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송팔대가문초/한문공문초 권지7

권7

황성 2009. 2. 2. 09:31

唐宋八大家文鈔巻七

明茅坤撰

昌黎文鈔七

 

送孟東野序

 

一鳴字成文 乃獨倡機軸 命世筆力也 前此惟漢書 叙蕭何追韓信 用數十亡字

 

太凡物不得其平則鳴 草木之無聲 風撓之鳴 水之無聲 風蕩之鳴 其躍也 或激之 其趨也 或梗之 其沸也 或炙之 金石之無聲 或擊之鳴 人之於言也 亦然 有不得巳者而後言 其謌也有思 其哭也有懐 凡出乎口而為聲者 其皆有弗平者乎 樂也者 鬱於中而泄於外者也 擇其善鳴者而假之鳴 金石絲竹匏土草木八者 物之善鳴者也 維天之於時也 亦然 擇其善鳴者而假之鳴 是故 以鳥鳴春 以雷鳴夏 以蟲鳴秋 以風鳴冬 四時之相推敓 其必有不得其平者乎 其於人也 亦然 人聲之精者為言 文辭之於言 又其精也 尤擇其善鳴者而假之鳴 其在唐虞 臯陶禹 其善鳴者也而假以鳴 䕫弗能以文辭 鳴又自假於韶以鳴 夏之時 五子以其歌鳴 伊尹鳴殷 周公鳴周 凡載於詩書六藝皆鳴之善者也 周之衰 孔子之徒 鳴之 其聲大而逺 傳曰天將以夫子為木鐸 其弗信矣乎 其末也 莊周以其荒唐之辭鳴 楚大國也 其亡也 以屈原鳴 臧孫辰 孟軻 荀卿 以道鳴者也 楊朱 墨翟 管夷吾 晏嬰 老聃 申不害 韓非 眘到 田駢 鄒衍 尸佼 孫武 張儀 蘇秦之属 皆以其術鳴 秦之興 李斯鳴之 漢之興 司馬遷 相如 揚雄 最其善鳴者也 其下魏晉氏 鳴者 不及於古 然亦未嘗絶也 就其善者 其聲清以浮 其節數以急 其辭淫以哀 其志弛以肆 其為言也 亂雜而無章 將天醜其徳 莫之顧耶 何為乎不鳴其善鳴者也 唐之有天下 陳子昻 蘇源明 元結 李白 杜甫 李觀 皆以其所能鳴 其存而在下者 孟郊東野 始以其詩鳴 其髙出魏晉 不懈而及於古 其他 浸淫乎漢氏矣 從吾遊者 李翺 張籍 其尤也 三子者之鳴 信善矣 抑不知天將和其聲 而使鳴國家之盛耶 抑將窮餓其身 思愁其心腸 而使自鳴其不幸耶 三子者之命則懸乎天矣 其在上也 奚以喜 其在下也 奚以悲 東野之役於江南也 有若不釋然者 故吾道其命於天者以解之

대체로 물건이 그 화평함을 얻지 못하면 우니, 초목이 소리가 없는 것을 바람이 흔들어 울게 하고, 물이 소리가 없는 것을 바람이 일렁여 울게 하며, 물이 뛰어오르는 것은 무엇인가가 치기 때문이요, 물이 달려가는 것은 무엇인가가 막기 때문이요, 물이 끓는 것은 혹 불을 때기 때문이며, 금석이 소리가 없는 것을 혹 쳐서 울리기도 한다. 사람의 말에 있어서도 그러하여 부득이 한 것이 있은 뒤에야 말을 한다. 그 노래함은 생각이 있어서이고 곡함은 그리움이 있어서이니, 무릇 입에서 나와 소리가 됨은 아마도 모두 화평호지 못함이 있어서일 것이다.

음악이라는 것은 마음속이 답답한 것을 밖에 펴는 것이다. 그 중에 잘 우는 것을 골라 빌려 울게 하니, 금석사죽포토혁목의 여덟 가지 악기의 재료는 물건 중에 잘 우는 것들이다. 하늘이 사시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하여 잘 우는 것을 골라 빌려 울게 한다. 그러므로 새로써 봄을 울리고 우레로써 여름을 울리며, 벌레로써 가을을 울리고 바람으로써 겨울을 울리니, 사가가 서로 밀어내고 빼앗음에 그 반드시 화평함을 얻지 못함이 있는가?

사람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하니, 사마의 소리 중에 정한 것은 말이 되며, 문장은 말중에서도 더욱 정한 것이다. 그러기에 더욱 잘 우는 것을 빌려 울리니, 요순시대에는 고요와 우임금이 잘 우는 자이니 빌려 울렸으며, 하나라 때엔 다섯 사람이 노래로써 울렸고, 이윤은 은나라에 울렸고, 주공은 주나라에 울렸으니, 무릇 시서 6예에 실려 있는 것은 모두 울기를 잘한 것들이다. 주나라가 쇠락함에 공자의 무리들이 울렸으니, 그 소리가 크고 멀리 퍼졌다. 논어에 이르기를, “하늘이 장차 부자로써 목탁을 삼을 것이다.”고 하였으니, 어찌 사실이 아니겠는가? 주나라 말기에 장주는 황당한 말로써 초나라에 울렸으니, 초나라는 대국이므로 초나라가 망할 때에는 굴원으로써 울렸다. 장손진 맹가 순경은 도로써 울린 자요, 양주 묵적 관이오 안영 노담 신불해 한배 신도 전병 추연 시교 손무 장의 소진의 무리들은 모두 그 학술로 울렸다. 진나라가 일어났을 때에는 이사가 울렸고, 한나라 때에는 사마천 상여 양웅이 가장 울리기를 잘한 사람들이다. 그 이후로 위나라와 진나라는 울린 사람들이 옛사람에 미치지 못하지만 또한 일찍이 끊기지 않았다. 그러나 울리기를 잘한 사람을 가지고 말하더라도 그 소리가 맑으면서 부화하고 그 곡절이 너무 빨라 급하며 그 말이 음탕하여 슬프고 그 뜻이 풀어져서 방사하며 그 말이 난잡하여 법도가 없으니, 아마도 하늘이 그 덕을 추하게 여겨 돌아보지 않아서가 아니랴? 어찌하여 울리기를 잘하는 사람들을 울리게 하지 않았는가?

당나라가 천하를 소유함에 진자앙 소원명 원결 이백 두보 이관이 모두 자기의 능한 것으로 세상에 울렸다. 생존하여 아래에 있는 사람으로 맹교 동야가 비로소 그 시로써 울리니, 그 높음이 위진시대를 뛰어넘어 게을리하지 않아 옛날에 미치고, 기타의 문장들은 한나라 때에 빠져 있으며, 나와 교유하는 사람으로 이고와 장적이 그 뛰어난 사람들이다. 이 세 사람의 울림은 진실로 그 울리기를 잘한다. 하늘이 장차 그 소리를 화하게 하여 국가의 성대함을 울리게 할 것인가? 아니면 그 몸을 곤궁하게 하고 굶주리게 하며 그 마음 속을 그립게 하고 근심스럽게 하여 스스로 자신의 불행함을 울게 할 것인가 알지 못하겠다. 세 사람의 ㅁ여은 하늘에 달려 있으니, 윗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어찌 기쁠 것이 있으며 아랫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어찌 슬플 것이 있겠는가? 동아가 강남의 부임지로 떠남에 기뻐하지 않는 기색이 있으므로 나는 그 명이 하늘에 있음을 말하여 이를 풀어주노라.

唐荆川曰此篇文字錯綜立論乃爾竒則筆力固不可到也

 

此篇將牽合入天成乃是筆力神巧與毛頴傳同而雄邁過之

 

送董邵南序

 

文僅百餘字而感慨古今 若與燕趙豪儁之士 相為叱咤嗚咽 其間一涕一笑 其味不窮 昌黎序文 當属第一首

문자가 겨우 백 여 이지만 고금에 감개하니, 마치 연나라 조나라의 호걸스러운 선비와 더불어 꾸짖고 오열하여 그 사이에 한 번 울고 한 번 웃는 듯 하니, 그 맛이 다함이 없으니 창려의 서문 가운데 마땅히 으뜸이다.

燕趙 古稱多慷慨悲歌之士 董生舉進士 連不得志於有司 懐抱利器 鬱鬱適兹土 吾知其必有合也 董生勉乎哉 夫以子之不遇時 茍慕義彊仁者 皆愛惜焉 矧燕趙之士 出乎其性者哉 然吾嘗聞風俗與化移易 吾烏知其今不異於古所云耶 聊以吾子之行 卜之也 董生勉乎哉 吾因子有所感矣 為我弔望諸君之墓 而觀於其市 復有昔時屠狗者乎 為我謝曰明天子在上 可以出而仕矣

조나라와 연나라 사이에 예부터 감개하고 비분한 선비가 많다고 말하였다. 동생이 진사 시험에 응시하여 이어서 담당관리에게 뜻을 얻지 못하고 마음에 날카로운 기물을 안고 울울하게 연나라와 조나라로 떠나니, 내 그 반드시 합함이 있음을 알겠다. 동생은 힘쓸지어다.

대저 그대가 시절을 만나지 못한 것으로 진리로 의를 사모하고 인을 힘쓰는 사람들이 모두 애석해 하니, 하물며 조나라와 연나라의 선비가 그 성품에서 나온 자에 있어서랴? 그러나 내 일찍이 듣건대, “풍속은 교화와 더불어 바뀌기 쉽다.”라고 하니, 내 어찌 지금이 옛날에 말한 것과 다르지 않음을 알겠는가? 애오라지 그대의 행차로 점치니, 동생은 힘쓸지어다.

내 그대로 인하여 느낀 것이 있으니, 나를 위하여 망저군의 묘소에 조문하고 그 시장을 봄에 다시 옛적 시장에서 개를 잡는 사람이 있다면 나를 위하여 사례하여 말하길, 현명한 천자가 지위에 계시니 나가서 벼슬할 수 있다고 하라.

 

送王秀才序

 

轉掉如弄蛇 如興雲 總不遇之感 借酒上簸弄

전도함이 뱀을 희롱하는 듯 구름을 일으키는 듯하여 불우함의 느낌을 총괄하여 술을 빌려 파롱하였다.

吾少時 讀醉鄉記 私怪隠居者 無所累於世而猶有是言 豈誠㫖於味耶 及讀阮籍陶潛詩 乃知彼雖偃蹇不欲與世接 然猶未能平其心 或為事物是非相感發 於是有託而逃焉者也 若顔氏子操瓢與簞 曾參歌聲若出金石 彼得聖人而師之 汲汲每若不可及 其於外也 固不暇 尚何麴蘖之託而昏冥之逃耶 吾又以為悲醉鄉之徒不遇也 建中初 天子嗣位 有意貞觀開元之丕績 在廷之臣争言事 當此時 醉鄉之後世 又以直廢 吾既悲醉鄉之文辭 而又嘉良臣之烈思 識其子孫 今子之来見我也 無所挟 吾猶將張之 况文與行 不失其世守 渾然端且厚 惜乎 吾力不能振之 而其言不見信于世也 於其行 姑與之飲酒

내 젊을 때 취향기를 읽고 개인적으로 은거하는 사람은 세상에 얽매임이 없는데, 오히려 이 말을 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였으니, 어쩌면 진실로 술맛에 뜻을 두었는가? 완적과 도잠의 시를 읽고 곧 저들이 비록 언건하게 세상 사람과 만나지 않지만, 그러나 오히려 그 마음을 평정하지 못하여 혹은 사물의 시비가 서로 감발하여 이에 의탁하여 달아난 것이 있다.

안연이 표주박과 대그릇을 잡음과 증삼의 노래 소리가 금석에서 나온 듯 함은 저들이 성인을 만나 스승으로 섬겨 급급하게 매번 마치 미치지 못하는 듯 하여 그 밖에는 진실로 겨를이 없었으니, 오히려 어찌 술에 의탁하고 혼명으로 달아나겠는가? 내 또 취향의 무리가 불우함을 생각하였다. 건중 초에 천자가 제위를 계승하여 정관과 개원 연간의 큰 공적을 계승하려는 뜻이 있으니 조정에 있는 신료들이 다투어 일을 말하였다. 이때에 취향의 후손이 또 정직함으로 쫓겨났다. 내 이미 취향의 문장을 아까워하고 또 어진 신하의 반열을 가상하게 여기서 그 자손을 알기를 생각하였다. 지금 그대가 와서 나를 봄에 끼는 바가 없으니 내 오히려 장차 장대하게 하려는데, 하물며 문장과 행실이 그 대대로 지킴을 잃지 않아서 혼연히 바르고 두터우니, 애석하구나 내 힘이 능히 떨치지 못하고 나의 말이 세상 사람들을 믿게 하지 못함이여. 그 행차에 우선 함께 술을 마신다.

 

送王秀才序

通萹以孟子作主 是退之立自已門户 故其文有雄視一世氣

전체 글이 맹자로 주장하니, 이것은 퇴지가 자신의 문호를 세웠기 때문에 그 문장이 일세를 웅시하는 기상이 있다.

 

吾常以為孔子之道大而能博 門弟子不能徧觀而盡識也 故學焉 而皆得其性之所近 其後離散分處諸侯之國 又各以所能授弟子 原逺而末益分 盖子夏之學 其後有田子方 子方之後流而為莊周 故周之書 喜稱子方之為人 荀卿之書 語聖人 必曰孔子子弓 子弓之事業 不傳 惟太史公書弟子傳 有姓名字曰馯臂子弓 子弓受易於商瞿 孟軻師子思 子思之學 盖出曽子 自孔子没 羣弟子 莫不有書 獨孟軻氏之傳 得其宗 故吾少而樂觀焉 太原王塤 示予所為文好舉孟子之所道者 與之言 信恱孟子而屢賛其文辭 夫沿河而下 茍不止 雖有遲疾 必至於海 如不得其道也 雖疾不止 終莫幸而至焉 故學者 必慎其所道 道於楊墨老莊佛之學 而欲之聖人之道 猶航斷港絶潢 以望至於海也 故求觀聖人之道 必自孟子始 今塤之所由 既幾於知道 如又得其船與檝 知沿而不止 嗚呼 其可量也哉

내 항상 생각하기를, 공자의 도가 크고 능히 넓어 문하의 제자가 능히 두루 보고 다 알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공자의 도를 배웠지만 모두 그 성품의 가까운 것을 얻어서 그 후에 떨어져 제후의 국가에 나누어 거처하고, 또 각각 능한 것을 제자에게 가르쳐 주니 근원이 멀어짐에 말류가 더욱 나누어졌다.

자하의 학문이 그 뒤에 전자방이 있고 자방의 뒤에 흘러 장주가 되었다. 그러므로 장자 책에 자방의 사람됨을 칭찬함을 좋아하였다. 순자의 책은 성인을 말함에 반드시 공자와 자궁이라고 말했다. 자궁의 사업은 전해지지 않고, 오직 사마천의 사기 중니제자열전에 성명이 있으니, 간벽 자궁(馯臂子弓)이라고 하였다. 자궁이 상구에게 주역을 수업받고, 맹자는 자사를 스승으로 삼으니 자사의 학문은 대개 증자에게서 나왔으니 공자가 죽고 여러 제자들이 많이 책을 남겼지만, 유독 맹자의 전함이 그 종주를 얻었다. 그러므로 내 젊었을 때 즐겨 보았다. 태원 왕훈이 나에게 자신이 지은 문장을 보여줌에 맹자가 말한 것을 거론함을 좋아하였다. 그와 더불어 말함에 맹자를 믿고 기뻐하여 여러 번 그 문장을 칭찬하였다.

대저 하수를 따라 내려가서 진실로 그치지 않는다면 비록 더디고 빠름이 있지만 반드시 바다에 이르고, 만일 그 길을 얻지 못한다면 비록 빠르고 그치지 않더라도 끝내 다행하게 이르지 못한다. 그러므로 학자는 반드시 그 길삼는 것을 삼가니 양주 묵적 노자 장자와 불교는 학문에 길삼아 성인의 도에 나아가고자 함은 오히려 끊어진 물결에 배를 항해하여 바다에 이르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성인의 도를 관찰하기를 구한다면 반드시 맹자로부터 시작한다. 지금 훈이 말미암는 바가 이미 도를 아는 것에 가까우니 만일 또 그 배와 노를 얻어서 흐름을 알고 그치지 않는다면 아. 그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唐荆川曰此是立主意之文 而緊要 全在好舉孟子之所道者一句

 

送齊皥下第序

 

大鬯已嫉時之論而入齊生纔數語只㸔他操縱如意處

크게 자신의 세상을 미워하는 논의를 펼치면서 제생에게 들어가서는 겨우 수 마디이니 그의 조종이 여의한 곳을 단지 볼 것이다.

(大鬯의 鬯의 뜻을 暢으로 보긴 보았는데 애매함)

 

古之所謂公無私者는 其取舍進退애 無擇於親疎遠邇하고 惟其宜 可焉하니 其下之視上也애 亦惟視其舉黜之當否하고 不以親疎逺邇로 疑乎其上之人이라 故고 上之人行志擇誼애 坦乎其無憂於下也하고 下之人克已慎行애 確乎其無惑於上也라 是故로 為君不勞而為臣甚易하야 見一善焉이면 可得詳而舉也하고 見一不善焉이면 可得明而去也러니 及道之衰하야 上下交疑하니 於是乎 舉讐舉子之事가 載之傳中而稱美之而謂之忠이라 見一善焉이라도 若親與邇면 不敢舉也하고 見一不善焉이라도 若疎與逺이면 不敢去也라 衆之所同好焉이나 矯而黜之라야 乃公也라하고 衆之所同惡焉이나 激而舉之라야 乃忠也라하니 於是乎 有違心之行하고 有拂志之言하며 有内媿之名한대 若然者를 俗所謂良有司也라 膚受之訴 不行於君하고 巧言之誣 不起於人矣하니 嗚呼라 今之君天下者 不亦勞乎아 為有司者 不亦難乎아 為人向道者 不亦勤乎아 是故로 端居而念焉하니 非君人者之過也요 則曰有司焉 則非有司之過也요 則曰今舉天下人焉 則非今舉天下人之過也라 盖其漸有因하고 其本有根하야 生於私其親하고 成於私其身하야 以已之不直而謂人皆然하니 其植之也 固久하고 其除之也 實難하니 非百年必世면 不可得而化也요 非知命不惑이면 不可得而改也하니 已矣乎라 其終能復古乎아 若髙陽齊生者는 其起予者乎인저 齊生之兄이 為時名相하야 出藩于南하고 朝之碩臣이 皆其舊交하니 齊生이 舉進士애 有司用是連枉齊生하니 齊生不以云하고 乃曰我之末至也하니 有司其枉我哉인저 我將利吾器而俟其時耳라하고 抱負其業하야 東歸其家하니 吾觀於人애 有不得志 則非其上者衆矣요 亦莫計其身之短長也인대 若齊生者既至矣 而曰我未也라하고 不以閔於有司하니 其不亦鮮乎哉아 吾用是知齊生後日誠良有司也요 能復古者也요 公無私者也요 知命不惑者也라

옛날에 이른 바 ‘공평되고 사사로움이 없다.’는 것은 그 등용하고 등용하지 않음과 나아가고 물러남에 친소원근을 가리지 않고 오직 그 마땅함으로 하는 것이 가하였으니, 그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봄애 또한 오직 등용하고 물리침의 합당하고 그렇지 않음을 보았고, 친함과 소원함 멀고 가까움으로 그 윗사람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윗사람이 뜻을 실행하고 마땅함을 가림에 편안하게 아랫사람에게 근심이 없었고, 아랫사람은 자신을 닦아 행실을 삼감에 확고하게 윗사람에게 의혹이 없었다. 이 때문에 군주가 수고롭지 않고 신하되기 매우 쉬워서 한 선을 보면 자세히 살펴 선발할 수 있고, 한 불선을 보면 밝혀 버릴 수 있었다.

도가 쇠락함에 미쳐서 상하가 서로 의심하니, 이에 원수를 선발하고 자식을 선발하는 일이 전기(춘추좌전)에 실려서 칭찬하고 아름답게 여겨 충성스럽다고 말하였다. 한 선함을 보더라도 만약 친척이고 가깝다면 감히 선발하지 못하고, 한 불선을 보더라도 만약 소원하고 멀다면 감히 물리치지 못한다. 여러 사람이 같이 좋아하지만 바로잡아 물리쳐야지만 곧 공정함이라하고, 여러 사람들이 같이 싫어하지만 격앙하여 등용해야지만 곧 충정이라고하니, 이에 마음을 어기는 행실이 있고 뜻을 거스르는 말이 있으며 안으로 부끄러운 이름이 있는데 이와같은 자를 세속에서 이른 바 훌륭한 관리라고 한다.

피부로 받는 하소연이 군주에게 실행되지 않고 공교로운 말의 참소가 사람에게 일어나지 않으니, 아. 지금 천하에 군주가 된 사람은 또한 수고롭지 않으랴? 관리가 된 사람은 또한 어렵지 않겠는가? 사람을 위해 도에 뜻을 둔 사람은 또한 힘들지 않겠는가? 이 때문에 단정히 거처하여 생각하니, 군주의 잘못이 아니다. 유사의 잘못이라고 한다면 유사의 잘못은 아니다. 지금 천하의 사람을 등용한 이의 잘못이라고 한다면 지금 천하의 사람을 등용한 자의 잘못은 아니다. 대개 그 점점함은 원인이 있고 그 근본은 뿌리가 있으니 그 친족을 사사롭게 함에서 시작된고 그 몸을 사사롭게 함에서 이루어져서 자신의 곧지 않음을 가지고 남들이 모두 그러하다고 말하니, 그 심은 것은 진실로 오래되었고, 그 제거함은 진실로 어려우니, 백 년과 필세(30년)가 아니라면 변화될 수가 없고, 명을 알고 천명을 알고 현혹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면 고칠 수 없다. 그만이구나. 그 끝내 고풍을 회복할 수 있겠는가.

고양 땅의 제생과 같은 사람은 나를 흥기시키는 사람이구나. 제생의 형은 당시 이름 난 재상이 되어서 나가서 남쪽을 지키고 조정의 대신들은 모두 그와 오래 전부터 친분이 있었다. 재생이 진사시험에 응시하였지만 담당관리가 이 때문에 이어서 제생을 합격시키지 않으니 재상은 그것으로 말하지 않고, 곧 내가 지극하지 못하였으니 담당관리가 나를 꺾었을 것이다.(합격을 시키지 않았을 것이다.) 내 장차 나의 기량을 닦아서 그 때를 기다릴 뿐이라고 말하고, 그 사업을 업고 동쪽으로 고향 집으로 돌아가니 내 사람들에게서 보건대 뜻을 이루지 못하면 그 윗사람을 비난하는 사람이 많고, 또한 자신의 장단점을 생각하지 않는다. 제생과 같은 사람은 이미 지극한데도 내가 부족하다라고 말하고 담당관리를 원망하지 않으니, 그 또한 적을 것이다. 이 때문에 제생이 후일 진실로 훌륭한 유사가 될 것이고, 능히 고풍을 회복할 것이고, 공정하고 사의가 없는 사람이고, 천명을 알고 현혹되지 않는 사람임을 알겠다.

 

送何堅序

 

文旨甚漫於中하니 咀嚼之애 亦有一叚韻折이라

글의 뜻이 안에서 심히 퍼져있으니 곱씹음에 또한 일단 운절이 있다.

 

何於韓애 同姓為近이라 堅以進士舉하니 於吾為同業이라 其在太學也애 吾為博士요 堅為生하니 生과博士는 為同道하니 其識堅也十年이니 為故人이라 同姓而近也하며 同業也며 同道也며 故人也니 於其不得願而歸애 其可以無言邪야 堅道州人이니 道之守 陽公賢也라 道於湖南애 為属州요 湖南楊公이 又賢也요 堅為民한데 堅又賢也니 湖南이 得道為属하고 道得堅為民하니 堅歸애 唱其州之父老子弟하야 服陽公之令이요 道亦唱其縣與其比州하야 服楊公之令하라 吾聞 鳥有鳳者는 恒出於有道之國하니 當漢時애 黄霸為頴川할새 是鳥實集而鳴焉이라하니 若史可信인댄 堅歸애 吾將賀其見鳳而聞其鳴也已라

하씨는 한씨에 대해서 성을 함께하여 가깝고, 하견은 진사로 합격하니 나에 대해서 동업이 된다. 그가 태학에 있을 때 나는 박사가 되었고 견은 생도가 되었다. 생과 박사는 도를 함께함이 된다. 그 하견을 앎이 10년이니 벗이고, 동성으면서 가까움으며, 업을 같이 하며 도를 같이하며 친구이니 그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감에 그 말이 없을 수 있겠는가?

하견은 도주 땅 시람이다. 도주의 수령 양공(陽公)은 어질다. 도주는 호남에 있어서 소속된 고을이 되고 호남의 양공(楊公)은 또 어질고, 하견이 주민이 되었는데 하견은 또한 어지니, 호남이 도주를 얻어 속주로 삼고, 도주에서 하견을 얻어 백성으로 삼으니, 하견이 돌아감에 그 고을의 부로와 자제들을 창도하여 양공의 명령에 복종하게 하고, 도주도 또한 그 현과 이웃 주를 창도하여 양공의 명령에 복종하게 하라.

내 들으니, 새 가운데 봉황은 항상 법도가 있는 나라에 출현하니, 한나라 때 황패가 영주를 다스릴 때 이 새가 진실로 모여서 울었다. 만약 󰡔�사기󰡕�가 믿을 만하다면 하견이 돌아감에 내 장차 그 봉황을 보고 그 울음소리를 들을 것을 하례할 따름이다.

 

唐荆川曰此萹은 在短文中애 尚為竒作이다.

 

送區冊序

昌黎謫官時調 信悽惋慨慷

창려가 귀향가서 관직에 있을 때의 곡조이니, 진실로 처완하고 강개하다.

 

陽山天下之窮處也 陸有丘陵之險 虎豹之虞 江流悍急 横波之石 亷利侔劔㦸 舟上下失勢 破碎淪溺者 往往有之 縣郭無居民 官無丞尉 夹江荒茅篁竹之間 小吏十餘家 皆鳥言夷面 始至言語不通 畫地為字 然後可告以出租賦奉期約 是以賔客游從之士 無所為而至 愈待罪於斯 且半嵗矣 有區生者 誓言相好 自南海挐舟而来 升自賔階 儀觀甚偉 坐與之語 文義卓然 莊周云逃空虚者聞人足音跫然而喜矣 况如斯人者 豈易得哉 入吾室 聞詩書仁義之説 欣然喜若有志於其間也 與之翳嘉林 坐石磯 投竿而漁 陶然以樂 若能遺外聲利而不厭乎貧賤也 嵗之初吉 歸拜其親 酒壺既傾 序以識

양산은 천하의 궁벽한 곳이다. 육지에는 구릉의 위험과 맹수의 근심이 있고, 강물의 흐름이 세차 파도를 가로지르는 돌이 모서리의 날카로움은 칼과 같은 무기와 비슷하여 배가 오르 내림에 균형을 잃어 부서져 침몰하는 경우가 종종 있으며, 고을 성곽에는 거주민이 없고 관직은 승위(丞尉)가 없으며, 강을 끼고서 무성한 풀숲 사이에 아전들의 집 10여 채가 있는데, 모두 재잘거리며 얼굴이 다르니, 처음 이르러 말함에 언어가 소통되지 않아 땅에 글자를 쓴이후에 말하여 세금을 거두어 기약에 바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빈객들 가운데 유람하는 선비들은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다.

한유가 이곳에서 생활한지가 짐짓 반 년 정도 되었는데, 구생이라는 사람이 친하게 지내보자고 말하고 남해로부터 배를 타고 와서 빈객의 섬돌로 올라오니 모습이 매우 위엄이 있었으며, 앉아서 함께 말을 나누니 문장의 뜻이 탁월하였다. 장자가 이른 바 “허공으로 달아난 사람은 사람의 사그락그리는 발자국 소리를 듣고 기뻐한다.”고 하였는데, 하물며 이와 같이 훌륭한 사람을 어찌 쉬이 만날 수 있으랴? 나의 거실에 들어와 시서와 인의의 설명을 듣고 흔연히 기뻐하여 마치 그 사이에 뜻을 둔 듯하였다. 함께 좋은 숲 아래 돌가에 앉아 낚싯대를 던져 고지를 잡고 도연히 즐거워하니, 마치 명성과 이익을 외면하고 가난함을 싫어하는 듯 하였다. 새해에 돌아가 어버이를 뵈려하니, 술을 마시고 글을 써서 이별을 기록하노라.

 

别送李愿歸盤谷序

 

通篇全舉李愿説話自説只數語此又别是一格而其造語形容處則又鑄六代之長技矣

 

太行之陽 有盤谷 盤谷之間 泉甘而土肥 草木藂茂 居民鮮少 或曰謂其環兩山之間 故曰盤 或曰是谷也 宅幽而勢阻 隠者之所盤旋 友人李愿 居之 愿之言 曰人之稱大丈夫者 我知之矣 利澤施于人 名聲昭于時 坐于廟朝 進退百官 而佐天子出令 其在外 則樹旗旄羅弓矢 武夫前呵 從者塞途 供給之人 各執其物 夹道而疾馳 喜有賞怒有刑 才畯滿前 道古今而譽盛徳 入耳而不煩 曲眉豐頬 清聲而便體 秀外而惠中 飄輕裾翳長袖 粉白黛緑者 列屋而閒居 妒寵而負恃争 妍而取憐 大丈夫之遇知于天子 用力於當世者之所為也 吾非惡此而逃之 自有命焉 不可幸而致也 窮居而野處 升髙而望逺 坐茂樹以終日 濯清泉 以自潔 採於山美可茹 釣於水鮮可食 起居無時 惟適之安 與其有譽於前 孰若無毁於其後 與其有樂於身 孰若無憂於其心 車服不維 刀鋸不加 理亂不知 黜陟不聞 大丈夫不遇於時者之所為也 我則行之 伺候於公卿之門 奔走於形勢之途 足將進而趦趄 口將言而囁嚅 處穢汚而不羞 觸刑辟而誅戮 徼倖於萬一 老死而後止者 其於為人 賢不肖 何如也 昌黎韓愈聞其言而壯之 與之酒而為之歌曰

태항산 남쪽에 반곡이 있으니, 반곡의 사이는 샘물이 달고 토양이 비옥하여 초목이 무성하고 거주하는 사람이 적었다. 혹자는 말하기를, “두 산을 두른 사이이기 때문에 盤이라고 한다.”하고, 혹자는 말하기를 “터가 그윽하고 산세가 막혀 있어 은자가 소요하는 곳이기 때문이다.”하고 하였다.

친구인 이원이 이 곳에 살았는데, 이원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사람들이 대장부라 말하는 사람을 나는 알고 있으니, 이익과 혜택이 백성들에게 베풀어지고 명성이 세상에 빛나서 묘당과 조정에 앉아 백관들을 진퇴시키며 천자가 명령을 내림을 보좌하고, 밖에 있게 되면 깃발을 꽂고 궁시를 나열하여 무부들이 앞에서 꾸짖어 사람들을 물리치고 종자들이 길을 메우며, 공급하는 사람들이 각기 바치는 물건을 잡고서 도로 양쪽을 끼고 달리며, 기쁘면 상이 있고 노하면 형벌이 있으며, 재주 있는 사람과 준걸들이 앞에 가득하여 고금을 말하고 성덕을 칭송하여 귀에 들어와도 번거롭지 않으며, 외모가 빼어나고 마음이 은혜로워 가벼운 옷자락을 날리고 긴 소매로 얼굴을 가리며, 흰 분을 바르고 파랗게 눈썹을 그린 미녀들이 집에 늘어서 한가로이 살며 총애를 다투고 미모를 자부하며, 고움을 다투고 사랑을 취하려 함은 대장부가 천자에게 인정을 받아 당세에 힘을 쓰는 사람들의 행위이니, 나는 이것을 싫어하여 도피하는 것이 아니요, 이는 운명에 달려 있어서 용행으로 이룰 수가 없는 것이다. 곤궁하게 살아 들에 거주하고 높은 곳에 올라 먼 곳을 바라보며, 무성한 나무 아래에 앉아 날을 마치고 맑은 샘물에 씻어 스스로 깨끗이 하며, 산에서 채취함에 아름다운 나물을 먹을 수 있고, 물에서 낚시질함에 생선을 먹을 수 있다. 일어나고 앉는 것이 일전한 때가 없어 오직 알맞은 곳을 편안하게 여기니, 면전에서 칭찬받기보다는 무엇이 뒤에 훼방이 없는 것만 하겠으며, 몸에 즐거움이 있기보다는 마음에 근심이 없는 것만 하겠는가? 수레와 의복에 얽매이지 않고 칼고 톱의 형벌이 가해지지 않으며, 다스려짐과 혼란함을 알지 못하고 축출과 승진을 듣지 않음은 대장부러서 당싱에 불우한 사람의 행위이니, 나는 이것을 행하겠다. 공경의 문에서 안부를 살피며 권세의 길에서 분주하여 발을 장차 나아가려다가 머뭇거리고 입은 장차 말하려다가 머뭇거리며, 더러운 곳에 처하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형벌에 저촉되어 죽임을 당한다. 만에 하나 용행을 바라 늙어 죽은 뒤에야 그치는 사람은 그 사람됨의 어질고 어질지 못함이 어떠하겠는가?”하였다.

창려 한유가 이 말을 듣고 장하게 여겨 그에게 술을 주고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盤之中 반곡의 가운데여

維子之宫 그대의 집이요

盤之土 반곡의 땅이여

可以稼 그대가 농사짓는 곳이로다

盤之泉 반곡의 샘물이여

可濯可沿 씻을 수 있고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며

盤之阻 반곡의 막힘이여

誰争子所 누가 그대와 이곳을 다투겠는가?

窈而深 아늑하고 깊으니

廓其有容 넓어 용납할 수 있고,

繚而曲 빙둘러 굽어 있으니

如往而復 갔다 돌아오는 듯하도다

嗟盤之樂兮 아 반곡의 즐거움이여

樂且無殃 즐거움이 장차 다함이 없으리로다

虎豹逺跡兮 호랑이와 표범이 자취를 멀리함이여

蛟龍遁藏 교용이 도망하여 숨고

鬼神守護兮 귀신이 수호함이여

呵禁不祥 불길한 것을 꾸짖어 금하도다

飲且食兮 마시고 또 먹음이여

夀而康 장수하고 강녕하니

無不足兮 부족함이 없음이여

奚所望 다시 무엇을 바랄까?

膏吾車兮 내 수레에 기름치고

秣吾馬 내 말에 골을 먹여

從子于盤兮 반곡에서 그대 따라

終吾生以徜徉 나의 여생 미치도록 상양하리라

 

送廖道士序

文體如貫珠 只此一篇開永叔門户

문체가 마치 옥을 꿴 듯하니, 다만 이 한 편은 영숙(구양수)의 문호를 열었다.

五岳於中州 衡山最逺 南方之山 巍然髙而大者 以百數 獨衡為宗 最逺而獨為宗 其神必靈 衡之南八九百里 地益髙山益峻 水清而益駛 其最髙而横絶南北者 嶺 郴之為州 在嶺之上 測其髙下 得三之二焉 中州清淑之氣 於是焉窮 氣之所窮 盛而不過 必蜿蟺扶輿 磅礴鬱積 衡山之神既靈而郴之為州 又當中州清淑之氣 蜿蟺扶輿 磅礴而鬱積 其水土之所生 神氣之所感 白金水銀丹砂石英鍾乳 橘柚之包 竹箭之美 千尋之名材 不能獨當也 意必有魁竒忠信材德之民 生其間 而吾又未見也 其無乃迷惑溺没於佛老之學 而不出耶 廖師郴民而學於衡山 氣専而容寂 多藝而善遊 豈吾所謂魁竒而迷溺者耶 廖師善知人 若不在其身 必在其所與遊 訪之而不吾告 何也 於其别 申以問之

5악은 중국에서 형산이 가장 멀고 남방의 산이 우뚝히 높아 큰 것은 백으로 헤아리되, 유독 형산이 종산이 된다. 가장 멀고 유독 종산이 되니, 그 신은 반드시 신령하고, 형산의 남쪽 8,9백리에 땅이 더욱 높고 산이 더욱 험준하며 물이 맑고 더욱 세차게 달려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것이 嶺이니 郴의 주됨이 영의 위에 있어서 그 높고 낮음을 헤아리면 3분의 2 지점에 위치한다. 중국의 맑은 기운이 여기에서 다하니 기의 다하는 곳에 성대하고 지나치지 아니하여 반드시 蜿蟺 扶輿하고 충만하고 울적하니, 형산의 신이 이미 신령하고 침의 주됨이 또 중주의 맑은 기운이 완선 부여 방박하고 울적함을 당하니, 그 수토에서 자라는 것과 신령한 기운이 감응하는 바에 백금 수은 단사 석영 종유와 귤유의 총생과 竹箭의 아름다움과 긴 이름난 재목이 능히 홀로 감당할 수 없다. 생각건대, 반드시 괴기하고 충신하며 재덕을 갖춘 백생이 그 사에서 살거늘 내 또 아직 보지 못했으니, 아마 불교와 도교에 미혹되고 빠져서 나오지 않은 것이 아니랴?

요사는 침주의 백성으로 형산에서 공부하여 기운이 전일하고 용모가 고요하고 재주가 많고 노닒을 좋아하니 어쩌면 내가 이른 바 괴기하고 미혹된 사람인가? 요사는 사람을 잘 아니 그 몸에 있지 않다면 반드시 더불어 노니는 바가 있으리니, 방문함에 나에게 말하지 않음은 무엇 때문인가? 그와 이별함에 거듭 묻노라.

 

送張道士序

 

贈意在詩序言其故耳此文一體

 

張道士 嵩髙之隠者 通古今學 有文武長材 寄迹老子法中 為道士 以養其親九年 聞朝廷將治東方貢賦之不如法者 三獻書不報 長揖而去 京師士大夫 多為詩 以贈而属愈為序 詩曰

장도사는 숭고의 은자이니 고금의 학문에 통달하고 문무의 훌륭한 재주가 있어 자취를 노자의 법 가운데에 붙여 도사가 되어 그 어버이를 봉양한 지 9년에 조정에서 장차 동방의 조세 가운데 국법과 같은 않는 것을 고치려한다는 말을 듣고 3번 상소를 올렸으나 비답을 내리지 않아 길게 읍을 하고 떠나니, 경사의 사대부들이 많이 시를 지어 증별하고 한유에게 부탁하여 서문을 짓게 하였다. 시에 말하기를,

 

大匠無棄材 큰 장인은 재목을 버리지 않으니

尋尺各有施 작은 것이라도 각각 쓰일 곳이 있네

况當營都邑 더구나 도읍을 다스림에 있어서

杞梓用不疑 좋은 재목이 쓰임을 의심하지 않네

張侯嵩山来 장후는 숭산에서 왔으니

面有熊豹姿 얼굴은 사나운 기상이 있네

開口論利害 입을 열어 이해를 논하니

劔鋒白差差 칼끝은 희어 섬뜩한 듯 하네

恨無一尺捶 한 자의 회초리가 없어

為國笞羌夷 국가를 위하여 오랑캐를 제압함을 한하네

詣闕三上書 대궐에 이르러 세 번 글을 올려

臣非黄冠師 신은 황관을 쓴 장수 아니네

臣有膽與氣 신은 담력과 기상이 있어

不忍死茅茨 차마 초야에서 죽지 못하네

又不媚笑語 또 아첨하며 비웃는 말을 하지 않고

不能伴兒嬉 아이들과 같이 놀지 않네

乃著道士服 곧 도사의 옷을 입으니

衆人莫臣知 사람들은 신을 알지 못하네

臣有平賊䇿 신은 도적을 평정할 채찍이 있으니

狂童不難治 미친 아이 다스리기 어렵지 않네

其言簡且要 그 말은 간략하고 요약되니

陛下幸聴之 폐하가 들어주길 바라네

天空日月髙 하늘은 비고 해와 달은 높아

下照理不遺 아래로 비침은 이치에 빠트림이 없네

或是章奏繁 혹시 장주가 번거로워

裁擇未及斯 선택하여 여기에 미치지 않네

寧當不竢報 어찌 마땅히 비답을 기다리지 않고

歸袖風披披 돌아가는 옷자락 바람에 펄럭이는고

荅我事不爾 나에게 대답하기를 일이 그렇지 않으니

吾親属吾思 나의 어버이 나의 마음에 들어왔네

昨宵夢倚門 어젯밤 꿈에 어버이가 문에 기대어

手取連環持 손으로 염주를 가지고 계셨네

今日有書至 오늘 편지가 이르니

又言歸何時 또 어느 때 돌아올 것인가를 말하네

霜天熟柿栗 서리 내리는 날씨 감과 밤이 익으니

收拾不可遲 수확함 미룰 수 없네

嶺北梁可構 영의 북쪽 어량을 만들 수 있으니

寒魚下清伊 찬고기 맑은 물에 내려오네

既非公家用 이미 공가의 쓰임이 아니니

且復還其私 또 다시 그 사사로움으로 돌리네

從容進退間 조용히 나아가고 물러나는 사이에

無一不合宜 하나라도 합당하지 않음이 없네

時有利不利 때는 이로움과 불리함이 있으니

雖賢欲奚為 비록 어질지만 무엇을 하려는고

但當勵前操 다만 마땅히 앞의 지조를 힘쓴다면

富貴非公誰 부귀 공이 아니면 누구이겠는가?

 

送陳秀才彤序

 

有藴藉沉着 大意以彤之為人 不待考其文 而可見也

온자(藴藉)하고 침착(沉着)함이 있으니, 대의는 진동의 사람됨이 그 문장을 고찰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볼 수 있다.

讀書以為學 纘言以為文 非以誇多而鬬靡也 盖學所以為道 文所以為理耳 茍行事得其宜 出言適其要雖 不吾靣 吾將信其富於文學也 潁川陳彤 始吾見之楊湖南門下 頎然其長 薰然其和 吾目其貌 耳其言 因以得其為人 及其久也 果若不可及 夫湖南之於人 不輕以事接 争名者之於藝 不可以虚屈 吾見湖南之禮有加而同進之士交譽也 又以信吾信之不失也 如是而又問焉 以質其學 䇿焉以考其文 則何不信之有 故吾不徵於陳 而陳亦不出於我 此豈非古人所謂可為智者道 難與俗人言者類耶 凡吾從事於斯也 久未見舉進士有如陳生 而不如志者 於其行 姑以是贈之

책을 읽어 학문을 하고 말을 이어 문장을 만드니 많음을 자랑하고 아름다움을 다투는 것이 아니다. 대개 학문은 도를 밝히는 바요, 문학은 이치를 밝히는 바일 따름이다. 진실로 일을 실행하여 그 마땅함을 얻고, 말을 내어 그 요체에 알맞다면 비록 내 직접 보지는 못하였으나 내 장차 그 문학에 넉넉함을 믿겠다.

영천의 진동은 처음 내가 양호남의 문하에서 보았으니, 훤칠하게 크고 훈연히 화평한지라 내 그의 모습을 눈으로 보고 그의 말을 귀로 듣고 인하여 그 사람됨을 알 수 있었더니, 그 오래됨에 미쳐서 과연 마치 내가 미칠 수 없는 듯 하였다.

대저 호남이 사람들에 대하여 가벼히 일로 만나지 않고, 명성을 다투는 사람은 문예에 있어서 빈 것으로 굽히지 않으니 내 호남의 예가 더함이 있고 함께 나아간 선비가 서로 기림을 보고 또 나의 말이 잘못되지 않음을 믿겠다. 이와 같은데 또 물어서 그 학문을 질정하고 요구하여 그 문학을 고찰한다면 무슨 믿음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내 진동에게 보고자 하지 않았고 진동도 또한 나에게서 나오지 않았으니, 이것이 어찌 고인이 이른 바 “지혜로운 사람을 위하여 말할 수 있고 속인과 더불어 말하기 어렵다.”는 유가 아니겠는가?

무릇 내가 여기에서 종사함이 오래되었으니, 진사에 합격함이 진동과 같은 것이 있고 뜻대로 되지 아니한 사람은 보지 못했으니, 그가 감에 우선 이것으로 주노라.

 

送浮屠文暢師序

 

髙在命意 故逈出諸家而闔闢頓挫不失尺寸

고답함이 명의가 있어 여러 사람들을 멀리 벗어난다. 합벽이 돈좌하여 조금의 실수가 없다.

人固有儒名而墨行者 問其名則是 挍其行則非 可以與之遊乎 如有墨名而儒行者 問其名則非 挍其行則是 可以與之游乎 揚子雲稱在門墻 則揮之 在夷狄則進之 吾取以為法焉 浮屠師文暢喜文章 其周遊天下 凡有行必請於搢紳先生 以求咏歌其所志 貞元十九年春 將行東南 栁君宗元為之請 解其裝 得所得叙詩累百餘萹 非至䔍好 其何能致多 如是耶 惜其無以聖人之道 告之者 而徒舉浮屠之説贈焉 夫文暢浮屠也 如欲聞浮屠之説 當自就其師而問之 何故謁吾徒而来請也 彼見吾君臣父子之懿 文物事為之盛 其心有慕焉 拘其法而未能入 故樂聞其説而請之 如吾徒者 宜當告之以二帝三王之道 日月星辰之行 天地之所以著 鬼神之所以幽 人物之所以蕃 江河之所以流 而語之不當 又為浮屠之説 而瀆告之也 民之初生 固若禽獸夷狄 然聖人者立然後 知宫居而粒食 親親而尊尊 生者養而死者藏 是故道莫大乎仁義教 莫正乎禮樂刑政 施之於天下 萬物得其宜 措之於其躬 體安而氣平 堯以是傳之舜 舜以是傳之禹 禹以是傳之湯 湯以是傳之文武 文武以是傳之周公孔子 書之於冊 中國之人世守之 今浮屠者孰為而孰傳之耶 夫鳥俛而啄 仰而四顧 夫獸深居而簡出懼物之為已害也 猶且不脱焉 弱之肉 彊之食 今吾與文暢安居而暇食 優游以生死 與禽獸異者 寧可不知其所自耶 夫不知者 非其人之罪也 知而不為者惑也 悦乎故不能 即乎新者弱也 知而不以告人者不仁也告而不以實者不信也 予既重栁請 又嘉浮屠能喜文辭於是乎言

사람 중에는 진실로 이름을 유로 하면서 묵을 행실을 하는 사람이 있으니, 그 이름을 물으면 옳고 그 행실을 헤아리면 그릇 되니, 더불어 교유할 수 있겠는가? 만일 명색을 묵으로 하면서 행실을 유로 하는 사람이 있거든 그 이름을 물으면 그르되 그 행실을 따져보면 옳으니, 그와 더불어 교유할 수 있을 것이다. 양자운이 말하기를, “우리집 문과 담장 안에 있으면 손을 저어 내쫓고 이적에 있으면 끌어들여야 한다.”하였으니, 나는 이것을 취하여 법으로 삼으려 한다. 불교의 대사인 문창이 문장 짓기를 좋아하여 천하를 주유할 적에 무릇 길을 떠나게 되면 반드시 사대부에게 요청하여 그가 뜻하는 바를 읊어 노래해 주기를 요구하였다. 정원 19년 봄, 그가 장차 동남쪽으로 길을 떠나려 할 적에 유종원은 그를 위해 시를 지어줄 것을 나에게 요청하거늘 그의 행장을 풀어 그동안 얻은 서문과 시 수백여 편을 얻었으니, 지독하게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 어찌 많음을 이룸이 이와 같겠는가? 성인의 도를 가지고 그에게 고해준 사람이 없고, 다만 부도의 말을 들어 말해 준 것이 애석하다.

문창은 불교의 승려이니, 만일 부도의 말을 듣고자 하였다면 마땅히 스스로 그 스승을 찾아가 물었을 것이니, 무슨 연고로 우리 무리를 찾아와 청하였겠는가? 저 사람은 우리의 군신 부자간의 아름다움과 문물 예악의 성대함을 보고는 그 마음에 반드시 사모함이 있으나 불법에 얽매여 들어올 수 없으므로 그 말을 듣기를 좋아하여 청한 것이니, 우리들과 같은 경우는 의당 이제와 삼왕의 도리와 일월성신이 운행하는 까닭과 천지가 드러난 까닭과 귀신이 그윽함과 사람과 물건이 번성함과 강하의 흐르는 바를 고하여 말해줄 것이요, 또 마땅히 부도의 말을 하여 외람되게 하여 말해주어서는 안 될 것이다.

백성들이 처음 태어났을 때 진실로 금수와 이적과 같았었다. 그런데 성인이 나오신 뒤에 궁실에서 살고 곡식을 먹으며 친척을 친히 여기고 높은 분을 높이며 산자를 봉양하고 죽은 사람을 매장할 줄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도는 인의보다 큰 것이 없고, 가르침은 예악 형정보다 바른 것이 없으니, 이것을 천하에 시행하면 만물이 그 마땅함을 얻고, 이것을 자신에게 두면 몸이 편안하고 기가 화평해진다. 요는 이것을 순에게 전하고, 순은 이것을 우에게 전하고 우는 이것을 탕에게 전하고 탕은 이것을 문왕과 무왕에게 전하고 문무는 이것을 주공과 공자에게 전하여, 이것을 책에 써서 중국 사람들이 대대로 지켜오고 있으니, 지금 부도라는 것은 누가 만들어 누가 전한 것인가?

새가 머리를 숙여 쪼아 먹고 머리를 들어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짐승들이 깊어 숨어 살고 드물게 나오는 것은 다른 물건이 자기를 해칠까 두려워해서이다. 그런데도 화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약한 것의 고기를 강한 것이 잡아먹거늘 지금 내가 문창과 더불어 편안히 살면서 한가로이 먹고 여유 있게 살다가 죽어, 금수와 다른 것을 어찌 그 유래한 바를 알지 못할 수 있겠는가? 알지 못하는 것은 그 사람의 죄가 아니거니와 알면서도 하지 않는 것은 미혹됨이요, 옛날 버릇을 좋아하여 새로운 것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은 나약함이요, 알면서도 고해주지 않는 것은 인하지 못함이요, 말해주되 성실함으로 하지 않는 것은 미덥지 못함이다. 나는 이미 유군의 요청을 어렵게 여기고, 또 부도가 문사를 좋아하는 것을 가상히 여겨 이에 말하는 것이다.

 

唐荆川曰開闢圓轉 真如走盤之珠 此天地間 有數文字 通萹一直説下而前後照應 在其中

당형천이 말하기를 개벽하고 원전함이 진실로 쟁반을 달리는 구슬과 같으니 이것은 천지 간에 셀 수 있는(특별한) 문자이다. 전편이 한줄기로 곧바로 말하여 내려오며 전후가 서로 밝게 호응함이 그 가운데에 있다.

 

送髙閑上人序

 

其用意本莊子 而其行文造語叙實處 亦大類莊子

그 용의는 장자에 근본 하였고 그 문장과 말을 만들고 실재는 서술하는 곳이 또한 장자와 비슷하다.

茍可以寓其巧智 使機應於心 不挫於氣 則神完而守固 雖外物至 不膠於心 堯舜禹湯治天下 養叔治射 庖丁治牛 師曠治音聲 扁鵲治病 僚之於丸 秋之於奕 伯倫之於酒 樂之終身不厭 奚暇外慕 夫外慕徙業者 皆不造其堂 不嚌其胾者也 往時張旭善草書 不治他技 喜怒窘窮 憂悲愉佚 怨恨思慕 酣醉無聊 不平有動於心 必於草書焉發之 觀於物 見山水崖谷 鳥獸蟲魚 草木之花實 日月列星 風雨水火 雷霆霹靂 歌舞戰鬬 天地事物之變 可喜可愕 一寓於書 故旭之書 變動猶鬼神 不可端倪 以此終其身而名後世 今閑之於草書 有旭之心哉 不得其心而逐其迹 未見其能 旭也為旭有道 利害必明 無遺錙銖 情炎於中 利欲鬬進 有得有喪 勃然不釋然後 一决於書而後旭可幾也 今閑師浮屠氏 一死生解外膠是其為心 必泊然無所起 其於世 必淡然無所嗜 泊與淡相遭頽墮委靡潰敗 不可收拾 則其於書 得無象之然乎 然吾聞浮屠人善幻多技能 閑如通其術 則吾不能知矣

진실로 그 공교로운 지혜에 붙여서 하여금 기미가 마음에 응하여 기운에 꺾이지 않게 한다면 정신이 완전하고 지킴이 굳건하여 비록 외물이 이르더라도 마음에 교착하지 않는다. 요순 우탕이 천하를 다스림과 양숙이 사를 다스리고, 포정이 소를 다스리고, 사공이 음악을 다스리고, 편작이 병을 다스림과 요가 환에 있어서와 추가 바둑에 있어서와 백륜이 술에 있어서 즐거움을 종신토록 싫어하지 않았으니, 어느 겨를에 외물을 사모하리오. 대저 외물을 사모하여 사업을 옮기는 사람은 모두 그 집에 나아가지 않고 그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이다. 옛적 장욱은 초서를 잘 썼으니 다른 기예는 익히지 않아 희노(喜怒) 군궁(窘窮) 우비(憂悲) 유일(愉佚) 원한(怨恨) 사모(思慕) 감취(酣醉) 무료(無聊) 불평(不平)이 마음에 움직임이 있으면 반드시 초서로 표현하였고, 사물에서 관찰하여 산수(山水) 애곡(崖谷) 조수(鳥獸) 충어(蟲魚) 초목의 꽃과 열매 일월과 많은 별 풍우(風雨) 수화(水火) 뢰정(雷霆) 벽력(霹靂) 가무(歌舞) 전투(戰鬬) 천지(天地) 사물(事物)의 변화를 보고// 기뻐하고 놀라워함을 한결 같이 서예에 붙였다. 그러므로 장욱의 서예는 변동함이 귀신과 같아 미루어 알 수 없다. 이 때문에 그 몸을 마쳐 후세에 이름이 드러났거늘 지금 고한 상사가 초서에 있어서 장욱의 마음이 있는가? 그 마음을 얻지 못하고 그 자취를 따르면 장욱이 될 수 없다. 장욱이 됨은 방법이 있으니 이로움과 해로움이 반드시 밝혀 치수를 빠트림이 없고, 정이 마음에 불타 이로움과 욕심이 다투어 나아감에 얻음과 잃음이 발연히 풀리지 않은 이후에 한 번 서예에서 결정한 이후에 장욱을 기약할 수 있다. 지금 고한 법사는 불교의 승려이다. 한 번 죽고 삶이 외물의 교착을 풀었으니 이것은 그 마음 됨이 반드시 박연히 일어나는 바가 없고 그 세상에 있어서 반드시 담연히 즐기는 바가 없으니, 박과 담은 서로 만나 퇴타 위미하여 궤패함을 수습할 수 없은 즉 그 서예에 있어서 형상함이 그러함이 없는가?// 그러나 내 부도의 무리들은 요상함을 잘하고 기능이 많음을 들었으니, 한상사가 그 기술에 통달한 것은 내 알 수 없을 것이다.

 

 

上巳日燕太學聴彈琴詩序

風雅

與衆樂之之謂樂 樂而不失其正 又樂之尤也 四方無鬬争金革之聲 京師之人 既庶且豐 天子念致理之艱難 樂居安之閒暇 肇置三令節 詔公卿羣有司 至于其日 率厥官属 飲酒以樂 所以同其休 宣其和 感其心 成其文者也 三月初吉 實惟其時 司業武公 於是 總太學儒官三十有六人 列燕于祭酒之堂 罇俎既陳 肴羞惟時 醆斚序行 獻酬有容 歌風雅之古辭 斤夷狄之新聲 裦衣危冠 與與如也 有儒一生 魁然其形 抱琴而来 厯階以昇 坐于罇俎之南 鼓有虞氏之南風 賡之以文王宣父之操 優游夷愉 廣厚髙明 追三代之遺音 想舞雩之詠歎 及暮而退 皆充然若有得也 武公於是 作歌詩以美之 命属官咸作之 命四門博士昌黎韓愈序之

여러 사람들과 함께 즐거워함을 악이라고 하고, 즐거워하며 그 바름을 잃지 않음은 또 음악의 뛰어남이다. 사방으로는 다투는 금혁의 소리가 없으니, 경도의 사람들이 이미 많고 또 풍부/하여 천자가 지극한 다스림의 어려움을 염려하고 거처하는 편안함의 한가로움을 즐거워하여 비로소 삼령절을 두어 공경과 여러 유사에게 조서를 내려 그 날에 이르러 그 관료를 거느리고 술을 마시며 즐거워 하니 그 아름다움을 같이하고 그 조화를 베풀고 그 마음을 느끼고 그 문장을 이루는 까닭이다.

3월 초하루가 진실로 그 시기이다. 사업 무공이 이에 태학의 儒官 36인을 거느리고 제주당에서 잔치를 펼치니 술통이 이미 갖추어지고 안주는 오직 시절의 음식으로 함에 술잔이 줄을 이루고 수작함에는 법도가 있으며, 풍아의 옛 가사를 노래하고 오랑캐의 새로운 소리를 끊었다. 넓은 옷자락에 높은 관모는 위의가 있는 듯 하였다. 한 유생이 장대한 모습으로 거문고를 가지고 와서 섬돌을 지나서 올라 준조(罇俎)가 있는 남쪽에 앉아 우씨의 남풍을 연주하고 문왕과 공자(선보)의 곡조를 이어서 연주하니, 넉넉히 노닐고 즐거워하며 넓고 두터우며 높고 밝아 3대의 남은 음악을 쫓고 무우의 영탄을 생각하였다. 저녁이 되어 퇴장하니 모두 마음 가득히 얻음이 있는 듯 하였다. 무공이 이에 시가를 지어 찬미하고 관료들에게 명령하여 시를 짓게 하고 사문박사(四門博士) 창려 한유에게 서문을 쓰게 하였다.

 

荆潭唱和詩序

雋永

 

從事有示愈以荆潭酬唱詩者 愈既受以卒業 因仰而言 曰夫和平之音淡薄 而愁思之聲要妙 讙愉之辭難工 而窮苦之言易好也 是故 文章之作 恒發於羈旅草野 至若王公貴人 氣滿志得 非性能而好之 則不暇以為 今僕射裴公 開鎮蠻荆 統郡惟九 常侍楊公 領湖之南 壤地二千里 徳刑之政 並勤 爵禄之報兩崇 乃能存志乎詩書 寓辭乎詠歌 往復循環 有唱斯和 搜竒抉怪 雕鏤文字 與韋布里閭憔悴専一之士 較其毫釐分寸 鏗鏘發金石 幽眇感鬼神 信所謂材全而能鉅者也 兩府之從事 與部属之吏 属而和之 茍在編者 咸可觀也 宜乎 施諸樂章 紀諸冊書 從事曰子之言是也 告於諸公 書以為荆潭唱和詩序

종사관 가운데 나에게 형담 수창시를 보여주는 사람이 있었다. 내가 이미 받고 일을 마치고 인하여 우러러 말하기를, “대저 화평한 소리는 담박하고 시름겨운 소리는 오묘함을 요구하고 시끄럽고 즐거운 가사는 공교롭기 어렵고 가난하고 고달픈 말은 좋기가 쉽다. 이 때문에 문장을 지음은 항상 떠돌 때와 초야에 있을 때에 발동하고 왕공과 귀인과 같은데 이르러서는 기운이 충만하고 뜻이 얻어져서 성품이 능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지을 겨를이 없다. 지금 복야 배공은 만형에 진을 열어 통솔하는 고을이 9고을이고, 상시 양공은 호남을 통솔하니 땅이 2천 리이다. 도덕과 형벌의 정사가 모두 부지런하고 작위와 봉급의 보답이 둘 다 높지만, 곧 능히 시서에 뜻을 보존하고 시가에 말을 붙여 왕복하고 순환함에 선창함이 있으면 이에 화답하니, 기이함을 찾아 오려내고 문자를 꾸밈이 위포 여항 초췌한 선비와 더불어 호리와 분촌을 비교하여 쨍그랑 금석을 발하고 그윽하고 오묘함은 귀신이 감동시키니, 진실로 이른 바 “재주가 온전하고 능력이 크다.”는 것이다. 두 고을의 종사관과 부서에 소속된 아전이 이어서 화답하니, 진실로 엮은 것은 모두 볼만 하였다. “악장에 베풀고 서책에 기록함이 마땅하다.”하니, 종사관이 말하기를 그대의 말이 옳다고 하였다. 여러 사람들에게 말하여 써서 「형담창화시서」라고 한다.

唐荆川曰此萹文與盛山詩序本叙事只略用數句議論引起

당형천이 말하기를, 이 편의 글과 성산시서는 서사에 근본하였지만 다만 몇 구의 의론을 써서 인용하였다.

韋侍講盛山十二詩序

 

前半是經 下半是緯 而氣亦跌宕

전반부는 경이요 하반부는 위인데 기운 또한 질탕하다.

 

韋侯 昔以考功副郎 守盛山 人謂韋侯美士 考功顯曹 盛山僻郡 奪所宜處 納之惡地 以枉其材 韋侯將怨 且不釋矣 或曰不然 夫得利 則躍躍以喜 不利則戚戚以泣 若不可生者 豈韋侯謂哉 韋侯讀六藝之文 以探周公孔子之意 又妙能為辭章 可謂儒者 夫儒者之於患難 茍非其自取之 其拒而不受於懐也 若築河堤以障屋霤 其容而消之也 若水之於海 氷之於夏日 其翫而忘之以文辭也 若奏金石 以破蟋蟀之鳴 蟲飛之聲 况一不快於考功 盛山一出入息之間哉 未幾 果有以韋侯所為十二詩遺余者 其意方且以入谿谷 上巖石 追逐雲月 不足日 為事 讀而歌詠之 令人欲棄百事 往而與之游 不知其出於巴東以屬胊䏰也 于時 應而和者 凡十人 及此年 韋侯為中書舍人 侍講六經 禁中和者 通州元司馬 為宰相 洋州許使君為京兆 忠州白使君 為中書舍人 李使君為諫議大夫 黔府嚴中丞 為秘書監 温司馬為起居舍人 皆集闕下 於是 盛山十二詩 與其和者大行於時 聮為大巻 家有之焉 慕而為者 將日益多 則分為别巻 韋侯 俾余題其首

위후가 옛날에 고공 부랑(考功副郎)으로 성산 수령이 되니, 사람이 말하기를 “위후는 훌륭한 선비이고 고공은 드러난 벼슬이며 성산은 후미진 고을이니 마땅히 거처할 곳을 빼앗아 좋지 못한 땅에 들여 그 재주를 굽혔으니, 위후는 장차 원망하고 또 마음을 풀지 않을 것이다.”하였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그렇지 않다. 대저 이익을 얻으면 뛰면서 기뻐하고 이롭지 않으면 슬퍼하며 울며 마치 살지 못할 것 같이 하는 사람은 어찌 위후를 말하겠는가? 위후는 6예의 문장을 읽고 주공과 공자의 뜻을 탐구하고, 또 오묘하게 문장을 지을 수 있으니 유학자라고 말할 수 있다. 대저 유학자는 환난에 있어서 진실로 스스로 취한 것이 아니라면 그것을 막아 마음에 받아들이지 않기를 마치 하수의 제방을 쌓아 집에 물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 듯 할 것이며, 용납하여 사라지게 하기를 마치 물이 바다에 대해서와 얼음이 여름에 있어서와 같을 것이며, 그 완상하여 문사로 잊음을 마치 음악을 연주하여 벌레의 울음과 곤충의 나는 소리를 깨트리는 듯하는데, 하물며 한 번 고공과 성산에서 한 번 숨을 출입하는 사이에 불쾌하겠는가?”하였다. 얼마 후에 과연 누군가 위후가 지은 시 12수를 나에게 주었다.

그 뜻은 바야흐로 짐짓 계곡에 들고 바위에 오르며 구름과 달을 따르기에 날이 부족함으로 일삼았다. 읽어 읊음에 사람으로 하여금 모든 일을 버리고 가서 함께 노닐고자 하니 그 파동 땅에서 나와서 구인(胊䏰) 땅에서 벼슬하는지를 알지 못하였다. 이에 호응하여 화답하는 사람이 모두 10명 이었다. 이 해에 위후가 중서사인이 되어 궁중에서 육경을 시강하니, 화답하는 사람 통주(通州) 원사마(元司馬)로 재상이 된 사람과 양주 허사군로 경조(京兆)가 된 사람, 충주 백사군 중서사인이 된 사람, 이사군으로 간의대부가 된 사람, 금부 엄중승으로 비서감이 된 사람, 온사마로 기거사인이 된 사람이 모두 대궐에 모였다. 이에 성산의 12수의 시가 그 화답한 것과 더불어 당시에 크게 유행하니 엮어서 책을 만들어 집에 소장하였다. 사모하여 시를 짓는 사람이 장차 날로 더욱 많아진다면 나누어 별권을 만들 것이다. 위후가 나에게 그 책의 서문을 짓게 하였다.

 

石鼎詩句詩序

文極頓挫 後之法家 多有痕迹 惟公不然 紀事纂言 如太史公

문장이 지극히 돈좌하니 훗날 본받는 사람들이 대체로 흔적이 있지만 오직 공은 그렇지 않고 흔적이 없다. 일을 기록하고 말을 찬술함이 태사공과 같다.

元和七年十二月四日 衡山道士軒轅彌明 自衡下来 舊與劉師服進士衡湘中相識 將過太白 知師服在京 夜抵其居宿 有挍書郎侯喜 新有能詩聲 夜與劉説詩 彌明在其側 貌極醜 白鬚黑面 長頸而髙結 喉中又作楚語 喜視之若無人 彌明忽軒衣張眉 指罏中石鼎 謂喜曰子云能詩 能與我賦此乎 劉往見衡湘間 人説云年九十餘矣 解捕逐鬼物 拘囚蛟螭虎豹 不知其實能否也 見其老 頗貌敬之 不知其有文也 聞此説大喜 即援筆題其首兩句 次傳於喜 喜踊躍 即綴其下云云 道士啞然笑曰子詩如是而巳乎 即袖手竦肩倚北牆坐 謂劉曰吾不解世俗書 子為我書 因髙吟曰龍頭縮菌蠢 豕腹漲彭亨 初不似經意 詩㫖有似譏喜 二子相顧慚駭 欲以多窮之 即又為而傳之喜 喜思益苦 務欲壓道士 每營度欲出口吻 聲鳴益悲 操筆欲書 將下復止 竟亦不能竒也 畢即傳道士 道士髙踞大唱曰劉把筆吾詩云云 其不用意而功益竒 不可附説 語皆侵劉侯 喜益忌之 劉與侯皆已賦十餘韻 彌明應之如響 皆頴脱含譏諷 夜盡三更 二子思竭 不能續 因起謝曰尊師非世人也 某伏矣 願為弟子 不敢更論詩 道士奮曰不然 章不可以不成也 又謂劉曰把筆来 吾與汝就之 即又唱出四十字 為八句 書訖使讀 讀畢謂二子曰章不已就乎 二子齊應曰就矣 道士曰此皆不足與語 此寧為文耶 吾就子所能而作耳 非吾之所學於師而能者也 吾所能者 子皆不足以聞也 獨文乎哉 吾語亦不當聞也 吾閉口矣 二子大懼 皆起立 牀下拜曰不敢他有問也 願聞一言而巳 先生稱吾不解人間書 敢問解何書請聞此而已 道士寂然若無聞也 累問不應 二子不自得 即退就座 道士 倚牆睡 鼻息如雷鳴 二子怛然失色不敢喘 斯須 曙鼔鼕鼕 二子亦困遂坐睡 及覺 日巳上 驚顧覔道士不見 即問童奴 奴曰天且明 道士起出門 若將便旋然 奴怪久不返 即出到門覔無有也 二子驚惋自責 若有失者 間遂詣余言 余不能識其何道士也 嘗聞有隠君子 彌明豈其人耶 韓愈序

원화 7년 2월 4일 형산의 도사 헌원(호?) 미명이 형산에서 왔다. 예전에 유사복 진사와 더불어 형상의 가운데에서 서로 앞면이 있었더니, 장차 태백을 지나려고 할 때에 사복이 경사에 있음을 알고서는 밤에 그의 거처에 이르러 잠을 잤다. 교서랑 후희가 새로이 시에 능하다는 명성이 있있는데, 밤에 유사복과 시를 말하였더니 미명이 그 곁에 있었는데, 모습이 매우 추악하며 흰 구렛나루에 검은 얼굴이며 상투를 높이 틀었으며, 목소리는 또 초나라 방언을 하였다. 후희가 보고 무시하였다. 미명이 갑자기 옷을 올리고 눈썹을 펼쳐서 화로 가운데 돌솥을 가리키며 후희에게 말하기를 "그대가 시에 능하다고 말하니 능히 나와 이것을 읊을 수 있겠는가?" 유가 예전에 형산과 상강 사이에서 보았는데, 사람들이 말하기를 "나이는 90여 세가 되었을 것이고 귀물을 사로잡고 쫓을 줄 알고 이무기와 호표를 가두지만 그가 실재로 능한지 능하지 못한지는 알지 못한다.” 그가 연로함을 보고 자못 예모를 하고 공경을 표현하였지만 그가 시문이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이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여 즉시 붓을 잡고 그 머리 두 구절을 적고 다음으로 후희에게 전달하니 후희가 뛰면서 즉시 그 아래 구절을 엮어내었다. 도사가 아연히 웃으면서 말하기를 그대의 시가 이와 같을 따름인가? 곧 손을 소매에 넣고 어깨를 올리고 북쪽 담장에 기대어 앉아 유에게 말하기를, "내 세속의 글을 알지 못하니 그대는 나를 위하여 적어라."라고 하고서는 크게 읊기를, "용머리 위축되어 꿈틀거리고 돼지 배가 부풀어 오르네龍頭縮菌蠢 豕腹漲彭亨"이라고 하였다. 처음에는 마음을 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시의 뜻은 후희를 기롱하는 듯 하니, 두 사람이 서로 돌아보며 부끄러워하고 놀랬다. 많이 궁하게 하고자 하여 곧 또 시를 짓고 후희에게 전하니, 후희의 생각이 더욱 고심하여 힘써 도사를 압도하고자 하여 매번 계획하여 입술에서 내고자 하였지만 소리의 울림은 더욱 비통하였고 붓을 잡고 쓰고자 하여 장차 내리려다 다시 멈추어 끝내 또한 기이할 수 없었다. 마침에 곧 도사에게 전달하니 도사가 높이 걸터앉아 큰 소리로 "유는 붓을 잡아라. 내가 시를 지으리라."하였다. 그가 뜻을 쓰지는 않지만 공교로움은 더욱 기이하여 말을 붙일 수 없었으니, 말은 모두 유와 후를 능멸하였다. 후희가 더욱 꺼렸다. 유와 후가 모두 이미 10여 운을 읊었는데, 미명의 응수함은 마치 메아리와 같아 모두 뛰어나고 기롱함을 내포하였다. 밤이 삼경이 되자 두 사람의 생각이 고갈되어 이을 수 없어 인하여 일어나 사례하여 말하기를 “법사는 세속의 사람이 아니 저희들이 항복하겠습니다. 제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감히 다시 시를 논하지 않겠습니다.”하니, 도사가 화를 내며 “그렇지 않다. 장구는 이루지 않을 수 없다.”하고 짐짓 유에게 말하기를 "붓을 잡고 오느라. 내 너와 이루겠다."하고서는 즉시 또 불러 40자를 불러서 8구를 지었다. 쓰기를 마치고 읽게 하였다. 다 읽고 나서 두 사람에게 말하기를 "장구가 이미 이루어지지 않았는가?"하니, 두 사람이 나란히 응답하여 “이루어졌습니다.”하니, 도사가 말하기를 "이것은 모두 족히 말할 것이 못된다. 이것이 어찌 문장이 되겠는가? 내 그대들이 능한 곳에 나아가 지었을 따름이요, 내가 스승에게 배워서 능한 것이 아니다. 내가 능한 것을 그대들은 모두 듣지 못했을 것이니, 유독 문장에 있어서이겠는가? 내 말 또한 마땅히 들을 것이 못되니 내 입을 닫을 것이다."하니, 두 사람이 크게 두려워하여 모두 일어나서 책상 아래에서 절하여 말하기를, "감히 다른 것을 묻지 않고 한 마디 말을 들을 것을 원할 따름입니다. 선생이 ‘내 세속의 글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였는데, 감히 묻습니다. 무슨 책을 아시는 것입니까? 이것을 듣기를 간청할 따름입니다."하니, 도사가 고요히 못 들은 척 하였다. 여러 번 물었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어쩔 수 없어 곧 물러나 자리에 나아갔다. 도사가 담장에 기대어 자니 코 고가 소리가 우레와 같았다. 두 사람이 놀라워하며 실색하였지만 감히 기침하지 못하였다. 잠시 뒤 새벽 북소리가 둥둥 울렸다. 두 사람이 또한 피곤하여 마침내 앉아서 잠들었는데 잠을 깨니 해가 이미 솟아 있었다. 놀라 돌아보며 도사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곧 어린 종에게 물으니, 종이 말하기를 “하늘이 짐짓 밝아옴에 도사가 일어나 문을 나갔는데, 마치 장차 용변을 보려는 듯하였습니다. 제가 오래 돌아오지 않음을 이상하게 생각하여 곧 나가 문에 이르러 찾았지만 있지 않았습니다.”하였다. 두 사람이 놀라고 자책하여 마치 잃음이 있는 것 같았다. 얼마 후에 나를 찾아와 말하였는데, 내 무슨 도사인지 알 수 없었다. 일찍이 듣건대 은둔한 군자 미명이 있다고 하였으니, 어쩌면 그 사람이 아니겠는가? 한유가 서문을 쓰노라.

石鼎聮句詩

 

巧匠斵山骨 솜씨 좋은 장인이 돌을 파서

刳中事煎烹 가운데를 파 삶음을 일삼네

 

直柄未當權 곧은 자루 권한이 없고

塞口且呑聲 입을 막았는데 짐짓 소리를 머금네

 

龍頭縮菌蠢 용머리 위축이 되어 꿈틀거리고

豕腹漲彭亨 돼지 배가 부풀어 오르네

 

外苞乾蘚文 밖은 마른 이끼 무늬 포함하고

中有暗浪驚 속은 은근히 물결이 출렁이네

 

在冷足自安 차운 곳에 있으면 스스로 편안할 수 있고

遭焚意彌貞 불을 만나면 뜻이 더욱 곧네

 

謬當鼎鼐間 잘못 솥 사이에 있어서

妄使水火争 망녕되이 물과 불로 다투게 하였네

 

大似烈士膽 크기는 열사의 담력과 비슷하고

圓如戰馬纓 둥글기는 전마의 가슴걸이와 같네

 

上比香爐尖 위로 향로의 끝에 견주고

下與鏡面平 아래로 거울의 평평함과 비슷하네

 

秋瓜未落蒂 가을 오이 아직 꼭지를 떨어트리지 않은 듯

凍芋彊抽萌 겨울 토란은 억지로 싹을 틔우는 듯

 

一塊元氣閉 한덩이 원기가 갇혔고

細泉幽竇傾 가는 샘은 그윽한 구멍에서 기울어지네

 

不值輸寫處 마음 털어 놓을 곳을 만나지 못했으니

焉知懐抱清 어찌 회포의 맑음을 알리오

 

方當洪罏然 바야흐로 큰 화로 태움을 만났으니

益見小器盈 더욱 작은 그릇 펄펄 끓음을 보겠네

 

皖皖無刃迹 환하게 칼의 흔적이 없고

團團類天成 둥글둥글 하늘이 이룬 듯 하네

 

遥疑龜負圖 아득히 거북이 하도를 진 듯하니

出曝曉正晴 내어 말리면 환하게 정히 깨끗하네

 

旁有雙耳穿 곁에는 두 귀의 구멍이 있고

上為孤髻撑 위에는 한 상투가 버티고 있네

 

或訝短尾銚 혹 꼬리 짧은 냄비인 듯

又似無足鐺 또 발이 없는 솥인 듯

 

可惜寒食毬 애석하니, 한식날 차서

擲此傍路坑 이것을 도로 옆 구덩이에 던짐을

 

何當出灰灺 어찌 마땅히 숯덩이에서 내어

無計離缾罌 병앵에서 떠날 계책이 없으랴

 

陋質荷斟酌 비루한 바탕 잔질함을 입었으니

狭中愧提擎 좁은 곳으로 끌어당김이 부끄럽네

 

豈能煮仙藥 어찌 능히 선약을 삶으리오

但未汙羊羮 다만 양국을 더럽히지 않을 뿐

 

形模婦女笑 모양은 아녀자들이 비웃고

度量兒童輕 도량은 아이들이 경시하네

 

徒示堅重性 다만 견고하고 무거운 성품을 보이고

不過升合盛 승합을 담는 것에 불과하네

 

旁似廢轂仰 곁은 고장난 바퀴가 넘어진 듯

側見折軸横 옆은 끊어진 굴대가 구르는 것을 보네

 

時於蚯蚓竅 때때로 지렁이 구멍에서

微作蒼蠅鳴 가늘게 파리가 우는 듯하네

 

以茲飜溢愆 이것을 뒤집어 넘치는 허물이 있으니

實負任使誠 진실로 맡겨서 부리는 정성을 저버리네

 

常居顧盻地 항상 살면서 처지를 되돌아니

敢有漏洩情 감히 정을 누설함이 있으랴

 

寧依暖熱弊 차라리 더운 열기에 망가질지언정

不與寒凉并 추위와는 함께하지 않으리라

 

區區徒自效 내 한갓 절로 바치려하지만

瑣瑣不足呈 자질구레 드릴 수 없네

 

廽旋但兀兀 돌리니 다만 우뚝하고

開闔惟鏗鏗 열고 닫으니 쨍그랑 울릴 뿐

 

全勝璉瑚貴 오로지 호련의 귀함을 압도하여

空有口傳名 부질없이 입으로 이름을 전하네

 

豈比爼豆古 어찌 제기의 고풍스러움에 견주리오

不為手所撜 손으로 들리지 않네

 

磨礱去圭角 갈아서 모서리를 제거하고

浸潤著光精 담구어 광채를 드러내네

 

願君莫嘲誚 원건대 그대 꾸짖거나 조롱하지 말게

此物方施行 이 물건 바야흐로 시행할 것이네

 

朱子謂此文 韓子自况 詩亦含譏訕輕侮之意

주자가 말하기를, 이 글은 한유가 스스로 비유한 것이니, 또 또한 기산 경모의 뜻을 포함하고 있다.

 

 

 

한문공문초 권7(해석).hwp

 

한문공문초 권7(해석).hwp
0.05MB

'당송팔대가문초 > 한문공문초 권지7'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원문  (0) 2008.0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