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송팔대가문초/문초범례

문초범례

황성 2008. 5. 24. 12:09
 

팔대가문초범례


구판각 범례


凡, 내가 기록한 8대가의 문장 약간 편이 대개 고아한 문장이나 그러나 중간에 또한 공교로우면서도 지극하지 못한 것이 있으나, 다만 도에 어긋나지 아니하여 조금 작자의 뜻에 합당하다. 이 때문에 문득 보존하여 빠트리지 않았다.

凡, 8대가의 문장을 기록하면 모두 전집 혹은 별집 속집 및 다른 서책에 보이는 것에 토대로 삼아서 자못 엮고 찾아서 빠트리지 않았지만 유독 구양수의 문장은 오대사와 당서에 보이는 것을 사이에 小論과 인(引)의 머리에 취하여 기록하였을 따름이다. 별도로 절로 오대사와 당서 초(抄)에 있기 때문에 미치지 않고 소자유(蘇子由) 고사(古史)도 또한 겨우 소론을 기록한다.

凡, 한 편의 본말과 큰 뜻은 들어서 본 제목의 아래에 새겼다. 간혹 편장 가운데에 혹 -, 혹-을 발랐고, 그 사이의 기안하고 혹은 결안하였으며, 문장의 일체 긴절한 곳에 미쳐서는 또한 모두 혹-, 혹-, 혹은 ㄴ을 발랐으며, 혹은 곁에 여러 글자를 썼다.

凡, 문장의 아름다운 곳에 있어서는 으뜸은 원권(圓圈)하고 다음은 첨권(尖圈)하고 또 그 다음은 방점(傍點)하였고, 사이에 떨어진 곳이 있으면 또한 곁에 칠을 하고 혹은 몇 자를 적었으니 비유하자면 한아름들이 나무에 한치의 흠과 명월의 보배에 있어서 약간의 흠이 보배로움에는 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凡, 비평을 기록한 것은 다면 나의 견해에 의거하였을 따름이다. 지난날 여동래(呂東萊), 루우재(婁迂齋), 사방득(謝枋得) 이하는 대체로 기록하지 않았으니, 그것은 세상에 행해진지가 이미 오래 되었고 학사 대부가 모두 알기 때문이다. 유독 근자에 당형천(唐荊川) 왕준암(王遵巖) 두 사람이 기록한 것은 세상에서 반드시 알지 못하기 때문에 당형천은 ○으로 왕준암은 󰋽�� 으로 하여 각각 위에 표점을 하여 두 사람의 마음을 씀과 독서하는 곳을 보였고, 나의 견에 있어서는 합당하고 합당하지 않음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凡, 8사람이 지은 바 논문의 뜻을 조카인 모계(茅桂)가 언젠가 기록하여 편찬함이 오래되었다. 내가 관람을 하고 인하여 머리 범례의 뒤에 판각을 붙여서 별도로 한 권을 만들게 하였으니, 이 문초를 읽는 사람은 한 번 책을 펼치는 사이에 8선생 문호 대도를 또한 명료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일찍이 말하기를 “8군자는 그 문예가 공교로울 뿐만이 아니라 그 각각의 일을 실천함과 절개가 많이 관찰할 말한 것이 있으니, 또한 학자는 알아야 한다. 내가 짐짓 그 본전을 끊어서 기록하여 각 사람의 문초의 머리에 붙인다.

 

 위는 옛 판각의 범례가 된다. 오히려 논문 9칙(則)이 곧 뒤에 붙어있으니, 마치 보배로운 옥이 흙 속에 숨어 있으며, 정교한 천리마가 먼지 뒤에서 뒤따라오는 것과 같았다. 관람을 하는 사람이 매번 애석하게 여겼는데, 지금 원문의 범례를 살피니 별도로 한 권의 말이 있어서 감히 장을 나누고 별도로 판각을 함에, 이미 선생이 8대가의 문장을 선집한 뜻을 볼 수 있고 또한 뒷사람이 8대가의 문장을 읽는 안목을 열 수 있다. 또 새로운 판각에 많이 같지 않는 곳이 있기 때문에 모두 새로운 범례 몇 항목을 붙이니, 이 책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 판각이 비단 8대가의 정본임이 될 뿐만이 아니라 또한 녹문(鹿門) 선생의 공신이 됨을 알게 한다.   


새판각 범례


一, 옛 판각은 이미 교정을 하여 녹문(鹿門) 선생의 처음 뜻을 잃지 않았으나, 그러나 오히려 제목은 있으나 문장이 빠진 것이 있으니, 지금 보충하되 감히 망녕되이 평점(評點)을 더하지 않는다.

一, 정보한 속집은 옛 판각을 답습하여 구차히 간략하게 결점을 보충함을 면하지 못하니, 간간히 두상안두(頭上安頭) 미후접미(尾後接尾)한 것이 있으니 지금 모두 차례대로 고치고 바로잡는다.

一, 오류가 있고 탈락한 곳은 모두 선본(善本)의 전집을 대조하여 고증하고 고치니, 마치 소식의 문집에 논경동도적장(論京東盜賊狀)과 같은 것은 변시관직책문차자(辨試館職策問箚子) 2수에 섞여 있고, 문정공(文定公)의 문집에는 끝내 몇 항이 빠져있는 곳이 있다. 형공(荊公)의 지명(誌銘)은 잘못하여 다른 명(銘)에 들어 간 것이 있으니, 이와 같은 것이 매우 많거늘 지금 모두 바로잡았다.

一, 여러 문장가의 표계(表啓)와 자유(子由)의 고론(古論)은 옛 판각에 공판을 생략함으로 인하여 마침내 이어져 있거늘 지금 문집 가운데의 옛 법식을 기준으로 삼아 각각 편을 나누어 한 예로 삼으려 한다.

一, 원래 판각의 표점과 비평에 있어서 당형천(唐荊川)은 원권(圓圈)으로 왕준암(王遵巖)은 첨권(尖圈)으로 표시하여 지금에 혼돈되기가 쉬우니 곧바로 당형천(唐荊川) 왕준암(王遵巖) 두 선생의 자호(字號)를 기록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한 번 열람을 하면 알 수 있게 하고 번거롭게 재차 살피지 않게 한다. 선생이 구양수의 문장에 서문을 쓰면서 말하기를, “세상에서 구양순의 온전한 문장을 보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나가 다른 곳에 비평하고 주해한 당서(唐書)와 오대사(五代史)를 합하여 읽어야 이에 얻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인하여 아울러 뒤에 붙여서 구양수의 한 사람의 문장을 갖추니 쓸데없는 것은 아니다.  

 

팔대가문초범례(2).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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