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송팔대가문초/한문공문초 권지 2

권2

황성 2008. 6. 18. 22:45
 

한문공문초 권지 2


 상장복야서(上張僕射書)


정을 편 문장이기 때문에 원만하게 펼쳐서 반복함에 마땅하다.


 9월 1일에 유가 재배하노라. 문서를 받은 다음날에 사원(使院)가운데 있었더니, 소리(小吏)가 사원 가운데의 고사 절목 10여 가지 일을 가지고 와서 한유에게 보여주는 사람이 있으니, 그 가운데 불가한 것이, 9월로부터 다음해 2월까지 모두 새벽에 출근하여 밤에 귀가하고, 질병이나 연고가 있지 않으면 문득 나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라고 하는 것이 있으니, 당시에 처음 명을 받았기 때문에 감히 말하지 못하였습니다. 고인이 하는 말이, ‘사람은 각각 능한 것이 있고 능하지 못한 것이 있다.’라고 하니, 이와 같은 것은 한유는 능한 바가 아닙니다. 억제하여 행하게 한다면 반드시 미친 병이 발작하여 위로는 공에게 일을 받들 수 없어서 그 장차 덕에 보답하려는 바를 잊고, 아래로는 스스로 설 수가 없어서 그 마음을 삼는 바를 상실하니, 대지 이와 같은지라, 어떻게 말하지 않을 수 있으리오. 무릇 집사가 한유를 선택한 것은 제가 새벽에 출근하여 밤에 퇴근하는 일에 능숙하기 때문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반드시 어떤 취할만한 점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만일 취할 점이 있어서 취하셨다면 비록 새벽에 출근했다가 밤늦게 퇴근하지 않는다해도 그 취할 점은 여전히 그대로 있을 것입니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섬기는 데엔 그 일이 한결같지는 않고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부리는 데도 그 일이 한결같지는 않습니다. 능력을 재어 임용하고 재능을 헤아려 자리를 주어야 하며 할 수 없는 일을 억지로 시키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아래에 있는 사람은 윗사람에게 죄를 얻지 않게 되고 위에 있는 사람은 아랫사람에게 원망을 사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맹자께서 이르셨습니다. 오늘날의 제후들이 크게 남달리 뛰어난 자가 없는 것은 그들이 모두 가르칠 만한 신하들을 좋아하고 가르침을 받을 만한 신하들은 싫어하기 때문이다. 지금에 와서는 맹자의 시대에 비해 더욱 그런 경향이 심해졌습니다. 모두들 명령을 듣고 뛰어다니는 사람을 좋아하지 자신을 곧게 지키고 도를 행하는 사람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명령을 듣고 뛰어다니는 사람은 이익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자기 몸을 곧게하여 도를 행하는 사람은 의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이익을 좋아하면서 그 군주를 사랑한 사람은 없었으며 의를 좋아하면서 그 군주를 잊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오늘날 왕족이나 공경대부들 중에 오직 공만이 이 말씀을 들어주실 수 있고 오직 저만이 일을 함에 공께 이 말씀을 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저 유는 공의 총애를 입고 소종래가 오래되었습니다. 만일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어 저의 천성을 잃지 않도록 해주시고 특별히 대우하시어 명분을 세우기에 족하도록 해주신다면 새벽 네시 경에 출근하여 여덟시 경이면 퇴근하고 오후 네 시경에 출근하여 여섯 시경이면 퇴근하는 것을 대체로 상규로 삼는다 하더라도 일에 태만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세상사람들이 공께서 저를 이와 같이 대해주신다는 것을 들으면 틀림없이 모두들 이렇게 말 할 것입니다. 공께서 선비를 사랑하심이 이와 같고 공께서 선비를 예로써 대우하심이 이와 같고 공께서 사람을 부림에 있어 그 천성을 굽히지 않게 하고 너그러이 허용할 수 있음이 이와 같고 공께서 남의 명성을 이루어 주시고자함이 이와 같고 공께서 예부터 알던 이를 후하게 대우함이 이와 같다. 또 장차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한유가 몸을 의탁할 사람을 알아봄이 이와 같고 한유가 부귀한 사람에게 아첨하고 굽히지 않음이 이와 같고 한유의 현명함은 그의 주인으로 하여금 예로써 대우하게 함이 이와 같다 그렇게 된다면 고의 문하에서 죽는다해도 후회함이 없을 것입니다. 만약에 항오를 따라 출근하게 하시고 대오를 쫓아 뛰어다니게 하시며 말함에 있어 감히 성심을 다 펼쳐내지 못하고 도를 행함에 있어 스스로 굽히는 바가 있게 된다면 세상 사람들은 공께서 저를 이와 같이 대한다는 것을 듣고는 모두들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공이 한유를 쓴 것은 그 궁핍함을 불쌍히 여겨 거두어 준 것일 뿐이다. 한유가 공을 섬기는 것은 도 때문이 아니라, 이익을 위해서였을 뿐이다. 만일 이같이 된다면 비록 날마다 천금의 보수를 받고 일 년에 아홉 번 승진하게 된다해도 은혜에 감격하는 일은 있겠습니다만 장차 세상에서 일컫기를 “공과 지기의 사이는 아니다󰡓�라고 하게 될 것입니다. 얻드려 바라옵건대, 저의 부족함을 불쌍히 여기시고, 저의 어리석음을 가련히 여기시어 저의 죄를 새겨두지 마시고 저의 말씀을 잘 살피시고 어지심을 베풀어 받아들여 주시기 바랍니다.



상장복야제이서


완곡하고 질탕하다. 그 말이 사마상여의 간렵서(諫獵書)와 더불어 서로 참고가 된다.


 한유는 재배하노라. 격구(擊毬)의 일로 집사에게 간언하는 사람이 많으니, 간언하는 사람이 그치지 않고 집사가 그치지 아니함은, 이것은 그 즐거움을 버리지 못하고 그 간언을 족히 듣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간언을 족히 듣지 못하는 것은 말이 족히 마음을 감동시키지 못함이요, 즐거움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근심이 능히 자신에게 간절하지 않음이다. 지금 격구의 해로움을 말하는 사람은 반드시 말하기를, “위태롭게 떨어지는 근심이 있고, 부딪혀 쏘는 근심이 있어서 작게는 얼굴을 상하게 하고, 크게는 몸을 해친다.”하니, 집사가 듣고서도 마치 못들은 척 하는 것은 그 마음 속으로 반드시 말하기를 “나아감에 만약 익숙하다면 위태롭게 떨어지는 근심이 없고, 피함에 능히 문득 민첩하게 한다면 부딪히는 근심을 면할 수 있으니, 작게는 어찌 얼굴을 다치며, 크게는 어찌 몸에 누가 되겠는가?”라고 하니, 한유가 지금 말한 것은 모두 여기에 있지 않으니, 그 뜻의 요점은 다른 일의 외물로 끌어당겨 서로 견주는 것이 아니다. 특별히 격구의 일로 밝혔을 따름이다. 말이 사람과 더불어 성정이 자못 다르나, 근육과 뼈가 서로 얽힘과 혈기가 서로 유지하여 편안하다면 상쾌하고 수고로우면 피곤한 것은 같다. 타는 것이 법도가 있어서 걷고 달림이 적당하더라도 젊어서는 반드시 질병이 없으나, 늙어서는 반드시 뒤에 노쇠한다, 마당에서 달려 격구를 함에 미쳐서는 그 마음과 장부를 흔들고 그 뼈와 근육을 흔들어서 기가 출입에 미치지 목하고 달림에 도는 것에 미치지 못하여 멀게는 3,4년 가까이는 1,2년에 온전한 말이 없을 것이니, 그렇다면 격구가 사람을 해침이 분명하다. 무릇 오장의 연결됨이 매우 은미하여 앉고 섬에 반드시 흉억의 사이에 매달려 오장의 조건으로써 구르고 달린다.

 아 우태롭구나! 춘추에 말하기를, ‘대저 우물(尤物)이 있으면 족히 사람을 옮길 수 있다.’라고 하였으니, 진실로 덕과 의가 아니면 반드시 재앙이 있으니, 비록 개제(豈弟)한 군자가 신명이 부지하는 바이나, 그러나 넓게 생각하고 깊이 생각하여야 또한 수명을 기르는 한가지 단서입니다.


상병부이시랑서


중간에 스스로 슬퍼하는 것이 많고 아울러 스스로 기렸다.


 한유가 젊었을 때 비루하고 노둔하였는지라 시사에 도무지 통달하고 깨닫지 못하였고, 집이 가난하여 족히 스스로 생활하지 못하여 과거에 응시하고 관직을 구함이 무릇 20년 이었다. 하찮은 목숨이 불행하여 걸핏하면 참소를 만나서 한 촌(寸)을 나아가면 한 척(尺)을 물러나 마침내 이룬 것이 없었다. 본성이 본래 문학을 좋아 하여 곤란하고 근심스러움을 하소연 할 곳이 없음으로 인하여 마침내 경전 사기와 백가의 설을 궁구하였고, 훈의(訓義)에 침잠하고 구두(句讀)에 반복하였으며, 사업을 연마하고 문장에 분발하여 무릇 스스로 당우(唐虞)이래로 간편에 보존된 것이 큰 것은 하해가 되고 높은 것은 산악이 되며, 밝음은 일월이 되고 그윽함은 귀신이 되며, 섬세함은 주기와 꽃과 열매가 되고 변함은 뢰정과 풍우가 된다. 기이한 말고 오묘한 뜻을 통달하지 않음이 없으나, 오직 이것은 비루하고 어둔하여 시사에 통달하고 깨닫지 못하였으니, 학문이 이루어짐에 도는 더욱 궁핍하고 나이가 많음에 지혜는 더욱 곤궁하여 사사로이 스스로 슬퍼하고 그 처음의 마음을 누우치니 머리가 덤성해지고 이빨이 빠져서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을 따름이다.

 대저 우각의 가사는 말이 비루하고 의가 졸열하며, 실당 아래의 말은 전기에 기록되지 못하되, 재환공은 상국에 등용하였고, 숙향(叔向)이 손을 끌고서 오르게 하였으니, 그렇다면 말함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듣고서 아는 사람을 만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엎드려 생각하니, 합하(閤下)는 안으로는 인하고 밖으로는 의로우며 행실이 고아하고 덕은 크며, 어진이를 숭상하고 능력있는 사람을 허여하고,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굽힌 사람은 슬퍼하여 강으로부터 서쪽은 이미 교화되어 시행되었으되, 지금 내직으로 들어가 지켜 조정의 대신이 되었으니 천자가 새로 즉위하여 다스리고 교화함에 바쁜 날을 당하여 말을 내고 일을 시행함에 마땅히 반드시 시행해야 한다. 이미 들음의 총명함이 있고 또 떨침의 힘이 있으니 녕척(寗戚)의 노래와 종명(鬷明)의 말을 좌우에서 드러내지 않는 다면 뒤에 그 시기를 잃게 될 것입니다.

 삼가 옛적 지은 문장 1권을 바치니 교도(敎道)를 돕고 심음에 명백함이 있고, 남행 시 1권은 근심을 펴고 슬픔을 즐겁게 하고, 괴괴한 말고 시속에서 좋아 하는 말을 섞으니, 입으로 풍자하여 귀에 들을 따름입니다. 만약 한 번 보아 주신다면 또한 채록할 것이 있으니, 당신을 더럽게 함에 엎드려 더욱 황공합니다.


등주북기상양양우상공서

(등주 북쪽에서 양양 우상공에게 붙여 올리는 편지)


 우상공을 기리는 듯하나 자기의 능력을 드러냈다.


엎드려 문무순성악사(文武順聖樂辭)와 천보악시(天保樂詩)와 채염(蔡琰) 호가사(胡笳辭)를 읽고 지은시와 우상공의 족종(族從)에서 전하고 아울러 경조윤에게 주는 편지를 보이심을 입으니 막부로부터 등주의 북쪽 경계에 이르기까지 무릇 500리이고 경자(庚子)로부터 갑진(甲辰)에 이르기까지 무릇 5일입니다. 손수 펼치고 눈으로 보며, 입으로 그 말을 읊고 마음으로 그 의를 생각하니 짐짓 두렵고 또 두려워하여 홀연히 잊음이 있는 듯하여 말안장에 앉은 수고로움과 길의 멂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대저 계곡의 물은 깊이가 척지에 불과하고 구릉의 산은 높이가 심장(尋丈)을 넘지 아니함에 사람은 친압하여 가지고 놀다가 태산의 바위와 큰바다의 놀란 파도를 봄에 미쳐서는 두려워 몸을 떨고 아찔하여 아연실색하여 보는 것이 앞에 변하고 지키는 것이 마음에서 바뀌지 아니함이 없는 것은 또한 그 이치의 마땅함입니다.

 합하는 초탁의 기이한 재주를 업고 강건한 큰덕을 쌓아 혼연히 하늘이 이루어 가장자리가 없고 또 귀함은 공상에 다하였고 위엄은 땅의 끝을 움직이며, 천자의 도움이요 제후의 사표입니다. 그러므로 그 문장과 언어는 일과 더불어 서로 짝이되어 떨쳐 움직임은 마치 우레와 같고 광대함은 은하와 같으며, 바른 소리는 소호(韶濩)와 조화롭고 굳센 기운은 금석을 막아 풍부하면서도 한 마디 말을 남기지 않고 요약되면서도 한 마디 말을 잃지 아니하니, 그 일은 진실되고 그 이치는 절실합니다.

 공자가 말하기를, ‘덕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말이 있다.’라고 하니, 진실로 그 덕이 있고 또 말이 있습니다. 양자운이 말하기를, ‘성서는 아득하고, 주서는 엄숙하다.’라고 하였으니, 진실로 그 능히 아득하고 또 엄숙합니다. 옛날에 제나라 군주가 가서 길을 잃으니 관중이 늙은 말을 풀어서 따르기를 간청하였고, 번지가 농가의 일을 물으니 공자가 늙은 농부에게 묻게 하였습니다.

 대저 말의 지혜는 관이오보다 어질지 못하고, 농부의 능력은 중보보다 성스럽지 못하나, 그러나 또한 그렇게 말한 것은 성현의 능력은 많고 농부와 말의 지혜는 오로지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한유가 비록 어리섞과 미천하나 그 문학에 종사함에 진실로 오로지 하고 또 오래하였으니 그 왕공의 능력을 돕고 대군자의 아름다움을 칭송함은 참람되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엎드려 생각하건대 자세히 살펴보소서.


상재상서(上宰相書)


경술을 인용함은 유향과 같으나 부족한 것은 서한의 풍운이다.


 1월 27일 전향공 진사 한유는 삼가 광범문하에 엎드려 재배하고 상공 합하에게 편지를 올립니다.

 시의 서문에 말하기를, 무성하고 무성한 것 새발쑥이여는 인재를 양육함을 즐김이다. 군자가 능히 인재를 기른다면 천하가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그 시에 말하기를, 무성하고 무성한 새발쑥이여, 저 언덕 가운데에 있도다. 이미 군자를 보았으니, 즐겁고 또 위의가 있다.라고 하니 해설하는 사람이 말하기를, 청청자(菁菁者)는 성대함이요, 아(莪)는 은미한 풀이다. 아(阿)는 큰 언덕이니, 말하자면 군자가 인재를 양육함을 마치 큰 언덕이 은미한 풀을 양육하여서 능히 하여금 청청연히 성대하게 함이다. 기견군자 악차유의라고 말한 것은 천하가 찬미한 말이다. 그 3장에 말하기를, 이미 군자를 보았으니 나에게 백붕(百朋)을 주도라고 하니, 해설하는 사람이 말하기를, ‘백붕은 많다는 말이니, 말하기면 군자가 이미 인재를 양육하고 또 마땅히 작위로 명령하여 두터운 봉록을 하사하여 총애하고 귀하게 여김을 말한다. 그 마지막 장에 말하기를, 둥둥 떠있는 버드나무 배여 이에 가라앉고 이에 떠있도다. 이미 군자를 보니 내 마음은 화평하도다. 하니, 해설하는 사람이 말하기를, 재(載)는 실음이요, 침부(沈浮)는 물(物)이니, 말하자면, 군자가 인재에 대해서 취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 마치 배가 사물에 대해서 가라앉고 뜬 것을 모두 실어주는 것과 같다. ‘이미 군자를 보니 내 마음은 아름답도다.’라는 것은 말하자면 이와 같다면 천하의 마음이 아름답게 여김이다. 군자가 사람에 대해서 이미 장육하고 또 마땅히 작위로 명령하고 총애하고 귀하게 여겨 그 인재를 빠트리는 것이 없다.

 맹자가 말하기를, ‘군자에게는 세 가지의 즐거움이 있으니 천하에 왕노릇함은 더불어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하였으니, 그 첫 번째 말하기를,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교육시킴이니, 이것은 모두 성인과 현인의 지극한 말과 지극한 의론이니, 고금에 마땅히 본받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능히 천하의 인재를 양육할 수 있는가? 장차 오군와 오상이 아니겠는가? 누가 능히 천하의 영재를 교육하시겠는가? 장차 우리 군주와 우리 재상이 아니겠는가? 다행히 지금 천하에 큰 변고가 없어 대소의 관원이 각각 그 직업을 지키니 돈과 곡식과 갑병의 물음은 묘당에 이르지 아니하니, 도를 의논하고 나라를 경영하는 여가에 이것을 버리고 마땅히 큰 것이 없습니다.

  지금 어떤 사람이 태어난 지 28년입니다. 이름은 농공(農工) 상고(商賈) 의 판(版)에 드러내지 아니하고 그 주업은 독서하고 글을 지어서 요순의 도를 노래하고 읊으며 닭이 울면 일어나서 부지런히 하여 또한 이익을 도모하지 않았습니다. 그 읽은 것은 모두 성인의 글이요, 양주와 묵적 불교와 도가의 학문은 그 마음에 들이는 것이 없었고, 그 지은 것은 모두 육경의 뜻을 요약하여 문장을 이루어 사악함을 억제하고 바른 것을 허여하여 시속의 의혹을 분변하였고 궁벽함에 거처하고 요약함을 지켜 또한 감격하고 원망하고 기괴한 말을 두어서 세상에 알려지기를 구하였으되 또한 교화에 어그러지지 않아 괴이하고 아침하고 터무니없는 논설이 그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없었다.

 4번 예부의 시험에 응시함에 곧 1번을 합격하였고 3번 이부의 시험에 선발되었으나 끝내 이루는 것이 없었으니 9품의 지위를 그 바라며 1묘의 집을 그 생각할 수 있겠는가? 겨를이 없어 세상에 돌아갈 곳이 없고 근심스럽게 굶주림에 먹을 것을 얻지 못하고 추위에 옷을 입지 못하여 죽음에 가까웠었나 더욱 견고하여 그 곳을 얻은 사람이 다투어 비웃음에 홀연히 장차 그 옛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이에 도모하여 노농과 노포를 구하여 스승으로 삼으려 하여 본래의 뜻이 변화됨을 근심하여 한밤중에 눈물이 흘러 턱에 교차하니 비록 시인과 맹자의 말에 합당하지 못하나 또한 장육하여 재목을 이루게 함이 또한 가능할 것이며, 교육하여 그 재주를 이루게 함이 또한 가능할 것입니다. 또 듣건대 옛날의 군자가 그 군주를 도움에 한 지아비라도 적당한 곳을 얻지 못하면 마치 자기가 밀어서 도랑에 빠트린 듯하였다고 합니다.

 지금 어떤 사람이 태어난 지 7세에 성인의 도를 배워서 자신을 수양하여 쌓은 것이 28년이 되었으되 어쩔 수 없이 하루아침에 훼손하였으니 이 또한 그 곳을 얻지 못한 것입니다.

 엎드려 생각하니 지금 어진 사람이 높은 지위에 있으니 만약 가서 고하지 못하여 마침내 떠날 것 같으면 이것은 스스로 포기함에 과감하고 옛 군자의 도를 가지고 우리 재상을 대우하지 않음이니 그 옳은 것입니까? 차라리 가서 고하여 뜻을 얻지 못할 것 같으면 천명인지라 떠날 수 있을 것입니다.

 홍범에 말하기를, “무릇 서민들이 꾀함이 있고 베푸는 것이 있고 지킴이 있는 것을 내가 생각하며, 지극함에 합하지 않더라도 허물에 걸리지 않거든 임금이 받아주어라, 얼굴빛을 편안히 하여 말하기를 내가 좋아하는 바가 덕이라 라고 하거든 내가 그에게 복을 주라.”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모두 선을 허여하는 말입니다. 또 듣건대, 고인이 스스로 나아간 사람이 있으면 군자는 뿌리치지 않는다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바가 덕이면 너가 복을 주라라고 말하는 것이다. 또 듣건대, 군상이 관직을 만들고 봉록을 제정하여 반드시 그 사람을 구하여 주는 것은 진실로 그 재주를 사모하여 그의 몸을 부귀롭게 함이 아니다. 대개 장차 그의 장점을 사용하여 단점을 다스리고 그 밝음을 사용하여 어두운 것을 다스리게 할 따름입니다. 아래가 자신을 수련하여 성을 세워 반드시 그 지위를 구하여 거처함은 진실로 이읽에 매몰되어 성명을 영화롭게 함이 아니다. 대개 장차 자신의 남는 것을 미루어 그 부족한 것을 구제하게 할 따름이다. 그렇다면 위가 아래에 대해서와 아래가 지위를 구함에 있어서 서러 구하여 그 이룸을 하나로 할 따름이니, 진실로 이것으로 마음의 경계로 삼는다면 윗 사람의 도가 반드시 그 아래를 어렵게 여기지 않을 것이며, 아랫 사람의 도가 반드시 그 윗사람을 어렵게 여기지 아니하여 등용할 만하면 등용하게 한다면 그 스스로 천거함을 사양할 필요가 없을 것이며, 나오게 할 만함에 나오게 하면 반드시 스스로 나아옴에 청렴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 듣건대, 위가 아래를 교화함에 그 도를 얻는다면 권면하고 상 주기를 반드시 두러 천하에 더하지 않더라도 천하가 따르니, 사람의 하고자 하는 것으로 마침내 미루는 것을 이른다.

 지금 천하가 이부를 말미암지 않고 벼슬에 나아가는 사람은 드물 것입니다. 주상이 산림의 선비가 달아나고 남겨진 사람이 있음을 느끼고 아파하여 여러 번 내외의 신하에게 조서를 내려 두루 사방에서 구하게 하였는데 그 이른 사람이 없었으니 어찌 그 사람이 없겠는가? 또한 국가에서 비상한 도리로 예우하지 않음을 보고 오지 않았을 따름이다. 저들의 은거하며 한가로움을 이룬 것은 또한 사람일 따름이니, 그 이목구비의 하고자 함, 그 마음의 즐기는 것, 그 신체가 편안하게 여기는 것이 어찌 사람과 다름이 있겠습니까? 지금 의식을 미워하고 신체를 다하여 사슴과 거처하고 원숭이와 거처하여 진실로 스스로 그 몸이 시절과 더불어 순종하고 부앙할 수 없기 때문에 스스로 단절함을 마음으로 즐기면서 후회하지 않으니 바야흐로 듣건대 국가의 벼슬에 나아오는 사람은 반드시 주현에서 응시한 연후에 예부에 올라서 이부가 꾸미고 조탁하는 문장으로 시험하고 성세의 역순과 장구의 장단을 헤아려 시험에 합격한 연후에 아래 선비의 반열을 따를 수 있으니, 비록 풍속을 바꾸고 변방을 안정시키는 계책이 있으나 이것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조금 나아가는 것을 만에 하나라도 얻지 못하니, 저가 오직 산에 들어감을 깊이 하지 않고 숲속으로 들어감을 치밀하게 하지 않음을 두려워하여 그 영향은 어두워서 오직 사람이 들을까 두려워합니다. 지금 만약 편지로 재상에게 나아가 벼슬을 구하는 사람이 있어 재상이 치욕으로 여기지 않고 천자에게 천거하여 작위를 주어 그 편지를 사방에 펼침을 듣고 고고(枯槁)하고 침닉하며 괴굉하고 관통한 선비가 반드시 짐짓 의기양양하게 그 마음을 움직이며 우뚝하게 그 관을 매고 떼를 지어 올 것이니, 이것이 이른 바 ‘권면하고 상 주기를 반드시 두러 천하에 더하지 않더라도 천하가 따르는 것.’ 이니, 사람이 하고자 하는 것으로 인하여 마침내 미루는 것을 이름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서경과 시경 맹자의 가르침을 보고 인재를 양육하고 복을 주는 까닭은 생각하며 옛 군자가 그 군주를 돕는 도리를 헤아려 스스로 나아감과 스스로 천거한 죄를 잊고 관직을 설치하고 봉록을 제정한 까닭은 생각하여 산림에 은거하고 남긴 선비를 유치하게 한다면 거의 천하에 도를 실천하는 사람이 돌아갈 곳을 알 것입니다.

 소자가 감히 스스로 바랄 수가 없는지라, 그 언젠가 지은 문장을 문득 그 가능한 것 약간편을 채록하여 다른 책에다 기록하니 외람되게 한 번 보아주실 것을 바랍니다. 존엄함을 더럽힘에 땅에 엎드려 죄를 기다립니다.

 한유는 재배합니다.



후십구일부상서(後十九日復上書)


소견이 비축하나 문장은 탕일하여 욀 만하다


2월16일 전향공 진사 한유는 삼가 두 번 절하고 상공 합하에게 말합니다. 지난번에 편지 및 지은 문장을 올린 후에 명령을 기다림이 무릇 19일인데, 명을 얻지 못하여 두려워하여 감히 달아나지 못하고 어찌할 줄을 알지 못하여, 곧 다시 감히 스스로 헤아리지 못하는 죄를 들여서 그 말을 마치기를 구하여 좌우에게 명을 청합니다.

 한유는 듣건대, 수화에 빠진 사람이 남에게 벗어나기를 구함에 오직 그 부형과 자제의 사랑인 연후에 불러서 바라는 것은 아니다. 장차 그 측에 개입한 사람이 있으면 비록 그가 증오하는 바이지만 진실로 그가 죽이고자 함에 이르지 않는다면 장차 그 소리를 크게하여 빨리 불러서 그가 인자하기를 바랍니다. 저 그 곁에 있는 사람이 그 소리를 듣고 그 일을 보고서는 오직 그 부형과 자제의 자애인 연후에 가서 살려 주는 것은 아니다. 비록 증오함이 있지만 진실로 그를 죽이고자 함에 이르지 않는다면 장차 미치게 달려 온 기운을 다해서 손발을 적시며 몸의 털을 태워 구하기를 사양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것은 왜 그런고? 그 세력이 진실로 위급하고 그 실정이 진실로 슬퍼할 만 하다.

 한유가 힘써 문학하고 힘써 실천함이 몇 년 되었습니다. 어리섞은 사람이 오직 길의 위험하고 평탄할 뿐만이 아니고///, 실천함에 짐짓 휴식하지 아니하여 궁벽하고 굶주리는 재앙에 빠지니 그 이미 위태롭고 화급하여 그 소리를 크게 하여 빨리 부름에 합하께서는 그 또한 듣고 보았을 것입니다. 그 장차 가서 온전함을 구하겠습니까? 아니면 장차 편안하게 여기고 구하지 않겠습니까? 합하에게 와서 말하는 사람이 있어 이르기를, ‘물에 빠지고 불에 타버리는 사람을 보고 구원할 수 있는 길이 있는데, 끝내 구원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합하께서는 짐짓 어진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습니까?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한유와 같은 사람은 또한 군자가 마땅히 마음을 움직여야할 사람입니다. 혹이 한유에게 이르기를 그대의 말은 그러하다. 재상은 그대를 알 것이나, 시절의 불가함 같은 것에 어찌하리오?하니, 한유는 저으기 말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진실로 그의 재능이 족히 우리 어진 재상의 천거에 합당하지 못하였을 뿐이언정. 만약 이른 바 시(時)라는 것은 진실로 윗 자리에 있는 사람이 그것을 할 따름이요. 하늘이 하는 것은 아닙니다. 앞 5,6년에 당시의 재상이 천거하여 들리게 함에 오히려 포의한사의 선비로부터 발탁하는 은혜를 입었으니, 지금과 더불어 어찌 다른 시절이겠습니까? 또 지금 절도사 관찰사 및 방어사 영전의 여러 아전들이 오히려 스스로 천거할 수 있고, 판관은 이미 관직하거나 아직 관직을 하지 않음에 관여하지 않고 천거하는데, 하물며 재상은 우리 군주가 존경하는 사람인데, ‘불가하다.’고 말하겠는가? 옛날에 사람을 나아오게 함에는 혹 도적의 무리 가운데에서 취하였고, 혹은 관고(管庫)에서 천거하였거늘 지금 미친한 선비가 비록 오히려 족히 여기에 견줄 수 있습니다.

 마음이 조급하고 말이 위축되어 마름질 할 것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또한 오직 조금 가련하게 보아주십시오.



상재상제삼서(上宰相第三書)


제가 듣건데 주공께서는 제왕을 보좌하는 재상이 되어 현명한 사람을 만나보기에 다급한 나머지, 밥 한끼를 먹는 동안에 그의 입 안의 음식을 세 번이나 토해놓기도 하였고, 한 번 머리 감는 동안에 세 번이나 젖은 머리를 움켜쥐고 나왔었다 합니다. 그 때로 말하면 천하의 현명한 인재들이 모두 이미 등용되었고 간사하고 남을 모함하고 남을 소이는 무리 따위는

 모두 이미 제거되었으며, 온 천하가 모두 아무런 걱정이 없었고 먼 고장밖에 있는 여러 오랑캐들까지도 모두 내조하여 공물을 바치고 있었고, 천재나 계절에 따른 이변과 곤충이나 초목의 요괴도 모두 이미 다스려져 없어졌고, 천하의 이른바 예악과 형정과 교화의 제도가

 모두 이미 잘 갖추어져 있었고, 풍속이 모두 이미 돈후하여졌었고, 동식물을 비롯하여 비 바람과 서리 이슬에 적셔지는 것들이 모두 이미 합당하게 지내고 있었고, 아름다운 징조와 상서로운 일과 기린과 봉황 및 큰 거북과 용 같은 상서로운 동물들도 모두 이미 고르 나타나고 있던 때입니다. 동물들도 모두 이미 고르 나타나고 있던 때입니다. 그런데 주공은 성인의 재능을 가지고서 또 임금의 숙부라는 친분이 있는데다가, 그 분이 보좌하여 다스리고 교화한 공로가 모두 그처럼 분명하였으니, 찾아와 뵙고자 하는 선비들이 어찌 또 주공부더 현명한 사람이 있었겠습니까? 주공보다 현명하지 않았을 뿐만이 아닙니다. 어찌 또 그 때의 여러 관청일을 보던 사람들보다 현명한 사람이 있었겠습니까? 어찌 또 계획하고 논의함으로써 주공의 교화를 보좌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겠습니까? 그런데도 주공은 현명한 이를 구하는 일을 그와 같이 다급히 하셨습니다. 오직 눈과 귀로 보고 듣지 못하는 일이 있고 생각하는 것이 미흡한 점이 있어서, 성왕께서 주공에게 의탁하였던 뜻을 어기게 되고 천하 사람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게 될까 두렵기만 하였던 것입니다. 만약 그 때에 임금을 보좌하여 다스리고 교화하는 공로가 모두 그처럼 분명히 들어나지 않고 있었고, 또 성인의 재능도 지니지 못하고 임금의 숙부라는 친분도 없었다면 곧 먹고 머리 감을 겨를 조차도 없었을 것이니, 어찌 만나는 정도에 그쳤겠습니까?



 또 임금의 숙부라는 친분이 있는데다가, 그 분이 보좌하여 다스리고 교화한 공로가 모두 그처럼 분명하였으니, 찾아와 뵙고자 하는 선비들이 어찌 또 주공부더 현명한 사람이 있었겠습니까? 주공보다 현명하지 않았을 뿐만이 아닙니다.  어찌 또 그 때의 여러 관청일을 보던 사람들보다 현명한 사람이 있었겠습니까? 어찌 또 계획하고 논의함으로써 주공의 교화를 보좌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겠습니까? 그런데도 주공은 현명한 이를 구하는 일을 그와 같이 다급히 하셨습니다. 오직 눈과 귀로 보고 듣지 못하는 일이 있고 생각하는 것이 미흡한 점이 있어서, 성왕께서 주공에게 의탁하였던 뜻을 어기게 되고 천하 사람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게 될까 두렵기만 하였던 것입니다. 만약 그 때에 임금을 보좌하여 다스리고 교화하는 공로가 모두 그처럼 분명히 들어나지 않고 있었고, 또 성인의 재능도 지니지 못하고 임금의 숙부라는 친분도 없었다면 곧 먹고 머리 감을 겨를 조차도 없었을 것이니, 어찌 만나는 정도에 그쳤겠습니까?  그 분이 그러하셨기 때문에 지금에 이르기까지도 성왕의 덕을 칭송하면서 주공의 공로도 찬양하는 말이 지금 각하께서 제왕을 보좌하는 재상이 된 것은 주공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천하의 현명한 인재들을 어찌 모두 등용했다 하겠으며, 간사하고 남을 모함하고 남을 속이는 무리들이 어찌 모두 제거되었다 하겠습니까? 온 천하가 어찌 모두 걱정이 없다 하겠으며, 먼 고장 밖에 있는 여러 오랑캐들이 어찌 모두 내조하여 공물을 바치고 있다 하겠으며, 천재와 계절에 따른 이변과 곤충이나 초목의 요괴가 어지 모두 없어졌다 하겠으며, 천하의 이른바 예악과 형정과 교화의 제도가 어찌 모두 잘 갖추어졌다 하겠으며, 풍속은 어찌 모두 돈후아여졌다 하겠으며, 동식물을 비롯하여 비바람과 서리 이슬에 적셔지는 것들이 어찌 모두 합당하게 지내고 있다 하겠으며, 아름다운 징조와 상서로운 일과 기린과 봉황 및 큰 거북과 용같은 상서로운 동물들도 어찌 모두 고루 나타났다 하겠습니까? 지금 나와 만나뵙기를 바라는 선비들은 비록 대단한 덕망의 사람이기를 바랄 수는 없겠지만, 여러 관청의 관원들에게 견주어 본다면 어찌 모두가 그들만 못한 자들이겠습니까? 그들이 내놓은 이론이 어찌 모두 아무 보탬도 됨이 없는 말들이겠습니까? 지금 비록 주공처럼 먹던 음식을 뱉아놓고 감던 머리를 움켜쥔 채 사람들을 만나 보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또한 그들을 끌어들여 그들의 언동을 살피어 그들을 처리하여야지 묵묵히 계시기만 하면 안 됩니다. 제가 하명 있으시길 기다린지 사십여 일이 되는데, 글월을 두 번이나 올렸지만 뜻이 통할 수 없었고, 발은 세 번이나 문 앞까지 찾아갔었지만 문지기에게 거절 당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어둡고 어리석어 도망갈 줄은 모르기 때문에 다시 주공에 관한 말씀을 드리는 바입니다. 옛날 선비는 석달 벼슬을 하지 못하면 서로 위문을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고장을 떠날 적에는 반드시 그 경우에 견딜 자본을 수레에 실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나아가는 것을 중시하는 사람이란 그가 주나라에서 받아들여지니 않는다면 곧 그 곳을 떠나 노나라로 갔고, 노나라에서 받들여지지 않는다면, 곧 그 곳을 떠나 제나라로 갔고, 제나라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곧 그곳을 떠나 송나라에도 가고, 정나라에도 가고, 정나라에도 가고 진나라에도 가고, 초나라에도 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천하에는 한 분의 임금 뿐이고 온 천하는 한 나라이니, 이 곳을 버린다면 곧 오랑캐 땅이 되고 부모의 나라를 떠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선비로서 올바른 도를 행하려는 사람이 조정에서 뜻을 얻지 못한다면 곧 산림 속에 숨는 길 뿐입니다. 산림 속이란 선비가 홀로 잘 지내며 자신이나 보양하는 곳이지 온 천하를 걱정하는 사람이 편한히 지낼 곳은 못됩니다. 만약 천하를 생각하는 마음이 있다면, 숨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늘 스스로 나아가면서도 부끄러운 줄을 모르고, 글월을 여러 번 올리고 발은 자주 각하 문 앞에 가는 일을 멈출 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어찌 다만 그러할 따름이겠습니까? 걱정하면서 오직 크게 현명한 이의 문하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 이것만을 두려워하고 있사오니, 또한 오직 얼마간 굽어 살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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