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서발/포산문헌세고서

포산문헌세고

황성 2009. 2. 9. 13:31

苞山文獻世攷序

 

월조가(月朝家)는 우리 동방 인물의 성대함을 헤아리니, 포산(苞山) 곽씨에 이르러서 문득 손가락으로 헤아릴 수 없다. 대개 그 선대에 충효(忠孝)․훈열(勳烈)․문학(文學)․풍재(風裁)로 그 벌열(閥閱)을 이루어 자손들이 대대로 전하여 계속 이어지며 가문을 이루어서 일찍이 쇠퇴하지 않았다.

아! 옛적 암곡(巖谷) 공이 홍농(弘農)으로부터 동쪽으로 배를 타고 오니 토지를 내리고 시호를 하사하여 처음 기업을 닦은 조상이 되었고, 이어서 거경(鉅卿)과 석보(碩輔)가 빛나게 서로 계승하여 명종(明宗)과 선조(宣祖)의 즈음에 미쳐서 더욱 빛나고 드러나서 12 정려(旌閭)와 일문삼강(一門三綱)을 비록 아녀자와 촌부 하인이라도 전하여 말하지 않는 이가 없었는데, 자세히 그 보첩(譜牒)을 상고하면 전후에 충성과 훈열이 있는 이는 16인이 되고, 효성스러운 행실로 일컬어지는 이는 100여 인이요, 열녀(烈女)의 행실로 소문 난 이는 60여인이며, 문학(文學)과 학문(學問)으로 이름 난 사람은 140여인이요, 생원과 진사시에 합격한 이는 194인이며, 대과(大科)과 급제한 사람은 70여인이며, 나머지 무과에 합격한 사람과 음직(蔭職)으로 벼슬한 사람은 모두 300여인이 되니, 많구나! 바야흐로 우리나라의 명문 가문이라 말할 수 있다. 모두 행장(行狀)과 묘갈(墓碣)이 있어서 천고(千古)에 드러낼/ 수가 있으나 돌에 새긴 것은 길은 각각 고을을 달리하고 원고에 적힌 것은 집집마다 각각 상자를 달리하여 여러 아름다운의 모임을 헤아리고 통일된 성대함을 볼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 후손인 곽주곤(郭柱坤)․곽우영(郭佑泳)․곽재근(郭在根)․곽종구(郭鍾九)가 먼 지방과 가까운 곳의 것을 수집하고 채록하여 모으고 정리하여 암곡(巖谷) 공 이하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무릇 하나의 절개와 하나의 선행을 말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모으고 모두 실어서 한 가문의 문헌(文獻)을 이루어서, 장차 무궁한 후세에 징험이 있고자 한다. 지금 인륜이 무너진 시대를 당하여 진실로 효자와 자손(慈孫)이 아니면 어찌 능히 이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이미 이룬 것을 엮어서 수민(手民)에게 주어서 나에게 서문을 써 줄 것을 부탁하였다. 돌아보건대 이것은 덕과 문장이 없으면 그 어찌 능히 큰 역사(役事)를 할 수 있겠는가? 나는 포산 곽씨에 대해서 진실로 연파(連波)의 정분이 있어 끝내 사양할 수 없어서 대략 그 대개를 책의 머리에 서술한다.

도유(屠維) 단알(單閼) 수요절(秀葽節)에 성산(星山) 배병한(裴炳翰)은 삼가 서문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