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문/백천헌기

오징

황성 2008. 7. 11. 00:43
 

                                                百泉軒記 

元吳澄撰


昔孟子之言道也 曰若泉始達 曰原泉混混 泉乎泉乎 何取於泉也 泉者水之初出也 易八卦之中 坎為水 六十四卦之中 有坎者十五 水之在天 為雲為雨 而在地則為泉 故坎十五卦 象水者十一 象雲者二 象雨者一 獨下坎上艮之䝉 水出山下 其象為泉而以擬果行育徳之君子 嶽麓之泉 山下之泉也 嶽麓書院 在潭城之南 湘水之西 衡山之北 固為山水絶佳之處 書院之右 有泉不一 如雪如氷 如練如鶴 自西而來 趨而北 折而東 環遶而南 注為清池 四時澄澄 無毫髪滓 萬古涓涓 無須臾息 屋於其間 為百泉軒 又為書院絶佳之境 朱子元晦張子敬夫聚處同游於嶽麓也 晝而燕坐 夜而棲宿 必如是也 二先生之酷愛泉 是也 盖非止於玩物適情而已 逝者如斯夫 不舍晝夜 惟知道者能言之 嗚呼 是豈凢儒俗士之所得聞哉 中經兵火 軒與書院俱燬 至元丁亥 始復舊觀 上距乾道丁亥二先生㳺處之時 百二十一年矣 延祐甲寅 潭郡治中소陵劉侯 又乃重脩之 侯與余相好也 余亦知侯之為人 故其脩是軒也 余為之記 侯名安仁 字徳夫 余為誰臨川吳澄也


 옛적 맹자가 도를 말함에 ‘마치 샘이 처음 나오는 것과 같다.’라고 하였고, 또 말하기를, ‘원천이 끊임없네.’라고 하였다. 샘이여 샘이여 무엇을 샘에서 취했는고? 샘이라는 것은 물이 처음 나오는 것이니, 주역의 8괘 가운데 감(坎)이 수(水)가 되고 64괘 가운데 감이 있는 것은 15이니 물이 하늘에 있는 것이 구름이 되고 비가 되며 땅에 있다면 천(泉)이 되기 때문에 감의 15괘에 수(水)를 형상한 것이 11이고 구름은 형상한 것이 2이요 비를 형상한 것이 1요, 유독 아래가 감(坎)이고 위가 간(艮)인 몽(蒙)은 물이 산 아래에서 나오니 기 형상이 천(泉)이되고, 이것으로 과단성 있게 형동하고 덕을 기르는 군자에 비긴다.

 악록의 천(泉)은 산 아래의 천(泉)이니, 악록서원은 담성의 남쪽, 상수의 서쪽, 형산의 북쪽에 있으니 진실로 산수 가운데 아름다운 곳이 된다. 서원의 오른쪽에 천(泉)이 여러 개가 있으니, 마치 설(雪)과 같으며 빙(氷)과 같으며 학(鶴)과 같으며, 련(練)과 같다. 서쪽으로부터 와서 달려서 북쪽으로 가고 꺾여서 동쪽으로 가고 둘러서 남쪽으로 들어가 맑은 못이 되어 사계절에 맑고 맑아 조금이라도 찌꺼기가 없고 만고에 흘러서 순간이라도 종식됨이 없나니, 그 사이에 집을 지어서 백천헌(百泉軒)으로 삼으니, 또 서원 가운데 빼어나게 아름다운 곳이 된다.

 주원회와 장경부가 모여서 악록에 함께 유람을 함에 낮에는 잔치하며 앉고 밤에는 거처하면서 숙박을 함에 반드시 이것과 같았을 것이니 두 선생이 몹시도 샘을 사랑함이 이러한 이유이고, 대개 사물을 완상하고 정에 알맞게 함에서 그칠 뿐만이 아니였다. 흘러가는 것이 이와 같이 하여 밤낮으로 멈추지 않는다라고 함은 오직 도를 아는 사람만이 능히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아, 이 어찌 범속한 선비가 들을 수 있는 것이겠는가?

 중간에 병화를 겪어서 백천헌과 서원이 모두 훼손되었다. 지원 정해년에 비로서 옛 경관을 복원하니 위로 건도 정해년 두 선생이 여기에서 유람한 때와의 거리는 121년이다. 연우 갑인년에 담주군의 치소 가운데 소릉의 유후가 또 중수하니, 유후는 나와 서로 우호가 있다. 내가 또한 유후의 사람됨을 알기 때문에 그가 이 백천헌을 수리함에 내가 그를 위하여 기문을 짓는다. 후의 이름은 안인이고 자는 덕부이다. 나는 누구인고, 임천의 오징이다.



風雩亭詞.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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