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송사(奇松沙) : 송사는 기우만(奇宇萬, 1846~1916)의 호이다. 본관은 행주(幸州), 자는 회일(會一)이다. 기정진(奇正鎭, 1798~1879)의 손자로, 그 학업을 이어받아 일찍이 유학자로 이름이 높았으며, 의병과 독립운동을 하였다. 문집으로 《송사집》이 있다.
2) 기식재(奇植齋) : 식재는 기재(奇宰, 1854~1921)의 호이다. 본관은 행주(幸州), 자는 입부(立夫)이다. 기정진(奇正鎭)의 문인으로,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족형(族兄)인 기우만(奇宇萬)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왜적을 토벌하려고 하였는데, 조정에서 의병을 해산시키라는 조칙을 내리자 포기하였다. 문집으로 《식재집》이 있다.
3) 기보산(奇普山) : 보산은 기우승(奇宇承, 1858~1907)의 호이다. 본관은 행주(幸州), 자는 효술(孝述)이다. 기정진의 문인이며, 문집으로 《보산선생유고(普山先生遺稿)》가 있다.
4) 무신(撫辰) : ‘무우오신(撫于五辰)’의 준말로, 계절 따라 제때에 모든 일이 원만하게 성취된다는 뜻이다. 《서경》 〈고요모(皐陶謨)〉에 “백공이 때에 따라 사계절을 순히 하여 모든 공적이 이루어질 것입니다.[百工惟時, 撫于五辰, 庶績其凝.]”라고 하였다.
5) 봄바람……섰네 : 문하에 들어가 제자가 되었다는 말이다. 북송(北宋)의 대학자인 명도(明道) 정호(程顥)와 이천(伊川) 정이(程頤)는 형제간으로 명도는 온화하고 이천은 엄격했는데, 주광정(朱光庭)이 명도를 여주(汝州)에서 뵙고 돌아와 “내가 춘풍 속에서 한 달 동안 앉아 있었다.”라고 말한 고사와, 양시(楊時)와 유초(游酢)가 이천을 찾아갔을 때 이천이 오래도록 명상을 하고 있었으므로 물러간다는 말을 못하고 시립하여 기다렸는데 그 사이 문밖에 눈이 한 자나 쌓였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近思錄 卷14》
6) 산이……꺾였네 : 스승이나 훌륭한 사람의 죽음을 말한 것으로, 여기서는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 1798~1879)을 말한다. 공자(孔子)가 자신이 별세할 꿈을 꾸고 아침 일찍 일어나 뒷짐을 지고 지팡이를 끌고 문 앞에 한가로이 노닐며 노래하기를, “태산이 무너지겠구나. 들보가 부러지겠구나. 철인이 죽게 되겠구나.[泰山其頹乎! 梁木其摧乎! 哲人其萎乎!]”라고 하더니, 얼마 후에 별세한 일에서 유래하였다. 《禮記 檀弓上》
7) 강한(江漢) : 높이 우러르고 깊이 사모한 대상을 비유한 말이다. 《맹자》 〈등문공 상(滕文公上)〉에, 증자(曾子)가 공자를 찬양하여 “양자강과 한수(漢水)로 씻은 것 같고 가을볕으로 쪼이는 것 같아서, 밝고 깨끗하기가 이보다 더할 수 없다.[江漢以濯之, 秋陽以暴之, 皜皜乎不可尙已.]”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다.
8) 공자(孔子)……감손(鑑孫)이었네 : 기정진의 학문과 집안을 손자인 기우만(奇宇萬)이 계승했다는 말이다. ‘술성공(述聖公)’은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이며, ‘감손’은 손자인 감(鑑)이란 말로, 주자(朱子)의 장자(長子) 주숙(朱塾)의 맏아들인 주감(朱鑑)을 가리킨다.
9) 하남(河南)의 군자 : 전라남도 장성군 황룡면 아곡리 하남마을에 거주한 보산(普山) 기우승(奇宇承)을 가리킨다.
10) 한……같고 : 기우승의 온화한 태도를 정호(程顥)에 빗댄 표현이다. 송(宋)나라 학자 사현도(謝顯道)가 스승인 정호를 형용하면서 “명도 선생은 앉아 있을 때에는 흙으로 빚은 소상처럼 근엄하지만 다른 사람을 접할 때에는 혼연히 한 덩어리의 온화한 기운이다.[明道先生坐如泥塑, 接人則渾是一團和氣.]”라고 하였다. 《二程全書 卷12》 ‘백순(伯淳)’은 정호의 자(字)이다.
11) 스승의……같았네 : 기우승이 스승인 기정진의 가르침을 잘 따랐다는 말이다. ‘안씨’는 공자의 제자인 안연(顔淵)을 가리킨다. 《논어》 〈위정(爲政)〉에 공자가 안회(顔回)에 대해서 “내가 안회(顔回)와 온종일 이야기를 함에 내 말을 어기지 않아 어리석은 사람처럼 보이더니, 물러간 뒤의 사생활을 살펴보건대 또한 충분히 발명하니, 안회는 어리석지 않구나.[吾與回言終日, 不違如愚, 退而省其私, 亦足以發, 回也不愚.]”라고 하였다.
12) 이미……않았네 : 기우승이 중용(中庸)의 덕성을 지녔다는 표현으로, 《서경》 〈홍범(洪範)〉에 “침잠한 사람은 강건함으로 다스리고, 고명한 사람은 부드러움으로 다스린다.[沈潛剛克, 高明柔克.]”라고 한 말을 원용한 것이다. 이에 대한 집주에, “침잠은 침착하고 물러나서 중(中)에 미치지 못하는 자이다. …… 침잠한 사람은 강건함으로 다스린다는 것은 강건함으로 부드러움을 다스리는 것이다.[沈潛者, 沈深潛退, 不及中者也. …… 沈潛剛克, 以剛克柔也.]”라고 하였다.
13) 범장(范張) : 후한(後漢)의 범식(范式)과 장소(張劭)로, 우의가 지극히 돈독하여 죽을 때까지 교분이 변치 않았다고 한다. 《後漢書 卷81 范式列傳》
14) 초월(楚越) : 초나라와 월나라를 말한다. 이 두 나라는 서로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어서 아무 상관이 없는 사이란 뜻으로 사용한다.
15) 내한 부군(內翰府君) : 오희도(吳希道, 1583~1623)를 말한다.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득원(得原), 호는 명곡(明谷)이다. 1623년(인조1) 알성 문과에 급제한 뒤 예문관 검열을 지냈는데, 이해에 천연두에 걸려 41세의 나이로 요절하였다.
16) 은거지(隱居地) : 원문의 ‘토구(菟裘)’는 춘추 시대 노(魯)나라의 지명으로, 은거지를 뜻한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은공(隱公) 11년에, 은공이 “토구에 집을 짓게 하였으니, 내가 장차 그곳에서 노년을 보낼 것이다.[使營菟裘, 吾將老焉.]”라고 하였다.
17) 뽕나무와……한다 : 《시경》 〈소반(小弁)〉에 보인다.
18) 쇠퇴한 세상 : 원문의 퇴파(頹波)는 거세게 아래로 흘러내려 가는 물살을 말하는데, 무너져 가는 세상의 풍속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19) 지주석(砥柱石) : 삼문협(三門峽)을 통해 흐르는 황하의 한복판에 우뚝 선 바위산으로, 황하의 거센 물결에도 굳건하게 서 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난세에 절조를 지킨다는 뜻으로 쓴다.
20) 행단(杏壇) : 공자가 고향 마을 곡부(曲阜)의 야외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던 곳이다. 《장자(莊子)》 〈어부(漁父)〉에 “공자가 치유의 숲에서 노닐고 행단의 위에 앉아서 쉬었는데, 제자들은 글을 읽고 공자는 거문고를 타며 노래를 불렀다.[孔子遊乎緇帷之林, 休坐乎杏壇之上, 弟子讀書, 孔子絃歌鼓琴.]”라고 하였다.
21) 오교(午橋) : 오교장(午橋莊)의 준말로, 당(唐)나라 재상 배도(裴度)의 별장이다. 환관(宦官)이 권력을 전횡하자 이에 환멸을 느껴 벼슬을 그만두고 낙양(洛陽) 교외의 오교에다 녹야당(綠野堂)을 지어 놓고는 날마다 천석(泉石)과 시주(詩酒)를 즐기며 소요했던 ‘오교천석(午橋泉石)’의 고사가 전한다. 《新唐書 裴度列傳》
22) 일창삼탄(一唱三歎) : 한 사람이 노래를 선창하면 세 사람이 화답한다는 뜻으로, 음악이나 시문이 매우 뛰어남을 뜻한다. 《예기》 〈악기(樂記)〉에 “청묘의 슬은 붉은 현으로 되어 있고 소리가 느릿하여서, 한 사람이 선창하면 세 사람이 화답하여 여운이 있다.[淸廟之瑟, 朱絃而疏越, 壹倡而三歎, 有遺音者矣.]”라고 하였다.
23) 담비 꼬리에 잇대어 : 원문의 ‘초미속(貂尾續)’은 ‘구미속초(狗尾續貂)’의 변용으로, 뛰어난 시의 뒤를 보잘것없는 시로 잇는다는 뜻이다. 진(晉)나라 때 조왕 윤(趙王倫)의 당여(黨與)가 모두 경상(卿相)에 제수되어 그의 노복들까지도 모두 작위를 받게 되었다. 이에 관(冠)에 장식하는 초미(貂尾)가 부족해서 개 꼬리로 장식하였는데, 사람들이 이를 구미속초(狗尾續貂)라고 비난한 데서 온 말이다. 《晉書 卷59 趙王倫傳》
24) 청전(靑氊) : 푸른 모포로, 가문의 유업이나 유물을 가리킨다. 진(晉)나라 왕헌지(王獻之)가 누워 있는 방에 도둑이 들어와 물건을 모조리 훔쳐 가려 할 적에 “도둑이여, 그 푸른 모포는 우리 집안의 유물이니, 그것만은 놓고 가는 것이 좋겠소.[偸兒, 靑氈我家舊物, 可特置之.]”라고 하자, 도둑이 질겁하고 도망쳤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晉書 王獻之列傳》
25) 모적(蟊賊) : 볏모의 뿌리나 마디를 갉아먹는 해충을 말한다. 《시경》 〈대전(大田)〉에 “모적도 제거한다.[及其蟊賊]” 하였는데, 이에 대한 주자(朱子)의 주석에 “뿌리를 갉아 먹는 것을 모(蟊)라 하고, 마디를 갉아 먹는 것을 적(賊)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26) 뿔이……뚫었다 : 《시경》 〈행로(行露)〉에, “누가 참새에 뿔이 없다고 하는가, 뿔이 없다면 어떻게 내 지붕을 뚫었겠는가?[誰謂雀無角, 何以穿我屋?]”라고 한 구절을 변용한 표현으로, 불가능한 방법을 억지로 써서 화를 피하려는 것을 말한다.
27) 향도(香稻) : 벼의 한 종류로, 까끄라기가 붉고 낱알이 희며 향기로운 맛이 있다. 두보(杜甫)의 〈추흥 팔수(秋興八首)〉 중 여덟 번째 수에 “향도의 남은 싸라기는 앵무새가 쪼던 싸라기요, 벽오동의 늙은 가지는 봉황이 깃든 가지로다.[香稻啄餘鸚鵡粒, 碧梧棲老鳳凰枝.]”라고 하였다.
28) 절지(竊脂) : 기름을 훔쳐 먹는 새라는 뜻으로, 상호(桑扈) 즉 콩새의 별명이다. 《주자어류(朱子語類)》 권122에 “절지새가 곡식을 쪼아 먹지 않는 것처럼, 옛날 제왕은 결코 악을 행하지 않았다.”라는 말이 나온다.
29) 무하유향(無何有鄕) : 아무것도 없는 광활한 자연의 세계를 뜻한다.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에 “그것을 아무것도 없는 무하유향의 끝없이 펼쳐진 들판에 심어 놓고 그 옆에서 자유롭게 거닐면서 아무 하는 일 없이 지내고 그 아래에서 유유자적하면서 낮잠이라도 자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何不樹之於無何有之鄕廣莫之野, 彷徨乎無爲其側, 逍遙乎寢臥其下?]”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30) 큰 쥐 : 원문의 ‘석서(碩鼠)’는 가렴주구(苛斂誅求)를 일삼는 포악한 관리를 비유한다. 《시경》 〈석서(碩鼠)〉에 “큰 쥐야 큰 쥐야, 내 기장을 먹지 말지어다. 삼 년이나 서로 알고 지냈거늘, 나를 돌보아 주지 않을진댄, 장차 너를 버리고 떠나서 저 즐거운 땅으로 가리라.[碩鼠碩鼠, 無食我黍. 三歲貫女, 莫我肯顧, 逝將去女, 適彼樂土.]”라고 하였다.
31) 염계 부자(濂溪夫子) : 송(宋)나라 학자 주돈이(周敦頤)를 말한다.
32) 국화를……누구인가 : 주돈이(周敦頤)의 〈애련설(愛蓮說)〉에 보인다.
33) 백락(伯樂) : 춘추 시대 진 목공(秦穆公) 때 준마를 잘 감별하기로 유명했던 손양(孫陽)의 별명이다.
34) 상마경(相馬經) : 말의 관상[相馬]에 관하여 서술한 수의학서(獸醫學書)이다.
35) 사광(師曠) : 춘추 시대 진(晉)나라의 악사(樂師)로, 음조(音調)를 잘 알아서 한 번 들으면 길흉을 알았다고 한다.
36) 지어재(志於齋) : 후석(後石) 오준선(吳駿善)이 젊은 시절 수학하고 만년에 강학(講學)하던 곳으로, 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도덕동 도림마을에 있다.
37) 옥정(玉井) : 중국 화산(華山) 정상에 있다는 연못인데, 이곳에 신선이 복용하는 연꽃이 특별히 핀다는 전설이 있다. 한유(韓愈)의 〈고의(古意)〉 시에 “태화봉 꼭대기 옥정의 연은, 꽃 피우면 직경이 열 길에 연뿌리는 배와 같다네.[太華峯頭玉井蓮, 開花十丈藕如船.]”라는 구절이 있다.
38) 무숙(茂叔)이……것 : 주돈이(周敦頤)가 〈애련설(愛蓮說)〉에서 “연꽃은 꽃 중의 군자이다.[蓮, 花之君子者也.]”라고 한 것을 말한다. ‘무숙’은 주돈이의 자(字)이다.
39) 적선(謫仙)이 천연스럽다고 칭찬한 : 이백(李白)의 시에 “맑은 물에서 연꽃이 솟으니, 천연스러워 꾸밈이 없구나.[淸水出芙蓉, 天然去雕飾.]”라고 한 것을 말한다. 《李太白文集 卷9 經亂離後天恩流夜郞憶舊遊書懷贈江夏韋太守良宰》 ‘적선’은 천상에서 인간 세상으로 귀양 온 신선이란 뜻으로, 이백을 가리킨다.
40) 태을진인(太乙眞人) : 천신(天神)의 이름이다. 송(宋)나라의 화가 이공린(李公麟)의 〈태을진인연엽도(太乙眞人蓮葉圖)〉에 한구(韓駒)가 제(題)한 시에 “태을진인이 연잎 배를 탔는데, 두건 벗고 머리 드러내니 찬바람에 날리네. 가벼운 바람을 돛으로 삼고 물결을 노로 삼아, 누워서 옥자를 보며 중류에 둥둥 떠 있구나.[太乙眞人蓮葉舟, 脫巾露髮寒颼颼. 輕風爲帆浪爲楫, 臥看玉字浮中流.]”라고 하였다.
41) 나의 바지 걷었으나 : 그리운 사람을 찾아가기 위해 물을 건너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시경》 〈건상(褰裳)〉에 “그대가 나를 사랑하여 그리워할진댄 나는 치마를 걷고 진수(溱水)를 건너가리라.[子惠思我, 褰裳涉溱.]”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42) 문원(文園) : 한 무제(漢武帝) 때에 효문원 영(孝文園令)을 지낸 문장가 사마상여(司馬相如)를 가리킨다.
43) 백하(柏下) 양장(梁丈) : 백하는 양상형(梁相衡, 1833~1907)의 호이다.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자평(子平), 호는 백하이다. 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박호동 박산마을에서 출생하였으며, 덕암(德巖) 나도규(羅燾圭)ㆍ화정(花汀) 박원국(朴源國)ㆍ석정(石井) 이윤선(李允善)ㆍ난와(難窩) 오계수(吳繼洙)ㆍ후석 오준선 등과 교유하였다. 저서에 《백하유고》가 있다.
44) 통가(通家) : 대대로 사귀어 온 정분이 깊은 집안 또는 인척(姻戚)을 말한다.
45) 양대(陽臺) : 송천(松川) 양응정(梁應鼎, 1519~1581)이 만년에 건립하여 후학을 가르쳤던 ‘조양대(朝陽臺)’로, 광주광역시 광산구 박호동에 있다.
46) 여산고(廬山高) : 송(宋)나라 구양수(歐陽脩)가 여산(廬山)에 은거한 유환(劉渙)의 고상한 절조를 찬미하여 지은 것으로, 한 구의 글자수가 일정치 않은 자유로운 형식의 고시이다.
47) 동강(桐江)에서……엄자릉(嚴子陵) : ‘동강’은 후한(後漢)의 은사인 엄광(嚴光)이 광무제(光武帝)의 부름을 거절하고 낚시질하며 은거하던 곳이며, ‘자릉’은 엄광의 자이다.
48) 녹문산(鹿門山)에서……방덕공(龐德公)이네 : ‘녹문산’은 중국 호남성 양양현(襄陽縣)에 있는 산이며, ‘방덕공’은 후한(後漢)의 은자이다. 방덕공은 원래 남군(南郡)의 양양(襄陽)에 살았는데, 형주 자사(荊州刺史) 유표(劉表)가 초빙하자 나아가지 않고 가솔을 모두 거느리고 녹문산에 들어가 약초를 캐며 일생을 마쳤다. 《後漢書 逸民列傳 龎公》
49) 명문가의……찬란하니 : 광주광역시 광산구 박호동에 있는 양씨삼강문(梁氏三綱門)에 대해 언급한 것으로, 이 정려문은 1635년(인조13)에 세워졌다. 이곳에는 임진왜란(1592) 때 진주성 전투에서 왜군과 싸우다 김천일 장군과 함께 순절한 양산숙(梁山璹), 정유재란(1597) 때 삼양포에서 왜군을 만나 어머니를 구하려다 순절한 양산룡(梁山龍)과 양산수(梁山岫), 왜군을 만나 바다에 투신하여 순절한 양산숙의 어머니인 죽산 박씨, 왜적에 항거하다가 자결한 양산숙의 부인인 광산 이씨, 왜군을 만나 바닷물에 몸을 던져 자결한 누이 양씨 등이 모셔져 있다. 회진 임씨 문중으로 출가한 양산룡의 딸은 임씨 문중에서 모시고 있다.
50) 기심(機心)을 잊으니 : 원문은 ‘망기(忘機)’로, ‘기심’은 교사(巧詐)한 마음을 말한다. 바닷가에서 무심히 갈매기와 벗하며 노닐던 사람이 갈매기를 잡으려는 마음을 갖자, 갈매기들이 미리 알아채고 가까이 오지 않았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列子 黃帝》
51) 무부(碔砆) : 옥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옥이 아닌 돌로, 보기에는 그럴싸하지만 아무런 가치가 없는 물건을 비유하는 말이다.
52) 장대 : 웅건(雄健)한 문장력을 비유한 말이다. 송(宋)나라 구양수(歐陽脩)의 시 〈여산고(廬山高)〉에 “대장부의 장대한 지절 그대와 같은 이가 드무니, 아 내가 말하고자 하나 어떻게 장대 같은 큰 붓을 얻으랴.[丈夫壯節似君少, 嗟我欲說安得巨筆如長杠.]”라고 하였다.
53) 종용당(從容堂) : 임진왜란 때 금산(錦山) 전투에서 산화한 의병들의 충혼을 달래기 위해 1647년(인조25) 충남 금산의 선비들이 세운 사당으로, 1663년(현종4)에 종용사(從容祠)라는 사액이 내려졌다. 중봉(重峯) 조헌(趙憲)과 제봉(霽峯) 고경명(高敬命), 영규대사(靈圭大師) 등 7백 명의 위패를 모셨다. 일제에 의해 훼철되었다가 1968년에 복원되었다.
54) 왜적 : 원문의 ‘흑치(黑齒)’는 이를 검게 물들인 야만족이라는 뜻으로, 우리나라에서 일본인을 뜻하는 말로 쓰였다.
55) 긴……돼지 : 모두 포악한 무리를 가리키는 말로, 여기서는 왜적을 뜻한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정공(定公) 4년 조에 이르기를 “오나라가 큰 돼지와 긴 뱀처럼 상국을 계속 잠식해 가는데, 그 잔인함이 초나라에서 시작되고 있다.[吳爲封豕長蛇, 以荐食上國, 虐始於楚.]”라고 하였다.
56) 물여우 : 원문의 ‘단호(短狐)’인데, 모래를 머금어 사람에게 쏘아 해를 입힌다고 하여, 몰래 사람을 해치는 사악한 무리를 비유한다. 육덕명(陸德明)의 〈석문(釋文)〉에 “물여우는 모양이 자라와 같고 발이 세 개인데 일명 ‘사공’이라고 하며 세속에서 ‘수노’라고 부르니, 물속에서 모래를 머금었다가 사람을 향해 쏘므로 일명 ‘석인영’이라고도 한다.[蜮, 狀如鼈, 三足. 一名射工, 俗呼之水弩. 在水中含沙射人, 一云射人影.]” 하였다.
57) 삼경(三京) : 남경(南京)인 한양(漢陽), 중경(中京)인 개성(開城), 서경(西京)인 평양(平壤)을 말한다.
58) 취화(翠華)가……창황(蒼黃)했네 : 임진왜란 때 선조(宣祖)가 의주(義州)로 파천(播遷)한 일을 말한다. ‘취화’는 제왕의 의장(儀仗) 중에 비취 깃털로 장식한 기치(旗幟)나 거개(車蓋)를 가리키는 말로, 임금의 행차를 뜻한다. ‘거빈(去邠)’은 빈(邠) 땅을 떠난다는 뜻으로, 임금이 외적(外敵)의 난을 피해 천도(遷都)하는 것을 가리킨다. 《史記 周本紀》
59) 중봉(重峯) : 조헌(趙憲, 1554~1592)의 호이다. 본관은 배천(白川), 자는 여식(汝式), 시호는 문열(文烈)이다. 1589년(선조22) 지부상소(持斧上疏)로 시폐(時弊)를 극론하다가 길주(吉州)의 영동역(嶺東驛)에 유배되었으며,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싸우다가 금산(錦山) 전투에서 순사(殉死)하였다. 저서에 《중봉집》이 있다.
60) 귀문관(鬼門關) : 함경도 경성(鏡城)에 있는 관문 이름이다. ‘귀문관’은 본디 중국 광서성(廣西省)에 있는 변방 요새로, 산세가 험준한 데다 장려(瘴癘)가 만연하는 등 풍토가 험악하여 생환(生還)하는 자가 드물었으므로 “귀문관은 열에 아홉은 돌아오지 못한다.[鬼門關, 十人九不還.]”라는 속요(俗謠)까지 유행하였다고 하는데, 흔히 풍토가 나쁘고 지형이 험악한 먼 변경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舊唐書 地理志4》
61) 가식(家食) : 국가에서 맡은 직책이 없어서 봉록을 받지 않고 집에서 한가히 거처함을 뜻하는 말로, 《주역》 〈대축(大畜) 괘사(卦辭)〉에 “집에서 밥을 먹지 않으면 길하다.[不家食, 吉.]”라고 한 데에서 유래하였다.
62) 종의지(宗義智) : 대마도 도주로서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전에 조선을 두 차례 방문하여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외교사절을 수행하였다.
63) 현소(玄蘇) : 일본 박다(博多) 성복사(聖福寺)의 승려로, 임진왜란 1년 전에 대마도주(對馬島主) 종의지(宗義智)를 따라 우리나라에 사신으로 와서 국정을 염탐하기도 하고 난중에는 군중(軍中)에 와서 강화(講和) 문제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64) 상당(上黨) : 충청북도 청주(淸州)의 옛 이름이다.
65) 왜란 : 원문의 ‘참창(攙搶)’은 혜성(彗星)의 이름인데, 모두 전쟁이나 반역을 상징한다.
66) 별이……추락하니 : 조헌이 죽은 것을 가리킨다. 원문의 ‘낙봉(落鳳)’은 본래 서천(西川)을 정벌할 때 군사(軍師)인 방통(龐統)이 난전(亂箭)에 맞아 죽은 것에서 유래하였는데, 방통의 별호가 봉추(鳳雛)이기 때문이다.
67) 곰 발바닥 취하자고 : 생명과 의리를 둘 다 취할 수 없는 경우에 생명을 버리고 의리를 취하는 것을 말한다.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 “물고기도 내가 원하고 곰 발바닥도 내가 원하지만 이 두 가지를 모두 가질 수 없다면 물고기를 버리고 곰 발바닥을 가지겠다. 삶도 내가 원하고 의리도 내가 원하지만 이 두 가지를 모두 가질 수 없다면 삶을 버리고 의리를 취하겠다.[魚我所欲也, 熊掌我所欲也, 二者不可得兼, 舍魚而取熊掌者也. 生亦我所欲也, 義亦我所欲也, 二者不可得兼, 舍生而取義者也.]” 하였다.
68) 오백……죽었으며 : 제(齊)나라 전횡(田橫)의 고사를 인용하여 조헌이 칠백의사와 함께 순절한 일을 표현한 것이다. 전횡은 제(齊)나라 왕의 후예이다. 진(秦)나라 말의 혼란기에 자립하여 왕이 되었다가, 형세가 불리해지자 부하 500여 명과 함께 오호도(嗚呼島)로 피해 들어갔다. 이후 왕후(王侯)로 봉해 주겠다는 한 고조(漢高祖)의 부름을 받고, 낙양(洛陽)으로 가던 도중에 머리를 굽혀 남의 신하가 되는 일은 차마 하지 못하겠다면서 자결하였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섬 안의 500여 명 역시 모두 전횡을 따라 자결하였다. 《史記 田橫列傳》
69) 뇌남(雷南)은……순절하였네 : ‘뇌남’은 남제운(南霽雲)과 뇌만춘(雷萬春)으로, 장순(張巡)의 편장(偏將)이었다. 이들은 당(唐) 나라 현종(玄宗) 때에 안록산(安祿山)이 반란을 일으키자, 수양성(睢陽城)을 끝까지 지키다가 함께 장렬하게 죽었다. 《舊唐書 卷187 忠義列傳下》
70) 신국(信國) 문천상(文天祥) : 송(宋)나라의 충신으로, ‘신국’은 그의 봉호(封號)이다. 원(元)나라 군대가 침입하여 수도가 함락되자 단종(端宗)을 받들고 근왕군(勤王軍)을 일으켜 대항하다가 사로잡혀 연옥(燕獄)에 3년 동안 구금되어 있었으나 끝내 굴복하지 않고 절의를 지키다가 처형되었다. 《宋史 文天祥列傳》
71) 의열공(毅烈公) : ‘의열’은 고인후(髙因厚, 1561~1592)의 시호이다. 본관은 장택(長澤), 자는 선건(善健), 호는 학봉(鶴峯)이다. 의병장 고경명(高敬命)의 아들로, 임진왜란 때 금산(錦山)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72) 휘황한……내걸렸네 : 1663년(현종4)에 ‘종용사(從容祠)’라는 사액이 내려진 일을 말한다.
73) 풍비(豐碑) : 공적을 기록하여 덕을 기리는 거대한 비석으로, 여기서는 중봉조헌선생일군순의비(重峯趙憲先生一軍殉義碑)를 말한다.
74) 완악한……세우게 : 훌륭한 풍도가 사람들을 교화함을 말한다. 《맹자》 〈만장 하(萬章下)〉에 “백이의 풍도를 들으면 완악한 자는 청렴해지고 나약한 자는 뜻을 세우게 된다.[聞伯夷之風者, 頑夫廉, 懦夫有立志.]”라고 하였다.
75) 개린(介鱗) : 보통은 딱딱한 껍질을 지닌 수중 생물과 비늘 가진 물고기를 통틀어 가리키지만, 그와 같이 비천한 소인배나 오랑캐를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 《후한서(後漢書)》 권78 〈양종전(楊終傳)〉에 “광무제(光武帝)가 서역(西域)의 나라들과 국교를 단절하여, 개린으로 하여금 우리의 의상으로 바꿔 입지 못하게 하였다.[光武絶西域之國, 不以介鱗易我衣裳]” 하였는데, 이현(李賢)의 주에, “개린은 먼 오랑캐를 비유한다.[介鱗, 喻遠夷.]”라고 하였다.
76) 존양(尊攘) : 중국의 예악 문물(禮樂文物)을 높이고 예의가 없는 오랑캐들을 물리친다는 뜻으로, 《춘추(春秋)》의 존주 대의(尊周大義)를 가리킨다.
77) 율곡(栗谷)과 우계(牛溪) : 이이(李珥, 1536~1584)와 성혼(成渾, 1535~1598)을 말한다. 조헌은 이들을 스승으로 모셨다.
78) 우암(尤庵)과 동춘당(同春堂) : 송시열(宋時烈, 1607~1689)과 송준길(宋浚吉, 1606~1672)을 말한다.
79) 쇄소(灑掃) : 물 뿌리고 청소하는 것으로, 제자(弟子)된 예의를 말한다.
80) 기남보(奇南步) : 남보는 기주현(奇周鉉, 1846~1907)의 호이다. 본관은 행주, 자는 덕삼(德三)이다.
81) 세한(歲寒) : 곤궁한 처지나 난세(亂世)에도 지조를 잃지 않는 군자(君子)의 자태를 비유하는 말이다. 공자가 말하기를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듦을 안다.〔歲寒然後 知松柏之後彫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子罕》
82) 중수(中壽) : 사람의 수명을 상ㆍ중ㆍ하로 나누었을 때 그 중간에 해당하는 연령을 말하는데, 경우에 따라 가리키는 연령대가 다르다. 여기서는 기주현의 나이를 고려하였을 때, 60대를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83) 소거(素車) : 상사(喪事)에 사용하는 백토를 칠한 흰 수레이다. 후한의 범식(范式)이 벗 장소(張邵)가 죽은 뒤 꿈속에 나타나 자신의 죽음을 알리자, 백마가 끄는 흰 수레를 몰고 호곡하러 갔다고 한다. 《後漢書 范式傳》
84) 변변찮은 제수(祭需) : 원문의 ‘계서(鷄絮)’는 ‘적계서주(炙鷄絮酒)’의 준말로, 변변찮은 제사 음식을 뜻한다. 후한(後漢)의 고사(高士) 서치(徐穉)는 먼 곳으로 문상(問喪)하러 갈 일이 있으면 언제나 집에서 미리 닭 한 마리를 굽고 솜 한 냥을 술에 적셨다가 햇볕에 말린 다음, 그것으로 구운 닭을 싸가지고 가서, 솜을 물에 적셔 술을 만들고 구운 닭을 앞에 놓고 제사를 올린 뒤, 상주도 만나보지 않은 채 곧바로 떠났다고 한다. 《後漢書 徐穉列傳》
85) 소무(蘇武)와……이별하고 : 소무는 한 무제(漢武帝)의 중랑장(中郞將)으로, 흉노(匈奴)에 사신으로 가서 억류되었다가 소제(昭帝)가 흉노와 화친하자 19년 만에 귀환하였으며, 이릉(李陵)은 흉노(匈奴)와 악전고투(惡戰苦鬪) 끝에 항복하여 그들의 우대를 받았다. ‘하량(河梁)’은 하수(河水)의 교량(橋梁)으로, 보통 이별하는 장소를 가리키는데, 이릉이 흉노의 땅에서 소무와 이별하면서 지은 〈여소무(與蘇武)〉의 “손을 잡고서 하수의 다리에 오르노니, 그대는 저물녘 어디로 가느냐.[携手上河梁, 遊子暮何之?]”라고 한 구절에서 유래하였다.
86) 천……여안(呂安) : 삼국 시대 위(魏)나라 여안이 혜강(嵆康)이 그리울 때마다 천 리 길을 멀다 하지 않고 수레를 타고 찾아가면 혜강이 잘 대해주었다는 고사가 있다. 《晉書 卷49 嵇康列傳》
87) 옛……잃었네 : 자신의 마음을 잘 알아주는 벗이 없어졌다는 말이다. ‘아양곡(峨洋曲)’은 거문고의 명인인 백아(伯牙)가 산수(山水)를 연주한 곡조인데, 그가 거문고를 연주할 때면 그의 벗 종자기(鍾子期)만이 그 음률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듣고 서로 즐거워하였다고 한다. 《列子 湯問》
88) 광릉산(廣陵散) : 죽림칠현(竹林七賢)이었던 진(晉)나라 혜강(嵇康)이 즐겨 연주하던 금곡(琴曲)의 이름이다. 혜강이 종회(鍾會)의 참소로 사마소(司馬昭)에게 죽임을 당할 때 형장(刑場)에서 마지막으로 그 곡을 연주하면서 말하기를 “〈광릉산〉이 이제는 끊기겠구나.[廣陵散於今絶矣]”라고 하였다. 《晉書 卷49 嵇康列傳》
89) 산양(山陽)의 피리소리 : 원문의 ‘산양적(山陽笛)’으로, 친하게 지내다 세상을 떠난 사람을 추억하며 슬픔에 잠기는 것을 말한다. 삼국 시대 위(魏)나라 혜강(嵇康)과 여안(呂安)이 사마소(司馬昭)에게 살해된 뒤, 그들의 친구인 상수(向秀)가 혜강이 살던 산양(山陽) 땅을 지나다가 이웃집에서 들려오는 피리 소리를 듣고는 옛 추억을 떠올리고 슬퍼하며 〈사구부(思舊賦)〉를 지은 고사가 전한다. 《晉書 卷49 向秀列傳》
90) 면주(綿酒) : 솜에 적신 술로, 소박한 제수(祭需)를 뜻하는 말이다. 후한(後漢) 서치(徐稚)가 먼 곳으로 문상 갈 때 휴대하기에 간편하게 하기 위해 술을 솜에 적셔 닭 속에 넣어 가지고 갔던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後漢書 卷53 徐稚傳》
91) 송근수(宋近洙, 1818~1903)로,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언술(彦述), 호는 입재(立齋)ㆍ남곡(楠谷)ㆍ보만재(保晩齋), 시호는 문헌(文獻)이다. 송시열(宋時烈)의 8대손으로 가학을 물려받았으며, 대사헌ㆍ공조 판서ㆍ병조 판서ㆍ이조 판서ㆍ좌찬성ㆍ우의정ㆍ좌의정 등의 요직을 역임하였다. 저서로 《송자대전수차(宋子大全隨箚)》가 있다.
92) 급류……물러났네 : 관로(官路)가 한창 트였을 때에 용감하게 은퇴하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송나라 진종(眞宗) 때의 명신(名臣)인 전약수(錢若水)가 젊었을 때 관상가에게 상을 보였더니 “소용돌이치는 벼슬길에서 과감하게 물러날 사람이다.[是急流中勇退人也]”라고 하였는데, 뒤에 겨우 40세에 추밀 부사(樞密副使)로 치사(致仕)하였던 고사에서 유래한다. 《聞見前錄 卷7》
93) 온전히……기운이라 : 송근수의 봄바람처럼 온화한 기상을 두고 한 말이다. 송나라 사양좌(謝良佐)가 명도(明道) 정호(程顥)의 인품을 평하기를 “명도 선생은 가만히 앉았을 때에는 흙으로 빚은 소상과 같았으나, 사람을 접할 때는 온전히 한 덩어리의 화기였다.[明道先生坐如泥塑人, 接人則渾是一團和氣.]”라고 하였다. 《近思錄 卷14 觀聖賢》
94) 우암(尤庵) 송 선생(宋先生) : 송시열(宋時烈, 1607~1689)로, 우암은 그의 호이다.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영보(英甫), 호는 우재(尤齋)ㆍ우암,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으로, 존주대의(尊周大義)와 복수설치(復讐雪恥)를 역설하며 효종의 북벌 계획을 도왔다. 묘소는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 화양동 계곡(화양리)에 있다.
95) 미원점(米原店) : ‘원(原)’은 ‘원(院)’의 오기(誤記)로 보인다. ‘미원(米院)’은 청주 동쪽 38리에 있던 우역(郵驛)이다. 《東國輿地志 卷3 淸州牧》
96) 고산(鼓山) 임 선생(任先生) : 임헌회(任憲晦, 1811~1876)로, 고산은 그의 호이다. 본관은 풍천(豐川), 자는 명로(明老), 호는 고산ㆍ전재(全齋)ㆍ희양재(希陽齋)이다. 송치규(宋穉圭)ㆍ홍직필(洪直弼)의 문인으로, 노년에 대사헌과 성균관 좨주를 역임하였다. 경학과 성리학에 조예가 깊어 홍직필의 낙론(洛論)을 계승하여 간재(艮齋) 전우(田愚)에게 전수하였다. 저서에 《고산문집(鼓山文集)》ㆍ《속고산집(續鼓山集)》 등이 있다.
97) 율로(栗老) : 율곡(栗谷) 이이(李珥)를 가리킨다.
98) 매산(梅山) : 홍직필(洪直弼, 1776~1852)의 호이다.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백응(伯應),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여러 차례 벼슬을 제수했으나 일관되게 사양하였다. 문집에 《매산집》이 있다.
99) 석문공(石門公) : 오이익(吳以翼, 1618~1666)으로, 오원규의 7대조이다.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자서(子舒), 호는 석문ㆍ석문거사(石門居士)ㆍ식재(息齋)이다. 문집으로 《석문집》이 있다.
100) 송주공(松洲公) : 오붕석(吳朋錫, 1636~1684)을 가리킨다.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백여(百如), 호는 송주이다.
101) 화우(化雨) : 만물을 화육(化育)시키는 제때에 내리는 비라는 뜻으로, 차근차근 잘 인도하여 교화시키는 것을 비유한다.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군자의 가르침은 다섯 가지인데, 단비처럼 교화시키는 경우가 있다.[君子之所以教者五, 有如時雨化之者]”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102) 기수(沂水)에서 목욕한 : 물욕(物慾)에서 벗어나 유유자적하는 즐거움을 가리킨다. 《논어》 〈선진(先進)〉에서 자신의 포부를 말해 보라는 공자의 요구에 증점(曾點)이 “늦은 봄에 봄옷이 만들어지면 관을 쓴 사람 대여섯 명과 동자 예닐곱 명과 함께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 쐰 뒤 노래하면서 돌아오겠습니다.[暮春者, 春服旣成, 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 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라고 대답한 데서 유래했다.
103) 기 교리(奇校理) : 기양연(奇陽衍, 1825~1895)으로, 본관은 행주(幸州), 자는 자민(子敏), 호는 백석헌(柏石軒)이다. 노사 기정진의 문인이며, 홍문관 부교리를 지냈다. 문집으로 《백석헌유집(柏石軒遺集)》이 있다.
104) 출처(出處) : 도(道)를 펼 만하면 조정에 나아가 벼슬하고 그렇지 못하면 물러나 은거함을 이른다.
105) 구학(丘壑) : ‘일구일학(一丘一壑)’의 준말로, 초야의 은거지를 가리킨다. 《한서》 〈서전(敘傳)〉에 “한 언덕[一丘]에서 낚시질하니 만물이 그 뜻을 침범할 수 없고, 한 골짜기[一壑]에 느긋이 거처하니 하늘이 그 즐거움을 바꾸지 못한다.”라고 하였다.
106) 희농(羲農) : 상고 시대 제왕인 복희씨(伏羲氏)와 신농씨(神農氏)를 합칭한 말이다.
107) 영주(瀛洲)의 학사관(學士館) : 영주는 본디 선경(仙境)을 가리키는 말인데, 당 태종(唐太宗)이 일찍이 인재들을 망라하여 문학관(文學館)을 설치하고 두여회(杜如晦), 방현령(房玄齡) 등 18인의 문관(文官)을 학사(學士)로 임명하고서 한가한 때면 이들에게 정사(政事)를 자문하기도 하고 함께 전적(典籍)을 토론하기도 하면서 이들을 십팔학사(十八學士)라 불렀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그들을 사모하여 ‘영주에 올랐다.[登瀛洲]’라고 일컬었던 데서 온 말이다.
108) 난와(難窩) : 오계수(吳繼洙, 1843~1915)의 호이다.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중함(重涵)이다. 노사 기정진의 문인이며, 문집에 《난와유고(難窩遺稿)》가 있다.
109) 기(幾)……비결 : 《노사집(蘆沙集)》 권2 〈차오중함삼난운(次吳重涵三難韻)〉에서 “묘한 비결을 ‘기’ 자에서 구해야 하니, 여기에서 힘 얻으면 어려움이 없으리라.[妙訣須求幾字上, 於斯得力亦無難.]”라고 한 것을 말한다. 주돈이(周敦頤)의 《통서(通書)》에 “기에서 선과 악이 나누어진다.[幾善惡]”라고 하였는데, 이에 대해 주자(朱子)가 “기라는 것은 처음 발동할 때의 미세한 움직임이니, 선과 악이 이를 말미암아 나누어지게 된다.[幾者動之微, 善惡之所由分也.]”라고 하였다. 《近思錄 卷1 道體類》
110) 경의(敬義) : ‘경’은 마음을 바르게 하는 것이고, ‘의’는 행실을 바르게 하는 것으로, 《주역》 〈곤괘(坤卦) 문언전(文言傳)〉에서 “군자는 경으로 내면을 곧게 하고 의로써 외면을 바르게 한다.[君子敬以直內, 義以方外.]”라고 하였다.
111) 하서(河西)……10운 : 《하서전집(河西全集)》 권4 〈허백당(虛白堂)〉 시를 말한다.
112) 형경(荊卿) : 전국 시대 위(衛)나라의 협객인 형가(荊軻)를 말한다. 그는 연(燕)나라의 객경(客卿)이 된 후 연나라 태자 단(丹)을 위해 번어기(樊於期)의 머리와 연나라 곡창지대 독항(督亢)의 비밀군사지도를 가지고 진(秦)나라로 가서 진왕(秦王)을 척살(刺殺)하려다가 실패하여 죽었다.
113) 백아(伯牙) : 춘추 시대 거문고의 명인(名人)이다. 백아가 거문고를 타면 그의 벗 종자기(鍾子期)가 거문고 소리를 듣고 백아의 마음을 잘 알았다고 한다. 《列子 湯問》
114) 옥루(屋漏) : 집에서 가장 어두운 서북쪽의 으슥한 방구석을 가리키는데, 아무도 모르는 자기의 마음속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시경》 〈억(抑)〉에 “네가 네 집에 있을 때에 보니 옥루(屋漏)에 있을 때에도 부끄러움이 없었네.[相在爾室, 尙不愧于屋漏.]”라고 하였다.
115) 창광(猖狂) : 예속(禮俗)에 구애받지 않고 거침없이 행동하는 것이다. 진(晉)나라 완적은 천성이 방달불기(放達不羈)하여 때로는 마음 내키는 대로 수레를 타고 아무 곳으로나 가다가 더 이상 갈 수 없이 길이 막히면 통곡하고 돌아왔다 한다. 《晉書 卷49 阮籍列傳》 이를 두고 왕발(王勃)의 〈등왕각서(滕王閣序)〉에 “완적은 창광하니 어찌 궁도의 통곡을 본받으랴.[阮籍猖狂, 豈效窮途之哭?]” 하였다.
116) 장유(壯遊) : 웅대한 뜻을 가슴에 품고 멀리까지 다녀오는 유람이라는 의미이다.
117) 가정교육을 받으며 : 원문의 ‘추정(趨庭)’은 뜰 앞을 빠른 걸음으로 달린다는 말로, 집안에서 부형(父兄)의 가르침을 받는 것이다. 공자의 아들 공리(孔鯉)가 뜰에서 공자의 앞을 빠른 걸음으로 지나다가 시례(詩禮)에 대해 배웠던 일에서 유래하였다. 《論語 季氏》
118) 지곡공(止谷公) : 오갑선(吳甲善, 1814~1879)으로, 난와 오계수의 부친이다. 본관은 나주, 자는 성집(聖集), 호는 지곡이다.
119) 전영(奠楹) : 두 기둥 사이에서 제사를 받는 것으로, 죽음을 에둘러 표현할 때 쓰는 말이다. 공자가 두 기둥 사이에 앉아서 전(奠) 올리는 것을 받은 꿈을 꾸고 자공(子貢)에게 자신이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였는데, 병으로 누운 지 7일 만에 별세한 데서 유래하였다. 《禮記 檀弓上》
120) 박 승지(朴承旨) : 박창수(朴昌壽, 1817~1897)로,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단숙(丹叔), 호는 난석(蘭石)이다. 집의ㆍ승정원 동부승지ㆍ병조 참의 등을 역임하였으며, 저서에 《난석집(蘭石集)》이 있다.
121) 백낙천(白樂天)의 옛 모임 : 당(唐)나라 백거이(白居易)가 만년에 8인의 원로와 함께 결성한 향산구로회(香山九老會)를 말한다. 《新唐書 白居易列傳》 ‘낙천’은 백거이의 자(字)이다.
122) 전약수(錢若水) : 북송(北宋) 때의 명신(名臣)이다. 진단(陳摶)이 전약수를 보고 선풍도골(仙風道骨)이 있다고 여겼으나 확신하지 못해 다음 날 노승에게 전약수를 살펴보게 했는데, 노승이 전약수를 본 뒤 부젓가락으로 재에 ‘신선은 될 수 없다.[做不得]’라는 세 글자를 쓰고는 “급류 속에서 용감하게 물러날 수 있는 사람이다.”라고 천천히 말하였다. 그 뒤 전약수의 관직이 추밀 부사에 이르렀는데, 40세에 벼슬에서 물러났다.
123) 이락(伊洛) : 송(宋)나라 정호(程顥)와 정이(程頤)의 학문을 말한다. 정호는 낙양(洛陽)에 살았고, 정이는 이천(伊川)에 살았기 때문에 이렇게 칭하는 것이다.
124) 여섯 조목의 척양소(斥洋疏) : 《노사집(蘆沙集)》 권3의 〈병인소(丙寅疏)〉를 말한다. 이는 1866년(고종3) 병인양요(丙寅洋擾)가 일어나고 양이(洋夷)와 화의(和議)하자는 논의가 조정에 비등할 때에 비분강개하여 올린 상소로, 외세의 침입에 대한 대비책 여섯 조항을 제시하였다.
125) 양묵(楊墨) : 위아설(爲我說)을 주장한 양주(楊朱)와 겸애설(兼愛說)을 주장한 묵적(墨翟)을 말한다. 맹자가 이단(異端)의 학문이 횡행하는 것을 우려하여 “내가 이 때문에 두려워하여 선성의 도를 보위하여 양주(楊朱)와 묵적(墨翟)을 막으며 바르지 않은 말을 추방하여 삿된 학설이 나오지 못하게 한다.[吾爲此懼, 閑先聖之道, 距楊墨, 放淫辭, 邪說者不得作.]”라고 하였다. 《孟子 滕文公下》
126) 신묘한……짝하네 : 《맹자》 〈등문공 하〉에서 “옛적에 우왕이 홍수를 억제하시자 천하가 평해졌다.[昔者禹抑洪水而天下平,.]”라고 하였다.
127) 구기자와 국화는 은자의 소박한 음식을 말한다. 중국 당(唐)나라의 시인 육구몽(陸龜蒙)이 집 주위에 구기자와 국화를 심어 놓고 그 줄기와 잎을 채취해 먹으면서 〈기국부(杞菊賦)〉를 지었다.《新唐書 卷196 陸龜蒙列傳》
128) 서하(西河)의 애통함 : 자식이 먼저 죽은 것을 애통해하는 말이다. 공자(孔子)의 제자 자하(子夏)가 서하에서 아들의 상을 당하여 지나치게 슬피 울다가 실명(失明)한 일이 있었다. 그래서 후세에 아들의 상을 당한 경우에 ‘서하의 눈물[西河之淚]’ 또는 ‘서하의 슬픔[西河之痛]’이라는 표현을 쓰게 되었다. 《史記 仲尼弟子列傳》 기정진은 79세 때인 1876년에 아들 기만연(奇晩衍)의 상을 당했다.
129) 금슬(琴瑟)의 줄 끊어진 : 부인과 사별(死別)하였다는 말로, 옛날 부부 관계를 금슬(琴瑟)에 비유하였던 것에서 나온 말이다. 기정진은 54세 때인 1851년에 부인과 사별하였다.
130) 나덕암(羅德巖)이 보내준 시 : 《덕암만록(德巖漫錄)》 권2 〈용오중함오언운증오덕행(用吳仲涵五言韻贈吳德行)〉 시를 말한다. ‘덕암’은 나도규(羅燾圭, 1826~1885)의 호이다.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치문(致文)이다. 54세에 기정진에게 나아가 집지(執贄)했으며, 문집으로 《덕암만록(德巖漫錄)》이 있다.
131) 쇠도……예리한 : 두 사람의 사귄 정이 쇠붙이라도 끊을 만큼 깊음을 이른다. 《주역》 〈계사전 상(繫辭傳上)〉에 “두 사람이 마음을 함께하면 그 예리함이 쇠를 자를 만하고 마음을 함께한 말은 그 향기가 난초와 같다.[二人同心, 其利斷金, 同心之言, 其臭如蘭.]”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132) 양 교리(梁校理) : 양상기(梁相器, 1827~1892)로,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기지(器之)이다. 아우 백하(柏下) 양상형(梁相衡, 1833~1907)과 함께 부친 석옹(石翁) 양찬영(梁讚永)에게 수학하였으며, 정언(正言)ㆍ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ㆍ홍문관 교리(弘文館校理) 등을 역임하였다.
133) 요해(瑤海)의 반도(蟠桃) : ‘요해’는 전설 속에 나오는 못으로, 서왕모(西王母)가 사는 곤륜산(崑崙山) 속에 있다고 하는 요지(瑤池)를 말한다. ‘반도’는 요지에서 서왕모가 키우는 복숭아로, 3000년에 한 번 꽃이 피고 3000년에 한 번 열매를 맺는데, 이 복숭아를 먹으면 불로장생한다고 한다. 《太平廣記 卷3》
134) 삼달(三達) : 천하에서 공통적으로 존중하는 세 가지로, 관작(官爵), 고령(高齡), 덕행(德行)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이 세 가지를 갖춘 양상기를 지칭한다.
135) 송오(松梧) : 양상기의 10세조인 송천(松川) 양응정(梁應鼎, 1519~1581)과 8세조인 오재(梧齋) 양만용(梁曼容, 1598~1651)을 말한다. 양응정은 공조 좌랑, 진주 목사, 공조 참판, 대사성 등을 역임하였으며, 시문에 능하여 선조 때 8문장의 한 사람으로 뽑혔다. 양만용은 예문관 검열ㆍ예조 좌랑을 역임하였고, 1636년 청나라가 침입하자 의병을 일으켰다.
136) 여음(餘蔭) : 선조가 쌓은 공덕(功德)으로 자손이 받는 복을 말한다.
137) 부친의 생신 : 저자의 생부 오하규(吳夏圭, 1829~1895)의 회갑을 말한다.
138) 초명(楚榠) : 초나라 남쪽에 있다는 명령(榠欞)으로, 중국 신화에 나오는 장수하는 나무 이름이다. 《장자》 〈소요유(逍遙遊)〉에 “초나라 남쪽에 명령이라는 나무가 있는데, 500년을 봄으로 삼고, 500년을 가을로 삼는다.[楚之南有冥靈者, 以五百歲爲春, 五百歲爲秋.]”라고 하였다. ‘명령(榠欞)’은 ‘명령(冥靈)’이라고도 한다.
139) 호승(胡繩) : 향기로운 풀의 이름이다. 굴원(屈原)의 〈이소(離騷)〉에 “계수나무를 들어 난초 꿰어 달고, 호승으로 노끈을 길게 꼬리라.[矯菌桂以紉蘭兮, 索胡繩之纚纚.] 하였다.
140) 이괴음(李槐陰) : 괴음은 이규영(李奎永, 1824~1902)의 호이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사영(士英)이다. 노사 기정진의 문인이며, 의금부 도사(義禁府都事)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141) 지덕군(至德君) : 양녕대군(讓寧大君, 1394~1462)으로, ‘지덕’은 사호(祠號)이다. 사당 이름은 양녕대군을 주(周)나라 태백(泰伯)에 비유하며 칭송하는 의미로 지었는데, 《논어》 〈태백(泰伯)〉에 “태백은 지극한 덕[至德]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세 번 천하를 사양했는데 백성들이 그 덕을 칭송할 수 없구나.”라고 하였다.
142) 오(吳)나라 태백(泰伯) : 태백은 주(周)나라 태왕(太王) 고공단보(古公亶父)의 큰아들이다. 고공단보가 셋째 계력(季歷)에게 전위하고자 하니, 태백은 둘째 중옹(仲雍)과 형만(荊蠻)으로 도망갔다. 그 지역을 구오(句吳)라고 불렀으며 오나라를 세웠다. 《史記 卷31 吳太伯世家》
143) 봉혈(鳳穴)의 기이한 털 : 명문가의 훌륭한 자손을 비유하는 말로, 여기서는 이규영을 가리킨다. ‘봉혈’은 봉황새가 사는 둥지로, 흔히 훌륭한 인재가 나오는 집안을 비유한다.
144) 노옹(蘆翁) :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 1798~1876)을 말한다.
145) 기숙(耆宿) : 학문과 덕행(德行)이 훌륭한 노인을 말한다.
146) 진사(辰巳)의 해 : 십이지(十二支)의 진년(辰年)과 사년(巳年)으로, 현인(賢人)이 죽는 액운이 든 해를 말한다. 후한(後漢) 때의 경학자(經學者)인 정현(鄭玄)이 어느 날 꿈에 공자(孔子)가 “일어나라, 일어나라, 금년의 태세는 진에 있고, 내년의 태세는 사에 있다.[起, 起, 今年歲在辰, 來年歲在巳.]”라고 일러 준 꿈을 꾸고 나서, 참서(讖書)로 맞추어 보고는 스스로 자기의 수명이 다했음을 알았는데, 이윽고 병이 깊어져서 죽었다는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後漢書 卷35 鄭玄列傳》
147) 나장(羅丈) 덕암(德巖)의 시 : 《덕암만록(德巖漫錄)》 권2 〈제불원정(題不遠亭)〉 시를 말한다.
148) 홑옷 속의 비단옷 : 비단옷 위에 홑옷을 덧입어서 화려함을 감춘다는 뜻으로, 남에게 과시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시경》 〈석인(碩人)〉에 “석인이 이에 헌칠한데, 비단옷을 입고 홑옷을 덧입었도다.[碩人其頎, 衣錦褧衣.]” 했는데, 전(傳)에 “비단옷을 입고 홑옷을 덧입는 것은 그 문채가 너무 드러나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다.”라고 했다.
149) 경지……연꽃같네 : 본질이나 형상을 추구함에 세속의 혼탁함 속에서 물들지 않고 고결하게 피어나는 연꽃과 같다는 의미이다. 염계(濂溪) 주돈이(周敦頤)의 〈애련설(愛蓮說)〉에 “나는 유독 연꽃이 진흙탕 속에서 나왔어도 거기에 물들지 않고, 맑은 잔물결에 씻기면서도 요염하지 않은 것을 사랑한다.[予獨愛蓮之出於淤泥而不染, 濯淸漣而不夭.]”라는 표현을 원용한 것이다.
150) 신기(蜃氣) : 대기의 광학 현상의 일종으로, 특히 해변의 상공에 누대나 성곽 등의 모양이 나타나는 현상을 말한다. 《사기(史記)》 권27 〈천관서(天官書)〉에 “바닷가에는 신기가 누대 모양을 만들고, 광야 역시 기운이 궁궐 모양을 이룬다.[海旁蜄氣象樓臺, 廣野氣成宮闕然.]”라고 하였다.
151) 박망(博望)의 사신 행차 : ‘박망’은 박망후(博望侯)로 봉해진 한(漢)나라의 장건(張騫)을 가리키며, ‘성사(星槎)’는 황하의 근원을 찾으러 은하수까지 올라갔다는 뗏목으로, 일반적으로 사행(使行)을 가리킨다. 장건이 한 무제(漢武帝)의 명을 받고 대하(大夏)에 사신으로 나가 황하(黃河)의 근원을 찾았는데, 이때 배를 타고 은하수로 올라가 견우와 직녀를 만났다는 전설이 남조(南朝) 양(梁)의 송름(宋懍)이 지은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나온다.
152) 소선(蘇仙) : 송(宋)나라의 소식(蘇軾, 1036~1101)을 가리킨다. 인간 세계에 귀양 온 사람이란 뜻으로 문재(文才)가 출중한 사람을 적선(謫仙)이라 칭하는데, 특히 당(唐)나라의 이백(李白)과 아울러 소식을 적선이라 일컫기 때문에 소선이라 한 것이다.
153) 미려(尾閭) : 바닷물이 끝없이 빠져나가는 구멍을 말한다. 《장자(莊子)》 〈추수(秋水)〉에 “천하의 물은 바다보다 큰 것이 없으니,……미려에서 새어 언제 그칠지 모르는데도 텅 비는 일이 없다.[天下之水, 莫大於海,……尾閭泄之, 不知何時已而不虛.]”라고 하였다.
154) 가래나무 보며 공경하니 : 부모가 고향에 심은 나무를 공경한다는 의미이다. 《시경》 〈소반(小弁)〉에 “뽕나무나 가래나무도 공경해야 한다.[惟桑與梓, 必恭敬止.]”라고 하였는데, 그에 대한 주희(朱熹)의 주에 “선대에서 심은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155) 상로(霜露)에 감회가 이네 : 돌아가신 부모나 선조를 슬퍼하며 사모한다는 뜻이다. 《예기(禮記)》 〈제의(祭義)〉에 “가을에 서리와 이슬이 내리면 군자가 이것을 밟고 반드시 서글퍼지는 마음이 있으니, 추워서 그러한 것이 아니다.[霜露旣降, 君子履之, 必有悽愴之心, 非其寒之謂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156) 박도겸(朴道兼) : 도겸은 박정규(朴廷奎, 1829~1898)의 자이다. 본관은 함양(咸陽), 호는 야은(野隱)이다. 구한말 전라남도 담양(潭陽) 출신의 유학자로, 노사 기정진의 문인이다. 문집에 《야은만록(野隱謾錄)》이 있다.
157) 산이……꺾여 : 스승이나 철인(哲人)의 죽음을 비유하는 말인데, 여기서는 스승인 기정진(奇正鎭, 1798~1879)의 죽음을 가리킨다. 공자가 자신이 죽는 꿈을 꾸고 아침 일찍 일어나 뒷짐을 지고 지팡이를 끌고 문 앞에 한가로이 거닐며 “태산이 무너지겠구나. 대들보가 부러지겠구나. 철인이 죽게 되겠구나.[泰山其頹乎! 梁木其摧乎! 哲人其萎乎!]”라고 노래하고는 얼마 후에 별세한 일에서 유래하였다. 《禮記 檀弓上》
158) 담대헌(澹對軒) : 기정진이 1878년(고종15)에 지은 정사(精舍)로, 그가 학문을 강론했던 곳이다. 후손들이 1924년 중건했으며, 1927년에 고산서원(高山書院)이라는 편액을 걸었다.
159) 자사(子思) : 공자의 손자 공급(孔伋)의 자이다. 그가 《중용》을 지었다고 한다.
160) 뭇……생기니 : 동짓달이 되었다는 의미로, 음기(陰氣)가 극에 달한 순음(純陰)의 10월을 지나 11월 동지(冬至)가 되면 하나의 양기(陽氣)가 처음으로 생겨나 복괘(復卦)를 이루게 되는 것을 말한다. 《周易本義 復卦》
161) 냄새를 좇아 : 원문의 ‘축취(逐臭)’로, 기호(嗜好)가 아주 괴벽(怪僻)한 것을 비유한다. 어떤 사람이 몸에서 몹시 악취가 나서 가족 친지들과 같이 살 수가 없어 스스로 괴로워하다가 혼자 바닷가에서 살았는데, 바닷가에 사는 사람이 그의 악취를 좋아하여 밤낮으로 떠나지 않고 따라다녔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呂氏春秋 遇合》
162) 금옥 같은 소식 : 상대방의 서신이나 시문(詩文)을 뜻한다. 《시경》 〈백구(白駒)〉에 “너의 음성을 금옥처럼 아껴서 나를 멀리하는 마음을 두지 말라.[毋金玉爾音, 而有遐心.]” 하였다.
163) 오궤(梧几) : 오동나무로 만든 궤안(几案)이다.
164) 선사(先師)의 종상(終祥) : ‘선사’는 저자의 스승 기정진(奇正鎭, 1798~1879)을 가리킨다. ‘종상’은 대상(大祥)으로, 죽은 지 만 2년이 되는 두 번째 기일(忌日)에 지내는 상례(喪禮)이다.
165) 때마침……떠났네 : 천리에 순응하여 태어나고 죽음을 말한다. 노담(老聃)이 죽자 그의 벗인 진실(秦失)이 말하기를 “때마침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태어날 때였기 때문이고, 때마침 세상을 떠난 것은 떠나갈 때였기 때문이니, 태어나는 때를 편안히 맞이하고 죽는 때를 편안히 따른다면 슬픔이나 즐거움이 그 사람의 마음에 들어갈 수 없다.[適來, 夫子時也; 適去, 夫子順也. 安時而處順, 哀樂不能入也.]”라고 하였다. 《莊子 養生主》
166) 세상을 떠난 : 원문은 ‘역책(易簀)’으로, 학덕이 높은 사람의 죽음을 가리킨다. 증자(曾子)가 병환 중에 대부(大夫)의 신분에 걸맞은 화려한 대자리를 깔고 있었는데, 임종할 당시 자신의 분수에 맞지 않는다고 하여 제자들로 하여금 대자리를 바꾸게[易簀] 하고 죽은 데서 유래한 말이다. 《禮記 檀弓上》
167) 반축(反築) : 돌아와서 집을 짓는다는 뜻으로, 공자가 별세했을 때 모든 문인(門人)들이 심상 삼년(心喪三年)을 치른 다음 모두 짐을 챙겨 떠났으나, 자공(子貢)만은 다시 돌아와서 공자의 묘의 마당에 집을 짓고 홀로 3년을 더 거처하여 모두 6년을 지낸 데서 온 말이다.
168) 침문(寢門) : 가장 안쪽의 문을 뜻하는데, 보통 내실(內室)의 문을 가리킨다.
169) 이 상사(李上舍) : 이최선(李最善, 1825~1883)으로,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낙유(樂裕), 호는 석전(石田)이다. 기정진의 문인이며, 문집으로 《석전집》이 있다.
170) 옥수(玉樹) : 훌륭한 인물이나 자제를 일컫는 말이다. 진(晉)나라 때 큰 문벌을 이루었던 사안(謝安)이 자질(子姪)들에게 “어찌하여 사람들은 자기 자제가 출중하기를 바라는가?” 하고 묻자, 조카 사현(謝玄)이 “비유하자면 마치 지란(芝蘭)과 옥수(玉樹)가 자기 집 뜰에 자라기를 바라는 것과 같습니다.”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晉書 謝玄列傳》
171) 지덕군(至德君) : 태종의 장남이자 세종의 형인 양녕대군(讓寧大君)을 말한다. 그는 세자에 책봉되었으나 궁중의 규범에 순응하기를 거부하였던 탓에 여론이 충녕대군을 향하자 세자의 지위에서 물러나, 왕위가 충녕대군에게 전해지도록 하였다.
172) 전형(典型) : 모범이 될 만한 떳떳한 법을 말한다. 《시경》 〈탕(蕩)〉에 “비록 노성한 사람은 없으나, 그래도 전형은 남아 있다.[雖無老成人, 尙有典刑.]”라고 하였다.
173) 단혈(丹穴) : 봉황(鳳凰)이 산다는 전설상의 산 이름인데, 흔히 훌륭한 인재가 나오는 집안을 비유한다. 《산해경(山海經)》 〈남산경(南山經)〉에 “단혈의 산에 새가 있다. 그 모양이 닭과 같고 오색의 문채가 있는데, 그 이름을 봉황이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174) 청전(靑氈) : 푸른 모포로, 집안에 대대로 전하는 유물(遺物)을 의미한다. 진(晉)나라 때 사람인 왕헌지(王獻之)가 누워 있는 방에 도둑이 들어와서 물건을 모조리 훔쳐 가려고 하자 “도둑아, 청전은 우리 집안의 유물이니, 그것만은 놓고 가는 것이 좋겠다.”라고 했다는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晉書 王羲之列傳 獻之》
175) 문성(文星) : 문운(文運)을 주관한다는 ‘문창성(文昌星)’의 약칭으로, 문재가 높은 사람을 비유한다.
176) 야대(夜臺) : ‘장야대(長夜臺)’의 준말로, 분묘(墳墓)를 가리킨다. 한번 문이 닫히면 영원히 암흑 속에서 광명을 볼 수 없다는 뜻으로 붙여진 시어(詩語)이다.
177) 모시는 : 원문의 ‘집책(執策)’은 ‘집편(執鞭)’의 변용으로, 마부가 되어 말채찍을 잡고 기꺼이 그의 수레라도 끌고 싶을 정도로 상대방의 덕을 흠모한다는 말이다. 《사기》 권62 〈관안열전 찬(管晏列傳贊)〉에 “가령 안자가 지금 이 세상에 살아 있다면, 내 비록 그를 위해 말채찍을 잡는다 하더라도 기쁜 마음으로 받들어 모시겠다.[假令晏子而在, 余雖爲之執鞭, 所忻慕焉.]”라는 사마천(司馬遷)의 말에서 유래하였다.
178) 이백(李白)의 자극궁(紫極宮) 시 : 《이태백시집(李太白詩集)》 권23 〈심양자극궁감추작(尋陽紫極宮感秋作)〉 시를 말한다. 이 시는 이백이 49세의 나이에 그간의 삶을 반성하고 앞으로 인생을 올바르게 살아갈 것을 다짐한 내용이다.
179) 훤초(萱草) : ‘원추리’라는 풀인데, 근심을 잊게 하는 풀이라 하여 망우초(忘憂草)라고도 하였다. 《본초강목(本草綱目)》 〈훤초(萱草)〉에 “새 속잎을 따서 나물을 만들어 먹으면, 풍기가 일어나 취한 것같이 되어 모든 근심을 잊는다. 그래서 망우초라고 한다.” 하였다.
180) 총명은……저버린다 : 당나라 문장가인 한유(韓愈)의 《한창려집(韓昌黎集)》 권1 〈오잠(五箴)〉 서문에 있는 구절이다.
181) 백주(柏酒) : 백엽주(柏葉酒)로, 측백나무의 잎을 담가 우려낸 술을 말한다. 옛 풍속에 정월 초하루에 어른에게 세배를 드리며 축수(祝壽)하고 사기(邪氣)를 쫓기 위해 이 술을 마셨다고 한다. 《荊楚歲時記》
182) 돌아가……많으리니 : 도를 구하려는 의지가 있으면 배울 만한 곳이 많다는 말이다. 《맹자》 〈고자 하(告子下)〉에 “도는 대로와 같으니, 어찌 알기 어렵겠는가. 사람들이 구하지 않는 것이 문제일 뿐이니, 그대가 돌아가서 구한다면 훌륭한 스승이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夫道若大路然, 豈難知哉? 人病不求耳. 子歸而求之, 有餘師.]”라고 하였다.
183) 희음(希音) : 들어도 들리지 않는 위대한 성음을 형용하는 말이다. 《노자(老子)》 41장에 “큰소리는 소리가 없고, 큰 형상은 형체가 없다.[大音希聲, 大象無形.]”라고 하였다.
184) 여운(餘韻)은 용문(龍門)에서 정리하였고 : 주자학을 계승ㆍ발전시켰다는 말이다. 주희가 〈용문가(龍門歌)〉라는 시에서 정자(程子)의 유업을 이어 유학(儒學)의 통서를 되살리겠다는 의지를 담아서 “여운을 찾아 다시 정리해야겠으니, 용문에 아직도 남은 노래 있다네.[興言理餘韻, 龍門有遺歌.]”라고 하였다. ‘용문’은 중국 하남성(河南省) 낙양(洛陽) 지역에 있는 산 이름으로, 정자가 만년에 거처하며 강학하던 곳이다.
185) 무이(武夷) : 주희가 학문을 닦던 무이산(武夷山)으로, 주희를 가리킨다.
186) 문과 담장 : 스승의 학식이 높고 큼을 이르는 말이다. 《논어》 〈자장(子張)〉에 “선생님의 담장은 여러 장이 된다. 그 문으로 들어갈 수 없다면 종묘의 아름다움과 백관의 풍부함을 보지 못하지만 그 문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자는 드물다.[夫子之牆數仞, 不得其門而入, 不見宗廟之美, 百官之富.]”라고 하였다.
187) 공자가 세상을 떠나기 일주일 전에 “태산이 무너지는구나. 대들보가 꺾이는구나. 철인이 시드는구나.[泰山其頹乎, 梁木其壞乎, 哲人其萎乎.]”라고 노래한 데서 유래하였다.
188) 초주(椒酒) : 산초로 빚은 술로, 옛날 풍속에 신년 초하루가 되면 이 술을 가장(家長)에게 올려 헌수하였다.
189) 과축(薖軸) : 현인이 은거하는 곳을 말한다. 《시경》 〈고반(考槃)〉에 “고반이 언덕에 있으니, 석인의 마음이 넉넉하도다.……고반이 높은 언덕에 있으니, 석인이 한가로이 서성이도다.[考槃在阿, 碩人之薖.……考槃在陸, 碩人之軸.]”라는 구절에서 ‘과’와 ‘축’을 취한 것이다.
190) 두……뒤로는 : 두 분은 부모님을 뜻하는바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신 뒤로부터라는 뜻이다. 《시경》 〈소완(小宛)〉에, “날이 새도록 잠을 못 이루며 부모 두 분을 생각하노라.[明發不寐, 有懷二人.]”라고 하였다.
191) 윤익(輪翼) : 수레바퀴와 새의 날개를 말하는데, 반드시 양쪽이 짝을 갖추어야만 기능을 하기 때문에 서로 뗄 수 없이 밀접한 관계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192) 소식(蘇軾)……약속하고 : 형제가 한자리에 만나 즐거움을 누리기로 하였다는 의미이다. 소철(蘇轍)이 소년 시절에 공부하는 동안 형 소식을 따라 독서하면서 하루도 서로 떨어져 지낸 적이 없었는데, 벼슬길에 오르면서는 형제가 함께 있는 날이 적었다. 그러던 어느 날 두 형제는 위응물(韋應物)의 시 “어찌 알았으랴 비바람 치는 밤에, 이렇게 한방에서 다시 잘 줄을.[寧知風雪夜, 復此對床眠?]”이라는 구절을 읽고는, 벼슬을 버리고 한가로이 지내는 즐거움을 함께 누리자고 약속하였다.
193) 강굉(姜肱) : 후한(後漢) 사람으로, 아우인 중해(仲海), 계강(季江)과 우애가 깊어 항상 한 이불을 덮고 잤다고 한다. 《後漢書 姜肱列傳》
194) 외모(外慕) : 부귀공명을 사모하는 것을 말한다.
195) 굽히고……따지고 : 한 자[尺]를 굽혀서 여덟 자[尋]를 편다는 ‘왕척직심(枉尺直尋)’을 변용한 표현으로, 이익을 위해서는 의리나 지조를 버린다는 뜻이다. 《孟子 滕文公下》
196) 공교함은……조화시키네 : 시류에 영합하여 출세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한유(韓愈)가 진상(陳商)에게 답한 편지에 “옛날에 제(齊)나라 왕이 젓대소리를 좋아했는데, 제나라에 와서 벼슬을 구하는 사람이 비파를 가지고 왕성(王城)의 문 앞에서 3년을 연주했으나 끝내 제왕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어떤 객이 꾸짖기를 ‘왕은 젓대소리를 좋아하는데 그대는 비파를 타니, 비파는 비록 잘 타지만 왕이 좋아하지 않음을 어찌하겠는가.’ 하였다”는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韓昌黎集 答陳商書》
197) 사람이……꿈 : 풍년의 조짐을 예지하는 꿈이다. 《시경》 〈무양(無羊)〉에 “소와 양을 치는 사람이 꿈을 꾸니, 사람들이 물고기가 되고 작은 기가 큰 기가 되었네. 태인이 점을 치고서 사람들이 물고기가 된 것은 올해 풍년이 들 조짐이요, 작은 기가 큰 기가 된 것은 집안이 번성할 조짐이라 하였네.[牧人乃夢, 衆維魚矣, 旐維旟矣. 大人占之, 衆維魚矣, 實維豐年, 旐維旟矣, 室家湊湊.]”라고 하였다.
198) 세……눈 : 납일(臘日)이 되기 전에 세 차례나 눈이 왔으므로 내년 농사가 풍년이 들 것이라는 말이다. 동지(冬至)가 지난 뒤 세 번째 술일(戌日)을 납일이라고 하는데, 납일 전에 세 번 눈이 내리면 농사가 잘 되고 또 해충을 죽이는 효과가 있다는 기록이 있다. 《本草綱目 臘雪》
199) 율리(栗里) : 동진(東晉)의 처사(處士) 도잠(陶潛)이 은거했던 곳인데, 저자가 지내는 곳을 여기에 비유한 것이다.
200) 저닉(沮溺) : 춘추 시대 초(楚)나라 장저(長沮)와 걸닉(桀溺)의 병칭으로, 세상일에는 아예 관여하지 않고 숨어 사는 은자(隱者)를 가리킨다. 《論語 微子》
201) 마소에……꼴이네 : 학문이 얕음을 말한 것으로, 한유(韓愈)의 시 〈부독서성남(符讀書城南)〉에 “사람이 배워서 고금을 통하지 못하면, 마소인데 사람 옷을 입혀 놓은 것이다.[人不通古今, 馬牛而襟裾.]”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202) 동추(同樞) 김공(金公) : 김석찬(金錫粲, 1807~1887)으로, 본관은 상산(商山), 자는 성익(聖益), 호는 졸와(拙窩)이다. 1882년 조정에서 노인을 우대하는 은전으로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특별히 제수하였다.
203) 삼달(三達) : 천하에서 공통적으로 존중하는 세 가지로, 관작(官爵), 고령(高齡), 덕행(德行)을 가리킨다.
204) 한묵(翰墨)을……덧붙였네 : 옥황상제가 거처하는 백옥루(白玉樓)에 올라가 글을 지었다는 것으로, 김석찬의 죽음을 미화한 표현이다. 당(唐)나라 시인 이하(李賀)가 죽을 때, 붉은 옷을 입고 붉은 용을 탄 사람이 찾아와서, “옥황상제가 백옥루를 완성하고서 급히 그대를 불러 기문을 짓게 하려 하신다.”라고 했다는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 《昌谷集 李長吉小傳》
205) 송강정(松江亭) : 후손들이 송강(松江) 정철(鄭澈, 1536~1593)을 기리기 위하여 1770년(영조46)에 세운 정자로, 전라남도 담양군 고서면에 있다.
206) 칠실(漆室) 과부는 근심하느라 : 자기 신분과 지위에 맞지 않게 나랏일을 걱정하는 것을 비유한다. 춘추 시대 노(魯)나라 칠실에 과년한 처녀가 시집 못 가는 것은 걱정하지 않고 나라의 임금이 늙고 태자가 어린 것을 걱정하여 기둥에 기대어 울었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列女傳 漆室女》
207) 도령(陶令) : 진(晉)나라의 은자로서, 팽택 영(彭澤令)을 지낸 도잠(陶潛)을 가리킨다. 그는 다섯 그루의 버드나무를 문 앞에 심고 스스로 오류선생(五柳先生)이라 칭하였다.
208) 황금……원대했네 : 황금대(黃金臺)는 전국 시대 연 소왕(燕昭王)이 대(臺)를 지어서 그 위에 천금(千金)을 쌓아 놓고 천하의 어진 선비를 초빙하였다는 곳이며, ‘곽공(郭公)’은 곽외(郭隗)를 말한다.
209) 망저군(望諸君) : 전국 시대 연나라 장수 악의(樂毅)의 봉호이다. 연나라 소왕(昭王)을 섬겨 제나라의 70여 성을 함락시키고 창국군(昌國君)에 봉해졌다. 혜왕(惠王)이 즉위한 후 반간계에 걸려, 조나라로 망명해 망저군에 봉해졌다. 《史記 卷80 樂毅列傳》
210) 윤행(允行) : 오유선(吳裕善, 1857∼1886)의 자(字)이다.
211) 신서(申胥) : 춘추 시대 때 초나라의 대부(大夫)인 신포서(申包胥)이다. 성은 공손(公孫)인데, 신(申) 땅에 봉작되었으므로 신포서라고 한다. 오자서(伍子胥)가 오(吳)나라의 군사를 이끌고 초나라의 수도인 영(郢)에 침입하자 진(秦)나라에 가서 구원병을 청하였는데, 7일 동안 음식을 먹지 않으면서 조정의 담에 기대어서 통곡하였다. 그러자 진나라의 애공(哀公)이 감동하여 구원병을 내주므로, 그 군사를 거느리고 돌아와서 국난을 평정하였다.《淮南子 修務訓》
212) 자방(子房) : 한(漢)나라의 개국 공신 장량(張良)의 자(字)이다. 그는 한(韓)나라가 진 시황(秦始皇)에게 멸망당하자 진 시황을 암살하기 위해 역사(力士)를 시켜 박랑사(博浪沙)에서 진 시황의 수레를 철퇴로 저격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이후 패공 유방(劉邦)을 만나 참모가 되어 한(漢)나라 건국의 일등공신이 되었다. 《史記 留侯世家》
213) 진(晉)나라의……낙타 : 망국(亡國)을 비유한 표현이다. 진(晉)나라 때 색정(索靖)이 천하가 혼란스러워질 것을 알고 낙양(洛陽)의 궁문 앞에 서 있는 동타(銅駝)를 가리키며 탄식하며 말하기를, “네가 가시밭 가운데 있음을 보겠구나.[會見汝在荊棘中耳.]”라고 하였다. 《晉書 卷60 索靖傳》
214) 기산(岐山)……새소리 : 나라가 흥성해짐을 비유한 표현이다. 《국어(國語)》 〈주어 상(周語上)〉에 “주나라가 흥할 때에 악작이 기산에서 울었다.[周之興也, 鸑鷟鳴於岐山.]” 하였는데, ‘악작’은 왕업(王業)을 이루게 될 때 나타난다는 봉황새의 일종이다.
215) 작은……표시했나 : 춘추 시대 오(吳)나라의 현인(賢人)인 계찰(季札)의 무덤에 세워진 비석에 공자(孔子)가 전서(篆書)로 “오호라, 오나라 연릉 계자의 무덤이다.[嗚呼有吳延陵季子之墓]”라고만 적었던 것을 가리킨다. ‘연릉(延陵)’은 계찰이 봉해진 고을 이름이다.
216) 사부돈(謝傅墩) : 진(晉)나라 때 태부(太傅)를 지낸 사안(謝安)이 노닐었던 돈대(墩臺) 이름으로, 지금 남경시(南京市) 동쪽 반산(半山) 위에 있다.
217) 중소(仲素) : 송나라의 학자인 나종언(羅從彦)의 자(字)이다. 나종언은 정이(程頤)와 양시(楊時)를 사사하여 송대 성리학이 이동(李侗)과 주자(朱子)로 이어지는 교두보 역할을 하였다. 《宋史 卷428 羅從彦列傳》
218) 일봉(一峯) : 명나라 때의 학자 나륜(羅倫)의 호이다. 한림원 수찬(翰林院修撰)을 지내다가 사직하고 돌아가 금우산(金牛山)에 은거하여 경학(經學)에 전념하였다. 《明史 羅倫列傳》
219) 궁도(窮途)에서 통곡한 완적(阮籍) : ‘궁도’는 막다른 길이라는 뜻으로, 몹시 곤란한 처지에 놓인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진(晉)나라 때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인 완적(阮籍)은 천성이 방달불기(放達不羈)하여 가끔 답답한 마음을 풀기 위해 혼자 여기저기 수레를 몰고 다니다가 길이 막힌 곳에 이르면 문득 통곡하고 돌아왔다고 한다. 《晉書 阮籍列傳》
220) 쌍계루(雙溪樓) : 전라남도 장성군 북하면 백양사 입구에 있는 누각이다. 1370년에 무너진 뒤 1377년에 복구되었으며, 이색(李穡)의 〈백암산정토사쌍계루기〉에 의하면 이곳에서 두 계곡의 물이 합쳐지므로 ‘쌍계루’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221) 두 노인의 시편 : 목은 이색의 기문과 포은 정몽주의 쌍계루 시를 이르는 듯합니다.
222) 제천(諸天) : 불교에서 여러 천상(天上)의 세계를 뜻하는 말인데, 높은 곳에 위치한 절이나 암자를 뜻하는 말로도 쓰인다. 두보(杜甫)의 시 〈부성현향적사관각(涪城縣香積寺官閣)〉에 “제천이 응당 등라 밖에 있으리니, 날이 어두워야 정상에 도달하리.[諸天合在藤蘿外, 昏黑應須到上頭.]”라고 하였다.
223) 해옥(海屋)에……보태길 : 장수하기를 기원했다는 말이다. ‘해옥’은 신선이 사는 바닷가의 집을 가리킨다. 옛날 세 노인이 만난 자리에서 어떤 이가 나이를 묻자, 모두 이루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먹었다고 대답하였는데, 그중 한 사람이 말하기를 “바다가 뽕밭으로 변하면 그때마다 산가지 한 개를 놓았는데 지금까지 내가 하나씩 놓은 산가지가 열 칸 집[海屋]에 이미 가득 찼다.”라고 하였다. 《東坡志林 卷2》
224) 호상사(湖上詞) 12수 : 《노사집(蘆沙集)》 권1에 보인다.
225) 담장 동쪽에서 누우니 :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시정(市井)에서 은자(隱者)처럼 사는 것을 말한다. 후한(後漢) 때의 사람 왕군공(王君公)이 난리를 만나 소를 매매하는 거간꾼 노릇을 하며 성(城) 담장 동쪽의 시장에 숨어 살아서, 당시 사람들이 그를 두고 ‘세상 피해 성 담장 동쪽에 사는 왕군공[避世墻東王君公]’이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後漢書 卷83 隱逸列傳 逢萌》
226) 땅에……나는 : 매우 뛰어난 문장을 비유하는 말이다. 진(晉)나라의 문장가 손작(孫綽)이 〈천태산부(天台山賦)〉를 지은 뒤에 친구인 범영기(范榮期)에게 “그대는 시험 삼아 이 부(賦)를 땅에 던져 보게나, 마땅히 금석 소리가 날 것이라네.[卿試擲地, 當作金石聲.]”라고 하였다. 《晉書 孫綽列傳》
227) 독선(獨善) : 독선기신(獨善其身)의 준말로, 세상에 나가 뜻을 펴지 못하고 자신을 수양하며 지조를 지키는 것을 말한다.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곤궁할 때에는 홀로 자기 몸을 선하게 하고, 뜻을 얻으면 천하 사람들과 그 선을 함께한다.[窮則獨善其身, 達則兼善天下.]”라고 하였다.
228) 관직생활 : 원문의 ‘묘신(卯申)’으로, 벼슬아치들이 묘시(卯時)에 출근하여 신시(申時)에 퇴근하는 것을 말한다.
229) 염옹(濂翁) : 북송(北宋)의 학자인 염계(濂溪) 주돈이(周敦頤, 1017~1073)를 이른다.
230) 안와(安窩)에서…치네 : ‘안와’는 ‘안락와(安樂窩)’의 줄임말로, 송나라 때의 학자 소옹(邵雍)이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생활을 즐겼던 오두막집의 이름이다. ‘매화점’은 소옹이 고안했다는 서법(筮法)이다. 그 방법은 임의로 한 글자의 획수를 취하여 8획을 제하고 남은 수로 괘(卦)를 얻고, 또 한 글자의 획수를 취하여 6획을 제하고 남은 수로 효(爻)를 얻은 다음, 역리(易理)에 의거하여 그 길흉을 판단하는 것이다. 원래는 소옹이 매화 꽃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길흉을 점치는 데서 비롯했다고 한다.
231) 하도(河圖) : 복희(伏羲) 때 황하에서 용마(龍馬)가 등에 지고 나왔다는 그림이다. 55개의 점으로 표현되었으며, 복희가 이를 보고 팔괘(八卦)를 만들었다.
232) 영지(靈芝)와……있었네 : ‘영지’는 먹으면 불로장생한다는 약초이고 ‘예천(醴泉)’은 맛이 달고 시원한 샘물인데, 영지는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고 뿌리가 있어 나오며 예천 역시 근원이 있어 나온다는 뜻으로, 이는 곧 훌륭한 사람은 훌륭한 조상에게서 뿌리하여 태어남을 비유한 것이다.
233) 원안(袁安) : 후한(後漢) 화제(和帝) 때의 사람으로, 효렴(孝廉)으로 추천되어 초군 태수(楚郡太守)를 역임하였다. 천자가 유약하고 두태후(竇太后)의 오라비인 두헌(竇憲) 형제가 권력을 전횡하는 것을 보고, 조정에 나가 공경들과 국사를 걱정하여 말할 때마다 눈물을 흘리며 한탄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後漢書 卷45 袁安列傳》
234) 나랏일 걱정해 : 원문은 ‘휼위(恤緯)’로, 주(周)나라 때 어느 과부가 길쌈은 걱정하지 않고 나라가 망하는 것을 근심했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흔히 자신의 본분을 잊고 나라가 망하는 것만 걱정하는 사람을 비유한다.
235) 성신(聖神) : 제왕(帝王)을 예찬하여 일컫는 말이다.
236) 삼옹(三雍) : 고대 제왕들이 제사와 전례를 거행하는 장소인 벽옹(辟雍), 명당(明堂), 영대(靈臺)를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원래 주(周)나라 때 건립되었다가, 한나라 때 다시 건립되었다.
237) 청묘(淸廟) : 원래 주(周)나라 문왕(文王)을 제사 지내던 곳인데, 후에는 종묘(宗廟)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詩經 淸廟》
238) 음우(陰雨)의 대비 : 장마에 대비한다는 말로, 재난을 미연에 방지함을 뜻한다. 《시경》 〈치효(鴟鴞)〉에 “하늘이 흐리고 비를 내리지 않을 때에, 저 뽕나무 뿌리를 주워다가 유호를 칭칭 감는다면, 이제 네 하민들이 혹시라도 감히 나를 업신여기겠는가.[迨天之未陰雨, 徹彼桑土, 綢繆牖戶, 今女下民, 或敢侮予.]”라고 하였다.
239) 가시덤불 속의 동타(銅駝) : 국가의 패망을 뜻하는 말이다. 진(晉)나라 때 색정(索靖)이 천하가 장차 어지러워질 것을 미리 알고는 그 동타를 가리키며 탄식하기를, “네가 곧 가시덤불 속에 묻히는 것을 보게 되겠구나.[會見汝在荊棘中耳]”라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동타’는 한(漢)나라 때 낙양(洛陽)의 궁문 밖에 비치한 동(銅)으로 주조(鑄造)한 낙타(駱駝)를 가리킨다. 《晉書 卷60 索靖傳》
240) 오랑캐 : 원문의 ‘개린(介鱗)’은 딱딱한 껍질을 지닌 개충(介蟲)과 비늘이 있는 물고기를 가리키는데, 오랑캐를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 《후한서(後漢書)》 권78 〈양종전(楊終傳)〉에 “광무제(光武帝)가 서역(西域)의 나라들과 국교를 단절하여, 개린으로 하여금 우리의 의상으로 바꿔 입지 못하게 하였다.[光武絶西域之國, 不以介鱗易我衣裳.]” 하였는데, 이현(李賢)의 주에 “개린은 먼 오랑캐를 비유한다.[介鱗, 喻遠夷.]”라고 하였다.
241) 털옷과 융단 : 털로 만든 옷의 일종으로, 오랑캐의 복색을 말한 것이다.
242) 효경(梟獍) : 어미를 잡아먹는 올빼미 종류의 새인 효조(梟鳥)와 아비를 잡아먹는 짐승인 파경(破獍)을 가리키는 말로, 악인(惡人)을 비유한다. 《漢書 卷25 郊祀志 註》
243) 지주봉(砥柱峯) : 황하(黃河)의 중류에 기둥처럼 우뚝 솟은 바위를 말하는데, 황하의 세찬 물결에도 굽히지 않고 버티고 서 있는 그 형상으로 인해 세상 풍파를 견디며 굳센 지조를 지키는 사람을 비유할 때에 쓴다.
244) 퇴파(頹波) : 거세게 아래로 흘러내려 가는 물결을 말하는데, 무너져 가는 세상의 풍속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245) 하도(河圖)와 낙서(洛書) : 하도는 복희(伏羲) 때 황하에 용마(龍馬)가 등에 지고 나왔다는 그림이다. 55개의 점으로 표현되었으며 복희가 이를 보고 팔괘(八卦)를 만들었다. 낙서는 우(禹) 임금 때 낙수(洛水)에서 거북이의 등에 그려져 있던 그림으로 45개의 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를 바탕으로 하여 〈홍범구주(洪範九疇)〉가 만들어졌다.
246) 삼청(三淸) : 도교(道敎)에서 말하는 옥청(玉淸), 상청(上淸), 태청(太淸)의 세 청경(淸境)을 가리키는데, 선경(仙境)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247) 벽도(碧桃) : 선경(仙境)에 있는 큰 복숭아로, 3천 년 만에 한 번씩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는 반도(蟠桃)를 가리킨다.
248) 삼산악부가훼십영(三山樂府嘉卉十詠) : 《송사집(松沙集)》 권1 〈삼산가훼십절(三山嘉卉十絶)〉로, 각각 소나무[松], 매화[梅], 오동나무[梧], 버드나무[柳], 고사리[薇], 지초[芝], 국화[菊], 난초[蘭], 연꽃[蓮], 파초(芭蕉)에 대해 읊은 것이다.
249) 대명매(大明梅) : 매화나무의 한 종류이다.
250) 노(魯)나라……의탁했네 : 두 사람 모두 별칭에 ‘유(柳)’ 자가 들어있는 것을 말한다. 유하혜(柳下惠)는 춘추시대 노(魯)나라의 대부(大夫) 전획(展獲)을 말하는데, ‘유하’는 식읍(食邑)이고 ‘혜’는 시호이다. 도잠(陶潛)은 동진(東晉) 때의 은사(隱士)인데, 다섯 그루의 버드나무를 집 앞에 심고 스스로 오류선생(五柳先生)이라 칭하였다.
251) 삼산(三山) 노인 : 삼산재(三山齋)에서 은거한 기우만(奇宇萬)을 가리킨다.
252) 참조. 〔傍人不識余心樂, 將謂偸閑學少年.〕 : 정호의 시 〈춘일우성(春日偶成)〉의 한 구절이다.
253) 백이숙제(伯夷叔齊) : 고죽군(孤竹君)의 두 아들로, 주나라 무왕(武王)이 은나라 주(紂)를 정벌하는 것을 보고 간하였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자 수양산(首陽山)에 숨어 살며 고사리를 캐 먹다가 굶어 죽었다. 《史記 伯夷列傳》
254) 서산(西山) : 백이숙제가 절의를 지키느라 고사리를 캐 먹으며 은거하다가 굶어 죽은 수양산(首陽山)을 말한다.
255) 왕춘(王春) : 춘왕정월(春王正月)의 줄임말로, 음력 정월을 뜻한다. 공자가 《춘추》를 편찬할 때 주나라 왕실을 높이고 대일통(大一統)의 사상을 표시하기 위해 노(魯)나라 은공(隱公) 원년 조에 ‘춘왕정월(春王正月)’이라고 쓴 데서 유래하였다.
256) 벽라의(碧蘿衣) : 칡덩굴로 만든 옷인데, 산에 숨어 사는 처사(處士)들의 옷을 말한다.
257) 자지초(紫芝草) : 붉은 지초로, 신선이 먹는 음식을 의미한다. 진(秦)나라 때 사호(四皓)가 상산(商山)에 숨어 있을 때에 “빛나는 붉은 지초는 가히 요기할 만하도다.[燁燁紫芝, 可以療飢.]”라는 노래를 지어서 불렀다. ‘사호’는 진나라의 폭정을 피하여 상산에 은거했던 동원공(東園公)ㆍ녹리선생(甪里先生)ㆍ기리계(綺里季)ㆍ하황공(夏黃公)을 가리킨다.
258) 기원(綺園) : 진한(秦漢) 때의 은사(隱士)인 상산사호(商山四皓) 중, 기리계(綺里季)와 동원공(東園公)의 합칭이다.
259) 꽃 중의 은자(隱者) : 국화를 말한다. 송(宋)나라 주돈이(周敦頤)의 〈애련설(愛蓮說)〉의 “나는 국화는 꽃 중의 은자이고, 모란은 꽃 중의 부귀한 자이며, 연꽃은 꽃 중의 군자라고 여긴다.[予謂菊, 花之隱逸者也, 牡丹, 花之富貴者也, 蓮花之君子者也.]”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다.
260) 옥정(玉井) : 화산(華山) 꼭대기에 있다는 옥같이 맑은 연못이다. 한유(韓愈)의 〈고의(古意)〉 시에 “태화봉 꼭대기 옥정의 연은, 꽃 피우면 직경이 열 길에 연뿌리는 배와 같다네.[太華峯頭玉井蓮, 開花十丈藕如船.]”라는 구절이 있다.
261) 선생이……읊은 : 송(宋)나라 때 횡거(橫渠) 장재(張載)가 〈파초(芭蕉)〉 시를 지은 것을 말한다. 그 시에 “파초의 심이 다하여 새 가지를 펼치거든, 새로 말린 새 심이 은연중 뒤를 따르나니, 원컨대 새 심으로 새 덕 기르는 걸 배우고, 이내 새잎으로 새 지식 넓힘을 따르련다.[芭蕉心盡展新枝, 新卷新心暗已隨, 願學新心養新德, 旋隨新葉起新知.]”라고 하였는데, ‘새잎’은 학문을 말미암는 공부에 해당하며 ‘새 가지를 펼친다.’는 것은 덕성을 높이는 공부에 해당한다.
262) 남파정(南坡亭) : 남파(南坡) 이탁헌(李鐸憲, 1842~1914)이 1885년(고종22)에 건립한 정자로, 전라남도 나주시 다시면 영동리 초동마을 815번지에 있다.
263) 나소백(羅小栢) : 소백은 나영집(羅英集, 1846~1909)의 호이다.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명숙(明淑)이다. 문집으로 《소백유고》가 있다.
264) 양웅(揚雄) : 서한(西漢) 말기의 문장가이자 유학자이다. 그가 지은 《태현경(太玄經)》은 《주역》을 본떠 만든 책이다.
265) 난석(蘭石) 박 승지(朴承旨) : 박창수(朴昌壽, 1817~1897)로, 난석은 그의 호이다.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단숙(丹叔)이다. 사간원 정언ㆍ홍문관 부수찬ㆍ승정원 동부승지ㆍ병조 참의 등을 역임하였으며, 문집으로 《난석집》이 있다.
266) 해외에서……기대했으나 : 장수하기를 기원했다는 말이다. 옛날 노인 세 사람이 만나서 서로 나이를 물어보니, 한 사람이 대답하기를 “바닷물이 말라서 뽕나무 밭이 될 때마다 내가 산가지 하나를 내려놓는데, 그동안 나의 산가지가 이미 열 칸의 집에 가득 찼소.[海水變桑田時, 吾輒下一籌, 邇來吾籌, 已滿十間屋.]”라고 했다는 ‘해옥첨주(海屋添籌)’를 변용한 표현이다. 《東坡全集 卷102 志林 三老語》
267) 서울에서 근왕(勤王)하니 : 1896년 고종과 세자가 거처를 러시아제국 공사관으로 옮겼을 때, 왕을 위문하기 위해 서울로 갔던 일을 말한다. ‘근왕’은 왕사(王事)에 진력한다는 뜻으로, 대체로 의병을 일으켜 왕실을 구원하는 것을 가리킨다.
268) 회옹(晦翁)의 와룡암(臥龍菴) 시 : 《회암집(晦庵集)》 권7 〈와룡암무후사(臥龍菴武侯祠)〉 시를 말한다. 주희(朱熹)는 지남강군(知南康軍)으로 재임하던 1179년에 여산(廬山)의 와룡담(臥龍潭) 부근에 와룡암을 지어 삼국 시대 촉한(蜀漢)의 재상이었던 제갈량(諸葛亮)을 향사하였다.
269) 무후(武侯) : 촉한(蜀漢)의 승상(丞相) 제갈량(諸葛亮)의 봉호이다.
270) 광려산(匡廬山) : 강서성(江西省)의 여산(廬山)을 가리킨다. 은(殷)ㆍ주(周) 때에 광씨(匡氏) 7형제가 이곳에 초막을 짓고 은거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
271) 양보음(梁甫吟) : 제갈량(諸葛亮)이 출사하기 전 남양(南陽)에서 농사를 지을 때 매일 새벽과 저녁에 무릎을 감싸 안은 채 길게 불렀던 노래로, 천하에 뜻을 품은 선비가 우울한 심정을 토로함을 의미한다.
272) 사령(四靈) : 태평성대에 나타나는 기린(麒麟)ㆍ봉황(鳳凰)ㆍ거북[龜]ㆍ용(龍) 등 네 가지 상서로운 동물을 말한다. 《禮記 禮運》
273) 구주(九疇) : 기자(箕子)가 주(周)나라 무왕(武王)의 물음에 응답한 천하를 다스리는 9가지 대법으로, 오행(五行)ㆍ오사(五事)ㆍ팔정(八政)ㆍ오기(五紀)ㆍ황극(皇極)ㆍ삼덕(三德)ㆍ계의(稽疑)ㆍ서징(庶徵)ㆍ오복(五福)을 말한다. 《書經 洪範》
274) 오랑캐 : 원문의 ‘전구(氈裘)’는 북방의 유목민들이 입는 털가죽으로 만든 옷인데, 전하여 오랑캐를 뜻하는 말로 쓰인다.
275) 노치운(盧致雲)이……원풍정(願豊亭) : ‘치운’은 노종룡(盧鍾龍, 1856~1940)의 자이다. 본관은 광산(光山), 호는 소해(蘇海)ㆍ농아(聾啞)이다. 문집으로 《소해유고》가 있다. ‘농암(聾巖)’은 노종룡의 부친 노재규(盧在奎, 1836~1920)의 호이다.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화서(和瑞)이다. 최익현(崔益鉉)ㆍ송병선(宋秉璿)ㆍ송병순(宋秉珣)ㆍ기우만(奇宇萬) 등과 도의로써 교유하였으며, 시국이 어지러운 때를 당하여 두문불출하였다. 문집으로 《농암유고》가 있다. ‘원풍정’은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에 있는 정자로, 노재규가 1913년에 중건한 것이다. 정자의 명칭은 주자(朱子)가 나라를 걱정하며 항상 풍년이 들기를 기원했던 ‘우국원풍(憂國願豊)’의 의미를 담고 있다.
276) 작설(綽楔) : 문 위에 세워 정표(旌表)하는 뜻을 나타내는 나무로, 정문(旌門)을 뜻한다.
277) 사양(師襄) : 춘추 시대 노(魯)나라의 악관(樂官)이었던 양자(襄子)를 말하는데, 주나라가 쇠퇴하여 음악이 폐해지고 노나라도 극도로 쇠퇴하여 모든 악사들이 사방으로 흩어질 때 바다로 들어갔다고 한다. 《論語 微子》
278) 노생(魯生) : 전국 시대(戰國時代) 제(齊)나라의 고사(高士) 노중련(魯仲連)을 말한다. 그는 진왕(秦王)이 황제가 되어 천하에 정사를 편다면 자신은 차라리 동해(東海)에 빠져 죽겠다고 하였다. 《史記 魯仲連列傳》
279) 유춘백(柳春伯) : 춘백은 유인석(柳寅奭, 1859~1931)의 자이다. 본관은 문화(文化), 호는 수당(睡堂)이다. 대곡(大谷) 김석귀(金錫龜, 1835∼1885)와 면암 최익현의 문인이다. 문집으로 《수당유고》가 있다.
280) 수향(睡鄕) : 사람이 잠이 들어있는 동안 그 정신이 가 있는 곳으로, 곧 꿈나라를 이른다.
281) 과축(薖軸) : 현인이 은거하는 곳으로, 《시경》 〈고반(考槃)〉에 “고반이 언덕에 있으니, 석인의 마음이 넉넉하도다.……고반이 높은 언덕에 있으니, 석인이 한가로이 서성이도다.[考槃在阿, 碩人之薖.……考槃在陸, 碩人之軸.]”라고 한 데에서 나온 말이다.
282) 경륜하여 어려움 구제하길 : 《주역》 〈둔괘(屯卦) 상(象)〉에 대한 정이(程頤)의 전(傳)에 “군자가 둔의 상을 보고서 천하의 일을 경륜하여 어려움을 구제한다.[君子觀屯之象, 經綸天下之事, 以濟於屯難.]”라고 한 것을 인용한 표현이다.
283) 장생(莊生)의 나비 : 장생은 춘추전국 시대의 사상가인 장주(莊周)를 말한다. 옛날에 장주가 꿈속에서 나비가 되었는데, 자신이 장주인 줄도 알지 못하다가 얼마 뒤에 깨어나니 바로 장주였다. 이에 장주가 꿈에서 나비가 된 것인지 나비가 꿈에서 장주가 된 것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고 한다. 《莊子 齊物論》
284) 도령(陶令) : 진(晉)나라의 은자로서 팽택 영(彭澤令)을 지냈던 도잠(陶潛)을 가리킨다. 그는 술을 매우 즐긴 나머지, 항상 갈건(葛巾)을 쓰고 다니다가 집에 빚은 술이 익으면 그 즉시 갈건을 벗어서 술을 걸러 마시곤 하였다. 《宋書 隱逸列傳 陶潛》
285) 최성기(崔聖器) : 성기는 최윤호(崔潤瑚, 1845~1912)의 자이다. 본관은 수원(水原), 호는 수우(守愚)로, 저자의 고종형이다.
286) 계서(雞黍) : 닭과 기장밥으로, 손님을 대접하는 음식을 뜻한다. 《논어》 〈미자(微子)〉에, 하조장인(荷蓧丈人)이 공자의 제자 자로(子路)를 만류하여 묵게 하면서 “닭을 잡고 기장밥을 지어 대접하였다.[殺鷄爲黍而食之]”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287) 무이옹(武夷翁) : 무이정사(武夷精舍)를 짓고 문인들과 강학(講學)을 하였던 주희(朱熹)를 말한다.
288) 호산정(湖山亭) : 전라남도 함평군 월야면 외치리 백야마을에 있는 정자로, 정경득(鄭慶得, 1569~1630)이 건립하였다. 정경득의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자하(子賀), 호는 호산(湖山)이다. 1597년(선조30) 정유재란 때 가족과 함께 피난 중에 칠산(七山) 바다에 이르러 왜적(倭賊)을 만나자, 어머니 이씨(李氏)ㆍ아내 박씨(朴氏)ㆍ제수(弟嫂) 이씨(李氏)ㆍ여동생 등이 모두 절의를 지켜 물에 빠져 죽고, 동생 정희득(鄭希得)과 족질(族姪) 정호인(鄭好仁)ㆍ정호례(鄭好禮)와 함께 일본으로 잡혀갔다가, 몇 년 후에 조선으로 송환되었다. 저서 《호산공만사록(湖山公萬死錄)》은 1597년 8월부터 1599년 7월까지 일본에서 생활했던 내용을 일기체로 서술한 풍토기(風土記)이다.
289) 기성(箕城) : 전라남도 함평의 별호이다.
290) 초(楚)나라 죄수 :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성공(成公) 9년 조에, 진(晉)나라 경공(景公)이 군부(軍府)를 시찰하다가 종의(鍾儀)를 보고서 좌우에게 “남방의 관(冠)을 쓰고 구속되어 있는 자가 누구냐?” 하고 묻자, 좌우가 “정인이 바친 초나라 죄수입니다.[鄭人所獻楚囚也.]” 하였다고 한 데서 온 말로, 곤경에 처해 계책을 모색할 방도가 없는 사람을 가리킨다.
291) 한(漢)나라 부절(符節) : 한나라 무제(武帝) 때 흉노에 사신으로 갔다가 억류된 소무(蘇武)가 잡고 있었던 부절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정경득 형제의 지조를 의미한다. 소무는 흉노 선우(單于)에게 억류되어 끈질기게 투항할 것을 강요받았는데, 끝까지 거부하고 북해(北海)가로 쫓겨나 19년 동안 한나라의 부절을 몸에 지닌 채 양을 치며 힘들게 버티다가, 소제(昭帝) 때 비로소 한나라로 귀환하였다. 《漢書 李廣蘇建傳》
292) 어머니를……의론 : 정인홍, 이이첨 등에 의해 일어난 인목대비(仁穆大妃) 폐모론(廢母論)을 가리킨다.
293) 공의 유적(遺蹟)을 간행한다 : 《호산공만사록(湖山公萬死錄)》을 발간하는 일을 말한다. 이것은 정유재란 당시 일본에 포로로 잡혀갔던 정경득(鄭慶得)이 겪은 옥중 생활과 귀환 과정을 기록한 책으로, 정경득이 쓴 원본을 그의 후손 정학규(鄭學奎)가 1904년 목활자본으로 간행하였다.
294) 정영위(丁令威) : 한(漢)나라 때 요동(遼東) 사람이다. 그는 도를 닦아 신선이 되었는데, 천 년 뒤에 학으로 변하여 요동에 돌아와서 화표주(華表柱) 위에 앉아 시를 지었다는 고사가 있다. 《搜神後記》
295) 취가정(醉歌亭) :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에 있는 정자로, 임진왜란 때 억울하게 죽은 충장공(忠壯公) 김덕령(金德齡, 1567~1596) 장군의 혼을 달래고 그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1890년(고종27) 후손들이 건립하였다. 6.25 전쟁으로 불에 타 없어졌으나 1955년 중건(重建)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296) 자개무늬 비단 이루었나 : 원문의 ‘성패금(成貝錦)’으로, 남을 교묘하게 중상하여 참소(讒訴)하는 일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1596년 신경행(辛景行)과 한현(韓絢)이 이몽학의 역적모의에 김덕령이 가담하였다고 무함한 것을 가리킨다. 김덕령은 그 때문에 체포되어 30세의 젊은 나이로 혹독한 고문을 받고 옥사(獄死)하였다.
297) 취시가(醉時歌) : 김덕령 장군이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죽은 후, 그의 넋이 시인 권필(權韠)의 꿈에 나타나 부른 노래로, 전문은 다음과 같다. “취할 때 부르는 노래여, 이 곡조 듣는 사람 없네. 나는 꽃과 달에 취함도 바라지 않고, 나는 공훈을 세움도 바라지 않네. 공훈을 세우는 것도 뜬구름이요, 화월에 취하는 것도 뜬구름이네. 취할 때 부르는 노래여, 이 곡조 아는 사람 없네. 내 마음은 장검으로 명군을 받들길 바랄 뿐이네.”
298) 무목(武穆)보다……의로웠네 : ‘무목’은 송나라의 명장 악비(岳飛)의 시호인데, 그는 금(金)과 맞서 싸워 전공을 세운 주전파(主戰派)로서 중원을 공격하여 회복할 뜻을 가졌으나 화의를 주장하는 진회(秦檜)의 모함으로 억울하게 옥에 갇혀 죽었다. 《宋史 岳飛列傳》 ‘수양(睢陽)’은 안녹산의 난리 때 수양성(睢陽城)을 지키면서 적과 싸우다가 성이 함락되자 장렬하게 절사(節死)하였던 장순(張巡)을 말한다. 《舊唐書 卷187 張巡列傳》
299) 민공(閔公) : 나주 목사 민종렬(閔種烈, 1831~1899)을 말한다.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무경(懋卿), 호는 지담(芝潭)이다. 나주 목사 재임 때 호남소모사, 호남초토사를 겸임하면서 전봉준 동학농민혁명군의 나주읍성 공격을 막아냈다.
300) 변 선생(卞先生)의 호암초당(壺巖草堂) :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아산면 반암리에 있는 암굴식 정자이다. 원래 이름은 두암초당(斗巖草堂)이며,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인 호암(壺巖) 변성온(卞成溫, 1530~1614)과 그의 동생 인천(仁川) 변성진(卞成振, 1549~1623) 형제가 만년을 보내며 학문을 닦던 곳이다.
301) 방호산(方壺山) : 신선이 살고 있다는 삼신산(三神山)의 하나인 방장산(方丈山)의 별칭이다.
302) 동원공(東園公) : 진(秦)나라의 폭정을 피해 상산(商山)에 숨어 살았다고 전해지는 네 명의 은자(隱者) 중의 한 사람이다. 성은 유(庾)이고, 자(字)는 선명(宣明)이며, 정원[園] 속에 살았기 때문에 이를 호(號)로 삼았다.
303) 동백정(冬柏亭) : 전라남도 장흥군 장동면 만년리 장항마을에 있는 정자이다. 1458년(세조4) 동촌(桐村) 김린(金麟, 1392~1474)이 관직에서 은퇴한 뒤에 은거하기 위해 가정사(假亭舍)를 지었는데, 1584년(선조17) 후손 김성장(金成章)이 중건할 때, 김린이 심어 놓았던 동백나무가 울창하여 정자의 이름을 ‘동백정’으로 고쳤다고 한다.
304) 호기(皓綺) : 진(秦)나라 말기에 어지러운 세상을 피하여 상산(商山)에 숨어 살았던 상산사호(商山四皓) 중의 한 사람인 기리계(綺里季)를 말한다.
305) 정관일(鄭貫一) : 관일은 정도원(鄭道源, 1841~1899)의 자이다. 본관은 진주(晉州), 호는 서암(西巖)이다. 전라남도 함평군 월악(月岳) 출신으로, 전재(全齋) 임헌회(任憲晦, 1811~1876)와 노사 기정진의 문인이다.
306) 보내나무 : 원문의 ‘보수(寶樹)’로, 훌륭하고 준수한 자제를 예찬하는 말이다. 진(晉)나라 사안(謝安)의 물음에 자제들이 아무도 대답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조카 사현(謝玄)이 “비유하자면 지란과 옥수가 정원에서 자라나게 하고 싶습니다.[譬如芝蘭玉樹, 欲使其生於庭階耳.]”라고 한 데서 유래한 말이다. 《晉書 卷79 謝安列傳 謝玄》
307) 눈 속에 섰는데 : 정성을 다하여 스승을 모시는 것을 표현한 말로, 송(宋)나라 양시(楊時)와 유초(游酢)가 배움을 청하러 정이(程頤)를 찾아갔을 때, 마침 정이가 문밖에 눈이 한 자나 쌓일 동안 눈을 감은 채 앉아 있었으나 감히 떠나가지 못하고 시립(侍立)해 있었다고 하는 고사에서 나왔다.
308) 곡구옹(谷口翁) : 한(漢)나라 때의 은사(隱士)인 정박(鄭樸)을 말한다. 정박은 성제(成帝) 때 대장군 왕봉(王鳳)의 초빙에도 응하지 않은 채 곡구에 집을 짓고 살면서 ‘곡구자진(谷口子眞)’이라고 호를 지은 뒤 수묵(守默)하며 수도(修道)하였다. 정자진(鄭子眞)으로 널리 알려졌다. 《高士傳 卷中 鄭樸》
309) 백화정(百花亭) : 전라남도 함평군 월야면 외치리에 있는 정자로, 정도원의 5대조 정휴동(鄭休東, 1700~1770)이 건립한 것이다. 《송사집(松沙集)》 〈서암정공행장(西巖鄭公行狀)〉에 의하면, 정도원은 중년부터 백화정에 거주하면서 경전과 역사책을 혼자 즐기고 학생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310) 해가(薤歌) : 해로가(薤露歌)의 준말로,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는 만가(輓歌)이다. 상여가 나갈 때 부르는 노래인데, 〈해로가〉의 1장(章)이 “염교 위 아침 이슬은 어찌 그리 빨리 마르는가.[薤上朝露何易晞]”로 시작하기 때문에 이런 명칭이 붙게 되었다.
311) 최면암(崔勉菴) : 면암은 최익현(崔益鉉, 1833~1906)의 호이다.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찬겸(贊謙)이다. 화서(華西) 이항로(李恒老)의 문인이며, 사헌부 지평ㆍ사간원 정언ㆍ신창 현감(新昌縣監) 등의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의병을 일으켰다가 붙잡혀 끌려가 대마도에서 순국하였다. 문집으로 《면암집》이 있다.
312) 동강(東岡) : 벼슬에 나가지 않고 물러나 있는 곳을 말한다. 《후한서(後漢書)》 〈주섭열전(周燮列傳)〉에 “선대로부터 훈총이 계속 이어져 왔는데 그대만 어찌 유독 동강의 비탈을 지키는가.[自先世以來, 勳寵相承, 君獨何爲守東岡之陂乎?]”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313) 닭은……울며 : 혼란한 세상에서 평소의 소신을 바꾸지 않고 올곧은 말과 행동으로 일관하는 것을 말한다. 《시경》 〈풍우(風雨)〉에 “비바람이 을씨년스러운데 닭이 꼬꼬댁 울도다.[風雨淒淒,雞鳴喈喈.]”라고 한 것을 차용한 표현이다.
314) 송연재(宋淵齋) : 연재는 송병선(宋秉璿, 1836~1905)의 호이다.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화옥(華玉),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학행으로 천거를 받아 성균관 좨주(成均館祭酒)에 기용된 뒤, 경연관 대사헌을 역임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된 후 망국의 울분을 참지 못하고 음독 자결하였다. 문집으로 《연재집》이 있다.
315) 퇴파(頹波)의 지주(砥柱) : 난세에 지조를 지키는 선비의 비유로 쓰인다. ‘퇴파’는 거세게 흘러내려 가는 물살로 무너져 가는 세상의 풍속을 비유하며, ‘지주’는 황하의 중류에 있는 바위산으로 황하의 물결이 아무리 거세게 흘러도 이 산을 무너뜨리지 못하고 이 지점에 와서 갈라져 산을 감싸고 흐른다. 《文選 卷19 高唐賦》
316) 하학(下學) : 일상의 구체적인 일들에서부터 배워 가는 것을 말한다.
317) 지란(芝蘭) : 지란옥수(芝蘭玉樹)의 준말로, 남의 집안의 훌륭한 자제(子弟)를 예찬하는 말이다. 진(晉)나라 사현(謝玄)이 숙부인 사안(謝安)에게 “지란옥수가 섬돌에 피어나 향기를 내뿜게 하는 것처럼 하고 싶다.[如芝蘭玉樹欲使其生於庭階耳]”라고 소망을 밝힌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晉書 謝安列傳》
318) 소거(素車) : 상사(喪事)에 사용하는 백토를 칠한 흰 수레이다. 후한의 범식(范式)이 벗 장소(張邵)가 죽은 뒤 꿈속에 나타나 자신의 죽음을 알리자, 백마가 끄는 흰 수레를 몰고 호곡하러 갔다고 한다. 《後漢書 范式傳》
319) 나 진사(羅進士) : 나원석(羅元錫, 1808~1877)으로, 본관은 금성(錦城), 초명은 원욱(元郁), 자(字)는 경오(景五), 호는 송석헌(松石軒)이다. 1866년 병인양요 때 의병을 일으켜 진군하다가 서양 오랑캐가 물러났다는 소식을 듣고 돌아왔다. 《錦城羅氏大同譜》
320) 강화도의 변 : 1866년(고종3) 9월에 발생한 병인양요(丙寅洋擾)를 말한다. 이는 프랑스가 흥선대원군의 천주교 탄압을 구실로 조선의 문호를 개방시키고자 한강 연안과 강화도를 침범한 사건이다. 원문의 ‘심도(沁都)’는 강화도의 옛 이름이다.
321) 완산부(完山府) : 완산은 전주(全州)의 옛 이름이다.
322) 접역(鰈域) : 가자미가 많이 나는 지역이라는 뜻으로, 우리나라를 지칭하던 말이다.
323) 형산(荊山)의 옥 : 춘추 시대 초(楚)나라 변화(卞和)란 사람이 형산에서 얻었다는 직경이 한 자나 되는 좋은 옥으로, 화씨벽(和氏璧)이라고도 일컫는다.
324) 풍패(豐沛) : 한(漢)나라 패현(沛縣) 풍읍(豐邑)인데, 한 고조(漢高祖)의 고향이므로 제왕의 고향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여기서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李成桂)의 관향(貫鄕)이 전주이므로, 전주를 가리킨다.
325) 심후(沈侯) : 시호가 은후(隱侯)인 양(梁)나라 심약(沈約)을 말한다. 그는 〈별범안성(別范安成)〉이라는 시에서, “우리네 인생살이 젊을 적에는, 헤어져도 만날 기약하기 쉬웠지. 이제 그대와 함께 노쇠해 가니, 다시는 이별할 때가 아니로세. 한 잔 술 별거냐고 말하지 마소, 내일 다시 이 술잔 잡기 어렵네. 꿈속에 찾아갈 길 알지 못하니, 무슨 수로 그리움을 달래보나.[生平少年日, 分手易前期. 及爾同衰暮, 非復別離時. 勿言一尊酒, 明日難重持. 夢中不識路, 何以慰相思?]” 하였다. 《古今詩刪 卷9 梁詩》
326) 평수(萍水) : 부평초(浮萍草)가 물을 따라 정처 없이 떠다니다가 아무런 기약도 없이 모이고 흩어진다는 말로, 사람이 객지에서 뜻밖에 서로 만나는 것을 비유한다.
327) 어려운 때 : 원문의 ‘운뢰(雲雷)’는 구름과 우레가 합쳐진 괘인 둔(屯)을 가리키는 말로, 세상이 고난 속에 빠져서 형통하지 못한 때를 상징한다. 《주역》 〈둔괘(屯卦) 상전(象傳)〉에 “구름과 우레가 둔이니, 군자가 보고서 경륜한다.[雲雷屯, 君子以, 經綸.]”라고 하였다.
328) 세상을 버린 군평(君平) : 군평은 한(漢)나라 엄준(嚴遵)의 자로, 성도(成都)의 시장에서 점을 치던 사람인데, 매일 점을 쳐서 하루 먹을 만큼만 벌면 즉시 문을 닫고 들어앉아서 《노자(老子)》를 읽거나 저술하였으며, 관원들과는 교제하지 않았고 종신토록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이백(李白)의 〈고풍(古風)〉 시에 “군평이 세상을 버리자, 세상도 군평을 버렸다네.[君平旣棄世, 世亦棄君平.]”라고 하였다.
329) 병이 많은 자래(子來) : ‘자래’는 주로 《장자(莊子)》 〈대종사(大宗師)〉에 등장하는 인물로, 자사(子祀)ㆍ자여(子輿)ㆍ자리(子犁)와 함께 ‘사우(四友)’ 중 한 명이다. 《장자》 〈대종사〉에 “자래가 병이 나서 숨을 몰아쉬며 죽으려고 하니, 그의 처자식들이 그를 둘러싸고 울고 있었다. 자리가 위문하러 가서 말하기를 ‘저리 비키시오. 변화를 슬퍼할 것은 없소.[叱避, 無怛化.]’ 하였다.”라고 하였는데,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자연의 변화에 따른 것이므로 슬퍼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330) 황금대(黃金臺) : 원문의 ‘축금대(築金臺)’로, 황금을 쌓아 둔 누대라는 뜻이다. 이는 전국 시대 연(燕)나라 소왕(昭王)이 천하의 현사들을 초빙하기 위하여 역수(易水) 동남쪽에 세운 것이다. 《戰國策 燕策1》
331) 염매(鹽梅) : 음식을 조리할 때 조미를 위해 필요한 소금과 매실로, 임금을 보좌하여 훌륭한 정사를 펴는 재상을 비유하는 말이다. 은 고종(殷高宗)이 부열(傅說)에게, “내가 국을 조리하려 하거든 그대가 소금과 매실이 되어 달라.[若作和羹, 爾惟鹽梅.]”라고 한 데에서 유래하였다. 《書經 說命下》
332) 무부(珷玞) : 옥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옥이 아닌 돌로, 보기에는 그럴싸하지만 아무런 가치가 없는 물건을 비유하는 말이다.
333) 삼가……차운하다 : 오계수(吳繼洙)의 문집 《난와유고(難窩遺稿)》 권1에 실린 〈경차족선조장계공명옥헌잡영(敬次族先祖藏溪公鳴玉軒雜咏)〉으로 보아 장계(藏溪) 오이정(吳以井, 1619~1655)의 시에 차운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명옥헌(鳴玉軒)은 명곡(明谷) 오희도(吳希道, 1583∼1623)가 은거했던 망재(忘齋) 인근에 그의 넷째아들 오이정이 조성한 원림(園林)으로, 전라남도 담양군 고서면에 있다. 정자 뒤에 있는 샘물이 울타리를 따라 졸졸 흐르는 소리가 마치 옥구슬이 부딪히고 흩어지는 소리와 같다고 하여 명옥헌(鳴玉軒)이라 명명하였다.
334) 표봉(瓢峯) : 명옥헌 원림의 뒤편에 솟아 있는 호봉산(瓠峯山)을 말한다. 김만영(金萬英)의 문집 《남포집(南圃集)》 권4 〈제명옥헌(題鳴玉軒)〉에는 포석봉(匏石峯), 오계수의 문집 《난와유고(難窩遺稿)》에는 포봉(匏峯)으로 기록되어 있다.
335) 벽라의(碧蘿衣) : 칡덩굴로 만든 옷인데, 산에 숨어 사는 처사(處士)들의 옷을 말한다.
336) 유수곡(流水曲) : 춘추 시대 백아(伯牙)가 타고 그의 벗 종자기(鍾子期)가 들었다는 거문고 곡조로, 〈고산유수곡(高山流水曲)〉 또는 〈아양곡(峨洋曲)〉이라고도 한다.
337) 상걸(霜傑) : ‘서리 아래 호걸[霜下傑]’이라는 의미로, 국화를 가리킨다.
338) 차군(此君) : 대나무의 별칭으로, 동진(東晉)의 왕휘지(王徽之)가 대나무를 무척이나 좋아하여 “어찌 이 사람이 없이 하루인들 살 수 있겠나.[何可一日無此君]”라고 말한 데에서 유래하였다.
339) 구동(龜洞) : 현재 충청남도 청양군 목면 송암리의 장구동(藏龜洞)으로, 면암 최익현이 1900년 경기도 포천에서 이곳으로 이사하였다. 사랑채는 구동정사(龜洞精舍) 또는 중화당(中和堂)이라 하였다.
340) 최운재(崔雲齋) : 운재는 최영조(崔永祚, 1859~1927)의 호이다.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석윤(錫胤)이다.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의 맏아들이며, 문집으로 《운재집》이 있다.
341) 서쪽……함께하고 : 저자와 최영조가 산수가 빼어난 곳에서 은둔하고 있다는 점에서 취향이 같다는 말로, 송(宋)나라 구양수(歐陽脩)가 자신과 동년(同年) 진사(進士)인 서간(西澗) 유환(劉渙)이 여산(廬山)에 숨어 사는 것을 찬탄하며 지은 〈여산고(廬山高)〉 시에 “스스로 푸른 구름과 흰 돌에 깊은 취미가 있지 않다면, 그 뜻의 불평함이 어떻게 가라앉았겠나?[自非靑雲白石有深趣, 其意矹硉何由降?]”라고 한 구절을 변용한 표현이다.
342) 북창(北窓)……누웠네 : 아무런 근심 걱정도 없이 전원생활을 하고 있다는 말로, 진(晉)나라 시인 도잠(陶潛)의 〈여자엄등소(與子儼等疏)〉에 “오뉴월 여름철에 북창 아래에 누워 있다가 서늘한 바람이 잠깐 불어오면 스스로 복희씨 시대의 사람이라고 여기곤 했다.[五六月中, 北窓下臥, 遇涼風暫至, 自謂是羲皇上人.]”라는 구절을 변용한 것이다. 원문의 ‘갈회(葛懷)’는 전설상 상고 시대의 제왕인 갈천씨(葛天氏)와 무회씨(無懷氏)의 병칭(竝稱)이다. 그들은 아주 이상적으로 세상을 잘 다스려서 천하가 태평했다고 하는데, 도잠의 〈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에 “술을 실컷 마시고 시를 지어서 자신의 뜻을 즐기니, 무회씨의 백성인가, 갈천씨의 백성인가?[酣觴賦詩, 以樂其志, 無懷氏之民歟? 葛天氏之民歟?]”라고 하였다.
343) 온갖……하네 : 송(宋)나라 학자 정이(程頤)의 “만물은 각각 하나의 이를 갖추고 있고, 만리는 똑같이 하나의 근원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유추하여 통하지 못할 것이 없는 것이다.[萬物各具一理, 萬理同出一原, 所以可推而無不通也.]”라는 말을 변용한 표현이다. 《性理大全 卷34》
344) 김 상사(金上舍) : 김영철(金榮喆, 1842~1911)을 말한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성규(聖圭), 호는 만수(晩睡)이다. 문집에 《만수유고》가 있다.
345) 가래나무 : 대대로 조상이 살았던 고향을 뜻하는데, 《시경》 〈소반(小弁)〉의 “뽕나무와 가래나무도 반드시 공경하니, 우러러볼 것은 아버지 아님이 없으며 의지할 것은 어머니 아님이 없도다.[維桑與梓, 必恭敬止, 靡瞻匪父, 靡依匪母.]”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346) 운림(雲林) : 구름이 끼어 있는 숲으로, 보통 처사(處士)가 은둔하고 있는 곳을 말한다.
347) 계술(繼述) : 선조(先祖)나 선사(先師)의 뜻과 일을 잘 따르고 계승하는 것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김영철의 손자 김재종(金在鍾)이 조부의 뜻을 받들어 만수당을 지은 일을 말한다.
348) 녹발(綠髮) : 검고 윤기 나는 머리를 말한다. 이백(李白)의 〈유태산(遊泰山)〉 시에 “우연히 선동(仙童)을 만났는데, 두 귀밑 검은 머리를 틀어 올렸네.[偶然値靑童, 綠髮雙雲鬟.]”라고 하였다. 《李太白集 卷19》
349) 기운양(奇雲陽) : 운양은 기동관(奇東觀, 1860~1902)의 호이다. 본관은 행주(幸州), 자는 국빈(國賓)이다. 1896년 장성에서 기우만(奇宇萬)이 주도한 장성의병에 참여하여 고광순, 기삼연 등과 함께 활약하였다.
350) 부모상 : 원문의 ‘자참(齊斬)’은 상복(喪服)의 자최(齊衰)와 참최(斬衰)를 말한다. 참최는 아랫단을 접어서 꿰매지 않은 것으로 아버지의 상에만 입는다. 자최는 거친 베로 짓되 아랫단을 좁게 접어 꿰맨 것으로 어머니는 3년, 조부모는 1년, 증조부모는 5개월, 고조부모는 3개월을 입는다.
351) 금슬(琴瑟)로 친애한 인연 : 부부 간의 인연을 말한다. ‘금슬’은 부부 또는 부부 관계가 화락한 것을 비유한다. 《시경》 〈관저(關雎)〉에 “요조한 숙녀를 거문고와 비파로 친애하도다.[窈窕淑女, 琴瑟友之.]”라고 하였다.
352) 갑자기 세상 떠나니 : 원문의 ‘조로합(朝露溘)’은 ‘합선조로(溘先朝露)’의 변용으로, 아침 이슬보다도 빠르게 사라진다는 의미이다.
353) 야대(夜臺) : 장야대(長夜臺)의 준말로, 묘소를 가리킨다. 한번 문이 닫히면 영원히 암흑 속에서 광명을 볼 수 없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354) 정삽(旌翣) : 명정(銘旌)과 삽선(翣扇)을 말한다. ‘명정’은 붉은 비단에 망자의 관직과 성씨를 쓴 깃발로, 장례 때에 상여 앞에 세워 길을 인도하고 하관(下棺) 후에는 관 위에 씌워 묻는다. ‘삽선’은 발인(發靷)할 때 사용하는 부채 모양의 상구(喪具)로, 상여가 나갈 때에는 상여를 가리고 하관 후에는 영구를 명정과 삽선으로 덮고 광중(壙中)에 묻는다.
355) 나귀 울음소리 내며 : 장례식에 참석해서 영결(永訣)하며 애도하는 것을 말한다. 한말(漢末) 건안칠자(建安七子)의 하나인 왕찬(王粲)이 죽어서 장사 지낼 적에, 위 문제(魏文帝) 조비(曹丕)가 조문객들을 돌아보며 “그가 나귀 울음소리를 좋아했으니, 각자 한 번씩 울음소리를 내어서 그를 보내 주자.”라고 하자, 모두 한 번씩 나귀 울음을 울었다는 여명일성(驢鳴一聲)의 고사가 전한다. 《世說新語 傷逝》
356) 꽃잎……가련했으나 : 간신의 모함을 받고 쫓겨나 강호를 떠돌던 초(楚)나라 굴원(屈原)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그의 《초사(楚辭)》 〈이소〉에 “아침엔 목란의 떨어진 이슬을 마시고, 저녁엔 가을 국화의 떨어진 꽃잎을 먹노라.[朝飮木蘭之墜露兮, 夕餐秋菊之落英.]” 하였고, 〈어부사(漁父辭)〉에 “강담에서 노닐고 택반에서 읊조릴 적에, 안색은 초췌하고 용모는 마른 나뭇가지 같았다.[遊於江潭, 行吟澤畔, 顔色憔悴, 形容枯槁.]”라고 하였다.
357) 이슬……만족했네 : 벼슬을 버리고 전원에 은거한 도잠(陶潛)의 생활을 표현한 것이다. 그의 〈음주(飮酒)〉 시에 “가을 국화는 빛깔도 좋으니, 이슬 머금은 그 꽃을 따다가, 이 시름 잊게 하는 술에 띄워서, 내 세상 잊은 정을 더 멀리하련다.[秋菊有佳色, 裛露掇其英, 汎此忘憂物, 遠我遺世情.]” 하였고, 《자제문(自祭文)》에 “수명은 백세에 이르고 몸은 여유로운 은둔을 동경했네.[壽涉百齡, 身慕肥遯.]”라고 하였다. 원문의 ‘담비(淡肥)’는 담박하고 여유로운 은둔생활을 말한다. 《주역》 〈돈괘(遯卦) 상구(上九)〉에 “여유로운 은둔이니 이롭지 않음이 없다.[肥遯, 无不利.]” 하였다.
358) 관찰사(觀察使) 이공(李公) : 이근호(李根澔, 1861~1923)를 가리킨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문옥(文玉), 호는 송은(松隱)ㆍ규제(奎齊)이다.
359) 주선하고……수작(酬酌)하네 : 향음주례에서 손님과 주인이 자리에 오르는 것과 술을 주고받는 과정을 말한 것이다. 《예기》 〈향음주의(鄕飮酒義)〉에 “공자께서 ‘내 향음주례를 보고 왕도가 행하기 쉽고도 쉬움을 알았다.’ 주인이 친히 빈과 개를 초청하면 중빈이 그를 따라 문밖에 이르고, 주인이 빈과 개에게 절하면 중빈이 모두 들어오게 되므로 귀천의 도리가 분별되는 것이다. 주인이 세 번 읍하고 계단에 이르면 주빈이 세 번 사양하고 당에 오른다. 주빈이 이르기를 기다려 절하고 헌수하니, 사양하는 절차가 번성하도다.[孔子曰:‘吾觀於鄕, 而知王道之易易也.’ 主人親速賓及介, 而衆賓自從之, 至于門外, 主人拜賓及介, 而衆賓自入, 貴賤之義別矣. 三揖至于階, 三讓以賓升. 拜至獻酬, 辭讓之節繁.]” 하였다.
360) 지주(砥柱) : 황하의 급류 속에 우뚝 서 있다는 지주산(砥柱山)을 말하는데, 혼탁한 세속에 휩쓸림 없이 자신의 절조를 꿋꿋이 지키는 선비를 비유한다.
361) 미약한……움직이네 : 음기(陰氣)가 극에 달한 순음(純陰)의 10월을 지나 11월 동지(冬至)가 되면 하나의 양기(陽氣)가 처음으로 생겨난다는 것으로, 암울한 시대 속에서 희망의 씨앗이 싹튼다는 말이다.
362) 익재(益齋)……진정자찬시(眞幀自贊詩) : 《익재난고(益齋亂稿)》 권4 〈연우 기미년(1319)에 내가 충선왕이 강남의 보타굴에 향을 내린 데에 따라갔을 적에, 왕이 고항 출신의 오수산을 불러 나의 초상을 그리게 하였고 북촌 탕 선생이 거기에 찬을 지었는데, 북으로 돌아와서 어떤 사람에게 빌려 주었다가 어디 있는지를 모르게 되었다. 그리고 32년 뒤에 내가 나라의 표문(表文)을 받들고 경사에 갔다가 그 초상을 다시 찾게 되었는데, 그동안 늙음과 젊음이 차이가 생긴 데에 놀랐고 따라서 헤어졌다 다시 만나는 것이 시기가 있음을 감탄하여 40자를 써서 기록하다[延祐己未 予從於忠宣王 降香江南之寶陁窟 王召古杭吳壽山 令寫陋容 而北村湯先生爲之贊 北歸爲人借觀 因失其所在 其後三十二年 余奉國表如京師 復得之 驚老壯之異貌 感離合之有時 題四十字爲識]〉 시를 말한다. ‘익재’는 이제현(李齊賢, 1287~1367)의 호이다.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중사(仲思), 호는 익재ㆍ역옹(櫟翁),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냈고, 충선왕(忠宣王)을 수행하여 원(元)나라에 가서 명사들과 교유하면서 외교 활동을 펼쳐 고려 왕실의 안정에 기여했다. 저서로는 《익재난고》, 《역옹패설(櫟翁稗說)》 등이 있다.
363) 정난파(鄭蘭坡) : 난파는 정석진(鄭錫珍, 1851~1896)의 호이다.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태완(台完)이다. 나주의 호장(戶長)으로, 동학 난이 일어나자 나주를 수성(守城)한 공로를 인정받아 1896년 2월 9일 해남 군수로 부임하였다. 그러나 나주 을미의병을 후원하다가 이겸제(李謙濟)가 이끄는 관군에 체포되어 3월 10일에 처형되었다. 문집으로 《난파유고(蘭坡遺稿)》가 있다.
364) 간성(干城) : 방패와 성으로, 국가를 지키는 방패가 되고 성(城)이 되는 훌륭한 장수를 뜻한다. 《시경》 〈토저(兔罝)〉에 “굳세고 굳센 무부여, 공후의 방패와 성이로다.[赳赳武夫, 公侯干城.]” 하였다.
365) 인각(麟閣) : 기린각(麒麟閣)의 준말로, 한나라 선제(宣帝) 때 곽광(霍光) 등 공신 11인의 초상화를 기린각에 걸어서 길이 기념한 고사가 있다.
366) 타루비(墮淚碑) : 진(晉)나라 양호(羊祜)가 양양(襄陽)을 다스리며 어진 정치를 베풀었으므로 그가 죽자 백성들이 사모하는 마음으로 현산(峴山)에 세운 비석인데, 사람들이 이 비석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하여 이렇게 불렀다. 《晉書 卷34 羊祜列傳》
367) 풍비(豐碑) : 공적을 기록한 거대한 석비(石碑)를 말한다.
368) 솥의 경중을 물었겠는가 : 남의 나라를 침략하여 빼앗으려는 마음을 가졌다는 말이다. 춘추 시대의 초 장왕(楚莊王)이 천하를 차지하려는 야심을 품고 천자(天子)인 주 정왕(周定王)에게 제위(帝位)의 상징이자 전국(傳國)하는 보물(寶物)이던 구정(九鼎)의 무게를 물은 고사가 있다. 《春秋左氏傳 宣公3年》
369) 불환정(不換亭) : 광주광역시 광산구 등임동 내등마을에 있는 정자로, 임덕원(林德遠, 1713~1787)이 1771년에 건립하였다. 정자의 명칭 ‘불환(不換)’은 ‘삼공의 자리도 이 강산과 바꿀 수 없다.[三公不換此江山]’라는 옛 시구를 인용해 붙인 것이다.
370) 혜강(嵇康)과 완적(阮籍) : 위말 진초(魏末晉初) 때에 노장(老壯)의 무위자연(無爲自然)을 담론하며 술로 세월을 보낸 사람들이다.
371) 구양수(歐陽脩)와 매요신(梅堯臣) : 모두 송(宋)나라 때의 저명한 문장가이다.
372) 강후(康侯)의 잣나무 : 호안국(胡安國, 1074~1138)의 꿋꿋한 지조를 표현한 말이다. ‘강후’는 호안국의 자이다. 사양좌(謝良佐)가 일찍이 주진(朱震)에게 호안국에 대해 평하면서 “호강후는 마치 한겨울 큰 눈이 내리면 온갖 풀들은 시들어 죽지만 소나무와 잣나무는 꼿꼿이 홀로 빼어난 것과 같다.[胡康侯如大冬嚴雪, 百草萎死, 而松柏挺然獨秀者也.]”라고 말한 고사가 전한다. 《伊洛淵源錄 卷13 胡文定公》
373) 소씨(邵氏)의 매화를 관찰하리라 : 관매점(觀梅占)을 쳐볼 것이라는 말이다. ‘소씨’는 송(宋)나라의 소옹(邵雍)을 말한다. 소옹이 매화를 감상하다가 이치를 터득하여 점치는 법을 창안하였는데, 이를 매화수(梅花數) 또는 관매점이라 한다. 이는 임의대로 한 글자의 획수(劃數)를 취하여 8획을 제하고 남은 수로 괘(卦)를 얻고, 또 한 글자의 획수를 취하여 6획을 제하고 남은 수로 효(爻)를 얻은 다음, 이것을 역리(易理)에 의거하여 길흉(吉凶)을 판단하는 방법이다.
374) 구양(裘羊) : 한(漢) 나라의 은사(隱士) 장후(蔣詡)와 유독 친하게 지냈던 구중(求仲)과 양중(羊仲)을 말한다. 구(求)는 구(裘)의 고자(古字)이다.
375) 말에 기댄 재주 : 말에 기대어 글을 쓰는 재주라는 뜻으로, 문장 실력이 뛰어나 글을 민첩하게 짓는 재주를 말한다. 《세설신어(世說新語)》 〈문학(文學)〉에 “환선무(桓宣武)가 북방을 정벌할 때 원호(袁虎)가 시종(侍從)하였는데, 이때 마침 격문(檄文)이 필요하여 원호를 불러다가 말에 기대어 격문을 쓰도록 하니, 원호가 손을 멈추지 않고 써 내려가 일곱 장을 썼는데 매우 볼만하였다.”라고 하였다.
376) 임금우(林錦愚) : 금우는 임상희(林相熙, 1858~1931)의 호이다. 본관은 평택(平澤), 자는 국진(國珍)이다. 1902년 학림정사(學林精舍)를 건립하여 지역 인재를 모아 강학하며 민족혼을 고취하였다. 문집으로 《금우유고(錦愚遺稿)》가 있다.
377) 임천(林泉) : 산림천석(山林泉石)의 준말로, 수목이 울창하고 샘물이 흐르는 곳이다. 세상을 버리고 은둔하기에 알맞은 곳을 비유한다.
378) 선왕(先王)의 말과 옷 : 선대의 성왕(聖王)이 제정한 예법에 합당한 말과 예법으로 규정한 복식을 말한다. 《효경(孝經)》 〈경대부장(卿大夫章)〉에 공자가 증자(曾子)에게 “선왕의 법도에 맞는 옷이 아니면 감히 입지 않으며, 선왕의 법도에 맞는 말이 아니면 감히 말하지 않으며, 선왕의 덕행이 아니면 감히 행하지 않는다.[非先王之法服, 不敢服; 非先王之法言, 不敢道; 非先王之德行, 不敢行.]”라고 한 내용이 보인다.
379) 백……없고 : 아무리 세상이 변하더라도 마음이 단단하게 정해져서 바꿀 수 없다는 말이다. 원문의 ‘창상(滄桑)’은 큰 바다가 뽕밭으로 변하고 뽕밭이 큰 바다로 변한다는 ‘창해상전(滄海桑田)’의 준말로, 세상사의 변화가 매우 큰 것을 비유한 말이다. ‘심불전(心不轉)’은 《시경》 〈백주(柏舟)〉의 “나의 마음은 돌이 아니라 굴릴 수 없네.[我心匪石, 不可轉也.]”라고 한 구절을 인용한 표현이다.
380) 정강사(鄭江沙) : 정재건(鄭在健, 1843∼1910)으로, 본관은 영일(迎日), 초명은 재건(在鍵), 자는 계주(啓周)ㆍ경중(景中), 호는 소송(小松)이다. 지금의 전라남도 곡성군 입면 약천리 출신으로, 부사과(副司果)ㆍ전적(典籍)ㆍ지평(持平)을 지냈다. 1894년(고종31) 시국이 혼란해지자 사직하고 고향에서 학문을 닦았다. 1910년 일제에 의해 강제로 나라를 빼앗긴 후 침실의 벽에 “망국의 신하인데, 구차하게 연명하는 것은 의리상 옳지 않은 일이다. 맹세코 명치(明治)의 세상에 살아 있지 않겠다.[亡國之臣, 義不可以苟生. 誓不在於明治之世.]”라고 써 붙인 뒤에 절의검(絶義劒)으로 목을 찔러 자결하였다. 문집으로 《소송유고(小松遺稿)》가 있다.
381) 은(殷)나라……절조와 : 백이(伯夷)는 고죽국(孤竹國) 임금의 아들인데,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은(殷)나라를 멸망시키자 아우 숙제(叔齊)와 함께 의리상 주나라의 곡식을 먹을 수 없다고 하면서 수양산(首陽山)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어 먹다가 굶어 죽었다. 《史記 伯夷列傳》 왕촉(王蠋)은 전국 시대 제(齊)나라의 현인으로 당초 왕에게 간언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초야에 물러나 농사지으며 살았는데, 이후 연나라가 제나라를 격파하고 왕촉을 회유하자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정녀(貞女)는 두 남편을 섬기지 않는다.”라고 하며 거절하고 목을 매어 죽었다. 《史記 田單列傳》
382) 영광정(迎狂亭) :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쌍치면 시산리 기룡암 위 냇가에 있는 정자로, 금옹(錦翁) 김원중(金源中, 1860~1930)이 뜻을 같이 하는 동지들과 함께 기울어져 가는 나라를 구하고 배일사상을 고취하기 위해서 1921년에 건립하였다. 이곳에서 김원중은 애국동지들과 자주 모임을 갖고 의병투쟁을 결의하기도 하였다.
383) 가돈(嘉遯) : 중정(中正)한 도리에 맞게 은둔하는 것으로, 《주역》 〈둔괘(遯卦) 구오(九五)〉에 “아름다운 은둔이니, 정하여 길하다.[嘉遯, 貞吉.]”라고 보인다.
384) 청광(淸狂) : 마음이 깨끗하여 청아한 맛이 있으면서도 행위는 방종하리만큼 거리낌이 없음을 말한다. 두보의 〈견흥(遣興)〉에 이르기를 “하공은 고상하게 사투리를 쓰고, 벼슬할 땐 늘 거리낌 없이 방종하였네.[賀公雅吳語, 在位常淸狂.]” 하였다.
385) 산재(山齋) 조 영부(趙領府) : 조병세(趙秉世, 1827~1905)로, 산재는 그의 호이다. 본관은 양주(楊州), 자는 치현(稚顯), 시호는 충정(忠正)이다. 좌의정, 중추원 의장, 의정부 의정, 특진관 등을 지냈다. 1905년(광무9)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그 파기를 주장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자 자결하였다.
386) 석두성(石頭城)……똑같았고 : 원찬(袁粲)은 남조 송나라 명종(明宗) 때 상서령(尙書令)을 지낸 인물이며, 석두성은 송나라와 제나라의 도읍지인 건강(建康)의 별칭이다. 원찬은 제왕(齊王) 소도성(蕭道成)이 명제(明帝)를 시역(弑逆)하려는 음모를 미리 알고 소도성을 죽이려다가 탄로나 죽었다. 《宋書 卷89 袁粲列傳》
387) 지수정(止水亭)……흠모했네 : ‘고심(古心)’은 송(宋)나라의 학자이자 정치가인 강만리(江萬里)의 호이다. 그는 일찍이 지산(芝山)에 연못을 파고 정자를 지어 자신이 일생을 마칠 물이란 뜻으로 지수정(止水亭)이라는 편액을 내걸었는데, 나중에 원나라 군사들이 쳐들어오자 아들 등과 함께 물에 몸을 던져 죽었다.《宋史 卷418 江萬里列傳》
388) 시호(諡號) : 원문의 ‘절혜(節惠)’는 망자의 여러 가지 선행 가운데 특별한 것을 뽑아 시호를 내림을 이른다. 《예기》 〈표기(表記)〉에 “선왕이 시호로써 이름을 높이고 한 가지 선으로써 요약했다.[先王諡以尊名, 節以壹惠.]”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389) 두 가지 걱정 : 조정에 나가면 백성들을 걱정하고 물러나면 임금을 걱정한다는 말이다. 송(宋)나라 재상 범중엄(范仲淹)의 〈악양루기(岳陽樓記)〉에 “묘당의 높은 지위에 있으면 백성들을 걱정하고, 강호의 먼 곳에 있으면 그 임금을 걱정한다.[居廟堂之高則憂其民, 江湖之遠則憂其君.]”라고 하였다.
390) 되살릴 길이 없으니 : 원문의 ‘백신난속(百身難贖)’으로, 돌아간 분을 살려내기 위해 누구도 대신 죽을 수 없다는 뜻이다. 《시경》 〈황조(黃鳥)〉에 “저 푸른 하늘이여. 우리 좋은 사람을 죽이도다. 만약 대속할 수 있다면 사람마다 그 몸을 백 번이라도 바치리라.[彼蒼者天, 殲我良人, 如可贖兮, 人百其身.]”라고 하였다.
391) 계정(桂庭) 민 상서(閔尙書) : 민영환(閔泳煥, 1861~1905)으로, 계정은 그의 호이다.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문약(文若), 시호는 충정이다. 도승지, 예조 판서, 형조 판서,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 등 요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의 체결을 크게 개탄하며, 조병세와 함께 을사늑약 반대 상소를 수차례 올렸으나 일제 헌병들의 강제 진압에 의해 실패하게 되자, ‘마지막으로 우리 대한제국 이천만 동포에게 고함’이라는 유서를 국민들에게 남기고 11월 30일 자결하였다.
392) 푸른 피 : 충신, 열사 등이 흘린 피를 뜻한다. 주(周)나라 영왕(靈王) 때에 장홍(萇弘)이 참소를 당하여 촉(蜀)으로 쫓겨나 자결하였는데, 그 피가 3년 만에 푸르게 변했다고 하며, 일설에는 푸른 옥으로 변했다고도 한다. 《莊子 外物篇》
393) 장산재(章山齋) : 제주 양씨(濟州梁氏) 송천공파(松川公派)의 재각(齋閣)으로, 광주광역시 광산구 임곡동에 있다.
394) 경편(瓊篇)이……듯하여 : ‘경편’은 상대방이 보내 준 아름다운 시를 뜻한다. 《詩經 木瓜》 ‘공청(空靑)’은 금동광(金銅鑛)에서 나는 푸른빛의 속이 빈 광물(鑛物)인데, 그림의 안료로 쓰이고 맹인에게 효험이 있어 안질 치료약으로도 쓰인다.
395) 두통이 나았네 : 원문의 ‘유풍(愈風)’은 ‘유두풍(愈頭風)’의 준말로, 타인의 시문이 걸출한 것을 찬미하는 전거로 쓰인다. 당나라 원진(元稹)의 시 〈수이륙취후견기구호(酬李六醉後見寄口號)〉에 “갑자기 두풍의 질환이 나으니, 〈구호〉 시를 읊었기 때문이라오.[頓愈頭風疾, 因吟口號詩.]”라고 하였다.
396) 흥을……찾아갈 : 진(晉)나라 왕휘지(王徽之)가 산음(山陰) 땅에 살았는데 큰 눈이 내린 날 밤 흥취가 일어나 친구인 대규(戴逵)를 찾아갔다가 그의 문 앞에서 흥이 사라지자 만나지 않고 다시 돌아왔던 고사가 있다. 《世說新語 任誕》
397) 처마……웃는 : 벗과 함께 집 모퉁이에 피어있는 매화를 감상하며 웃는다는 것으로, 당(唐)나라 두보(杜甫)의 〈사제관부남전취처자도강릉희기(舍弟觀赴藍田取妻子到江陵喜寄)〉 시 3수 중 제2수에 “처마를 따라 매화 찾아서 함께 웃고자 하니, 찬 꽃술 성근 가지도 반은 꽃망울 터트렸어라.[巡簷索共梅花笑, 冷蘂疎枝半不禁.]”라고 한 구절을 변용한 표현이다.
398) 기천(杞泉) : 이광(李珖, 1589~1645)의 호이다. 본관은 전주, 자는 장중(藏中), 호는 기천, 군호(君號)는 의창(義昌), 시호는 경헌(敬憲)이다. 선조의 여덟 째 아들로, 모친은 인빈 김씨(仁嬪金氏)이다. 광해군 때 유배되었다가 인조반정 이후에 풀려났으며, 글씨에 능하였다.
399) 순룡(荀龍)의……나아간 : 뛰어난 형제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가정에서 부친에게 가르침을 받았다는 말이다. ‘순룡’은 동한(東漢) 때 사람인 순숙(荀淑)의 여덟 아들을 말하는데, 모두 이름이 알려져서 당시 사람들이 팔룡(八龍)이라고 불렀다. 《後漢書 卷92 荀淑列傳》 ‘뜰에 나아간다.’는 것은 자식이 부친을 뵙고 가르침을 받는 것을 말한다. 공자가 홀로 서 있을 때에 아들 백어(伯魚)가 종종걸음으로 뜰을 지나가자[趨而過庭] 공자가 그를 불러 세우고서 시(詩)와 예(禮)를 배워야 한다고 가르침을 내렸던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論語 季氏》
400) 상호(商晧) : ‘상산사호(商山四晧)’의 준말로, 진(秦)나라 말기에 난을 피하여 상산(商山)에 은거(隱居)한 동원공(東園公)ㆍ하황공(夏黃公)ㆍ녹리선생(甪里先生)ㆍ기리계(綺里季)를 말한다.
401) 수성(壽星) : 수명을 관장하는 남극노인성(南極老人星)을 이른다.
402) 문장(文丈) : 문장이 뛰어나고 학식이 높으며 나이가 많은 사람에 대한 존칭이다.
403) 조롱박을 그려서 : 원문의 ‘화로(畫蘆)’로, 겉모습만 그럴듯하게 모방하는 것을 말한다. 송 태조(宋太祖)가 한림학사(韓林學士) 도곡(陶穀)을 조롱하기를 “듣건대 한림학사는 제서(制書)를 초할 때 옛사람의 작품을 베껴 가며 조금씩 말만 바꾸었을 뿐이다. 이는 바로 세속에서 이른바 ‘조롱박 모양만을 본떠서 그려 낸다.[依様畫葫蘆耳]’라는 것일 따름이니, 힘쓴 것이 뭐가 있다고 하겠는가.”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東軒筆錄 卷1》
404) 아름다운……않네 : 자신의 재능을 감춰두고 세상에서 알아주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말이다. 자공(子貢)이 공자에게 “여기에 아름다운 옥이 있으니, 이것을 궤 속에 담아 두시겠습니까? 아니면 좋은 값을 구하여 파시겠습니까?” 하자, 공자가 답하기를 “팔아야지, 팔아야지. 그러나 나는 좋은 값을 기다리는 사람이다.”[子貢曰 “有美玉於斯, 韞匵而藏諸? 求善價而沽諸?” 子曰, “沽之哉! 沽之哉! 我待價者也.”]라고 하였다. 《論語 子罕》
405) 진월(秦越) : 춘추 시대 두 나라의 이름이다. 진나라는 서북쪽, 월나라는 동남쪽에 있어 서로 거리가 멀었으므로, 흔히 소원(疎遠)한 사이를 비유한다.
406) 우리……있으니 : 선(善)과 악(惡)이 모두 나의 스승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논어》 〈술이(述而)〉에 “세 사람이 길을 감에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으니, 그중에 선한 자를 가려서 따르고, 선하지 못한 자를 가려서 자신의 잘못을 고쳐야 한다.[三人行, 必有我師焉, 擇其善者而從之, 其不善者而改之.]”라고 하였다.
407) 사안(謝安)……옥수(玉樹) : 사안과 왕도(王導)는 모두 동진(東晉)의 재상이며, 지란(芝蘭)과 옥수(玉樹)는 명가(名家)의 영재(英材)를 비유하는 말이다.
408) 내한 부군(內翰府君) : 명곡(明谷) 오희도(吳希道, 1583~1623)를 말한다.
409) 장공예(張公藝)와 진강주(陳江州) : 장공예는 운주(鄆州) 수장(壽張) 사람인데, 그의 집안은 9대가 화목하게 동거하여 제(齊), 수(隋), 당(唐)나라의 정표(旌表)를 받았다. 《資治通鑑 唐紀17》 진강주는 진포(陳褒)를 가리킨다. 《소학》 〈선행(善行)〉에 “강주 진씨는 종족이 7백 명이 되었는데, 식사 때마다 넓은 자리를 펴고 어른과 어린이가 차례로 앉아 함께 먹었다.[江州陳氏, 宗族七百口, 每食設廣席, 長幼以次坐而共食之.]”라고 하였다.
410) 명양(鳴陽) : 전라남도 창평(昌平)의 옛 이름이다.
411) 일전(日躔)이 남쪽에 이름에랴 : 동지(冬至)가 되었다는 말이다. ‘일전’은 황도(黃道)상에 보이는 태양의 궤적을 말한다. 하지(夏至) 이후로는 일전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점차 이동하고, 동지 이후에는 남쪽에서 북쪽으로 점차 이동한다.
412) 서검(書劍) : 글을 읽어 관리가 되고 칼을 잡고 종군(從軍)하는 것으로, 문관이나 무관이 되는 것을 말한다.
413) 천기(天機)는 곧 천지조화(天地造化)의 작용을 말한 것
414) 금학(琴鶴) 가져간 : 지방관 생활을 의미한다. 송(宋)나라 조변(趙抃)은 철면 어사(鐵面御史)라는 별명이 있었는데, 지방관으로 부임하면서 거문고 하나와 학 한 마리만을 가지고 갔다는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415) 한 해 : 원문의 ‘此世’인데, 문맥상 ‘此歲’의 잘못으로 보아 이렇게 번역하였다.
416) 양춘곡(陽春曲) : 〈백설가(白雪歌)〉와 함께 병칭되는 전국 시대 초(楚)나라의 가곡(歌曲) 이름으로, 곡조가 고아(高雅)하고 심오하여 화답할 수 있는 사람이 적었다고 한다. 《文選 宋玉對楚王問》
417) 섬계(剡溪) : 절강성(浙江省) 승현(嵊縣) 남쪽을 흐르는 조아강(曹娥江)의 상류이다. 진(晉)나라 왕휘지(王徽之)가 어느 날 밤에 큰 눈이 막 개고 달빛이 휘영청 밝은 것을 보고는 갑자기 섬계에 사는 친구 대규(戴逵)가 생각나서 즉시 거룻배를 타고 밤새도록 가서 다음 날 아침에야 섬계에 당도했는데, 대규의 집 문 앞까지 가서는 흥이 다했다 하여 그의 집에는 들어가지 않고 그대로 되돌아왔던 고사가 있다. 《晉書 王徽之列傳》
418) 독서하며 : 원문의 ‘심항(尋行)’은 심항수묵(尋行數墨)의 준말로, 내용보다는 문장 자체에 얽매이는 공부를 말하는데, 전하여 독서에 대한 겸사(謙辭)이다. 주희(朱熹)의 〈역(易)〉 시에 “책의 가죽 끈이 세 번 끊어졌다는 분이, 글줄 찾고 글자 세는 사람이 아니었음을 알아야 하리.[須知三絕韋編者, 不是尋行數墨人.]”라는 구절이 있다.
419) 윤공삼(尹公三) : 공삼은 윤항식(尹恒植, 1855~1926)의 자이다. 본관은 파평(坡平), 초명은 상태(相泰), 호는 추당(秋塘)이다. 면암 최익현의 문인이며, 문집으로 《추당유고(秋塘遺稿)》가 있다.
420) 두 현인……제사하니 : 지방유림의 공의로 전라남도 함평군 해보면에 자양서원(紫陽書院)을 창건하여 주희(朱熹)와 송시열(宋時烈) 두 분의 위패를 모시고 제향한 일을 말한다. ‘영수(潁水)’는 함평천을 말한다.
421) 사매당(四梅堂) : 전라남도 함평군 해보면 용산리 소성마을에 있는 정자로, 윤삼거(尹三擧, 1644~1718)가 지내던 곳이다. 윤삼거의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자신(子莘), 호는 사매당이다. 송시열의 문인이며, 문집으로 《사매당문집》이 있다.
422) 양평공(襄平公) : 양평은 오자치(吳自治, 1426~?)의 시호이다. 본관은 나주, 호는 서산(西山)이다.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토벌한 공으로 적개공신(敵愾功臣) 2등(二等)에 녹훈(錄勳)되고 나성군(羅城君)에 봉해졌다.
423) 운대(雲臺)와 능연각(凌煙閣) : 공신들의 화상(畫像)을 걸어 놓은 곳이다. ‘운대’에는 한 명제(漢明帝) 때 전대(前代)의 공신을 추모해서 등우(鄧禹) 등 장수 28명의 화상을 그려 걸어 놓았고, ‘능연각’에는 당 태종(唐太宗)이 정관(貞觀) 17년(643)에 공신 24명의 초상화를 걸게 하였다.
424) 감고재(感古齋) : 김신덕(金愼德)의 제실(祭室)로, 전라남도 황룡면 맥동리에 있다. 김신덕의 본관은 울산(蔚山), 호는 손암(遜庵)이다. 장악원 주부(掌樂院主簿)ㆍ송화 현감(松禾縣監) 등을 역임하였으며, 단종(端宗)이 퇴위하자 벼슬을 버리고 전리(田里)로 돌아와 단종에 대한 절의를 지켰다. 저서에 《손암유고(遜菴遺稿)》가 있다.
425) 육신(六臣) : 단종의 복위(復位)를 도모하다가 죽음을 당한 사육신(死六臣)으로, 박팽년(朴彭年)ㆍ성삼문(成三問)ㆍ이개(李塏)ㆍ하위지(河緯地)ㆍ유성원(柳誠源)ㆍ유응부(兪應孚)를 말한다.
426) 백이(伯夷)는……맑으니 : 《맹자》 〈만장 하(萬章下)〉에 “백이는 성인 가운데 맑은 분이다.[伯夷聖之淸者也]”라는 말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427) 병중에……시 : 《난와유고(難窩遺稿)》 권3의 〈정석숙(呈石叔)〉 시를 말한다.
428) 황양목(黃楊木) : 꽃도 피지 않고 열매도 열지 않으며 몹시 더디게 자라는 상록 활엽 관목으로, 1년에 1치(寸)씩 자라는데, 윤달이 든 해를 만나면 1치가 줄어든다고 한다. 《本草 黃楊木》
429) 병록(病錄) : 병의 증세를 적은 기록을 말한다.
430) 정력(定力) : 불교 용어로, 수양을 통하여 번뇌와 망상을 없애고 마음을 한곳에만 쏟는 힘을 뜻한다. 여기서는 평소 수양을 통하여 어떠한 상황에서도 마음이 굳건하여 동요되지 않는 힘을 이른다.
431) 최호(崔顥)의……압도했고 : 당(唐)나라 시인 최호가 지은 〈등황학루(登黃鶴樓)〉를 보고 이백(李白)이 당나라 칠언율시 가운데 제일이라고 격찬했던 것을 말한다.
432) 소동파(蘇東坡)의……외웠네 : 북송(北宋)의 문인 황정견(黃庭堅, 1045~1105)이 소동파의 제자로서 소동파의 시학을 계승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그는 시부(詩賦)의 창신(創新)을 주장하고 독특한 시풍을 이루어 소동파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강서시파(江西詩派)의 원조가 되었다.
433) 운화(運化) : 음식물을 소화시키고 영양 물질과 수분을 흡수하여 온 몸에 운반하는 기능을 말한다.
434) 빌미는……아니네 : 몸에 병이 난 원인이 주의가 부족한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부모를 생각하여 자신의 몸을 온전히 하는 데에 소홀했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예기》 〈제의(祭義)〉에 “악정자춘이 당을 내려가다가 발을 다쳐서 몇 달 동안 외출하지 않으며 여전히 근심하는 낯빛이 있었다. 문하의 제자가 말하기를 ‘부자의 발이 나으셨는데 몇 달 동안 나가시지 않고 오히려 근심하는 낯빛이 있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하자, 악정자춘이 말하기를 ‘……군자는 반 발짝도 감히 효도를 잊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나는 효도의 도리를 잊었기 때문에 근심하는 낯빛이 있는 것이다.’[樂正子春下堂而傷其足, 數月不出, 猶有憂色, 門弟子曰: 夫子之足瘳矣, 雖月不出猶有憂色何也? 樂正子春曰: ……君子頃步而不敢忘孝也, 今予忘孝之道, 予是以有憂色也.]”라고 하였다.
435) 나물을……있다 : 《소학》 〈선행(善行)〉에, 왕신민(汪信民)이 “사람이 항상 나물 뿌리를 먹을 수 있으면 모든 일을 할 수 있다.[人常咬得菜根, 則百事可做.]”라고 한 말을 인용한 것이다.
436) 벌레의……된다 : 자연의 변화는 무궁하여, 지금 내 몸이 내세(來世)에 벌레의 간이나 쥐의 팔이 될지 알 수 없다는 말이다. 《장자(莊子)》 〈대종사(大宗師)〉에 “위대하도다, 조화(造化)여! 너를 장차 무엇으로 만들려나? 너를 쥐의 간으로 만들 것인가, 너를 벌레의 팔뚝으로 만들 것인가?[以汝爲鼠肝乎? 以汝爲蟲臂乎?]”라고 하였다. 《莊子 大宗師》
437) 속개가……뛰노니 : 천지의 이치가 드러나고 만물이 각각 제자리를 얻어 자득(自得)한 것을 뜻한다. 《시경》 〈한록(旱麓)〉에 “솔개는 날아 하늘에 이르고, 물고기는 연못에서 뛰노네.[鳶飛戾天, 魚躍於淵.]”라고 하였다.
438) 남상(濫觴) : 양자강 같은 큰 강도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술잔을 띄울 정도의 작은 물에서 시작되었다는 말로 사물의 시발점이라는 의미로 쓰이는데, 여기서는 저자가 처음 병을 앓게 된 원인을 말한다. 《荀子 子道》
439) 기(杞)나무……땔나무 : 기나무와 재나무는 대표적인 좋은 목재로 훌륭한 인재를 비유하며, 가죽나무와 땔나무는 쓸모없는 목재로 재능이 부족한 사람을 비유한다. 《春秋左氏傳 襄公26年》 《莊子 逍遙遊》
440) 간혹……기대고 : 난와 오계수가 남곽자기처럼 주객(主客)을 초월한 경지를 지녔다는 말이다.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에 “남곽자기가 궤안에 기대어 앉아서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짓고 있는데, 멍한 모습이 그 자신조차도 잃고 있는 듯하였다.[南郭子綦隱几而坐, 仰天而噓, 嗒然似喪其耦.]”라고 하였다.
441) 탕반(湯盤)의……하네 : ‘탕반’은 상(商)나라 탕왕이 목욕하던 탕조(湯槽)인데, 탕왕이 여기에 “진실로 어느 날에 새로워졌거든 나날이 새롭게 하고 또 날로 새롭게 하라.[苟日新, 日日新, 又日新.]”라는 명문(銘文)을 새겨 평생의 경계로 삼았다. 《大學章句 傳2章》
442) 금리(錦里)의 두건 : 은사(隱士)의 모습을 표현한 말이다. ‘금리’는 사천성 성도현(成都縣) 서남쪽에 있는 금관성(錦官城)을 말한다. 일찍이 두보(杜甫)가 그곳에 살면서 자칭 금리선생(錦里先生)이라고 했다. 두보의 시 〈남린(南隣)〉에 “까만 각건 쓰신 우리 금리 선생, 정원에서 밤만 주워도 온통 가난하지만은 않겠구려.[錦里先生烏角巾, 園收芋栗未全貧.]”라고 하였다.
443) 가슴은……막히고 : 의리의 마음이 물욕에 가려진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맹자가 고자(高子)에게 “산에 난 작은 길이 한동안 사람들이 사용하면 길을 이루지만, 한동안 사용하지 않으면 띠풀이 자라서 길을 막는다네. 지금 띠풀이 자라나 그대의 마음을 막고 있구나.[山徑之蹊間, 介然用之而成路, 爲間不用則茅塞之矣. 今茅塞子之心矣]”라고 하였다. 《孟子 盡心下》
444) 면향(綿鄕) : 전라남도 무안(務安)을 가리킨다.
445) 수우 최공(守愚崔公) : 최윤호(崔潤瑚, 1845~1912)로, 수우는 그의 호이다. 최윤호는 저자의 고종형(姑從兄)이다.
446) 비풍(匪風)과 하천(下泉) : 모두 《시경》의 편명이다. 〈비풍〉은 주나라 왕실이 쇠미하게 되자 문왕ㆍ무왕ㆍ주공의 정치를 그리워하며 지은 시이고, 〈하천〉은 당시의 가혹한 정치를 걱정하고 주나라의 서울을 생각하며 지은 시이다.
447) 비가……상심하고 : 《시경》 〈하천(下泉)〉에 “무성히 자라는 기장 싹을 장맛비가 적셔 주도다.[芃芃黍苗, 陰雨膏之.]”라고 한 구절과 은(殷)나라가 망한 뒤에 기자(箕子)가 옛날 은나라 터를 지나다가 궁실이 모두 무너지고 무성하게 보리 이삭이 팬 것을 보고는 가슴이 아파 〈맥수가(麥秀歌)〉를 지어서 노래하였던 고사를 인용한 표현이다.
448) 서쪽으로……위로했네 : 점점 쇠망해 가는 세상을 맞아 옛날 융성했던 시대를 그리워하는 마음에 위로하는 말을 해주었다는 말로, 《시경》 〈비풍(匪風)〉에 “누가 장차 서쪽으로 돌아갈까, 내 좋은 목소리로 위로하리라.[誰將西歸? 懷之好音.]”라고 한 구절을 인용한 표현이다.
449) 김풍오(金豊五) : 풍오는 김현옥(金顯玉, 1844~1910)의 자이다. 본관은 김해(金海), 호는 산석(山石)이다. 노사 기정진의 문인으로, 경상도 하동과 산청을 중심으로 강학 활동을 하였다. 문집으로 《산석집》이 있다.
450) 선생이……우거하니 : 1900년 4월에 면암 최익현이 충청도 정산(定山)으로 집을 옮긴 것을 말한다.
451) 큰……내네 : 면암 선생에게 질문할 때마다 모두 답변해 주었다는 말이다. 《예기》 〈학기(學記)〉에 “물음에 잘 대답하는 자는 종을 치는 것과 같으니, 작은 것으로 치면 작게 울리고, 큰 것으로 치면 크게 울린다.[善待問者如撞鐘, 叩之以小者則小鳴, 叩之以大者則大鳴.]”라고 하였다.
452) 맹수……남아있으니 : 《맹자》 〈등문공 하(滕文公下)〉에 “옛적에 우왕이 홍수를 억제하시자 천하가 평해졌고, 주공이 이적을 겸병하고 맹수를 몰아내시자 백성들이 편안해졌고, 공자께서 춘추를 완성하시자 난신적자들이 두려워하였다.[昔者禹抑洪水而天下平, 周公兼夷狄驅猛獸而百姓寧, 孔子成春秋而亂臣賊子懼.]”라고 하였다.
453) 옥주(沃州) : 충청북도 옥천(沃川)을 말한다.
454) 과축(薖軸) ; 현인의 은거, 또는 은거하는 곳을 이른다. 《시경》 〈고반(考槃)〉에 “고반이 언덕에 있으니, 석인의 마음이 넉넉하도다.……고반이 높은 언덕에 있으니, 석인이 한가로이 서성이도다.[考槃在阿, 碩人之薖.……考槃在陸, 碩人之軸.]”라는 구절에서 ‘과’와 ‘축’을 취한 것이다. 고반은 은거하는 집을 이른다.
455) 갈구(葛裘) : 하갈동구(夏葛冬裘)의 준말로, 때에 맞게 적절히 사용해야 할 생활필수품을 말한다. 당(唐)나라 한유(韓愈)의 〈원도(原道)〉에 “여름에는 삼베옷을 입고 겨울에는 털옷을 입어야 하며[夏葛而冬裘], 목마르면 물을 마시고 배고프면 밥을 먹어야 한다.”라는 말이 있다.
456) 대나무 : 원문의 ‘차군(此君)’은 대나무의 별칭인데, 진(晉)나라 왕휘지(王徽之)가 대나무를 사랑하여 “어떻게 하루라도 차군 없이 지낼 수 있겠는가.[何可一日無此君耶]”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晉書 卷80 王徽之列傳》
457) 토고(土鼓) : 흙을 구워 틀을 만들고 가죽으로 표면을 한 악기를 말한다.
458) 저닉(沮溺) : 춘추 시대 초(楚)나라 장저(長沮)와 걸닉(桀溺)의 병칭으로, 세상일에 아예 관여하지 않고 숨어 사는 은자(隱者)를 가리킨다. 《論語 微子》
459) 매화락(梅花落) : 악부(樂府)의 횡취곡(橫吹曲) 가운데 하나로, 〈매화곡(梅花曲)〉이라고도 한다.
460) 도소주(屠蘇酒) : 건강에 좋다는 약초로 빚은 술로, 악기(惡氣)를 없애고 원기를 소생시킨다는 뜻이 들어 있다. 정월 초하룻날 새벽에 온 가족이 모여서 나이 어린 사람부터 이 술을 차례로 마시며 신년을 축하하는 풍속이 있었다.
461) 회관(灰管) : 옛날 22개의 율관(律管)에 갈청의 재를 담아 놓고 시기의 변화를 조사한 기구이다. 《진서(晉書)》 〈율력지(律曆志)〉에 “또 시일(時日)은 해의 그림자에 맞추고 지기(地氣)는 회관에 맞춘다. 그러하기 때문에 음양(陰陽)이 조화를 이루면 그림자가 제때에 이르고 율기(律氣)가 호응하면 갈청의 재가 날린다.”라고 하였다.
462) 부춘(富春)처럼……넘실거리니 : 불환정이 위치한 곳의 경관을 후한(後漢) 때의 고사(高士)인 엄광(嚴光)이 은거한 부춘산(富春山)에 빗대어 표현한 것으로, 송(宋)나라 범중엄(范仲奄)의 〈엄선생사당기(嚴先生祠堂記)〉에 “구름 낀 산은 창창하고, 강물은 깊고 넓도다.[雲山蒼蒼, 江水泱泱.]”라고 한 구절을 원용하였다.
463) 창상(滄桑)……겪었으리니 : 세상사의 큰 변화를 자주 겪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창상’은 ‘창해상전(滄海桑田)’의 준말로, 큰 바다가 변하여 뽕나무밭이 되고 뽕나무밭이 변하여 큰 바다가 되듯이 세상일의 변화가 매우 심한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464) 노인성(老人星) : 장수(長壽)를 상징하는 별로, 남극성(南極星) 또는 수성(壽星)이라 불린다.
465) 정현(程賢) : 송(宋)나라 성리학자 정호(程顥)를 가리킨다. 원문의 ‘좌상춘(座上春)’은 봄바람처럼 온화한 인품을 형용하는 말인데, 주광정(朱光庭)이 정호를 찾아뵙고 돌아와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봄바람 속에서 한 달 동안 앉아 있었다.[某在春風中坐了一箇月.]”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近思錄 卷14》
466) 용오정(龍塢亭) :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무장면 덕림리에 있는 정자로, 정방규(鄭枋珪, 1883~1947)가 부친 용오(龍塢) 정관원(鄭官源, 1857~1920)의 유지(遺志)를 계승하여 지은 것이다. 정관원은 소두(小蠹) 정하원(鄭河源)의 문인으로, 용오재(龍塢齋)를 짓고 강학을 통해 많은 문인을 배출했다. 생전에 용오정을 짓고 말년을 보내려 계획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자, 아들 정방규가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서 용오정을 완성했다.
467) 석천(石泉) 김공(金公) : 김형진(金亨進, 1556∼1592)으로, 석천은 그의 호이다. 본관은 상산(尙山), 자는 점숙(漸淑)이다. 행의(行誼)로 특별히 참봉(參奉)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고 산천에 은둔하였다. 임진왜란 때 중봉(重峯) 조헌(趙憲, 1544~1592)과 금산전투에서 700의사와 함께 왜적에 맞서 분전하다 순절하였으며, 1798년(정조22) 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에 추증되었다. 《石泉實記》
468) 종용사(從容祠)의……입었네 : 종용사는 1647년(인조25)에 충남 금산(錦山)의 선비들이 임진왜란 때 금산 전투에서 산화한 의병들의 충혼을 달래기 위해 세운 사당으로, 1663년(현종4)에 ‘종용사’라는 사액이 내려졌다. 중봉(重峯) 조헌(趙憲)과 제봉(霽峯) 고경명(高敬命), 영규대사(靈圭大師) 등 7백 명의 위패를 모셨다. 일제에 의해 훼철되었다가 1968년에 복원되었다.
469) 제(齊)나라……장렬했고 : 금산전투에서 칠백 의사(七百義士)가 순절한 것을 제(齊)나라 왕 전횡(田橫)의 부하 5백여 명이 오호도(嗚呼島)에서 모두 자결했던 일에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오호도는 현재 중국 동해(東海)의 청도(靑島) 즉묵시(卽墨市)에 속한 섬이다. 전횡은 제왕(齊王)의 후예로 진(秦)나라 말기에 자립하여 왕이 된 뒤에 형세가 불리해지자 부하 5백여 명과 함께 섬 속으로 피해 들어갔는데, 그 뒤에 왕후(王侯)로 봉해 주겠다는 한 고조(漢高祖)의 부름을 받고서 낙양(洛陽)으로 가던 도중에 머리를 굽혀 신하가 되는 일은 차마 하지 못하겠다면서 자결을 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섬 안의 5백여 인 역시 모두 자살하여 그 뒤를 따랐던 고사가 전한다. 《史記 卷94 田橫列傳》
470) 무이산(武夷山) : 중국 복건성(福建省)의 제일 명산으로, 남송 때 주희(朱熹)가 은거하여 학문을 닦던 곳이다
471) 학문은……되니 : 오직 자신의 덕성을 닦기 위해 공부해야지 남이 알아주는 것을 목적으로 공부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논어》 〈헌문(憲問)〉에 “옛날 학자들은 자신을 위해 공부하였는데, 지금 학자들은 남을 위해 공부한다.[古之學者爲己, 今之學者爲人.]”라고 하였다.
472) 곡강(曲江) : 중국 섬서성(陝西省) 서안(西安) 동남쪽의 유명한 명승지인 곡강지(曲江池)로, 당나라 때 진사 시험에 합격한 사람들을 이곳에 모아 놓고 크게 연회를 베풀었다.
473) 석분(石奮) : 한 무제(漢武帝) 때 사람으로, 네 아들과 함께 해마다 국가로부터 2,000섬을 받아 만석꾼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집안이 화목하고 예법을 잘 지켰으며 장수하여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史記 卷103 萬石君列傳》
474) 영균(靈均)을……인년(寅年) : 유영관이 초(楚)나라 굴원(屈原)처럼 ‘인(寅)’의 해에 태어났다는 말이다. 영균은 전국 시대 초나라 굴원의 자이다. 굴원의 〈이소(離騷)〉에 “인년(寅年)의 정월이요, 정월 경인일에 내가 태어났네.[攝提貞于孟陬兮, 惟庚寅吾以降.]”라고 하였다.
475) 갈천씨(葛天氏)와……남아있고 : ‘갈천씨와 무회씨(無懷氏)’는 모두 전설상 상고 시대의 제왕인데, 아주 이상적으로 세상을 잘 다스려서 천하가 태평했다고 한다. ‘심양(潯陽)’은 동진(東晉) 시대의 처사(處士) 도잠(陶潛)의 고향이다. 도잠의 〈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에 “술을 실컷 마시고 시를 지어서 자신의 뜻을 즐기니, 무회씨의 백성인가, 갈천씨의 백성인가?[酣觴賦詩, 以樂其志, 無懷氏之民歟? 葛天氏之民歟?]”라고 하였다.
476) 칠리탄(七里灘) : 후한(後漢) 때 은사(隱士)인 엄광(嚴光)이 은둔하며 낚시를 즐겼던 곳이다. 엄광은 젊은 시절 광무제(光武帝)와 친구였는데, 광무제가 즉위한 뒤에 간의대부를 제수하고 불렀으나, 부춘산(富春山)으로 들어가 양피 갖옷을 입고 칠리탄(七里灘)에서 낚시하며 여생을 마쳤다고 한다. 《後漢書 嚴光列傳》
477) 낭주(朗州) : 전라남도 영암(靈巖)의 옛 이름이다.
478) 증씨(曾氏)의……익히는 : 공자(孔子)의 제자 증자(曾子)가 “나는 날마다 세 가지 일로써 내 몸에 반성하노니 ‘남을 위해 도모함에 충성스럽지 않았던가? 벗과 사귐에 신실하지 않았던가? 전수받은 것을 복습하지 않았던가?’하는 것이다.[吾日三省吾身, 爲人謀而不忠乎? 與朋友交而不信乎? 傳不習乎?]”라고 한 것을 말한다. 《論語 學而》
479) 임문옥(林文玉) : 문옥은 임돈규(林敦圭, 1863~1932)의 자이다. 본관은 나주(羅州), 호는 송오(松塢)이다.
480) 중뢰연(重牢宴) : 회혼연(回婚宴)으로, 결혼한 지 61년이 되는 해에 베푸는 잔치이다.
481) 반도(蟠桃) : 전설 속에 나오는 신선들이 먹는 복숭아로, 3000년마다 한 번 열매를 맺으며, 이 복숭아를 먹으면 불로장생한다고 한다. 《太平廣記 卷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