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송팔대가문초/한문공문초 권지15

唐故虞部員外郎張府君墓誌銘

황성 2013. 2. 6. 17:39

唐故虞部員外郎張府君墓誌銘


尚書虞部員外郎安定張君諱季友 字孝權 年五十四 病卒東都 明年 兄子塗與其弟庾掞等 護柩 歸葬長安縣馬額原夫人北海唐氏之封 前事 塗進韓氏門伏哭庭下曰 叔父且死 幾於不能言矣 張目而言曰 吾不可無告韓君别 藏而不得韓君記 猶不葬也 塗為書致吾意 已而 自署其末與封 敢告以請 愈既與為禮 發書云云 其末有複語千萬永訣八字 名日月與封 皆孝權迹 孝權與余同年進士 其上世有暠者 當宇文時 為車騎大將軍 鄜城太守 卒葬河北 謚曰忠公 至孝權 間五世矣 孝權大父 諱孝先 太子通事舍人 父諱庭光 贈綏州刺史 綏州之卒 孝權葢尚小 母曰太原縣君 卒既葬 孝權守墓 樹松柏 三年而後歸 選為河南府文學 去官 徐州使拜章 請為判官 授協律郎 孝權始不痛絶 詔下大悔 即詐稱疾不言三年 元和初 徐使死 孝權疾即日已 試判入髙等 授鄠縣尉 明年故相趙宗儒鎮荆南 以孝權為判官 拜監察御史 經二年 拜真御史 明年 分司東臺 轉殿中 按皇甫氏子 母病不侍 走京師求試職 宰相怒曰吾故皇甫氏 御史助所善 相戲法侮我 皇甫媪何疾 䘖未决 皇甫母病果死 得解 遷留司虞部員外郎 孝權為人孝謹 與人語 恐傷之 而時嶷嶷有立 與孝權㳺者極衆 而獨以其死累余 可尚也已 是為銘


상사 우부 원외랑(尚書虞部員外郎) 안정(安定) 장 군(張君)의 휘는 계우(季友)요 자는 효권(孝權)이니 나이 54세에 동도에서 병으로 죽었다. 다음해 그 형의 아들 권도(權塗)가 그의 아우 권유(權庾), 권섬(權掞) 등과 운구를 호송하여 장안현 마액원(馬額原) 부인 북해 당씨(北海唐氏)의 무덤 옆에 장사지냈다. 장사지내기 전에 권도가 나의 뜰에 업드려 통곡하며 말하기를 “숙부가 돌아가시기 전에 거의 말 할 수 없는 지경이었는데 눈을 부릅뜨고 말하기를 ‘내 한 군에게 이별을 고하지 않을 수 없다. 장사지냄에 한군의 묘지명을 받지 못하는 것은 장사지내지 않는 것과 같으니 너 도는 편지를 써서 나의 뜻을 전하라.’라고 하였다. 이윽고 스스로 편의 말미와 봉투에 서명을 하였습니다. 감히 이것으로 고하고 묘지명을 청합니다.” 하였다. 내가 이미 그와 상례를 마치고 편지를 열어보니 이렇게 말하였고, 그 말미에 중복하여 쓴 영원히 이별을 고한다[千萬永訣]는 8자가 있었으며 서명과 날짜와 봉투는 모두 효권의 필적이었다. 효권은 나와 같은 해에 진사에 급제하였다.

 그의 윗대에 권호(權暠)라는 분이 계시니 북주[宇文] 때에 거기대장군(車騎大將軍) 부성 태수(鄜城太守)를 역임하였고 하남에서 죽어 장사지냈으니, 시호는 충공(忠公)이다. 효권의 5대 선조이다. 효권의 대부는 휘는 효선(孝先)이니 태자 통사사인(太子通事舍人)이요, 아버지는 휘가 정광(庭光)이니 수주 자사(綏州刺史)에 추증되었다. 수주가 죽을 적에 효권이 아직 어렸다. 어머니는 대원현군(太原縣君)이니, 죽어 이미 장사지내고 효권이 무덤을 지키며 소나무와 잣나무를 심었다. 삼년 뒤에 돌아와서 선발되어 하남부 문학(河南府文學)이 되었다. 관직을 떠나는데, 서주사(徐州使)가 소장을 올려 판관을 삼아 협률랑(協律郎)에 제수하기를 청하였다. 효권이 처음에는 강렬하게 끊지 않았다가 조서가 내려옴에 크게 뉘우치고 즉시 거짓으로 병을 칭탁하여 3년 동안 말하지 않았다. 원화 연간에 사주사가 죽자 효권의 병이 그날로 낳았다. 서판에 시험에 응시하여 높은 등급에 들어 호현위(鄠縣尉)에 제수하였다가 다음해 다음해 고 재상 조종유(趙宗儒)가 형남(荆南)을 진무하였는데, 효권으로 판관을 삼아 감찰어사에 배수하였다가 2년 뒤에 참 어사로 제수하였다. 다음해 동도의 대간에 분사하여 전중시어사에 전임되었다. 황보씨(皇甫氏)의 아들이 어머니가 병들었는데 간호하지 않고 경사에 가서 임시직임을 구한 것을 조사하여 탄핵하였는데, 재상이 노하여 말하기를, “내 황보씨를 예부터 아는 사이이다. 어사가 잘 아는 사람을 도와 서로 법을 희롱하고 나를 업신여기는 것이다. 황보의 어미가 무슨 병이 들었겠는가.” 하였다. 갇혀서 아직 판결이 나지 않았는데, 황보의 어미가 병으로 과연 죽자 의혹이 풀렸다. 승진하여 우부원외랑(虞部員外郎)으로 동도에서 직임을 맡았다. 효권의 사람됨은 효성스럽고 조심하여 남과 이야기함에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할까 염려하였고 때로 우뚝히 세운 뜻이 있었다. 효권과 친하게 지낸 사람들이 매우 많았지만 유독 그의 죽음을 나에게 알리는 가상하다. 이에 명을 짓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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