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문/악록서원기

악록서원기 장경부

황성 2008. 5. 29. 09:19

악록서원기

상수(湘水) 서쪽에 옛 장실(藏室)이 있는데 언덕을 등지고 구릉을 향하여 나무가 무성하고 샘이 맑아 선비들이 학업을 익히는 곳이 되었다.

처음 개보(開寶, 963-975) 연간에 군수 주동(朱洞)이 먼저 터를 헤아려 재우를 지어서 사방의 학자를 기다렸고, 이윤칙(李允則)이 와서 고을을 다스림에 조정에 요청하여 서책을 소장해 주기를 바랬다. 이때를 당하여 산장(山長)인 주식(周式)이 의로움을 실천한다는 것으로 이름이 드러났더니, 상부(祥符, 1008-1016) 8년(1015)에 당시 황제인 진종(眞宗)이 불러서 편전에서 보고 국자학(國子學) 주부(注簿)에 배수하여 그로 하여금 돌아가서 교수가 되게 하였고, 조서를 내려 악록서원(嶽麓書院)으로 이름하고, 중비서(中秘書)를 더하여 하사하였다.

소흥(紹興,1131-1162) 신해(辛亥,1131)년에 다시 병화를 인하여 불타버렸고, 건도(乾道, 1165-1173) 개원(改元, 1165)년에 건안(建安) 유공(劉珙)이 부임하여 이미 해독을 끼치는 사람을 물리치고 간사한 사람을 제거하니 민간의 풍속이 안정되었다. 상수의 사람들이 말을 모아 서원으로써 간청하니, 유후가 두렵게 여기며 말하기를, “이것은 진실로 장성황제가 일방을 가상히 여기고 은혜롭게 하여 천하를 가르치고 격려하는 것이니 황폐하게 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여, 반 년 만에 이루어졌다.

내가 많은 선비를 따라가서 보고서 말하기를, “유후가 이 일을 거행한 것이 어찌 다만 그대들로 하여금 무리지어 거처하여 모여서 담소를 나누며 다만 과거에 급제하여 봉록만을 계산하게 함이겠는가? 또한 어찌 그대들로 하여금 언어와 문자의 공교로움만을 익히게 할 따름이겠는가? 대개 인재를 이루어서 도(道)를 전수하여 이 백성을 구제하게 하고자 함이니, 그 전수함은 무엇이겠는가? 왈, ‘인(仁)’이다. 인(仁)은 인심(人心)이니, 성품을 따라 천명을 세워 천지의 이치를 알고 만물의 생육을 돕는 것이다. 맹자가 말하기를, ‘측은지심(惻隱之心)은 인(仁)의 단서이다.’라고 하였으니, 여기에서 찾는다면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 시험삼아 살피건대, 내가 어버이를 섬기고 형을 따르며 사물에 응대하고 일을 처리함이 이 단서이다. 진실로 능히 확충하여 이룬다면 인(仁)의 대체를 어찌 얻지 못하겠는가? 그 지극함에 미쳐서는 천지와 더불어 덕을 합하고 귀신과 함께 쓰서 오래됨에 한계가 없고 변화를 헤아리지 못하나 그 처음은 멀지 않다. 이것은 비록 빈약에 처하며 은거하나 어찌 손해나는 것이 있겠으며, 때를 만나 도를 실천하여 사업이 천하에 가득하더라도 또한 무엇이 나에게 더해지겠는가?”라고 하고, 마침내 이 말을 기록하여 뜻을 함께하는 사람을 힘쓰게 하고, 이것으로 유후의 덕을 잊지 않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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