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문/제문

祭內從兄朴石塢公廷奭文

황성 2011. 2. 15. 17:54

 

祭內從兄朴石塢公廷奭文 辛丑

 

嗚呼 公於己亥晩秋 躬顧委巷 以寒喘之祟 留攝殆近旬日 適因達成金雅同 發程以後 音塵隨而間隔 思鬱之情 曷時有已 翌年冬 敬浩以其所幹 方向大川 余得聞前祟之靳祛 驚慮切切 卽於此君回 修一度書 略陳道修寒緊 未能進候之意 而只竢旋旆奉攄矣 豈意今春遽爲二竪子侵劇 長逝於旅遊之地耶 殯殮等節 想多闕略 痛不可忍言 善者福之 而善有不福 仁者壽之 而仁有不壽 此理斯難諶之謂歟 嗚呼竊惟我公 慈詳而惻怛 端慤而重厚 日用間酬酌動靜 率合儒拙 事親以孝 居鄕以悌 交朋友以信 使婢僕以恩然 矧乎器度簡易硬直 雖在稠座之中 而儼然自守 不苟合於人 晩年調度 甚窘而隨分恬處 不屑屑於利害事爲之末 外人以爲迂闊 而惟其服襲庭訓 未嘗有疾言遽色 又不言人之惡 惟以書自娛者 則何必多讓於古人也哉 顧余慵陋 自早歲偏承情款 頃年公之暫寓於覺溪痴山等地 非爲取勝而亦爲遣憫之計耳 幸與鄙居不甚間闊 有事相問 有疑相質 細密之話 無所不到 或久而不面 致書敍懷 而昔我居憂 公終始賜慰 使之有所作賴 非其他人之爲內外從者也 余悶其白首棲屑 嘗言於公 人之死生疾病 未可逆料 此不必久留 且其宗族知舊 不知公之襟抱 而易爲咎過 何不返故庄也 於是乎 盛算深以爲然 遂決意撤還 亦可見取舍之義也 蓋才德之義 宜遂立揚而運値蹇屯 不幸至於此極 萬事已矣 自玆以往 我過誰督 我病誰箴 去二月返柩之日 我出隣里 巧違延哭 幽明之間 俱有憾焉 允哀昆季 非不矜惻 而賢閤在衰暮之年 日深疚悔 將何辭致慰 又乏昕晡之供 是則公之平昔所虞憂者也 公何棄捐爲此不忍之忍乎 噫彼道州之東 惟靈世居之地 山谷盤紆 泉石暎環 魚鳥之樂 煙霞之勝 足爲淸賞之資 靈或徜佯於此 依舊題詠耶否耶 淸風之晝 明月之夕 送客獨坐 思公之儀範 思公之論議 思公之性情 思公之制作 耿耿于心 而俾也可忘 余縻世故 趂未來哭 今於卽遠之辰 薦此薄奠 有靈不昧 憐而鑑衷

 

 

내종형(內從兄) 석오공(石塢公) 박정석(朴廷奭) 제문

 

오호라, 공이 기해년 가을에 몸소 위항(委巷)을 방문하였는데 한천(寒喘) 때문에 열흘 가까이 머물러 조섭하다가 마침 달성(達成)의 김아(金雅) 동(同)을 따라 길을 떠난 뒤로 소식이 격조하였으니, 그리움에 맺힌 마음이 언제고 그친 적이 있었겠습니까. 이듬해 겨울 경호(敬浩)가 일 때문에 대천(大川)으로 갈 무렵, 공이 전일의 한천을 떨쳐 내지 못하였다는 소식을 듣고서 무척이나 놀랍고 염려스러웠습니다. 곧장 군이 돌아가는 편에 한 통의 편지를 써서 혹독한 추위에 공부하는 것에 대해서만 대략 진달하고 안부를 묻지는 못한 채 그저 돌아오기를 기다린다고만 하였습니다. 올봄에 갑자기 병마가 심해져 객지에서 영영 가 버릴 줄을 어찌 생각이나 하였겠습니까. 염빈(殮殯) 등의 절차가 많이 소홀하였을 것이라 생각되니, 가슴 아픈 심정을 차마 말할 수 있겠습니까. 선(善)한 사람은 복을 받는다 하지만 선해도 복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고, 인(仁)한 사람은 장수한다 하지만 인해도 장수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이치가 바로 ‘하늘은 믿기 어려우니, 천명은 일정하지 않나니라.[天難諶 命靡常]’라는 서경의 말씀을 뜻하는 것일 테지요.

아, 가만히 우리 석오 공을 생각해 봅니다. 자상하고 다정하며 진실하고 중후하여 일상생활에서 대인관계나 행동거지가 모두 유학자의 고졸함에 합치되었습니다. 효도로 어버이를 섬기고 공경으로 마을에서 지내며 신의로 벗을 사귀니 비복들까지 은혜롭게 여겨 그렇게 하였습니다. 더구나 기물(器物)과 도수(度數)에는 간이(簡易)하고 경직(硬直)하였으며, 비록 많은 사람들이 빽빽하게 모인 자리에서도 엄연히 스스로를 지켜 남과 구차히 영합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말년에는 절도가 균형이 잡혀, 몹시 군색하더라도 분수에 따라 편안히 처신하고 작은 일에 이해를 세세하게 따지지 않으니 남들이 우활하다 여겼습니다. 그렇지만 오직 가훈을 익히고 이어받아 말을 급하게 하거나 낯빛을 갑자기 바꾼 적이 없었습니다. 또 남의 악한 점을 말하지 않고 책을 가지고 스스로 즐겼으니, 어찌 굳이 옛사람보다 못하다고 하겠습니까.

돌아보건대, 게으르고 견문이 좁은 나는 어릴 때부터 두터운 정의(情誼)로 공을 몹시 받들었습니다. 얼마 전에 공이 각계(覺溪)와 치산(痴山) 등지에 잠시 우거하였는데, 이는 명승지를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민을 떨쳐 버릴 생각에서였습니다. 다행히 나의 집과 아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서 일이 있으면 서로 묻기도 하고 의심나는 것이 있으면 질정하기도 하였는데, 자세하고 꼼꼼한 대화가 이르지 않는 곳이 없었습니다. 오랫동안 얼굴을 보지 못할 경우에는 편지를 보내 회포를 풀었습니다. 전에 내가 상중에 있을 때 공이 시종일관 위로해 주어 의지할 데가 있도록 하였으니, 남다른 내외 사촌 사이였습니다. 내가 공의 머리카락이 희어지기 시작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일찍이 공에게 말하기를 “사람의 생사와 질병은 미리 헤아릴 수 없으니, 이곳에 굳이 오래 머물 필요가 없습니다. 게다가 종족과 친구들이 공의 흉금을 모르고 경솔하게 허물해 대니, 어찌 옛 별장으로 돌아가지 않겠습니까.” 하였습니다. 이에 심각하게 생각해 보고 그러겠다고 하고는 마침내 결정하여 철수하고 돌아왔으니, 또한 여기에서 취사의 의리를 알 수 있습니다.

대개 재덕(才德)의 의리란 입신양명하더라도 운명적으로 난관을 맞닥뜨리게 마련인데, 불행하게도 이렇게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만사가 끝나 버렸으니, 이제부터 나의 잘못을 누가 단속해 주고 나의 병폐를 누가 꼬집어 주겠습니까. 지난 2월 반구(返柩)하던 날에 내가 이웃마을까지 나갔으나 공교롭게도 연곡(延哭)과 어긋났으니, 생전과 사후에 모두 서운함이 있었습니다. 애자(哀子) 곤계(昆季)가 불쌍하고 측은하지 않은 것은 아니로되, 부인의 노쇠한 연세에 날로 깊이 애태우고 괴로워함에 보고서 장차 무슨 말로 위로하겠습니까. 또 조전(朝奠) 석전(夕奠)을 올리지 못하였으니, 이는 공이 예전에 헤아려 염려하던 것입니다. 공이 어찌 세상을 버려 이렇게 차마 하지 못할 짓을 차마 합니까.

아, 저 도주(道州)의 동쪽은 영혼이 대대로 사는 땅으로, 산과 계곡이 굽이굽이 감돌고 천석(泉石)이 둥글게 비치는데 물고기와 새가 즐거워하고 안개가 멋진 곳이니, 충분히 청아한 감상의 밑천이 될 것입니다. 영혼이 혹여 이곳을 배회하며 예전처럼 시를 지어 읊조려 주실는지요. 맑은 바람 부는 한낮이나 밝은 달이 뜬 저녁에 객을 전송하고 홀로 앉아 공의 의범(儀範)을 생각하며 공의 논의(論議)를 생각하며 공의 성정(性情)을 생각하며 공의 작품을 생각하면 마음에 또록또록 새겨져 잊히겠습니까. 내가 세상일에 얽매여 나아가 곡하지 못하고 지금 장례일에 보잘것없는 제물을 올립니다. 밝은 영혼이여, 정성을 가련히 여겨 살펴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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