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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24

황성 2025. 8. 3.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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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古 廟 制





































夾室 夾室








































 

1(一世)에 각각 1(一廟)를 둔다. 묘에는 문, , , , 협실, 침이 있고, 사방으로 담을 두른다.

 

 

그림 2

 

古室制

 






西
























 

묘실의 제도는 모두 이와 같다. 신주는 모두 서쪽 벽의 아래에서 동쪽을 향한다. 협제를 지내게 되면 태조는 동쪽을 향하고, 소는 남쪽을, 목은 북쪽을 향한다.

 

 

그림 3

본조의 태묘 제도 本朝太廟制



1 2 3 4 5 6 7 8 9 10 11 12


従後
看起


(뒤에서부터 볼 것)
현재의 묘 서협실
순조 :
목조 :
시조묘
희조
소묘
선조
목묘
태조
목묘
태종
소묘
진종
목묘
인종
소묘
영종
목묘
신종
소묘
철종
소묘
휘종
목묘
흠종
목묘
고종


현재 예관들의
의론
희조와 선조를 이곳으로 옮기기 원함 희조를 서협실로 옮기기를 원함,
태조를 이곳에 모심.
영원히 옮기지 않음.
협제할 때는 동향.
선조를 서협실로 옮기기를 원함.
태종을 이곳에 모셔서 소묘로 삼는다.
태조를 제1실로 옮김.
진종을 이곳에 모시고 목묘로 삼는다.
태종을 제2실로 옮김.
인종을 이곳에 모시고 소묘로 삼는다.
진종을 제3실로 옮김.
영종을 이곳에 모시고 목묘로 삼는다.
인종을 제4실로 옮김.
신종을 이곳에 모시고 소묘로 삼는다.
영종을 제5실로 옮김.
철종을 이곳에 모시고 목묘로 삼는다.
신종을 제6실로 옮김.
휘종을 이곳에 보시고 목묘로 삼는다.
철종을 제7실로 옮김.
흠종을 이곳에 모시고 소묘로 삼는다.
휘종을 제8실로 옮김.
고종을 이곳에 모시고 소묘로 삼는다.
흠종을 제9실로 옮김.
효종을 이곳에 모시고 목묘로 삼는다.
고종을 제10실로 옮김.
이 묘는 페한다.

현재 주희의 제안 선조와 진종영종을 이곳으로 옮기기 원함 예전대로 희조를 이곳에 모심.
영원히 옮기지 않음.
협제할 때는 동향.
선조를 서협실로 모심.
태조를 이곳에 모시고 목묘로 삼는다. 영원히 옮기지 않는다.
태조를 제2실로 옮김.
태종을 이곳에 모시고 목묘로 삼는다.
영원히 옮기지 않는다.
태종을 제3실로 옮긴다. 인종을 이곳에 모시고 소묘로 삼는다.
영원히 옮기지 않는다.
진종을 임시로 서협실에 들인다.
신종을 이곳에 모시고 소묘로 삼는다.
인종을 제4실로 옮김.
철종을 이곳에 모시고 목묘로 삼는다.
영종을 임시로 서협실에 들인다.
휘종을 이곳에 모시고 소묘로 삼는다.
신종을 제5실로 옮김.
흠종을 이곳에 모시고 목묘로 삼는다.
철종을 제6실로 옮김.
고종을 이곳에 모시고 소묘로 삼는다.
휘종을 제7실로 옮김.
효종을 이곳에 모시고 목묘로 삼는다.
흠종을 제8실로 옮김.
이 묘는 폐한다.
고종을 제9실로 옮김.
이 묘는 폐한다.

후한 명제(明帝) 이래로 공사를 막론하고 묘제는 모두 동당이실(同堂異室)’제를 썼는데 역대에 걸쳐 그대로 따르면서 고치지를 못했다. 때문에 당 위에서 여러 신주들이 함께 제사를 받는 결과가 되었고, 그 예가 전일하지 못했다. 소목 역시 남북의 구별만 있을 뿐, 좌우의 구별은 없었다. 졸곡이 끝난 다음에 비록 옛 법에 의거해서 조부에게 부묘하려 하여도 신주를 옮기는 즈음에 이르면 다시 오늘날의 제도를 따르게 되어 (새로운 신주가) 아버지의 실에 들어가는 것이 자못 의의가 없었다. 또 옛 제도대로 한다면, 소묘에 부묘하면 목에 해당하는 신주들은 움직이지 않고, 목묘에 부묘하면 소에 해당하는 신주들은 움직이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법도는 매양 하나의 실에 부묘를 하면, 모든 실에서 다 신주를 옮긴다. 또 옛날의 협제는 모두 실 안에서 지냈는데, 오늘날에는 실이 좁다는 이유로 당 위에서 협제를 지낸다. 이런 것은 모두 예에 어긋난다.
신종황제께서 그것들이 예에 어긋남을 살피시고 유신들에게 명해서 옛 제도를 토론하게 했다. 마악 실천에 옮기려고 하셨으나, 건물을 신축할 땅조차 확정치 못하고 말았기 때문에 논자들이 애석하게 여겼다. 오늘날 조정은 (오랑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곳에 일시적으로 머물고 있기 때문에, 이치상 본래 이 일에 대해 미칠 수 없다. 때문에 내가 헤아려 정해서 우선 임시방편이나마 마땅함을 추구하고자 한다. 훗날 중원을 회복하고 옛 수도로 돌아갈 수 있게 되어 선왕들의 옛 제도를 되살릴 수 있게 된다면, 좌소우목이 제자리를 잡게 되고 진종과 영종 두 분의 신주도 응당 태묘의 서쪽 협실에 안치해야 할 것이다.

 

 

 

그림 4

본조에서도 마땅히 이 묘를 정당실로 하고 희조를 제사지냈다. 순조익조선조 세 분의 조주는 서협실에 안치한다. 협제할 때에는 주나라의 제도와 같이 한다. 희조는 동향하고 순조선조태종인종신종휘종고종은 모두 남향한다. 익조태조진종영종철종흠종효종은 모두 북향한다. 태묘 주나라 사람들은 이 묘를 정당실로 하고 태조 후직을 제사지냈다. 불굴 이하 왕계까지 15대 동안의 선조들의 조주는 서협실에 안치한다. 협제할 때는 여러 조주와 뭇 묘의 신주는 모두 이 묘의 실 가운데서 합사한다. 후직은 동향하고, 뭇 소묘는 남향, 뭇 목묘는 북향한다.
목세실








주나라 사람들은 이 묘를 정당실로 해서 문왕을 제사한다. 성왕과 소왕 이하의 조주는 서협실에 보관한다.
본조는 마땅히 이것을 정당실을 해서 태조를 제사지낸다. 진종, 영종, 철종, 흠종, 효종의 조주는 마땅히 순서대로 서협실에 보관한다.
오늘날 진종과 영종의 신주는 당연히 이곳에 모셔야 한다.
󰡔춘추󰡕에서 말했다. 주공의 묘는 태묘라고 부르고, 노공의 묘는 세실이라고 부르며, 나머지 공들의 묘는 궁세실이라고 칭한다. 이것들은 영원히 허물지 않는다.


살피건대, 이것은 노나라의 제도다. 그러나 󰡔예기󰡕에서 노공의 묘는 문왕의 세실이요, 무공의 묘는 무왕의 세실이다라고 했으므로 천자의 제도도 역시 이와 같다.


손육은 말했다. “제후의 묘는 밖에 도궁을 만든다. 태조는 북쪽에 있고 22목은 순서대로 남으로 내려앉힌다.


지금 살피자면, 이것은 비록 제후의 제도이지만, 그러나 천자의 묘도 당연히 이러했을 것이다. 다만 천자는 33목이고, ‘은 정해진 수가 없다.


각각의 묘의 문, , , , , 장의 제도에 대한 것은 이미 앞의 그림에 있다.
소세실


주나라 사람들은 이 묘를 정당실로 삼아 삼아 무왕을 제사지냈다. 강왕과 목왕 이하의 조주는 서협실에 보관한다.
본조에서는 이것으로 묘를 세워 그 서쪽을 정당실로 해서 태종을 제사하고, 동쪽도 정당실로 해서 인종을 제사한다. 신종과 휘종의 조주는 마땅히 순서대로 서협실에 안치한다. 고종은 별도의 세실을 인종의 세실 동쪽에 세운다.
지금은 모두 옮겨 모시는 것이 합치되지 않는다.
목궁 1








주나라 사람들은 성왕, 소왕 이하에 대해 순서대로 이하의 3궁에 모셨다. 신주를 옮길 때가 되면 문왕의 세실 서쪽 협실에 모셨다.
본조에서는 응당 진종영종철종흠종효종을 순서대로 이하의 3궁에 모신다. 신주를 옮길 때가 되면 태묘의 세실 서쪽 협실로 모신다.
소궁 1


주나라 사람들은 강왕과 목왕 이하에 대해 순서대로 소궁일, 소궁이, 소궁삼 세 궁에 신주를 모셨다. 신주를 옮길 때가 되면 무왕의 세실 서쪽 협실에 모셨다.
본조에서는 응당 인종신종휘종고종을 순서대로 이하의 3궁에 모신다. 조묘로 옮길 때가 되면 인종은 태종의 동쪽에 별도로 세실을 세우고, 신종휘종은 신주를 인종의 세실의 서쪽 협실에 모신다. 고종은 별도로 인종의 동쪽에 세실을 세운다.
목궁 2 소궁 2
목궁 3 소궁 3

 

 

 

그림 5-1

見行祫享位次

현재 협제의 위치와 차례








宣 真 英 哲徽
祖 宗 宗 宗宗
↓↓↓

西 僖祖




↑↑↑
太 太 仁 神 欽高
祖 宗 宗 宗 宗宗





 

 

그림 5-2今禮官所議祫享位次

현제 예관들이 의논하는 협제를 모실 때의 위치와 차례






順 宣 太
祖 祖 宗

仁 神 欽高
宗 宗 宗宗
↓↓↓

西 僖粗 太祖


翼 真
祖 宗

↑↑↑
英 徽哲 孝
宗 宗宗 宗





 

그림 6(2-604)

今擬定祫享位次

현재 (제가) 헤아려 정한 협제 위치와 차례.

 

此圖今以廟制未能如古, 且欲權於太廟堂上行禮, 俟他日改立廟制, 卽於室中行禮.

이 그림은, 묘제가 옛날과 같을 수 없기 때문에, 우선 임시방편으로 태묘의 당 위에서 협제의 예를 행합니다. 그리고 훗날을 기다렸다가 묘제를 개정한 다음에 실 안에서 예를 행합니다.

 








順 宣 太 仁 神 徽 高
祖 祖 宗 宗 宗 宗 宗
↓↓↓

西 僖粗




↑↑↑
翼 太 真 英 哲 欽 孝
祖 祖 宗 宗 宗 宗 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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