모포로, 가문의 유업이나 유물을 가리킨다. 진(晉)나라 왕헌지(王獻之)가 누워 있는 방에 도둑이 들어와 물건을 모조리 훔쳐 가려 할 적에 “도둑이여, 그 푸른 모포는 우리 집안의 유물이니, 그것만은 놓고 가는 것이 좋겠소.[偸兒, 靑氈我家舊物, 可特置之.]”라고 하자, 도둑이 질겁하고 도망쳤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晉書 王獻之列傳》
25) 모적(蟊賊) : 볏모의 뿌리나 마디를 갉아먹는 해충을 말한다. 《시경》 〈대전(大田)〉에 “모적도 제거한다.[及其蟊賊]” 하였는데, 이에 대한 주자(朱子)의 주석에 “뿌리를 갉아 먹는 것을 모(蟊)라 하고, 마디를 갉아 먹는 것을 적(賊)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26) 뿔이……뚫었다 : 《시경》 〈행로(行露)〉에, “누가 참새에 뿔이 없다고 하는가, 뿔이 없다면 어떻게 내 지붕을 뚫었겠는가?[誰謂雀無角, 何以穿我屋?]”라고 한 구절을 변용한 표현으로, 불가능한 방법을 억지로 써서 화를 피하려는 것을 말한다.
27) 향도(香稻) : 벼의 한 종류로, 까끄라기가 붉고 낱알이 희며 향기로운 맛이 있다. 두보(杜甫)의 〈추흥 팔수(秋興八首)〉 중 여덟 번째 수에 “향도의 남은 싸라기는 앵무새가 쪼던 싸라기요, 벽오동의 늙은 가지는 봉황이 깃든 가지로다.[香稻啄餘鸚鵡粒, 碧梧棲老鳳凰枝.]”라고 하였다.
28) 절지(竊脂) : 기름을 훔쳐 먹는 새라는 뜻으로, 상호(桑扈) 즉 콩새의 별명이다. 《주자어류(朱子語類)》 권122에 “절지새가 곡식을 쪼아 먹지 않는 것처럼, 옛날 제왕은 결코 악을 행하지 않았다.”라는 말이 나온다.
29) 무하유향(無何有鄕) : 아무것도 없는 광활한 자연의 세계를 뜻한다.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에 “그것을 아무것도 없는 무하유향의 끝없이 펼쳐진 들판에 심어 놓고 그 옆에서 자유롭게 거닐면서 아무 하는 일 없이 지내고 그 아래에서 유유자적하면서 낮잠이라도 자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何不樹之於無何有之鄕廣莫之野, 彷徨乎無爲其側, 逍遙乎寢臥其下?]”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30) 큰 쥐 : 원문의 ‘석서(碩鼠)’는 가렴주구(苛斂誅求)를 일삼는 포악한 관리를 비유한다. 《시경》 〈석서(碩鼠)〉에 “큰 쥐야 큰 쥐야, 내 기장을 먹지 말지어다. 삼 년이나 서로 알고 지냈거늘, 나를 돌보아 주지 않을진댄, 장차 너를 버리고 떠나서 저 즐거운 땅으로 가리라.[碩鼠碩鼠, 無食我黍. 三歲貫女, 莫我肯顧, 逝將去女, 適彼樂土.]”라고 하였다.
31) 염계 부자(濂溪夫子) : 송(宋)나라 학자 주돈이(周敦頤)를 말한다.
32) 국화를……누구인가 : 주돈이(周敦頤)의 〈애련설(愛蓮說)〉에 보인다.
33) 백락(伯樂) : 춘추 시대 진 목공(秦穆公) 때 준마를 잘 감별하기로 유명했던 손양(孫陽)의 별명이다.
34) 상마경(相馬經) : 말의 관상[相馬]에 관하여 서술한 수의학서(獸醫學書)이다.
35) 사광(師曠) : 춘추 시대 진(晉)나라의 악사(樂師)로, 음조(音調)를 잘 알아서 한 번 들으면 길흉을 알았다고 한다.
36) 지어재(志於齋) : 후석(後石) 오준선(吳駿善)이 젊은 시절 수학하고 만년에 강학(講學)하던 곳으로, 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도덕동 도림마을에 있다.
37) 옥정(玉井) : 중국 화산(華山) 정상에 있다는 연못인데, 이곳에 신선이 복용하는 연꽃이 특별히 핀다는 전설이 있다. 한유(韓愈)의 〈고의(古意)〉 시에 “태화봉 꼭대기 옥정의 연은, 꽃 피우면 직경이 열 길에 연뿌리는 배와 같다네.[太華峯頭玉井蓮, 開花十丈藕如船.]”라는 구절이 있다.
38) 무숙(茂叔)이……것 : 주돈이(周敦頤)가 〈애련설(愛蓮說)〉에서 “연꽃은 꽃 중의 군자이다.[蓮, 花之君子者也.]”라고 한 것을 말한다. ‘무숙’은 주돈이의 자(字)이다.
39) 적선(謫仙)이 천연스럽다고 칭찬한 : 이백(李白)의 시에 “맑은 물에서 연꽃이 솟으니, 천연스러워 꾸밈이 없구나.[淸水出芙蓉, 天然去雕飾.]”라고 한 것을 말한다. 《李太白文集 卷9 經亂離後天恩流夜郞憶舊遊書懷贈江夏韋太守良宰》 ‘적선’은 천상에서 인간 세상으로 귀양 온 신선이란 뜻으로, 이백을 가리킨다.
40) 태을진인(太乙眞人) : 천신(天神)의 이름이다. 송(宋)나라의 화가 이공린(李公麟)의 〈태을진인연엽도(太乙眞人蓮葉圖)〉에 한구(韓駒)가 제(題)한 시에 “태을진인이 연잎 배를 탔는데, 두건 벗고 머리 드러내니 찬바람에 날리네. 가벼운 바람을 돛으로 삼고 물결을 노로 삼아, 누워서 옥자를 보며 중류에 둥둥 떠 있구나.[太乙眞人蓮葉舟, 脫巾露髮寒颼颼. 輕風爲帆浪爲楫, 臥看玉字浮中流.]”라고 하였다.
41) 나의 바지 걷었으나 : 그리운 사람을 찾아가기 위해 물을 건너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시경》 〈건상(褰裳)〉에 “그대가 나를 사랑하여 그리워할진댄 나는 치마를 걷고 진수(溱水)를 건너가리라.[子惠思我, 褰裳涉溱.]”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42) 문원(文園) : 한 무제(漢武帝) 때에 효문원 영(孝文園令)을 지낸 문장가 사마상여(司馬相如)를 가리킨다.
43) 백하(柏下) 양장(梁丈) : 백하는 양상형(梁相衡, 1833~1907)의 호이다.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자평(子平), 호는 백하이다. 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박호동 박산마을에서 출생하였으며, 덕암(德巖) 나도규(羅燾圭)ㆍ화정(花汀) 박원국(朴源國)ㆍ석정(石井) 이윤선(李允善)ㆍ난와(難窩) 오계수(吳繼洙)ㆍ후석 오준선 등과 교유하였다. 저서에 《백하유고》가 있다.
44) 통가(通家) : 대대로 사귀어 온 정분이 깊은 집안 또는 인척(姻戚)을 말한다.
45) 양대(陽臺) : 송천(松川) 양응정(梁應鼎, 1519~1581)이 만년에 건립하여 후학을 가르쳤던 ‘조양대(朝陽臺)’로, 광주광역시 광산구 박호동에 있다.
46) 여산고(廬山高) : 송(宋)나라 구양수(歐陽脩)가 여산(廬山)에 은거한 유환(劉渙)의 고상한 절조를 찬미하여 지은 것으로, 한 구의 글자수가 일정치 않은 자유로운 형식의 고시이다.
47) 동강(桐江)에서……엄자릉(嚴子陵) : ‘동강’은 후한(後漢)의 은사인 엄광(嚴光)이 광무제(光武帝)의 부름을 거절하고 낚시질하며 은거하던 곳이며, ‘자릉’은 엄광의 자이다.
48) 녹문산(鹿門山)에서……방덕공(龐德公)이네 : ‘녹문산’은 중국 호남성 양양현(襄陽縣)에 있는 산이며, ‘방덕공’은 후한(後漢)의 은자이다. 방덕공은 원래 남군(南郡)의 양양(襄陽)에 살았는데, 형주 자사(荊州刺史) 유표(劉表)가 초빙하자 나아가지 않고 가솔을 모두 거느리고 녹문산에 들어가 약초를 캐며 일생을 마쳤다. 《後漢書 逸民列傳 龎公》
49) 명문가의……찬란하니 : 광주광역시 광산구 박호동에 있는 양씨삼강문(梁氏三綱門)에 대해 언급한 것으로, 이 정려문은 1635년(인조13)에 세워졌다. 이곳에는 임진왜란(1592) 때 진주성 전투에서 왜군과 싸우다 김천일 장군과 함께 순절한 양산숙(梁山璹), 정유재란(1597) 때 삼양포에서 왜군을 만나 어머니를 구하려다 순절한 양산룡(梁山龍)과 양산수(梁山岫), 왜군을 만나 바다에 투신하여 순절한 양산숙의 어머니인 죽산 박씨, 왜적에 항거하다가 자결한 양산숙의 부인인 광산 이씨, 왜군을 만나 바닷물에 몸을 던져 자결한 누이 양씨 등이 모셔져 있다. 회진 임씨 문중으로 출가한 양산룡의 딸은 임씨 문중에서 모시고 있다.
50) 기심(機心)을 잊으니 : 원문은 ‘망기(忘機)’로, ‘기심’은 교사(巧詐)한 마음을 말한다. 바닷가에서 무심히 갈매기와 벗하며 노닐던 사람이 갈매기를 잡으려는 마음을 갖자, 갈매기들이 미리 알아채고 가까이 오지 않았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列子 黃帝》
51) 무부(碔砆) : 옥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옥이 아닌 돌로, 보기에는 그럴싸하지만 아무런 가치가 없는 물건을 비유하는 말이다.
52) 장대 : 웅건(雄健)한 문장력을 비유한 말이다. 송(宋)나라 구양수(歐陽脩)의 시 〈여산고(廬山高)〉에 “대장부의 장대한 지절 그대와 같은 이가 드무니, 아 내가 말하고자 하나 어떻게 장대 같은 큰 붓을 얻으랴.[丈夫壯節似君少, 嗟我欲說安得巨筆如長杠.]”라고 하였다.
53) 종용당(從容堂) : 임진왜란 때 금산(錦山) 전투에서 산화한 의병들의 충혼을 달래기 위해 1647년(인조25) 충남 금산의 선비들이 세운 사당으로, 1663년(현종4)에 종용사(從容祠)라는 사액이 내려졌다. 중봉(重峯) 조헌(趙憲)과 제봉(霽峯) 고경명(高敬命), 영규대사(靈圭大師) 등 7백 명의 위패를 모셨다. 일제에 의해 훼철되었다가 1968년에 복원되었다.
54) 왜적 : 원문의 ‘흑치(黑齒)’는 이를 검게 물들인 야만족이라는 뜻으로, 우리나라에서 일본인을 뜻하는 말로 쓰였다.
55) 긴……돼지 : 모두 포악한 무리를 가리키는 말로, 여기서는 왜적을 뜻한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정공(定公) 4년 조에 이르기를 “오나라가 큰 돼지와 긴 뱀처럼 상국을 계속 잠식해 가는데, 그 잔인함이 초나라에서 시작되고 있다.[吳爲封豕長蛇, 以荐食上國, 虐始於楚.]”라고 하였다.
56) 물여우 : 원문의 ‘단호(短狐)’인데, 모래를 머금어 사람에게 쏘아 해를 입힌다고 하여, 몰래 사람을 해치는 사악한 무리를 비유한다. 육덕명(陸德明)의 〈석문(釋文)〉에 “물여우는 모양이 자라와 같고 발이 세 개인데 일명 ‘사공’이라고 하며 세속에서 ‘수노’라고 부르니, 물속에서 모래를 머금었다가 사람을 향해 쏘므로 일명 ‘석인영’이라고도 한다.[蜮, 狀如鼈, 三足. 一名射工, 俗呼之水弩. 在水中含沙射人, 一云射人影.]” 하였다.
57) 삼경(三京) : 남경(南京)인 한양(漢陽), 중경(中京)인 개성(開城), 서경(西京)인 평양(平壤)을 말한다.
58) 취화(翠華)가……창황(蒼黃)했네 : 임진왜란 때 선조(宣祖)가 의주(義州)로 파천(播遷)한 일을 말한다. ‘취화’는 제왕의 의장(儀仗) 중에 비취 깃털로 장식한 기치(旗幟)나 거개(車蓋)를 가리키는 말로, 임금의 행차를 뜻한다. ‘거빈(去邠)’은 빈(邠) 땅을 떠난다는 뜻으로, 임금이 외적(外敵)의 난을 피해 천도(遷都)하는 것을 가리킨다. 《史記 周本紀》
59) 중봉(重峯) : 조헌(趙憲, 1554~1592)의 호이다. 본관은 배천(白川), 자는 여식(汝式), 시호는 문열(文烈)이다. 1589년(선조22) 지부상소(持斧上疏)로 시폐(時弊)를 극론하다가 길주(吉州)의 영동역(嶺東驛)에 유배되었으며,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싸우다가 금산(錦山) 전투에서 순사(殉死)하였다. 저서에 《중봉집》이 있다.
60) 귀문관(鬼門關) : 함경도 경성(鏡城)에 있는 관문 이름이다. ‘귀문관’은 본디 중국 광서성(廣西省)에 있는 변방 요새로, 산세가 험준한 데다 장려(瘴癘)가 만연하는 등 풍토가 험악하여 생환(生還)하는 자가 드물었으므로 “귀문관은 열에 아홉은 돌아오지 못한다.[鬼門關, 十人九不還.]”라는 속요(俗謠)까지 유행하였다고 하는데, 흔히 풍토가 나쁘고 지형이 험악한 먼 변경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舊唐書 地理志4》
61) 가식(家食) : 국가에서 맡은 직책이 없어서 봉록을 받지 않고 집에서 한가히 거처함을 뜻하는 말로, 《주역》 〈대축(大畜) 괘사(卦辭)〉에 “집에서 밥을 먹지 않으면 길하다.[不家食, 吉.]”라고 한 데에서 유래하였다.
62) 종의지(宗義智) : 대마도 도주로서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전에 조선을 두 차례 방문하여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외교사절을 수행하였다.
63) 현소(玄蘇) : 일본 박다(博多) 성복사(聖福寺)의 승려로, 임진왜란 1년 전에 대마도주(對馬島主) 종의지(宗義智)를 따라 우리나라에 사신으로 와서 국정을 염탐하기도 하고 난중에는 군중(軍中)에 와서 강화(講和) 문제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64) 상당(上黨) : 충청북도 청주(淸州)의 옛 이름이다.
65) 왜란 : 원문의 ‘참창(攙搶)’은 혜성(彗星)의 이름인데, 모두 전쟁이나 반역을 상징한다.
66) 별이……추락하니 : 조헌이 죽은 것을 가리킨다. 원문의 ‘낙봉(落鳳)’은 본래 서천(西川)을 정벌할 때 군사(軍師)인 방통(龐統)이 난전(亂箭)에 맞아 죽은 것에서 유래하였는데, 방통의 별호가 봉추(鳳雛)이기 때문이다.
67) 곰 발바닥 취하자고 : 생명과 의리를 둘 다 취할 수 없는 경우에 생명을 버리고 의리를 취하는 것을 말한다.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 “물고기도 내가 원하고 곰 발바닥도 내가 원하지만 이 두 가지를 모두 가질 수 없다면 물고기를 버리고 곰 발바닥을 가지겠다. 삶도 내가 원하고 의리도 내가 원하지만 이 두 가지를 모두 가질 수 없다면 삶을 버리고 의리를 취하겠다.[魚我所欲也, 熊掌我所欲也, 二者不可得兼, 舍魚而取熊掌者也. 生亦我所欲也, 義亦我所欲也, 二者不可得兼, 舍生而取義者也.]” 하였다.
68) 오백……죽었으며 : 제(齊)나라 전횡(田橫)의 고사를 인용하여 조헌이 칠백의사와 함께 순절한 일을 표현한 것이다. 전횡은 제(齊)나라 왕의 후예이다. 진(秦)나라 말의 혼란기에 자립하여 왕이 되었다가, 형세가 불리해지자 부하 500여 명과 함께 오호도(嗚呼島)로 피해 들어갔다. 이후 왕후(王侯)로 봉해 주겠다는 한 고조(漢高祖)의 부름을 받고, 낙양(洛陽)으로 가던 도중에 머리를 굽혀 남의 신하가 되는 일은 차마 하지 못하겠다면서 자결하였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섬 안의 500여 명 역시 모두 전횡을 따라 자결하였다. 《史記 田橫列傳》
69) 뇌남(雷南)은……순절하였네 : ‘뇌남’은 남제운(南霽雲)과 뇌만춘(雷萬春)으로, 장순(張巡)의 편장(偏將)이었다. 이들은 당(唐) 나라 현종(玄宗) 때에 안록산(安祿山)이 반란을 일으키자, 수양성(睢陽城)을 끝까지 지키다가 함께 장렬하게 죽었다. 《舊唐書 卷187 忠義列傳下》
70) 신국(信國) 문천상(文天祥) : 송(宋)나라의 충신으로, ‘신국’은 그의 봉호(封號)이다. 원(元)나라 군대가 침입하여 수도가 함락되자 단종(端宗)을 받들고 근왕군(勤王軍)을 일으켜 대항하다가 사로잡혀 연옥(燕獄)에 3년 동안 구금되어 있었으나 끝내 굴복하지 않고 절의를 지키다가 처형되었다. 《宋史 文天祥列傳》
71) 의열공(毅烈公) : ‘의열’은 고인후(髙因厚, 1561~1592)의 시호이다. 본관은 장택(長澤), 자는 선건(善健), 호는 학봉(鶴峯)이다. 의병장 고경명(高敬命)의 아들로, 임진왜란 때 금산(錦山)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72) 휘황한……내걸렸네 : 1663년(현종4)에 ‘종용사(從容祠)’라는 사액이 내려진 일을 말한다.
73) 풍비(豐碑) : 공적을 기록하여 덕을 기리는 거대한 비석으로, 여기서는 중봉조헌선생일군순의비(重峯趙憲先生一軍殉義碑)를 말한다.
74) 완악한……세우게 : 훌륭한 풍도가 사람들을 교화함을 말한다. 《맹자》 〈만장 하(萬章下)〉에 “백이의 풍도를 들으면 완악한 자는 청렴해지고 나약한 자는 뜻을 세우게 된다.[聞伯夷之風者, 頑夫廉, 懦夫有立志.]”라고 하였다.
75) 개린(介鱗) : 보통은 딱딱한 껍질을 지닌 수중 생물과 비늘 가진 물고기를 통틀어 가리키지만, 그와 같이 비천한 소인배나 오랑캐를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 《후한서(後漢書)》 권78 〈양종전(楊終傳)〉에 “광무제(光武帝)가 서역(西域)의 나라들과 국교를 단절하여, 개린으로 하여금 우리의 의상으로 바꿔 입지 못하게 하였다.[光武絶西域之國, 不以介鱗易我衣裳]” 하였는데, 이현(李賢)의 주에, “개린은 먼 오랑캐를 비유한다.[介鱗, 喻遠夷.]”라고 하였다.
76) 존양(尊攘) : 중국의 예악 문물(禮樂文物)을 높이고 예의가 없는 오랑캐들을 물리친다는 뜻으로, 《춘추(春秋)》의 존주 대의(尊周大義)를 가리킨다.
77) 율곡(栗谷)과 우계(牛溪) : 이이(李珥, 1536~1584)와 성혼(成渾, 1535~1598)을 말한다. 조헌은 이들을 스승으로 모셨다.
78) 우암(尤庵)과 동춘당(同春堂) : 송시열(宋時烈, 1607~1689)과 송준길(宋浚吉, 1606~1672)을 말한다.
79) 쇄소(灑掃) : 물 뿌리고 청소하는 것으로, 제자(弟子)된 예의를 말한다.
80) 기남보(奇南步) : 남보는 기주현(奇周鉉, 1846~1907)의 호이다. 본관은 행주, 자는 덕삼(德三)이다.
81) 세한(歲寒) : 곤궁한 처지나 난세(亂世)에도 지조를 잃지 않는 군자(君子)의 자태를 비유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