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2/해제

의왕시 최씨 문헌

황성 2019. 12. 17.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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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축(詩軸)이다. 크기는 가로 173.0×세로 23.5이다. 이 시축(詩軸)은 칠언율시로 지은 6수의 시가 실려 있다. ‘()’, ‘()’, ‘()’, ‘()’, ‘()’의 운으로 지은 시가 3, ‘()’, ‘()’, ‘()’, ‘()’, ‘()’의 운자로 지은 시가 3, ‘()’, ‘()’, ‘()’, ‘()’, ‘()’의 운자로 지은 시가 3수이다. 작자는 취정(翠汀), 추금(秋錦), 임곡(林谷), 소죽(小竹), 심석(心石)이다. 114일 밤에 읊은 시로 새해를 맞이한 감회를 서술하고 술자리를 마련하여 벗들과 함께 시를 읊조리니 즐겁다는 내용이다.

 

2 205

시축(詩軸)이다. 시 제목 가운데 정축(丁丑)’이라는 간지(干支)가 있는 것으로 보아 1937년 전후에 작성된 듯하다. 모두 70여 수의 칠언율시가 실려 있으며 대부분의 시에는 제목이 기재되어 있다. 작자가 평소 생활하면서 지은 시를 날짜순으로 기록하였다. 이 시축(詩軸)에 실린 시는 다음과 같다.

취정을 방문하고 집으로 돌아와 짓다[訪翠汀還家而作]라는 제목으로 지은 칠언율시 2, 심석을 만나 함께 짓다[逢心石共賦]라는 제목으로 지은 칠언율시 2, 용담의 모임에서 짓다[龍潭雅會以作]라는 제목으로 지은 칠언율시 4, 85일 여러 벗들과 물고기를 삶아 먹으며 함께 짓다[八月五日與諸益以煮魚共賦]라는 제목으로 지은 칠언율시 2, 회갑시를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짓다[晬韻代人作]라는 제목으로 지은 칠언율시 2, 현곡이 방문하여 함께 짓다. 2[玄谷訪來共吟二首]라는 제목으로 지은 칠언율시 2, 초평에서 벗을 방문하고 짓다 2[草坪訪友以作二首]라는 제목으로 지은 칠언율시 2, 벗 이종목에 대한 만사[挽李友鍾穆]라는 제목으로 지은 오언율시 1, 야경단조직을 읊다[吟夜警團組織]라는 제목으로 지은 칠언율시 1, 가을 24일 심석과 함께 읊다[秋天念四夜與心石共賦]라는 제목으로 지은 칠언율시 3, 관악에 가서 읊다[行冠岳而吟]라는 제목으로 지은 칠언율시 2, 족질 병일의 시에 차운하다[次族姪炳一韻]라는 제목으로 지은 칠언율시 4, 서파를 방문하여 함께 읊다[訪西坡共賦]라는 제목으로 지은 칠언율시 1, 48일 천렵하면서 여러 벗들과 함께 읊다[四月八日川獵與諸益共賦]라는 제목으로 지은 칠언율시 2, 초평의 한진좌의 집을 방문하고 함께 짓다[訪草坪韓鎭佐宅共賦]라는 제목으로 지은 칠언율시 2, 용화사에서 함께 읊조리다[龍華寺共吟]라는 제목으로 지은 칠언율시 1, 도중에서 돌아오며 짓다[路中還作]라는 제목으로 지은 칠언율시 1, 재관수리조합 시에 차운하다[齋觀水利組合韻]라는 제목으로 지은 칠언율시 1, 석은을 만나서 짓다[逢石隱以作]라는 제목으로 지은 칠언율시 1, 초평리 금광에서 금을 캐내는 것을 보고 짓다[觀草坪里金鑛採窟發見以作]라는 제목으로 지은 칠언율시 1, 소석을 얻어 돌아와서 짓다[得搔石以還作]라는 제목으로 지은 오언절구 1, 병자년 922일 사람을 만나서 짓다[丙子九月念二日逢人以作]라는 제목으로 지은 칠언율시 1, 108일 밤에 서파 한 선생을 방문하다[十月八日夜訪韓先生西坡]라는 제목으로 지은 칠언율시 1, 소한 보름날 밤에 서관 어른을 방문하고 함께 읊다[小寒望夜訪西慣丈共賦]라는 제목으로 지은 칠언율시 1, 방학을 맞은 아이들을 대하여 짓다[對放學兒童以作]라는 제목으로 지은 칠언율시 2,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 석천리에 있는 벗 백창기를 방문하다[積年之餘訪石川里白友昌基]라는 제목으로 지은 칠언율시 1, 추금과 함께 짓다[與秋錦共賦]라는 제목으로 지은 칠언율시 1, 방에서 우연히 읊다[房中偶吟]라는 제목으로 지은 칠언율시 1, 금유와 함께 읊다[與錦有共賦]라는 제목으로 지은 칠언율시 1, 유포리 홍우강을 방문하고 눈을 맞으며 즐겁게 돌아오다[訪柳浦里洪于崗隔雪樂歸]라는 제목으로 지은 칠언율시 1, 한우당과 함께 짓다[共賦韓愚堂]라는 제목으로 지은 칠언율시 1, 차과용전만운장산운(次過容傳晩雲章山韻)이라는 제목으로 지은 칠언율시 2, 입춘이 지난 뒤 우연히 읊다[立春後偶吟]라는 제목으로 지은 칠언율시 1, 서울에 사는 유씨 형의 편지를 받고 짓다[接漢陽柳兄書]라는 제목으로 지은 칠언율시 1, 불정에 사는 벗을 방문하다[訪佛井友人]라는 제목으로 지은 칠언율시 1, 섣달그믐날 밤에[除夕]라는 제목으로 지은 칠언율시 3, 정축년 설날에[丁丑元朝]라는 제목으로 지은 칠언율시 1, 문혜공 신도비를 세운 것을 축하하고 기념하여 시를 짓다[祝文惠公神道碑記念韻]라는 제목으로 지은 칠언율시 2, 해릉과 경석에 사는 두 스승의 운에 삼가 차운하다[謹次海陵經石兩詞伯韻]라는 제목으로 지은 칠언율시 5, 기차를 읊다 1[詠汽車一首]라는 제목으로 지은 칠언율시 1, 제목이 없는 칠언율시 6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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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월암(月庵)이라는 호에 대한 풀이를 적은 글이고 끝에 4언으로 된 명문(銘文)이 있다. 크기는 가로 174.0×세로 23.0이다. 월암거사(月庵居士)가 사는 곳이 월곡(月谷)이므로, ‘월암은 지명에서 온 말이다. ‘()’이라고 한 것은 절보다 작은 건물로 세속의 시끄러움이 없기에 산수자연에서 한가히 노닐 수 있다는 의미를 취하였다는 내용이다.

 

4 207

시축(詩軸)으로 앞면과 뒷면에 시가 적혀 있다. 크기는 가로 225.0×세로 23.0이다. 이는 시회에서 지은 시를 모아 기록한 시축(詩軸)이다. 앞면에는 모두 10수의 시가 실려 있다. 이 시회에 참석한 사람은 심석(心石), 소죽(小竹), 동계(東溪), 추금(秋錦)이다. ‘()’, ‘()’, ‘()’, ‘()’, ‘()’이라는 운자로 지은 칠언율시 5수와 ()’, ‘()’, ‘()’, ‘()’, ‘()’이라는 운자로 지은 칠언율시 5수가 실려 있다. 뒷면에는 ()’, ‘()’, ‘()’, ‘()’, ‘()’, ‘()’라는 운자로 지은 칠언율시 5수가 실려 있다. 눈 내리고 추운 때 벗들과 함께 시를 짓는 기쁜 심회를 서술하였다.

 

5 208

시축(詩軸)으로 제목은 적혀 있지 않다. 크기는 가로 283.0×세로 23.2이다. ‘()’, ‘()’, ‘()’, ‘()’, ‘()’이라는 운자로 지은 칠언율시 5수가 실려 있다. 시를 지은 사람은 만송(晩松), 우강(愚岡), 송고(松皐), 화은(華隱), 석천(石泉), 소은(笑隱)이다. 석천(石泉)의 집에 모인 10명의 사람들이 노년의 심회를 읊은 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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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축(詩軸)으로 제목은 적혀 있지 않다. 크기는 가로 173.0×세로 23.5이다. 작자는 현곡(玄谷), 심석(心石), 오은(梧隱), 소죽(少竹), 추금(秋錦)이다. ‘()’, ‘()’, ‘()’, ‘()’, ‘(竿)’이라는 운자로 지은 칠언율시 5, ‘()’, ‘()’, ‘()’, ‘()’, ‘()’라는 운자로 지은 칠언율시 5수가 실려 있다. 국화 핀 가을 시냇가에 자리한 정자와 주위 풍경을 읊조린 시들이다.

 

7 210

시축(詩軸)이다. 크기는 가로 225.0×세로 23.0이다. 묘련암에서 모임을 갖다[杳蓮菴雅會]라는 제목이 있는 것으로 보아 시회에서 지은 시를 모아 기록한 것인 듯하다. 칠언율시 8수가 실려 있다. 운자는 ()’, ‘()’, ‘()’, ‘()’, ‘()’이다. 참석한 사람은 화은(華隱), 국사(菊史), 우강(愚崗), 소은(笑隱), 운재(雲齋), 석천(石泉), 광헌(光軒), 송재(松齋)이다. 백년 고찰의 향련암에서 시회를 열어 산사의 정취와 선경에 노니는 즐거움을 읊조린 시들이다.

 

8 211

시축(詩軸)이다. 제목은 없고 명(), (), (), (), ()의 운자로 지은 칠언율시 10수가 실려 있다. 이 역시 시회에서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참석한 사람은 소석(紹石), 송암(松菴), 소죽(少竹), 석천(石泉), 월재(月齋), 추금(秋錦), 송고(松皐), 장재(張齋), 소수(小漱), 성고(星古)이다. 엄동설한에 봄을 기다리며 나라가 태평해지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을 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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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8월에 최강(崔岡) 2인이 작성한 글을 적은 문서이다. 크기는 가로 174.5×세로 23.5이다. 이 문서에는 수성변(隋城辯), 최장섭술최강서문(崔章燮述崔岡序文), 자종중장섭형제론죄광포초초(自宗中章燮兄弟論罪廣佈初抄)라는 세 편의 글이 실려 있다.

수성변(隋城辯)은 수성 최씨(隋城崔氏)의 족보를 만들면서 수성 최씨의 연원을 밝힌 글이다. 수성 최씨는 두 갈래가 있는데, 하나는 고려 충렬왕 때 신라 김알지(金閼智)의 먼 후손인 김영금(金永金)이 수원부(水原府)의 호장(戶長)이 되어 공로로 최씨 성을 하사받아 수성백(隋城伯)에 봉해지고 그 후손이 수성을 관향으로 삼은 갈래이고, 다른 하나는 최씨 성을 하사받은 뒤에 편입된 최씨의 갈래가 있음을 밝혔다.

최장섭술최강서문(崔章燮述崔岡序文)은 최장섭이 수성 최씨 족보에 들어가게 된 경위를 밝힌 글이다. 최장섭의 선대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한다. 다만 9대조 하산(何山) 최효건(崔孝騫)이 만든 족보에 수원 최씨(水原崔氏)’라는 표제어가 있고 내용 가운데 수성 최씨라고 한 것에 근거하여, 동종(同宗)이라고는 못하지만 동성(同姓)이라고 할 수 있다는 이유로 수성 최씨의 족보를 다시 편찬할 때 자신의 가계를 수성 최씨의 한 갈래로 편입하였다고 밝혔다.

종중의 입장에서 최장섭 형제를 논죄하다. 널리 유포하는 초고[自宗中章燮兄弟論罪 廣佈初抄]는 통문으로 돌린 내용을 베껴 쓴 글이다. 수성 최씨의 두 갈래가 사방에 흩어져 살았는데, 양주(楊州) 오산(於山)에 사는 최장섭(崔章燮), 최윤섭(崔胤燮) 형제가 족보를 다시 편찬할 때 족보에 들어 있는 것을 성토하는 내용이다.

 

10 213

시축(詩軸)이다. 시회에서 지은 시를 모아 기록한 것인 듯하다. 참석한 사람은 해릉(海陵), 월암(月菴), 화은(華隱), 국사(菊史), 소은(笑隱), 우강(愚岡), 국사(菊史 율전(栗田)), 천석(泉石), 이종학(李鍾鶴), 이은(二隱), 윤병기(尹秉夔), 죽하(竹下), 일재(一齋)이다. ‘()’, ‘()’, ‘()’, ‘()’, ‘()’의 운자로 지은 칠언율시 14수가 실려 있다. 오래 만에 시회가 열린 것에 대한 기쁨과 매미 소리 요란한 늦여름에 벼꽃이 핀 것을 보고 기쁜 심회를 읊조린 시들이다.

 

11 214

시축(詩軸)이다. 시회에서 지은 시를 모아 기록한 것인 듯하다. 참석한 사람은 만송(晩松 구자룡(具滋龍)), 화은(華隱 윤태교(尹泰校)), 소은(笑隱, 이종승(李種昇)), 우강(愚崗 최인식(崔仁植)), 국사(菊史 윤병일(尹秉馹)), 송고(松皐 이종학(李鍾鶴)), 운재(雲齋 윤병섭(尹秉燮)), 석천(石泉 송재섭(宋宰燮)), 성고(聲皐 신고수(申鴣秀)), 송소(松少 최호무(崔胡茂))이다. ‘()’, ‘()’, ‘()’, ‘()’, ‘()’의 운자로 지은 칠언율시 10수가 실려 있다. 음력 9월 가을에 약속을 어기지 않고 시회에 모인 벗들을 만난 기쁨과 노년이 된 슬픔이 교차하는 심회를 읊은 시들이다.

 

12 215

시축(詩軸)이다. 이 시축(詩軸)의 중간 부분에 경신(庚申)이라는 간지가 있는 것으로 보아 1940년 전후로 작성된 것으로 추측된다. 칠언율시 46수가 실려 있는데 제목은 적혀 있지 않다. 작자는 우강(愚崗), 금미(錦眉), 신재(愼齋), 추금(秋錦)이다. ‘()’, ‘()’, ‘()’, ‘()’, ‘()’의 운자로 지은 칠언율시 2, ‘()’, ‘()’, ‘()’, ‘()’, ‘()’의 운자로 지은 칠언율시 2, ‘()’, ‘()’, ‘()’, ‘()’, ‘()’의 운자로 지은 칠언율시 1, ‘()’, ‘()’, ‘()’, ‘()’, ‘()’의 운자로 지은 칠언율시 2, ‘()’, ‘()’, ‘()’, ‘()’, ‘()’의 운자로 지은 칠언율시 2, ‘()’, ‘()’, ‘()’, ‘()’, ‘()’의 운자로 지은 칠언율시 1, ‘()’, ‘()’, ‘()’, ‘()’, ‘()’의 운자로 지은 칠언율시 1, ‘()’, ‘()’, ‘()’, ‘()’, ‘()’의 운자로 지은 칠언율시 1, ‘()’, ‘()’, ‘()’, ‘()’, ‘()’의 운자로 지은 칠언율시 1, ‘()’, ‘()’, ‘()’, ‘()’, ‘()’의 운자로 지은 칠언율시 1, ‘()’, ‘()’, ‘()’, ‘()’, ‘()’의 운자로 지은 칠언율시 1, ‘()’, ‘()’, ‘()’, ‘()’, ‘()’의 운자로 지은 칠언율시 1, ‘()’, ‘()’, ‘()’, ‘()’, ‘()’의 운자로 지은 칠언율시 1, ‘()’, ‘()’, ‘()’, ‘()’, ‘()’의 운자로 지은 칠언율시 1, ‘()’, ‘()’, ‘()’, ‘()’, ‘()’의 운자로 지은 칠언율시 1, ‘()’, ‘()’, ‘()’, ‘()’, ‘()’의 운자로 지은 칠언율시 1, ‘()’, ‘()’, ‘()’, ‘()’, ‘()’의 운자로 지은 칠언율시 1, ‘()’, ‘()’, ‘()’, ‘()’, ‘()’의 운자로 지은 칠언율시 1, ‘()’, ‘()’, ‘()’, ‘()’, ‘()’의 운자로 지은 칠언율시 1, ‘()’, ‘()’, ‘()’, ‘()’, ‘()’의 운자로 지은 칠언율시 2, ‘()’, ‘()’, ‘()’, ‘()’, ‘()’의 운자로 지은 칠언율시 1, ‘()’, ‘()’, ‘()’, ‘()’, ‘()’의 운자로 지은 칠언율시 1, ‘()’, ‘()’, ‘()’, ‘()’, ‘()’의 운자로 지은 칠언율시 1, ‘()’, ‘()’, ‘()’, ‘()’, ‘()’의 운자로 지은 칠언율시 3, ‘()’, ‘(綿)’, ‘()’, ‘()’, ‘()’의 운자로 지은 칠언율시 1, ‘()’, ‘()’, ‘()’, ‘()’, ‘()’의 운자로 지은 칠언율시 1, ‘()’, ‘()’, ‘()’, ‘()’, ‘()’의 운자로 지은 칠언율시 1, ‘()’, ‘()’, ‘()’, ‘()’, ‘()’의 운자로 지은 칠언율시 4, ‘()’, ‘()’, ‘()’, ‘()’, ‘()’의 운자로 지은 칠언율시 1, ‘()’, ‘()’, ‘()’, ‘()’, ‘()’의 운자로 지은 칠언율시 1, ‘()’, ‘()’, ‘()’, ‘()’, ‘()’의 운자로 지은 칠언율시 4, ‘()’, ‘()’, ‘()’, ‘()’, ‘()’의 운자로 지은 칠언율시 2수가 실려 있다. 겨울 111년 만에 다시 열린 시회에서 벗을 만나 즐거움과 눈보라 치는 밤 정경 등을 읊은 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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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축(詩軸)이다. 최인식(崔仁植)이 평소 지은 시를 날짜순으로 기록한 것이다. 이 시축(詩軸)에는 칠언율시 90여 수가 실려 있다. 구체적으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입북리에서 유취정, 한심석과 함께 읊다[笠北里與柳翠汀韓心石共賦]라는 제목으로 지은 칠언율시 1, 관악의 연주암에 가다[行冠岳戀主菴]라는 제목으로 지은 칠언율시 1, 심석, 취정과 함께 읊다[與心石翠汀共賦]라는 제목으로 지은 칠언율시 1, 유 선생과 함께 읊다[逢柳先生共賦]라는 제목으로 지은 칠언율시 1, 이월암 어른이 지은 항미정 시에 차운하다[次李月菴丈杭眉亭韻]라는 제목으로 지은 칠언율시 2, (), (), (), (), ()의 운자로 지은 칠언율시 5, 입북서당의 여러 벗들과 함께 읊다[與笠北書堂諸益共賦]라는 제목으로 지은 칠언율시 1, 한밤에 홀로 짓다[夜中獨作]라는 제목으로 지은 칠언율시 2, 서울로 가는 김관남에게 주어 이별하다 2[贈別金冠南送京城二首]라는 제목으로 지은 칠언율시 5, 여주로 전직하는 농업 기수 이병기에게 주어 작별하다[贈農業技手李秉夔轉職于驪州送別]라는 제목으로 지은 칠언율시 2, 취정, 소석과 함께 읊다[與翠汀素石共賦]라는 제목으로 지은 칠언율시 4, 취정, 심석과 함께 읊다[與翠汀心石共賦]라는 제목으로 지은 칠언율시 1, 항미정을 방문하다[過杭眉亭]라는 제목으로 지은 칠언율시 1, 입북서당에서 짓다[笠北書堂作]이라는 제목으로 지은 칠언율시 3, 추석에 달을 읊다[中秋月]라는 제목으로 지은 칠언율시 1, 심석과 취정을 방문하였는데 심석이 없어서 짓다[訪心石翠汀無心石而作]라는 제목으로 지은 칠언율시 1, 입북서당을 방문하다[過笠北書堂]라는 제목으로 지은 칠언율시 2, 문혜공의 재실을 중수하고 짓다[文惠公齋室重修韻]라는 제목으로 지은 칠언율시 3, 220일에 여러 벗들과 함께 읊다[二月念吾與諸益共賦]라는 제목으로 지은 칠언율시 1, 416일 입농과 함께 읊다[四月十六日與笠農共吟]라는 제목으로 지은 칠언율시 1, 용주사에 갔다가 돌아와서 짓다[行龍珠寺歸吟]라는 제목으로 지은 칠언율시 2, 표질(表姪) 홍현철(洪顯喆)에 대한 만사1, 제목이 없는 시 3, 현산에서 물고기를 삶다[峴山煮魚]라는 제목으로 지은 칠언율시 2, 벗 유석정을 보내며[送友人柳錫珽]라는 제목으로 지은 칠언율시 2, 추석에 벗들과 함께 짓다[秋夕與諸益共賦]라는 제목으로 지은 칠언율시 1, 의남 한익교와 함께 읊다[與義南韓翊敎共賦]라는 제목으로 지은 칠언율시 2, 한밤에 홀로 짓다[夜中獨作]라는 제목으로 지은 칠언율시 3, 924일 벗을 만나 짓다[九月念四日逢友以作]라는 제목으로 지은 칠언율시 1, 만취의 시에 차운하다[次晩翠韻]라는 제목으로 지은 칠언율시 1, 당포로 입구에서 벗들을 만나다[棠浦路口逢諸益]라는 제목으로 지은 칠언율시 1, 입북서재를 방문하다[訪笠北書齋]라는 제목으로 지은 칠언율시 2, 한심석을 용호동에서 송별하다[韓心石送別于龍虎洞]라는 제목으로 지은 칠언율시 1, 822일 밤에 김삼청 형과 함께 짓다[八月念二日夜與金三淸兄共賦]라는 제목으로 지은 칠언율시 1, 한동석을 만나 함께 읊다[逢韓東錫共賦]라는 제목으로 지은 칠언율시 1, 삼성리 팔담가에서 짓다[三星里八潭家作]라는 제목으로 지은 칠언율시 1, 심석의 집을 방문하다[訪心石家]라는 제목으로 지은 칠언율시 2, 농촌진흥회를 만들다[作農村振興會]라는 제목으로 지은 칠언율시 1, 서리 내릴 때 기러기 날다[霜鴻]라는 제목으로 지은 칠언율시 2, 국사의 시에 차운하다[次菊史韻]라는 제목으로 지은 칠언율시 2, 심석과 함께 짓다[與心石共賦]라는 제목으로 지은 칠언율시 1, 심석이 사는 임곡을 방문하다[訪心石林谷]라는 제목으로 지은 칠언율시 2, 우연히 읊다[偶吟]이라는 제목으로 지은 칠언율시 1, 오산에 유거하는 이성재를 방문하다[訪烏山幽居李鍟齋]라는 제목으로 지은 칠언율시 1수이다.

 

14 217

시축(詩軸)이다. 앞면과 뒷면에 칠언율시 140여 수가 실려 있다. 금미가 스스로 운을 부르다[錦眉自呼], 금미가 졸작으로 읊조리다[錦眉拙吟]등의 제목이 있는 것으로 보아 기록한 사람은 금미(錦眉)인 듯하다. 시 앞에 두 줄로 운자를 써 두었고, 간혹 끝에 작은 글씨로 제목을 적어 두어 일률적이지 않으니 한때 작성한 것이 아니라 시를 지을 때마다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맨 처음에 산(), (), (), (), ()의 운자로 지은 칠언율시 2수는 우강(愚崗)과 금미(錦眉)가 지은 것이고, 이 뒤로 운자를 앞에 적은 것은 대부분 우강과 금미가 지은 시이다. 끝에 시 제목을 적은 것이 여러 수 보인다. 시 제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제천 길현구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전송하다[送堤川吉鉉九歸仁港], 근심을 떨치려고 스스로 짓다[挑悶自題], 단양(端陽), 갑자기 지난 일을 추억하여 스스로 읊조리다[忽憶往者事而自吟], 금미가 스스로 운을 부르다[錦眉自呼], 비가 내리는 것을 기뻐하여 즉시 읊다[喜雨卽吟], 백운대사를 전송하고 이어서 읊조리다 1[送白雲大師仍吟一首], 또 읊조리다[又吟], 71일에 다시 읊조리다[七月一日更吟], 칠석 밤에 짓다[七夕夜], 10일 처서에 더위로 미칠 듯하여 부질없이 짓다[十日處暑故謾吟吾狂], 정영여에게 주다[贈鄭榮汝], 금미가 졸작으로 읊조리다[錦眉拙吟]」 「추석에 우연히 읊조리다[秋夕偶吟]등이다.

 

15 218

시축(詩軸)이다. 칠언율시 17수가 실려 있으며, 제목은 적혀 있지 않다. 시 앞에 기록된 다섯 글자는 운자이다. 시 뒤에 작자의 호가 기록되어 있는데, 소죽(少竹)과 취정(翠汀)이다. 두 사람이 함께 있으면서 지은 시로 보인다. 나뭇잎이 떨어지는 계절에 친구 집을 방문하여 아이들의 글 읽는 소리를 듣는 기쁨과 노년의 심회를 읊조린 시들이다.

 

16 219

시축(詩軸)이다. 칠언율시 26수가 실려 있다. 첫 수에 무인(戊寅)이라는 간지가 있는 것으로 보아 1950년부터 기록한 듯하다. 앞에는 작자의 고모부인 홍대집(洪大集)의 회갑을 축하하기 위해 지은 10수의 축수시가 실려 있다. 후반부는 벗들과 교유하면서 지은 시와 만사 등이 있다. 시 제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고모부 홍대집의 회갑을 축하하는 시[姑母夫洪大集晬詩], 정연찬수운[鄭然燦晬韻], 삼리 신학수 춘장의 회갑연에서 짓다[三里申鶴洙春丈晬席韻], 해릉 어른이 지은 독산산성 시에 차운하다[次海陵丈禿山山城懷古韻], 국사 윤병일에 대한 만사[挽尹菊史秉馹], 석천 별장에서 여러 벗들과 함께 짓다[石泉別庄與諸益共賦], 취정을 방문하고 읊다[訪翠汀以吟], 금미와 함께 읊조리다[與錦眉共吟], 한식날 죽은 동생의 무덤에 떼를 입히고 돌아오다[寒食亡弟墳墓莎草以歸], 금미를 그리워하다[思錦眉]등이다.

 

17 220

시축(詩軸)이다. 칠언율시 11수가 실려 있다. 1929년 최태헌(崔泰憲)이 회갑을 맞은 감회를 시로 지은 원운(原韻)과 뒤에 이어지는 시들은 친척들과 하객들의 차운시(次韻詩)이다. 이 시의 운자는 평성(平聲) 진운(眞韻)에 속하는 ()’(1), ‘()’(2), ‘()’(4), ‘()’(6), ‘()’(8)이다. 이 시들은 최태헌의 회갑 축시(祝詩)를 모은 ?수연보장(壽筵寶藏)?에도 실려 있다. 최태헌의 원운은 다음과 같다.

 

吾門遐壽賴先仁 우리 가문의 장수는 선대의 인자함에 힘입었으니

來賀衣冠盡四隣 와서 축하는 하객들 사방에서 다 모였네

華萼相光同飾喜 자손들이 차려주는 잔치 기쁘고

蓼莪宿感復如新 길러주신 부모님 생각에 감회가 새롭네

鏡中白髮千莖雪 거울 속 흰머리는 천 갈래 눈 길 같고

甕裏紅潮十斗春 항아리 속 붉은 얼굴은 열 말 술로 봄이 되었네

妻老子成孫輩列 처는 늙고 자식 장성하여 손자들이 줄지어 있으니

夢緣容易六旬人 꿈처럼 금방 육순에 이르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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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축(詩軸)이다. 칠언율시 37여 수가 실려 있으며, 제목은 적혀 있지 않다. 시 앞에 운자를 제시하였고, 시 뒤에 작자의 호를 기록하였다. 작가는 우강(愚崗)과 추금(秋錦), 학농(鶴農)이다. 세 사람이 함께 있으면서 지은 시로 보인다. 후반부에는 작가를 밝히지 않은 송석천을 방문하다[訪宋石泉], 삼정리에 사는 누이를 방문하고 짓다[訪三井里居姊弟以作], 그냥 읊조리다[漫吟], 성내에서 시회가 있다는 말을 듣고 참석하지 못한 것을 탄식하여 짓다[聞城內詩會歎未參以作], 홍 국사 댁을 방문하여 함께 짓다[訪洪菊史宅會吟], 추석(秋夕)이라는 제목의 시가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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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축(詩軸)이다. 우강 노형의 고요한 궤석을 읊다[愚崗老兄靜几]라는 제목의 칠언율시와 ?동국정운(東國正韻)?의 운자 순서를 따라 각 시에 동일한 운을 반복하여 지은 칠언절구가 실려 있다. 이를테면 柳綠桃紅小院東, 銅魚風外響丁東. 遲遲春日無人過, 金繡霍鞋在戶東.”이라는 시는 1, 3, 4연에 모두 ()’자 운을 썼다. 동국정운의 운자 순서를 따라 지은 칠언절구는 ()’자 운부터 ()’자 운까지 사용하여 지었다. 문서가 많이 훼손되어 있고 작성자가 기재되어 있지 않아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