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서발/급암시집서

급암시집서

황성 2009. 3. 12. 16:49

及菴詩集序

白文寶1) 


余居尙一日。及庵之外孫金君伯誾。編及庵詩蒿携以示余。余讀之。不覺吟詠之不足曰。所著何止是歟。金君曰。自翰苑至綸閣相府。歌詩之多累千百首。迨喪亂旣皆失之。唯晚年有詩。必命小子書。卽藏諸笥篋。以及播越不敢忘也。今退而編之。得五七言若干首。惜其手澤之不全也。敢求敍篇端。他日備續東人文集。俾不沒其善焉可也。余曰。其然。余與及庵善。往往集盃杓。未甞不附。而詩句之贈。亦不爲不多。皆茫然不可記矣。其可求之亂兵煨燼之餘乎。然尙嘉其孫能繼述而存此編。亦足以感發吾心。蓋詩言志。可以興可以觀。邇之事父。遠之事君。則皆本乎性情。方可謂之詩。彼以言辭而已者。以誇多闘靡。英華其詞。不至於觀感。不近於性情。則乃無用之贅言也。故世之人。有專務章句。悅人耳目。雖苦心覓好。不能胷次悠然而得萬一。索句姸滑。其志局于此者。纔讀過數十篇。心已倦於再覽矣。余於及庵之詩。讀之。不覺吟詠之不足。所謂可以興可以觀者。皆得其義矣。惜乎專章之不得傳於世也。姑以所見。告夫類書者爲之序。


 내가 상주(尙州)에 있던 어느 날, 급암(及庵)의 외손 김백은(金伯誾)이 《급암시고(及庵詩稿)》를 역어서 들고 와서 나에게 보여주거늘, 내가 읽고서 나도 모르게 읊조리는 것만으로 부족함을 느끼고 말하기를, “저술한 것이 어찌 이 분이겠는가?” 하니, 김군이 말하기를, “한원(翰苑)으로부터 윤각(綸閣)ㆍ상부(相府)에 이르기까지 가시(歌詩)가 수천 수나 되었는데, 난리를 만나 이미 다 유실되었습니다. 오직 만년에 시를 지으시거든 반드시 소자(小子)에게 쓰게 하니, 곧 광주리 속에 간직하여 피난을 갔을 때에도 감히 잊지 않았습니다. 지금 벼슬에서 물러나 이 책을 엮어 5, 7언의 몇 수를 수록하였으니, 그 수택(手澤)이 온전하지 못한 것이 애석합니다. 감히 편머리에 붙일 서문을 구하니, 다른 날 동인(東人)의 문집을 속성(續成)함에 대비하여 이 좋은 것을 없어지지 않게 함이 옳겠다.”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그러하다.” 하였다.

 나는 급암과 더불어 사이가 좋아 왕왕 모여 술을 마실적에 어울리지 않음이 없고, 시구의 주고받음도 적지 않았으나 다 아득하여 기억할 수 없으니,  어찌 병란으로 불타버린 나머지에서 구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오히려 그 능히 계술(繼述)하여 이 편을 보존함을 가상히 여기고, 또한 그것으로 내 마음을 감발하기에 넉넉하다. 시는 뜻을 말하였다. 선악(감상)을 일으킬 수 있으며, 정치의 덕실(관찰력)을 관감(觀感)할 수 있으며, 가깝게는 아비와 멀리는 임금을 섬길 수 있으니, 다 성정(性情)에서 우러나야 바야흐로 시라 할 수 있다. 저 언사(言辭)만을 수식하고 마는 사람은 지식이 많은 것을 자랑하고 문장의 화려함을 다툼으로 그 문장을 빛나게 하여, 보고 느끼는 것에서 지극하지 않고, 성정에 가깝지 않으니, 이는 쓸데없는 군소리[贅言]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이 오직 장구(章句)만을 힘써 남의 이목을 즐겁게 함이 있으니, 비록 고심하여 좋은 것을 찾지만 능히 흉금이 즐거워서 자득할 수 없다. 만약(만일) 아름다운 글귀만을 찾아는다면, 그 뜻이 이에 속박된 것은 겨우 수십 편만 읽어 내려가면 벌써 두 번 보기도 싫어진다. 나는 급암의 시에 대하여 읽을수록 나도 모르게 읊조리는 것만으로 부족함을 느끼게 되니, 이른바 흥기할 수 있고, 보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이 모두 그 뜻을 얻었다. 전질이 세상에 전하지 못하게 된 것이 애석하네. 우선 소견을 들어 책을 분류하는 사람에게 고하고, 이 서문을 쓰노라.



1)  백문보(白文寶, ?∼1374) : 고려 말기의 문신. 본관은 직산(稷山). 자는 화부(和夫), 호는 담암(淡庵). 부사 견(堅)의 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