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송팔대가문초/한문공문초 권지5

권5 해석

황성 2008. 10. 29. 16:27

唐宋八大家文鈔巻五

明茅坤撰

昌黎文鈔五

書啓狀

重答張籍書

韓公之不汲汲著書 固其力之未至 抑其時之不暇耳而云云者 乃從而為之辭 然其文特工甚

한문공이 저서에 급급하지 않음은 진실로 그 힘이 이르지 못하였거나, 아니면 그 때에 여가가 없었을 따름이다. 그렇게 말한 것은 곧 쫓아서 변명을 한 것이다. 그러나 그 문장은 특별히 공교로움이 심하다.

吾子不以愈無似 意欲推而納諸聖賢之域 拂其邪心 増其所未髙 謂愈之質 有可以至於道者 浚其源 導其所歸 溉其根 將食其實 此盛徳者之所辭讓 況於愈者哉 抑其中有宜復者 故不可遂巳 昔者聖人之作春秋也 既深其文辭矣 然猶不敢公傳道之口授弟子至於後世然後 其書出焉 其所以慮患之道微也 今夫二氏之所宗而事之者 下乃公卿輔相 吾豈敢昌言排之哉 擇其可語者誨之 猶時與吾悖 其聲嘵嘵若 遂成其書則見而怒之者 必多矣 必且以我為狂為惑其身之不能恤書於吾何有夫子聖人也且曰自吾得子路而惡聲不入於耳其餘輔而相者周天下猶且絶糧於陳畏於匡毁於叔孫奔走於齊魯宋衛之郊其道雖尊其窮也亦甚矣賴其徒相與守之卒有立於天下向使獨言之而獨書之其存也可冀乎今夫二氏行乎中土也蓋六百年有餘矣其植根固其流波漫非所以朝令而夕禁也自文王没武王周公成康相與守之禮樂皆在及乎夫子未久也自夫子而及乎孟子未久也自孟子而及乎揚雄亦未久也然猶其勤若此其困若此而後能有所立吾其可易而為之哉其為也易則其傳也不逺故余所以不敢也然觀古人得其時行其道則無所為書書者皆所為不行乎今而行乎後世者也今吾之得吾志失吾志未可知竢五六十為之未失也天不欲使兹人有知乎則吾之命不可期如使兹人有知乎非我其誰哉其行道其為書其化今其傳後必有在矣吾子其何遽戚戚於吾所為哉前書謂吾與人商論不能下氣若好勝者然雖誠有之抑非好巳勝也好巳之道勝也非好巳之道勝也巳之道乃夫子孟軻揚雄所傳之道也若不勝則無以為道吾豈敢避是名哉夫子之言曰吾與回言終日不違如愚則其與衆人辨也有矣駮雜之譏前書盡之吾子其復之昔者夫子猶有所戲詩不云乎善戲謔兮不為虐兮記曰張而不弛文武不能也惡害於道哉吾子其未之思乎孟君將有所適思與吾子別庶幾一來

唐荆川曰本是三節文字而活動不覊

그대가 나를 불초하다 여기지 않고 나를 성현(聖賢)의 경지에 미루어 넣고자 하여 나쁜 마음을 제거하여 아직 높지 못한 바를 더하게 하며, 나의 자질이 도에 이를 만하다 하여 그 근원을 깊이 파서 돌아갈 곳을 인도하고, 뿌리에 물을 주어 장차 그 열매를 먹게 하려 하니, 이는 성덕(盛德)이 있는 자도 사양하는 바인데, 하물며 나 같은 자에 있어서랴. 다만 그 가운데 다시 말할 것이 있으므로 마침내 그만 두지 못하고 이 글을 쓰노라. 예날에 성인이 춘추를 지으실 적에 이미 그 문사를 심오하게 하였으나 오히려 공공연히 전하여 말하지 못하시고 제자에게 구두(口頭)롤 전수하여 후세에 이르러서야 그 책이 나왔으니, 그 호랄 염려하는 방법이 치밀하였다.

이제 이씨(二氏)를 종주로 삼아 섬기는 자들이 아래로 공경과 보상에 미치니, 내 어찌 감히 큰 소리로 배척할 수가 있겠는가? 말할 만한 것을 가려서 가르쳐 주어도 오히려 당시 사람들과 어그러져서 떠드는 소리가 요란하니, 내가 만일 노불(老佛)을 배척하는 책을 짓는다면 이것을 보고 노여워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많을 것이다. 반드시 장차 나를 미쳤다 하고 의혹되었다 할 것이니, 내 몸도 주체하지 못할 터인데 책이 나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부자는 성인이셨는데도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로를 얻은 뒤로부터 나쁜 소리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셨으며, 그 나머지 도운 자들이 천하에 두루하였으나, 오히려 진나라에서 식량이 떨어지고 광(匡) 땅에서 경계하는 마음을 품었으며, 숙손씨에게 훼방을 받았고 제노송위(齊魯宋衛)의 교외에 분주하셨으니, 그 도가 비록 높았으나 그 곤궁함이 또한 심하였다. 그 무리들이 서로 더불어 지켜줌에 힘입어 끝내 천하에 성립함이 있으셨으니, 그때에 가령 홀로 말하고 홀로 쓰셨더라면 그 보존됨을 기대할 수 있었겠는가?

이제 노불(老佛) 이씨(二氏)가 중국에 행해진 지가 6백여 년이 되었다. 그리하여 심겨진 뿌리가 견고하고 흐르는 줄기가 넓으니, 아침에 명령해서 저녁에 금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문왕이 별세함으로부터 무왕 주공 성왕 경왕이 서로 지켜와서 예악이 모두 남아 있었으니, 부자에 이르기까지 시대가 오래지 않았고, 부자로부터 맹자에 이르기까지 오래지 않았고, 맹자로부터 양웅에 이르기까지 또한 오래지 않았다. 그런데도 오히려 그 수고롬움이 이와 같고 그 곤궁함이 이와 같은 뒤에야 성립한 바가 있었으니, 내 어찌 이것을 쉽게 할 수 있겠는가? 하기를 쉬게 하면 그 전해짐이 영원하지 못하다. 그러므로 내 감히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옛 사람을 보건대 좋은 때를 만나 그 도를 행하면 책을 지은 것이 없었으니, 책을 만드는 자들은 다 당시에 도를 행하지 못하여 후세에 행하려고 한 것이었다. 이제 나는 내 뜻을 펼 수 있을지 펼 수 없을지 알 수 없으니, 5,60세가 되기를 기다렸다가 책을 만들더라도 기회를 잃지 않을 것이다. 하늘이 이 백성들로 하여금 앎이 있게 하려 하지 않는다면 나의 수명을 기약할 수 없거니와 만일 이 백성들로 하여금 앎이 있게 하려고 하신다면 내가 아니고 그 누가 하겠는가? 도를 행할 것인지, 책을 만들 것인지, 지금 세상을 교활할 것인지, 후세에 전할 것인지, 이것이 반드시 있는 데가 있을 것이다.(자신에게 있다는 말임) 그대는 어찌 대번에 나의 하는 바에 서글퍼할 것이 있겠는가?

지난번 편지에 이르기를“내가 남과 더불어 상론(商論)함에 기운을 낮추지 못하여 자기가 이기는 것을 좋아하는 자와 같다.” 하였으니, 비록 진실로 이러한 점이 있으나 이는 내가 이기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요, 나의 도가 이기기를 좋아하는 것이니, 나의 도는 바로 공자 맹가 양웅이 전하는 바의 도이다. 만일 이기지 못하면 도가 될 수 없으니, 내 어찌 감히 이 이름을 피하겠는가? 부자의 말씀에 이를기를 “내 안회와 말함에 종일토록 어기지 않아 어리석은 자와 같다.” 하셨으니, 성인도 중인(衆人)과 변론함이 있는 것이다.

박잡하다는 비판은 지난번 편지에 다 말하였으니, 그대는 다시 살펴보라. 옛날 부자께서도 오히려 기롱한 바가 있으셨으니, 󰡔�시경󰡕�에 말하지 않았는가? “희학(戱謔)을 잘하니 지나침이 되지 않는다?” 하였고, 󰡔�예기󰡕�에 이르기를 “활을 당기기만 하고 풀오놓지 않는 것은 문왕 무왕도 능하지 못하였다.” 하였으니, 희롱하는 것이 어찌 도에 해가 되겠는가? 그대는 이것을 생각하지 못했나보다. 맹교(孟郊)가 장차 떠나가려고 하므로 그대와 작별할 것을 생각하고 있으니, 부디 한 번 올지어다. 한유는 재배하고 올리노라.

答劉秀才論史書

懼作史之禍非也 孔子善善惡惡 二百四十二年之間 何以至今皎然與天地並 昌黎不及作 從而為之辭

작사의 재앙을 두려워한 것은 아니다. 공자 선을 좋게 여기고 악을 미워함이 242년 사이가 어찌 지금에 환하게 천지와 함께하는가? 창려는 짓지 않고 쫓아서 구실을 댄 것이다.

愈白 秀才辱問見愛 教勉以所宜務 敢不拜賜 愚以為凡史氏褒貶大法 春秋已備之矣 後之作者在據事跡實録則善惡自見 然此尚非淺陋偷惰者 所能就 况褒貶邪 孔子聖人 作春秋 辱於魯衞陳宋齊楚 卒不遇而死 齊太史氏兄弟幾盡 左丘明紀春秋時事 以失明 司馬遷作史記刑誅 班固瘐死 陳壽 起又廢 卒亦無所至 王隱 謗退死家 習鑿齒無一足 崔浩范曄赤誅 魏收夭絕 宋孝王誅死 足下所稱呉兢 亦不聞身貴而令其後有聞也 夫為史者 不有人禍則有天刑 豈可不畏懼而輕為之哉 唐有天下二百年矣 聖君賢相相踵 其餘文武之士 立功名 跨越前後者 不可勝數 豈一人卒卒能紀而傳之邪 僕年志巳就衰退 不可自敦率 宰相知其無他才能 不足用 哀其老窮齟齬無所合 不欲令四海内有戚戚者 猥言之上 茍加一職榮之耳 非必督責迫蹙 令就功役也 賤不敢逆盛指 行且謀朝去 且傳聞不同 善惡隨人所見 甚者附黨 憎愛不同 巧造語言 鑿空構立 善惡事迹 於今何所承受取信而可草草作傳記令傳萬世乎 若無鬼神 豈可不自心慙愧 若有鬼神 將不福人 僕雖騃 亦粗知自愛 實不敢率爾為也 夫聖唐鉅跡 及賢士大夫事 皆磊磊軒天地 決不沈没 今舘中非無人 將必有作者 勤而纂之 後生可畏 安知不在 足下亦宜勉之

한유는 아룁니다. 수재가 욕되게 물어주고 사랑을 보여 마땅히 힘쓸 것을 힘쓰게 하니 감히 절하고 받지 않겠습니까? 나는 생각건대 사씨(史氏)의 포폄(褒貶)의 큰 법은 춘추에 이미 갖추어 있으니 뒤의 작자가 사적에 의거하여 실재를 기록한다면 선과 악이 절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비천하고 탐내고 게으런 사람이 능히 이룰 것이 아니다. 하물며 포폄에 있어서랴? 공자 성인은 춘추를 짓고 노魯위衞진陳송宋제齊초楚에서 모욕을 당하여 끝내 불우하게 죽었고, 제나라 태사씨는 형제가 거의 다 죽었고, 좌구명은 춘추 때의 일을 기록하여 실명하였고, 사마천은 사기를 지어 형벌을 받아 죽었고, 반고는 말라 죽었고, 진수는 기용되었다가 또 폐출을 당하여 마침내 또한 이른 것이 없었고, 왕은은 비방으로 물러나 집에서 죽었고, 습착치는 한 발이 없었고, 최호와 범엽은 맨몸으로 벌을 받았고 위수는 요절하였고, 송효왕은 형벌을 받아 죽었고, 족하가 말한 오극도 또한 신분이 귀하게 되었다는 말은 없고 지금 그 후손이 조금 명성이 있다. 대저 역사를 기술한다는 것은 사람의 형벌이 있지 않으면 하늘의 형벌이 있으니, 어찌 두려워하지 않고 가벼이 할 수가 있겠는가?

당나라가 건국된 지 200년으로 성스러운 군주와 어진 재상이 서로 이어지고 그 나머지 문관과 무관의 선비들이 공명을 세워 앞뒤로 우뚝한 사람을 다 헤아릴 수 없으니, 어찌 한 사람이 창졸간에 기록하여 후세에 전할 수 있겠는가? 나는 나이와 뜻이 이미 노쇠하고 감퇴함을 이루어 스스로 돈독하게 지탱할 수 없으니, 재상이 그 다른 재능이 없어 족히 등용할 수 없음을 알고 그 늙고 궁핍함이 어긋나 합치되는 것이 없음을 슬프게 여겨 사해의 안에 근심이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외람되게 주상에게 말해서 진실로 한 직분을 주어서 영화롭게 하였을 따름이요, 반드시 독책하고 박축(迫蹙)하여 공업을 이루게 한 것은 아니다. 비천한 사람이 성대한 뜻을 거역하지 못하여 행함에 장차 인거(引去)함을 도모한다. 또 전하여 들림이 같지 않아 선과 악이 사람이 보는 것을 따르니 심한 것은 당파에 붙어서 사랑과 증오가 같지 않아서 공교롭게 말을 만들어 구멍을 파서 얽고 세우니 선악의 사적을 지금에 어떤 것을 잇고 믿어서 급하게 전기를 지어서 만세에 전하게 할 수 있겠는가? 만약 귀신이 없다면 어찌 스스로 마음에 부끄럽지 않겠으며, 만약 귀신이 있다면 사람에게 복을 주지 않을 것이다. 나는 비록 어리석으나 또한 대강 스스로 아낌을 아니 진실로 감히 경솔하게 하지 않는다. 대저 성스러운 당나라의 큰 자취 및 어진 사대부의 일이 모두 많아서 하늘에 닿으니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이요, 지금 관부에는 사람이 없지 않으니 장차 반드시 작자가 있어서 부지런히 찬술할 것이니, 후배를 두려워함이 어찌 있지 않음을 알겠는가? 족하는 또한 마땅히 힘쓰라.

答崔立之書

公三試吏部不售 斯立遺公書 故答之云云 蓋崔斯立屬公相知之深者 故吐露如此

공이 세 번 이부의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니 최사립이 공에게 편지를 보냈기 때문에 답장을 하였다. 대개 최사립은 공과 앎이 깊다. 그러므로 토로함이 이와 같다.

斯立足下 僕見險不能止 動不得時 顛頓狼狽 失其所操 持困不知變 以至辱於再三 君子小人之所憫笑 天下之所背而馳者也 足下猶復以為可教 貶損道徳 乃至手筆以問之 扳援古昔 辭義髙逺 且進且勸 足下之於故舊之道得矣 雖僕亦固望於吾子 不敢望於他人者耳 然尚有似不相曉者 非故欲發余乎 不然 何子之不以丈夫期我也 不能黙黙 聊復自明 僕始年十六七時 未知人事 讀聖人之書 以為人之仕者 皆為人耳 非有利乎巳也 及年二十時 苦家貧衣 食不足 謀於所親然後 知仕之不唯為人耳 及來京師 見有舉進士者人多貴之 僕誠樂之 就求其術 或出禮部所試賦詩䇿等 以相示 僕以為可無學而能 因詣州縣求舉 有司者好惡出於其心 四舉而後 有成 亦未即得仕 聞吏部有以博學宏辭選者 人尤謂之才 且得美仕就 求其術 或出所試文章 亦禮部之類 私怪其故 然猶樂其名 因又詣州府求舉 凡二 試於吏部 一既得之而又黜於中書 雖不得仕 人或謂之能焉 退自取所試讀之 乃類於俳優者之辭 顔忸怩而心不寧者數月 既巳 為之則欲有所成就 書所謂恥過作非者也 因復求舉 亦無幸焉 乃復自疑以為所試與得之者 不同其程度 及得觀之 余亦無甚愧焉 夫所謂博學者 豈今之所謂者乎 夫所謂宏辭者 豈今之所謂者乎 誠使古之豪傑之士 若屈原孟軻司馬遷相如楊雄之徒 進於是選 必知其懐慙 乃不自進而巳耳 設使與夫今之善進取者 競於䝉昧之中 僕必知其辱焉 然彼五子者 且使生於今之世 其道雖不顯於天下 其自負何如哉 肯與夫斗筲者 決得失於一夫之目而為之憂樂哉 故凡僕之汲汲於進者 其小得 蓋欲以具裘葛養窮孤 其大得 蓋欲以同吾之所樂於人耳 其他可否 自計巳熟 誠不待人而後知 今足下 乃復比之獻玉者 以為必竢工人之剖然後 見知於天下 雖兩刖足 不為病 且無使勍者 再尅誠 足下相勉之意厚也 然仕進者 豈舍此而無門哉 足下謂我必待是而後進者 尤非相悉之辭也 僕之玉 固未嘗獻而足固未嘗刖 足下無為為我戚戚也 方今天下風俗 尚有未及於古者 邊境尚有被甲執兵者 主上不得怡而宰相以為憂 僕雖不賢 亦且濳究其得失 致之乎吾相 薦之乎吾君 上希卿大夫之位 下猶取一障而乘之 若都不可得 猶將耕於寛閑之野 釣於寂寞之濱 求國家之遺事 考賢人哲士之終始 作唐之一經 垂之於無窮 誅姦諛於既往 發濳徳之幽光 二者將必有一可 足下以為僕之玉 凡幾獻而足凡幾刖也 又所謂勍者 果誰哉 再尅之刑 信如何也 士固信於知已 微足下 無以發吾之狂言

사립 족하, 저는 위험을 보면 그치지 못하고 움직임에 시기를 얻지 못하여 넘어지고 낭패하여 그 잡을 것을 잃고 곤란함을 잡아 변화를 알지 못하여 거듭 욕되게 하였으니, 군자와 소인이 근심하고 비웃는 바요, 천하의 사람들이 등지고 달려가는 것입니다. 족하가 오히려 다시 가르칠 만하다 여기고 도덕을 낮추어 곧 손수 편지로 물어주시고, 옛 일에 의지함에 말의 의리가 고원하여 짐짓 나아가게 하고 권면해 주시니, 족하는 옛 친구의 도리에 있어서 합당할 것입니다. 비록 제가 또한 진실로 그대에게 바라는 것이요, 감히 타인에게 바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오히려 깨닫지 못하는 것이 있으니, 고의로 나를 개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지 않다면 어떤 사람이 장부로 나를 바라지 않겠습니까?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애오라지 다시 스스로 해명합니다.

저는 처음 나이 16,7세에 인사를 알지 못하고 성인의 책을 읽어서 남을 위하여 벼슬하는 사람은 모두 남을 위할 따름이요, 자기를 이롭게 함은 아니다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나이 20세에 집이 가난하여 의식이 부족하여 친한 사람에게 의지한 이후에 벼슬함이 오직 남을 위할 뿐만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서울에 와서 진사에 합격한 사람은 사람들이 많이 귀하게 여김을 보고 저도 진실로 즐거워하여 나아가 그 합격하는 방법을 구하니 어떤 사람이 예부에서 주관한 부와 시 책(策)등을 내어서 보여주니, 저는 배우지 않고 합격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인하여 주현에 나아가 합격하기를 구하니 담당관리의 좋아하고 미워하는 것이 그의 마음에서 나와 4번 응시한 이후에 성취함이 있었으나 또한 곧 벼슬에 나아가지 못하고 들으니, 이부에서는 박학과 굉사(宏辭)로 선발된 사람이 있다면 사람들이 더욱 재주 있다 말하고, 또 훌륭한 벼슬을 얻어니 나아가 그 방법을 구하니 혹자가 시험친 문장을 내어서 보여주니 또한 예부와 같았다. 사사롭게 그 까닭을 이상하게 여겼다. 그러나 오히려 그 명성을 즐겨워하여 또 주부(州府)에 나아가 응시한 것이 모두 두 번 이었더니 이부에 응시하여 한 번 합격하였으나 또 중서성에서 쫓겨났으니 비록 벼슬을 얻지는 못하였지만 사람들이 간혹 능력이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물러나서 스스로 시험답지를 구하여 읽으니 곧 배우의 말과 같아 얼굴이 붉어지고 마음이 불편한 것이 몇 달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이윽고 시험 친다면 성취하고자 하니, 서경에서 말한 “허물을 부끄러워하면서 그릇됨을 한다.”는 거입니다. 인하여 다시 합격하기를 원했으나 또한 합격하지 못하니, 곧 다시 스스로 의심하여 시험하는 것과 합격하는 것은 그 정도가 같지 않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얻어서 봄에 미쳐서 내 또한 매우 부끄러운 것은 없으니, 이른 바 박학이라는 것이 어찌 지금에 이르는 것이며, 이른 바 굉사라는 것이 어찌 지금에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진실로 가령 옛 호걸의 선비인 굴원 맹가 사마천 상여 양웅의 무리로 하여금 이 선발에 응시하게 한다면 반드시 그들의 마음에 부끄러움을 알아서 곧 스스로 응시하지 않을 따름입니다. 설사 지금 잘 응시하여 합격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몽매한 가운데에서 경쟁하게 한다면 저는 반드시 그 욕됨을 압니다. 그러나 저 다섯 사람은 짐짓 가령 지금 세상에 태어나서 그 도가 비록 천하에 드러나지 않으나 그 스스로 자부함이 어떻겠습니까? 변변하지 못한 사람과 더불어 유사의 눈에서 득실을 결정되어 근심하고 즐거워함을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제가 응시함에 급급하지 않는 것은 그 작게 얻음은 대개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요, 크게 얻음은 대개 내가 즐거워함을 남과 함께 하고자 함입니다. 지금 족하가 곧 다시 옥을 바치는 것으로 비유하여 반드시 장인이 다듬기를 기다린 이후에 천하에 알려지고, 비록 두 번 발을 베이나 병이 되지 않고, 또 강한 사람으로 하여금 다시 극(剋)형을 하게 함이 없다고 생각하니, 진실로 족하가 면려하는 뜻이 두터습니다. 그러나 벼슬에 나아가는 사람이 어찌 이것을 버리고 다른 방법이 없겠습니까? 족하가 나에게 말하기를, 반드시 이것을 기다린 이후에 나아간다는 것은 더욱 잘하는 말이 아닙니다. 저의 옥은 진실로 일찍이 바친 적이 없으며 발도 진실로 베임을 당하지 않았으니, 족하는 나를 위하여 근심하지 마소서. 지금 천하는 풍속이 오히려 고인에게 미치지 못하여 변경에서는 오히려 갑옷을 입고 병장기를 가진 사람이 있으니 주상이 근심하고 재상이 또한 근심으로 여기니, 제가 비록 현명하지는 못하지만 또한 그 득실을 몰래 연구하여 우리 재상에게 바치고 우리 군주에게 올려서 위로는 대부의 지위를 희망하고 아래로는 장리를 취하여 탈 수 있으니, 만약 모두 얻지 못한다면 오히려 장차 한가로운 들에서 농사짓고 쓸쓸한 물가에서 낚시하여 국가의 남은 일을 구하고 현인과 철인의 종시를 생각하여 당나라의 한 경전을 지어서 후세에 드리우고 간사한 사람을 이미 죽은 것에서 주벌하고 잠긴 덕의 유광(幽光)을 드러낼 것이리니, 두 가지 것은 장차 반드시 하나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족하는 저의 옥을 몇 번이나 바쳐야 하며 발을 몇 번이나 베임을 당하여야 된다고 생각합니까? 또 이른 바 강하다는 사람은 과연 누구입니까? 다시 극의 형벌은 진실로 무엇입니까? 선비는 진실로 지기를 믿습니다. 족하는 저의 과언을 드러내지 마소서.

答元侍御書

婉媚感慨

완미하고 감개하다.

微之足下 前歳辱書 論甄逢父濟 識安祿山必反 即詐為喑棄去 祿山反有名號 又逼致之 濟死執不起 卒不汗禄山父子事 又論逢知讀書 刻身立行 勤已取足 不干州縣 斥其餘 以救人之急 足下繇是 與之交 欲令逢父子名迹 存諸史氏 足下以抗直喜立事 斥不得立朝 失所不自悔 喜事益堅 微之乎 子真安而樂之者 謹詳足下所論 載挍之史法 若濟者 固當得附書 今逢又能行身 幸於方州大臣 以標白其先人事 載之天下耳目 徹之天子 追爵其父第四品 赫然驚人 逢與其父俱當得書矣 濟逢父子自吾人發 春秋 美君子 樂道人之善夫 茍能樂道人之善則天下皆去惡為善 善人得其所 其功實大 足下與濟父子俱宜牽連得書 足下勉逢 令終始其躬 而足下年尚彊 嗣徳有繼 將大書特書 屢書不一書而巳也 愈既承命 又執筆以竢

미지(微之) 족하야. 지난 해 보내주신 편지에 논하기를, 진봉(甄逢)의 아버지 진제가 안록산이 반드시 반란을 일으킬 것을 알고 곧 거짓으로 벙어리가 되어 관직을 버리고 떠나가니 안록산이 반란함에 이름과 호를 적고 또 핍박하여 이르게 함에, 진제가 죽음으로 지켜 가담하지 아니하여 마침내 안록산 부자의 일에 이름을 더럽히지 아니하였다. 하고, 또 논하기를, 진봉은 독서를 하여 자신을 단속하며 실천하고 몸을 닦아 만족하여 주현(州縣)에 벼슬을 구하지 아니하고, 그 나머지를 드러내어 다른 사람의 위급함을 구제하니, 족하가 이 때문에 교제를 하여 진봉 부자의 이름과 자취를 역사에 기록하고자 하니, 족하는 강직함으로 일을 바로잡음을 좋아하여 배척당하여 조정에서 벼슬하지 못하고 자리를 잃어도 스스로 후회하지 아니하니 일을 좋아함이 더욱 견고해지니 미지여 그대는 진실로 편안히 즐기는 사람이다. 족하가 논한 것을 자세히 살피니 문득 역사의 법에 견주면 진제와 같은 사람은 진실로 역사에 기록됨이 마땅하다. 지금 진봉이 또 능히 자신을 실천하니, 다행히 방주의 대신에 대해서 그 아버지의 일을 드러내어 말하여 천하의 귀와 눈에 실어 천자에게 통하여 그 아버지의 작위가 제 4품에 추증되어 밝게 사람을 놀라게 하니, 진봉이 그의 아버지와 함께 마땅히 기록되어야 한다. 진제와 진봉 부자를 우리들로부터 드러낸다면 춘추에 아름다운 군자여 남의 선을 말하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진실로 참의 선을 말함을 좋아한다면 천하가 모두 악을 버리고 선을 실천하여 선인이 마땅한 곳을 얻는다면 그 공로는 진실로 크다. 족하는 진제 부자와 다 마땅히 나란하게 기록될 것이다. 족하가 진봉을 힘쓰게 하여 그 몸을 다스리게 하니 족하는 나이가 오히려 많고 덕을 계승함이 이음이 있어서 대서특필하여 자주 기록하여 한 번 기록되어 질뿐만이 아닐 것이다. 한유는 이미 왕명을 받았고 또 붓을 잡고 기다린다.

答陳商書

譬喻直與戰國策同調

비유가 곧 전국책과 나란하다

愈白 辱惠書 語髙而㫖深 三四讀 尚不能通曉 茫然増愧赧 又不以其淺弊無過人知識 且喻以所守 幸甚 愈敢不吐情實 然自識其不足補吾子所須也 齊王好竽 有求仕於齊者 操瑟而往 立王之門三年 不得入 叱曰吾瑟鼓之 能使鬼神上下 吾鼓瑟合軒轅氏之律呂 客罵之 曰王好竽而子鼓瑟 瑟雖工 如王不好何 是所謂工於瑟而不工於求齊也 今舉進士於此世 求禄利行道於此世而為文 必使一世人不好 得無與操瑟立齊門者比歟 文雖工 不利於求 求不得則怒且怨 不知君子必爾為不也 故區區之心 每有來訪者 皆有意於不肖者也 畧不辭讓 遂盡言之 惟吾子諒察

한유는 아룁니다. 혜서를 받아보니, 말이 고상하고 뜻이 깊어서 서너 번 읽어도 오히려 통달할 수가 없으니, 망연히 부끄러움과 무안함만 더할 뿐입니다. 또 천박하고 용렬하여 남보다 뛰어난 지혜화 식견이 없다고 여기지 않으시고 또 지킬 바를 깨우쳐주시니, 매우 다행입니다. 제가 김히 설정을 토로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오자가 필요로 하는 바에 보탬이 되지 못함을 스스로 알고 있습니다.

제나라 왕이 젓대 소리를 좋아하였는데, 제나라에서 벼슬을 구하는 자가 비파를 가지고 가서 제왕의 문에 서 있기를 3년 동안이나 하였으나 들어가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꾸짖기를 “내가 비파를 타면 귀신으로 하여금 오르내리게 할 수 있으며, 내가 비파를 타는 것은 헌원씨의 율려에 맞는다.” 하였습니다. 이에 객이 꾸짖기를 “왕은 젓대를 좋아하는데 그대는 비파를 타니, 비파는 비록 잘 타나 왕이 좋아하지 않음을 어찌하겠는가?”하였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비파는 비록 잘 타나 제나라에서 벼슬을 구하는 데는 잘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이 세상에서 진사에 천거되어 녹리를 구하고 이 세상에 도를 행하려 하면서 문장을 지을 때에 반드시 한 세상의 사람들로 하여금 좋아하지 않게 한다면, 비파를 잡고 제나라 문에 서 있는 자와 똑같지 않겠습니까? 문장은 빌고 잘하나 벼슬을 구하는 데는 이롭지 못하여, 벼슬을 구하여도 얻지 못하면 노하고 또 원망할 것이니, 군자가 반드시 이렇게 하는지 나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므로 구구한 마음이 매양 와서 묻는 자가 있으면 모두 불초한 저에게 관심이 있는 것이라고 여깁니다. 이에 조금도 사양하지 않고 마침내 말을 다항니, 그대는 양찰하기 바랍니다.

答侯繼書

澹宕自奇

裴子自城來 得足下一書 明日又於崔大處 得足下陜州所留書 翫而復之 不能自休 尋知足下不得留 僕又為考官所辱 欲致一書 開足下 并自舒其所懷 含意連辭 將發復巳 卒不能成就其說 及得足下二書 凡僕之所欲進於左右者 足下皆以自得之 僕雖欲重累其辭 諒無居足下之意外者 故絕意不為行 自念方當逺去 濳深伏隩 與時世不相聞 雖足下之思 我無所窺尋其聲光 故不得不有書為別 非復有所感發也 僕少好學問 五經之外 百氏之書 未有聞而不求 得而不觀者 然其所志 惟在其意義所歸至於禮樂之名數隂陽土地 星辰方藥之書 未嘗一得其門戶 雖今之仕進者 不要此道 然古之人未有不通此而能為大賢君子者 僕雖庸愚 每讀書 輒用自愧 今幸不為時所用 無朝夕役役之勞 將試學焉 力不足而後止 猶將愈於汲汲於時俗之所爭 既不得而怨天尤人者 此吾今之志也 懼足下以吾退歸 因謂我不復能自彊不息 故因書奉曉 冀足下知吾之退 未始不為進 而衆人之進 未始不為退也 既貨馬 即求船東下二事 皆不過後月十日 有相問者 為我謝焉

배자(裴子)가 성으로부터 옴에 그대의 한 통의 편지를 받고 다음 날에 또 최대처(崔大處)에게서 그대가 섬주(陜州)에서 머물러 둔 편지를 받고 완미하고 다시 읽기를 능히 스스로 그만두지 못하고, 이윽고 그대가 머무르지 못함을 알았다. 내가 또 고관(考官)에게 모욕을 당하여 한 통의 편지를 붙여 그대의 생각을 열고 아울러 스스로 생각한 것을 서술하고자 하여 뜻을 머금고 말을 이어서 장차 발명하려 하다가 다시 그만두어 마침내 그 말을 이루지 못하였는데, 그대의 두 통의 편지를 받고 보니 무릇 내가 좌우에 나아가고자 하는 것을 족하가 모두 스스로 얻었는지라, 내가 비록 거듭 그 말을 잇고자 하나 진실로 족하의 뜻 이외에 거할 것이 없었기 때문에 생각을 버리고 실행하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기를 바야흐로 마땅히 먼 곳으로 떠나 깊은 곳에 숨고 모퉁이에 엎드려 시속의 일을 듣지 않으려 하였다. 비록 그대의 생각이나// 내가 그 소리와 낯빛을 엿보아 찾지 못하였기 때문에 편지를 붙여서 분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요, 다시 감발하려는 것은 아니다.

나는 어려서 학문을 좋아하여 5경 이외에 백가의 책을 듣고서 구하지 않으며 얻고서 보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러나 그 뜻하는 것은 오직 그 의의가 귀의하는 바에 있고, 예악의 명수(名數)와 음양(隂陽) 토지(土地) 성진(星辰) 방약(方藥)의 책에 이르러서는 일찍이 하나라도 그 문호를 얻지 않았으니, 비록 지금에 벼슬하여 나가는 사람이 이 도를 요구하지는 않지만 고인 가운데 이것에 통달하지 않고 대현과 군자가 된 사람은 있지 않다. 내가 비록 어리석으나 매양 독서함에 문득 스스로 부끄러워하였거늘 지금 다행히 시절에 버림을 당하여 아침저녁으로 힘쓰는 수고로움이 없어 장차 시험삼아 배워 힘이 부족한 이후에 그치니 오히려 장차 시속의 다투는 바에 급급함 보다는 나으니, 이미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사람을 허물하지 않는 것은 이것은 내 지금의 뜻이다.

그대가 내 물러남으로 인하여 생각하기를, 내가 다시 능히 자강불식(自彊不息)하지 않음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인하여 편지를 보내어 깨우쳐 주시니, 바라건대, 그대는 나의 물러남은 애초에 나아감이 되지 않는 것이 아니요, 중인의 나아감은 애초에 물러남이 되지 않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이미 말을 사고 곧 배를 구입하여 동쪽으로 내려가는 두 가지 일은 모두 다음 달 10일을 넘지 않을 것이니, 묻는 사람이 있으니 나를 위하여 사례하라.

答李秀才書

因與李秀才 無舊 獨於元賓詩中 得其人 故遂始終托元賓 以冩兩與之情

이수재에게 준 편지로 인하여 구면은 없고 유독 원빈의 시 가운데 그 사람을 얻었다. 그러므로 시종 원빈에 의탁하여 두 사람이 허여한 정을 말하였다.//

愈白 故友李觀元賓 十年之前 示愈別呉中故人詩六章 其首章則吾子也 盛有所稱引 元賓行峻 潔清其中 狹隘不能苞容 於尋常人 不肯茍有論說 因究其所以 於是 知吾子非庸衆人 時吾子在呉中 其後愈出在外 無因縁相見 元賓既没 其文益可貴重 思元賓而不見 見元賓之所與者 則如元賓焉 今者辱惠書及文章 觀其姓名 元賓之聲容 恍若相接 讀其文辭 見元賓之知人 交道之不汚 甚矣 子之心有似於吾元賓也 子之言以愈所為不違孔子 不以琢雕為工 將相從於此 愈敢自愛其道而以辭讓為事乎 然愈之所志於古者 不惟其辭之好好其道焉爾 讀吾子之辭而得其所用心 將復有深於是者與 吾子樂之 況其外之文乎 愈頓首

한유는 아룁니다. 고(故) 벗 이관 원빈이 10년 전에 나에게 오중의 벗을 이별하는 시 6장을 보여 주었는데, 그 첫 장이 그대이다. 성대하게 칭찬한 바가 있으니, 원빈은 행실이 높고 깨끗하여 그 마음이 너무 깨끗하여 능히 일반 사람에게서 포용되지 못하니 구차히 논평을 두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인하여 그 까닭을 연구하여 이에 그대는 평범한 사람이 아님을 알았다. 당시에 그대는 오중에 있었고, 그 뒤에 나는 외직을 맡고 있어 서로 볼 수 있는 인연이 없었다. 원빈이 이미 죽었으니 그의 문장은 더욱 귀중하다. 원빈을 생각하나 보지 못하니 원빈이 사귄 사람을 본다면 원빈과 같을 것이다. 지금 편지와 문장을 보내주어 그 성명을 관찰함에 원빈의 소리와 용모를 황홀하게 만나는 듯하고, 그 문장을 읽음에 원빈이 사람을 앎과 도를 벗함이 더럽지 않음을 보니, 심하도다. 그대의 마음이 우리 원빈과 같음이여.

그대의 말은 한유가 하는 행실이 공자와 다르지 않아서 조탁으로 공교로움을 삼지 않아 장차 서로 여기에서 따른다고 하니, 한유가 감히 스스로 그 도를 사랑하여 사양으로 일삼으랴. 그러나 내가 고도에 뜻을 바는 오직 문사의 좋은 것일 뿐만 아니라 그 도를 좋아할 따름이다. 그대의 문장을 읽음에 그 마음 씀이 장차 다시 이것보다 깊은 것이 있음을 얻으니, 그대와 더불어 즐기는데 하물며 그 밖의 문장에 있어서랴. 한유는 머리를 조아립니다.

答馮宿書

於喜聞過中 却有自已一段直巳而守的意在

허물을 들음을 즐거워하는 가운데 스스로 일단의 자기를 곧게하여 지키려는 뜻이 있다.

垂示僕所闕 非情之至 僕安得聞此言 朋友道缺絶 久無有相箴規磨切之道 僕何幸乃得吾子 僕常閔時俗人有耳不自聞其過 懔懔然 惟恐巳之不自聞也 而今而後 有望於吾子矣 然足下與僕交久 僕之所守 足下之所熟知 在京城時 囂囂之徒 相訾百倍 足下時與僕 居朝夕 同出入起居 亦見僕有不善乎 然僕退而思之 雖無以獲罪於人 亦有以獲罪於人者 僕在京城一年 不一至貴人之門 人之所趨 僕之所傲 與己合者則從之遊 不合者 雖造吾廬 未嘗與之坐 此豈徒足致謗而巳 不戮於人則幸也 追思之 可為戰慄寒心 故至此巳來 尅巳自下 雖不肖人至 未嘗敢以貌慢之 況時所尚者耶 以此 自謂庶幾無時患 不知猶復云云也 聞流言 不信其行 嗚呼 不復有斯人也 君子不為小人之恟恟而易其行 僕何能爾委曲從順 向風承意 汲汲恐不得合 猶且不免云云 命也 可如何 然子路聞其過 則喜 禹聞昌言則下車拜 古人有言 曰告我以吾過者 吾之師也 願足下不憚煩 茍有所聞 必以相告吾 亦有以報子 不敢虚也 不敢㤀也

내가 잘못함을 보여주시니 정의 지극함이 아니면 내가 어찌 이것을 들을 수 있으리오. 붕우의 도리가 끊어져 오래도록 서로 깨우쳐주고 절마하는 도리가 없었는데, 내가 다행히 곧 그대를 만남이로다. 내가 항상 시속의 사람이 귀가 있으나 스스로 그 허물을 듣지 않는 것을 근심하고, 늠름히 오직 내가 스스로 듣지 않을까 두려워하였는데 지금 이후에 그대에게 바람이 있다. 그러나 족하는 내와 더불어 사귐이 오래되어 내가 지키는 바를 족하가 익숙히 아는 바이다. 내가 서울에 있을 때 말이 많은 무리들이 서로 헐뜯기를 백 배로 하거늘 족하가 당시에 나와 더불어 아침저녁으로 거처하여 함께 출입하고 일하였는데 또한 내 불선이 있는 것을 보았는가? 그러나 물러나 생각하니 비록 남에게 죄를 얻는 것이 없더라도 또한 남에게 죄를 받는 것이 있었다. 내가 경성에 1년 동안 있으면서 귀인의 집에 한 번도 이르지 않고 남들이 따르는 바를 내가 오연히 여겨 나와 더불어 뜻이 합치하는 사람은 따라 놀고 뜻이 합치하는 않는 사람은 비록 나의 집에 이르더라도 일찍이 함께 앉지 않았으니 이것이 어찌 다만 족히 비방만을 이르게 할 따름이겠는가? 남에게 죽지 않는다면 다행이다. 돌이켜 생각건대, 두려워하고 한심할 만하다. 그러므로 여기에 이른 이후에는 나를 이겨 스스로 낮추어서 비록 불초한 사람이 이르더라도 일찍이 감히 태만한 모습을 하지 않았는데, 하물며 당시에 숭상하는 사람에 있어서랴? 이것으로 스스로 거의 당시의 근심이 없다고 생각하였거늘, 알지 못하겠다. 오히려 이러이러한 말이 있음을. 소문을 듣고 그 행실을 믿지 않으니, 아, 다시 이런 사람이 없구나. 군자는 소인들이 떠드는 것 때문에 그 행실을 바꾸지 않으니, 내가 어찌 능히 이렇게 왜곡되고 순종하여 소문을 따라서 급급하게 뜻이 합치하지 않음을 두려워 하겠는가? 오히려 장차 이러 이러한 말이 있는 것을 면하지 못하니, 천명인지라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자로는 그의 허물을 들으면 즐거워하고 우임금은 선한 말을 듣고 수레에서 내려 절하였다. 옛 사람이 말하기를, “나에게 나의 허물을 말해주는 사람은 나의 스승이다.”라고 하니, 원하건대 족하는 번거러움을 꺼리지 말고 진실로 듣는 것이 있거든 반드시 그것으로 말해주기를 바란다. 나도 또한 그대에게 말해 줄 것이니 감히 헛되이 하지 말고 감히 잊지 말라.

答竇秀才書

愈少駑怯 於他藝能 自度無可努力 又不通時事而與世多齟齬 念終無以樹立 遂發憤篤專於文學 學不得其術 凡所辛苦而僅有之者 皆符於空言而不適於實用 又重以自廢 是故 學成而道益窮 年老而智愈困 今又以罪黜於朝廷 逺宰蠻縣 愁憂無聊 瘴癘侵加 喘喘焉 無以冀朝夕 足下年少才俊 辭雅而氣銳 當朝廷求賢如不及之時 當道者又皆良有司 操數寸之管 書盈尺之紙 髙可以釣爵位 循序而進 亦不失萬一於甲科 今乃乘不測之舟 入無人之地 以相從問文章為事 身勤而亊左 辭重而請約 非計之得也 雖使古之君子 積道藏徳 遁其光而不曜 膠其口而不傳者 遇足下之請懇懇 猶將倒廪傾囷羅列而進也 若愈之愚不肖 又安敢有愛於左右哉 顧足下之能 足以自奮 愈之所有 如前所陳 是以臨事愧恥而不敢答也 錢財不足以賄左右之匱急 文章不足以發足下之事業 稛載而往 垂槖而歸 足下亮之而已

나는 젊어서 미련하고 겁이 많아서 다른 기예와 능력에 있어서 스스로 노력할 수 없음을 생각하였고, 또 당시의 일에 통달하지 못하여 세상 사람들과 어긋남이 많아 생각을 끝내 수립할 수 없었다. 마침내 문학에 분발하고 독실하게 공부하였는데, 학문이 그 기술을 얻지 못하여 무릇 고생스럽게 겨우 얻은 것은 모두 부질없는 말에 맞고 실용에는 적합하지 않고, 또 거듭 스스로 폐기하였으니, 이 때문에 학문이 성취되면 도가 더욱 궁핍하고 나이가 들면 지혜가 더욱 궁핍하였다. 지금 또 죄를 받아 조정에서 쫓겨나 멀리 변방을 지키고 있어 근심하여 편안함이 없으며, 풍토병이 들어서 헐떡거리며 아침저녁으로 바라는 것이 없다.

족하는 나이가 젊고 재주가 준걸하며 문사는 우아하고 기운은 날카로워 조정에서 어진사람을 구함에 마치 미치지 못하는 때를 당하여 요로를 담당한 사람이 또 모두 어진 관리인지라 몇 촌의 붓을 잡아 한 자되는 종이에 쓴다면 높이 작위를 이를 수 있어서 순서를 따라 나아감에 또한 만에 하나라도 과거에 급제함을 잃지 않을 것이다. 지금 곧 헤아리지 못하는 배를 타고 사람이 없는 땅에 들어가서 서로 문장을 의논하는 것에 종사하여 몸이 부지런하나 일이 어긋나고 말이 중후하나 청은 요약되니 계책의 옳은 것이 아니다. 비록 옛 군자가 도를 쌓고 덕을 감추어 그 빛을 숨겨 빛나지 않고 그 입을 막아 전수하지 않는 사람으로 하여금 족하의 간청이 정성스러움을 만나게 하더라도 장차 속에 있는 마음을 내어서 펼쳐 올리거늘, 나의 어러섞음이 또 어찌 감히 그대에게 아끼는 것이 있겠는가?

돌아보건대 족하의 능력은 스스로 분발할 수 있고, 내가 소유한 것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이 때문에 일에 임하여서 부끄럽워 감히 대답하지 못한다. 재물은 그대의 위급함에 보탤 수 없고 문장은 그대의 사업에 분발할 수 없으니 수레에 싣고 왔다가 전대를 비워서 돌아 갈 것이리니, 그대는 헤아릴 따름이다.

答呂毉山人書

여의 산인에게 답하는 편지.

奇氣

기이한 기상이다.

愈白 惠書責以不能如信陵執轡者 夫信陵戰國公子 欲以取士聲勢傾天下而然耳 如僕者自度若世無孔子 不當在弟子之列 以吾子始自山出 有朴茂之美意 恐未礱磨以世事 又自周後文弊 百子為書 各自名家 亂聖人之宗 後生習傳 雜而不貫 故設問以觀吾子 其已成熟乎 將以為友也 其未成熟乎 將以講去其非而趨是耳 不如六國公子有市於道者也 方今天下入仕 惟以進士明經 及卿大夫之世耳 其人率皆習熟時俗 工於語言 識形勢 善候人主意 故天下靡靡 日入於衰壞 恐不復振起 務欲進足下趨死不顧利害去就之人於朝以爭救之耳 非謂當今公卿間 無足下輩文學知識也 不得以信陵比然 足下衣破衣繫麻鞋 率然叩吾門 吾待足下 雖未盡賓主之道 不可謂無意者 足下行天下 得此於人蓋寡 乃遂能責不足於我 此真僕所汲汲求者 議雖未中節 其不肯阿曲以事人者 灼灼明矣 方將坐足下三沐而三熏之 聽僕之所為 少安無躁

한유를 아룁니다. 보내온 편지에 신릉군이 손수 고삐를 잡고 인재를 만남과 같지 못하다는 것으로 꾸짖으니, 대저 신릉군은 전국시대의 공자로 선비를 모아 세력을 드러내는 것으로 천하를 기우리고자 하여 그렇게 하였을 따름이다. 나와 같은 사람은 스스로 헤아리건대 세상에 공자가 없었더라면 마땅히 제자의 반열에 있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대가 처음 산림으로부터 나와 순박하고 인정이 많은 아름다운 뜻이 있지만 세상의 일로 연마하지 못함을 두려워한다. 또 주나라 이후로 백자들이 책을 지음에 각각 스스로 명가라고 하여 성인의 종지를 어지럽히며 후배들이 익히고 전함이 잡되어 관통하지 못하기 때문에 가설하여 물어 그대를 관찰하고자 하니, 그 이미 이룸이 익숙하다면 장차 그것으로 벗으로 삼으려 한다. 그 아직 성숙하지 못하였다면 장차 그것으로 강론하여 그 그릇됨을 제거하여 옳음에 나아가게 할 따름이니, 6국의 공자가 길에서 거래를 함이 있는 것과는 같지 않다. 지금 천하가 들어가 벼슬함에 오직 진사과와 명경과로 공경과 대부의 세가에 미칠 따름이다. 그 사람이 대체로 모두 시속에 익숙하고 언어에 공교로워서 형세를 알고 군주의 뜻에 잘 부합하기 때문에 천하가 모두 넘어져 날마다 쇠락하고 무너짐으로 들어가니 다시 떨쳐 일어나지 못함을 두려워하여, 힘써 족하가 죽음에 나아감에 이해와 거취를 돌아보지 않는 사람을 천거하여 다투워 구하고자 할 따름이요, 지금 공경의 사이에 족하의 무리와 같이 문학과 지식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니 신릉군으로 견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촉하가 헤진 못을 입고 미투리 신발을 신고 가볍게 나의 문을 두드리니 내 족하를 대우함이 비록 빈주의 도를 다하지 못하지만 뜻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족하가 천하를 다님에 여기에서 사람을 얻음이 대개 적으니, 곧 마침내 능히 부족함을 나에게 꾸짖으니 이것은 진실로 내가 급급하게 구하는 것이다. 의론이 비록 절대에 맞지 않지만 그 아부함으로 남을 섬김을 즐거워하지 않는 사람이 분명하게 명확할 것이다. 바야흐로 족하의 세 번 목욕하고 세 번 향내를 맡게 함으로 인하여 복이 하는 바를 따라서 조금 편안하고 조급함이 없게 하라.

答胡生書

情本悃愊而有深思處堪把翫

정이 정성에 근본하여 깊이 생각한 곳이 있으니, 가지고 완상할 수 있다.

愈頓首胡生秀才足下 雨不止 薪芻價益髙 生逺客 懷道守義 非其人 不交 得無病乎 斯須不展 思想無巳 愈不善自謀 口多而食寡 然猶月有所入 以愈之不足 知生之窮也 至於是而不悔 非信道篤者 其誰能之 所示千百言 畧不及此而以不屢相見為憂 謝相知為急 謀道不謀食 樂以㤀憂者 生之謂矣 顧無以當之 如何 夫別是非 分賢與不肖 公卿貴位者之任也 愈不敢有意於是 如生之徒 於我厚者 知其賢 時或道之 於生未有益也 不知者 乃用是為謗 不敢自愛 懼生之無益而有傷也 如之何 若曰彼有所合 吾不利其求則庶可矣 生又離鄉邑去親愛 甘辛苦而不厭者 本非為是也 如之何 愈之於生 既不變矣 戒生無以示愈者 語於人 用息不知者之謗 生慎從之 講禮釋友二篇 比舊尤佳 志深而喻切 因事以陳辭 古之作者 正如是爾

한유는 호생 수재 족하에게 머리를 조아립니다. 비가 그치지 않아 땔나무의 값이 더욱 치솟습니다. 호생은 멀리서 온 객으로 도를 생각하고 의를 지켜 그 사람이 아니면 사귀지 아니하니, 고통이 없을 수 있겠는가? 잠깐 펴지 못하나 생각이 그치지 않는다. 한유는 스스로 도모함을 잘하지 못하여 식구가 많고 식량은 부족하다. 그러나 오히려 달마다 들어오는 수입이 있으니 한유의 부족함으로 호생의 궁핍함을 압니다. 이러한 지경에 이르렀으나 후회하지 않으니 도를 믿음이 돈독한 사람이 아니라면 그 누가 능하겠습니까? 보여 준 천백 언이 대략 이러한 언급은 하지 않고 자주 서로 보지 않는 것으로 근심을 삼고 서로 앎을 말하는 것으로 위급함으로 여기며, 도를 도모하고 양식을 도모하지 않고 즐거움으로 근심을 잊는 사람은 호생을 이를 것이다. 도리어 합당하지 못하니 어떻게 할 것인가? 대저 시비를 분별하고 어짊과 불초함을 분별하는 것은 공경과 귀인의 임무이니, 한유가 감히 여기에 뜻을 두는 것은 아니다. 생의 무리는 나에게 두터운 사람이니 그 어짊을 알고 때때로 혹 말하니 생에 있어서 보탬이 있지 않고 알지 못하는 사람은 곧 이것으로 비방하니, 감히 스스로 아끼는 것이 아니라 유익함은 없고 해로움이 있음을 두려워하니 어떻게 하겠는가? 저가 합하는 바가 있으나 내 그 구함을 이롭게 여기지 않는다고 말할 것 같으면 거의 옳을 것이다. 또 고향을 떠나 가족을 버리고 괴로움을 달갑게 여기고 싫어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본디 이것을 하려는 것이 아니니 어찌할 것인가? 한유는 생에 대해서 이미 마음이 변하지 않을 것이다. 생에게 경계하노니, 나에게 보인 것으로 남에게 말하지 말아 알지 못하는 사람의 비방을 종식시켜하니, 생은 삼가 따르라. 강례(講禮)와 석우(釋友) 두 편은 예전과 비교하면 더욱 아름다우니 뜻이 심오하고 비유가 절실하다. 일로 인하여 말을 진설함은 옛 작자가 정히 이와 같은 따름이다.

答尉遲生書

愈白尉遲生足下 夫所謂文者 必有諸其中 是故 君子慎其實 實之美惡 其發也不揜 本深而末茂 形大而聲宏 行峻而言厲 心醇而氣和 昭晰者無疑 優游者有餘 體不備 不可以為成人 辭不足 不可以為成文 愈之所聞者 如是 有問於愈者 亦以是對 今吾子所為皆善矣 謙謙然 若不足而以徴於愈 愈又敢有愛於言乎 抑所能言者 皆古之道 古之道 不足以取於今 吾子何其愛之異也 賢公卿大夫在上比肩 始進之賢士在下比肩 彼其得之 必有以取之也 子欲仕乎 其往問焉 皆可學也 若獨有愛於是而非仕之謂 則愈也 嘗學之矣 請繼今以言

한유는 위지생 족하에게 아룁니다. 대저 이른 바 문(文)이라는 것은 그 중심에 있어서 나온 것이다. 이 때문에 군자는 그 실상을 삼가니 실상의 아름답고 나쁜 것은 그 발현됨에 가릴 수 없으나 뿌리가 깊으면 가지가 무성하고 형체가 크면 소리가 웅장하며, 행실이 높으면 말이 근엄하고 마음이 순박하면 기운이 온화하니, 밝은 사람은 의심이 없고 넉넉히 노니는 사람은 남음이 있다. 몸이 온전하지 않다면 사람이 될 수 없고, 말이 부족하면 문정을 이룰 수 없으니, 한유가 들은 것은 이와 같다. 나에게 묻는 사람이 있다면 또한 이것으로 대답한다.

지금 그대가 말하는 것은 모두 아름답지만 겸손하게 부족하게 여겨 나에게 징험하니, 나는 또 감히 말을 아끼겠는가? 그러나 능히 말하는 것은 모두 옛날의 도이니, 옛날의 도는 지금에 취하기에 부족하거늘 그대가 어찌 그 사랑함이 남과 다른고? 어진 공경과 대부들이 위에서 나란하고, 처음 벼슬에 나아간 어진 선비들이 아래에서 나란하니, 저들이 얻은 것은 반드시 취함이 있을 터이니, 그대가 벼슬하고자 한다면 그들에게 가서 묻는다면 모두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유독 이것만을 사랑하고 벼슬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면 한유는 일찍이 배웠다. 청컨대, 지금을 이어서 말합니다.

答楊子書

納交之始 如此 此其所以既合而不為暌也

사귀는 처음이 이와 같으니, 이것은 이미 합치하고 외면하지 않는 까닭이다.

辱書 并示表記述書辭等五篇 比於東都 略見顏色 未得接言語 心固巳相奇 但不敢果於貌定 知人 堯舜所難 又嘗服宰予之誡 故未敢決然決 亦不敢忽然㤀也 到城已來 不多與人還往 友朋之中 所敬信者 平昌孟東野 東野吃吃說足下 不離口 崔大敦詩不多見 每每說人物 亦以足下為處子之秀 近又得李七翺書 亦云足下之文 逺其兄甚 夫以平昌之賢 其言一人 固足信矣 況又崔與李繼至而交説邪 故不待相見 相信巳熟 既相見 不要約巳相親 審知足下之才 充其容也 今辱書 乃云云 是所謂以黃金注 重外而内惑也 然恐足下少年 與僕老者不相類 尚須驗以言 故具白所以 而今而後 不置疑於其間 可也 若曰長育人才 則有天子之大臣在 若僕者守一官 且不足以修理 況如是重任邪 學問有暇 幸時見臨 愈白

편지를 보냄에 아울러 표, 기, 술, 서, 사 등 5편을 보여주었고, 근자에 동도에서 대략 얼굴을 보았지만 대면하여 말하지는 못하고 마음이 이미 진실로 서로 기이하였지만, 다만 감히 모습으로 정함에는 과감하지 못하니, 사람을 안다는 것은 요와 순임금도 어렵게 생각하였다. 또 일찍이 재여(宰予)의 경계를 마음에 새겼다. 그러므로 감히 결연하게 결정하지 못하고, 또한 감히 갑자기 잊지 못했다.

경성에 이른 이후로 남과 많이 왕래하지 않았다. 벗 가운데 공경하고 믿는 사람은 평창 맹동야이니, 동야가 웃으면서 족하를 말하는 것이 입에서 멈추지 않고, 최대돈의 시는 많이 드러내지 않지만 매양 인물을 말함에 또한 족하를 처녀의 수려함으로 생각하였다. 근자에 또 이고의 편지를 받으니, 또한 족하의 문장이 그 형보다 심원함에 심하다고 하였다.

대저 평창의 어짊으로 그가 말한 한 사람이 진실로 족히 믿을 수 있는데, 하물며 또 최대돈과 이고가 이어서 서로 말함에랴? 그러므로 서로 보기를 기다리지 않고 서로 믿음이 이미 익숙하고, 이미 서로 봄에 약속을 요구하지 않고 이미 서로 친근하니, 족하의 재주가 그 용모를 채울 수 있음을 살펴 알겠습니다.

지금 편지에 곧 말한 것은, 이것은 이른 바 “황금으로 부어서 외면을 중시하고 내면은 의혹된다.”라는 것이다. 그러나 저어컨대, 족하는 소년인지라 나의 늙은 것과는 같지 않으나, 오히려 말로 징험해야 하기 때문에 까닭을 갖추어 말하니, 지금 이후로 그 사이에 의심을 두지 않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인재를 기른다고 말하는 것은 천자의 대신이 있으니, 나와 같은 사람은 한 관직을 지킴도 또 다스리지 못하는데, 하물며 이와 같은 중임에 있어서랴?

학문하는 여가에 때때로 왕림해주시기를 바랍니다. 한유는 아룁니다.

為河南令上畱守鄭相公啓

하남령을 위하여 유수 정상공에게 올리는 계

情直而辭婉

정이 곧고 말이 완곡하다.

愈啓 愈為相公官屬五年 辱知辱愛 伏念曽無絲毫事為報答效 日夜思慮謀畫 以為事大君子 當以道 不宜茍且求容悅 故於事 未嘗敢疑惑 宜行則行 宜止則止 受容受察 不復進謝 自以為如此 真得事大君子之道 今雖䝉沙汰為縣 固猶在相公治下 未同去離門牆為故吏 為形跡嫌疑 改前所為 以自疎外於大君子 固當不待煩說於左右而後察也 人有告人辱罵其妺與妻 為其長者 得不追而問之乎 追而不至 為其長者 得不怒而杖之乎 坐軍營 操兵守禦 為留守出入 前後驅從者 此真為軍人矣 坐坊市賣餅 又稱軍人則誰非軍人也 愚以為此必姦人以錢財賂將吏 盜相公文牒 竊注名姓於軍籍中 以陵駕府縣 此固相公所欲去 奉法吏 所當嫉 雖捕繫杖之 未過也 昨聞相公追捕所告受辱罵者 愚以為大君子為政 當有權變 始似小異 要歸於正耳 軍吏紛紛入見告屈 為其長者 安得不小致為之之意乎 未敢以此仰疑大君子 及見諸從事說 則與小人所望信者 少似乖戾 雖然 豈敢生疑於萬一 必諸從事與諸將吏 未能去朋黨心 蓋覆黤黮 不以真情狀白露左右 小人受私恩良久 安敢閉蓄 以為私恨 不一二陳道 伏惟相公憐察 幸甚幸甚 愈無適時才用 漸不喜為吏 得一事為名 可自罷去 不啻如棄涕唾 無一分顧藉心 顧失大君子纎芥意 如丘山重 守官去官 惟今日指揮 愈惶懼再拜上

한유는 알룁니다. 한유가 상공의 관속이 되지가 5년이니, 알아줌을 받고 사랑을 받았습니다. 엎드려 생각하니, 일찍이 작은 일에 보답의 바침이 없어 밤낮으로 생각하고 도모하여 대군자를 심김에는 마땅히 도리로써 해야하고, 구차히 아침함을 구함은 마땅하지 않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일에 대해서 일찍이 감히 의혹하지 않고 마땅히 실행해야 하면 실행하고 마땅히 그만두어야 하면 그만두어 수용하고 살펴서 다시 나아가 말하지 않고, 스스로 이와 같아야지만 진실로 대군자를 섬기는 도리를 얻는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지금 비록 뽑혀 현을 다스리지만 진실로 오히려 상공의 다스림 아래에 있으니 문하를 떠나 옛 관리가 된 것과는 같지 않고 형적의 혐의를 위하여 앞서 행위를 고쳐서 스스로 대군자에게 소외되었으니, 진실로 마땅히 좌우에 번거로운 설명을 기다린 이후에 살피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그의 누이와 첩을 욕함을 알려줌이 있다면 장자된 사람이 쫓아가서 묻지 않을 수 있겠는가? 쫓아가서 이르지 않으면 장자되 사람이 노여워하여 매질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군영에 앉아 병권을 잡고 지키니, 유수를 위해 출입하여 앞뒤로 몰고 따르는 사람은 진실로 군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시정에 앉아서 떡을 팔며 또 군인이라고 말한다면 누가 군인이 아니랴? 나는 이것은 반드시 간사한 사람이 금전으로 장리에게 뇌물을 주어서 상공의 문첩을 훔쳐 가만히 성명을 군적 가운데에 적어서 부현을 능멸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진실로 상공이 제거하고자 하는 것이요, 법관이 마땅히 미워하는 것이니, 비록 잡아매어 매질하더라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어제 들으니, 상공이 알려 욕을 받은 바의 사람을 사로잡았다고 합니다. 나는 대군자가 정치를 함에 마땅히 권도로 변화를 두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조금 다르지만 모름지기 바른 곳으로 돌아갈 따름입니다. 군리가 어지럽게 들어가 보고 잘못된 것을 알린다면 장자된 사람이 어찌 조금 다스림을 하는 뜻을 이룰 수가 있겠습니까? 감히 이것으로 우러러 대군자를 의심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 종사관의 말을 들음에 미쳐서 소인이 바라고 믿는 바와는 조금 어긋납니다. 비록 그렇지만 어찌 감히 조금이라도 의심하는 마음을 내겠습니까? 반드시 종사관와 여러 장리가 능히 붕당의 마음을 제거하지 않아 덮어 어둡게 하여 진정으로 좌우에 알리지 않은 것입니다. 소인은 사사로운 은혜를 받음이 진실로 오래됨에 어찌 감히 닫고 쌓아서 사사로이 한스러워하여 하나 둘 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엎드려 생각건대, 상공께서 불쌍히 여기시고 살펴준다면 다행이겠습니다. 한유는 당시에 알맞은 재주가 없어 잠시 관리가 됨을 기뻐하지 않고 한 가지 일로 명분을 삼을 수 있다면 스스로 떠나갈 수 있으니, 눈물을 흘리는 것과 같을 뿐만이 아닙니다. 조금 마음에 의지함을 돌아봄이 없고, 도리어 대군자의 작은 뜻을 잃음이 구릉의 무거움과 같습니다. 관직을 지키고 관직을 떠남은 오직 지금의 지시를 따르겠습니다. 한유는 두려운 마음으로 재배하고 올립니다.

賀徐州張僕射白兎狀

類終軍白麟奇木對

종군 백린 기목 대와 비슷하다.

伏聞今月五日 營田巡官 陳從政 獻瑞兎 毛質皦白 天馴其心 其始實得之符離安阜屯 屯之役夫 朝行遇之 迫之弗逸 人立而拱 竊惟休咎之兆 天所以啓覺于下 依類託喻 事之纎悉 不可圖驗 非睿知博通 孰克究明 愈雖不敏 請試辨之 兎 隂類也 又窟居 狡而伏 逆象也 今白其色 絕其羣也 馴其心 化我徳也 人立而拱 非禽獸之事 革而從人 且服罪也 得之符離 符離實戎國 名又附麗也 不在農夫之田而在軍田 武徳行也 不戰而來之之道也 有安阜之嘉名焉 伏惟閣下 股肱帝室 藩垣天下 四方其有逆亂之臣 未血斧鑕之屬 畏威崩析 歸我乎哉 其事兆矣 是宜具跡表聞 以承答天意 小子不惠 猥以文句微識䝉念 睹兹盛美 焉敢避不讓之責而黙黙耶

엎드려 듣건대, 경영 순관 진종정이 상서로운 토끼를 받치니, 털은 희고 그 마음은 온순하니, 그 처음 실로 부리의 안부둔에서 얻었으니, 둔의 역부가 아침에 가다가 만나 가까이 다가가더라도 달아나지 않고 사람처럼 서서 팔짱을 끼었다. 가만히 생각하니, 아름다움과 허물의 조짐은 하늘이 아래에게 열어 깨우치는 것이니, 유에 의지하고 비유에 의탁하여 일의 섬세하고 다함은 징험을 도모할 수 없으니, 지혜롭고 널리 통달한 사람이 아니면 누가 능히 구명할 수 있겠습니까? 한유는 비록 민첩하지는 못하지만 청컨대 시험삼아 분별하겠습니다. 토끼는 음류이고, 또 굴속에서 살아 교활하게 엎드리니 반역의 상입니다. 지금 그 색을 희게하고 그 무리에서 뛰어나며 그 마음을 순히하여 우리 덕에 교화를 입은 것입니다. 사람처럼 서서 팔짱을 낌은 금수의 일이 아닙니다. 고쳐서 사람을 따르니 또 죄에 복종함 입니다. 부리에서 얻으니 부리는 진실로 오랑캐의 나라이니 이름이 또 부리(附麗)입니다. 농부의 밭에 있지 않고 군전에 있으니 무덕이 행해지는 것이요, 전쟁하지 않고 회유하는 방도이니 안부의 아름다운 이름이 있는 것입니다. 엎드려 생각하니 합하는 황실의 팔다리이며, 천하의 울타리니, 사방에 반역의 신하가 있으면 병장기에 피를 묻히지 않고 두렵게 하고 무너뜨려 나아게 귀의하는 것이 그 조짐일 것입니다. 이것은 마땅히 행적을 갖추어 드러내어 알려서 천의에 보답해야 할 것입니다. 소자는 지혜롭지 못하여 외람되어 문구의// 猥以文句微識䝉念 이 성대한 아름다움을 보이니, 어찌 감히 사양하지 않는 질책을 피하여 가만히 있겠습니까?

與汝州盧郎中論薦侯喜狀

여주 노랑중에게 주어서 후희를 천거함을 논하는 글

文婉曲感慨 盧郎中當為刺心推轂矣

문장이 완곡하고 감개하니 노랑중이 마땅히 마음에 찔려 추천하였을 것이다.

右其人為文甚古 立志甚堅 行止取捨 有士君子之操 家貧親老 無援於朝 在舉塲十餘年 竟無知遇 愈常慕其才 而恨其屈 與之還往 歳月巳多 嘗欲薦之於主司 言之於上位 名卑官賤 其路無由 觀其所為文 未嘗不揜巻長嘆 去年 愈從調選 本欲攜持同行 適遇其人自有家事 迍邅坎坷 又廢一年 及春末 自京還 怪其久絕消息 五月初 至此 自言為閣下所知 辭氣激揚 面有矜色 曰侯喜死不恨矣 喜辭親入關 羈旅道路 見王公數百 未嘗有如盧公之知我也 比者 分將委棄泥塗 老死草野 今胸中之氣 勃勃然 復有仕進之路矣 愈感其言 賀之以酒 謂之 曰盧公天下之賢刺史也 未嘗有所推引 蓋難其人 而重其事 今子鬱為選首 其言死不恨 固宜也 古所謂知巳者 正如此耳 身在貧賤 為天下所不知 獨見遇於大賢 乃可貴耳 若自有名聲 又託形勢 此乃市道之事 又何足貴乎 子之遇知於盧公 真所謂知巳者也 士之修身立節而竟不遇知己 前古已來 不可勝數 或日接膝而不相知 或異世而相慕 以其遭逢之難 故曰士為知巳者死 不其然乎 不其然乎 閣下既已知侯生而愈復以侯生言於閣下者 非為侯生謀也 感知巳之難遇 大閣下之徳而憐侯生之心 故因其行而獻於左右焉 謹狀

오른쪽의 그 사람은 문장이 매우 고풍스럽고 뜻을 세움이 매우 굳건하여 행동거지와 취사선택이 사군자의 절조가 있다. 집안이 가난하고 어버이가 늙었으나 조정에는 당겨주는 사람이 없어 과거장에 10년 동안 있었으나 끝내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한유가 항상 그의 재주를 사모하고 그가 합격하지 못함을 한스러워하여 더불어 왕래함이 세월이 이미 많습니다. 일찍이 담당관리에게 천거하고 윗자리에 있는 사람에게 말하고자 하나 이름이 비루하고 관직이 낮아서 말미암을 길이 없었습니다. 그의 지은 문장을 살펴보고는 일찍이 책장을 덮고서 길이 탄식하지 않음이 없었습니다. 지난해에 한유가 조선(調選)으로 인하여 본디 데리고 동행하고자 하였으나, 마침 그 사람이 집안에 변고가 생김을 만나 머뭇거리다가 또 폐한지 1년 이었습니다. 늦은 봄에 경성으로부터 돌아와 그가 오래도록 소식이 끊김을 이상하게 생각하였습니다. 5월 초순에 여기에 이르러 스스로 말하기를, “합하에게 알려졌습니다.”라고 하여는데, 말하는 사이에 격양하고 얼굴에는 즐거워하는 빛을 띠고 말하기를, “후희는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입니다. 제가 어버이를 하직하고 관중에 들어와서 도로에서 나그네가 되어 많은 왕공을 보았지만 일찍이 노공이 나를 알아줌과 같지 않았습니다. 근자에 분수에 장차 구릉에 빠져 초야에서 늙어 죽어려고 하였더니, 지금 가슴의 기운이 왕성하게 다시 벼슬에 나아가는 길이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한유가 그 말에 감격스러워 술로 축하하며 말하기를, “노공은 천하에 어진 자사이다. 일찍이 추천함이 있지 않은 것은 대개 그 사람을 추천함을 어렵게 여기고 그 일을 중심함이니, 지금 그대가 성대하게 선발의 으뜸이 되었으니, 그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말은 진실로 마땅할 것이다. 옛날에 이른 바 지기(知己)라는 것이 정히 이와 같을 따름이다. 자신이 빈천 가운데에 있어서 천하에 알려지지 않다가 유독 대현을 만났으니 진실로 이른 바 지기라는 것이다. 선비가 수신하고 절개를 세웠으나 끝내 지기를 만나지 못함이 고래로부터 다 헤아릴 수 없으니, 혹은 날마다 가까이 있으면서도 서로 알지 못하고 혹은 세대를 달리하여 서로 사모하니 그 만남의 어려움 때문이다. 그러므로 선비가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하여 죽는다는 것이 그 그렇지 않겠는가? 그렇지 않겠는가?”

합하가 이미 후생을 알지만 한유가 다시 후생을 합하에게 말하는 것은 후생을 위해 도모하는 것이 아니라, 지기의 만나기 어려움을 감격하고 합하의 덕을 크게 여기고 후생의 마음을 가련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행실로 인하여 좌우에 바칩니다. 삼가 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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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0) 2008.0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