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문학선/행

비파행

황성 2009. 2. 2. 13:59

비파행

 

심양강 머리에서 밤에 객을 전송하니

단풍잎과 갈대꽃에 가을바람 쓸쓸하네

주인은 말에서 내리고 객은 배에 있는데

술잔을 들어 마시려 하나 관현의 음악이 없네

취하여도 기쁨 이루지 못하고 슬피 작별하려 하니

작별할 때 아득히 강에는 달빛이 잠겼네

홀연히 물가에 비파소리 들려오니

주인은 돌아감을 잊고 객은 출발하지 않네

소리 찾아 은근히 연주하는 이 누구인가 물으니

비파 소리 멈추고 말하고자함이 더디네

배를 옮겨 가까이 가서 맞이하여 보고

술을 더하고 등불을 다시 켜서 거듭 잔치 열었다오

천 번 부르고 만 범 부르자 비로소 나오는데

오히려 비파를 안아 반쯤 얼굴을 가렸네

뱃머리를 돌리고 줄을 튕겨 두세 소리타니

곡조를 이루기 전에 먼저 정이 있다오

현마다 억누르는 정이 있고 소리마다 사념하니

평생의 불우한 뜻 하소연하는 듯하고

눈썹을 떨구고 손 가는 대로 맡겨 연이어 타니

심중의 무한한 일 말하여 다하는 듯하네

가볍게 대고 천천히 비비며 튕겼다 다시 뜯으니

청음에는 예상곡을 타고 뒤에는 육요를 연주하네

굵은 줄은 쿵쿵 울려 소낙비 소리 같고

가는 줄은 애절하여 속삭이는 말소리 같구나

쿵쿵하고 애절함을 섞어서 타니

큰 구슬과 작은 구술 옥쟁반에 떨어지는 듯

고운 소리는 꾀꼬리 꽃 아래에서 노래하듯 매끄럽고

오열함은 시냇물 얼음 밑으로 여울져 흐르는 듯하네

언 시냇물 차갑게 얼어붙듯 줄소리 잠시 끝기니

끊어지고 통하지 안음에 소리가 잠시 멈추었네

별도로 그윽한 시름 있어 속타는 한 생기니

이때에 소리 없음이 소리 있는 것보다 낫네

은병이 갑자기 깨져 담겼던 물 쏟아져 나오는 듯하고

철기가 돌짐함에 칼과 창 울리는 듯하네

곡이 끝나자 발 꺼내어 한가운데 대고 그으니

네 줄이 한 소리 내어 비단을 찢는 듯하네

동쪽 배와 서쪽 배에 탄 사람들 서글퍼 아무말 없고

오직 강물 속에 가을달 밝은 것만 보네

생각에 잠겨 읊다가 발 거두어 줄 가운데에 꽂고는

의상을 정돈하고 일어나 용모 거두네

스스로 말하기를 저는 본래 장안의 여자로

집이 하마릉 아래에 있어 그곳에 살았는데

열세 살에 비파 배워 이루어서

이름이 교방의 제일부에 올랐습니다.

한 곡조 끝나면 항상 선재들 감복시키고

화장이 이루어지면 언제나 추랑의 질투를 받았지요

오릉의 소년들 다투어 내 머리에 비단 감아주니

한 곡조에 붉은 비단 수없이 받았습니다.

자개 박은 은빗은 장단 맞추다가 부서졌고

핏빛 비단 치마는 술 엎질러 더럽혀졌습니다.

금년에도 웃고 즐기며 다시 명년에도 그렇게 하여

가을달과 봄바람 등한히 보내었습니다

아우는 달려가 종군하고 아이는 죽었으며

저녁 가고 아침 오자 얼굴빛 시들었지요

문앞이 쓸쓸해져 말 탄 분 찾아오지 않으니

나이 들어 시집가 장사꿑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장사꾼은 이익을 소중히 여기고 이별을 가볍이 여겨

지난 달 부량현으로 차 사러 갔습니다.

저는 강어귀 왔다갔다하며 빈 배 지키오니

배를 둘러싼 것은 밝은 달과 차가운 강물이었습니다

밤 깊자 홀연히 젊었을 적 일 꿈꾸니

꿈에 우느라 화장한 얼굴에 눈물이 붉게 흐른답니다.

나는 비파소리 듣고 이미 탄식하였고

또 이 말 듣고 거듭 목이 메이네

그대나 나나 똑같이 천애에 떨어져 있는 사람이니

서로 만남에 어찌 예부터 아는 것을 기필하랴

나는 지난해에 서울을 하직한 뒤로

귀양살이하며 심양성에 병들어 누웠다네

심양 땅은 궁벽하여 음악 없으니

일년 내내 관현악 소리 듣지 못하였다오

그 사이에서 아침 적녁으로 무슨 소리 들었는고

두견새 피 토하며 울고 원숭이 슬피 우는 소리라네

어찌 산중의 노래와 마을의 피리 소리 없겠는가마는

조잡하고 시끄러워 듣기 어렵네

오늘 밤 그대의 비파 소리 들으니

신선의 음악 들은 듯 귀가 잠시 밝아지오

사양하지 말고 고쳐 앉아 한 곡조 타주오

그대 위해 문득 글로 옮겨 비파행 지어리라

나의 이 말에 감동한 듯 한동안 서 있다가

다시 앉아 급히 줄 타니 줄소리 더욱 급하네

처량하기 앞의 소리와 같지 않으니

온 좌중 사람들 듣고 모두 얼굴 가리며 우네

그중에 누가 가장 눈물 많이 흘리는가

강주사마는 푸른 적삼 다 젖었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