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열전/주돈이

열전

황성 2008. 5. 22. 14:01

주돈이(周敦頤)

주돈이(周敦頤)의 자는 무숙(茂叔)이니 도주(道州) 영도(營道) 사람이다. 원래 이름은 돈실(敦實)이니 영종(英宗)의 옛 이름을 피하여 고쳤다.

외삼촌 용도각(龍圖閣) 학사 정향(鄭向)으로 분녕(分寧)의 주부에 임명되었다. 옥사가 오래도록 결정되지 않았는데, 주돈이가 이름에 한 번 묻고 변론을 세우니 읍인들이 놀라며 말하길 “늙은 관리라도 같지 못할 것이다.”하였다. 부(部)의 사자가 천거하여 남안군(南安軍) 사리참군(司理參軍)에 임명되었다. 죄수가 법에 사형에 합당하지 않거늘 전운사(轉運使) 왕규(王逵)가 심하게 다스리고자 하였다. 왕규는 못되고 사나운 관리인지라 뭇사람들이 감히 간쟁을 하지 못하거늘 주돈이가 홀로 더불어 변론을 하였는데, 듣지 않거늘 곧 수판을 버리고 돌아가 장차 관직을 버리고 떠나려고 하며 말하기를, “이와 같은데 오히려 벼슬할 수 있는가? 사람을 죽여서 남에게 아첨함은 나는 하지 않는다.”하였다. 왕규가 깨달아 죄수가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

침군(郴郡)의 계양(桂陽) 수령으로 옮겨 치적이 더욱 드러났다. 침군의 군수인 이초평(李初平)이 어질게 여겨 그에게 말하길 “내 독서를 하고자 하는데, 어떻게 할꼬?”하니, 주돈이가 말하길 “공이 늙어서 내 미치지 못할 것이나, 청컨대, 공을 위하여 말할 것입니다.”하였다. 2년이 지나서 과연 얻음이 있었다. 옮겨서 남창을 맡으니, 남창의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이분은 분녕의 옥사를 판가름한 사람이 아닌가? 우리들이 하소연할 곳을 얻었다.”하니, 부호와 대성(大姓) 약은 아전 악소배(惡少輩)가 두려워하여 비단 수령에게 죄를 얻는 것을 근심으로 삼을 뿐만이 아니라, 또 선한 정사를 더럽힘을 부끄러움으로 삼았다. 합주(合州)의 판관을 역임함에 일이 그의 손을 지나지 않으면 아전들이 감히 결정하지 못하니 비록 아래 백성이라도 부사(部使)를 따르기를 즐거워하지 않았다.

조변(趙抃)이 참소하는 말에 미혹되어 임하기를 매우 위엄스럽게 하였으나, 주돈이는 처신하기를 초연히 하였다. 건주(虔州) 통판을 맡았는데, 조변이 건주의 수령이 되어 익숙히 그가 하는 바를 보고 곧 크게 깨닫고 그의 손을 잡고 말하기를 “내 그의 그대를 잃을 뻔하였다. 지금 이후에야 비로소 주무숙을 알았다.”하였다.

희녕(熙寧) 초년에 침주를 맡았고, 조변 및 여공저(呂公著)의 천거로 광동(廣東) 전운판관이 되었다. 형옥을 제거하고 점검함에 원통함을 씻어주고 사람들에게 은택을 미치는 것으로 자기의 임무로 삼았다. 부(部)를 순행함에 노고를 꺼리지 않아 비록 풍토병이 들고 길이 험하고 먼 곳이나 또한 느리게 보고 천천히 살폈다. 병으로 지남강군(知南康軍)을 구하여, 인하여 여산의 연화봉(蓮花峯) 아래에 집을 지었다. 앞의 시내가 분강(湓江)과 합쳐지니 영도(營道)에서 거처한 염계(溓溪)를 취하여 이름으로 삼았다. 조변이 다시 촉땅을 진무하여 장차 다시 등용하려 하였더니 미치지 못하고 죽으니 나이 57세였다. 황정견이 그의 인품이 매우 고아하고 흉회가 깨끗함이 마치 광풍제월(光風霽月)과 같다.“라고 칭송하였다.

명예를 취함에는 분명하였고 뜻을 구함에는 예민하였으며, 복을 구함에는 박하였고 백성의 마음을 얻는 데에는 두터웠으며, 몸을 받듦에는 야박하였고 넉넉함이 과부와 홀아비에게 미쳤으며, 세사에 바라는 것을 누추하게 여겼고 위로 천고를 벗하였다. 해박하게 배우고 힘써 행하여 태극도(太極圖)를 저술하여 천리의 근원을 밝히고 만물의 시종을 연구하니, 태극도설은 다음과 같다.

‘무극이면서 태극이니, 태극이 동하여 양을 낳아 동이 극에 달하면 정하고, 정하여 음을 낳아 정이 극에 달하면 다시 동한다. 한번 동하고 한번 정함이 서로 그 근저가 되어 음오로 나누고 양으로 나눔에 양의가 서게 되었다. 양이 변하고 음이 합하여 수․화․목․금․토(水火木金土)를 낳아 오행의 기운이 순차적으로 펴짐에 사시가 행하게 된다. 오행은 한 음과 양이요, 음과 양은 한 태극이니, 태극은 본래 무극이었다. 오행이 생겨남에 각기 그 성을 하나씩 같직하니, 무극의 진리와 음과 양 오행의 정기가 묘하게 합하고 엉기어, 건도는 남(男)을 이루고 건도는 여(女)를 이루어, 두 기운이 교감하여 만물을 화생하니, 만물이 낳고 낳아 변화가 무궁하게 된다. 오직 인간은 그 빼어난 기운을 얻어 가장 영득하니, 형체가 이미 생김에 정신이 지혜를 발한다. 그리하여 오성이 감동되어 선과 악으로 나뉘고, 만사가 나온다. 성은은 중정한 인으로 정하되 정을 주장하시어 사람의 극을 세우셨다. 그러므로 성인은 천지와 더불어 덕이 합하며, 일월과 더불어 밝음이 합하며, 사시와 더불어 차례가 합하며, 귀신과 더불어 길흉이 합하는 것이니, 군자는 이것을 닦는 지라 길하고 소인은 어기는 지라 흉하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하늘의 도를 세움은 음과 양이요, 땅의 도를 세움은 유와 강이요, 사람의 도를 세움은 인과 의다. 하였고, 또 말하기를 처음에 근원하여 마침으로 돌아간다. 그러므로 사생의 이론을 안다.”하였으니, 위대하다, 주역이여 이에 그 지극하도다.’

또 통서(通書) 40편을 저술하여 대극의 온축함을 발명하였으니, 서를 지은 사람이 “그 말이 요약되고 도가 크며 문이 질박하고 의가 정밀하여 공자와 맹자의 본원을 얻어, 크게 학자에게 공이 있다.”고 하였다.

남안(南安)에서 하급 관료가 된 때에 정향(程珦)이 통판군사(通判軍事)가 되었는데, 그의 기모가 범상한 사람이 아님을 보고 더불어 말하여 그의 학문을 함이 도를 앎을 알고, 인하여 더불어 벗이되어 두 아들 정호(程顥)와 정이(程頤)로 하여금 가서 수업하게 하였다. 주돈이가 매양 하여금 공자와 안자가 즐긴 바에 즐긴 바가 무슨 일인가를 찾게 하였다. 두 정자의 학문이 근원이 여기에서 나왔다. 그러므로 정호가 말하기를 “두 번 무숙을 본 뒤로부터 음풍농월(吟風弄月)하여 돌아와서 논어의 ‘내 점을 허여한다.’는 뜻이 있었다. 후사성(侯師聖)이 정이에게 배웠는데, 깨닫지 못하여 주돈이를 방문하니, 주돈이가 말하기를 ”내 늙었으되 말을 상세하기 하지 않을 수 없다.“하고, 머물게 하여 책상을 대하여 밤을 세워 말하여 3일이 지난 뒤에야 돌아오니, 정이가 놀라며 말하기를 ”주무숙으로부터 온 것이 아닌냐?“하였으니, 그가 사람을 잘 개발함이 이와 같았다. 가정(嘉定) 13년에 시호를 하사하여 ‘원공(元公)’이라 하였다. 순우(淳祐) 원년에 여남백(汝南伯)에 봉하고 공자의 묘정에 종사(從祀)하게 하였다. 두 아들은 주수(周壽)와 주도(周燾)이다. 주도는 관직이 보문각(寶文閣) 대제(待制)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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