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문/제문

祭從叔文

황성 2011. 2. 15. 17:52

祭從叔文 代內兄朴廷奭作

 

嗚呼 昔在府君下世之日 余以搬寓之初 事多未遑 末由趨哭 於襄樹之日 病不得臨訣 于玆悲感 自有不忘者矣 惟我府君平日懿行 不脩邊幅 在家勤儉 處事精詳 友愛兄弟 周恤族姓 喜聞人之有善 未嘗言人之過失 忠厚溫良 出於天性 嘗抄古人格言 書于寢壁 而朝夕觀省 不外儒素之意 亦在其中 而肯獲肯菑 克承家謨 余之素感佩者深矣 噫 禍福多舛 昔年允從伯季夭折慘 不可忍言 無乃榮衛以此致祟 竟至不虞也哉 年躋七旬 不謂不壽 而膝下又有擿蓮之慶 庶得天之所施報矣 今日之一悲一慶 奚可提及於幽聽耶 顧余小子 今於白首之年 出沒世故 一片靈臺 荒頓無餘 更何隨分 飮啄以畢此生 門戶零替 難復振起 未死之前 實爲關心 惟冀府君在世胥相爲依 天又不憖遺 使余踽凉 有懷而悃愊難陳 有事而質確無由 若登樓而去梯 渡江而遺棹 今我來斯 彌切痛衋 小子質素虛弱 符到無幾 侍吾先考妣於地下 是所願 人若死而無智則已 如有知 則相從府君以遂平昔之蘊 亦不晩矣 府君之歸後 營壙于東昌庚坐之原 卽距家一舍地也 體魄之攸寧 在慈焉 則靈其知乎否乎 情溢意縮 略陳荒辭 伏惟尊靈 鑑我微衷

 

 

당숙 제문

- 내종형(內從兄) 박정석(朴廷奭)을 대신해 지음

 

오호라, 지난해 부군(府君)이 별세하던 날에 내가 이사한 초기라 겨를이 없어 달려가 곡하지 못하고 장례를 치르던 날에는 병으로 영결식에 참석하지 못하였으니, 이에 슬픔이 자연 잊히지 않았습니다. 우리 부군의 평소 아름다운 행실이 변폭(邊幅)을 꾸미지 않아 집에서는 근검하고 일 처리는 정밀하고 상세하며, 형제간에 우애하고 친족들을 두루 보살피며, 남의 선한 점을 듣기 좋아하고 남의 과실을 말한 적이 없으니, 충후(忠厚)함과 온량(溫良)함이 천성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일찍이 옛사람의 격언을 침실 벽에 써서 아침저녁으로 보고 반성하였는데, 유자(儒者)의 본분에서 벗어나지 않는 뜻이 또한 그 가운데 있어서 터득하려고 하고 가꾸려고 하면서 가법을 잘 이어받았으니, 내가 평소 깊이 감동하여 마음에 새겼습니다.

아, 화복은 어그러짐이 많은지라 지난해에 종백계(從伯季, 사촌 형제)가 요절한 참담함을 차마 말할 수 없는데, 이는 영위(榮衛)가 이 때문에 빌미를 불러들여 결국 예기치 않은 지경에 이른 것이 아니겠습니까. 칠십 세에 운명하신 것을 장수하지 않았다 말할 수 없고 슬하에 또 소과에 급제하는 경사가 있었으니, 이는 아마도 하늘의 보답을 받은 것이겠지요. 그러나 오늘의 애사와 경사를 어찌 구천에까지 알릴 수 있겠습니까.

돌아보건대, 내가 지금 머리 희끗희끗 나이에 세상일에 골몰하면서 한조각 마음이 남김없이 황폐해졌습니다. 다시 어찌 분수에 따라 먹고 마시면서 이 생을 마치겠습니까. 가문이 영락하여 다시 떨쳐 일어나기 어려우니, 죽기 전에 실로 주의를 기울여 오직 부군이 세상에 계실 때 서로 도와 의지하기를 바랐습니다. 하늘은 또 억지로라도 부군을 이 세상에 남겨 두지 않아서 쓸쓸하고 처량한 나로 하여금 마치 망루에 오르는데 사다리를 치워 버리고 강을 건너는데 노를 버려 버리듯, 마음에 간직한 정성을 진달하기 어렵게 하고 일이 있는데 질정할 데가 없게 하는 것입니까.

지금 내가 여기에 오니, 가슴 아프고 서러운 심정 더욱 간절합니다. 나의 기질이 평소 허약하여 저승사자 당도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지하에서 먼저 가신 부모님을 모시는 것이 소원입니다. 사람이 죽어 지각이 없다면 그만이지만 만약 지각이 있다면, 부군과 상종하며 평소 쌓은 정을 이루더라도 늦지는 않을 것입니다. 부군께서 돌아가신 뒤 동창(東昌)의 경좌(庚坐)의 언덕에 안장하였으니, 집에서 30리 떨어져 있습니다. 육신과 혼백은 여기에서 편안하려니와 영혼은 아실는지 모르실는지요. 정은 넘치는데 뜻은 위축되어, 대략 거친 내용을 진달합니다. 삼가 바라노니, 존령(尊靈)께옵서는 보잘것없는 정성을 살펴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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